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고할미(麻姑婆婆)

마고할미

한자명

麻姑婆婆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이 세상의 자연물 또는 지형을 창조한 거인여신에 관한 설화.

역사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시편에 마고에 대한 짧은 언급이 있지만, 모두 중국의 『신선전(神仙傳)』에 기록된 마고의 형상을 옮겨 놓은 것이다. 1624년(인조 2) 홍익한의 『조선항해록(朝天航海錄)』에도 연행 길에 중국 마고선녀의 화상을 본 경험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국문소설 <숙향전>과 무가 <바리데기>에서도 주인공을 도와주는 중국 천태산 마고할미의 형상을 만날 수 있다.

한국 마고할미에 관한 기록으로는 일찍이 신라 박제상이 기록했다는 『부도지(符都志)』가 있으나, 아직은 사료적 객관성에 대한 평가가 유보된 자료이다. 우리 마고할미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은 1771년(영조 47) 장한철(1744~?)이 쓴 『표해록(漂海錄)』이다. 표류하던 일행이 제주 한라산을 만나자 기뻐 소리내어 울면서 백록선자님과 선마선파(詵麻仙婆)님에게 살려 달라고 축원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표해록』에는 “아득한 옛날 선마고(詵麻姑)가 걸어서 서해를 건너와서 한라산에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라는 기록도 있다. 선마선파의 ‘선파’와 선마고의 ‘고’는 ‘할미’를 뜻하는 것이니, 신격 명칭은 ‘선마할미’이다. 선마는 설문대와도 음이 상통하므로, 선마할미는 제주도의 설문대할망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선마할미가 서해를 걸어서 건넜다고 한 것은 ‘거인’ 형상을 말하는 것으로, 한국 마고할미의 형상에 가깝다.

한편, 선마할미가 서해를 건넜다는 내용은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한국의 마고할미를 중국 도교 계통의 마고선녀가 유입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 시기와 과정이 확실치 않다. 종종 서왕모와도 동일시되는 중국의 마고선녀는 신화의 내용이나 형상 면에서 한국의 마고할미와 많이 다르다. 문헌에 기록되지 않아서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마고할미가 창세신화의 주역인 것을 고려하면 그 역사는 아득한 창세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을 것이다.

줄거리

거인여신 마고할미가 치마폭에 싸서 나르던 흙이 산 또는 섬이 되었다. 그리고 마고할미의 방뇨 또는 배변으로 산이나 하천이 생겨나기도 했다. 마을의 큰 돌은 마고할미가 손이나 채찍으로 굴리다가 던져서 그 자리에 앉은 것이다. 마고할미는 마포(麻布) 구만 필로 옷을 지어도 몸을 다 감싸지 못할 정도로 몸집이 컸다. 또, 키가 얼마나 컸던지 완도 일대의 바다를 걸어서 다녔고, 그곳 해안의 선바위에 발을 딛고 오십이고개에 손을 딛고 용듬벙의 물을 마셨을 정도였다. 힘도 엄청나서 양주의 노고산과 불국산에 두 다리를 걸치고 오줌을 누자 문학재 고개에 있는 큰 바위가 깨어져 나갔다고 한다.

변이

마고할미는 산, 섬, 하천, 돌, 다리, 성곽 등의 창조에 관여하는 존재로, 창조의 대상과 행위에 따라 다양한 유형각편이 전승된다. 한 예로, 산을 창조하는 마고할미의 행위도 각편에 따라 다양하다. 마고할미의 터진 치마 틈으로 떨어진 흙이나 마고할미의 배설물이 산이 되었는가 하면, 마고할미의 명령으로 떠내려 오던 산이 그 자리에 멈추어 서기도 한다. 한편 마고할미가 눈 오줌 줄기가 바위를 깨거나 하천을 형성하며, 때로는 바다 물길의 방향을 바꾼다는 등의 다양한 각편이 존재한다.

