고산농악(孤山农乐)

고산농악

한자명

孤山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남성진(南聖辰)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대흥동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관

대흥동은 2002년에 내환동에서 동 이름을 바꾸었으며, 1981년 대구직할시 승격과 함께 경산 고산면에서 대구로 편입된 지역이다. 대흥동은 고려시대부터 곡계谷溪라 불린 옛 ‘서울나들’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농촌 자연마을로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살았다. 서울나들이의 길목에 있다 보니 과거를 보러 가는 유생들이 곡계 서당에 머물러 가기도 했으며, 곡기谷己로 널리 알려진 고장이었다고 한다. 내환內患이라는 마을 이름은 대덕산大德山 기슭의 심천곡深川谷(속칭 심칭이골)을 발원지로 마을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이 다섯덤(웃각단, 아랫각단, 숲골각단, 대밭각단, 꿩지)을 마치 꼬지 꿰듯 관통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심천곡을 중심으로 농사가 잘 발달되었으며, 개울에 보를 막을 때나 논매기를 할 때 농악을 쳤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당제를 지내며, 당제를 지낼 제관과 축관을 택하기 위해 당신제굿(천왕받이굿)을 했다. 이때 농악을 쳤다고 한다. 천왕받이굿이 끝나면 집집을 방문하여 풍농과 안택을 기원하는 지신밟기를 했으며, 이것이 고산농악의 기원이다. 또한 윗대부터 “농사가 잘 되려면 농악을 잘 하라.”는 당부가 전해 내려오듯 논매는 철의 두레 노동농악이 왕성했다. 대흥동은 농악의 전승 유지를 위해 19세기부터 계契를 조직하였고, 그때 사용한 계첩契牒이 남아 있다. 농악계는 노인회 등의 초청을 받으면 판제농악(판굿)도 펼쳐 주곤 했다.
마을 개척 시기부터 전승되어 온 고산농악은 상쇠 장이만張利萬에게 쇠가락이 전승되어 왔는데, 상쇠 장이만은 부락마치, 조름세, 굿거리, 살풀이장단 등에 능숙하였다고 한다. 고산농악은 본래 소박성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으며 고산농악보존회가 관리하고 있다. 1983년 제2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문공부장관상(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그때 받은 상금을 기금으로 고산농악대를 조직하여 전승하고 있다. 고산농악은 오랜 옛날부터 농경생활과 더불어 전래된 경상도 특유의 투박하고 단순하며 빠르고 힘이 넘치는 농악 가락이다. 경상도 지방의 고유성이 인정되어 1984년 7월 25일 대구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고산농악은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 동제를 지낼 때 당굿으로 주로 행해졌다. 자연촌락 노인들을 중심으로 연행이 이루어져 전통적인 특색이 잘 보존되고 있다. 농악대의 편성은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쇠 3명(상쇠 1명, 종쇠 2명), 징 6명, 북10명, 장구 10명, 소고(상모) 14명, 농기수 3명, 나무나발 1명으로 편성된다. 잡색으로는 양반 1명, 포수 1명, 색시 2명이 등장한다. 다른 농악에 비해 비교적 인원수가 많으며, 50명 내외의 인원이 연주를 했을 때 고산농악 고유의 멋을 낼 수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특징적인 것은 띵각(목덩강)이라는 나발을 사용하는 것이다. 띵각은 길이가 약 300㎝, 지름이 10~15㎝ 되는 오동나무를 불로 지져 구멍을 낸다. 구멍에 약 1m가량 되는 구멍 뚫린 대나무를 꽂아서 소리를 내는 악기로 코끼리 울음소리같이 웅장하였다고 한다.
고산농악대의 복색을 보면 농기수는 흰옷에 적·황·녹의 삼색띠를 양 어깨와 허리에 두르고, 다른 지방의 것보다 두 배나 큰 흰 고깔을 쓴다. 상쇠는 흰 머리띠를 두르고 흰옷을 입고 적·황·청 삼색띠를 양 어깨와 허리에 두른다. 종쇠는 흰옷에 적·녹·황 삼색띠를 양 어깨와 허리에 두르고 전립을 쓴다. 징은 농기수와 같은 복색을 한다. 법고는 흰옷에 적·녹·황 삼색띠를 양 어깨와 허리에 두르고 전립(상모)을 쓴다. 목덩강(나발)은 농기수와 같은 복색을 한다. 양반은 흰 장삼을 착용하고 모자를 쓴다. 포수는 검은옷을 입고 털모자를 쓰며 손에는 총을 든다. 색시는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를 입는다. 고산농악의 종류에는 당산제굿, 지신밟기, 판굿이 있다. 그 내용과 형태를 보면 아래와 같다.

