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고

거문고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집필자 송혜진(宋惠眞)

정의

장방형의 공명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6현을 걸고 오른손에 쥔 술대로 줄을 쳐서 연주하는 발현악기.

역사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탄생되었다. 고분 무용총의 벽화(5~6세기경) 등에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현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樂志」에는 중국 진晋나라에서 칠현금七絃琴을 보냈고, 고구려의 제이상第二相 왕산악王山岳이 악기의 본 모양을 그대로 두고 법제法制를 개량해 새 악기를 만들고 일백 곡을 지어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왕산악의 연주에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기 때문에 이를 현학금玄鶴琴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를 줄여서 현금玄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역사서의 이 내용은 전래의 현악기가 이 무렵 왕산악에 의해 개조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거문고가 가야금, 향비파와 함께 신라 삼현의 한 가지로 정착되었다. 처음에는 옥보고玉寶高-속명득續命得-귀금貴金이 비전祕傳의 계보를 이었고, 경문왕재위 861~875 때 이후 널리 퍼졌다. 고려시대이후 조선시대까지 거문고는 대표적인 향악기鄕樂器의 하나로 궁중의 합주와 상류사회의 풍류음악으로 전승되면서 백악지장百樂之丈의 위치를 점하였다. 조선 전기에 성현成俔, 1439~1504은 거문고를 애호하여, 거문고 연주를 위한 합자보合字譜를 창안하였는데, 이를 통해 풍류음악의 기보와 전파, 전승이 원활하게 되었다. 『금합자보琴合字譜』, 『양금신보梁琴新譜』, 『낭옹신보浪翁新譜』, 『한금신보韓琴新譜』, 『삼죽금보三竹琴譜』 등 주요 거문고 악보를 통해 거문고 음악의 전승 현황을 살필 수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조선 전기의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소장 거문고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관리·문인들이 소장하였던 거문고 유물이 다수 전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는 궁중음악 전승 기구인 이왕직아악부와 민간의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에서 거문고 정악의 전승이 이루어졌으며, 20세기 이후 거문고산조의 출현으로 공명통의 크기와 줄의 굵기가 다른 산조거문고가 탄생하였다.

내용

거문고의 구조는 공명통과 줄, 두 종류의 현주絃柱, 술대로 이루어져있다. 공명통은 단단한 재질의 밤나무로 뒤판을 만들고, 울림이 좋은 오동나무를 앞판[腹板]에 붙여 상자 식으로 만든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거문고 줄은 위쪽 좌단과 아래쪽 봉미鳳尾 부분에 구멍을 뚫어 고정시키는데, 좌단 뒤쪽에는 줄감개 구실을 하는 돌괘가 있다. 봉미 쪽에는 무명실을 꼬아 만든 부들을 끼워 명주실 현을 연결한다. 좌단 부분에는 대모玳瑁판을 붙인다. 본래 재질이 단단한 바다거북 등가죽을 붙여 술대가 닿은 부분을 보호한 것인데, 점차 희귀 재료인 대모 대신 멧돼지 가죽으로 대체되었다. 명칭은 그대로 대모 또는 대모판이라고 한다. 좌단과 대모 사이의 경계에는 현침絃枕 또는 담괘를 붙인다. 공명통 위에는 16개의 괘를 고정시켜 줄을 건다. 아래쪽에 가장 높은 괘인 제1괘가 놓이고 위로 올라올수록 높이가 낮아지며, 괘의 간격도 좁아진다.
굵기가 각기 다른 거문고의 6현은 각기 다른 명칭이 있다. 연주자의 몸 가까이에 있는 제1현이 문현文絃이고, 차례로 유현遊絃, 대현大絃, 괘상청棵上淸, 괘하청棵下淸(일명 기괘청岐棵淸), 무현武絃이다. 줄의 굵기는 대현, 무현, 문현, 괘상청, 괘하청, 유현 순으로 점차 가늘어지며, 괘 위에 세 줄, 안족 위에 세 줄을 건다. 괘 위의 대현과 유현이 주선율을 연주하며 괘상청과 안족 위의 문현과 무현, 괘하청이 악곡의 처음과 끝, 중간의 강약, 장식음을 주로 연주한다.
거문고 연주법은 왼 손가락으로 줄을 눌러 괘를 짚어서 음을 내는 운지법運指法과 술대를 쥐고 소리 내는 집시법執匙法으로 구분되며, 각각의 주법에 구음이 있다. 대현을 장지로 누르면 ‘덩’, 대현을 식지로 누르면 ‘둥’, 대현을 엄지로 누르면 ‘등’, 유현을 무명지로 누르면 ‘당’, 유현을 식지로 누르면 ‘동’, 유현을 엄지로 누르면 ‘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문현과 무현, 괘상청, 괘하청 등의 음을 거치면 좀 더 다양한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때 문현과 유현의 음을 거쳐 소리 낼 때는 ‘쌀깽’, ‘싸당’, ‘싸동’, ‘싸징’, ‘살당’, ‘살동’, ‘살징’이라 하고, 문현을 거쳐 대현의 정해진 음까지 이어 탈 때 장지로 짚은 음은 ‘슬기덩’, ‘슬기둥’, ‘슬기등’, ‘살키덩’, ‘살키둥’ ‘살키등’이라 하며, 문현은 ‘살’, ‘슬’ 등으로 부른다. 개방현(괘상청, 괘하청, 무현)의 음은 ‘청’이라고 구음한다.

