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제(太白祭)

태백제

한자명

太白祭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0월 > 양력세시

집필자 김경남(金京南)

정의

강원도 태백시에서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종합축제. 태백시는 1981년 시로 승격되면서 산발적으로 열리던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통합하여 1982년 제1회 태백제(太白祭)를 개최하여 오늘에 이른다. 천제(天祭)가 거행되는 태백산 천제단(太白山天祭壇)은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래

태백제는 원래 신라시대 태백산(太白山) 정상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낸 것에서 유래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 「신라본기(新羅本紀)」1 일성이사금조(逸聖尼師今條)에 “일성이사금 왕 5년 겨울 10월에 북쪽으로 순행하다 친히 태백산에서 천제를 올리다(逸聖尼師今 五年冬十月北巡親祀太白山).”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삼척도호부조(三陟都護府條)에는 “태백산은 삼척 도호부의 서남쪽에 있는데 신라 때 오악(五岳) 가운데 북악(北岳)이라 하였다. 산꼭대기에는 신사(神祠)가 있는데 이름하여 태백천왕당(太伯天王堂)이라 한다. 여러 고을 백성들이 봄, 가을로 천제를 올린다.”라고 하였다.

성현(成俔)의 『허백당집(虛白堂集)』에는 “그 산은 동쪽으로 뻗어 동해를 임하여 삼척부가 있고 삼도(三道) 사람들이 산정에 신당을 짓고 신상을 만들어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산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제사를 지낸 후에 신사 앞에 소를 매어두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갔다가 3일 만에 와서 몰고 가는 습속이 있었다. 소를 두고 갈 때 뒤를 돌아보면 신의 벌을 받는다고 하여 금기를 지켰다고 하는데 소를 두고 가는 풍속을 퇴우(退牛)라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삼척도호부조(三陟都護府條)에는 “신라 파사왕 때 태백산 정상에 단을 쌓고 청우(靑牛)를 제물로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이후 중사(中祀)로서 나라에서 제를 올렸으며 그 뒤 산 정상에 천왕당(天王堂)이라고 하는 태백산사(太白山祠)를 짓고 경상도와 강원도 인근의 주민들이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다”라고 하였다. 이는 태백제의 기원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하늘과 산신에게 지내던 이러한 제의는 구한말 민족의 수난기에 제의의 대상이 단군으로 바뀌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매년 개천절(開天節)에 봉행하여 오다가 오늘에 이른다.

내용

태백제의 주최는 태백제전위원회이다. 그리고 축제의 주관은 태백문화원, 예총태백지부, 민예총태백지부에서 맡아서 민간주도형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태백제가 시작되었던 1980년대의 주요 행사로는 단군제, 태백산신제, 산업전사위령제 등의 제례 행사, 백일장, 웅변대회, 노래자랑, 가장행렬 등의 문예경축 행사, 굿마당, 씨름, 윷놀이, 갈풀썰이, 지게싸움놀이 등의 전통민속 행사가 있었으나, 개편을 거듭하여 2005년에는 천제, 단군제, 산신제 등의 제례와 한밝백일장, 주부가요제, 국악공연, 전국사진공모전, 서예전시회, 사생대회 등의 문예 행사가 개최되었다. 또 씨름, 널뛰기, 통나무자르기, 배추쌓기, 갱목나르기, 동별장기자랑 등의 체육 행사도 개최되었다.

의의

태백제는 시민의 단결과 화합을 꾀하고 전래의 민속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향토 축제이자 시민축제이다.

참고문헌

東國輿地勝覽, 三國史記, 世宗實錄, 虛白堂集, 한국의 축제 (문화예술총서8, 韓國文化藝術振興院, 1987), 태백산의 천제 (김강산, 강원민속학15, 강원도민속학회, 2001)

태백제

태백제
한자명

太白祭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0월 > 양력세시

집필자 김경남(金京南)

정의

강원도 태백시에서 해마다 10월에 열리는 종합축제. 태백시는 1981년 시로 승격되면서 산발적으로 열리던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통합하여 1982년 제1회 태백제(太白祭)를 개최하여 오늘에 이른다. 천제(天祭)가 거행되는 태백산 천제단(太白山天祭壇)은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래

태백제는 원래 신라시대 태백산(太白山) 정상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낸 것에서 유래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 「신라본기(新羅本紀)」1 일성이사금조(逸聖尼師今條)에 “일성이사금 왕 5년 겨울 10월에 북쪽으로 순행하다 친히 태백산에서 천제를 올리다(逸聖尼師今 五年冬十月北巡親祀太白山).”라고 기록하고 있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삼척도호부조(三陟都護府條)에는 “태백산은 삼척 도호부의 서남쪽에 있는데 신라 때 오악(五岳) 가운데 북악(北岳)이라 하였다. 산꼭대기에는 신사(神祠)가 있는데 이름하여 태백천왕당(太伯天王堂)이라 한다. 여러 고을 백성들이 봄, 가을로 천제를 올린다.”라고 하였다.

성현(成俔)의 『허백당집(虛白堂集)』에는 “그 산은 동쪽으로 뻗어 동해를 임하여 삼척부가 있고 삼도(三道) 사람들이 산정에 신당을 짓고 신상을 만들어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산신을 모시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제사를 지낸 후에 신사 앞에 소를 매어두고 뒤를 돌아보지 않고 갔다가 3일 만에 와서 몰고 가는 습속이 있었다. 소를 두고 갈 때 뒤를 돌아보면 신의 벌을 받는다고 하여 금기를 지켰다고 하는데 소를 두고 가는 풍속을 퇴우(退牛)라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삼척도호부조(三陟都護府條)에는 “신라 파사왕 때 태백산 정상에 단을 쌓고 청우(靑牛)를 제물로 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 “이후 중사(中祀)로서 나라에서 제를 올렸으며 그 뒤 산 정상에 천왕당(天王堂)이라고 하는 태백산사(太白山祠)를 짓고 경상도와 강원도 인근의 주민들이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다”라고 하였다. 이는 태백제의 기원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하늘과 산신에게 지내던 이러한 제의는 구한말 민족의 수난기에 제의의 대상이 단군으로 바뀌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자 매년 개천절(開天節)에 봉행하여 오다가 오늘에 이른다.

내용

태백제의 주최는 태백제전위원회이다. 그리고 축제의 주관은 태백문화원, 예총태백지부, 민예총태백지부에서 맡아서 민간주도형의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태백제가 시작되었던 1980년대의 주요 행사로는 단군제, 태백산신제, 산업전사위령제 등의 제례 행사, 백일장, 웅변대회, 노래자랑, 가장행렬 등의 문예경축 행사, 굿마당, 씨름, 윷놀이, 갈풀썰이, 지게싸움놀이 등의 전통민속 행사가 있었으나, 개편을 거듭하여 2005년에는 천제, 단군제, 산신제 등의 제례와 한밝백일장, 주부가요제, 국악공연, 전국사진공모전, 서예전시회, 사생대회 등의 문예 행사가 개최되었다. 또 씨름, 널뛰기, 통나무자르기, 배추쌓기, 갱목나르기, 동별장기자랑 등의 체육 행사도 개최되었다.

의의

태백제는 시민의 단결과 화합을 꾀하고 전래의 민속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향토 축제이자 시민축제이다.

참고문헌

東國輿地勝覽, 三國史記, 世宗實錄, 虛白堂集
한국의 축제 (문화예술총서8, 韓國文化藝術振興院, 1987)
태백산의 천제 (김강산, 강원민속학15, 강원도민속학회,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