  1. 당산제굿(천왕내림굿)
    당산제굿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지내는 동신제로 풍농, 안택, 가축의 무사를 기원하며 액을 쫓아 주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마을공동체 의례이다. 제물은 청어 세 마리, 자반(미역), 나물, 과일 등과 돼지 한 마리를 올린다. 제주(탁주)는 제관 집에서 3~4일 전에 담근 것을 쓰며 떡(백짐)은 중당, 하당에만 쓴다. 제관과 축관 집은 금줄을 치고 황토를 대문 밖 양쪽으로 4~5군데 뿌리고 상주나 외인을 피하며 정성을 들인다. 제사일이 되면 제관, 축관은 정화수를 떠다 놓고 손을 적셔 왼새끼를 꼬아 상, 중, 하당에다 금줄을 치며(음력 정월14일) 창호지를 잘라 중간 중간 꽂는다. 당산제굿의 순서는 상당(성지골)을 거쳐 중당(대밭 뒤)·하당(숲곡각덤)에서 대나무 신내림을 받은 뒤,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집으로 간다.
    1) 상당산제굿: 정월 14일 밤 11시(자시) 지나 상당泉龍(샘)에 지레솥(질그릇 솥)을 걸어 밥을 짓고 미역을 참기름으로 튀기고 술만 가지고 가서 상당제를 지낸다. 촛불(또는 기름불)은 등에 넣어 사용하며 독축을 하고 밥솥 째로 수저를 건다. 이때 상당에는 제관, 축관 외 다른 사람은 가지 않는다. 제를 마친 뒤에는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한다.
    2) 중당산제굿: 중당제는 중당 옆에 지레솥을 걸고 여러 사람이 여기서 같이 밤을 새워 지킨다. 돼지를 잡아 떡만 놓고 제를 지낸다. 잽이(치배)들은 길매구가락을 치면서 길놀이를 하여 중당산나무 주변으로 모이고, 제관과 축관은 재배 독축을 하고 무사안녕의 소지를 올린다. 그 뒤 음복하고 축문을 불사르는데, 이때 쇠가락은 덧배기·천왕가락·우장작꽹이 등을 친다. 소지를 올릴 때는 입경 순서대로 아산 장씨, 청주 정씨, 청주 한씨 순으로 빌고 가축의 무병을 빈다.
    3) 거리굿: 이열종대로 벌려 선 뒤 쇠꾼을 비롯한 북잽이·잡색들은 안으로 들어가 개인놀이를 하고, 춤매구·우장작꽹이 등 덧배기가락을 친다. 그리고 길군악을 치면서 길놀이를 하고 하당굿으로 들어간다.
    4) 하당산제굿: 중당제가 끝난 뒤 제관 집으로 가서 제수를 갖고 하당으로 간다. 밥 세 그릇, 나물 일체와 과일을 갖춘다. 제관이 축문을 낭독하고 재배, 음복하고 축문을 사르는 등, 중당산제굿과 같이 행한다. 하당제가 끝나고 나면 제관 집으로 간다. 먼저 제관 집을 청하고, 다음으로 축관 집을 청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대주는 정화수를 올려놓고 재배한다. 제관, 축관 집에서 술을 대접하면 농악 한마당을 하면서 흥을 돋운다. 그리고 음복 하고 식사를 한다. 이때는 보통 7~8인이 돌게 된다. 돼지고기의 부속물은 안주로 먹고 온마리는 그냥 두었다가 대보름날 동회를 마치고 동민이 모두 같이 모여 술과 같이 먹는다. 달이 뜨고 대덕산 꼭대기에는 아이들이 달불을 놓고 농악대는 용기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지신을 밟으며 액을 물리치고 복을 빈다.

  2. 지신밟기
    지신밟기는 위의 천왕내림굿(당산제)에서 내린 신을 모시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축원덕담을 해 주는 것을 말한다. 농기를 앞세우고 대문 앞에서 지신을 밟으러 들어간다는 신호로 상쇠와 잽이가 “주인 주인 문여소 나그네 손님 드간다” 하면서 우장작꽹이(휘모리)가락을 치며 놀고 있으면 주인이 나온다. 주인이 판 위에 쌀을 담은 사발에 촛불을 붙이고 절을 하면 들어가도 좋다는 뜻으로 알고 모든 잽이들이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한마당 신나게 놀고 난 뒤, 성주굿부터 시작하여 지신을 밟는다. 성주굿은 마루에 제물을 차리고 덧배기가락에 맞추어 성주풀이 노래를 한다. 성주굿이 끝나면 우물굿을 하고 부엌으로 가서 덧배기가락을 치며 조왕풀이를 하고, 장고방에 가서 장고방풀이, 장독대에 가서 용왕풀이를 한 뒤 고방풀이, 방앗간풀이, 마구간풀이로 이어지며 마지막으로 마당을 돌면서 덧배기가락으로 마당굿을 행한다. 한편으로 장독, 부엌, 마구 등에 지신을 밟고 마지막으로 뒤주 지신을 밟으면서 12해의 잡신을 막아 주는 것으로 끝을 맺기도 한다.

