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산조

거문고산조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집필자 권도희(權度希)

정의

거문고의 특수한 구조를 전면적으로 활용하여 산조 양식을 구체화한 음악.

개관

거문고산조는 백락준1876~1930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백락준은 가야금산조의 중시조로 알려진 김창조와 비슷한 연배이다. 그러나 이후 전개상황을 보면, 거문고산조는 가야금산조보다 양식적 발전 단계가 한 세대 정도 뒤진다. 거문고산조는 발달 초기부터 참여한 음악가들의 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다양한 음악적 시도도 충분치는 않지만 음악적으로는 다른 산조와 균형을 이룬다.
백락준은 만년에 거문고산조를 녹음했는데1930, 백락준의 제자로 알려진 김종기1902~1937와 신쾌동1907~1978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각각의 거문고산조를 유성기 음반에 녹음했다. 유성기 음반에 남겨진 백락준과 김종기 그리고 신쾌동의 거문고산조를 살펴보면 장단 연속체의 구성 방법과 조성, 청의 활용 그리고 가락의 전개 및 주법에서 서로 다르다. 이는 1930년대 거문고 산조의 명인으로 인정받은 음악가들이 사승 관계를 떠나 자유롭게 산조를 구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락준의 제자로 김종기와 신쾌동보다 연장이었던 박석기1899~1953는 비록 자신의 음악을 녹음으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의 음악은 한갑득1919~1987에게 전해졌다. 한갑득은 신쾌동보다는 늦었지만 산조로 일가를 이루었고, 임석윤과 김윤덕에게 전해졌다. 임석윤은 개성적 음악을 만들었지만, 전승은 되지 못했다. 김윤덕도 독창적인 산조를 구성했고 제자들도 많이 길러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야금산조 명인으로서 더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는 신쾌동이 거문고산조와 가야금산조에 두루 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문고산조의 명인으로 기억되는 것과는 다른 현상이다. 그 결과 현재 김종기나 임석윤의 거문고산조는 연주되지 않고 신쾌동류, 한갑득류, 김윤덕류의 세 유파가 널리 연주되고 있다.
1930년에 발매된 빅터 유성기 음반에 남아 있는 백락준 거문고산조는 진양·중모리·엇모리·잔모리로 되어 있다. 그러나 1936년에 오케 음반에서 녹음된 김종기 산조는 진양·중모리·단머리로 구성되어 있고, 1938년에 발매된 오케 음반에는 엇모리가 녹음되어 있다. 중중모리는 1950년대 말 신쾌동의 거문고산조에서, 그리고 휘모리는 1960년대 이후에 추가되었다.
거문고산조는 한 세대 먼저 발달했던 가야금산조의 양식적 발달을 상당한 정도로 따라갔다. 특히 산조의 장단연속체의 구성법은 가야금산조를 모방했다. 그러나 거문고산조는 처음부터 가야금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 거문고 악기의 개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가야금산조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표현법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문현법, 청현법, 괘법, 술대법, 지법 등은 거문고산조가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거문고산조의 첫 세대는 바로 이것, 악기의 개성을 산조라는 양식으로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두 번째 세대부터는 산조라는 양식에 합당한 음악적 특징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예를 들면 거문고는 악기 구조적으로 괘의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산조의 청의 이동도 다른 산조보다 더 자유롭다 . 두 번째 세대에 활동했던 명인들은 청의 이동이 자유로운 점을 조성의 변화와 연계시키면서 유연한 선율을 전개를 시도했다. 이러한 변화를 개성적으로 구현해 낸 음악가는 일가를 이루게 되었고 그 결과 이들의 산조는 광복 후 개별 유파로 인정되었다. 이후 세대는 유파별 특징을 연주자별로 정교하게 연주하는 데 주력했다.

