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칠석 유래

칠월칠석 유래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김명자(金明子)

정의

까치가 놓은 오작교(烏鵲橋)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설화.

역사

칠월칠석 저녁이면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마주한 견우성과 직녀성, 그리고 북두칠성때문에 이 설화가 생겨난 것으로 본다. 이 설화는 고대 중국 설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후한 때 만든 효당산(孝堂山) 석실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이미 직녀성과 견우성이 보인다.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이 일 년에 한 번씩 마주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일찍이 주대(周代)에 해마다 경험하는 천상의 사실이었는데 여기에 차츰 탐기적(眈奇的)인 요소가 붙어 한대(漢代)에 와서 <칠월칠석설화>가 성립된 것이라고 했다. 1976년 말 평안남도 남포시 덕흥동에서 발굴된 덕흥리 무덤(5세기 초)의 벽에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지는 견우와 직녀의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실로 오랜 역사를 지닌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줄거리

하늘나라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가 혼인하였다. 이들이 혼인한 후 놀고먹으며 게으름만 피우자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하였다. 그래서 이 부부는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건널 수 없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태우면서 지내야 했다.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안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월칠석날에 이들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 주었다. 이것이 오작교이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는 칠월칠석날이 되면 이 오작교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 일 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진다.

변이

<칠월칠석설화>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기본으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와 같은 중국 세시기에 다양한 내용으로 나타나 이본이 많다. 우리나라에도 <견우직녀설화>가 널리 알려졌는데 조금씩 이야기를 달리하여 다양하게 전한다. 견우와 직녀 대신 짚신할아버지와 짚신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전래하는 예도 있다. 굳이 짚신이 된 까닭은 직조의 별인 직녀처럼 짚신도 짜는 것이기에 생긴 변이로 볼 수 있다.

분석

견우와 직녀에 대한 본격적인 고사는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B.C. 2)』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대에 견우성과 직녀성이 인격화되면서 설화로 꾸며졌고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5~6세기)에 이르러 전설의 초기 형태가 생겨났다. <견우직녀설화>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짜임새 있게 자세히 전하는 책은 「제해기(齊諧記, 5세기)」이다.

특징

하늘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칠석의 별자리는 견우와 직녀성 못지않게 북두칠성을 중시한다. 북두칠성은 수명신(壽命神)이어서 칠석 견우성에는 수명장수를 기원하며, 직녀성에는 걸교(乞巧)라 하여 바느질 솜씨를 기원했다. 견우직녀설화는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두 나라가 공유하고 있다.

출처

荊楚歲時記, 燕京歲時記.

참고문헌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전호태,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중국대세시기1·2(국립민속박물관, 2006), 문헌과 현지조사 자료를 통해 본 칠석세시와 전승(김명자, 인문과학연구9, 안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9), 조선상식-풍속·지리·제도(최남선, 영인본, 민속원, 1997).

칠월칠석 유래

칠월칠석 유래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김명자(金明子)

정의

까치가 놓은 오작교(烏鵲橋)에서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설화.

역사

칠월칠석 저녁이면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마주한 견우성과 직녀성, 그리고 북두칠성때문에 이 설화가 생겨난 것으로 본다. 이 설화는 고대 중국 설화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후한 때 만든 효당산(孝堂山) 석실의 삼족오도(三足烏圖)에 이미 직녀성과 견우성이 보인다. 최남선(崔南善)은 『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견우성과 직녀성이 일 년에 한 번씩 마주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일찍이 주대(周代)에 해마다 경험하는 천상의 사실이었는데 여기에 차츰 탐기적(眈奇的)인 요소가 붙어 한대(漢代)에 와서 <칠월칠석설화>가 성립된 것이라고 했다. 1976년 말 평안남도 남포시 덕흥동에서 발굴된 덕흥리 무덤(5세기 초)의 벽에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헤어지는 견우와 직녀의 모습을 그린 벽화가 있다. 견우와 직녀 이야기는 실로 오랜 역사를 지닌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줄거리

하늘나라 목동인 견우와 옥황상제의 손녀인 직녀가 혼인하였다. 이들이 혼인한 후 놀고먹으며 게으름만 피우자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견우는 은하수의 동쪽에, 직녀는 은하수의 서쪽에 떨어져 살게 하였다. 그래서 이 부부는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건널 수 없는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애태우면서 지내야 했다. 견우와 직녀의 안타까운 사연을 안 까마귀와 까치들은 해마다 칠월칠석날에 이들을 만나게 해 주기 위하여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 주었다. 이것이 오작교이다. 그래서 견우와 직녀는 칠월칠석날이 되면 이 오작교를 건너 서로 그리던 임을 만나 일 년 동안 쌓였던 회포를 풀고 다시 헤어진다.

변이

<칠월칠석설화>는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기본으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연경세시기(燕京歲時記)』와 같은 중국 세시기에 다양한 내용으로 나타나 이본이 많다. 우리나라에도 <견우직녀설화>가 널리 알려졌는데 조금씩 이야기를 달리하여 다양하게 전한다. 견우와 직녀 대신 짚신할아버지와 짚신할머니라는 이름으로 전래하는 예도 있다. 굳이 짚신이 된 까닭은 직조의 별인 직녀처럼 짚신도 짜는 것이기에 생긴 변이로 볼 수 있다.

분석

견우와 직녀에 대한 본격적인 고사는 중국 전한(前漢)의 회남왕 유안(劉安)이 저술한 『회남자(淮南子, B.C. 2)』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대에 견우성과 직녀성이 인격화되면서 설화로 꾸며졌고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5~6세기)에 이르러 전설의 초기 형태가 생겨났다. <견우직녀설화>를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짜임새 있게 자세히 전하는 책은 「제해기(齊諧記, 5세기)」이다.

특징

하늘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칠석의 별자리는 견우와 직녀성 못지않게 북두칠성을 중시한다. 북두칠성은 수명신(壽命神)이어서 칠석 견우성에는 수명장수를 기원하며, 직녀성에는 걸교(乞巧)라 하여 바느질 솜씨를 기원했다. 견우직녀설화는 중국에서 전래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두 나라가 공유하고 있다.

출처

荊楚歲時記, 燕京歲時記.

참고문헌

고구려 고분벽화의 세계(전호태,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중국대세시기1·2(국립민속박물관, 2006), 문헌과 현지조사 자료를 통해 본 칠석세시와 전승(김명자, 인문과학연구9, 안동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9), 조선상식-풍속·지리·제도(최남선, 영인본, 민속원,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