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面条)

국수

한자명

面条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정현미(鄭賢美)

정의

반죽한 밀가루・메밀가루 따위를 얇게 밀어 가늘게 썰거나 국수틀에 눌러 가늘게 뽑아낸 식품의 총칭 , 또는 그것을 삶아 국물에 말거나 비벼 먹는 음식.

역사

국수는 옛 기록에 면麵,麪,糆, 국수掬水,匊水, 탕병湯餠 등으로 나온다.

『고려도경高麗圖經』 제22권 향음조鄕飮條에 “나라 안에 밀이 적어 장사치들이 경동도京東道에서 사오므로 면의 값이 대단히 비싸 성례盛禮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고려사高麗史』에서도 “제례祭禮에는 면을 쓴다.”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당시 밀은 매우 고가의 귀한 재료였고,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라 혼례 등의 잔칫날이나 제례를 지내는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었던 별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의례음식으로 국수를 쓰는 식생활 풍속은 이때부터 생겨난 것 같다.

한편 중국어 회화책인 『노걸대老乞大』에 습면濕麵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에서는 ‘습면’을 ‘국슈’로 번역하였다. 18세기의 『재물보』 탕병조湯餠條는 ‘탕병’을 ‘국슈’라 하였고, 『아언각비』는 면의 방언을 ‘국수匊水’, 서유구의 『금화경독기』는 ‘국수掬水’라 기록하였다. 조선시대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옹희잡지饔 雜志』, 『요록要錄』 등에도 메밀국수, 녹두녹말국수 등 총 50여 종에 가까운 국수 종류가 나오는데, 밀가루・메밀・녹말・콩・칡가루・밤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면에, 쇠고기나 꿩고기 육수, 오미잣 국물, 깻국물을 만 형태였다. 18세기 중엽 이후 냉면과 비빔국수에 대한 기록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는 국수문화가 다채롭게 발달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통시대의 조리서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국수의 주재료는 메밀가루・밀가루・녹말가루 순이었으나, 해방 후 수입 밀가루가 많아지면서 밀국수요리가 일반화된 것 같다.

내용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국수는 돌잔치, 생일, 회갑잔치 등 수연례壽宴禮를 비롯한 관례冠禮, 혼례婚禮 등의 축하 잔치와 제례祭禮 등의 추모 의례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의례음식이었다. 우리 민족은 잔칫날 국수를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함께 기뻐하고 경사스러워 했으며, 제례음식을 음복함으로써 추모의 의미를 함께했다. 국수는 접대 음식이자 잔치 음식으로서, 그리고 제사상에 올리는 제수로서도 매우 중요하였다.

일례로 출생과 연관된 국수 관련 식생활 풍속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나『매천집梅泉集』에 출생 후 3일째 되는 날에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손님[湯餠客]들이 국수[湯餠]를 먹던 풍속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국수는 오랫동안 출생 관련 축하음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첫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돌잔치를 열어 주는 것이 전통 풍속인데, 이때 돌상에는 흰밥과 미역국, 나물과 구이, 백설기와 수수경단, 과일 등의 음식 외에 아기의 장수를 기원하는 국수도 함께 놓고, 점심에는 국수장국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국수잔치’를 벌인다. 또한, 상에 쌀・돈・국수 등을 놓고 아이의 미래를 점쳐보는 ‘돌잡이’ 풍속을 통해, 아이가 국수를 집으면 장수할 것이라고 여긴다. 61세 생일인 ‘회갑回甲’ 같은 수연례에도 주인공 앞에 국수장국상을 차려 주면서 장수를 기원하고, 오신 손님들께 잔치음식으로 국수를 대접한다. 이를 보면, 국수는 출생의례에서 중요한 의례음식이자 접대음식이면서 잔치음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식생활풍속』에서는 국수를 주식으로 차린 국수장국상을 ‘면상麵床’이라고 하는데, 잔치에 국수로 손님을 접대하는 풍속이 상례가 되자 ‘잔치국수’라는 음식명까지 생겨났다. ‘잔치국수’에는 국수장국 외에 편육, 전유어, 찜, 잡채, 신선로, 느리미, 회, 김치, 식혜나 화채, 과일, 떡 등을 함께 차린다. 계절에 따라 겨울에는 따뜻하게 온면溫麵을, 여름에는 시원하게 냉면冷麵을 말아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일명 ‘잔치국수’가 온면의 형태인 것으로 보아, 잔치를 베풀고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국수는 주로 온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온면은 국수를 삶아서 헹군 뒤 사리를 만들어 두었다가 미리 만들어 놓은 장국에 ‘토렴’하여 데운 후 그릇에 담고 쇠고기볶음・편육・달걀지단 등의 꾸미를 얹어 더운 장국을 부어 만든다. 옛 기록에는 장국으로 쇠고기나 꿩고기 육수를 썼으나 20세기 이후 멸치육수를 많이 쓰고 있다. 한편 냉면은 차갑게 식힌 육수에 동치미배추김치・나박김치 국물을 섞어 쓰거나 육수만 단독으로, 혹은 동치미나 김칫국물만 따로 쓴다. 면을 만 다음, 오이절임, 배, 편육, 동치미 무 썬 것, 달걀 등 을 얹어 낸다.

