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영랑 앵연랑 신가

숙영랑 앵연랑 신가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김대숙(金大琡)

정의

함경남도 함흥 지역 병굿에서 구연하였던 숙영선비와 앵연각시에 관한 서사무가(敍事巫歌).

역사

함남 함흥군 운전면 궁서리에서 대무녀 김쌍돌이 구송하였다. 그리고 1936년에 손진태가 평안북도 강계의 무격 전명수에게 채록한 <제석님청배>가 있다. 한편, 1965년 월남한 무녀 강춘옥에게 임석재, 장주근이 채록한 『관북지역무가』에는 <혼쉬굿> 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며, <황천혼시>와 <숙영랑 앵연랑 신가>를 묶어서 구송하고 있다.

역사

함남 함흥군 운전면 궁서리에서 대무녀 김쌍돌이 구송하였다. 그리고 1936년에 손진태가 평안북도 강계의 무격 전명수에게 채록한 <제석님청배>가 있다. 한편, 1965년 월남한 무녀 강춘옥에게 임석재, 장주근이 채록한 『관북지역무가』에는 <혼쉬굿> 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며, <황천혼시>와 <숙영랑 앵연랑 신가>를 묶어서 구송하고 있다.

줄거리

방년 열다섯 살의 숙영선비와 열네 살의 앵연각시 사이에 혼담이 오고 갔다. 주인 어미와 주인 아비에게 세 번 말을 붙여 반 허락이 나고 이쪽저쪽에 핀 꽃이 서로 고개를 숙여 참 허락이 났다. 숙영선비가 아랫녘 선생에게 가서 궁합을 물으니 임오계미(壬午癸未)는 양유목(楊柳木)이라 합궁이 좋다고 해서 날을 받았다. 납채(納采)와 기물(器物)이 풍족하여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혼인하고 한 해, 두 해가 가고 나이 이십, 삼십을 지나 사십이 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하루는 대감이 날이 좋아 구경을 나갔다가 강남 갔던 제비가 새끼들을 앞뒤로 세우고 밖으로 나오더니 3년 묵은 구쇠통에 새끼들을 앉혀 놓고 벌레를 물어다 먹이는 모습을 보았다. 대감은 마음이 처량해 집에 돌아와 그만 드러누웠다. 부인의 권유로 부부는 같이 경상도 아랫녘에 문복을 가서 궁합을 가리니, 적덕을 드리고 공덕을 드려야 자식을 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백미, 황초, 대추, 황지(黃紙)와 같은 예물을 갖추어 안애산 금상(金祥)절에 찾아가 석 달 열흘을 기도하고 한 아들을 얻었는데, 눈이 먼 판수 자식이었다. 부부는 아들 이름을 ‘거북’이라 짓고 유모를 두어 잘 길렀다. 아들이 세 살이 되고나서 둘째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이는 곱사등이에 앉은뱅이였다. 부모가 둘째 아들의 이름을 ‘남생이’라고 짓고 유모를 붙여 길렀다. 기물은 억십만재(億十萬財)이나 부모는 화병이 들어 다 죽고, 자식들은 그 기물을 다 쓰고 가난뱅이가 되어 밥을 얻어먹고 다녔다. 밥을 얻으러 간 집에서 앞으로 오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형제는 대문 밖에 나와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형에게 자신들이 생긴 절을 찾아가자고 제안하였다. 그래서 눈먼 형이 앉은뱅이 동생을 업고, 동생은 형의 막대기를 쥐고 둘이 서로 의지하여 절을 찾아갔다. 절 입구에 다다르니 생금(生金)이 떠다니고 있었다. 눈이 밝은 남생이가 생금을 건지자 하니, 형이 “우리가 무슨 복이 있어 이 금을 쓰겠느냐?”라며 그냥 가자고 했다. 부처님이 불목이에게 형제를 남간 초당에 들여 글공부를 시키고 하루에 흰밥을 세 끼 주라고 했다. 형제가 불목이에게 생금을 보았다고 일러 주어 삼천중이 나가서 보니 생금이 아니고 금구렁이여서 형제를 두들겨 팼다. 형제가 나가 보니 역시 금이어서 그 금을 안고 들어와 부처님 앞에 드렸다. 그러자 절이 춤을 추어 부처님과 절 안을 도금하였고, 부처님은 거북이의 눈을 뜨게 해 주고 남생이의 등과 다리도 펴 주었다. 형제는 조선으로 나와서 여든한 살까지 살다가 죽어 혼수성인이 되었다.

분석

손진태의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 각주에 의하면 “숙영과 앵연은 소리를 취하여 한자로 나타낸 것으로, 조선 사람 고유의 이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라고 했다. 또 “원어대로 표시하면 숙영선비 앵연소부(혹은 각시)이지만, 선비나 각시는 각각 소년(또는 청년)이나 소부(또는 소녀)의 보통 존칭이다.”라고 하였다.

