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孝)

한자명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최길성(崔吉城)

정의

부모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의 감정.

개관

효孝의 근본은 기본적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처럼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과 감정이 구체적으로 제도화되는 방식은 모든 민족이나 사회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다. 즉, 효를 어떤 식으로 제도화하느냐 하는 것은 사회마다 다를 수 있다. 효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상호적인 관계이다. 그렇지만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孝를 특히 강조한다. 곧, 한국에서 효는 일방적인 개념이다. 이처럼 일방적인 친자親子관계에 종속된 효의 개념은 손자의 조부모에 대한 효와 및 숭배로도 연장된다.

효는 보은報恩, 즉 부모의 은혜를 자식이 갚는다는 개념에 바탕을 둔다.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호혜互惠의 원리는 일반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상대적 상호관계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효가 비롯되지만, 결코 상대적 상호관계로만 설명될 수 없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일방적인 효가 크게 강조되는 것이 한국적 효의 특징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은혜’를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 보면 상호적이라고 이해되지만, 부모의 은혜와 자식의 효孝는 본질에서 그 양과 질이 다르므로 상호교환적으로 보기 어렵다. 부모의 은혜는 양과 질에서 더욱 높고도 깊다. 또한, 한없이 크다. 부모의 은혜를 한없는 것으로 설정하기 때문에 자식에게 양이나 질에서 한없는 효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상호적이 아니라 일방적이라 할 수 있다.

부모로부터 한없는 은혜를 받는다는 생각은 부모가 사망했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인식은 가족적 차원에서 조상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다는 관념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신하로서 임금으로부터, 제자로서 선생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다는 차원으로까지 확장된다. 다시 말해서, 은혜의 개념은 가족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내용

한국인의 효 구조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다.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은 채 수미산을 백 번, 천 번 돌아 가죽이 터져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 골수가 드러나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깊은 은혜는 갚을 수가 없다는 것. 즉, ‘은혜를 갚을 수 없는 사례’를 들어 어머니의 은혜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보은의 구조가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의 사회관계는 사회에 따라 다소의 차이를 보인다. 어떤 사회에서는 은혜의 양이나 질을 무한대의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즉, 부모의 은혜는 무한대가 아니고 부모가 베푼 은혜의 질이나 양을 자식이 상대적으로 평가하여 갚는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사회(기독교 중심)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사랑으로 설명된다. 반드시 부모로부터 어떤 은혜를 받거나 부채를 진다는 것은 아니고, 부모가 자식의 보답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에 의해 낳고 기를 뿐이다. 사랑이란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인 만큼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보은 관념을 제도화하지 않는다.

은혜란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것이다. 보통 낳아준 은혜와 양육의 은혜 같은 어머니의 은혜를 언급한다. 하지만 재산상속도 아버지로부터 받는 은혜라 할 수 있다. 재산은 물론 신분, 인간관계처럼 아버지로부터 상속받거나 이어받은 것들이 효孝의 제도화에 핵심이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효와 은혜를 설명할 수 없다. 자식에게 불리한 신분을 물려주거나, 재산도 주지 않고 부담만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효는 강요된다. 즉, 주고받는 상호적 관계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특징 및 의의

효라는 감정은 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바탕위에서 효도라는 제도로 확장된 듯하다. 자식에게 효는 기본적인 윤리이다. 따라서 효도는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의무이다. 즉, 효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면서 동시에 의무로서 강요된 효도孝道이다. 부모가 자식을 낳고 기른 것처럼, 자식도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출산, 양육, 재산(상속)의 세 가지 은혜를 베풀고, 자식은 부모에게 대 잇기, 봉양, 제사의 세 가지 의무를 졌다.

효도의 실천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다음의 세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부모와 자식이 각각 자신들의 위치에서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이다. 즉, 받을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관계이다. 둘째, 서로 주고받는 상호관계이다. 셋째, 받은 것을 제삼자에게 돌리는 구조 , 즉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를 자기 자식에게 돌리는 관계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낳아준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자식을 낳아서 대를 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 큰 불효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형태에서 첫째와 둘째만이 친자관계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 관계가 기본이 되어 반복되는 것이다.

보은報恩 정신에 의한 부모와 자식의 상호관계에서 중요한 문제는 질과 양을 정하는 것이다. 사정에 의해서 낳은 자식을 양육하지 못한 사람은 자식으로부터 효孝를 받을 권리가 없거나 적다, 또는 반대로 많은 재산을 남긴 사람은 많은 효도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부모의 은혜는 질과 양에서 절대적이고 무한하다. 부모가 낳아준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그 은혜는 “하늘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 더 깊다.” 따라서 자식의 효도에 대한 의무도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것이다. 부모의 은혜는 헤아리기 어려워서,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한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자식도 부모에게 영원하고 무한한 효를 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유학자 이을호李乙浩는 효심과 효도를 구분하여, 유교적 측면에서 볼 때 심청沈淸의 효孝는 불효라고 보았다. 여성은 출가하여 시부모를 통해서 효도하는 것이 유교적이기 때문에, 효심을 가지고 효를 행하여도 효도라는 유교적 제도에 합당하지 않으면 불효라는 것이다.

참고문헌

조상제사와 효(최길성, 민속원, 2010), 효의 윤리와 가정교육(이을호, 단국대학교출판부, 1977), An Introductory Commentary(Fortes, Meyer. Ancestors, In Newell ed., Paris: Mouton Publishers, 1976).

효
한자명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최길성(崔吉城)

정의

부모에 대한 사랑이나 존경의 감정.