마고할미는 전국적으로 확인되는 마고할미라는 명칭 외에도 경기 지역의 노고할미, 서해안 지역의 개양할미, 강원도 지역의 서구할미, 제주 지역의 설문대할망처럼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들은 거인 여성의 형상과 창세 행위라는 면에서 유사성을 지닌다. 다만 해안 도서 지역의 마고할미는 산, 섬, 바다의 창세에 관여하는 데 비해, 내륙 지역의 마고할미는 주로 산, 하천의 창세에 관여할 때가 더 많다. 마고할미가 산을 조성했다는 전설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지만, 내륙 지역의 마고할미는 산과 친연성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 마고할미는 주로 특정 산과 연관되어 지칭되는 예가 많다. 전승 과정에서 창세신보다 산신의 성격이 강해진 것으로, 산신 좌정 후에는 혼인과 출산이 이어지기도 한다. 지리산 성모, 충청도 지역의 안가닥할무이, 경상도 지역의 다자구할마이 등은 산신 마고할미의 계승이다.

그 밖에 흥미로운 변이형으로 악행을 일삼다가 효자에게 퇴치된 강원도 삼척의 서구할미, 물의 깊이를 시험하다 한라산의 물장오리에 빠져 죽은 제주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있다. 두 유형은 마고할미 신화가 신화적 신성을 상실하고 유교적 담론에 편승한 전설 또는 희화화된 민담으로 변이된 전형적 사례이다. 두 유형의 변이는 국가의 시작과 더불어 가부장 사회의 역사가 전개되면서 여신들이 소외되고 주변화되는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삼척 지역의 서구할미 유형은 ‘서구(瑞嫗)’의 의미와는 모순되게, 음이 유사한 마귀할미의 명칭과 더불어 마고할미가 악신으로 와전되는 변이의 흐름을 보인다.

분석

이 신화는 민간에서 구비전승되어 온 거인여신의 창세신화이다. 마고할미는 산, 섬, 하천, 돌, 다리, 성곽 등의 창조에 관여하였지만, 문헌에 기록되거나 국가적 제향의 대상이 되지 못한 존재이다. 유화나 선도산 성모처럼 여신의 신화가 일부 문헌에 남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 시조의 모신에게 허용된 현상이다. 무속제의에서 여신의 신화가 구송된 예도 생산신인 당금애기나 죽음 천도신인 바리공주처럼 중요한 직능신에 국한된 것이었다. <마고할미신화>는 민간에서 구비전승되는 과정에서 창조신의 지위를 상실하고 자연물 형성에 관한 지명유래전설이나 퇴치되어야 할 부정적 신격에 관한 전설로 와전되어 일찍이 신화 연구에서 소외되었다. 그러나 최근 대모신으로부터 당신으로 이어지는 여계 신성의 역사가 주목되면서 여신신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신화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다. 부계신화의 재편에 따른 여신의 주변화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 신화의 변이 및 변이 요인에 대한 분석, 지역별 마고설화에 대한 특징 비교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한국의 창세신화와 거인신화에 관한 연구가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특징

마고할미의 창세는 한국의 다른 신화에서 미륵이나 천지왕과 같은 남신이 행하는 창세와는 차별점이 있다. 남신은 천지개벽이나 일월 조정의 제1차적 창조를 하는 데 비해, 마고할미는 1차 창조 후 자연과 산천을 세상의 일부로 조성하거나 특정 지역의 지형을 형성하는 제2차적 창조 행위를 담당한다. 이렇게 1단계와 2단계의 창세가 남신과 여신으로 갈라져 이루어지는 것은 한국 창세신화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아울러 이 현상은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여신의 주변화 또는 위계 변동과도 관련이 있다.

의의

이 신화는 민간에서 구비전승되는 과정에서 신화보다는 전설의 성격이 강해졌고, 더러는 민담적 희화까지 동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신의 창세에 관한 내용이 뚜렷하고 풍부하여 한국 창세신화의 한 국면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아울러 여신에 관한 서사라는 점에서 한국 여성사와 여성문화의 규명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출처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2-1, 568; 4-4, 813; 6-5, 174, 175.

참고문헌

마고할미 설화에 나타난 여성신 관념(강진옥, 한국민속학25, 한국민속학회, 1993), 마고할미․개양할미설문대할망(조현설, 민족문학사연구41,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9), 여성신화연구-1(천혜숙, 민속연구1,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1991), 한국의 거인설화(권태효, 역락, 2002), 한국의 마고할미 고찰(송화섭, 역사민속학27, 한국역사민속학회, 2008), 한국의 신화(장주근, 성문각, 1961).

마고할미

마고할미
한자명

麻姑婆婆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이 세상의 자연물 또는 지형을 창조한 거인여신에 관한 설화.