한편, 무가의 끝에 <어린애몸혼시>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무가는 잉태를 못 하는 부부가 부처에게 치성을 드린 뒤 잉태하여 아들 형제를 두었고, 불구인 아이들이 부처에게 공양하여 병을 고쳤다는 내용으로 부처의 영험을 강조하고 있다. 함흥 지역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채록되지 않은 자료이며, 무속 고유의 신화라기보다는 불교의 변문(變文)으로 형성된 설화가 무가로 이입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걷지는 못하지만 눈이 보이는 동생이 눈먼 형의 등에 업혀 형의 막대기로 탁탁 소리를 내며 길을 짚어주고, 그 소리에 따라 눈먼 형이 걷지 못하는 동생을 업고 길을 간다. 어느 한 쪽이 부족해도 두 사람이 서로 도우면 앞길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눈먼 형은 세상을 보지는 못하지만, 생금을 건지자는 동생의 제안에 “우리 복에 저 금은 맞지 않는다.”라며 동생을 타이른다. 즉, 앞은 보지 못하나 선량한 마음과 지혜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특징

병굿에서 불리는 무가라는 특징이 있다. 거북이와 남생이라는 이름도 장수와 치병의 능력을 암시한다. 함경도에서 혼수굿 혹은 횡수막이를 하거나 어린아이의 병을 고치고자 할 때 부르는 무가이다. 혼수굿에서 성인의 중병을 낫게 할 때는 저승사자를 대접해 인간의 정해진 수명을 연장하는 내용의 <황천혼시>를 부르고, 어린아이의 병을 낫게 할 때는 <숙영랑 앵연랑 신가>를 부른다. <제석님청배>에는 제석님의 근본을 철령(鐵嶺) 땅의 늪이라고 하면서, 오누이인 앉은뱅이 남생이와 장님 거북이가 철령 늪에서 금방석을 구해 부처님께 시주하여 병을 고치는 내용으로 나온다. 전체적으로 인물 설정과 내용은 같지만, 치병(治病)이 아닌 곡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서사무가 가운데 주인공 남녀가 한자어로 된 이름을 가지고 불구인 자손을 얻으며, 부처의 은혜로 병을 고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한국 신화 가운데서는 드물게 형제신이 등장한다.

출처

관북지방무가(임석재·장주근, 문화재관리국, 1965), 조선무격의 신가3(손진태, 청구학총23, 청구학회, 1936), 朝鮮神歌遺篇(孫晋泰, 東京 鄕土硏究社, 1930).

참고문헌

근대 여명기 우리 신화연구(권태효, 민속원, 2008),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 한국신화(최원오, 여름언덕, 2004).

숙영랑 앵연랑 신가

숙영랑 앵연랑 신가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김대숙(金大琡)

정의

함경남도 함흥 지역 병굿에서 구연하였던 숙영선비와 앵연각시에 관한 서사무가(敍事巫歌).

역사

함남 함흥군 운전면 궁서리에서 대무녀 김쌍돌이 구송하였다. 그리고 1936년에 손진태가 평안북도 강계의 무격 전명수에게 채록한 <제석님청배>가 있다. 한편, 1965년 월남한 무녀 강춘옥에게 임석재, 장주근이 채록한 『관북지역무가』에는 <혼쉬굿> 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며, <황천혼시>와 <숙영랑 앵연랑 신가>를 묶어서 구송하고 있다.

역사

함남 함흥군 운전면 궁서리에서 대무녀 김쌍돌이 구송하였다. 그리고 1936년에 손진태가 평안북도 강계의 무격 전명수에게 채록한 <제석님청배>가 있다. 한편, 1965년 월남한 무녀 강춘옥에게 임석재, 장주근이 채록한 『관북지역무가』에는 <혼쉬굿> 이라는 제목으로 등장하며, <황천혼시>와 <숙영랑 앵연랑 신가>를 묶어서 구송하고 있다.