개관

효孝의 근본은 기본적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처럼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랑과 감정이 구체적으로 제도화되는 방식은 모든 민족이나 사회에서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다. 즉, 효를 어떤 식으로 제도화하느냐 하는 것은 사회마다 다를 수 있다. 효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상호적인 관계이다. 그렇지만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孝를 특히 강조한다. 곧, 한국에서 효는 일방적인 개념이다. 이처럼 일방적인 친자親子관계에 종속된 효의 개념은 손자의 조부모에 대한 효와 및 숭배로도 연장된다.

효는 보은報恩, 즉 부모의 은혜를 자식이 갚는다는 개념에 바탕을 둔다.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호혜互惠의 원리는 일반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개념이다. 이러한 상대적 상호관계에서 부모와 자식 사이의 효가 비롯되지만, 결코 상대적 상호관계로만 설명될 수 없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일방적인 효가 크게 강조되는 것이 한국적 효의 특징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은혜’를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 보면 상호적이라고 이해되지만, 부모의 은혜와 자식의 효孝는 본질에서 그 양과 질이 다르므로 상호교환적으로 보기 어렵다. 부모의 은혜는 양과 질에서 더욱 높고도 깊다. 또한, 한없이 크다. 부모의 은혜를 한없는 것으로 설정하기 때문에 자식에게 양이나 질에서 한없는 효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는 상호적이 아니라 일방적이라 할 수 있다.

부모로부터 한없는 은혜를 받는다는 생각은 부모가 사망했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인식은 가족적 차원에서 조상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다는 관념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신하로서 임금으로부터, 제자로서 선생으로부터 은혜를 받는다는 차원으로까지 확장된다. 다시 말해서, 은혜의 개념은 가족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전반에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내용

한국인의 효 구조를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이다.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업은 채 수미산을 백 번, 천 번 돌아 가죽이 터져 뼈가 드러나고 뼈가 닳아 골수가 드러나더라도, 오히려 부모의 깊은 은혜는 갚을 수가 없다는 것. 즉, ‘은혜를 갚을 수 없는 사례’를 들어 어머니의 은혜라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보은의 구조가 일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부모와 자식의 사회관계는 사회에 따라 다소의 차이를 보인다. 어떤 사회에서는 은혜의 양이나 질을 무한대의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즉, 부모의 은혜는 무한대가 아니고 부모가 베푼 은혜의 질이나 양을 자식이 상대적으로 평가하여 갚는다는 것이다. 또한, 많은 사회(기독교 중심)에서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사랑으로 설명된다. 반드시 부모로부터 어떤 은혜를 받거나 부채를 진다는 것은 아니고, 부모가 자식의 보답을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에 의해 낳고 기를 뿐이다. 사랑이란 상대를 필요로 하는 것인 만큼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보은 관념을 제도화하지 않는다.

은혜란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것이다. 보통 낳아준 은혜와 양육의 은혜 같은 어머니의 은혜를 언급한다. 하지만 재산상속도 아버지로부터 받는 은혜라 할 수 있다. 재산은 물론 신분, 인간관계처럼 아버지로부터 상속받거나 이어받은 것들이 효孝의 제도화에 핵심이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효와 은혜를 설명할 수 없다. 자식에게 불리한 신분을 물려주거나, 재산도 주지 않고 부담만을 주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효는 강요된다. 즉, 주고받는 상호적 관계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특징 및 의의

효라는 감정은 사회적 도덕과 윤리의 바탕위에서 효도라는 제도로 확장된 듯하다. 자식에게 효는 기본적인 윤리이다. 따라서 효도는 자식이 부모에게 해야 할 의무이다. 즉, 효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면서 동시에 의무로서 강요된 효도孝道이다. 부모가 자식을 낳고 기른 것처럼, 자식도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모는 출산, 양육, 재산(상속)의 세 가지 은혜를 베풀고, 자식은 부모에게 대 잇기, 봉양, 제사의 세 가지 의무를 졌다.

효도의 실천에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다음의 세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부모와 자식이 각각 자신들의 위치에서 일방적으로 주는 관계이다. 즉, 받을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 관계이다. 둘째, 서로 주고받는 상호관계이다. 셋째, 받은 것을 제삼자에게 돌리는 구조 , 즉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를 자기 자식에게 돌리는 관계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낳아준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자식을 낳아서 대를 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은 부모 입장에서 큰 불효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형태에서 첫째와 둘째만이 친자관계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 관계가 기본이 되어 반복되는 것이다.

보은報恩 정신에 의한 부모와 자식의 상호관계에서 중요한 문제는 질과 양을 정하는 것이다. 사정에 의해서 낳은 자식을 양육하지 못한 사람은 자식으로부터 효孝를 받을 권리가 없거나 적다, 또는 반대로 많은 재산을 남긴 사람은 많은 효도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부모의 은혜는 질과 양에서 절대적이고 무한하다. 부모가 낳아준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그 은혜는 “하늘보다 더 높고 바다보다 더 깊다.” 따라서 자식의 효도에 대한 의무도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것이다. 부모의 은혜는 헤아리기 어려워서, 공간적으로 ‘무한’하고 시간적으로 ‘영원’한 사랑이라고 표현한다. 결국, 자식도 부모에게 영원하고 무한한 효를 다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유학자 이을호李乙浩는 효심과 효도를 구분하여, 유교적 측면에서 볼 때 심청沈淸의 효孝는 불효라고 보았다. 여성은 출가하여 시부모를 통해서 효도하는 것이 유교적이기 때문에, 효심을 가지고 효를 행하여도 효도라는 유교적 제도에 합당하지 않으면 불효라는 것이다.

참고문헌

조상제사와 효(최길성, 민속원, 2010), 효의 윤리와 가정교육(이을호, 단국대학교출판부, 1977), An Introductory Commentary(Fortes, Meyer. Ancestors, In Newell ed., Paris: Mouton Publishers,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