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알지신화(金阏智神话)

김알지신화

한자명

金阏智神话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신라 왕족인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의 신화.

역사

김알지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 「신라본기1」과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기이1」에 그 역사와 신화가 전한다. 김알지는 탈해왕 때 대보(大輔)의 직에 있었으며 태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에는 오르지 않았던 인물이다. 김알지의 신이한 탄생담이 김씨 왕가의 시조신화로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김씨 최초로 왕이 된 미추왕 대 이후였을 것이다. 한편 김알지 전승은 성씨 시조신화 또는 문중의 역사로서 경주 김씨 문중의 족보나 문집 등을 통해서도 지속되어 왔다.

줄거리

신라 탈해왕 때 대보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가다가, 크고 밝은 빛이 시림(始林) 속에서 비치는 것을 보았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뻗쳐 있고 나뭇가지에는 황금궤가 걸려 있었다. 그 금궤 속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다. 나무 밑에서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왕이 숲으로 가서 금궤를 열었더니 한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그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면서 기뻐하여 뛰놀고 춤을 추었다. 소아(小兒)를 의미하는 알지(閼智)로 아이의 이름을 짓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김(金) 씨를 성으로 삼았다. 탈해왕은 길일을 가려 그를 태자로 책봉했지만 그는 파사왕(婆娑王)에게 양위하였다. 후에 김알지의 7대손 미추가 왕위에 올랐다. 신라의 김씨는 이 알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변이

<김알지신화>가 기록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내용면에서 차이가 있다. 외모가 출중한 사내아이의 출현에 대해서 왕이 하늘이 아들을 보내 준 것이라고 기뻐하며 거두어 길렀다는 내용은 『삼국사기』에만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새와 짐승이 이 아이의 출현을 기뻐하며 뛰놀고 춤을 추었다고 했다. 『삼국유사』는 기사 말미에서 알지 이후의 7대를 열거하고 신라 김씨가 알지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그가 김씨 왕족의 시조임을 강조하며, 계림(鷄林)으로 국호를 삼았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삼국사기』는 편년체 정사서로서 이 일을 국가나 왕실의 역사로 기록한 데 비해, 『삼국유사』는 이 일을 신이지사(神異之事)로 기록한 데서 이런 차이가 생겼다. 『삼국사기』의 경순왕 기사를 보면, 김알지가 황금궤 속에 들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설, 또는 황금 수레를 타고 왔다는 설이 당시 민간에서 널리 회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강릉 김씨 문중에서 전해 온 『명원세기(溟源世紀)』에서는 김알지 탄생 당시 태를 갈랐던 흔적이 있는 돌이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증거물을 통해서 성씨시조의 탄생을 생물학적인 사실로 합리화하느라 이런 변이가 이루어졌다. 나아가 『명원세기』에서는 성모가 김알지를 낳았다고도[聖母實誕]하였다. 이는 선도산성모의 박혁거세 출산을 모방한 신성화의 의도에서 생겨난 변이이다.

분석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는 크고 밝은 빛이 비치고 자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뻗쳐 있는 시림의 신이(神異) 속에서, 나무 위에 걸린 황금궤로부터 이 세상에 출현한다. 탈해왕이 알지를 안고 대궐로 돌아올 때 새와 짐승들이 기뻐 춤을 추었다고 하는 내용은 신화적 신이를 더하는 부분이다. 그 나무 아래에서 흰 닭이 울어서 시림을 계림으로 바꾸었고 그 후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고 하는 데서도 당시 알지의 출현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비록 김알지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7대손 미추왕 이래로 신라 역대 56왕 중 38왕이 김씨계에서 배출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김알지신화>는 망각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김알지 집단의 역사적 정체에 대해서는 ‘금’의 문화를 지니고 한반도에 도래한 집단으로 보는 입장과, 또는 선주한 토착 집단으로 보는 입장이 맞서 있다. 천강(天降), 신수(神獸), 금궤 등의 중요한 신화소들을 두루 갖춘 <김알지신화>의 계통과 상징에 관한 대한 관심도 큰 편이다.

특징

김알지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도 ‘아기’를 뜻하는 ‘알지’로 영원히 남았다. 그가 왕위에 올랐다면 ‘혁거세(赫居世)’나 ‘동명’처럼 국조신화의 주인공다운 새로운 이름과 장편 건국서사시를 얻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혁거세가 태어났을 때도 “스스로 이르기를 알지 거서간이 한번 일어났다.”라고 한 걸 보면, ‘아기’왕의 탄생으로 시작한 것은 <혁거세신화>와 다르지 않다. 알지가 탄생할 때 하늘로부터 서기가 비치고 새와 짐승이 따르고 기뻐하며 춤추었다는 것도 혁거세의 탄생과 유사한 부분이다. 백마나 백계(白鷄)와 같은 신수가 등장하는 상황도 비슷하다. 알지의 탄생을 일컬어 “혁거세가 계정에서 탄생할 때의 고사(故事)와도 같았다.”라고 한 것을 보더라도, 둘은 동일한 계통의 신화임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김알지신화>는 천강, 난생, 신수가 등장하는 한국의 다른 건국시조의 신화들과도 신화적 특징을 공유한다. 그러나 <김알지신화>는 천강이 간접적이고, 금궤가 난생을 대신하며, ‘흰 닭’의 신수가 등장하는 점에서, 다른 국조신화들과 차이가 있다.