역사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시편에 마고에 대한 짧은 언급이 있지만, 모두 중국의 『신선전(神仙傳)』에 기록된 마고의 형상을 옮겨 놓은 것이다. 1624년(인조 2) 홍익한의 『조선항해록(朝天航海錄)』에도 연행 길에 중국 마고선녀의 화상을 본 경험이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의 국문소설 <숙향전>과 무가 <바리데기>에서도 주인공을 도와주는 중국 천태산 마고할미의 형상을 만날 수 있다.

한국 마고할미에 관한 기록으로는 일찍이 신라 박제상이 기록했다는 『부도지(符都志)』가 있으나, 아직은 사료적 객관성에 대한 평가가 유보된 자료이다. 우리 마고할미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은 1771년(영조 47) 장한철(1744~?)이 쓴 『표해록(漂海錄)』이다. 표류하던 일행이 제주 한라산을 만나자 기뻐 소리내어 울면서 백록선자님과 선마선파(詵麻仙婆)님에게 살려 달라고 축원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표해록』에는 “아득한 옛날 선마고(詵麻姑)가 걸어서 서해를 건너와서 한라산에서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라는 기록도 있다. 선마선파의 ‘선파’와 선마고의 ‘고’는 ‘할미’를 뜻하는 것이니, 신격 명칭은 ‘선마할미’이다. 선마는 설문대와도 음이 상통하므로, 선마할미는 제주도의 설문대할망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선마할미가 서해를 걸어서 건넜다고 한 것은 ‘거인’ 형상을 말하는 것으로, 한국 마고할미의 형상에 가깝다.

한편, 선마할미가 서해를 건넜다는 내용은 중국에서 건너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한국의 마고할미를 중국 도교 계통의 마고선녀가 유입된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그 시기와 과정이 확실치 않다. 종종 서왕모와도 동일시되는 중국의 마고선녀는 신화의 내용이나 형상 면에서 한국의 마고할미와 많이 다르다. 문헌에 기록되지 않아서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마고할미가 창세신화의 주역인 것을 고려하면 그 역사는 아득한 창세의 역사만큼 오래되었을 것이다.

줄거리

거인여신 마고할미가 치마폭에 싸서 나르던 흙이 산 또는 섬이 되었다. 그리고 마고할미의 방뇨 또는 배변으로 산이나 하천이 생겨나기도 했다. 마을의 큰 돌은 마고할미가 손이나 채찍으로 굴리다가 던져서 그 자리에 앉은 것이다. 마고할미는 마포(麻布) 구만 필로 옷을 지어도 몸을 다 감싸지 못할 정도로 몸집이 컸다. 또, 키가 얼마나 컸던지 완도 일대의 바다를 걸어서 다녔고, 그곳 해안의 선바위에 발을 딛고 오십이고개에 손을 딛고 용듬벙의 물을 마셨을 정도였다. 힘도 엄청나서 양주의 노고산과 불국산에 두 다리를 걸치고 오줌을 누자 문학재 고개에 있는 큰 바위가 깨어져 나갔다고 한다.

변이

마고할미는 산, 섬, 하천, 돌, 다리, 성곽 등의 창조에 관여하는 존재로, 창조의 대상과 행위에 따라 다양한 유형과 각편이 전승된다. 한 예로, 산을 창조하는 마고할미의 행위도 각편에 따라 다양하다. 마고할미의 터진 치마 틈으로 떨어진 흙이나 마고할미의 배설물이 산이 되었는가 하면, 마고할미의 명령으로 떠내려 오던 산이 그 자리에 멈추어 서기도 한다. 한편 마고할미가 눈 오줌 줄기가 바위를 깨거나 하천을 형성하며, 때로는 바다 물길의 방향을 바꾼다는 등의 다양한 각편이 존재한다.

