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伽倻琴)

가야금

한자명

伽倻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집필자 송혜진(宋惠眞)

정의

장방형의 오동나무 공명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만든 12현을 걸어 손가락으로 줄을 튕겨 연주하는 발현악기.

역사

가야금은 6세기경 가야에서 탄생되었다. 6세기 이전의 악기 유물과 가야금 장식 토우 등을 통해 가야금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현악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樂志」에는 가야국의 가실왕이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고, 악사 우륵이 가실왕의 명을 받아 가야금을 위한 12곡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었다. 이러한 유물과 관련된 기록은 가실왕이 전래의 고유 현악기와 당나라의 ‘쟁’을 참고하여 새로운 형태의 개량·완성했음을 시사한다. 가야가 멸망 위기에 처하자 우륵은 551년에 신라로 망명했고, 진흥왕의 후원을 받으며 신라의 젊은이 계고階古, 법지法知, 만덕萬德에게 가야금과 가무를 가르쳤다. 이후 신라에서는 이 음악을 대악大樂으로 삼았다. 일본의 정창원正倉院에는 오늘날 정악가야금 형태의 신라금新羅琴 유물 세 점이 소장되어 전한다. 가야금은 통일신라시대 삼현삼죽의 하나로 전승되었으며 그 전통은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가야금 고악보는 『졸옹가야금보拙翁伽倻琴譜』가 대표적이다. 조선 후기의 회화에 전하는 가야금 연주 모습을 통해 악기의 형태와 연주 자세 등을 볼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는 궁중음악 전승 기구인 이왕직아악부와 민간의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에서 가야금 정악의 전승이 이루어졌으며, 산조의 탄생과 함께 악기 형태에도 변화가 생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용

가야금은 다른 이름으로는 가야고, 가얏고라고 한다. 궁중음악과 선비풍류음악 연주용 정악가야금과 산조 및 민속음악 연주용 산조가야금 두 가지가 있다 .정악가야금은 법금法琴 또는 풍류가야금이라고도 불린다. 정악가야금과 산조가야금은 크기와 형태 면에서 차이가 있다. 정악가야금은 길이 165~170㎝, 너비 30㎝,현 길이 140㎝ 정도이다. 두꺼운 오동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공명통과 12현, 줄을 받치는 현주絃柱, 줄 고정 장치인 양이두羊耳頭로 이루어져 있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가야금 줄은 위쪽 좌단과 아래쪽 양이두에 구멍을 뚫어 고정시킨다. 좌단 뒤쪽에는 줄감개 구실을 하는 돌괘가 있다. 양이두에는 무명실을 꼬아 만든 부들을 끼워 명주실 현을 연결한다. 산조가야금은 길이 145~150㎝, 너비 21㎝, 현 길이 120㎝ 정도이다. 거문고처럼 밤나무로 만든 뒤판에 오동나무 앞판을 붙여 만든 상자식 공명통에 12현을 걸고 위쪽 좌단과 아래쪽 봉미鳳尾 부분에 구멍을 뚫어 고정시킨다.
가야금의 12현은 맨 아래쪽의 저음부와 고음부의 굵기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악학궤범樂學軌範』 시대만해도 문현, 무현 등의 줄 이름이 있었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가야금의 현주는 안족雁足이라고 한다.
가야금 연주법도 정악 주법과 산조 주법에 차이가 있다. 정악가야금의 오른손 수법 중 특징적인 것은 오른손의 ‘당기고 미는 주법’이다. 오른 손가락을 현에 대되 현을 뜯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엎어 놓은 자세 그대로 해당 음을 밀거나 당겨서 연주하는 기법이다.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진행할 때는 검지와 장지로 줄을 당겨서 연주하고, 반대로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진행할 때는 엄지로 밀어서 소리를 낸다. 이 밖에 거문고의 ‘뜰’ 기법처럼 엄지의 손톱을 현 아래쪽으로부터 들어 올리듯이 뜯는 주법도 있고, 본음의 옥타브 아래음을 검지로 전타음前打音처럼 짧게 소리를 낸 뒤 옥타브 관계의 두 음을 엄지와 장지를 이용해 차례로 뜯어 연주하는 ‘싸랭’과 ‘슬기둥’과 같은 주법도 활용되고 있다. 정악가야금의 왼손 주법은 줄을 흔들거나[弄絃], 굴리거나[轉聲], 눌렀다가 들어 올리는[退聲] 연주법 등이있는데, 특히 전성과 퇴성할 때의 손 자세와 주법은 산조가야금과 아주 다르다.
산조가야금의 오른손 주법은 손가락을 줄 밑에 넣었다가 뜯어 올리듯이 연주하는 뜯는 주법과 손톱으로 튕기는 주법이 주로 쓰이고, 음의 리듬과 시가에 따라 소리를 막아 주는 ‘막는 주법’도 정악가야금 연주에 비해 많이 사용된다. 왼손 주법은 검지와 장지를 이용해 농현·전성·퇴성 등의 기법을 구사하는데, 정악에 비해 표현이 강하다.
가야금의 조율은 정악가야금과 산조가야금이 다르고, 조에 따라 특정 안족을 움직여 다른 조율 체계를 가질 수도 있다. 정악가야금을 조율할 때는 제4현을 대금의 임종林鍾(B♭)에 맞추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나머지 줄을 맞추는데, 평조계면조의 곡에 따라 다르다. 가야금을 연주할 때는 구음이 사용되는데 정악가야금은 제1현부터 12현까지 차례로 ‘흥- 동- 덩- 둥- 당- 동-징- 징- 지- 당- 동- 딩’이며, 산조가야금은 제1현부터‘청- 흥- 둥- 당- 동- 징- 땅 지- 찡- 칭- 총(쫑)- 쫑(쨍)’이라고 한다.

