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신춤

병신춤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무용

집필자 이병옥(李炳玉)

정의

사람의 신체 부자유로 인한 움직임의 특징을 흉내 내는 춤.

내용

병신춤이 많이 추어진 시기는 조선 중엽 임진왜란 이후로, 민중의식이 높아지면서 양반을 풍자하며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양반과 천민과의 차별이 심했지만 탈춤, 농악 등 민중예술이 발달하면서 서민들의 놀이판에서 풍물을 치고 가무하는 가운데 양반을 풍자한 병신춤을 추었다. 탈춤판에서는 양반풍자와 승려 조롱 등의 주제로 하는 사회풍자가 탈춤 내용의 주류를 이루었다. 한편으로는 무당이 벌인 마을굿판에서도 무당은 물론 구경꾼들도 병신춤을 여흥으로 추었다. 또한 마을의 회갑 잔치, 세시풍습 등의 놀이판에서도 병신춤을 추었으며 오늘날까지 잔존하였다.
병신춤은 탈춤, 농악을 비롯하여 여러 세시풍습의 대동놀이와 회갑 및 혼례 등의 잔치판에서 뒤풀이춤으로 흥행하였다. 또한 유랑예인들의 광대놀이에서도 잔칫집 등에 초대되어 흥을 돋우기 위해 장기춤의 하나로 병신춤을 추어 양반들을 희롱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한을 풀기도 하였다.
세시풍습인 밀양백중놀이에서 두레들에 의해 추던 병신춤과 각설이패들이 각설이타령으로 추는 병신춤이 있었다. 광대나 기방예인들도 양반들을 희롱하기도 하고, 또 자신의 한을 풀기도 하면서 전승되어 왔다. 또한 각설이패들이 추는 병신춤은 바가지나 깡통을 손에 들고 막대기로 장단을 치면서 고사소리로 축원하거나 <각설이타령>을 부르면서 춤을 춘다. 결국 병신춤은 재인, 광대, 권번의 기녀나 창극인과 여러 민중들까지 다양한 신분 층위에서 보편적으로 행하던 춤이었다.
병신춤의 종류로는 뼈다구춤·난쟁이춤·중풍쟁이춤·배불뚝이춤·꼬부랑할미춤·떨떨이춤·문둥이춤·곱사춤·히줄대기춤·봉사춤·절름발이춤·해골병신춤·얼굴병신춤·곰배팔이춤·오리발춤·뻗정다리춤·안짱다리춤·엉치춤(엉덩이춤) 등 다양한 표현이 있으나 표현 방식에서는 한 가지 또는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장내에 폭소를 자아내는 해학과 풍자의 춤판으로 웃음의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오늘날 병신춤을 널리 알린 사람은 일인창무극을 창안한 공옥진孔玉振, 1931~2012이다. 공옥진은 일인창무극인 <심청전>에서 독특한 봉사춤을 보여 주었고, 특히 익살스런 표현의 곱사춤과 동물모방춤으로 유명하였다. 그녀의 병신춤은 홀로 웃고 떠들면서 관객의 넋을 빼놓았고, 해외 공연을 통해서도 한국예술의 서민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는 찬사가 이어졌지만 장애인을 모독한다는 역풍으로 병신춤을 중지하고 동물모방춤으로 명맥을 이었다.
병신춤은 전통시대에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놀이판, 춤판에서 행해졌지만, 특히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병신춤을 보면 백중날 머슴들이 농신제를 지내고 장원 머슴을 뽑아 작두말타기를 하는 등 춤판을 벌였는데 양반들을 흉내 내는 양반춤과 병신춤, 북춤 등을 즐겼다. 이 지역 병신춤의 특징은 다른 지역의 춤에 비하여 양반들의 추태와 위선을 풍자와 모욕 등으로 익살스럽고 노골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간에 쌓인 분노와 한숨을 발산하는 서민들의 심성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주로 정월대보름이나 단오·추석 등에 양반과 마주칠 염려가 없는 다리 밑이나 야외 마당 또는 숲속에서 즐겼다. 신체 장애인이나 병자를 흉내 낸 병신춤이 많은 것은 밀양에서 계급차가 심하였기 때문에 하층 농민들의 슬픔이 춤으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히줄대기·떨떨이·절름발이·배불뚝이·꼬부랑할미·꼽추·난쟁이·벙어리·봉사·중풍쟁이·문둥이 등이 나오는데 덧배기가락에 맞추어 혼자 또는 짝짓거나 무리지어 한바탕 난장을 벌였다.
한편 영남 지방 고성, 동래, 통영 등의 탈춤판에서 문둥북춤과 병신양반춤은 극중 인물로서 유형화된 성격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통영오광대에 나오는 병신양반들은 극적인 성격에 따라 나누어져 비틀양반·곰보양반·검정양반 등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다. 서울·경기 지역 송파와 양주의 산대놀이 가운데 옴중춤과 언청샌님춤, 취발이춤에서도 병신춤을 춘다. 또한 황해도 봉산·강령·은률탈춤에는 째보양반들과 입비뚤이 도령춤 등이 있고, 함경도 북청사자놀음에 나오는 곱사춤도 손꼽힌다.
재인청 출신인 이동안은 어린 시절부터 줄타기는 물론이고 수많은 재인청춤을 전승하면서 특별히 얼굴 병신춤에 능했다. 양반도포정자관을 쓰고 실타래로 하얀 수염을 달고는 사팔뜨기, 외눈깔, 입삐뚤이, 고개삐뚤이, 볼록볼과 홀쪽볼, 토끼입 등과 곱사춤, 배불뚝춤 등을 잘 추었다.

