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고사(七夕告祀)

한자명

七夕告祀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이수자(李秀子)

정의

음력 7월 7일인 칠석날 행하는 의례를 가리키는 말. 지역에 따라 고사(告祀), 칠석고사(七夕告祀), 칠석맞이(七夕-), 칠석불공(七夕佛供), 칠석불공 드리기, 칠석제(七夕祭), 칠석제사(七夕祭祀), 칠성고사(七星告祀), 칠성맞이(七星-), 칠성맞이고사, 칠성불공(七星佛供), 칠성불공 드리기, 칠성위하기, 칠성제(七星祭), 칠성제 올리기, 칠성제 지내기, 터 위하기, 터주에 밀떡 올리기, 천신(薦新), 고사천신(告祀薦新), 용신제(龍神祭) 같이 다양하게 말해지고 있으나 칠석고사와 칠성고사가 가장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내용 및 지역사례

칠석고사(七夕告祀)의 내용} 칠석고사는 대체로 부녀자들이 행한다는 특징이 있으며, 대개 칠월 칠석날 아침 혹은 저녁에 행해지지만 간혹 전날 저녁에 행하는 곳도 있다. 전국에 걸쳐 행해지던 칠석고사는 성격상 절에 가서 불공 드리기, 만신(무당) 집에 가서 굿하기, 집안의 장광에서 하늘의 북두칠성에게 자손의 장수를 기원하기, 바느질이나 길쌈이 잘 되기를 기원하기, 집안에서 조상신이나 가신(家神)들에게 안택을 기원하기, 용신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일이나 만신집에서 칠석맞이굿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간단히 집에서 제물을 차려놓고 비손을 하며 기원을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불자들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데, 절에 갈 때는 쌀, 돈, 양초, 향 등을 가지고 간다. 스님은 제단에 칠성메(칠성밥)와 과일을 차려놓고 신도들을 위해 목탁을 두드리며 축원해 준다. 충남 당진군 순성면 광천리 대광천마을에서는 칠월 초하루부터 초이레까지 절에 가서 칠성불공을 드렸다고 하며, 전남에서는 대개 절의 칠성당에서 자식들의 명과 복을 빌었다고 한다.

굿은 주로 단골로 가는 만신(무속인)이 있는 경우에 한다. 칠석날 만신이 간단한 축원을 해주는데, 이를 칠석굿, 칠석맞이굿, 칠성맞이, 칠성맞이굿이라 한다.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에서 자료가 수집되는데, 아마도 전국적으로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황해도에서는 이날 칠성님을 모시는데, 무명다리에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서 걸어놓고 칠성님께 명을 빌었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한정마을에서는 아침에 집에서 간단히 술과 밀전으로 천신을 하고 과일, 쌀, 백설기, 무나물, 숙주나물, 향, 초 등을 가지고 만신집에 가서 칠성맞이굿을 하면서 북두칠성에게 소원을 빌었다. 화성시 송산면 쌍정 2리에서는 동네에 있는 만신집에 칠석맞이굿을 하러 갈 때 “액맥이 풀러 가자”라고 했으며, 명다리(시엉)를 건 사람은 정월맞이, 봄꽃맞이, 칠석맞이, 시월 상달맞이 같은 굿을 무당집에서 했다.