김알지의 신화는 김씨 성씨 시조신화로서도 다른 성씨 시조신화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성씨 시조신화들에서는 ‘천강’의 요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천강의 요소는 국조나 왕에게만 허용된 신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씨 시조들은 하늘 대신 땅, 바다, 못, 바위 등에서 출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조도, 왕도 아니었던 김알지의 신화에 천강이 나타나는 것은 비록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7대손 미추를 비롯한 신라의 많은 왕들이 그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같은 성격을 지닌 <석탈해신화>에 천강의 요소가 부재한 연유는 석탈해가 바다를 건너 도래한 존재인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런 한편으로 알지와 탈해가 궤에서 나왔다는 것은 두 신화가 유사한 부분이다.

의의

<김알지신화>는 왕족의 시조신화이자 성씨 시조신화의 두 가지 성격을 지닌 신화이다. 왕가 시조이지만 자신이 직접 왕이 되지 못한 점에서 국가적 의례 및 정치적 기능 면에서는 소외되었던 신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박, 석, 김 씨 왕족의 신화 체계 속에 뚜렷한 위상을 차지한다. 신성한 숲, 신목(神木), 황금궤와 같은 보편적 신화 상징들이 나타날 뿐 아니라, ‘백계’, ‘계정’, ‘계림’에 대한 언급들을 통해 신라 문화에서 ‘닭’의 상징이 갖는 의미를 확인하게 해 주는 자료이다.

출처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增東國輿地勝覽, 명원세기(김봉기 편, 명주군왕재실, 1973).

참고문헌

맥락적 해석에 의한 김알지 신화와 신라문화의 정체성 재인식(임재해, 비교민속학33, 비교민속학회, 2007), 신라신화의 형성과 신라상고사의 한 단서(박종성, 구비문학연구13, 한국구비문학회, 2001), 한국신화의 연구(나경수, 교문사, 1994).

김알지신화

김알지신화
한자명

金阏智神话

사전위치

한국민속문학사전 > 설화 > 신화

집필자 천혜숙(千惠淑)

정의

신라 왕족인 경주 김씨 시조인 김알지의 신화.

역사

김알지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 「신라본기1」과 『삼국유사(三國遺事)』 권1, 「기이1」에 그 역사와 신화가 전한다. 김알지는 탈해왕 때 대보(大輔)의 직에 있었으며 태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에는 오르지 않았던 인물이다. 김알지의 신이한 탄생담이 김씨 왕가의 시조신화로서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은 김씨 최초로 왕이 된 미추왕 대 이후였을 것이다. 한편 김알지 전승은 성씨 시조신화 또는 문중의 역사로서 경주 김씨 문중의 족보나 문집 등을 통해서도 지속되어 왔다.

줄거리

신라 탈해왕 때 대보 호공(瓠公)이 밤에 월성(月城) 서리(西里)를 가다가, 크고 밝은 빛이 시림(始林) 속에서 비치는 것을 보았다. 자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뻗쳐 있고 나뭇가지에는 황금궤가 걸려 있었다. 그 금궤 속에서 빛이 나오고 있었다. 나무 밑에서는 흰 닭이 울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왕이 숲으로 가서 금궤를 열었더니 한 사내아이가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그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면서 기뻐하여 뛰놀고 춤을 추었다. 소아(小兒)를 의미하는 알지(閼智)로 아이의 이름을 짓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김(金) 씨를 성으로 삼았다. 탈해왕은 길일을 가려 그를 태자로 책봉했지만 그는 파사왕(婆娑王)에게 양위하였다. 후에 김알지의 7대손 미추가 왕위에 올랐다. 신라의 김씨는 이 알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변이

<김알지신화>가 기록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내용면에서 차이가 있다. 외모가 출중한 사내아이의 출현에 대해서 왕이 하늘이 아들을 보내 준 것이라고 기뻐하며 거두어 길렀다는 내용은 『삼국사기』에만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새와 짐승이 이 아이의 출현을 기뻐하며 뛰놀고 춤을 추었다고 했다. 『삼국유사』는 기사 말미에서 알지 이후의 7대를 열거하고 신라 김씨가 알지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삼국사기』는 그가 김씨 왕족의 시조임을 강조하며, 계림(鷄林)으로 국호를 삼았다는 사실을 덧붙였다. 『삼국사기』는 편년체 정사서로서 이 일을 국가나 왕실의 역사로 기록한 데 비해, 『삼국유사』는 이 일을 신이지사(神異之事)로 기록한 데서 이런 차이가 생겼다. 『삼국사기』의 경순왕 기사를 보면, 김알지가 황금궤 속에 들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설, 또는 황금 수레를 타고 왔다는 설이 당시 민간에서 널리 회자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강릉 김씨 문중에서 전해 온 『명원세기(溟源世紀)』에서는 김알지 탄생 당시 태를 갈랐던 흔적이 있는 돌이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증거물을 통해서 성씨시조의 탄생을 생물학적인 사실로 합리화하느라 이런 변이가 이루어졌다. 나아가 『명원세기』에서는 성모가 김알지를 낳았다고도[聖母實誕]하였다. 이는 선도산성모의 박혁거세 출산을 모방한 신성화의 의도에서 생겨난 변이이다.