특징 및 의의

거문고는 동북아시아의 여러 금쟁류 현악기 중에서 고정된 괘를 가진 고유한 형태의 악기이다. 장방형의 공명통을 가진 가야금과 유사하면서도 현의주와 연주법, 음색 등의 대비를 이루며 한국을 대표하는 현악기로 전승되어 왔다. 거문고는 가야금에 비해 줄이 굵어 음색이 어둡고 음역이 낮다. 또 손가락으로 직접 줄을 만지며 연주하는 가야금과 달리 술대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타현하며, 농현을 할 때도 왼손을 상하로 움직여 가야금과 달리 수평으로 움직인다. 이와 같은 악기 구조와 연주법의 차이는 흔히 여성성과 남성성에 비유되어 가야금은 여성적이고, 거문고는 남성적인 악기라는 인식을 낳았다. 또한 전문 음악 외에 문인들의 풍류음악을 주도해 오면서 선비들의 음악 정신과 독특한 향유의 문화의 전통을 대표해 왔다.

참고문헌

거문고와 그 음악에 관련된 연구동향(신대철, 국악원논문집10, 국립국악원, 1998), 고구려 고분벽화의 거문고(황준연, 국악원논문집9, 국립국악원, 1997), 한국악기(송혜진, 열화당, 2001).

거문고

거문고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집필자 송혜진(宋惠眞)

정의

장방형의 공명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6현을 걸고 오른손에 쥔 술대로 줄을 쳐서 연주하는 발현악기.

역사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탄생되었다. 고분 무용총의 벽화(5~6세기경) 등에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현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樂志」에는 중국 진晋나라에서 칠현금七絃琴을 보냈고, 고구려의 제이상第二相 왕산악王山岳이 악기의 본 모양을 그대로 두고 법제法制를 개량해 새 악기를 만들고 일백 곡을 지어 연주했다는 기록이 있다. 왕산악의 연주에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기 때문에 이를 현학금玄鶴琴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이를 줄여서 현금玄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역사서의 이 내용은 전래의 현악기가 이 무렵 왕산악에 의해 개조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거문고가 가야금, 향비파와 함께 신라 삼현의 한 가지로 정착되었다. 처음에는 옥보고玉寶高-속명득續命得-귀금貴金이 비전祕傳의 계보를 이었고, 경문왕재위 861~875 때 이후 널리 퍼졌다. 고려시대이후 조선시대까지 거문고는 대표적인 향악기鄕樂器의 하나로 궁중의 합주와 상류사회의 풍류음악으로 전승되면서 백악지장百樂之丈의 위치를 점하였다. 조선 전기에 성현成俔, 1439~1504은 거문고를 애호하여, 거문고 연주를 위한 합자보合字譜를 창안하였는데, 이를 통해 풍류음악의 기보와 전파, 전승이 원활하게 되었다. 『금합자보琴合字譜』, 『양금신보梁琴新譜』, 『낭옹신보浪翁新譜』, 『한금신보韓琴新譜』, 『삼죽금보三竹琴譜』 등 주요 거문고 악보를 통해 거문고 음악의 전승 현황을 살필 수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조선 전기의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 소장 거문고를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관리·문인들이 소장하였던 거문고 유물이 다수 전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는 궁중음악 전승 기구인 이왕직아악부와 민간의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에서 거문고 정악의 전승이 이루어졌으며, 20세기 이후 거문고산조의 출현으로 공명통의 크기와 줄의 굵기가 다른 산조거문고가 탄생하였다.