칠석 전날 저녁 혹은 칠석날 아침이나 저녁에 부녀자들이 뒤꼍의 장광, 장독대에 제물을 차려놓고 하늘의 북두칠성에게 가족의 장수나 집안의 평안과 풍농을 기원하였다. 이는 전국에 걸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칠성을 위하면 자손에게 좋다고 여겨 이것을 행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것은 북두칠성이 인간의 생명이나 수명을 점지한다고 믿는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치성을 드릴 때 제물은 정화수만을 놓거나 혹은 메, 백설기, 햇밀을 갈아 만든 밀떡과 호박을 넣은 밀부침개 그리고 참외와 같은 햇과일을 함께 올린다. 이때가 바로 보리나 밀을 수확한 직후라 밀떡이나 밀부침개(밀전병) 등을 제물로 올리는 곳이 많았다. 몇 가지 지역별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칠석고사(七夕告祀)의 지역사례} 황해도 지역에서는 햇밀이 나면 연자매로 가루를 내어 칠석날 애호박을 잘게 썰어 넣고 밀전병을 만들고 밀범벅과 수박, 참외를 대청마루와 장독대에 놓고 칠성님을 위하면서 자식들의 명을 빈다. 함경남도에서는 대체로 주부가 칠석날 밤에 북두칠성에게 아이들의 무사성장과 집안의 평안을 비는데, 산이나 냇가, 소나무 밑에 가서 고사를 지내는 집도 있고 집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집에서 칠성기도를 하는 경우에는 냇가에 가서 고운 물모래를 가져다 마당에 깔고, 산에서 솔가지를 꺾어놓고 흰쌀로 지은 메를 솥째 올리고 정화수, 무채(무나물) 등도 곁들이지만, 비린 것은 쓰지 않는다. 사방에 일곱 번씩 절하고 식구수대로 소지를 올린다.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안골마을에서는 칠석날 쌀 한 말을 빻아서 칠성시루라 하여 백설기를 만들고, 밀떡을 부쳐 칠성맞이 고사를 한 후 이웃끼리 돌려 먹는다.

충북 괴산군 장연면 광진리 잿골마을과 조곡리 사실마을에서는 상에 흰 종이를 깔고 백설기 한 시루와 청수 한 그릇, 통북어마리를 놓고 칠성제(칠석제)를 지낸다. 옥천군 군북면 막지리에서는 정초에 토정비결을 통해 한 해 운수가 나쁠 것으로 점쳐지면 칠석날 해질 무렵 흰설기, 삼색실과, 정화수를 장광과 부엌 찬장에 진설하고 촛불을 켠 후 사방에 재배하고, 자식들의 건강과 집안일, 농사가 잘 되도록 빌었으며, 남편의 눈을 환하고 밝게 해주기를 기원한다.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 새말에서는 칠석날 집안에 칠성단을 만들기도 하고, 산이나 냇가와 같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몰래 칠성단을 만들어 칠성제를 지내기도 하는데, 단에는 떡시루와 청수를 준비한다. 한수면 송계리 구여곡마을에서는 저녁에 칠성이 뜨기 전 북쪽을 향해 가정의 행운을 빈다. 시루는 쓰지 않으며, 국수와 밀전병 같은 음식을 놓고 제를 지낸다.

충남 공주시, 금산군, 연기군 일대에서는 칠성위하기를 초엿샛날 저녁에 하는 것이 특징이다.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서는 저녁에 시루를 마련하여 장광에 올리고 메, 미역국, 청수를 함께 놓고 사방에 절을 한 후 칠성소지를 올리고 이어서 식구수대로 소지를 올린다. 금산군 군북면 두두 1리 헌대리마을에서는 이 외에 대문 앞에 솔잎을 꿴 왼새끼 금줄을 꼬아 거는 것이 다르다. 복수면 다복마을에서는 엿샛날 저녁에 주부가 목욕재계를 하고, 떡을 쪄서 청수와 같이 장광의 한쪽에 짚을 가지런히 깔고 그 위에 놓는다. 그리고 칠석날에는 아침에 밥을 해서 양푼에 담아 장광에 가져다 두는데, 양푼에는 식구수대로 숟가락을 꽂아 나물과 함께 놓고 자손의 안녕을 기원한다. 보령시 웅천읍 노천리 가리티마을이나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 서원마을에서는 칠성 위하기를 할 때 주부가 월경을 하면 부정하다 하여 칠석제를 뒤로 물린다.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서면에서는 집집마다 장독대 앞에 칠성당이라고 하여 넓은 돌을 놓아두고, 칠석날 이곳에 음식을 차려 칠석제를 지낸다. 동산면 조양 2리 밭치리마을에서는 칠석제를 할 때 장독대에는 황토를 깔지 않지만, 대문에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놓는다. 서면 덕두원 1리에서는 주부가 목욕재계를 하고 밤 12시에 칠석제를 지내는데,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가장은 산제당에 가서 산치성을 드린다. 화천군 화천읍 신읍 1리 동지화마을에서는 장독대 앞에 칠성단을 만들고 저녁에 밀떡과 정화수를 놓고 간단히 치성을 드리며, 금줄이나 황토는 치지 않는다.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개젖마을에서는 자식이 귀해 칠성을 모시는 집에서는 삼월 삼짓날, 사월 초파일과 함께 칠월 칠석날이면 집안에 모시고 있는 칠성단지에 고사를 지낸다.경북 상주에서는 칠성단에 참기름으로 불을 켜서 자손들의 장수와 명복을 빌고 점장이를 찾아 아이를 바위, 나무 등에 팔기도 한다. 북두칠성을 향하여 물을 떠놓고 마당에서 소지올리고 절을 한다.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에서는 칠성제를 지내는데, 북두칠성을 대상으로 한 칠원성군제로 지낸다.

