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립굿(乞粒戏)

걸립굿

한자명

乞粒戏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박혜영(朴惠英)

정의

꽹과리·징·장구·북과 같은 농악기를 치며 축귀와 축원을 행하면서 쌀과 돈을 걷는 풍물굿.

내용

걸립乞粒은 걸공乞功, 걸궁乞躬, 걸량乞糧, 걸행乞行, 행걸行乞이라고도 한다. 농악 전승 집단의 호혜적 교환 활동이다. 걸립굿은 걸립, 걸량, 걸궁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다. 걸립굿은 걸립과 굿의 합성어이다. 여기에서 굿은 농악과 연관된 말이다. 농악 치는 것을 ‘굿한다’고 하며 당산굿·샘굿·성주굿과 같이 농악대의 의식을 가리키거나, 길굿·삼채굿과 같이 농악 가락 자체를 가리킨다. 오방진굿·도둑잽이굿과 같이 농악대들의 판굿 놀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걸립굿을 연행하는 걸립패의 시원은 『조선왕조실록』과 기타 문헌들에서 살펴볼 수 있다. 광대, 재인, 수척, 사당 등의 예능인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 걸립으로 생활했다. 유사시에만 상경하여 궁궐에 출입하여 나례에 출연하였다. 평상시에는 떼를 지어 각지를 다니면서 연희를 보여 주고 걸립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가 쇠퇴함에 따라 사찰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승려들이 속계에 내려가 걸립을 하였다. 또한 인근 농악단을 고용하여 절걸립으로 민가를 돌아다니면서 집돌이를 하는 절걸립패가 성행하기도 했다.
걸립굿의 연행 순서와 내용은 지역에 따라, 걸립패에 따라,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대개는 집 안에 들어가기 전에 문간에서 치는 문굿, 마당에서 여러가지 기예를 벌이며 춤판을 벌이는 마당굿, 대청마루에서 치는 성주굿, 부엌에서 치는 조왕굿, 뒤꼍에서 치는 터주굿, 우물(샘)에서 치는 우물굿(샘굿), 장독대에서 치는 철륭굿, 광에서 치는 장꼬방굿 등으로 연행된다. 밤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걸립패의 장기를 보여 주는 판굿을 친다. 또한 다리를 놓고, 둑을 쌓고, 나룻배를 건조하고, 서당을 짓는 등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비정기적으로 벌이는 걸립도 있다. 이러한 걸립은 모두 마을 사람들의 공동 이익과 편의를 위한 기금으로 사용된다.
걸립굿은 연행 목적에 따라 구분된다. 굿판을 벌려 지신을 밟고 동신을 섬기고 줄역사라든지 제반 민속이 행해지는 마을 단위 촌걸립, 재인들이 하는 신청神廳걸립이 있다. 또한 전문적인 유랑 집단이 마을로 들어와 숙식을 제공받으며 머물다가는 일종의 낭걸립과 각 지방 예인들이 모여 전업적인 걸립패를 꾸려 행하던 포장 걸립 등이 있다.