내용

거문고의 구조는 공명통과 줄, 두 종류의 현주絃柱, 술대로 이루어져있다. 공명통은 단단한 재질의 밤나무로 뒤판을 만들고, 울림이 좋은 오동나무를 앞판[腹板]에 붙여 상자 식으로 만든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거문고 줄은 위쪽 좌단과 아래쪽 봉미鳳尾 부분에 구멍을 뚫어 고정시키는데, 좌단 뒤쪽에는 줄감개 구실을 하는 돌괘가 있다. 봉미 쪽에는 무명실을 꼬아 만든 부들을 끼워 명주실 현을 연결한다. 좌단 부분에는 대모玳瑁판을 붙인다. 본래 재질이 단단한 바다거북 등가죽을 붙여 술대가 닿은 부분을 보호한 것인데, 점차 희귀 재료인 대모 대신 멧돼지 가죽으로 대체되었다. 명칭은 그대로 대모 또는 대모판이라고 한다. 좌단과 대모 사이의 경계에는 현침絃枕 또는 담괘를 붙인다. 공명통 위에는 16개의 괘를 고정시켜 줄을 건다. 아래쪽에 가장 높은 괘인 제1괘가 놓이고 위로 올라올수록 높이가 낮아지며, 괘의 간격도 좁아진다.
굵기가 각기 다른 거문고의 6현은 각기 다른 명칭이 있다. 연주자의 몸 가까이에 있는 제1현이 문현文絃이고, 차례로 유현遊絃, 대현大絃, 괘상청棵上淸, 괘하청棵下淸(일명 기괘청岐棵淸), 무현武絃이다. 줄의 굵기는 대현, 무현, 문현, 괘상청, 괘하청, 유현 순으로 점차 가늘어지며, 괘 위에 세 줄, 안족 위에 세 줄을 건다. 괘 위의 대현과 유현이 주선율을 연주하며 괘상청과 안족 위의 문현과 무현, 괘하청이 악곡의 처음과 끝, 중간의 강약, 장식음을 주로 연주한다.
거문고 연주법은 왼 손가락으로 줄을 눌러 괘를 짚어서 음을 내는 운지법運指法과 술대를 쥐고 소리 내는 집시법執匙法으로 구분되며, 각각의 주법에 구음이 있다. 대현을 장지로 누르면 ‘덩’, 대현을 식지로 누르면 ‘둥’, 대현을 엄지로 누르면 ‘등’, 유현을 무명지로 누르면 ‘당’, 유현을 식지로 누르면 ‘동’, 유현을 엄지로 누르면 ‘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문현과 무현, 괘상청, 괘하청 등의 음을 거치면 좀 더 다양한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때 문현과 유현의 음을 거쳐 소리 낼 때는 ‘쌀깽’, ‘싸당’, ‘싸동’, ‘싸징’, ‘살당’, ‘살동’, ‘살징’이라 하고, 문현을 거쳐 대현의 정해진 음까지 이어 탈 때 장지로 짚은 음은 ‘슬기덩’, ‘슬기둥’, ‘슬기등’, ‘살키덩’, ‘살키둥’ ‘살키등’이라 하며, 문현은 ‘살’, ‘슬’ 등으로 부른다. 개방현(괘상청, 괘하청, 무현)의 음은 ‘청’이라고 구음한다.

특징 및 의의

거문고는 동북아시아의 여러 금쟁류 현악기 중에서 고정된 괘를 가진 고유한 형태의 악기이다. 장방형의 공명통을 가진 가야금과 유사하면서도 현의주와 연주법, 음색 등의 대비를 이루며 한국을 대표하는 현악기로 전승되어 왔다. 거문고는 가야금에 비해 줄이 굵어 음색이 어둡고 음역이 낮다. 또 손가락으로 직접 줄을 만지며 연주하는 가야금과 달리 술대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타현하며, 농현을 할 때도 왼손을 상하로 움직여 가야금과 달리 수평으로 움직인다. 이와 같은 악기 구조와 연주법의 차이는 흔히 여성성과 남성성에 비유되어 가야금은 여성적이고, 거문고는 남성적인 악기라는 인식을 낳았다. 또한 전문 음악 외에 문인들의 풍류음악을 주도해 오면서 선비들의 음악 정신과 독특한 향유의 문화의 전통을 대표해 왔다.

참고문헌

거문고와 그 음악에 관련된 연구동향(신대철, 국악원논문집10, 국립국악원, 1998), 고구려 고분벽화의 거문고(황준연, 국악원논문집9, 국립국악원, 1997), 한국악기(송혜진, 열화당,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