또한 제례와 관련된 국수 풍속을 보면, 면이 고려시대에 이미 제례용으로 판매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조상에게 올리는 제례에서 국수를 제수로 사용했고, 이러한 풍속은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 중기 『쇄미록瑣尾錄』의 저자인 오희문吳希文의 기해년(1599) 일록을 보면, 임진왜란이 나서 피란살이 중임에도 메밀국수를 만들어 왕에게 올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니 제수로서 국수가 중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수의 진설은 각 집안에 따라 달리 행하는 예법이 다르지만 주로 제2열에 면(국수)과 편片(떡)을 올린다. 제례상에 편이 있으면 반드시 면을 놓는다고 인식되었고 면서병동麵西餠東이라 하여 국수를 서쪽에 떡을 동쪽에 놓는다. 제수로 올리는 국수를 ‘메국수’라 부르기도 한다. 국수를 놓을 때는 국수를 삶아서 면기 등 제기에 건더기만 건져 담고 국물은 붓지 않으며 계란채 등을 고명으로 얹어 놓는다. 『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국수사리를 합에 담고 위에 계란채를 뿌려 쓴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집안에 따라 얹는 고명은 잣, 깨소금 등으로 다를 수 있다. 음복 시에는 장국밥이나 비빔밥 등 제삿밥에 메국수를 고명처럼 얹어 먹기도 한다. 한편 제수 준비에 엄격한 종가에서는 국수를 직접 만들어 올리기도 하지만 국수를 구하기 쉬워지면서 시중에서 구매한 국수로 제수를 준비하는 종가가 많아졌다.

특징 및 의의

국수가 일생의례 음식으로 이용되었던 이유는 국수의 모양이 길게 이어진 것처럼 ‘수복壽福’과 ‘장수長壽’ 또는 ‘추모追慕’의 의미가 길게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즉 출생・생일・돌・회갑 등 출생의례에는 ‘국수’의 길쭉한 모양처럼 수명이 길기를 기원하는 ‘장수’의 뜻을, 혼례에는 결연結緣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백년해로’와 ‘수복’의 뜻을, 제례에는 ‘추모’의 뜻을 담았다. 이처럼 국수는 기원이 담겨 있는 음식이었다.

한편 국수가 혼례잔치 음식으로 자주 쓰이면서, 국수 자체가 혼례를 상징하기도 했다. 민간에서 “국수를 언제 먹여줄래?”라는 물음은 “결혼을 언제 하느냐?”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는 혼인 잔치에 찾아오신 손님에게 국수를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에 생긴 음식문화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잔치음식으로 ‘국수장국상’을 차린 이유에 대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국수장국상에는 편육 한 접시라도 놓으니 대접 중에 낫고, 온갖 잔치나 아침, 점심으로 안 쓰는 데가 없다.”라고 하였다. 즉, 국수장국과 더불어 편육 등 다른 귀한 음식도 함께 대접할 수 있으므로 손님에게 더 나은 대접을 할 수 있는 손님 접대음식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참고문헌

동아시아 면류문화(윤덕인, 동아시아 식생활학회 춘계학술대회, 2006), 우리나라 식생활문화의 역사(윤서석, 신광출판사, 1999), 종가의 제례와 음식9(국립문화재연구소, 월인, 2006), 한국식생활풍속(강인희, 이경복, 삼영사, 1984), 한국요리문화사(이성우, 교문사, 1999), 한국전래면류음식사연구 (장지현, 수학사, 1994).

