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处容)

처용

한자명

处容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신재홍(申載弘)

정의

동해 용의 아들로 신라 왕정을 보좌하다가 아내를 범한 역신(疫神)을 물리치고 문신(門神)이 된 처용에 관한 설화.

역사

신라 49대 헌강왕(재위 875~886) 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879년(헌강왕 5)에 생김새와 옷차림이 괴이한 사람 넷이 왕 앞에 나와 노래하고 춤추었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11 신라본기 헌강왕 조의 기록이 이 설화와 관련된다. 고려시대의 사서와 문집에 처용희(處容戱)나 처용무(處容舞)에 관한 기록들이 나오고, 조선 초에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과 『악장가사(樂章歌詞)』에 고려의 <처용가(處容歌)>가 실려 있다.

줄거리

헌강왕이 울산 지방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일관(日官)이 동해 용의 변고라고 아뢰니 용을 위해 절[망해사(望海寺) 혹은 신방사(新房寺)]을 짓도록 명하였다. 그러자 안개가 걷히고 동해 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타나 춤추고 연주하였다. 그중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라벌로 와서 왕정을 보좌하였다. 왕이 미녀를 아내로 삼게 하고 급간(級干) 벼슬을 주어 머물도록 하였다. 그런데 역신이 처용의 아내를 범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장면을 목격한 처용은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물러났다. 이때 부른 노래가 <처용가>이다. 그러자 역신은 처용 앞에 무릎 꿇고 이후로 처용의 모습을 그린 문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이에 나라 사람들이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여 재앙을 물리치고 경사를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변이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내용이 울산의 <처용암전설>로 전승되었다. 또 제주도에서는 역신이 용신(龍神)인 처용에게 굴복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경상북도에서는 영덕 앞바다에 흑룡이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자 무술이 뛰어난 처용랑이 퇴치했다고 하였다.

분석

처용에 대해 용신, 무당, 화랑, 호족 자제, 이슬람 상인 등의 설이 있고, 이에 따라 용신신앙, 무속신앙, 화랑도 사상과 관련성이 거론된다. 처용과 아내, 역신의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한 갈등 구조는 연극적 성격을 지닌다. 역병(疫病) 퇴치의 주술적 의도가 담겨 있으며, 당대에 일어난 성 추문 사건의 설화적 윤색으로 볼 수도 있다.

특징

이 설화는 후대 처용희․처용무 공연의 연극적 바탕이 되는 이야기이다. <처용가>의 내용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설화의 극적 긴장감을 높여 준다. 울산의 처용암과 결부된 전설적 성격도 띠고 있다.

의의

신라 헌강왕 대 성립되어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 공연되는 연희와 춤의 서사 내용을 이룬다. 벽사진경의 의미를 지닌 채 오랜 시간 전승된 전통 연희의 하나로 문학적, 민속적, 예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처용가>의 배경 설화로서도 의의가 있다.

출처

三國遺事.

참고문헌

고려 처용가의 처용랑망해사조 재해석과 벽사진경의 원리(정운채, 고전문학연구13, 한국고전문학회, 1998), 삼국유사소재 처용설화의 일분석(이우성, 김재원박사 회갑기념논총, 을유문화사, 1969), 처용가와 관련설화의 생성기반과 의미(김학성, 한국 고시가의 거시적 탐구, 1997), 처용가의 무속적 고찰(서대석, 한국 무가의 연구, 문학사상사, 1980), 처용설화의 연구(장주근, 한국어교육6, 한국어교육학회, 1963), 처용설화의 일고찰(이용범, 진단학보32, 진단학회, 1969).

처용

처용
한자명

处容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신재홍(申載弘)

정의

동해 용의 아들로 신라 왕정을 보좌하다가 아내를 범한 역신(疫神)을 물리치고 문신(門神)이 된 처용에 관한 설화.

역사

신라 49대 헌강왕(재위 875~886) 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879년(헌강왕 5)에 생김새와 옷차림이 괴이한 사람 넷이 왕 앞에 나와 노래하고 춤추었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11 신라본기 헌강왕 조의 기록이 이 설화와 관련된다. 고려시대의 사서와 문집에 처용희(處容戱)나 처용무(處容舞)에 관한 기록들이 나오고, 조선 초에 편찬된 『악학궤범(樂學軌範)』과 『악장가사(樂章歌詞)』에 고려의 <처용가(處容歌)>가 실려 있다.

줄거리

헌강왕이 울산 지방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일관(日官)이 동해 용의 변고라고 아뢰니 용을 위해 절[망해사(望海寺) 혹은 신방사(新房寺)]을 짓도록 명하였다. 그러자 안개가 걷히고 동해 용이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타나 춤추고 연주하였다. 그중 한 아들이 왕을 따라 서라벌로 와서 왕정을 보좌하였다. 왕이 미녀를 아내로 삼게 하고 급간(級干) 벼슬을 주어 머물도록 하였다. 그런데 역신이 처용의 아내를 범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장면을 목격한 처용은 노래를 부르고 춤추며 물러났다. 이때 부른 노래가 <처용가>이다. 그러자 역신은 처용 앞에 무릎 꿇고 이후로 처용의 모습을 그린 문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이에 나라 사람들이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여 재앙을 물리치고 경사를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변이

『삼국유사(三國遺事)』의 내용이 울산의 <처용암전설>로 전승되었다. 또 제주도에서는 역신이 용신(龍神)인 처용에게 굴복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경상북도에서는 영덕 앞바다에 흑룡이 나타나 사람들을 괴롭히자 무술이 뛰어난 처용랑이 퇴치했다고 하였다.

분석

처용에 대해 용신, 무당, 화랑, 호족 자제, 이슬람 상인 등의 설이 있고, 이에 따라 용신신앙, 무속신앙, 화랑도 사상과 관련성이 거론된다. 처용과 아내, 역신의 삼각관계를 바탕으로 한 갈등 구조는 연극적 성격을 지닌다. 역병(疫病) 퇴치의 주술적 의도가 담겨 있으며, 당대에 일어난 성 추문 사건의 설화적 윤색으로 볼 수도 있다.

특징

이 설화는 후대 처용희․처용무 공연의 연극적 바탕이 되는 이야기이다. <처용가>의 내용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설화의 극적 긴장감을 높여 준다. 울산의 처용암과 결부된 전설적 성격도 띠고 있다.

의의

신라 헌강왕 대 성립되어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 공연되는 연희와 춤의 서사 내용을 이룬다. 벽사진경의 의미를 지닌 채 오랜 시간 전승된 전통 연희의 하나로 문학적, 민속적, 예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처용가>의 배경 설화로서도 의의가 있다.

출처

三國遺事.

참고문헌

고려 처용가의 처용랑망해사조 재해석과 벽사진경의 원리(정운채, 고전문학연구13, 한국고전문학회, 1998), 삼국유사소재 처용설화의 일분석(이우성, 김재원박사 회갑기념논총, 을유문화사, 1969), 처용가와 관련설화의 생성기반과 의미(김학성, 한국 고시가의 거시적 탐구, 1997), 처용가의 무속적 고찰(서대석, 한국 무가의 연구, 문학사상사, 1980), 처용설화의 연구(장주근, 한국어교육6, 한국어교육학회, 1963), 처용설화의 일고찰(이용범, 진단학보32, 진단학회,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