해질 무렵 부녀자들이 제상에 바늘과 실, 실패 등을 올려놓고 바느질과 길쌈 솜씨를 좋게 해주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이것은 간혹 칠석에 북두칠성에게 가족의 장수와 집안의 평안, 풍농을 기원하는 것과 병행하여 행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풍속은 충북, 경북, 경남 등에서 많이 행해졌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에서는 칠석날 칠성단을 모시고 여기에 청수와 떡시루를 놓고 칠성제를 지내며, 처녀들은 저녁에 바느질 솜씨가 늘게 해달라고 빌었다. 영동군 매곡면 수동리에서는 해질 무렵 마당에 바느질감을 흩어놓고 한 구석에 백설기와 정화수를 진설하고, 촛불을 켠 후 사방을 향해 재배하면서 “칠석님께 비나이다. 칠석님께 비나이다. 아무쪼록 베 짜는 기술이 날로 늘어 더욱 일이 많게 해 주시옵고, 또 우리 가족이 평안하게 해 주십시오.” 하며 비손했다. 비손을 한 후에는 마당에 누워 북두칠성을 보았는데, 북두칠성이 입안 가득 들어오기를 기원하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고 한다.

칠석에 집안의 여러 가신(家神)과 조상신에게 고사를 지내는데, 경기도, 충남, 강원도에서는 지난 가을에 햅쌀을 따로 담아 보관하여 놓았던 성주단지나 제석단지의 쌀로 밥을 짓거나 떡을 하여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경기도 시흥시 신현동과 포동의 새우개에서는 밀부침개를 하여 성주와 터주신에 갖다 놓고, 마당에는 도당할머니와 할아버지 몫으로 술 한 잔과 부침개, 무나물 등을 따로 차려 도당을 향해 놓았다. 안양시 만안구 삼막마을에서는 고사떡을 집안의 성주와 위하던 항아리에 올리고 터줏가리에는 밀떡과 참외를 올리고 안택고사를 지낸다. 수원시 팔달구 의상마을에서는 호박을 넣은 밀떡과 아무것도 넣지 않은 하얀 밀떡을 부쳐 성주와 터줏가리 등에 올려 천신을 하고, 우물에도 제물을 놓고 물이 잘 나오기를 기원하는 우물고사를 지냈다. 충남 연기군 전의면 읍내리 북동네 마을에서는 칠석날을 명절이라 하여 흰쌀밥과 미역국, 호박나물, 가지나물 등을 볶아서 먹는다. 이때 쌀은 성주단지가 있으면 그것을 헐거나 제석쌀을 덜어서 밥을 짓고, 미역국은 고기를 넣지 않고 맑은 장국으로 끓이는데, 밥 한 그릇과 청수 한 그릇을 장광에 올렸다가 내려서 먹는다. 충남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 큰말에서는 타작할 때 수지 벼를 떠서 집안 깨끗한 곳에 모셨다가 이것으로 칠석날 방아를 빻아 깨끗한 곳에 가지고 가 집안의 무사태평을 빈다. 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 2리 안마을에서는 가을에 햅쌀을 담아 터주와 성주, 지석(제석)을 모시는데, 특히 칠석에는 지석동이(원귀동이)의 쌀로 백설기를 만들어 가족끼리 먹는다. 비어 있는 지석동이에는 가을에 처음 수확한 쌀을 넣는다. 경북 봉화, 예천, 안동에서는 외(참외), 수박으로 조상께 제사 지내고, 김천, 월성에서는 죽은 부모형제의 영혼을 위로한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석문마을에서는 칠석날 아침에 참외, 수박 같은 여름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신께 제를 지낸다.