국수

국수
한자명

面条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정현미(鄭賢美)

정의

반죽한 밀가루・메밀가루 따위를 얇게 밀어 가늘게 썰거나 국수틀에 눌러 가늘게 뽑아낸 식품의 총칭 , 또는 그것을 삶아 국물에 말거나 비벼 먹는 음식.

역사

국수는 옛 기록에 면麵,麪,糆, 국수掬水,匊水, 탕병湯餠 등으로 나온다.

『고려도경高麗圖經』 제22권 향음조鄕飮條에 “나라 안에 밀이 적어 장사치들이 경동도京東道에서 사오므로 면의 값이 대단히 비싸 성례盛禮 때가 아니면 쓰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고려사高麗史』에서도 “제례祭禮에는 면을 쓴다.”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당시 밀은 매우 고가의 귀한 재료였고,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라 혼례 등의 잔칫날이나 제례를 지내는 특별한 날에 먹을 수 있었던 별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의례음식으로 국수를 쓰는 식생활 풍속은 이때부터 생겨난 것 같다.

한편 중국어 회화책인 『노걸대老乞大』에 습면濕麵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에서는 ‘습면’을 ‘국슈’로 번역하였다. 18세기의 『재물보』 탕병조湯餠條는 ‘탕병’을 ‘국슈’라 하였고, 『아언각비』는 면의 방언을 ‘국수匊水’, 서유구의 『금화경독기』는 ‘국수掬水’라 기록하였다. 조선시대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옹희잡지饔食熙雜志』, 『요록要錄』 등에도 메밀국수, 녹두녹말국수 등 총 50여 종에 가까운 국수 종류가 나오는데, 밀가루・메밀・녹말・콩・칡가루・밤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든 면에, 쇠고기나 꿩고기 육수, 오미잣 국물, 깻국물을 만 형태였다. 18세기 중엽 이후 냉면과 비빔국수에 대한 기록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에는 국수문화가 다채롭게 발달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전통시대의 조리서를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 국수의 주재료는 메밀가루・밀가루・녹말가루 순이었으나, 해방 후 수입 밀가루가 많아지면서 밀국수요리가 일반화된 것 같다.

내용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국수는 돌잔치, 생일, 회갑잔치 등 수연례壽宴禮를 비롯한 관례冠禮, 혼례婚禮 등의 축하 잔치와 제례祭禮 등의 추모 의례에서 빠지지 않는 중요한 의례음식이었다. 우리 민족은 잔칫날 국수를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함께 기뻐하고 경사스러워 했으며, 제례음식을 음복함으로써 추모의 의미를 함께했다. 국수는 접대 음식이자 잔치 음식으로서, 그리고 제사상에 올리는 제수로서도 매우 중요하였다.

일례로 출생과 연관된 국수 관련 식생활 풍속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이나『매천집梅泉集』에 출생 후 3일째 되는 날에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손님[湯餠客]들이 국수[湯餠]를 먹던 풍속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국수는 오랫동안 출생 관련 축하음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첫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돌잔치를 열어 주는 것이 전통 풍속인데, 이때 돌상에는 흰밥과 미역국, 나물과 구이, 백설기와 수수경단, 과일 등의 음식 외에 아기의 장수를 기원하는 국수도 함께 놓고, 점심에는 국수장국으로 손님을 대접하는 ‘국수잔치’를 벌인다. 또한, 상에 쌀・돈・국수 등을 놓고 아이의 미래를 점쳐보는 ‘돌잡이’ 풍속을 통해, 아이가 국수를 집으면 장수할 것이라고 여긴다. 61세 생일인 ‘회갑回甲’ 같은 수연례에도 주인공 앞에 국수장국상을 차려 주면서 장수를 기원하고, 오신 손님들께 잔치음식으로 국수를 대접한다. 이를 보면, 국수는 출생의례에서 중요한 의례음식이자 접대음식이면서 잔치음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식생활풍속』에서는 국수를 주식으로 차린 국수장국상을 ‘면상麵床’이라고 하는데, 잔치에 국수로 손님을 접대하는 풍속이 상례가 되자 ‘잔치국수’라는 음식명까지 생겨났다. ‘잔치국수’에는 국수장국 외에 편육, 전유어, 찜, 잡채, 신선로, 느리미, 회, 김치, 식혜나 화채, 과일, 떡 등을 함께 차린다. 계절에 따라 겨울에는 따뜻하게 온면溫麵을, 여름에는 시원하게 냉면冷麵을 말아 놓을 수 있다. 하지만 일명 ‘잔치국수’가 온면의 형태인 것으로 보아, 잔치를 베풀고 손님을 접대하기 위한 국수는 주로 온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온면은 국수를 삶아서 헹군 뒤 사리를 만들어 두었다가 미리 만들어 놓은 장국에 ‘토렴’하여 데운 후 그릇에 담고 쇠고기볶음・편육・달걀지단 등의 꾸미를 얹어 더운 장국을 부어 만든다. 옛 기록에는 장국으로 쇠고기나 꿩고기 육수를 썼으나 20세기 이후 멸치육수를 많이 쓰고 있다. 한편 냉면은 차갑게 식힌 육수에 동치미나 배추김치・나박김치 국물을 섞어 쓰거나 육수만 단독으로, 혹은 동치미나 김칫국물만 따로 쓴다. 면을 만 다음, 오이절임, 배, 편육, 동치미 무 썬 것, 달걀 등 을 얹어 낸다.