특징 및 의의

걸립굿을 수행하는 연행 집단은 걸립패라고 부르며, 절걸립패 말고도 낭걸립패(신청걸립패)가 있다. 직업적인 농악단 외에 마을농악단도 존재했다. 이 걸립패들이 걸립굿을 하면 기금을 각출했는데, 마을의 공익사업을 벌이거나, 설과 같은 명절 또는 세시절기에 걸립굿을 행하거나, 마을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걸립패를 초청하였다. 걸립굿을 하게되면 주로 집돌이로 지신밟기를 하거나 판굿을 벌인다.
마을 공동체 제의를 위한 농악이 연행되고 그 대가로 주민들은 동비를 각출한다. 농악대가 활동 영역을 넓혀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으려면 이에 준하는 기예를 갖추어야 했다. 어린아이들이 하는 걸궁을 ‘동자걸궁’이라고도 부른다. 걸립은 다양한 연행이 수렴될 수 있는 농악판을 일구는 것이나 다름없다. 연행자들이 마을 외부의 문화와 접촉하고 체화하면서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농악판 또한 융통성 있게 발현된다. 마을끼리 판굿이나 합굿이 벌어지면 연행자끼리 교섭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걸립굿은 마당밟기나 지신밟기 또는 매귀埋鬼(매굿) 등과 유사한 형태의 연행을 가리킨다. 걸립굿이라고 할 때는 걸궁, 걸립, 굿 등의 의미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쓰인다. 대개 ‘걸궁’이라고 일컬을 때는 당산 굿이나 풍장굿, 세시절기에 마을 단위로 행해지던 연행을 가리킨다. 또한 걸립패가 굿을 치는 것을 일컬어 ‘걸립친다’거나 ‘걸궁났다’고도 한다. 시장을 건설하거나 다리나 회관을 건립하고 각종 기공식을 위해 농악을 치며 모금하는 활동들을 가리킬 때 주로 ‘걸립’이 라는 용어를 쓴다. 연행의 목적에 따라 절의 화주를 동반하여 시주를 하러 다니는 절걸립, 다리를 짓기 위해 모금하는 다리걸립, 서당이나 나루, 소방 등을 세우기 위해 갹출하는 서당걸립, 나루걸립, 소방서걸립 등이 있다.

참고문헌

농악(정병호, 열화당 1986), 신대농기(이보형, 한국문화인류학8, 한국문화인류학, 1976), 잡색의 연행과 전승이 지닌 풍물사적 의미(박혜영, 안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정월의 방문자의례의 교환문제(박전열, 임동권박사 회갑기념논문집, 집문당, 1986),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69~1981), 한국민속학논고(이두현 외, 보성문화사, 1984).

걸립굿

걸립굿
한자명

乞粒戏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농악

집필자 박혜영(朴惠英)

정의

꽹과리·징·장구·북과 같은 농악기를 치며 축귀와 축원을 행하면서 쌀과 돈을 걷는 풍물굿.

내용

걸립乞粒은 걸공乞功, 걸궁乞躬, 걸량乞糧, 걸행乞行, 행걸行乞이라고도 한다. 농악 전승 집단의 호혜적 교환 활동이다. 걸립굿은 걸립, 걸량, 걸궁과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다. 걸립굿은 걸립과 굿의 합성어이다. 여기에서 굿은 농악과 연관된 말이다. 농악 치는 것을 ‘굿한다’고 하며 당산굿·샘굿·성주굿과 같이 농악대의 의식을 가리키거나, 길굿·삼채굿과 같이 농악 가락 자체를 가리킨다. 오방진굿·도둑잽이굿과 같이 농악대들의 판굿 놀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걸립굿을 연행하는 걸립패의 시원은 『조선왕조실록』과 기타 문헌들에서 살펴볼 수 있다. 광대, 재인, 수척, 사당 등의 예능인들이 농사를 짓지 않고 걸립으로 생활했다. 유사시에만 상경하여 궁궐에 출입하여 나례에 출연하였다. 평상시에는 떼를 지어 각지를 다니면서 연희를 보여 주고 걸립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조선시대에는 불교가 쇠퇴함에 따라 사찰의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승려들이 속계에 내려가 걸립을 하였다. 또한 인근 농악단을 고용하여 절걸립으로 민가를 돌아다니면서 집돌이를 하는 절걸립패가 성행하기도 했다.
걸립굿의 연행 순서와 내용은 지역에 따라, 걸립패에 따라, 집집마다 조금씩 차이가 난다. 대개는 집 안에 들어가기 전에 문간에서 치는 문굿, 마당에서 여러가지 기예를 벌이며 춤판을 벌이는 마당굿, 대청마루에서 치는 성주굿, 부엌에서 치는 조왕굿, 뒤꼍에서 치는 터주굿, 우물(샘)에서 치는 우물굿(샘굿), 장독대에서 치는 철륭굿, 광에서 치는 장꼬방굿 등으로 연행된다. 밤에는 마을 사람들에게 걸립패의 장기를 보여 주는 판굿을 친다. 또한 다리를 놓고, 둑을 쌓고, 나룻배를 건조하고, 서당을 짓는 등 특수한 목적을 위하여 비정기적으로 벌이는 걸립도 있다. 이러한 걸립은 모두 마을 사람들의 공동 이익과 편의를 위한 기금으로 사용된다.
걸립굿은 연행 목적에 따라 구분된다. 굿판을 벌려 지신을 밟고 동신을 섬기고 줄역사라든지 제반 민속이 행해지는 마을 단위 촌걸립, 재인들이 하는 신청神廳걸립이 있다. 또한 전문적인 유랑 집단이 마을로 들어와 숙식을 제공받으며 머물다가는 일종의 낭걸립과 각 지방 예인들이 모여 전업적인 걸립패를 꾸려 행하던 포장 걸립 등이 있다.