  3. 판굿
    1) 입장(질매구): 일반적으로 질매구는 천왕 받으러 갈 때, 산중 오솔길이나 개울을 건너가거나 좁은 논밭 길을 대오를 정렬하지 않고 이동할 때 치는 가락이다. 저마다 발이 맞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추근추근 느리게 치는 가락이다. 특별한 행사나 대회의 경우에는 입장할 때 행진가락(길군악)을 치면서 본 무대로 나온 뒤 덧배기(삼채)가락으로 바꾸어서 얼마간 연주하다 가락을 멈춘다. 이때 쇠 신호 가락에 맞춰 정면을 향해 선다.
    2) 인사(우장작꽹이): 우장작꽹이는 휘모리의 다른 표현인데 조름쇠라고도 한다. 매우 빠르게 올려치다가 맺으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덧배기가락을 치며 큰 원을 만들어 전체 관중을 향해 다시 인사한다.
    3) 덩덕궁이(원진, 태극놀이): 상쇠의 지휘에 따라 가볍게 뛰면서 시계 반대 방향과 시계 방향으로 원을 돌며 태극무늬를 만든다. 이 놀이는 모든 잽이들이 큰 원을 만들고 상모잽이가 원 중간에서 태극무늬를 만들어서 논다. 상모잽이가 태극무늬를 만들고 나면 상쇠의 신호가락에 따라 무늬를 더욱 확실히 나타내도록 모든 잽이들이 일제히 앉는다. 다음으로 신호 가락에 맞춰 태극무늬를 풀어 다시 원을 만든다.
    4) 돌석(진굿, 이열놀이): 원을 돌며 상쇠의 쇠 꺾음에 따라 뒤돌아가기를 두 번 한 뒤, 상쇠가 다시 한 번 쇠를 꺾으면 뒤로 돌아 두 개의 동심원을 그린다. 즉, 전원이 이열을 만들고 이어 좌우측의 잽이들이 멍석말이와 멍석풀이를 한다. 이를 다시 계속한다. 이때 좌측의 잽이들이 미리 멍석말이를 하게 되고 우측 잽이들은 따라 나간다. 이열놀이는 다른 지방의 쌍진풀이와는 달리 동시에 두 개의 원진을 그렸다가 양 진영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서로 교차하며 풀고 맺고 하는 놀이이다. 붉은 깃발은 양, 푸른 깃발은 음을 상징하며 서로 엇물고 돌아간다. 이는 만물생성의 근원을 상징하며 나눠지고 합하여 화합을 의미한다.
    5) 춤굿(판굿, 덧배기춤): 상쇠의 덧배기가락에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일렬 원진을 돌면서 각자 덧배기춤을 춘다.
    6) 오열놀이: 고산농악은 두레농악이지만 특이하게도 오열놀이와 같은 군악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이 놀이는 군대의 제식훈련처럼 일사불란한 잽이들의 움직임을 요구하는 놀이이다. 잽이를 배치시키고 상쇠의 신호 가락에 따라 뒤로 갔다가 다시 신호 가락에 맞춰 앞으로 온다. 다시 신호 가락을 치면 앉았다 일어서면서 ‘다섯덤’의 늠름함을 나타낸다.
    7) 닭쫓기놀이: 상모잽이 전원이 원 중앙에서 서로 손을 잡고 작은 원을 돌면서 닭을 쫓는 놀이이다. 닭쫓기는 보통 기존 농악판의 좌우치기, 강강술래와 견주어 볼 수 있다. 중심이 같은 원을 두 겹으로 형성하고 안쪽 원은 상모잽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상쇠의 신호 장단에 따라 좌우로 돈다. 바깥 원은 쇠·징·북·장구잽이들이 내부진과 반대 방향으로 상쇠의 신호 가락에 따라 돌며 경계하는 시늉을 한다. 이때 잡색인 색시가 가상의 닭이 되고 두 겹 원진 밖에 있는 포수가 살쾡이가 된다. 닭을 잡으려고 하는 살쾡이를 양반이 긴 담뱃 대로 후려갈기면 혼쭐이 난 살쾡이가 나동그라져 익살을 부린다. 이러한 장면은 해학적인 요소가 가미된 고산농악 특유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외침이 많았던 우리 역사에서 외부 침입자를 경계하는 의미로 행하였던 강강술래와 같은 형식의 민속놀이와 연관지을 수 있다.
    8) 오동놀이: 내환동에 산재해 있는 다섯마을(웃각단, 아랫각단, 대밭각단, 숲골각단, 꿩지)을 상징하며 노는 놀이이다. 상쇠의 신호 가락에 따라 각 잽이들은 다섯 방향(동, 서, 남, 북, 중앙)으로 배치된 후 다시 신호를 받아 외자반을 돈 뒤 대열을 풀어 큰 원을 만든다. 다섯개 마을의 풍농안택을 기원하고 복을 비는 놀이이다.
    9) 방석말이(똘똘말이): 농기를 구심점으로 상쇠가 원을 돌면서 좁혀 들어갔다가 다시 반대로 풀어 나온다. 이 놀이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돎’을 뜻하는 윤회를 상징하는 놀이이며, 다섯 개 덤이 한데 어우러져 화합을 상징하는 놀이이다. 농기를 중심으로 각 잽이(치배)들이 멍석 문양으로 똬리를 틀어서 노는데, 일사불란하게 모여들었다 다시 풀어 나오는 동작에서 역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10) 농사굿(모내기굿): 모든 잽이들은 제자리에서 연주하고 소고들은 잽이들 앞으로 일렬로 선다. 모심기·논매개·나락베기·나락묶기·나락단모으기·나락타작·나락풍기·나락가마니쌓아올리기 등의 순서로 농경 모의를 연출한다. 마지막으로 신명나게 논 뒤 퇴장한다.
    11) 판굿: 법고놀이, 장구놀이, 북놀이, 징놀이, 부포놀음 등 ‘다섯덤’이 각기 재주를 겨루는 마당이다.
    ①법고놀이: 법고잽이는 원의 중심으로 나와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하거나 소고를 발로 차면서 도는 동작을 한다. 또는 왼발 오른발 순으로 한 발씩 들면서 회전하고 원 선상을 돌아가는 동작을 한다.
    ②장구놀이: 장고잽이들이 원의 중심으로 들어가 왼손으로 양면을 치면서 춤을 추고, 이어서 왼발, 오른발 순으로 한 발씩 들며 회전하면서 원 선상을 돌아 제자리로 간다.
    ③북놀이: 북잽이가 원의 중심으로 나와 한 번 치기를 하면서 덧배기춤을 추고 왼발, 오른발 순으로 한 발씩 뛰면서 원 선상으로 돌아간다.(연풍대)
    ④징놀이: 나팔소리 등 흥겨운 연주와 함께 덧배기춤을 추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간다.
    ⑤부포놀음: 쇠꾼들이 원의 중심으로 나와서 부포를 한 쪽으로만 돌리는 윗상모와 부포를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돌리는 양상모를 한다.
    12) 뒷놀이(살풀이): 놀이에 나섰던 잽이들이 모두 나와 관객들과 어우러져 한바탕 신나게 노는 마당이다. 느린 가락으로 격정을 삭이며 환희와 희열에 벅찬 기분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풍요를 기리는 마당이다.
    13) 인사(퇴장): 살풀이 마당이 끝나면 덩덕궁이를 치면서 각 잽이들은 다시 대열을 맞춘 뒤 관중을 향해 인사한다. 그리고 퇴장하면서 전체 판굿이 종료된다.

