횃불싸움(斗火把)

횃불싸움

한자명

斗火把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주인택(朱仁鐸)

정의

정월 대보름에 횃불을 무기로 사용하여 이웃 마을과 싸움을 하던 민속놀이.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는 거화희(炬火戱)·거화전(炬火戰)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쥐불싸움(충남)·불꽃싸움(충남)·홰싸움(전북)·불쌈(광주)·띠싸움(광주)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내용

횃불싸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호서지방의 풍속에 홰싸움[炬戰]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 놀이는 정월 14일 또는 15일 밤 쥐불놀이·달맞이·달집태우기 등과 함께 이루어진다. 인원은 일정하지 않고 마을의 대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전국적인 분포를 보면 남부 지역의 서쪽에 해당되는 호남과 호서지방에서 가장 성행했다.

횃불싸움은 정월 열나흗날 밤에 아이들이 자기 마을의 논두렁을 태우는 쥐불놀이로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은 대보름을 며칠 앞두고 홰를 만드는데, 낡아서 못쓰게 된 빗자루(수수·대나무·싸리 등) 또는 겨릅대·싸리나무·대나무에 짚 등을 둘러 감거나 쑥대를 약 1미터쯤 묶어 만든다. 필요한 수만큼의 홰를 만들어 두었다가 대보름날 밤이 되면 밖으로 가지고 나가 불을 붙여 두 손으로 돌려대고 쥐불을 놓으면서 논다.

쥐불은 점차 범위를 넓혀가면서 이웃 마을과의 경계에 다다른다. 아이들은 서로 마을의 경계 너머까지 태우려고 경쟁하다가 급기야는 이것이 횃불싸움으로 발전한다. 이와는 다른 경우로 각자 자기 마을 영역에서 쥐불놀이를 하다가 보름달이 막 솟아오르면 상대편을 놀리거나 약을 올려서 싸움을 시작하기도 한다.

쥐불놀이가 횃불싸움으로 진행되는 동기는 쥐불의 대소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과 마을의 길흉을 점치는 풍속이 있기 때문이다. 마을마다 넓은 지역에 불을 놓아 화세(火勢)를 크게 하기 위해 경쟁을 하다가 싸움으로 진전된다. 또 다른 이유로는 마을 경계를 넘어 쥐불을 놓으면 쥐들이 그 쪽으로 도망가서 농작물에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에서 불을 지르면 다른 편에서는 불을 끄는 경쟁을 하기도 한다.

횃불싸움은 용감한 소년들이 앞장서서 상대편을 향해 전진한다. 서로 들고 있던 불붙은 홰를 휘저으며 공방(攻防)을 계속하다가 한편이 밀리면 그 동네 청년들이 합류하여 전세를 역전시키고, 그러면 상대 마을의 청년들도 가담하여 본격적인 싸움이 전개된다. 청년들의 횃불싸움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서로 고함을 지르면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며, 긴 홰를 인정사정없이 휘두르기 때문에 화상을 입기 예사이며 옷에 불이 붙은 경우도 있다. 홰가 거의 다 타면 상대를 향해 던져 버리고 새로운 홰를 가지고 싸운다. 승부는 부상을 당한 사람이나 횃불을 빼앗겨 항복한 사람이 많거나 후퇴한 편이 진다. 횃불싸움은 석전(石戰)과 병행되기도 하고, 격화되면서 석전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지역사례

특이한 사례로 강원도 홍천군 동면 속초리와 성수리에서는 정초부터 석전을 해오다가 대보름날 밤에 횃불싸움으로 승부를 가리며, 북한 지역에서는 대보름날 밤 달집태우기가 끝난 뒤 횃불싸움을 벌이고 상대편의 달집 진지를 먼저 빼앗아 횃불을 드는 편이 이기는 경우도 있다.

의의

이 놀이는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시들해졌지만 1960년대까지는 전승되어 왔다.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통조림 깡통에 관솔을 넣어서 돌리는 불깡통이나 솜뭉치에 기름을 묻힌 횃불 등 도구의 변천이 있었다. 횃불싸움은 마을의 안녕과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로 진행되지만, 마을 주민들의 일체감을 고양하고 청소년들에게 용맹성을 길러주는 놀이이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조선의 민속놀이 (군중문화출판사, 1964),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69~1981), 全北傳統民俗 上卷 (全羅北道, 1989), 한국민속대사전1, 2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 민속의 세계5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

횃불싸움

횃불싸움
한자명

斗火把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주인택(朱仁鐸)

