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양(宝壤)

보양

한자명

宝壤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박성지(朴聖智)

정의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이무기에게 명하여 비를 내리게 하고 천제의 분노로부터 이무기를 보호해 준 운문선사 승려에 대한 전설.

줄거리

보양이 중국에서 본국으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그에게 금라가사 한 벌을 보시하고 아들 이목(璃目, 이무기)을 시켜 그를 모시고 가도록 했다. 보양은 용왕의 말대로 까치떼가 쪼고 있는 곳에 작갑사라는 절을 세웠다. 날이 가물자 이목은 보양의 명을 받아 비를 내리게 했는데, 천제는 이목이 자기 직분에 넘치는 짓을 했다며 그를 죽이려 하였다. 보양은 이목을 상 밑에 감추고, 그를 요구하는 하늘사자에게 이목과 음이 같은 배나무[李木]를 가리켰다. 하늘사자는 배나무에 벼락을 치고 올라갔고, 이목이 시든 배나무를 어루만져 소생시켰다.

변이

<보양이목설화>의 각편들은 경상북도 청도 운문사나 대비사 일대 그리고 밀양 등지에서 구연되고 있다. <보양이목(寶壤梨木)> 안에 모티프가 삽입되어 있기도 하나 대체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화소가 중심이 된다. 대표적인 전설로는 운문사가 있는 청도군에서 전해지는 시래호박소의 이무기전설을 꼽을 수 있다. 상좌가 밤마다 자취를 감추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스님이 좇아가서 엿보니 그가 대비지(大悲池)에 가서 요동을 치며 용이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정체가 드러난 이무기는 하늘로 날아가며 꼬리로 절 남쪽의 억산 바위를 쳤으며, 그 때문에 바위가 뾰족해졌다고 한다.

분석

구비전승을 불교적으로 윤색한 데에는 이 지역에 절을 세우면서 전래의 이무기신앙을 누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의도는 전래하는 천신신앙에 부딪혀 굴절되고 만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보양이목> 조에 따르면 갈등의 초점은 의외로 보양과 이목이 아닌 보양과 하늘사자 간에 있다. 이목은 보양의 명을 따라 비를 내렸을 뿐인데, 천제는 이목에게 벌을 주려고 한다. 보양은 이목을 요구하는 하늘사자에게 이목과 음이 비슷한 배나무를 지목하면서 직접 대결하지는 않으려 한다. 즉 불교는 천제로 상정되는 민간의 천신신앙과 대면할 때는 귀신이나 무당을 앞세운 여타 토착신앙과 달리 갈등을 표면화하지 않고 일정 정도의 수평선을 유지하는 우회적인 전략을 쓰고 있다.

특징

이무기가 있다는 호박소는 ‘구연(臼淵)’이라고 하는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26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산천 조에는 여기에 호랑이 머리를 넣으면 비가 온다고 했다. 호박소가 기우제장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전승되는 전설에서도 정체가 탄로 난 이무기가 호박소에 들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보양이목> 이후의 전설은 불교적 자장(磁場)을 벗어나면서 이무기의 성격에 변화가 나타나 비를 내리게 하면서도 용으로 변신하지 못하는 한계가 강조된다. 이런 이무기의 양면성은 전승집단의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새롭게 해명해야 할 지점이다.

출처

三國遺事.

참고문헌

삼국유사 보양이목설화의 전승론적 검토(천혜숙, 한국민속과 문화연구, 형설출판사, 1990), 삼국유사 설화와 구전설화의 관련양상(조동일, 삼국유사의 종합적 검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삼국유사 소재 불교설화 연구(박성지,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이무기 설화와 기우제(황경숙, 한국민속학보4, 한국민속학회, 1994).

보양

보양
한자명

宝壤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전설

집필자 박성지(朴聖智)

정의

신라 말에서 고려 초, 이무기에게 명하여 비를 내리게 하고 천제의 분노로부터 이무기를 보호해 준 운문선사 승려에 대한 전설.

줄거리

보양이 중국에서 본국으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그에게 금라가사 한 벌을 보시하고 아들 이목(璃目, 이무기)을 시켜 그를 모시고 가도록 했다. 보양은 용왕의 말대로 까치떼가 쪼고 있는 곳에 작갑사라는 절을 세웠다. 날이 가물자 이목은 보양의 명을 받아 비를 내리게 했는데, 천제는 이목이 자기 직분에 넘치는 짓을 했다며 그를 죽이려 하였다. 보양은 이목을 상 밑에 감추고, 그를 요구하는 하늘사자에게 이목과 음이 같은 배나무[李木]를 가리켰다. 하늘사자는 배나무에 벼락을 치고 올라갔고, 이목이 시든 배나무를 어루만져 소생시켰다.

변이

<보양이목설화>의 각편들은 경상북도 청도 운문사나 대비사 일대 그리고 밀양 등지에서 구연되고 있다. <보양이목(寶壤梨木)> 안에 모티프가 삽입되어 있기도 하나 대체로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의 화소가 중심이 된다. 대표적인 전설로는 운문사가 있는 청도군에서 전해지는 시래호박소의 이무기전설을 꼽을 수 있다. 상좌가 밤마다 자취를 감추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스님이 좇아가서 엿보니 그가 대비지(大悲池)에 가서 요동을 치며 용이 되려고 했다는 것이다. 정체가 드러난 이무기는 하늘로 날아가며 꼬리로 절 남쪽의 억산 바위를 쳤으며, 그 때문에 바위가 뾰족해졌다고 한다.

분석

구비전승을 불교적으로 윤색한 데에는 이 지역에 절을 세우면서 전래의 이무기신앙을 누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이런 의도는 전래하는 천신신앙에 부딪혀 굴절되고 만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보양이목> 조에 따르면 갈등의 초점은 의외로 보양과 이목이 아닌 보양과 하늘사자 간에 있다. 이목은 보양의 명을 따라 비를 내렸을 뿐인데, 천제는 이목에게 벌을 주려고 한다. 보양은 이목을 요구하는 하늘사자에게 이목과 음이 비슷한 배나무를 지목하면서 직접 대결하지는 않으려 한다. 즉 불교는 천제로 상정되는 민간의 천신신앙과 대면할 때는 귀신이나 무당을 앞세운 여타 토착신앙과 달리 갈등을 표면화하지 않고 일정 정도의 수평선을 유지하는 우회적인 전략을 쓰고 있다.

특징

이무기가 있다는 호박소는 ‘구연(臼淵)’이라고 하는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권26 밀양도호부(密陽都護府) 산천 조에는 여기에 호랑이 머리를 넣으면 비가 온다고 했다. 호박소가 기우제장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전승되는 전설에서도 정체가 탄로 난 이무기가 호박소에 들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보양이목> 이후의 전설은 불교적 자장(磁場)을 벗어나면서 이무기의 성격에 변화가 나타나 비를 내리게 하면서도 용으로 변신하지 못하는 한계가 강조된다. 이런 이무기의 양면성은 전승집단의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새롭게 해명해야 할 지점이다.

출처

三國遺事.

참고문헌

삼국유사 보양이목설화의 전승론적 검토(천혜숙, 한국민속과 문화연구, 형설출판사, 1990), 삼국유사 설화와 구전설화의 관련양상(조동일, 삼국유사의 종합적 검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삼국유사 소재 불교설화 연구(박성지, 이화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6), 이무기 설화와 기우제(황경숙, 한국민속학보4, 한국민속학회,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