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아리랑

밀양아리랑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집필자 서정매(徐貞梅)

정의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인 민요로 신민요로 분류되는 노래.

역사

<밀양아리랑>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매일신보』 1926년 10월 1일자에 소개된 김금화의 음반 ‘일츅조션소리판’의 목록에 보이며, 1929년 『별건곤別乾坤』 에 수록된 차상찬의 「밀양의 7대 명물」 중 ‘구슬픈 밀양아리랑’이 두 번째 기록이다. 이후 1930년대에는 기생들에 의해 음반화가 이루어지면서 지역을 막론하고 유행가로 불리면서 통속아리랑으로 자리 잡았다. 누구나 알고 쉽게 부르는 노래, 유행가로서의 장점을 갖춘 특징으로 인해 일제강점기에는 <독립군아리랑>과 <광복군아리랑>으로 개사해서 군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후렴구를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광복군 아리랑 불러나 주소”로 바꾸었고 가사 내용도 군가에 맞게 바꾸어 부른 것이다. 이는1946년에 간행된 『광복군가집』과 김구의 『도왜실기』에 수록되어 있다. 1950년 6·25전쟁 때에는 중공군들이 밀양아리랑을 <빨치산 유격대아리랑(파르티잔아리랑)>으로 개사해서 불렀는데, 이는 1953년 중공군 발행 군가집인 『조선지가朝鮮之歌』에 <파르티잔아리랑巴爾奇展的阿蔾朗>으로 수록되어 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신밀양아리랑>, <통일아리랑>으로 개사되어 노동가로도 불러졌다. 이렇듯 <밀양아리랑>은 경상도지역의 대표 민요이면서 통속민요이고,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시대별로 변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는 매년 개최되는 밀양아리랑대축제를 비롯하여 밀양아리랑보존회, 밀양아리랑콘텐츠사업단이 결성되어 밀양아리랑체조, 밀양아리랑플래시몹 등을 개발하는 등 전승과 보존에 노력하고 있다.

사설

(후렴)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다 틀렸네 다 틀렸네/ 니가 잘나 내가 잘가 그 누가 잘나 구리백통 지전이라야 젤 잘났지/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의 애화가 전해 오네/ 아실랑살랑 춥거들랑 내 품에 안기고 비개춤이 높거들랑 내 팔을 비어라/ 물명주 단속곳 널러야 좋고 홍당목 치마는 붉어야 좋다/ 옥양목저고리 연분홍 치마 열두 번 죽어도 못 놓겠네/ 앵기면 앵기고 말면 말지 고개만댕이 얹어 놓고 만단 말가/ 남의 집 서방님은 가마를 타는데 우리 집 저 문뎅이는 밭고랑만 탄다/ 길 가지 담장은 높아야 좋고 술집의 술어마씨는 곱아야 좋다/ 시어머리 죽고 나니 방 널러 좋고 보리방아 물 부어 논 게 생각이 난다/ 세상에 핀 꽃은 울긋불긋 내 마음에 핀 꽃은 울렁울렁

악보

밀양아리랑 악보

내용

3소박 3박자로 된 9/8박자의 세마치장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현음은 ‘미·솔·라·도·레’의 5음이며, ‘라’로 시작하고 ‘라’로 종지한다. 시작 부분은 고음부 ‘라’로 질러 내기로 노래한 후 서서히 하행된다. 반대로 후렴은 저음으로 시작하여 고음으로 상행한 후 다시 저음으로 마무리되는 형태이다. 음폭은 완전 8도이며, 가사에 따라서는 10도까지도 확대되어서 신민요의 특징이 강하다. 전체적으로 경토리의 성격이 강하지만, ‘라-솔-미’의 하행 선율이 주를 이루고 ‘라’로 종지하고 있어 변형된 메나리토리의 특징을 지닌다.

특징 및 의의

1920년대 중반부터 서도창과 경기창을 하던 기생들에 의해 음반화가 되면서 전국적으로 불리게 된 유행가였고, 지금도 경기민요의 하나로 자주 불리는 민요이다. 반면 주요 사설이 경상도 사투리로 되어 있고, 가사가 밀양 지역의 명승과 인물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토속성과 비토속성이 결합된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1900년대 이후 유행했던 아리랑의 고정부인 후렴이 나타나고, 경기잡가인 <양산도>의 선율 형태와 매우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밀양 지역의 전래 토속민요라기보다는 1900년대에 생성된 신민요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과 함께 한국의 3대 아리랑의 하나로서 경상도 민요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군아리랑>·<광복군아리랑>으로 개사되어 항일운동가로도 활용되었다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밀양아리랑가사집(밀양아리랑콘텐츠사업단·밀양아리랑보존회,2013), 밀양아리랑의 변용과 전승에 관한 연구(서정매, 한국민요학35, 한국민요학회, 2012), 밀양아리랑의 유형과 시대적 변천연구(곽동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논문, 2012), 밀양아리랑의 형성과정과 구조(김기현, 문학과 언어12, 문학과언어학회, 1991), 선율과 음정으로 살펴본 밀양아리랑(서정매, 한국민요학21, 한국민요학회, 2007).

