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覲親)

근친

한자명

覲親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송재용(宋宰鏞)

정의

시집온 신부가 친정에 가서 부모님을 뵙는 일.

역사

근친覲親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태조실록太祖實錄』에 근친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초에 근친을 행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근친은 고려 때부터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인 출신 지규식池圭植이 1891년에서 1911년까지 쓴 『하재일기荷齋日記』의 1895년 11월 8일 기사를 보면, “남한산성의 둘째 며느리가 귀녕歸寧하러 가는데, 인아仁兒가 수행하도록 하였다. 셋째 며느리도 근친하러 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건대,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근친을 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근친은 특히 신식혼례로 인해 변화했지만, 1980년 대에 용인 지역에서 근친을 갔다는 조사보고에 의하면 그 시기까지도 근친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근친은 신부가 혼인 후 친정 부모를 뵈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기가 일정하지는 않다. 시집 생활 3일, 1개월, 2개월, 3개월, 1년 만에 가는 경우도 있다. 또한, 친정 부모의 생일이나 제삿날에 가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첫 아이를 분만하기 위한 기회로 이용한 경우도 있었고, 첫 아이를 낳은 후 산후 조리하는 기간으로 보낸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이나 집안, 신식혼례와 급격한 사회변화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근친을 갈 때에는 간단한 차림으로 갈 수 없다. 원래 근친은 처음 수확한 햇곡식으로 떡과 술 등을 빚어 신랑・신부가 함께 가는 것이 일반적인예이다. 이때 가지고 가는 근친 음식을 ‘사돈음식’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신부가 시댁 음식을 가지고 친정에 가면, 친정에서도 신부가 시댁으로 돌아올 때 정성 들인 음식을 함께 보냈다. 그래서 사돈음식은 그냥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갚아야 하므로 언제나 받으면 부담된다고 하였다. 근친 가는 신부를 따라온 신랑은 장모 또는 처남의 안내를 받아 신부의 친척 집을 방문하여 인사를 한다. 이때 신부의 친척 집에서는 신랑・신부를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신랑은 며칠을 놀다가 신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때로는 신부가 더 오래 쉬다가 올 때도 있다. 신부가 시댁으로 돌아올 때도 떡・술 등을 마련하여 갖고 온다. 경상북도에서는 이를 ‘차반’이라고 한다. 이처럼 시집온 신부가 친정에 다녀오는 근친까지 끝내야 혼례는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태조실록』 1년 9월 21일 기사에 “옛날에는 여자가 시집을 간 경우에는 부모가 죽었으면 근친하는 의례가 없었다.”라고 하였으니, 친정 부모가 사망하면 근친을 안 간 것 같다. 아울러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근친을 못 하게 될 때에는 ‘반보기[中路相逢]’를 하여 친정어머니를 만났다. ‘반보기’란 양가에서 미리 연락하여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시댁과 친정의 중간쯤 되는 경치좋은 적당한 곳을 택하여 친정어머니와 출가한 딸이 만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장만한 음식을 가지고 와서 모녀가 그동안의 회포도 풀고 음식도 권하며 즐기다가 저녁에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한편, 혼인한 지 3년 안에 근친을 못 가면 일생 친정에 못 간다는 말도 있고, 3년 안에 근친을 못 가면 신부의 명이 짧다는 속신俗信도 있다. 이는 시집살이 처음 3년이 가장 힘들기 때문에, 3년 안에 근친을 보내라는 경구의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지역사례