특징 및 의의

고산농악의 특징은 전형적인 마을농악으로서 향토색 짙은 농악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연희 과정 중 이열놀이, 닭쫓기놀이, 오동(다섯덤)놀이 등은 고산농악에만 있는 독특한 놀이마당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농악에서 양반, 색시, 포수 등의 잡색들은 그 역할이 미미한 데 반해 고산농악은 닭쫓기놀이를 통해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여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또한 가락이 소박한 점과 나무나발인 ‘목덩강’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 농기수를 비롯하여 징수와 북수·장구수가 타 지역 농악보다 두 배 이상 큰 흰 고깔을 쓴다는 점, 그리고 악기 편성에 있어서 징과 북이 중요시되는 점과 상쇠전립을 쓰지 않고 부포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고산농악은 두레농악의 소박성을 지닌 농사굿과 풍농, 안택을 기원하는 원시신앙의 형태가 바탕이 되는 세시풍속으로 군사굿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지금까지 전래되어 오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기량 보다는 전체 농악꾼이 무리지어 돌며 노는 군무의 비중이 높은 성격의 놀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농악(유무열, 민족문화문고간행회, 1986), 농악(정병호, 열화당, 1986), 대구시사5(대구광역시, 1995), 한국의 농악-영남(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수서원, 1997).

고산농악

고산농악
한자명

孤山农乐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남성진(南聖辰)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대흥동에서 전승되는 농악.