줄거리

방년 열다섯 살의 숙영선비와 열네 살의 앵연각시 사이에 혼담이 오고 갔다. 주인 어미와 주인 아비에게 세 번 말을 붙여 반 허락이 나고 이쪽저쪽에 핀 꽃이 서로 고개를 숙여 참 허락이 났다. 숙영선비가 아랫녘 선생에게 가서 궁합을 물으니 임오계미(壬午癸未)는 양유목(楊柳木)이라 합궁이 좋다고 해서 날을 받았다. 납채(納采)와 기물(器物)이 풍족하여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런데 혼인하고 한 해, 두 해가 가고 나이 이십, 삼십을 지나 사십이 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하루는 대감이 날이 좋아 구경을 나갔다가 강남 갔던 제비가 새끼들을 앞뒤로 세우고 밖으로 나오더니 3년 묵은 구쇠통에 새끼들을 앉혀 놓고 벌레를 물어다 먹이는 모습을 보았다. 대감은 마음이 처량해 집에 돌아와 그만 드러누웠다. 부인의 권유로 부부는 같이 경상도 아랫녘에 문복을 가서 궁합을 가리니, 적덕을 드리고 공덕을 드려야 자식을 보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백미, 황초, 대추, 황지(黃紙)와 같은 예물을 갖추어 안애산 금상(金祥)절에 찾아가 석 달 열흘을 기도하고 한 아들을 얻었는데, 눈이 먼 판수 자식이었다. 부부는 아들 이름을 ‘거북’이라 짓고 유모를 두어 잘 길렀다. 아들이 세 살이 되고나서 둘째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이는 곱사등이에 앉은뱅이였다. 부모가 둘째 아들의 이름을 ‘남생이’라고 짓고 유모를 붙여 길렀다. 기물은 억십만재(億十萬財)이나 부모는 화병이 들어 다 죽고, 자식들은 그 기물을 다 쓰고 가난뱅이가 되어 밥을 얻어먹고 다녔다. 밥을 얻으러 간 집에서 앞으로 오지 말라는 소리를 듣고 형제는 대문 밖에 나와 울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이 형에게 자신들이 생긴 절을 찾아가자고 제안하였다. 그래서 눈먼 형이 앉은뱅이 동생을 업고, 동생은 형의 막대기를 쥐고 둘이 서로 의지하여 절을 찾아갔다. 절 입구에 다다르니 생금(生金)이 떠다니고 있었다. 눈이 밝은 남생이가 생금을 건지자 하니, 형이 “우리가 무슨 복이 있어 이 금을 쓰겠느냐?”라며 그냥 가자고 했다. 부처님이 불목이에게 형제를 남간 초당에 들여 글공부를 시키고 하루에 흰밥을 세 끼 주라고 했다. 형제가 불목이에게 생금을 보았다고 일러 주어 삼천중이 나가서 보니 생금이 아니고 금구렁이여서 형제를 두들겨 팼다. 형제가 나가 보니 역시 금이어서 그 금을 안고 들어와 부처님 앞에 드렸다. 그러자 절이 춤을 추어 부처님과 절 안을 도금하였고, 부처님은 거북이의 눈을 뜨게 해 주고 남생이의 등과 다리도 펴 주었다. 형제는 조선으로 나와서 여든한 살까지 살다가 죽어 혼수성인이 되었다.

분석

손진태의 『조선신가유편(朝鮮神歌遺篇)』 각주에 의하면 “숙영과 앵연은 소리를 취하여 한자로 나타낸 것으로, 조선 사람 고유의 이름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라고 했다. 또 “원어대로 표시하면 숙영선비 앵연소부(혹은 각시)이지만, 선비나 각시는 각각 소년(또는 청년)이나 소부(또는 소녀)의 보통 존칭이다.”라고 하였다.

한편, 무가의 끝에 <어린애몸혼시>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무가는 잉태를 못 하는 부부가 부처에게 치성을 드린 뒤 잉태하여 아들 형제를 두었고, 불구인 아이들이 부처에게 공양하여 병을 고쳤다는 내용으로 부처의 영험을 강조하고 있다. 함흥 지역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는 채록되지 않은 자료이며, 무속 고유의 신화라기보다는 불교의 변문(變文)으로 형성된 설화가 무가로 이입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걷지는 못하지만 눈이 보이는 동생이 눈먼 형의 등에 업혀 형의 막대기로 탁탁 소리를 내며 길을 짚어주고, 그 소리에 따라 눈먼 형이 걷지 못하는 동생을 업고 길을 간다. 어느 한 쪽이 부족해도 두 사람이 서로 도우면 앞길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눈먼 형은 세상을 보지는 못하지만, 생금을 건지자는 동생의 제안에 “우리 복에 저 금은 맞지 않는다.”라며 동생을 타이른다. 즉, 앞은 보지 못하나 선량한 마음과 지혜를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특징

병굿에서 불리는 무가라는 특징이 있다. 거북이와 남생이라는 이름도 장수와 치병의 능력을 암시한다. 함경도에서 혼수굿 혹은 횡수막이를 하거나 어린아이의 병을 고치고자 할 때 부르는 무가이다. 혼수굿에서 성인의 중병을 낫게 할 때는 저승사자를 대접해 인간의 정해진 수명을 연장하는 내용의 <황천혼시>를 부르고, 어린아이의 병을 낫게 할 때는 <숙영랑 앵연랑 신가>를 부른다. <제석님청배>에는 제석님의 근본을 철령(鐵嶺) 땅의 늪이라고 하면서, 오누이인 앉은뱅이 남생이와 장님 거북이가 철령 늪에서 금방석을 구해 부처님께 시주하여 병을 고치는 내용으로 나온다. 전체적으로 인물 설정과 내용은 같지만, 치병(治病)이 아닌 곡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서사무가 가운데 주인공 남녀가 한자어로 된 이름을 가지고 불구인 자손을 얻으며, 부처의 은혜로 병을 고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한국 신화 가운데서는 드물게 형제신이 등장한다.

출처

관북지방무가(임석재·장주근, 문화재관리국, 1965), 조선무격의 신가3(손진태, 청구학총23, 청구학회, 1936), 朝鮮神歌遺篇(孫晋泰, 東京 鄕土硏究社, 1930).

참고문헌

근대 여명기 우리 신화연구(권태효, 민속원, 2008),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 한국신화(최원오, 여름언덕,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