유월 용날, 혹은 유두에 용신제를 지내는 곳이 많은데, 경남 지역에서는 칠월 칠석에도 용신제를 지냈다. 용신제는 ‘용왕먹인다’, ‘용왕제’, ‘용왕산제’, ‘물산제’라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 안주인이 아닌 바깥주인이 지내는 곳도 있고, 지내는 시간도 새벽과 저녁으로 나뉜다. 경남 의령에서는 유두보다 칠석용왕을 강조하고 있으며, 통영시 욕지면에서는 안주인이 저녁에 용신제를 하는 반면 통영시 사량면, 부산광역시 창선동에서는 남자주인 혹은 머슴이 저녁에 지낸다. 용신제는 주인이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논두렁에 가서 제수를 차리고 곡식이 잘 되기를 비는데, 사량과 같은 곳에서는 물구멍 옆의 논두렁에 추린 짚단을 펴고 그 위에 음식을 차리고 술잔을 채워 산 쪽을 향해 고사를 지내며 농사가 잘 되기를 빈다. 음식은 논두렁에 그대로 두는데, 그러면 농부들이나 아이들이 와서 나눠 먹었다. 칠석의 용신제는 대개 밀개떡, 밀부침이(전), 장어 등을 제물로 쓰는데, 장어는 벼 이삭이 장어처럼 굵고 길어지라는 뜻에서 토막을 내지 않고 통째로 굽거나 쪄서 사용한다.

경기도 오산의 부산동이나 평택시 현덕면 기산 1리에서는 칠성주머니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광목이나 비단, 창호지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햅쌀을 넣어 안방 벽에다 걸어놓았다가 칠석날 아침에 햅쌀을 꺼내 밥을 지어 미역국, 나물과 함께 주머니 밑에 차려놓았다가 먹는다. 주머니는 빨거나 새로 만들어놓았다가 가을에 햅쌀이 나오면 채워서 걸어둔다. 이천시 산대마을에서는 칠석날 집집마다 떡을 하여 마을에 있는 큰 향나무에 천신한 다음 나누어 먹었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 2리에서는 칠석날 아낙네들이 산에 가서 치성을 드리거나 물가에서 밥을 하여 제물을 올려서 치성을 드렸다.

경북 안동에서는 까마귀밥을 해서 담에 올려놓았다. 경북 고령, 봉화에서는 농작물의 결실을 위하여 죽은 사람의 영혼을 추모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당골마을에서는 칠석제를 지낼 때 집 근처나 산에 미리 정해 놓은 칠성바위에 초를 일곱 개를 켜고, 칠색 천을 바위에 묶어놓고 제물로 깨끗한 물과 삼색 나물을 놓고 마지막에 소지를 하며 무병장수를 빈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평소에도 수시로 칠성에게 치성을 드렸다.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마을의 경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이날 논두렁에 메, 떡, 나물, 생선 등을 차려놓고 그해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며 비손을 한다. 제물로 사용하는 생선은 숭어와 마티미는 올리지 않는데, 숭어는 머리가 뱀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경남 사천시 동서동 신수도에서는 칠석날 칠성고사를 지내는데, 유두 때 밭에서 고사를 지냈다면, 칠석 때에는 논에 가서 고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섬에는 논이 없기 때문에 이날도 다시 밭에 나가 고사를 지내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집을 나가서 언제 죽었는지 몰라 제삿날을 모르는 사람의 망제(忘祭)를 그 분의 생일이나 9월 9일에 많이 지내는데, 경남 양산에서는 7월 7일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69~1981), 韓國歲時風俗硏究 (任東權, 集文堂, 1985), 全南의 歲時風俗 (全羅南道 鄕土文化叢書29, 全羅南道, 1988), 民俗誌 (江原道, 1989), 安城郡誌 (安城郡誌編簒委員會, 安城郡, 1990), 한국민속대사전2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濟州道誌3 (濟州道, 1993), 서울民俗大觀 3-세시풍속과 놀이 編 (서울特別市, 1993), 韓國의 歲時風俗Ⅰ (국립민속박물관, 1997), 北韓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97), 삼척민속지1~5 (김진순, 삼척문화원, 1997~2002), 함경도의 민속 (전경욱,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9), 경기민속지Ⅲ (경기도박물관, 2000),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2003)