개관

대흥동은 2002년에 내환동에서 동 이름을 바꾸었으며, 1981년 대구직할시 승격과 함께 경산 고산면에서 대구로 편입된 지역이다. 대흥동은 고려시대부터 곡계谷溪라 불린 옛 ‘서울나들’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농촌 자연마을로 여러 성씨들이 모여 살았다. 서울나들이의 길목에 있다 보니 과거를 보러 가는 유생들이 곡계 서당에 머물러 가기도 했으며, 곡기谷己로 널리 알려진 고장이었다고 한다. 내환內患이라는 마을 이름은 대덕산大德山 기슭의 심천곡深川谷(속칭 심칭이골)을 발원지로 마을을 가로지르는 실개천이 다섯덤(웃각단, 아랫각단, 숲골각단, 대밭각단, 꿩지)을 마치 꼬지 꿰듯 관통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 심천곡을 중심으로 농사가 잘 발달되었으며, 개울에 보를 막을 때나 논매기를 할 때 농악을 쳤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당제를 지내며, 당제를 지낼 제관과 축관을 택하기 위해 당신제굿(천왕받이굿)을 했다. 이때 농악을 쳤다고 한다. 천왕받이굿이 끝나면 집집을 방문하여 풍농과 안택을 기원하는 지신밟기를 했으며, 이것이 고산농악의 기원이다. 또한 윗대부터 “농사가 잘 되려면 농악을 잘 하라.”는 당부가 전해 내려오듯 논매는 철의 두레 노동농악이 왕성했다. 대흥동은 농악의 전승 유지를 위해 19세기부터 계契를 조직하였고, 그때 사용한 계첩契牒이 남아 있다. 농악계는 노인회 등의 초청을 받으면 판제농악(판굿)도 펼쳐 주곤 했다.
마을 개척 시기부터 전승되어 온 고산농악은 상쇠 장이만張利萬에게 쇠가락이 전승되어 왔는데, 상쇠 장이만은 부락마치, 조름세, 굿거리, 살풀이장단 등에 능숙하였다고 한다. 고산농악은 본래 소박성을 비교적 잘 보존하고 있으며 고산농악보존회가 관리하고 있다. 1983년 제23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참가하여 문공부장관상(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그때 받은 상금을 기금으로 고산농악대를 조직하여 전승하고 있다. 고산농악은 오랜 옛날부터 농경생활과 더불어 전래된 경상도 특유의 투박하고 단순하며 빠르고 힘이 넘치는 농악 가락이다. 경상도 지방의 고유성이 인정되어 1984년 7월 25일 대구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내용

고산농악은 해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 동제를 지낼 때 당굿으로 주로 행해졌다. 자연촌락 노인들을 중심으로 연행이 이루어져 전통적인 특색이 잘 보존되고 있다. 농악대의 편성은 상황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대체로 쇠 3명(상쇠 1명, 종쇠 2명), 징 6명, 북10명, 장구 10명, 소고(상모) 14명, 농기수 3명, 나무나발 1명으로 편성된다. 잡색으로는 양반 1명, 포수 1명, 색시 2명이 등장한다. 다른 농악에 비해 비교적 인원수가 많으며, 50명 내외의 인원이 연주를 했을 때 고산농악 고유의 멋을 낼 수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특징적인 것은 띵각(목덩강)이라는 나발을 사용하는 것이다. 띵각은 길이가 약 300㎝, 지름이 10~15㎝ 되는 오동나무를 불로 지져 구멍을 낸다. 구멍에 약 1m가량 되는 구멍 뚫린 대나무를 꽂아서 소리를 내는 악기로 코끼리 울음소리같이 웅장하였다고 한다.
고산농악대의 복색을 보면 농기수는 흰옷에 적·황·녹의 삼색띠를 양 어깨와 허리에 두르고, 다른 지방의 것보다 두 배나 큰 흰 고깔을 쓴다. 상쇠는 흰 머리띠를 두르고 흰옷을 입고 적·황·청 삼색띠를 양 어깨와 허리에 두른다. 종쇠는 흰옷에 적·녹·황 삼색띠를 양 어깨와 허리에 두르고 전립을 쓴다. 징은 농기수와 같은 복색을 한다. 법고는 흰옷에 적·녹·황 삼색띠를 양 어깨와 허리에 두르고 전립(상모)을 쓴다. 목덩강(나발)은 농기수와 같은 복색을 한다. 양반은 흰 장삼을 착용하고 모자를 쓴다. 포수는 검은옷을 입고 털모자를 쓰며 손에는 총을 든다. 색시는 노랑 저고리에 빨강 치마를 입는다. 고산농악의 종류에는 당산제굿, 지신밟기, 판굿이 있다. 그 내용과 형태를 보면 아래와 같다.