내용

현재 연주되고 있는 거문고산조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엇모리·자진모리·휘모리 등으로 구성된다. 여타 산조와 마찬가지평조계면조의 대립이 나타나지만, 거문고는 악기 구조상 괘의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평조와 계면조의 구성음들이 교차된다. 따라서 조성의 변화는 강렬한 대립보다는 점진적인 변화 속에 서 유연한 대립의 양상을 보인다. 2괘법에서부터 9괘법까지 사용되기 되기 때문에 활용 음역의 폭이 넓다. 첫 번째 괘는 사실상 현악기의 고정괘bridge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16개의 괘 가운데 3~4개 빼고는 거의 다 이용하는 셈이다. 이처럼 저음역에서부터 고음역까지의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선율도 변화무쌍하다. 거문고산조가 거침없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거문고 특유의 청현(괘상청, 괘하청)과 문현을 사용함으로써 거문고의 악기적 무게감과 음색이 잘 표현되고, 술대법을 통해 대점과 소점을 분명히 구별함으로써 음악의 역동성을 폭넓게 보여줄 수 있다. 예를 들면, 단락에 따라 강렬함과 부드러움이 세밀하게 조절된다. 나아가 왼손 자출성 등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술대로 낼 수 없는 의외의 음색을 표현하기도 한다. 다양한 음색과 연주법은 산조 양식과 표리의 관계를 이루며 거문고산조만의 개성을 창출한다.

특징 및 의의

거문고산조는 현재로서는 거문고로 구현될 수 있는 음악적 기교와 가능성을 가장 다채롭게 보여주는 음악이다. 거문고산조가 등장하기 전까지 거문고는 절제미를 미덕으로 삼는 궁중음악이나 문인 사대부의 음악에만 연주되었다. 물론 거문고산조도 진양같이 느린 악장에서 절제미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산조는 본질적으로 역동적 리듬 전개와 초절의 기교를 의도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에 문인의 음악과는 미적으로 다르다.

참고문헌

거문고산조 세 바탕(정대석 채보, 은하출판사, 1990), 산조의 기본청과 보조청(황준연, 민족음악학18,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1995), 잊혀진 거문고산조의 명인들(거문고팩토리, 2008), 초기 산조에서 장단연속체구성법의 다양성(권도희, 한국 음악연구59, 한국국악학회, 2016).

거문고산조

거문고산조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집필자 권도희(權度希)

정의

거문고의 특수한 구조를 전면적으로 활용하여 산조 양식을 구체화한 음악.

개관

거문고산조는 백락준1876~1930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백락준은 가야금산조의 중시조로 알려진 김창조와 비슷한 연배이다. 그러나 이후 전개상황을 보면, 거문고산조는 가야금산조보다 양식적 발전 단계가 한 세대 정도 뒤진다. 거문고산조는 발달 초기부터 참여한 음악가들의 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에 다양한 음악적 시도도 충분치는 않지만 음악적으로는 다른 산조와 균형을 이룬다.
백락준은 만년에 거문고산조를 녹음했는데1930, 백락준의 제자로 알려진 김종기1902~1937와 신쾌동1907~1978도 그와 비슷한 시기에 각각의 거문고산조를 유성기 음반에 녹음했다. 유성기 음반에 남겨진 백락준과 김종기 그리고 신쾌동의 거문고산조를 살펴보면 장단 연속체의 구성 방법과 조성, 청의 활용 그리고 가락의 전개 및 주법에서 서로 다르다. 이는 1930년대 거문고 산조의 명인으로 인정받은 음악가들이 사승 관계를 떠나 자유롭게 산조를 구성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락준의 제자로 김종기와 신쾌동보다 연장이었던 박석기1899~1953는 비록 자신의 음악을 녹음으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그의 음악은 한갑득1919~1987에게 전해졌다. 한갑득은 신쾌동보다는 늦었지만 산조로 일가를 이루었고, 임석윤과 김윤덕에게 전해졌다. 임석윤은 개성적 음악을 만들었지만, 전승은 되지 못했다. 김윤덕도 독창적인 산조를 구성했고 제자들도 많이 길러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야금산조 명인으로서 더 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는 신쾌동이 거문고산조와 가야금산조에 두루 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문고산조의 명인으로 기억되는 것과는 다른 현상이다. 그 결과 현재 김종기나 임석윤의 거문고산조는 연주되지 않고 신쾌동류, 한갑득류, 김윤덕류의 세 유파가 널리 연주되고 있다.
1930년에 발매된 빅터 유성기 음반에 남아 있는 백락준 거문고산조는 진양·중모리·엇모리·잔모리로 되어 있다. 그러나 1936년에 오케 음반에서 녹음된 김종기 산조는 진양·중모리·단머리로 구성되어 있고, 1938년에 발매된 오케 음반에는 엇모리가 녹음되어 있다. 중중모리는 1950년대 말 신쾌동의 거문고산조에서, 그리고 휘모리는 1960년대 이후에 추가되었다.
거문고산조는 한 세대 먼저 발달했던 가야금산조의 양식적 발달을 상당한 정도로 따라갔다. 특히 산조의 장단연속체의 구성법은 가야금산조를 모방했다. 그러나 거문고산조는 처음부터 가야금보다 훨씬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 거문고 악기의 개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가야금산조와는 뚜렷하게 구별되는 표현법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면 문현법, 청현법, 괘법, 술대법, 지법 등은 거문고산조가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거문고산조의 첫 세대는 바로 이것, 악기의 개성을 산조라는 양식으로 구현하는데 성공했다. 두 번째 세대부터는 산조라는 양식에 합당한 음악적 특징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예를 들면 거문고는 악기 구조적으로 괘의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산조의 청의 이동도 다른 산조보다 더 자유롭다 . 두 번째 세대에 활동했던 명인들은 청의 이동이 자유로운 점을 조성의 변화와 연계시키면서 유연한 선율을 전개를 시도했다. 이러한 변화를 개성적으로 구현해 낸 음악가는 일가를 이루게 되었고 그 결과 이들의 산조는 광복 후 개별 유파로 인정되었다. 이후 세대는 유파별 특징을 연주자별로 정교하게 연주하는 데 주력했다.