일부 지방에서는 근친을 ‘인재행引再行’, ‘달신행’, ‘묵신행’이라고도 했다. 이는 신부의 신행이 늦어지기 때문에 근친도 따라서 늦어질 수밖에 없어서 그러한 명칭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경상남도에서는 시집온 신부가 처음으로 친정에 가는 것을 ‘재행再行’이라 하는 곳도 있고, ‘근친간다’라고 하는 곳도 있다. 또 전라남도에서는 ‘재행간다’, ‘재행걸음’, ‘근행간다’고도 한다. 전남 강진에서는 춘하추동 계절마다 친정을 다녀온다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신행은 시집온 후 제달로 가는 ‘제 달 근친’이 아니면 ‘석 달 근친’이었다. 경상북도에서는 근친 때 시아버지와 신랑이 함께 가기도 하는데, 이때 친정 식구의 옷을 해 간다고 한다. ‘차반’이라고 부르는 떡・엿・과일・고기・술 등의 음식도 준비해 가면 친정에서 동네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시아버지는 곧 돌아가고, 신랑도 며칠 뒤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시댁으로 돌아갈 때에는 친정아버지가 데려다 주든가, 신랑이 데리러 오든가 한다. 이때 역시 차반을 장만하여 시가에 돌아온다. 경기도 용인지역에서는 “며느리 근친은 무릎 밑에 접어 넣고, 딸의 근친은 세 동네가 나누어 먹는다.”라는 속담이 전해온다. 이는 며느리가 근친을 가서 가지고 온 음식은 별로 자랑할 것이 아니고, 딸이 근친 올 때 가지고 온 음식의 양으로 딸이 얼마나 시집을 잘 갔느냐를 자랑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한편, 제주도에서의 근친은 신부 집에서 열리는 ‘사둔잔치’가 이에 해당한다.

특징 및 의의

근친은 전통혼례과정의 마지막 순서로, 엄격한 유교적 가족제도가 빚어낸 풍속이라 할 수 있다 . 시집 생활 후 근친을 가는 전통적 형식의 준행遵行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가치관과 가족제도 등이 변화함에 따라 근친은 사라져가거나 그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한편, 근친은 사위가 장모를 위로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갈암집葛庵集』에 “근친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보면, 근친이 시집생활을 하는 여자들에게 얼마나 가슴 설레고 중요했던가를 알 수 있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荷齋日記, 육례이야기(권광욱, 해돋이, 2000), 한국 의례의 연구(송재용, 박문사, 2010), 한국의 전통혼례 연구(박혜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

근친

근친
한자명

覲親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송재용(宋宰鏞)

정의

시집온 신부가 친정에 가서 부모님을 뵙는 일.

역사

근친覲親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태조실록太祖實錄』에 근친을 했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초에 근친을 행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근친은 고려 때부터 행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인 출신 지규식池圭植이 1891년에서 1911년까지 쓴 『하재일기荷齋日記』의 1895년 11월 8일 기사를 보면, “남한산성의 둘째 며느리가 귀녕歸寧하러 가는데, 인아仁兒가 수행하도록 하였다. 셋째 며느리도 근친하러 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건대, 이 시기에 이르러서는 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근친을 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근친은 특히 신식혼례로 인해 변화했지만, 1980년 대에 용인 지역에서 근친을 갔다는 조사보고에 의하면 그 시기까지도 근친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근친은 신부가 혼인 후 친정 부모를 뵈러 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시기가 일정하지는 않다. 시집 생활 3일, 1개월, 2개월, 3개월, 1년 만에 가는 경우도 있다. 또한, 친정 부모의 생일이나 제삿날에 가는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첫 아이를 분만하기 위한 기회로 이용한 경우도 있었고, 첫 아이를 낳은 후 산후 조리하는 기간으로 보낸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변화는 지역이나 집안, 신식혼례와 급격한 사회변화 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근친을 갈 때에는 간단한 차림으로 갈 수 없다. 원래 근친은 처음 수확한 햇곡식으로 떡과 술 등을 빚어 신랑・신부가 함께 가는 것이 일반적인예이다. 이때 가지고 가는 근친 음식을 ‘사돈음식’이라고도 한다. 이처럼 신부가 시댁 음식을 가지고 친정에 가면, 친정에서도 신부가 시댁으로 돌아올 때 정성 들인 음식을 함께 보냈다. 그래서 사돈음식은 그냥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갚아야 하므로 언제나 받으면 부담된다고 하였다. 근친 가는 신부를 따라온 신랑은 장모 또는 처남의 안내를 받아 신부의 친척 집을 방문하여 인사를 한다. 이때 신부의 친척 집에서는 신랑・신부를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신랑은 며칠을 놀다가 신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때로는 신부가 더 오래 쉬다가 올 때도 있다. 신부가 시댁으로 돌아올 때도 떡・술 등을 마련하여 갖고 온다. 경상북도에서는 이를 ‘차반’이라고 한다. 이처럼 시집온 신부가 친정에 다녀오는 근친까지 끝내야 혼례는 마무리되는 것이다.