특징 및 의의

걸립굿을 수행하는 연행 집단은 걸립패라고 부르며, 절걸립패 말고도 낭걸립패(신청걸립패)가 있다. 직업적인 농악단 외에 마을농악단도 존재했다. 이 걸립패들이 걸립굿을 하면 기금을 각출했는데, 마을의 공익사업을 벌이거나, 설과 같은 명절 또는 세시절기에 걸립굿을 행하거나, 마을의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 걸립패를 초청하였다. 걸립굿을 하게되면 주로 집돌이로 지신밟기를 하거나 판굿을 벌인다.
마을 공동체 제의를 위한 농악이 연행되고 그 대가로 주민들은 동비를 각출한다. 농악대가 활동 영역을 넓혀 일정한 수입을 보장받으려면 이에 준하는 기예를 갖추어야 했다. 어린아이들이 하는 걸궁을 ‘동자걸궁’이라고도 부른다. 걸립은 다양한 연행이 수렴될 수 있는 농악판을 일구는 것이나 다름없다. 연행자들이 마을 외부의 문화와 접촉하고 체화하면서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농악판 또한 융통성 있게 발현된다. 마을끼리 판굿이나 합굿이 벌어지면 연행자끼리 교섭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걸립굿은 마당밟기나 지신밟기 또는 매귀埋鬼(매굿) 등과 유사한 형태의 연행을 가리킨다. 걸립굿이라고 할 때는 걸궁, 걸립, 굿 등의 의미를 모두 아우르는 개념으로 쓰인다. 대개 ‘걸궁’이라고 일컬을 때는 당산 굿이나 풍장굿, 세시절기에 마을 단위로 행해지던 연행을 가리킨다. 또한 걸립패가 굿을 치는 것을 일컬어 ‘걸립친다’거나 ‘걸궁났다’고도 한다. 시장을 건설하거나 다리나 회관을 건립하고 각종 기공식을 위해 농악을 치며 모금하는 활동들을 가리킬 때 주로 ‘걸립’이 라는 용어를 쓴다. 연행의 목적에 따라 절의 화주를 동반하여 시주를 하러 다니는 절걸립, 다리를 짓기 위해 모금하는 다리걸립, 서당이나 나루, 소방 등을 세우기 위해 갹출하는 서당걸립, 나루걸립, 소방서걸립 등이 있다.

참고문헌

농악(정병호, 열화당 1986), 신대와 농기(이보형, 한국문화인류학8, 한국문화인류학, 1976), 잡색의 연행과 전승이 지닌 풍물사적 의미(박혜영, 안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정월의 방문자의례의 교환문제(박전열, 임동권박사 회갑기념논문집, 집문당, 1986),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1969~1981), 한국민속학논고(이두현 외, 보성문화사,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