당산제굿(천왕내림굿)
당산제굿은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지내는 동신제로 풍농, 안택, 가축의 무사를 기원하며 액을 쫓아 주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마을공동체 의례이다. 제물은 청어 세 마리, 자반(미역), 나물, 과일 등과 돼지 한 마리를 올린다. 제주(탁주)는 제관 집에서 3~4일 전에 담근 것을 쓰며 떡(백짐)은 중당, 하당에만 쓴다. 제관과 축관 집은 금줄을 치고 황토를 대문 밖 양쪽으로 4~5군데 뿌리고 상주나 외인을 피하며 정성을 들인다. 제사일이 되면 제관, 축관은 정화수를 떠다 놓고 손을 적셔 왼새끼를 꼬아 상, 중, 하당에다 금줄을 치며(음력 정월14일) 창호지를 잘라 중간 중간 꽂는다. 당산제굿의 순서는 상당(성지골)을 거쳐 중당(대밭 뒤)·하당(숲곡각덤)에서 대나무 신내림을 받은 뒤,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집으로 간다.
1) 상당산제굿: 정월 14일 밤 11시(자시) 지나 상당泉龍(샘)에 지레솥(질그릇 솥)을 걸어 밥을 짓고 미역을 참기름으로 튀기고 술만 가지고 가서 상당제를 지낸다. 촛불(또는 기름불)은 등에 넣어 사용하며 독축을 하고 밥솥 째로 수저를 건다. 이때 상당에는 제관, 축관 외 다른 사람은 가지 않는다. 제를 마친 뒤에는 밥을 남기지 않고 다 먹어야 한다.
2) 중당산제굿: 중당제는 중당 옆에 지레솥을 걸고 여러 사람이 여기서 같이 밤을 새워 지킨다. 돼지를 잡아 떡만 놓고 제를 지낸다. 잽이(치배)들은 길매구가락을 치면서 길놀이를 하여 중당산나무 주변으로 모이고, 제관과 축관은 재배 독축을 하고 무사안녕의 소지를 올린다. 그 뒤 음복하고 축문을 불사르는데, 이때 쇠가락은 덧배기·천왕가락·우장작꽹이 등을 친다. 소지를 올릴 때는 입경 순서대로 아산 장씨, 청주 정씨, 청주 한씨 순으로 빌고 가축의 무병을 빈다.
3) 거리굿: 이열종대로 벌려 선 뒤 쇠꾼을 비롯한 북잽이·잡색들은 안으로 들어가 개인놀이를 하고, 춤매구·우장작꽹이 등 덧배기가락을 친다. 그리고 길군악을 치면서 길놀이를 하고 하당굿으로 들어간다.
4) 하당산제굿: 중당제가 끝난 뒤 제관 집으로 가서 제수를 갖고 하당으로 간다. 밥 세 그릇, 나물 일체와 과일을 갖춘다. 제관이 축문을 낭독하고 재배, 음복하고 축문을 사르는 등, 중당산제굿과 같이 행한다. 하당제가 끝나고 나면 제관 집으로 간다. 먼저 제관 집을 청하고, 다음으로 축관 집을 청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대주는 정화수를 올려놓고 재배한다. 제관, 축관 집에서 술을 대접하면 농악 한마당을 하면서 흥을 돋운다. 그리고 음복 하고 식사를 한다. 이때는 보통 7~8인이 돌게 된다. 돼지고기의 부속물은 안주로 먹고 온마리는 그냥 두었다가 대보름날 동회를 마치고 동민이 모두 같이 모여 술과 같이 먹는다. 달이 뜨고 대덕산 꼭대기에는 아이들이 달불을 놓고 농악대는 용기를 앞세우고 집집마다 지신을 밟으며 액을 물리치고 복을 빈다.

지신밟기
지신밟기는 위의 천왕내림굿(당산제)에서 내린 신을 모시고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축원덕담을 해 주는 것을 말한다. 농기를 앞세우고 대문 앞에서 지신을 밟으러 들어간다는 신호로 상쇠와 잽이가 “주인 주인 문여소 나그네 손님 드간다” 하면서 우장작꽹이(휘모리)가락을 치며 놀고 있으면 주인이 나온다. 주인이 판 위에 쌀을 담은 사발에 촛불을 붙이고 절을 하면 들어가도 좋다는 뜻으로 알고 모든 잽이들이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간다. 한마당 신나게 놀고 난 뒤, 성주굿부터 시작하여 지신을 밟는다. 성주굿은 마루에 제물을 차리고 덧배기가락에 맞추어 성주풀이 노래를 한다. 성주굿이 끝나면 우물굿을 하고 부엌으로 가서 덧배기가락을 치며 조왕풀이를 하고, 장고방에 가서 장고방풀이, 장독대에 가서 용왕풀이를 한 뒤 고방풀이, 방앗간풀이, 마구간풀이로 이어지며 마지막으로 마당을 돌면서 덧배기가락으로 마당굿을 행한다. 한편으로 장독, 부엌, 마구 등에 지신을 밟고 마지막으로 뒤주 지신을 밟으면서 12해의 잡신을 막아 주는 것으로 끝을 맺기도 한다.