그런데 『태조실록』 1년 9월 21일 기사에 “옛날에는 여자가 시집을 간 경우에는 부모가 죽었으면 근친하는 의례가 없었다.”라고 하였으니, 친정 부모가 사망하면 근친을 안 간 것 같다. 아울러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근친을 못 하게 될 때에는 ‘반보기[中路相逢]’를 하여 친정어머니를 만났다. ‘반보기’란 양가에서 미리 연락하여 날짜와 시간을 정하고 시댁과 친정의 중간쯤 되는 경치좋은 적당한 곳을 택하여 친정어머니와 출가한 딸이 만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장만한 음식을 가지고 와서 모녀가 그동안의 회포도 풀고 음식도 권하며 즐기다가 저녁에 각자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한편, 혼인한 지 3년 안에 근친을 못 가면 일생 친정에 못 간다는 말도 있고, 3년 안에 근친을 못 가면 신부의 명이 짧다는 속신俗信도 있다. 이는 시집살이 처음 3년이 가장 힘들기 때문에, 3년 안에 근친을 보내라는 경구의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지역사례

일부 지방에서는 근친을 ‘인재행引再行’, ‘달신행’, ‘묵신행’이라고도 했다. 이는 신부의 신행이 늦어지기 때문에 근친도 따라서 늦어질 수밖에 없어서 그러한 명칭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경상남도에서는 시집온 신부가 처음으로 친정에 가는 것을 ‘재행再行’이라 하는 곳도 있고, ‘근친간다’라고 하는 곳도 있다. 또 전라남도에서는 ‘재행간다’, ‘재행걸음’, ‘근행간다’고도 한다. 전남 강진에서는 춘하추동 계절마다 친정을 다녀온다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신행은 시집온 후 제달로 가는 ‘제 달 근친’이 아니면 ‘석 달 근친’이었다. 경상북도에서는 근친 때 시아버지와 신랑이 함께 가기도 하는데, 이때 친정 식구의 옷을 해 간다고 한다. ‘차반’이라고 부르는 떡・엿・과일・고기・술 등의 음식도 준비해 가면 친정에서 동네에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시아버지는 곧 돌아가고, 신랑도 며칠 뒤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시댁으로 돌아갈 때에는 친정아버지가 데려다 주든가, 신랑이 데리러 오든가 한다. 이때 역시 차반을 장만하여 시가에 돌아온다. 경기도 용인지역에서는 “며느리 근친은 무릎 밑에 접어 넣고, 딸의 근친은 세 동네가 나누어 먹는다.”라는 속담이 전해온다. 이는 며느리가 근친을 가서 가지고 온 음식은 별로 자랑할 것이 아니고, 딸이 근친 올 때 가지고 온 음식의 양으로 딸이 얼마나 시집을 잘 갔느냐를 자랑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한편, 제주도에서의 근친은 신부 집에서 열리는 ‘사둔잔치’가 이에 해당한다.

특징 및 의의

근친은 전통혼례과정의 마지막 순서로, 엄격한 유교적 가족제도가 빚어낸 풍속이라 할 수 있다 . 시집 생활 후 근친을 가는 전통적 형식의 준행遵行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가치관과 가족제도 등이 변화함에 따라 근친은 사라져가거나 그 내용이 달라지고 있다. 한편, 근친은 사위가 장모를 위로하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갈암집葛庵集』에 “근친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보면, 근친이 시집생활을 하는 여자들에게 얼마나 가슴 설레고 중요했던가를 알 수 있다.

참고문헌

太祖實錄, 荷齋日記, 육례이야기(권광욱, 해돋이, 2000), 한국 의례의 연구(송재용, 박문사, 2010), 한국의 전통혼례 연구(박혜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