또한 제례와 관련된 국수 풍속을 보면, 면이 고려시대에 이미 제례용으로 판매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조상에게 올리는 제례에서 국수를 제수로 사용했고, 이러한 풍속은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조선 중기 『쇄미록瑣尾錄』의 저자인 오희문吳希文의 기해년(1599) 일록을 보면, 임진왜란이 나서 피란살이 중임에도 메밀국수를 만들어 왕에게 올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니 제수로서 국수가 중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수의 진설은 각 집안에 따라 달리 행하는 예법이 다르지만 주로 제2열에 면(국수)과 편片(떡)을 올린다. 제례상에 편이 있으면 반드시 면을 놓는다고 인식되었고 면서병동麵西餠東이라 하여 국수를 서쪽에 떡을 동쪽에 놓는다. 제수로 올리는 국수를 ‘메국수’라 부르기도 한다. 국수를 놓을 때는 국수를 삶아서 면기 등 제기에 건더기만 건져 담고 국물은 붓지 않으며 계란채 등을 고명으로 얹어 놓는다. 『시의전서是議全書』에도 “국수사리를 합에 담고 위에 계란채를 뿌려 쓴다.”라고 기록하였다. 그러나 집안에 따라 얹는 고명은 잣, 깨소금 등으로 다를 수 있다. 음복 시에는 장국밥이나 비빔밥 등 제삿밥에 메국수를 고명처럼 얹어 먹기도 한다. 한편 제수 준비에 엄격한 종가에서는 국수를 직접 만들어 올리기도 하지만 국수를 구하기 쉬워지면서 시중에서 구매한 국수로 제수를 준비하는 종가가 많아졌다.

특징 및 의의

국수가 일생의례 음식으로 이용되었던 이유는 국수의 모양이 길게 이어진 것처럼 ‘수복壽福’과 ‘장수長壽’ 또는 ‘추모追慕’의 의미가 길게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의도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 즉 출생・생일・돌・회갑 등 출생의례에는 ‘국수’의 길쭉한 모양처럼 수명이 길기를 기원하는 ‘장수’의 뜻을, 혼례에는 결연結緣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백년해로’와 ‘수복’의 뜻을, 제례에는 ‘추모’의 뜻을 담았다. 이처럼 국수는 기원이 담겨 있는 음식이었다.

한편 국수가 혼례잔치 음식으로 자주 쓰이면서, 국수 자체가 혼례를 상징하기도 했다. 민간에서 “국수를 언제 먹여줄래?”라는 물음은 “결혼을 언제 하느냐?”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는 혼인 잔치에 찾아오신 손님에게 국수를 대접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기 때문에 생긴 음식문화 상징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잔치음식으로 ‘국수장국상’을 차린 이유에 대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국수장국상에는 편육 한 접시라도 놓으니 대접 중에 낫고, 온갖 잔치나 아침, 점심으로 안 쓰는 데가 없다.”라고 하였다. 즉, 국수장국과 더불어 편육 등 다른 귀한 음식도 함께 대접할 수 있으므로 손님에게 더 나은 대접을 할 수 있는 손님 접대음식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참고문헌

동아시아 면류문화(윤덕인, 동아시아 식생활학회 춘계학술대회, 2006), 우리나라 식생활문화의 역사(윤서석, 신광출판사, 1999), 종가의 제례와 음식9(국립문화재연구소, 월인, 2006), 한국식생활풍속(강인희, 이경복, 삼영사, 1984), 한국요리문화사(이성우, 교문사, 1999), 한국전래면류음식사연구 (장지현, 수학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