판굿
1) 입장(질매구): 일반적으로 질매구는 천왕 받으러 갈 때, 산중 오솔길이나 개울을 건너가거나 좁은 논밭 길을 대오를 정렬하지 않고 이동할 때 치는 가락이다. 저마다 발이 맞지 않아도 될 정도로 추근추근 느리게 치는 가락이다. 특별한 행사나 대회의 경우에는 입장할 때 행진가락(길군악)을 치면서 본 무대로 나온 뒤 덧배기(삼채)가락으로 바꾸어서 얼마간 연주하다 가락을 멈춘다. 이때 쇠 신호 가락에 맞춰 정면을 향해 선다.
2) 인사(우장작꽹이): 우장작꽹이는 휘모리의 다른 표현인데 조름쇠라고도 한다. 매우 빠르게 올려치다가 맺으며 인사를 한다. 그리고 덧배기가락을 치며 큰 원을 만들어 전체 관중을 향해 다시 인사한다.
3) 덩덕궁이(원진, 태극놀이): 상쇠의 지휘에 따라 가볍게 뛰면서 시계 반대 방향과 시계 방향으로 원을 돌며 태극무늬를 만든다. 이 놀이는 모든 잽이들이 큰 원을 만들고 상모잽이가 원 중간에서 태극무늬를 만들어서 논다. 상모잽이가 태극무늬를 만들고 나면 상쇠의 신호가락에 따라 무늬를 더욱 확실히 나타내도록 모든 잽이들이 일제히 앉는다. 다음으로 신호 가락에 맞춰 태극무늬를 풀어 다시 원을 만든다.
4) 돌석(진굿, 이열놀이): 원을 돌며 상쇠의 쇠 꺾음에 따라 뒤돌아가기를 두 번 한 뒤, 상쇠가 다시 한 번 쇠를 꺾으면 뒤로 돌아 두 개의 동심원을 그린다. 즉, 전원이 이열을 만들고 이어 좌우측의 잽이들이 멍석말이와 멍석풀이를 한다. 이를 다시 계속한다. 이때 좌측의 잽이들이 미리 멍석말이를 하게 되고 우측 잽이들은 따라 나간다. 이열놀이는 다른 지방의 쌍진풀이와는 달리 동시에 두 개의 원진을 그렸다가 양 진영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서로 교차하며 풀고 맺고 하는 놀이이다. 붉은 깃발은 양, 푸른 깃발은 음을 상징하며 서로 엇물고 돌아간다. 이는 만물생성의 근원을 상징하며 나눠지고 합하여 화합을 의미한다.
5) 춤굿(판굿, 덧배기춤): 상쇠의 덧배기가락에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일렬 원진을 돌면서 각자 덧배기춤을 춘다.
6) 오열놀이: 고산농악은 두레농악이지만 특이하게도 오열놀이와 같은 군악적인 요소를 포함한다. 이 놀이는 군대의 제식훈련처럼 일사불란한 잽이들의 움직임을 요구하는 놀이이다. 잽이를 배치시키고 상쇠의 신호 가락에 따라 뒤로 갔다가 다시 신호 가락에 맞춰 앞으로 온다. 다시 신호 가락을 치면 앉았다 일어서면서 ‘다섯덤’의 늠름함을 나타낸다.
7) 닭쫓기놀이: 상모잽이 전원이 원 중앙에서 서로 손을 잡고 작은 원을 돌면서 닭을 쫓는 놀이이다. 닭쫓기는 보통 기존 농악판의 좌우치기, 강강술래와 견주어 볼 수 있다. 중심이 같은 원을 두 겹으로 형성하고 안쪽 원은 상모잽이들이 서로 손을 잡고 상쇠의 신호 장단에 따라 좌우로 돈다. 바깥 원은 쇠·징·북·장구잽이들이 내부진과 반대 방향으로 상쇠의 신호 가락에 따라 돌며 경계하는 시늉을 한다. 이때 잡색인 색시가 가상의 닭이 되고 두 겹 원진 밖에 있는 포수가 살쾡이가 된다. 닭을 잡으려고 하는 살쾡이를 양반이 긴 담뱃 대로 후려갈기면 혼쭐이 난 살쾡이가 나동그라져 익살을 부린다. 이러한 장면은 해학적인 요소가 가미된 고산농악 특유의 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외침이 많았던 우리 역사에서 외부 침입자를 경계하는 의미로 행하였던 강강술래와 같은 형식의 민속놀이와 연관지을 수 있다.
8) 오동놀이: 내환동에 산재해 있는 다섯마을(웃각단, 아랫각단, 대밭각단, 숲골각단, 꿩지)을 상징하며 노는 놀이이다. 상쇠의 신호 가락에 따라 각 잽이들은 다섯 방향(동, 서, 남, 북, 중앙)으로 배치된 후 다시 신호를 받아 외자반을 돈 뒤 대열을 풀어 큰 원을 만든다. 다섯개 마을의 풍농안택을 기원하고 복을 비는 놀이이다.
9) 방석말이(똘똘말이): 농기를 구심점으로 상쇠가 원을 돌면서 좁혀 들어갔다가 다시 반대로 풀어 나온다. 이 놀이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돎’을 뜻하는 윤회를 상징하는 놀이이며, 다섯 개 덤이 한데 어우러져 화합을 상징하는 놀이이다. 농기를 중심으로 각 잽이(치배)들이 멍석 문양으로 똬리를 틀어서 노는데, 일사불란하게 모여들었다 다시 풀어 나오는 동작에서 역동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10) 농사굿(모내기굿): 모든 잽이들은 제자리에서 연주하고 소고들은 잽이들 앞으로 일렬로 선다. 모심기·논매개·나락베기·나락묶기·나락단모으기·나락타작·나락풍기·나락가마니쌓아올리기 등의 순서로 농경 모의를 연출한다. 마지막으로 신명나게 논 뒤 퇴장한다.
11) 판굿: 법고놀이, 장구놀이, 북놀이, 징놀이, 부포놀음 등 ‘다섯덤’이 각기 재주를 겨루는 마당이다.
①법고놀이: 법고잽이는 원의 중심으로 나와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을 반복하거나 소고를 발로 차면서 도는 동작을 한다. 또는 왼발 오른발 순으로 한 발씩 들면서 회전하고 원 선상을 돌아가는 동작을 한다.
②장구놀이: 장고잽이들이 원의 중심으로 들어가 왼손으로 양면을 치면서 춤을 추고, 이어서 왼발, 오른발 순으로 한 발씩 들며 회전하면서 원 선상을 돌아 제자리로 간다.
③북놀이: 북잽이가 원의 중심으로 나와 한 번 치기를 하면서 덧배기춤을 추고 왼발, 오른발 순으로 한 발씩 뛰면서 원 선상으로 돌아간다.(연풍대)
④징놀이: 나팔소리 등 흥겨운 연주와 함께 덧배기춤을 추면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간다.
⑤부포놀음: 쇠꾼들이 원의 중심으로 나와서 부포를 한 쪽으로만 돌리는 윗상모와 부포를 좌우로 번갈아 가면서 돌리는 양상모를 한다.
12) 뒷놀이(살풀이): 놀이에 나섰던 잽이들이 모두 나와 관객들과 어우러져 한바탕 신나게 노는 마당이다. 느린 가락으로 격정을 삭이며 환희와 희열에 벅찬 기분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며 풍요를 기리는 마당이다.
13) 인사(퇴장): 살풀이 마당이 끝나면 덩덕궁이를 치면서 각 잽이들은 다시 대열을 맞춘 뒤 관중을 향해 인사한다. 그리고 퇴장하면서 전체 판굿이 종료된다.