내용

현재 연주되고 있는 거문고산조는 진양·중모리·중중모리·엇모리·자진모리·휘모리 등으로 구성된다. 여타 산조와 마찬가지로 평조와 계면조의 대립이 나타나지만, 거문고는 악기 구조상 괘의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평조와 계면조의 구성음들이 교차된다. 따라서 조성의 변화는 강렬한 대립보다는 점진적인 변화 속에 서 유연한 대립의 양상을 보인다. 2괘법에서부터 9괘법까지 사용되기 되기 때문에 활용 음역의 폭이 넓다. 첫 번째 괘는 사실상 현악기의 고정괘bridge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실상 16개의 괘 가운데 3~4개 빼고는 거의 다 이용하는 셈이다. 이처럼 저음역에서부터 고음역까지의 이동이 자유롭기 때문에 선율도 변화무쌍하다. 거문고산조가 거침없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거문고 특유의 청현(괘상청, 괘하청)과 문현을 사용함으로써 거문고의 악기적 무게감과 음색이 잘 표현되고, 술대법을 통해 대점과 소점을 분명히 구별함으로써 음악의 역동성을 폭넓게 보여줄 수 있다. 예를 들면, 단락에 따라 강렬함과 부드러움이 세밀하게 조절된다. 나아가 왼손 자출성 등을 적절하게 사용함으로써 술대로 낼 수 없는 의외의 음색을 표현하기도 한다. 다양한 음색과 연주법은 산조 양식과 표리의 관계를 이루며 거문고산조만의 개성을 창출한다.

특징 및 의의

거문고산조는 현재로서는 거문고로 구현될 수 있는 음악적 기교와 가능성을 가장 다채롭게 보여주는 음악이다. 거문고산조가 등장하기 전까지 거문고는 절제미를 미덕으로 삼는 궁중음악이나 문인 사대부의 음악에만 연주되었다. 물론 거문고산조도 진양같이 느린 악장에서 절제미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산조는 본질적으로 역동적 리듬 전개와 초절의 기교를 의도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에 문인의 음악과는 미적으로 다르다.

참고문헌

거문고산조 세 바탕(정대석 채보, 은하출판사, 1990), 산조의 기본청과 보조청(황준연, 민족음악학18, 서울대학교 동양음악연구소, 1995), 잊혀진 거문고산조의 명인들(거문고팩토리, 2008), 초기 산조에서 장단연속체구성법의 다양성(권도희, 한국 음악연구59, 한국국악학회,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