분석

경주 김씨 시조 김알지는 크고 밝은 빛이 비치고 자줏빛 구름이 하늘로부터 뻗쳐 있는 시림의 신이(神異) 속에서, 나무 위에 걸린 황금궤로부터 이 세상에 출현한다. 탈해왕이 알지를 안고 대궐로 돌아올 때 새와 짐승들이 기뻐 춤을 추었다고 하는 내용은 신화적 신이를 더하는 부분이다. 그 나무 아래에서 흰 닭이 울어서 시림을 계림으로 바꾸었고 그 후 나라 이름으로 삼았다고 하는 데서도 당시 알지의 출현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비록 김알지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지만, 7대손 미추왕 이래로 신라 역대 56왕 중 38왕이 김씨계에서 배출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김알지신화>는 망각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김알지 집단의 역사적 정체에 대해서는 ‘금’의 문화를 지니고 한반도에 도래한 집단으로 보는 입장과, 또는 선주한 토착 집단으로 보는 입장이 맞서 있다. 천강(天降), 신수(神獸), 금궤 등의 중요한 신화소들을 두루 갖춘 <김알지신화>의 계통과 상징에 관한 대한 관심도 큰 편이다.

특징

김알지는 왕위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이름도 ‘아기’를 뜻하는 ‘알지’로 영원히 남았다. 그가 왕위에 올랐다면 ‘혁거세(赫居世)’나 ‘동명’처럼 국조신화의 주인공다운 새로운 이름과 장편 건국서사시를 얻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혁거세가 태어났을 때도 “스스로 이르기를 알지 거서간이 한번 일어났다.”라고 한 걸 보면, ‘아기’왕의 탄생으로 시작한 것은 <혁거세신화>와 다르지 않다. 알지가 탄생할 때 하늘로부터 서기가 비치고 새와 짐승이 따르고 기뻐하며 춤추었다는 것도 혁거세의 탄생과 유사한 부분이다. 백마나 백계(白鷄)와 같은 신수가 등장하는 상황도 비슷하다. 알지의 탄생을 일컬어 “혁거세가 계정에서 탄생할 때의 고사(故事)와도 같았다.”라고 한 것을 보더라도, 둘은 동일한 계통의 신화임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김알지신화>는 천강, 난생, 신수가 등장하는 한국의 다른 건국시조의 신화들과도 신화적 특징을 공유한다. 그러나 <김알지신화>는 천강이 간접적이고, 금궤가 난생을 대신하며, ‘흰 닭’의 신수가 등장하는 점에서, 다른 국조신화들과 차이가 있다.

김알지의 신화는 김씨 성씨 시조신화로서도 다른 성씨 시조신화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성씨 시조신화들에서는 ‘천강’의 요소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국에서 천강의 요소는 국조나 왕에게만 허용된 신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씨 시조들은 하늘 대신 땅, 바다, 못, 바위 등에서 출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조도, 왕도 아니었던 김알지의 신화에 천강이 나타나는 것은 비록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7대손 미추를 비롯한 신라의 많은 왕들이 그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같은 성격을 지닌 <석탈해신화>에 천강의 요소가 부재한 연유는 석탈해가 바다를 건너 도래한 존재인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런 한편으로 알지와 탈해가 궤에서 나왔다는 것은 두 신화가 유사한 부분이다.

의의

<김알지신화>는 왕족의 시조신화이자 성씨 시조신화의 두 가지 성격을 지닌 신화이다. 왕가 시조이지만 자신이 직접 왕이 되지 못한 점에서 국가적 의례 및 정치적 기능 면에서는 소외되었던 신화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라 박, 석, 김 씨 왕족의 신화 체계 속에 뚜렷한 위상을 차지한다. 신성한 숲, 신목(神木), 황금궤와 같은 보편적 신화 상징들이 나타날 뿐 아니라, ‘백계’, ‘계정’, ‘계림’에 대한 언급들을 통해 신라 문화에서 ‘닭’의 상징이 갖는 의미를 확인하게 해 주는 자료이다.

출처

三國史記, 三國遺事, 新增東國輿地勝覽, 명원세기(김봉기 편, 명주군왕재실, 1973).

참고문헌

맥락적 해석에 의한 김알지 신화와 신라문화의 정체성 재인식(임재해, 비교민속학33, 비교민속학회, 2007), 신라신화의 형성과 신라상고사의 한 단서(박종성, 구비문학연구13, 한국구비문학회, 2001), 한국신화의 연구(나경수, 교문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