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도당굿

경기도도당굿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무용

집필자 목진호(睦鎭浩)

정의

경기도의 여러 마을에서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굿.

내용

일종의 마을 대동굿으로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거나 마을 주민들의 소원성취를 위해 도당에 모여 축제를 벌이는 민간신앙의례이다.
경기도도당굿의 역사는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 『해동죽지海東竹枝』 등의 문헌사료에 전한다.
먼저,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보면, “우리나라 시골 풍습으로는 호랑이와 표범의 재난이 많아 밤이면 나다니지 않으며, 또 어리석은 백성들은 돈을 거두어 제물과 술을 마련하고 마을 진산에 있는 산신에게 제사한다. 이때 무격은 어지럽게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면서 신을 위로한다고 하는데, 이름을 도당제라 한다.”라고 전한다. 이를 통해 당시 도당제는 호환虎患을 벗어나고자 마을의 산신에게 지낸 굿으로서, 남무와 여무의 가무를 동반한 마을굿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능화의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는 “우리 조선의 풍속에 산신에 대한 제사를 ‘도당굿都堂祭’이라 하는데, 이 역시 무녀를 써서 신을 모시는 것으로, 이것은 고려시대의 금성신당에서 유래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한 것으로 보아, 도당제가 고려시대로부터 유래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영년崔永年, 1856~1935의 『해동죽지海東竹枝』 「속악유희俗樂遊戲」 에서는 “옛 풍속에 매년 시월이면 큰 동네로부터 농지에 대한 조세를 받아서 큰 굿을 행하여 풍년의 은혜를 갚는다. 이것을 ‘도당굿’이라고 한다.”라고 밝혀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띠고 거행됐음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도당굿의 내용은 굿의 거행 시기, 굿의 담당자, 굿의 경비나 준비사항, 굿의 기본 순서로 구분할 수 있다. 거행 시기는 매년이나 격년, 또는 3년에 한 번씩 정월 초나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졌다. 담당자는 당주와 마을주민, 당주무와 악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당주는 그해에 생기복덕을 가려 뽑는데, 상당주·중당주·하당주 세 명을 뽑거나 안당주·밖당주 두 명을 뽑기도 한다. 이들은 굿당 주변에 황토를 뿌리거나 금기, 목욕재계 등 마을에서 정한 재계를 지켜야 한다. 굿의 경비는 마을에서 공동 추렴으로 쌀이나 돈을 걷어서 마련한다. 마을 주민들은 날짜나 굿의 규모, 소요 인원 등 요구사항이나 예산을 당주무당과 의논해서 결정하게 된다.
1980년대 경기 남부 도당굿의 기본 순서는 16거리로 이루어진다. 1. 상당주 집에서 드리는 개인 재수굿인 ‘당주굿’, 2. 굿당까지 가는 동안 풍악과 부정을 물리는 ‘거리부정’, 3. 당에 도착해서 부정 없이 탈 없게 도와달라고 비손하는 ‘안반고수레’, 4. 창세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정을 소멸하는 ‘부정굿’, 5. 도당신을 굿당으로 좌정시키기 위한 ‘도당 모셔오기’, 6. 마을 장승과 공동우물, 또는 각 가정을 돌면서 축원과 덕담하는 ‘돌돌이’, 7. 무부의 잡기를 보여 주는 ‘장문잡기’, 8. 무부의시루청배와 무녀의 시루말로 칠성신께 축원하는 ‘시루말’, 9. 당금애기신화를 노래하는 ‘제석굿’, 10. 홍철릭을 입고 굿을 하는 ‘본양굿’, 11. 굿터를 벌려 놓는 ‘터벌림’, 12. 천연두신인 손님의 노정을 노래하는 ‘손굿’, 13. 무녀와 굿꾼이 쌍군웅춤을 추는 ‘군웅굿’, 14. 도당신을당가리에 모시는 ‘도당 모셔다 드리기’, 15. 굿꾼이 고깔장삼을 입고 가무하는 ‘중굿’, 16. 잡귀를 풀어먹이는 ‘뒷전’ 등이다.

