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굿무가(沈清巫祭巫歌)

심청굿무가

한자명

沈清巫祭巫歌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박경신(朴敬伸)

정의

동해안 별신굿의 심청굿 혹은 맹인거리에서 구연되는 서사무가.

역사

<심청굿무가>가 동해안 별신굿 굿거리로 정착한 정확한 시기나 과정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내용이 판소리 <심청가>나 고소설 <심청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판단되고, 이 작품이 1960년대 이후에 정리된 자료들에만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작품의 형성 연대는 그리 오래지 않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인신공희(人身供犧)나 맹인개안(盲人開眼)설화가 우리 문학사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극심한 가난이나 질병이 인간 삶의 근원적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작품이 우리가 아직 규명하거나 확인하지 못했을 뿐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줄거리

심봉사와 그 부인 곽 씨는 슬하에 자식이 없어 산천에 열심히 기도하여 심청을 얻는다. 그러나 현숙한 부인이 심청을 낳자마자 산후별증을 얻어 세상을 떠나, 심청은 이레 만에 어머니를 잃는다. 심봉사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 심청을 기르고 심청은 눈먼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개천에 빠진 심봉사는 자신을 구해 준 몽은사 화주승의 공양미 삼백 석을 불전에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혹하여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기로 약속하고 후회한다. 이 사실을 안 심청은 남경장사 선인들에게 인당수 제물로 팔리기로 약속하고 공양미 삼백 석을 받아 몽은사로 보낸다. 약속한 날이 되자 선원들이 찾아오고 선원들을 따라간 심청은 인당수에 이르러 물에 뛰어들지만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구조된다. 심청은 용궁에서 천상에서 내려온 어머니를 만난다. 며칠 후 어머니는 다시 천상으로 올라가고 심청은 연꽃 속에 실려 환생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연꽃을 발견한 남경장사 선인들은 그 꽃을 황제에게 바치고 꽃 속에서 나온 심청은 황제와 혼인하여 황후가 된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심청은 황제에게 청하여 석 달 열흘 맹인잔치를 벌이고 그 잔치자리에서 아버지 심봉사를 만난다. 딸을 만난 기쁨에 심봉사는 눈을 뜬다.

변이

이 작품은 고소설 <심청전>을 바탕으로 한 서사무가이며, 이 고소설은 판소리 <심청가>와 일정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심청굿무가>는 고소설 <심청전>이나 판소리 <심청가>의 무가적 변용으로 볼 수 있다. 심청전 작품군은 우리 서사문학사에서 가장 다양한 변이를 보인 작품들로 춘향전 작품군과 함께 그 이본이 가장 많은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심청굿무가>도 동해안세습무집단의 여러 무녀가 구연하였는데, 구연본들은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소설 <심청전>이나 판소리 <심청가>에 나타나는 다양한 변이와 비교할 때 그다지 크지 않다. 그것은 <심청굿무가> 구연자들이 모두 동해안세습무집단이라는 같은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 동해안세습무집단은 혈연관계로 연결된 집단이고 대를 물려 가며 무업을 생업으로 삼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각각의 굿을 할 때에 이 굿거리를 맡아 구연하는 구체적인 무녀는 다를 수 있지만, 이들이 구연하는 굿은 동해안 별신굿 속의 ‘심청굿’ 혹은 ‘맹인거리’라는 같은 굿거리이고 그 기능도 같으며, 청중 역시 동해안 마을 사람들이라는 동질성을 가진 집단이므로 변이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분석

<심청굿무가>는 다른 지역의 굿에는 전혀 없고 오직 동해안 지역에서만 전승된다. 동해안 지역에는 <당금애기>, <바리공주>, <손님굿무가>, <심청굿무가> 등의 서사무가가 전승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심청굿무가>는 길이가 가장 긴 편에 속한다. 서사무가를 구연할 수 있는 무당을 기량이 뛰어난 무당으로 평가하는 것이 관례인데, 그중에서도 <심청굿무가>를 구연할 수 있는 무당을 동해안 지역에서는 최고로 친다. 이금옥 무녀가 당대 제일의 <심청굿무가> 구연자로 알려졌는데, 그녀가 죽은 후에는 김동언 무녀가 이 거리를 구연하는 때가 많다. 굿판에 나온 할머니들은 다른 굿거리도 좋아하지만 특히 이 <심청굿무가>를 좋아한다. 어린 심청이 고생고생하는 대목에서는 무녀도 울면서 구연하고 관중인 할머니들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내며 귀 기울여 듣는다. 예술이 어느 정도의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절감할 수 있는 현장이 바로 동해안 별신굿 심청굿거리라고 하여도 좋다.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심청굿무가>는 판소리 <심청가>나 고소설 <심청전>이 서사무가로 정착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판소리나 고소설이 서사무가로 그대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서사갈래류에 속한다 하여도 그 각각의 갈래종은 고유의 특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 심청굿의 첫머리가 “바닷가 사람들은 특히 눈이 밝아야 하고 그래서 안질을 막고 눈을 맑히는 굿거리가 필요하다.”라는 설명으로 시작되고, 마지막이 황봉사 점 치는 놀이인 것은 이 거리가 판소리나 고소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서사무가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주술적 장치를 앞뒤에 설정함으로써 <심청굿무가>는 동해안 별신굿의 한 굿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의의

