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한자명

國朝五禮儀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전경욱(田耕旭)

정의

조선 성종成宗(재위 1469~1494) 대에 신숙주申叔舟(1417~1475)・정척鄭陟(1390~1475) 등이 왕명에 의해 오례五禮를 중심으로 조선의 기본적인 예법과 절차 등을 규정해놓은 책.

내용

조선 초기 세종世宗(재위 1418~1450)은 국가의 기본예식을 정립하기 위하여 허조許稠(1369~1439) 등에게 명하여 오례五禮에 관한 책의 편찬을 명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세조도 강희맹姜希孟(1424~1483) 등을 통해 『홍무예제洪武禮制』를 비롯한 고금의 각종 예서들을 참작하여 편찬하도록 하였지만, 이 또한 완성하지 못하였다. 결국, 성종대인 1474년(성종 5)에 이르러 신숙주・정척 등이 오례를 중심으로 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완성하였다. 『국조오례의』의 체재는 오례, 즉 길례吉禮・가례嘉禮・빈례殯禮・군례軍禮・흉례凶禮로 나누어 예별로 세부 조목을 마련하였다. 세부적으로 길례 56개 조목, 가례 50개 조목, 빈례 6개 조목, 군례 7개 조목, 흉례 91개 조목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8권 5책으로 간행되었다.

『국조오례의』는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과 함께 실질적으로 조선의 기본 예전禮典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유교 이념을 통치기반으로 유교적질서를 확립하고자 한 조선에서 『국조오례의』는 국가와 민간에서 준수해야 할 예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다만, 내용의 상당 부분이 왕실을 중심으로 한 국가의례를 위주로 편찬되었기 때문에 민간에서 실제로 적용할 부분은 많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민간에서는 주자의 『가례』를 중심으로 한 질서가 점차 강화되었다. 『국조오례의』는 성종조 이후에도 수차례 중간되었고, 이를 토대로 『서례序禮』,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속오례의보國朝續五禮儀補』 등의 편찬이 이어졌다.

국조오례의

국조오례의
한자명

國朝五禮儀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자료

집필자 전경욱(田耕旭)

정의

조선 성종成宗(재위 1469~1494) 대에 신숙주申叔舟(1417~1475)・정척鄭陟(1390~1475) 등이 왕명에 의해 오례五禮를 중심으로 조선의 기본적인 예법과 절차 등을 규정해놓은 책.

내용

조선 초기 세종世宗(재위 1418~1450)은 국가의 기본예식을 정립하기 위하여 허조許稠(1369~1439) 등에게 명하여 오례五禮에 관한 책의 편찬을 명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세조도 강희맹姜希孟(1424~1483) 등을 통해 『홍무예제洪武禮制』를 비롯한 고금의 각종 예서들을 참작하여 편찬하도록 하였지만, 이 또한 완성하지 못하였다. 결국, 성종대인 1474년(성종 5)에 이르러 신숙주・정척 등이 오례를 중심으로 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완성하였다. 『국조오례의』의 체재는 오례, 즉 길례吉禮・가례嘉禮・빈례殯禮・군례軍禮・흉례凶禮로 나누어 예별로 세부 조목을 마련하였다. 세부적으로 길례 56개 조목, 가례 50개 조목, 빈례 6개 조목, 군례 7개 조목, 흉례 91개 조목으로 구성되었고, 전체 8권 5책으로 간행되었다.

『국조오례의』는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과 함께 실질적으로 조선의 기본 예전禮典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유교 이념을 통치기반으로 유교적질서를 확립하고자 한 조선에서 『국조오례의』는 국가와 민간에서 준수해야 할 예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다만, 내용의 상당 부분이 왕실을 중심으로 한 국가의례를 위주로 편찬되었기 때문에 민간에서 실제로 적용할 부분은 많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 따라서 민간에서는 주자의 『가례』를 중심으로 한 질서가 점차 강화되었다. 『국조오례의』는 성종조 이후에도 수차례 중간되었고, 이를 토대로 『서례序禮』, 『국조속오례의國朝續五禮儀』, 『국조속오례의보國朝續五禮儀補』 등의 편찬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