칠석고사

칠석고사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7월 > 정일

집필자 이수자(李秀子)

정의

음력 7월 7일인 칠석날 행하는 의례를 가리키는 말. 지역에 따라 고사(告祀), 칠석고사(七夕告祀), 칠석맞이(七夕-), 칠석불공(七夕佛供), 칠석불공 드리기, 칠석제(七夕祭), 칠석제사(七夕祭祀), 칠성고사(七星告祀), 칠성맞이(七星-), 칠성맞이고사, 칠성불공(七星佛供), 칠성불공 드리기, 칠성위하기, 칠성제(七星祭), 칠성제 올리기, 칠성제 지내기, 터 위하기, 터주에 밀떡 올리기, 천신(薦新), 고사천신(告祀薦新), 용신제(龍神祭) 같이 다양하게 말해지고 있으나 칠석고사와 칠성고사가 가장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내용 및 지역사례

칠석고사(七夕告祀)의 내용} 칠석고사는 대체로 부녀자들이 행한다는 특징이 있으며, 대개 칠월 칠석날 아침 혹은 저녁에 행해지지만 간혹 전날 저녁에 행하는 곳도 있다. 전국에 걸쳐 행해지던 칠석고사는 성격상 절에 가서 불공 드리기, 만신(무당) 집에 가서 굿하기, 집안의 장광에서 하늘의 북두칠성에게 자손의 장수를 기원하기, 바느질이나 길쌈이 잘 되기를 기원하기, 집안에서 조상신이나 가신(家神)들에게 안택을 기원하기, 용신제 등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절에서 불공을 드리는 일이나 만신집에서 칠석맞이굿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간단히 집에서 제물을 차려놓고 비손을 하며 기원을 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불자들은 절에 가서 불공을 드리는데, 절에 갈 때는 쌀, 돈, 양초, 향 등을 가지고 간다. 스님은 제단에 칠성메(칠성밥)와 과일을 차려놓고 신도들을 위해 목탁을 두드리며 축원해 준다. 충남 당진군 순성면 광천리 대광천마을에서는 칠월 초하루부터 초이레까지 절에 가서 칠성불공을 드렸다고 하며, 전남에서는 대개 절의 칠성당에서 자식들의 명과 복을 빌었다고 한다.

굿은 주로 단골로 가는 만신(무속인)이 있는 경우에 한다. 칠석날 만신이 간단한 축원을 해주는데, 이를 칠석굿, 칠석맞이굿, 칠성맞이, 칠성맞이굿이라 한다. 황해도, 경기도, 충청도에서 자료가 수집되는데, 아마도 전국적으로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황해도에서는 이날 칠성님을 모시는데, 무명다리에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서 걸어놓고 칠성님께 명을 빌었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한정마을에서는 아침에 집에서 간단히 술과 밀전으로 천신을 하고 과일, 쌀, 백설기, 무나물, 숙주나물, 향, 초 등을 가지고 만신집에 가서 칠성맞이굿을 하면서 북두칠성에게 소원을 빌었다. 화성시 송산면 쌍정 2리에서는 동네에 있는 만신집에 칠석맞이굿을 하러 갈 때 “액맥이 풀러 가자”라고 했으며, 명다리(시엉)를 건 사람은 정월맞이, 봄꽃맞이, 칠석맞이, 시월 상달맞이 같은 굿을 무당집에서 했다.