특징 및 의의

경기 남부 도당굿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화랭이·남무·산이라고 불리는 무부巫夫들이 굿거리를 가진다는 점에 있다. 이들 무부는 경기 시나위로 반주음악을 하는 악사일 뿐만 아니라, 부정청배·시루청배·제석청배·조상청배·군웅청배 등의 앉은 청배와 손님노정기·군웅노정기·뒷전과 같은 독립적인 거리에서 소리꾼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는데, 가창문화의 창부로서 판소리 형성에 관련되어 있다.
경기도도당굿의 음악적 특징은 장단과 선율, 또는 연주양식에서 찾을 수 있다. 경기도도당굿의 선율에는 미음계와 솔음계, 레음계 등이 출현하고, 장단에는 도살푸리, 살푸리, 살푸리모리, 발뻐드래, 올림채, 올림채모리, 겹마치(또는 곁마치), 진쇠, 부정놀이 등 다채로운 장단들이 활용된다. 경기 시나위 양식은 피리, 대금, 해금, 장고, 징 등의 악기구성에 따라 무부나 무녀의 무가에 맞춰 반주하는 즉흥적인 연주를 말한다.
경기도도당굿의 무무巫舞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부들의 터벌림·진쇠춤 등과 무녀들의 부정굿·제석굿·군웅굿의 춤사위 등은 승무·태평무·도살풀이춤 등 전통춤의 모태가 되었다.
특히 도살풀이춤은 김숙자金淑子, 1927~1991에 의해 전승되었다. 김숙자는 판소리 명인 김덕순金德順과 세습무 정귀성鄭貴星의 슬하에서 태어나 도당굿의 장단과 춤을 학습했고, 수원의 조진영趙鎭英에게 소리도 배웠다. 김숙자 생전에 각고의 노력으로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된 살풀이춤(도살풀이춤)은 진쇠춤, 터벌림춤, 제석춤, 부정놀이춤, 깨끔춤, 올림채춤 등의 경기 시나위 춤과 함께 경기도도당굿의 장단과 춤사위에 기초한 전통춤의 재창조 작업을 통해 얻어 낸 귀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경기도도당굿의 의의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도당굿은 오랜 세월을 따라 형성되어 온 역사적 측면을 지닌다. 둘째, 전통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예술적 측면을 가진다. 셋째, 종교사회적 측면으로서,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위하는 종교적 기능과 마을을 통합하는 사회적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五洲衍文長箋散稿, 경기 도당굿의 화랭이 연구(목진호,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경기 북부지역의 신당과 제당(김두진,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2), 경기도 도당굿(황루시·이보형, 열화당, 1983), 구리시 갈매동 도당굿(김종대 외, 민속원, 2010), 중요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21-안성무속 경기시나위춤(심우성·이보형,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1976), 속악유희(최영년, 황순구 옮김, 정음문고, 1986), 조선무속고(이능화, 서영대 옮김, 창비, 1986), 한국무속과 연희(이두현, 서울대학교출판부,1996).

경기도도당굿

경기도도당굿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무용

집필자 목진호(睦鎭浩)

정의

경기도의 여러 마을에서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던 마을굿.

내용

일종의 마을 대동굿으로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거나 마을 주민들의 소원성취를 위해 도당에 모여 축제를 벌이는 민간신앙의례이다.
경기도도당굿의 역사는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 『해동죽지海東竹枝』 등의 문헌사료에 전한다.
먼저,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보면, “우리나라 시골 풍습으로는 호랑이와 표범의 재난이 많아 밤이면 나다니지 않으며, 또 어리석은 백성들은 돈을 거두어 제물과 술을 마련하고 마을 진산에 있는 산신에게 제사한다. 이때 무격은 어지럽게 북을 두드리고 춤을 추면서 신을 위로한다고 하는데, 이름을 도당제라 한다.”라고 전한다. 이를 통해 당시 도당제는 호환虎患을 벗어나고자 마을의 산신에게 지낸 굿으로서, 남무와 여무의 가무를 동반한 마을굿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능화의 『조선무속고朝鮮巫俗考』에는 “우리 조선의 풍속에 산신에 대한 제사를 ‘도당굿都堂祭’이라 하는데, 이 역시 무녀를 써서 신을 모시는 것으로, 이것은 고려시대의 금성신당에서 유래하는 것이다.”라고 풀이한 것으로 보아, 도당제가 고려시대로부터 유래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최영년崔永年, 1856~1935의 『해동죽지海東竹枝』 「속악유희俗樂遊戲」 에서는 “옛 풍속에 매년 시월이면 큰 동네로부터 농지에 대한 조세를 받아서 큰 굿을 행하여 풍년의 은혜를 갚는다. 이것을 ‘도당굿’이라고 한다.”라고 밝혀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띠고 거행됐음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도당굿의 내용은 굿의 거행 시기, 굿의 담당자, 굿의 경비나 준비사항, 굿의 기본 순서로 구분할 수 있다. 거행 시기는 매년이나 격년, 또는 3년에 한 번씩 정월 초나 봄·가을에 정기적으로 행해졌다. 담당자는 당주와 마을주민, 당주무와 악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당주는 그해에 생기복덕을 가려 뽑는데, 상당주·중당주·하당주 세 명을 뽑거나 안당주·밖당주 두 명을 뽑기도 한다. 이들은 굿당 주변에 황토를 뿌리거나 금기, 목욕재계 등 마을에서 정한 재계를 지켜야 한다. 굿의 경비는 마을에서 공동 추렴으로 쌀이나 돈을 걷어서 마련한다. 마을 주민들은 날짜나 굿의 규모, 소요 인원 등 요구사항이나 예산을 당주무당과 의논해서 결정하게 된다.
1980년대 경기 남부 도당굿의 기본 순서는 16거리로 이루어진다. 1. 상당주 집에서 드리는 개인 재수굿인 ‘당주굿’, 2. 굿당까지 가는 동안 풍악과 부정을 물리는 ‘거리부정’, 3. 당에 도착해서 부정 없이 탈 없게 도와달라고 비손하는 ‘안반고수레’, 4. 창세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정을 소멸하는 ‘부정굿’, 5. 도당신을 굿당으로 좌정시키기 위한 ‘도당 모셔오기’, 6. 마을 장승과 공동우물, 또는 각 가정을 돌면서 축원과 덕담하는 ‘돌돌이’, 7. 무부의 잡기를 보여 주는 ‘장문잡기’, 8. 무부의시루청배와 무녀의 시루말로 칠성신께 축원하는 ‘시루말’, 9. 당금애기신화를 노래하는 ‘제석굿’, 10. 홍철릭을 입고 굿을 하는 ‘본양굿’, 11. 굿터를 벌려 놓는 ‘터벌림’, 12. 천연두신인 손님의 노정을 노래하는 ‘손굿’, 13. 무녀와 굿꾼이 쌍군웅춤을 추는 ‘군웅굿’, 14. 도당신을당가리에 모시는 ‘도당 모셔다 드리기’, 15. 굿꾼이 고깔과 장삼을 입고 가무하는 ‘중굿’, 16. 잡귀를 풀어먹이는 ‘뒷전’ 등이다.