<심청굿무가>는 같은 내용의 고소설과 판소리가 있고, 관련된 근원설화들도 있어서 우리 서사문학 갈래종 사이의 관계나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판소리 <춘향가>가 굿에서 유래하였다는 정노식의 설명이 있지만 아직 실제 자료를 통해 이 사실이 입증된 사례는 없다. 고소설 <춘향전>이나 판소리 <춘향가> 사설이 서사무가로 구연되었다는 자료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 <심청굿무가>는 고소설 혹은 판소리가 그 내용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사무가로 직접 구연된 특별한 사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만큼 고소설이나 판소리와 서사무가의 관계를 검토하는 데에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같은 이야기가 이렇게 다양한 갈래종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은 이 이야기가 한국인의 심성이나 원형 심상에 잘 들어맞는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출처

동해안무가(최정여․서대석, 형설출판사, 1974), 동해안별신굿무가4(박경신, 국학자료원, 1993), 서사무가 심청전집(김진영․김영수․홍태한, 민속원, 2001), 한국의 별신굿무가6(박경신, 국학자료원, 1999).

참고문헌

청굿무가의 변이 양상과 형성과정 추론(홍태한, 서사무가 심청전집, 민속원, 2001), 심청굿의 형성문제(이균옥, 동리연구1, 동리연구회, 1994).

심청굿무가

심청굿무가
한자명

沈清巫祭巫歌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박경신(朴敬伸)

정의

동해안 별신굿의 심청굿 혹은 맹인거리에서 구연되는 서사무가.

역사

<심청굿무가>가 동해안 별신굿 굿거리로 정착한 정확한 시기나 과정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내용이 판소리 <심청가>나 고소설 <심청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판단되고, 이 작품이 1960년대 이후에 정리된 자료들에만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작품의 형성 연대는 그리 오래지 않으리라고 추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인신공희(人身供犧)나 맹인개안(盲人開眼)설화가 우리 문학사에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고 극심한 가난이나 질병이 인간 삶의 근원적 문제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 작품이 우리가 아직 규명하거나 확인하지 못했을 뿐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줄거리

심봉사와 그 부인 곽 씨는 슬하에 자식이 없어 산천에 열심히 기도하여 심청을 얻는다. 그러나 현숙한 부인이 심청을 낳자마자 산후별증을 얻어 세상을 떠나, 심청은 이레 만에 어머니를 잃는다. 심봉사는 갖은 고생을 하면서 심청을 기르고 심청은 눈먼 아버지를 극진히 봉양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개천에 빠진 심봉사는 자신을 구해 준 몽은사 화주승의 공양미 삼백 석을 불전에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에 혹하여 공양미 삼백 석을 시주하기로 약속하고 후회한다. 이 사실을 안 심청은 남경장사 선인들에게 인당수 제물로 팔리기로 약속하고 공양미 삼백 석을 받아 몽은사로 보낸다. 약속한 날이 되자 선원들이 찾아오고 선원들을 따라간 심청은 인당수에 이르러 물에 뛰어들지만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구조된다. 심청은 용궁에서 천상에서 내려온 어머니를 만난다. 며칠 후 어머니는 다시 천상으로 올라가고 심청은 연꽃 속에 실려 환생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연꽃을 발견한 남경장사 선인들은 그 꽃을 황제에게 바치고 꽃 속에서 나온 심청은 황제와 혼인하여 황후가 된다. 아버지를 그리워하던 심청은 황제에게 청하여 석 달 열흘 맹인잔치를 벌이고 그 잔치자리에서 아버지 심봉사를 만난다. 딸을 만난 기쁨에 심봉사는 눈을 뜬다.