마고할미는 전국적으로 확인되는 마고할미라는 명칭 외에도 경기 지역의 노고할미, 서해안 지역의 개양할미, 강원도 지역의 서구할미, 제주 지역의 설문대할망처럼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들은 거인 여성의 형상과 창세 행위라는 면에서 유사성을 지닌다. 다만 해안 도서 지역의 마고할미는 산, 섬, 바다의 창세에 관여하는 데 비해, 내륙 지역의 마고할미는 주로 산, 하천의 창세에 관여할 때가 더 많다. 마고할미가 산을 조성했다는 전설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지만, 내륙 지역의 마고할미는 산과 친연성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 마고할미는 주로 특정 산과 연관되어 지칭되는 예가 많다. 전승 과정에서 창세신보다 산신의 성격이 강해진 것으로, 산신 좌정 후에는 혼인과 출산이 이어지기도 한다. 지리산 성모, 충청도 지역의 안가닥할무이, 경상도 지역의 다자구할마이 등은 산신 마고할미의 계승이다.

그 밖에 흥미로운 변이형으로 악행을 일삼다가 효자에게 퇴치된 강원도 삼척의 서구할미, 물의 깊이를 시험하다 한라산의 물장오리에 빠져 죽은 제주 설문대할망 이야기가 있다. 두 유형은 마고할미 신화가 신화적 신성을 상실하고 유교적 담론에 편승한 전설 또는 희화화된 민담으로 변이된 전형적 사례이다. 두 유형의 변이는 국가의 시작과 더불어 가부장 사회의 역사가 전개되면서 여신들이 소외되고 주변화되는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삼척 지역의 서구할미 유형은 ‘서구(瑞嫗)’의 의미와는 모순되게, 음이 유사한 마귀할미의 명칭과 더불어 마고할미가 악신으로 와전되는 변이의 흐름을 보인다.

분석

이 신화는 민간에서 구비전승되어 온 거인여신의 창세신화이다. 마고할미는 산, 섬, 하천, 돌, 다리, 성곽 등의 창조에 관여하였지만, 문헌에 기록되거나 국가적 제향의 대상이 되지 못한 존재이다. 유화나 선도산 성모처럼 여신의 신화가 일부 문헌에 남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 시조의 모신에게 허용된 현상이다. 무속제의에서 여신의 신화가 구송된 예도 생산신인 당금애기나 죽음 천도신인 바리공주처럼 중요한 직능신에 국한된 것이었다. <마고할미신화>는 민간에서 구비전승되는 과정에서 창조신의 지위를 상실하고 자연물 형성에 관한 지명유래전설이나 퇴치되어야 할 부정적 신격에 관한 전설로 와전되어 일찍이 신화 연구에서 소외되었다. 그러나 최근 대모신으로부터 당신으로 이어지는 여계 신성의 역사가 주목되면서 여신신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신화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졌다. 부계신화의 재편에 따른 여신의 주변화에 대한 논의와 함께, 이 신화의 변이 및 변이 요인에 대한 분석, 지역별 마고설화에 대한 특징 비교도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한국의 창세신화와 거인신화에 관한 연구가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특징

마고할미의 창세는 한국의 다른 신화에서 미륵이나 천지왕과 같은 남신이 행하는 창세와는 차별점이 있다. 남신은 천지개벽이나 일월 조정의 제1차적 창조를 하는 데 비해, 마고할미는 1차 창조 후 자연과 산천을 세상의 일부로 조성하거나 특정 지역의 지형을 형성하는 제2차적 창조 행위를 담당한다. 이렇게 1단계와 2단계의 창세가 남신과 여신으로 갈라져 이루어지는 것은 한국 창세신화의 특징이라 할 만하다. 아울러 이 현상은 한반도에서 이루어진 여신의 주변화 또는 위계 변동과도 관련이 있다.

의의

이 신화는 민간에서 구비전승되는 과정에서 신화보다는 전설의 성격이 강해졌고, 더러는 민담적 희화까지 동반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신의 창세에 관한 내용이 뚜렷하고 풍부하여 한국 창세신화의 한 국면을 밝히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아울러 여신에 관한 서사라는 점에서 한국 여성사와 여성문화의 규명에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출처

한국구비문학대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0~1988) 2-1, 568; 4-4, 813; 6-5, 174, 175.

참고문헌

마고할미 설화에 나타난 여성신 관념(강진옥, 한국민속학25, 한국민속학회, 1993), 마고할미․개양할미․설문대할망(조현설, 민족문학사연구41,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9), 여성신화연구-1(천혜숙, 민속연구1,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1991), 한국의 거인설화(권태효, 역락, 2002), 한국의 마고할미 고찰(송화섭, 역사민속학27, 한국역사민속학회, 2008), 한국의 신화(장주근, 성문각,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