특징 및 의의

가야금은 정악가야금과 산조가야금의 구조와 조율, 연주법이 확연히 구분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장방형의 공명통을 가진 거문고와 악기의 형태와 연주 자세, 탄생 시기가 전승 면에서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악기의 음색과 주법의 차이로 독자적인 음악성을 표출하며 한국 음악을 대표해 왔다. 손가락으로 직접 줄을 뜯고 튕겨 내는 주법과 왼손의 다양한 주법이 세분되어 있어 미세한 음의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악기 구조와 연주법의 차이는 흔히 여성성과 남성성에 비유되어 가야금은 여성적이고, 거문고는 남성적인 악기라는 인식을 낳았다. 19세기 말, 기교적인 연주기법이 가미된 독주 음악인 산조가 가야금에서 비롯되었고, 20세기의 창작음악의 전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가야금의 유래와 구조(김영운, 국악원논문집9, 국립국악원, 1997), 한국악기(송혜진, 열화당, 2001).

가야금

가야금
한자명

伽倻琴

사전위치

한국민속예술사전 > 음악

집필자 송혜진(宋惠眞)

정의

장방형의 오동나무 공명통 위에 명주실을 꼬아만든 12현을 걸어 손가락으로 줄을 튕겨 연주하는 발현악기.

역사

가야금은 6세기경 가야에서 탄생되었다. 6세기 이전의 악기 유물과 가야금 장식 토우 등을 통해 가야금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현악기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樂志」에는 가야국의 가실왕이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고, 악사 우륵이 가실왕의 명을 받아 가야금을 위한 12곡을 만들었다고 기록되었다. 이러한 유물과 관련된 기록은 가실왕이 전래의 고유 현악기와 당나라의 ‘쟁’을 참고하여 새로운 형태의 개량·완성했음을 시사한다. 가야가 멸망 위기에 처하자 우륵은 551년에 신라로 망명했고, 진흥왕의 후원을 받으며 신라의 젊은이 계고階古, 법지法知, 만덕萬德에게 가야금과 가무를 가르쳤다. 이후 신라에서는 이 음악을 대악大樂으로 삼았다. 일본의 정창원正倉院에는 오늘날 정악가야금 형태의 신라금新羅琴 유물 세 점이 소장되어 전한다. 가야금은 통일신라시대 삼현삼죽의 하나로 전승되었으며 그 전통은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가야금 고악보는 『졸옹가야금보拙翁伽倻琴譜』가 대표적이다. 조선 후기의 회화에 전하는 가야금 연주 모습을 통해 악기의 형태와 연주 자세 등을 볼 수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는 궁중음악 전승 기구인 이왕직아악부와 민간의 조선정악전습소朝鮮正樂傳習所에서 가야금 정악의 전승이 이루어졌으며, 산조의 탄생과 함께 악기 형태에도 변화가 생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용