밀양아리랑

밀양아리랑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집필자 서정매(徐貞梅)

정의

경상도 지역의 대표적인 민요로 신민요로 분류되는 노래.

역사

<밀양아리랑>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매일신보』 1926년 10월 1일자에 소개된 김금화의 음반 ‘일츅조션소리판’의 목록에 보이며, 1929년 『별건곤別乾坤』 에 수록된 차상찬의 「밀양의 7대 명물」 중 ‘구슬픈 밀양아리랑’이 두 번째 기록이다. 이후 1930년대에는 기생들에 의해 음반화가 이루어지면서 지역을 막론하고 유행가로 불리면서 통속아리랑으로 자리 잡았다. 누구나 알고 쉽게 부르는 노래, 유행가로서의 장점을 갖춘 특징으로 인해 일제강점기에는 <독립군아리랑>과 <광복군아리랑>으로 개사해서 군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후렴구를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광복군 아리랑 불러나 주소”로 바꾸었고 가사 내용도 군가에 맞게 바꾸어 부른 것이다. 이는1946년에 간행된 『광복군가집』과 김구의 『도왜실기』에 수록되어 있다. 1950년 6·25전쟁 때에는 중공군들이 밀양아리랑을 <빨치산 유격대아리랑(파르티잔아리랑)>으로 개사해서 불렀는데, 이는 1953년 중공군 발행 군가집인 『조선지가朝鮮之歌』에 <파르티잔아리랑巴爾奇展的阿蔾朗>으로 수록되어 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신밀양아리랑>, <통일아리랑>으로 개사되어 노동가로도 불러졌다. 이렇듯 <밀양아리랑>은 경상도지역의 대표 민요이면서 통속민요이고,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시대별로 변용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경상남도 밀양 지역에서는 매년 개최되는 밀양아리랑대축제를 비롯하여 밀양아리랑보존회, 밀양아리랑콘텐츠사업단이 결성되어 밀양아리랑체조, 밀양아리랑플래시몹 등을 개발하는 등 전승과 보존에 노력하고 있다.

사설

(후렴)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방긋/ 다 틀렸네 다 틀렸네/ 니가 잘나 내가 잘가 그 누가 잘나 구리백통 지전이라야 젤 잘났지/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영남루 명승을 찾아가니 아랑의 애화가 전해 오네/ 아실랑살랑 춥거들랑 내 품에 안기고 비개춤이 높거들랑 내 팔을 비어라/ 물명주 단속곳 널러야 좋고 홍당목 치마는 붉어야 좋다/ 옥양목 겹저고리 연분홍 치마 열두 번 죽어도 못 놓겠네/ 앵기면 앵기고 말면 말지 고개만댕이 얹어 놓고 만단 말가/ 남의 집 서방님은 가마를 타는데 우리 집 저 문뎅이는 밭고랑만 탄다/ 길 가지 담장은 높아야 좋고 술집의 술어마씨는 곱아야 좋다/ 시어머리 죽고 나니 방 널러 좋고 보리방아 물 부어 논 게 생각이 난다/ 세상에 핀 꽃은 울긋불긋 내 마음에 핀 꽃은 울렁울렁

악보

내용

3소박 3박자로 된 9/8박자의 세마치장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현음은 ‘미·솔·라·도·레’의 5음이며, ‘라’로 시작하고 ‘라’로 종지한다. 시작 부분은 고음부 ‘라’로 질러 내기로 노래한 후 서서히 하행된다. 반대로 후렴은 저음으로 시작하여 고음으로 상행한 후 다시 저음으로 마무리되는 형태이다. 음폭은 완전 8도이며, 가사에 따라서는 10도까지도 확대되어서 신민요의 특징이 강하다. 전체적으로 경토리의 성격이 강하지만, ‘라-솔-미’의 하행 선율이 주를 이루고 ‘라’로 종지하고 있어 변형된 메나리토리의 특징을 지닌다.

특징 및 의의

1920년대 중반부터 서도창과 경기창을 하던 기생들에 의해 음반화가 되면서 전국적으로 불리게 된 유행가였고, 지금도 경기민요의 하나로 자주 불리는 민요이다. 반면 주요 사설이 경상도 사투리로 되어 있고, 가사가 밀양 지역의 명승과 인물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토속성과 비토속성이 결합된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1900년대 이후 유행했던 아리랑의 고정부인 후렴이 나타나고, 경기잡가인 <양산도>의 선율 형태와 매우 유사한 점으로 미루어 밀양 지역의 전래 토속민요라기보다는 1900년대에 생성된 신민요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과 함께 한국의 3대 아리랑의 하나로서 경상도 민요를 대표하고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독립군아리랑>·<광복군아리랑>으로 개사되어 항일운동가로도 활용되었다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참고문헌

밀양아리랑가사집(밀양아리랑콘텐츠사업단·밀양아리랑보존회,2013), 밀양아리랑의 변용과 전승에 관한 연구(서정매, 한국민요학35, 한국민요학회, 2012), 밀양아리랑의 유형과 시대적 변천연구(곽동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논문, 2012), 밀양아리랑의 형성과정과 구조(김기현, 문학과 언어12, 문학과언어학회, 1991), 선율과 음정으로 살펴본 밀양아리랑(서정매, 한국민요학21, 한국민요학회,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