정의

정월 대보름에 횃불을 무기로 사용하여 이웃 마을과 싸움을 하던 민속놀이. 『조선의 향토오락(朝鮮の鄕土娛樂)』에는 거화희(炬火戱)·거화전(炬火戰)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지역에 따라 쥐불싸움(충남)·불꽃싸움(충남)·홰싸움(전북)·불쌈(광주)·띠싸움(광주)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내용

횃불싸움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호서지방의 풍속에 홰싸움[炬戰]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이 놀이는 정월 14일 또는 15일 밤 쥐불놀이·달맞이·달집태우기 등과 함께 이루어진다. 인원은 일정하지 않고 마을의 대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전국적인 분포를 보면 남부 지역의 서쪽에 해당되는 호남과 호서지방에서 가장 성행했다.

횃불싸움은 정월 열나흗날 밤에 아이들이 자기 마을의 논두렁을 태우는 쥐불놀이로부터 시작된다. 아이들은 대보름을 며칠 앞두고 홰를 만드는데, 낡아서 못쓰게 된 빗자루(수수·대나무·싸리 등) 또는 겨릅대·싸리나무·대나무에 짚 등을 둘러 감거나 쑥대를 약 1미터쯤 묶어 만든다. 필요한 수만큼의 홰를 만들어 두었다가 대보름날 밤이 되면 밖으로 가지고 나가 불을 붙여 두 손으로 돌려대고 쥐불을 놓으면서 논다.

쥐불은 점차 범위를 넓혀가면서 이웃 마을과의 경계에 다다른다. 아이들은 서로 마을의 경계 너머까지 태우려고 경쟁하다가 급기야는 이것이 횃불싸움으로 발전한다. 이와는 다른 경우로 각자 자기 마을 영역에서 쥐불놀이를 하다가 보름달이 막 솟아오르면 상대편을 놀리거나 약을 올려서 싸움을 시작하기도 한다.

쥐불놀이가 횃불싸움으로 진행되는 동기는 쥐불의 대소에 따라 그해 농사의 풍흉과 마을의 길흉을 점치는 풍속이 있기 때문이다. 마을마다 넓은 지역에 불을 놓아 화세(火勢)를 크게 하기 위해 경쟁을 하다가 싸움으로 진전된다. 또 다른 이유로는 마을 경계를 넘어 쥐불을 놓으면 쥐들이 그 쪽으로 도망가서 농작물에 피해를 입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에서 불을 지르면 다른 편에서는 불을 끄는 경쟁을 하기도 한다.

횃불싸움은 용감한 소년들이 앞장서서 상대편을 향해 전진한다. 서로 들고 있던 불붙은 홰를 휘저으며 공방(攻防)을 계속하다가 한편이 밀리면 그 동네 청년들이 합류하여 전세를 역전시키고, 그러면 상대 마을의 청년들도 가담하여 본격적인 싸움이 전개된다. 청년들의 횃불싸움은 전쟁을 방불케 한다. 서로 고함을 지르면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며, 긴 홰를 인정사정없이 휘두르기 때문에 화상을 입기 예사이며 옷에 불이 붙은 경우도 있다. 홰가 거의 다 타면 상대를 향해 던져 버리고 새로운 홰를 가지고 싸운다. 승부는 부상을 당한 사람이나 횃불을 빼앗겨 항복한 사람이 많거나 후퇴한 편이 진다. 횃불싸움은 석전(石戰)과 병행되기도 하고, 격화되면서 석전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지역사례

특이한 사례로 강원도 홍천군 동면 속초리와 성수리에서는 정초부터 석전을 해오다가 대보름날 밤에 횃불싸움으로 승부를 가리며, 북한 지역에서는 대보름날 밤 달집태우기가 끝난 뒤 횃불싸움을 벌이고 상대편의 달집 진지를 먼저 빼앗아 횃불을 드는 편이 이기는 경우도 있다.

의의

이 놀이는 한국전쟁을 기점으로 시들해졌지만 1960년대까지는 전승되어 왔다. 서구 문물이 들어오면서 통조림 깡통에 관솔을 넣어서 돌리는 불깡통이나 솜뭉치에 기름을 묻힌 횃불 등 도구의 변천이 있었다. 횃불싸움은 마을의 안녕과 풍작을 기원하는 의미로 진행되지만, 마을 주민들의 일체감을 고양하고 청소년들에게 용맹성을 길러주는 놀이이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조선의 민속놀이 (군중문화출판사, 1964)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69~1981)
全北傳統民俗 上卷 (全羅北道, 1989)
한국민속대사전1, 2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 민속의 세계5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