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혼(交換婚)

교환혼

한자명

交換婚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강정원(姜正遠)

정의

신랑 집과 신부 집에서 자기 집단에 속한 여성을 교환하는 방식을 통해 성립되는 혼인.

내용

교환혼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집단의 규모가 크지 않은 호주 원주민의 경우, 한 집단을 반족半族(moiety)이라는 두 집단으로 구분한 뒤에 여자를 서로 교환하였다. 이렇게 제한된 집단 내에서 여자를 맞교환하는 것을 레비스트로스(Lévi-Strauss, Claude)는 ‘한정 교환혼(marriage by restricted exchange)’이라고 불렀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대칭적 교환혼(marriage by symmetrical exchange)’이라고도 불리는 ‘한정 교환혼’ 이외에 ‘일반 교환혼(marriage by generalized exchange)’, ‘비대칭 교환혼(marriage by asymmetrical exchange)’도 존재한다. 이 교환혼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여자를 주고 그 집단에서 여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집단으로부터 여자를 받는 혼인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의 교환혼은 인도 북동부와 동남아시아 등에 분포되었다.

이광규에 따르면 신라 왕실의 혼인 체계에는 ‘한정 교환혼’과 ‘일반 교환혼’ 두 형태가 모두 나타나는데 , 신라시대 후기에 오면 ‘일반 교환혼’이 지배적이 되었다. 백제와 고구려 왕실의 경우에는 ‘일반 교환혼’ 형태가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사회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교환혼 형태는 사라지게 되지만, 일부 계층에서는 최근까지도 존재하였다.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의 보고에 따르면 평안북도의 하층민 사이에서 삼각 혼인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삼각혼인은, 갑・을・병 세 사람에게 혼인 적령기의 자녀가 있다면 갑은 을에게, 을은 병에게, 병은 갑에게 각각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다. 이는 ‘일반 교환혼’에 해당한다. 경기도 김포에서는 이를 ‘물레혼’이라고도 불렀다.

극히 드물지만 ‘한정 교환혼’도 한국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함경남도의 하층민 사이에서는 두 남자가 여동생을 서로 교환하여 혼인하였다고 한다. 서울 주변에도 ‘누이바꿈혼’이 존재하였다.

특징 및 의의

교환혼은 혼인의 역사에서 족외혼이나 족내혼이라는 규칙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개인의 선택이 중요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친족 집단에 기반을 둔 교환혼은 거의 사라진 혼인 방식이다.

참고문헌

인류혼인사(Westermack, Edward, 정동호・신영호 역, 세창출판사, 2013), 조선민속지(秋葉隆, 심우성 역, 동문선, 1993), 한국가족의 사적구조(이광규, 일지사, 1977), The elementary sturctures of kinship(Lévi-Strauss, Claude, Beacon Press, 1969).

교환혼

교환혼
한자명

交換婚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강정원(姜正遠)

정의

신랑 집과 신부 집에서 자기 집단에 속한 여성을 교환하는 방식을 통해 성립되는 혼인.

내용

교환혼에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집단의 규모가 크지 않은 호주 원주민의 경우, 한 집단을 반족半族(moiety)이라는 두 집단으로 구분한 뒤에 여자를 서로 교환하였다. 이렇게 제한된 집단 내에서 여자를 맞교환하는 것을 레비스트로스(Lévi-Strauss, Claude)는 ‘한정 교환혼(marriage by restricted exchange)’이라고 불렀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대칭적 교환혼(marriage by symmetrical exchange)’이라고도 불리는 ‘한정 교환혼’ 이외에 ‘일반 교환혼(marriage by generalized exchange)’, ‘비대칭 교환혼(marriage by asymmetrical exchange)’도 존재한다. 이 교환혼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에 여자를 주고 그 집단에서 여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집단으로부터 여자를 받는 혼인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의 교환혼은 인도 북동부와 동남아시아 등에 분포되었다.

이광규에 따르면 신라 왕실의 혼인 체계에는 ‘한정 교환혼’과 ‘일반 교환혼’ 두 형태가 모두 나타나는데 , 신라시대 후기에 오면 ‘일반 교환혼’이 지배적이 되었다. 백제와 고구려 왕실의 경우에는 ‘일반 교환혼’ 형태가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한국의 사회 규모가 점차 커지면서 교환혼 형태는 사라지게 되지만, 일부 계층에서는 최근까지도 존재하였다.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의 보고에 따르면 평안북도의 하층민 사이에서 삼각 혼인이 거행되었다고 한다. 삼각혼인은, 갑・을・병 세 사람에게 혼인 적령기의 자녀가 있다면 갑은 을에게, 을은 병에게, 병은 갑에게 각각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다. 이는 ‘일반 교환혼’에 해당한다. 경기도 김포에서는 이를 ‘물레혼’이라고도 불렀다.

극히 드물지만 ‘한정 교환혼’도 한국에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함경남도의 하층민 사이에서는 두 남자가 여동생을 서로 교환하여 혼인하였다고 한다. 서울 주변에도 ‘누이바꿈혼’이 존재하였다.

특징 및 의의

교환혼은 혼인의 역사에서 족외혼이나 족내혼이라는 규칙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다. 개인의 선택이 중요시되는 현대사회에서 친족 집단에 기반을 둔 교환혼은 거의 사라진 혼인 방식이다.

참고문헌

인류혼인사(Westermack, Edward, 정동호・신영호 역, 세창출판사, 2013), 조선민속지(秋葉隆, 심우성 역, 동문선, 1993), 한국가족의 사적구조(이광규, 일지사, 1977), The elementary sturctures of kinship(Lévi-Strauss, Claude, Beacon Press,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