가야금은 다른 이름으로는 가야고, 가얏고라고 한다. 궁중음악과 선비풍류음악 연주용 정악가야금과 산조 및 민속음악 연주용 산조가야금 두 가지가 있다 .정악가야금은 법금法琴 또는 풍류가야금이라고도 불린다. 정악가야금과 산조가야금은 크기와 형태 면에서 차이가 있다. 정악가야금은 길이 165~170㎝, 너비 30㎝,현 길이 140㎝ 정도이다. 두꺼운 오동나무 속을 파내어 만든 공명통과 12현, 줄을 받치는 현주絃柱, 줄 고정 장치인 양이두羊耳頭로 이루어져 있다. 명주실을 꼬아 만든 가야금 줄은 위쪽 좌단과 아래쪽 양이두에 구멍을 뚫어 고정시킨다. 좌단 뒤쪽에는 줄감개 구실을 하는 돌괘가 있다. 양이두에는 무명실을 꼬아 만든 부들을 끼워 명주실 현을 연결한다. 산조가야금은 길이 145~150㎝, 너비 21㎝, 현 길이 120㎝ 정도이다. 거문고처럼 밤나무로 만든 뒤판에 오동나무 앞판을 붙여 만든 상자식 공명통에 12현을 걸고 위쪽 좌단과 아래쪽 봉미鳳尾 부분에 구멍을 뚫어 고정시킨다.
가야금의 12현은 맨 아래쪽의 저음부와 고음부의 굵기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악학궤범樂學軌範』 시대만해도 문현, 무현 등의 줄 이름이 있었지만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가야금의 현주는 안족雁足이라고 한다.
가야금 연주법도 정악 주법과 산조 주법에 차이가 있다. 정악가야금의 오른손 수법 중 특징적인 것은 오른손의 ‘당기고 미는 주법’이다. 오른 손가락을 현에 대되 현을 뜯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엎어 놓은 자세 그대로 해당 음을 밀거나 당겨서 연주하는 기법이다. 낮은 음에서 높은 음으로 진행할 때는 검지와 장지로 줄을 당겨서 연주하고, 반대로 높은 음에서 낮은 음으로 진행할 때는 엄지로 밀어서 소리를 낸다. 이 밖에 거문고의 ‘뜰’ 기법처럼 엄지의 손톱을 현 아래쪽으로부터 들어 올리듯이 뜯는 주법도 있고, 본음의 옥타브 아래음을 검지로 전타음前打音처럼 짧게 소리를 낸 뒤 옥타브 관계의 두 음을 엄지와 장지를 이용해 차례로 뜯어 연주하는 ‘싸랭’과 ‘슬기둥’과 같은 주법도 활용되고 있다. 정악가야금의 왼손 주법은 줄을 흔들거나[弄絃], 굴리거나[轉聲], 눌렀다가 들어 올리는[退聲] 연주법 등이있는데, 특히 전성과 퇴성할 때의 손 자세와 주법은 산조가야금과 아주 다르다.
산조가야금의 오른손 주법은 손가락을 줄 밑에 넣었다가 뜯어 올리듯이 연주하는 뜯는 주법과 손톱으로 튕기는 주법이 주로 쓰이고, 음의 리듬과 시가에 따라 소리를 막아 주는 ‘막는 주법’도 정악가야금 연주에 비해 많이 사용된다. 왼손 주법은 검지와 장지를 이용해 농현·전성·퇴성 등의 기법을 구사하는데, 정악에 비해 표현이 강하다.
가야금의 조율은 정악가야금과 산조가야금이 다르고, 조에 따라 특정 안족을 움직여 다른 조율 체계를 가질 수도 있다. 정악가야금을 조율할 때는 제4현을 대금의 임종林鍾(B♭)에 맞추는 것을 기본으로 하여 나머지 줄을 맞추는데, 평조와 계면조의 곡에 따라 다르다. 가야금을 연주할 때는 구음이 사용되는데 정악가야금은 제1현부터 12현까지 차례로 ‘흥- 동- 덩- 둥- 당- 동-징- 징- 지- 당- 동- 딩’이며, 산조가야금은 제1현부터‘청- 흥- 둥- 당- 동- 징- 땅 지- 찡- 칭- 총(쫑)- 쫑(쨍)’이라고 한다.

특징 및 의의

가야금은 정악가야금과 산조가야금의 구조와 조율, 연주법이 확연히 구분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장방형의 공명통을 가진 거문고와 악기의 형태와 연주 자세, 탄생 시기가 전승 면에서 공통점이 있으면서도 악기의 음색과 주법의 차이로 독자적인 음악성을 표출하며 한국 음악을 대표해 왔다. 손가락으로 직접 줄을 뜯고 튕겨 내는 주법과 왼손의 다양한 주법이 세분되어 있어 미세한 음의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이와 같은 악기 구조와 연주법의 차이는 흔히 여성성과 남성성에 비유되어 가야금은 여성적이고, 거문고는 남성적인 악기라는 인식을 낳았다. 19세기 말, 기교적인 연주기법이 가미된 독주 음악인 산조가 가야금에서 비롯되었고, 20세기의 창작음악의 전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가야금의 유래와 구조(김영운, 국악원논문집9, 국립국악원, 1997), 한국악기(송혜진, 열화당,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