특징 및 의의

고산농악의 특징은 전형적인 마을농악으로서 향토색 짙은 농악 형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연희 과정 중 이열놀이, 닭쫓기놀이, 오동(다섯덤)놀이 등은 고산농악에만 있는 독특한 놀이마당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농악에서 양반, 색시, 포수 등의 잡색들은 그 역할이 미미한 데 반해 고산농악은 닭쫓기놀이를 통해 독특하고도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하여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또한 가락이 소박한 점과 나무나발인 ‘목덩강’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 농기수를 비롯하여 징수와 북수·장구수가 타 지역 농악보다 두 배 이상 큰 흰 고깔을 쓴다는 점, 그리고 악기 편성에 있어서 징과 북이 중요시되는 점과 상쇠가 전립을 쓰지 않고 부포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고산농악은 두레농악의 소박성을 지닌 농사굿과 풍농, 안택을 기원하는 원시신앙의 형태가 바탕이 되는 세시풍속으로 군사굿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지금까지 전래되어 오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기량 보다는 전체 농악꾼이 무리지어 돌며 노는 군무의 비중이 높은 성격의 놀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농악(유무열, 민족문화문고간행회, 1986), 농악(정병호, 열화당, 1986), 대구시사5(대구광역시, 1995), 한국의 농악-영남(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수서원,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