변이

이 작품은 고소설 <심청전>을 바탕으로 한 서사무가이며, 이 고소설은 판소리 <심청가>와 일정한 관련이 있다. 따라서 <심청굿무가>는 고소설 <심청전>이나 판소리 <심청가>의 무가적 변용으로 볼 수 있다. 심청전 작품군은 우리 서사문학사에서 가장 다양한 변이를 보인 작품들로 춘향전 작품군과 함께 그 이본이 가장 많은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심청굿무가>도 동해안세습무집단의 여러 무녀가 구연하였는데, 구연본들은 세부적으로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 차이는 소설 <심청전>이나 판소리 <심청가>에 나타나는 다양한 변이와 비교할 때 그다지 크지 않다. 그것은 <심청굿무가> 구연자들이 모두 동해안세습무집단이라는 같은 집단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들 동해안세습무집단은 혈연관계로 연결된 집단이고 대를 물려 가며 무업을 생업으로 삼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각각의 굿을 할 때에 이 굿거리를 맡아 구연하는 구체적인 무녀는 다를 수 있지만, 이들이 구연하는 굿은 동해안 별신굿 속의 ‘심청굿’ 혹은 ‘맹인거리’라는 같은 굿거리이고 그 기능도 같으며, 청중 역시 동해안 마을 사람들이라는 동질성을 가진 집단이므로 변이 폭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분석

<심청굿무가>는 다른 지역의 굿에는 전혀 없고 오직 동해안 지역에서만 전승된다. 동해안 지역에는 <당금애기>, <바리공주>, <손님굿무가>, <심청굿무가> 등의 서사무가가 전승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 <심청굿무가>는 길이가 가장 긴 편에 속한다. 서사무가를 구연할 수 있는 무당을 기량이 뛰어난 무당으로 평가하는 것이 관례인데, 그중에서도 <심청굿무가>를 구연할 수 있는 무당을 동해안 지역에서는 최고로 친다. 이금옥 무녀가 당대 제일의 <심청굿무가> 구연자로 알려졌는데, 그녀가 죽은 후에는 김동언 무녀가 이 거리를 구연하는 때가 많다. 굿판에 나온 할머니들은 다른 굿거리도 좋아하지만 특히 이 <심청굿무가>를 좋아한다. 어린 심청이 고생고생하는 대목에서는 무녀도 울면서 구연하고 관중인 할머니들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 내며 귀 기울여 듣는다. 예술이 어느 정도의 감동을 줄 수 있는지 절감할 수 있는 현장이 바로 동해안 별신굿 심청굿거리라고 하여도 좋다.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심청굿무가>는 판소리 <심청가>나 고소설 <심청전>이 서사무가로 정착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판소리나 고소설이 서사무가로 그대로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같은 서사갈래류에 속한다 하여도 그 각각의 갈래종은 고유의 특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이 심청굿의 첫머리가 “바닷가 사람들은 특히 눈이 밝아야 하고 그래서 안질을 막고 눈을 맑히는 굿거리가 필요하다.”라는 설명으로 시작되고, 마지막이 황봉사 점 치는 놀이인 것은 이 거리가 판소리나 고소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서사무가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러한 주술적 장치를 앞뒤에 설정함으로써 <심청굿무가>는 동해안 별신굿의 한 굿거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의의

<심청굿무가>는 같은 내용의 고소설과 판소리가 있고, 관련된 근원설화들도 있어서 우리 서사문학 갈래종 사이의 관계나 특성을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판소리 <춘향가>가 굿에서 유래하였다는 정노식의 설명이 있지만 아직 실제 자료를 통해 이 사실이 입증된 사례는 없다. 고소설 <춘향전>이나 판소리 <춘향가> 사설이 서사무가로 구연되었다는 자료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 <심청굿무가>는 고소설 혹은 판소리가 그 내용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사무가로 직접 구연된 특별한 사례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만큼 고소설이나 판소리와 서사무가의 관계를 검토하는 데에 유용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같은 이야기가 이렇게 다양한 갈래종으로 구현되었다는 것은 이 이야기가 한국인의 심성이나 원형 심상에 잘 들어맞는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출처

동해안무가(최정여․서대석, 형설출판사, 1974), 동해안별신굿무가4(박경신, 국학자료원, 1993), 서사무가 심청전집(김진영․김영수․홍태한, 민속원, 2001), 한국의 별신굿무가6(박경신, 국학자료원, 1999).

참고문헌

청굿무가의 변이 양상과 형성과정 추론(홍태한, 서사무가 심청전집, 민속원, 2001), 심청굿의 형성문제(이균옥, 동리연구1, 동리연구회,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