특징 및 의의

병신춤은 모방춤(흉내춤, 시늉춤)의 한 갈래이다. 모방춤은 사람모방춤과 동물모방춤이 있는데, 사람모방춤에서 신체 부자유로 인한 움직임의 특징을 흉내 내는 춤이 병신춤이다. 이에 비해 동물모방춤은 동물들의 정상적인 움직임의 특징을 실증적인 춤동작으로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하지만 병신춤은 장애 동작을 흉내 내는 자체가 장애인을 모독하는 일이기에 오해의 소지가 많다. 그러나 비록 부자유스런 장애인의 흉내지만 대체로 양반의 병신 흉내를 주로 하였기 때문에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괴롭혀 온 양반풍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구경꾼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소극적인 춤으로서 효과가 컸다.
병신춤은 외국에서나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비도덕과 인권문제로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어 소멸되고 있는 춤이다. 그러나 비록 겉으로는 병신 흉내를 내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양반들의 행동을 풍자적으로 나타내는 춤이기에 지배계층에 대한 저항적 해학이라 할 수 있고, 서민들의 욕구불만을 해소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을 단순히 흉내 내어 모멸하기 위해서 추는 춤이 아니라 불구일지라도 정상인 못지않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의지의 춤이다. 당시 계급사회의 불합리를 폭로하고 평등사회를 염원하는 춤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공옥진 1인 창무극에서 무의 한국적 정서와 예술적 가치 분석(김지원, 공연문화연구20, 한국공연문화학회, 2010), 한국무용민속학개론(이병옥, 노리, 2000), 한국의 전통춤(정병호, 집문당, 1999).

병신춤

병신춤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무용

집필자 이병옥(李炳玉)

정의

사람의 신체 부자유로 인한 움직임의 특징을 흉내 내는 춤.