특징 및 의의

경기 남부 도당굿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화랭이·남무·산이라고 불리는 무부巫夫들이 굿거리를 가진다는 점에 있다. 이들 무부는 경기 시나위로 반주음악을 하는 악사일 뿐만 아니라, 부정청배·시루청배·제석청배·조상청배·군웅청배 등의 앉은 청배와 손님노정기·군웅노정기·뒷전과 같은 독립적인 거리에서 소리꾼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는데, 가창문화의 창부로서 판소리 형성에 관련되어 있다.
경기도도당굿의 음악적 특징은 장단과 선율, 또는 연주양식에서 찾을 수 있다. 경기도도당굿의 선율에는 미음계와 솔음계, 레음계 등이 출현하고, 장단에는 도살푸리, 살푸리, 살푸리모리, 발뻐드래, 올림채, 올림채모리, 겹마치(또는 곁마치), 진쇠, 부정놀이 등 다채로운 장단들이 활용된다. 경기 시나위 양식은 피리, 대금, 해금, 장고, 징 등의 악기구성에 따라 무부나 무녀의 무가에 맞춰 반주하는 즉흥적인 연주를 말한다.
경기도도당굿의 무무巫舞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부들의 터벌림·진쇠춤 등과 무녀들의 부정굿·제석굿·군웅굿의 춤사위 등은 승무·태평무·도살풀이춤 등 전통춤의 모태가 되었다.
특히 도살풀이춤은 김숙자金淑子, 1927~1991에 의해 전승되었다. 김숙자는 판소리 명인 김덕순金德順과 세습무 정귀성鄭貴星의 슬하에서 태어나 도당굿의 장단과 춤을 학습했고, 수원의 조진영趙鎭英에게 소리도 배웠다. 김숙자 생전에 각고의 노력으로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된 살풀이춤(도살풀이춤)은 진쇠춤, 터벌림춤, 제석춤, 부정놀이춤, 깨끔춤, 올림채춤 등의 경기 시나위 춤과 함께 경기도도당굿의 장단과 춤사위에 기초한 전통춤의 재창조 작업을 통해 얻어 낸 귀중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경기도도당굿의 의의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도당굿은 오랜 세월을 따라 형성되어 온 역사적 측면을 지닌다. 둘째, 전통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예술적 측면을 가진다. 셋째, 종교사회적 측면으로서,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위하는 종교적 기능과 마을을 통합하는 사회적 기능에서 찾을 수 있다.

참고문헌

五洲衍文長箋散稿, 경기 도당굿의 화랭이 연구(목진호, 중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3), 경기 북부지역의 신당과 제당(김두진,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2002), 경기도 도당굿(황루시·이보형, 열화당, 1983), 구리시 갈매동 도당굿(김종대 외, 민속원, 2010), 중요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121-안성무속 경기시나위춤(심우성·이보형,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1976), 속악유희(최영년, 황순구 옮김, 정음문고, 1986), 조선무속고(이능화, 서영대 옮김, 창비, 1986), 한국무속과 연희(이두현, 서울대학교출판부,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