내용

병신춤이 많이 추어진 시기는 조선 중엽 임진왜란 이후로, 민중의식이 높아지면서 양반을 풍자하며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는 양반과 천민과의 차별이 심했지만 탈춤, 농악 등 민중예술이 발달하면서 서민들의 놀이판에서 풍물을 치고 가무하는 가운데 양반을 풍자한 병신춤을 추었다. 탈춤판에서는 양반풍자와 승려 조롱 등의 주제로 하는 사회풍자가 탈춤 내용의 주류를 이루었다. 한편으로는 무당이 벌인 마을굿판에서도 무당은 물론 구경꾼들도 병신춤을 여흥으로 추었다. 또한 마을의 회갑 잔치, 세시풍습 등의 놀이판에서도 병신춤을 추었으며 오늘날까지 잔존하였다.
병신춤은 탈춤, 농악을 비롯하여 여러 세시풍습의 대동놀이와 회갑 및 혼례 등의 잔치판에서 뒤풀이춤으로 흥행하였다. 또한 유랑예인들의 광대놀이에서도 잔칫집 등에 초대되어 흥을 돋우기 위해 장기춤의 하나로 병신춤을 추어 양반들을 희롱하기도 하고 자신들의 한을 풀기도 하였다.
세시풍습인 밀양백중놀이에서 두레들에 의해 추던 병신춤과 각설이패들이 각설이타령으로 추는 병신춤이 있었다. 광대나 기방예인들도 양반들을 희롱하기도 하고, 또 자신의 한을 풀기도 하면서 전승되어 왔다. 또한 각설이패들이 추는 병신춤은 바가지나 깡통을 손에 들고 막대기로 장단을 치면서 고사소리로 축원하거나 <각설이타령>을 부르면서 춤을 춘다. 결국 병신춤은 재인, 광대, 권번의 기녀나 창극인과 여러 민중들까지 다양한 신분 층위에서 보편적으로 행하던 춤이었다.
병신춤의 종류로는 뼈다구춤·난쟁이춤·중풍쟁이춤·배불뚝이춤·꼬부랑할미춤·떨떨이춤·문둥이춤·곱사춤·히줄대기춤·봉사춤·절름발이춤·해골병신춤·얼굴병신춤·곰배팔이춤·오리발춤·뻗정다리춤·안짱다리춤·엉치춤(엉덩이춤) 등 다양한 표현이 있으나 표현 방식에서는 한 가지 또는 복합적으로 활용하여 장내에 폭소를 자아내는 해학과 풍자의 춤판으로 웃음의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오늘날 병신춤을 널리 알린 사람은 일인창무극을 창안한 공옥진孔玉振, 1931~2012이다. 공옥진은 일인창무극인 <심청전>에서 독특한 봉사춤을 보여 주었고, 특히 익살스런 표현의 곱사춤과 동물모방춤으로 유명하였다. 그녀의 병신춤은 홀로 웃고 떠들면서 관객의 넋을 빼놓았고, 해외 공연을 통해서도 한국예술의 서민적인 면모를 보여 주었다는 찬사가 이어졌지만 장애인을 모독한다는 역풍으로 병신춤을 중지하고 동물모방춤으로 명맥을 이었다.
병신춤은 전통시대에 전국적으로 크고 작은 놀이판, 춤판에서 행해졌지만, 특히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병신춤을 보면 백중날 머슴들이 농신제를 지내고 장원 머슴을 뽑아 작두말타기를 하는 등 춤판을 벌였는데 양반들을 흉내 내는 양반춤과 병신춤, 북춤 등을 즐겼다. 이 지역 병신춤의 특징은 다른 지역의 춤에 비하여 양반들의 추태와 위선을 풍자와 모욕 등으로 익살스럽고 노골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그간에 쌓인 분노와 한숨을 발산하는 서민들의 심성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주로 정월대보름이나 단오·추석 등에 양반과 마주칠 염려가 없는 다리 밑이나 야외 마당 또는 숲속에서 즐겼다. 신체 장애인이나 병자를 흉내 낸 병신춤이 많은 것은 밀양에서 계급차가 심하였기 때문에 하층 농민들의 슬픔이 춤으로 표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히줄대기·떨떨이·절름발이·배불뚝이·꼬부랑할미·꼽추·난쟁이·벙어리·봉사·중풍쟁이·문둥이 등이 나오는데 덧배기가락에 맞추어 혼자 또는 짝짓거나 무리지어 한바탕 난장을 벌였다.
한편 영남 지방 고성, 동래, 통영 등의 탈춤판에서 문둥북춤과 병신양반춤은 극중 인물로서 유형화된 성격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통영오광대에 나오는 병신양반들은 극적인 성격에 따라 나누어져 비틀양반·곰보양반·검정양반 등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다. 서울·경기 지역 송파와 양주의 산대놀이 가운데 옴중춤과 언청샌님춤, 취발이춤에서도 병신춤을 춘다. 또한 황해도 봉산·강령·은률탈춤에는 째보양반들과 입비뚤이 도령춤 등이 있고, 함경도 북청사자놀음에 나오는 곱사춤도 손꼽힌다.
재인청 출신인 이동안은 어린 시절부터 줄타기는 물론이고 수많은 재인청춤을 전승하면서 특별히 얼굴 병신춤에 능했다. 양반도포와 정자관을 쓰고 실타래로 하얀 수염을 달고는 사팔뜨기, 외눈깔, 입삐뚤이, 고개삐뚤이, 볼록볼과 홀쪽볼, 토끼입 등과 곱사춤, 배불뚝춤 등을 잘 추었다.

특징 및 의의

병신춤은 모방춤(흉내춤, 시늉춤)의 한 갈래이다. 모방춤은 사람모방춤과 동물모방춤이 있는데, 사람모방춤에서 신체 부자유로 인한 움직임의 특징을 흉내 내는 춤이 병신춤이다. 이에 비해 동물모방춤은 동물들의 정상적인 움직임의 특징을 실증적인 춤동작으로 표현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 하지만 병신춤은 장애 동작을 흉내 내는 자체가 장애인을 모독하는 일이기에 오해의 소지가 많다. 그러나 비록 부자유스런 장애인의 흉내지만 대체로 양반의 병신 흉내를 주로 하였기 때문에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을 괴롭혀 온 양반풍자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구경꾼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소극적인 춤으로서 효과가 컸다.
병신춤은 외국에서나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비도덕과 인권문제로 바람직하게 여겨지지 않고 있어 소멸되고 있는 춤이다. 그러나 비록 겉으로는 병신 흉내를 내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양반들의 행동을 풍자적으로 나타내는 춤이기에 지배계층에 대한 저항적 해학이라 할 수 있고, 서민들의 욕구불만을 해소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을 단순히 흉내 내어 모멸하기 위해서 추는 춤이 아니라 불구일지라도 정상인 못지않게 살아갈 수 있다는 의지의 춤이다. 당시 계급사회의 불합리를 폭로하고 평등사회를 염원하는 춤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공옥진 1인 창무극에서 무의 한국적 정서와 예술적 가치 분석(김지원, 공연문화연구20, 한국공연문화학회, 2010), 한국무용민속학개론(이병옥, 노리, 2000), 한국의 전통춤(정병호, 집문당,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