칠석 전날 저녁 혹은 칠석날 아침이나 저녁에 부녀자들이 뒤꼍의 장광, 장독대에 제물을 차려놓고 하늘의 북두칠성에게 가족의 장수나 집안의 평안과 풍농을 기원하였다. 이는 전국에 걸쳐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칠성을 위하면 자손에게 좋다고 여겨 이것을 행한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것은 북두칠성이 인간의 생명이나 수명을 점지한다고 믿는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치성을 드릴 때 제물은 정화수만을 놓거나 혹은 메, 백설기, 햇밀을 갈아 만든 밀떡과 호박을 넣은 밀부침개 그리고 참외와 같은 햇과일을 함께 올린다. 이때가 바로 보리나 밀을 수확한 직후라 밀떡이나 밀부침개(밀전병) 등을 제물로 올리는 곳이 많았다. 몇 가지 지역별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칠석고사(七夕告祀)의 지역사례} 황해도 지역에서는 햇밀이 나면 연자매로 가루를 내어 칠석날 애호박을 잘게 썰어 넣고 밀전병을 만들고 밀범벅과 수박, 참외를 대청마루와 장독대에 놓고 칠성님을 위하면서 자식들의 명을 빈다. 함경남도에서는 대체로 주부가 칠석날 밤에 북두칠성에게 아이들의 무사성장과 집안의 평안을 비는데, 산이나 냇가, 소나무 밑에 가서 고사를 지내는 집도 있고 집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집에서 칠성기도를 하는 경우에는 냇가에 가서 고운 물모래를 가져다 마당에 깔고, 산에서 솔가지를 꺾어놓고 흰쌀로 지은 메를 솥째 올리고 정화수, 무채(무나물) 등도 곁들이지만, 비린 것은 쓰지 않는다. 사방에 일곱 번씩 절하고 식구수대로 소지를 올린다. 경기도 의왕시 고천동 안골마을에서는 칠석날 쌀 한 말을 빻아서 칠성시루라 하여 백설기를 만들고, 밀떡을 부쳐 칠성맞이 고사를 한 후 이웃끼리 돌려 먹는다.

충북 괴산군 장연면 광진리 잿골마을과 조곡리 사실마을에서는 상에 흰 종이를 깔고 백설기 한 시루와 청수 한 그릇, 통북어 한 마리를 놓고 칠성제(칠석제)를 지낸다. 옥천군 군북면 막지리에서는 정초에 토정비결을 통해 한 해 운수가 나쁠 것으로 점쳐지면 칠석날 해질 무렵 흰설기, 삼색실과, 정화수를 장광과 부엌 찬장에 진설하고 촛불을 켠 후 사방에 재배하고, 자식들의 건강과 집안일, 농사가 잘 되도록 빌었으며, 남편의 눈을 환하고 밝게 해주기를 기원한다.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 새말에서는 칠석날 집안에 칠성단을 만들기도 하고, 산이나 냇가와 같이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몰래 칠성단을 만들어 칠성제를 지내기도 하는데, 단에는 떡시루와 청수를 준비한다. 한수면 송계리 구여곡마을에서는 저녁에 칠성이 뜨기 전 북쪽을 향해 가정의 행운을 빈다. 시루는 쓰지 않으며, 국수와 밀전병 같은 음식을 놓고 제를 지낸다.

충남 공주시, 금산군, 연기군 일대에서는 칠성위하기를 초엿샛날 저녁에 하는 것이 특징이다. 공주시 우성면 도천리에서는 저녁에 시루를 마련하여 장광에 올리고 메, 미역국, 청수를 함께 놓고 사방에 절을 한 후 칠성소지를 올리고 이어서 식구수대로 소지를 올린다. 금산군 군북면 두두 1리 헌대리마을에서는 이 외에 대문 앞에 솔잎을 꿴 왼새끼 금줄을 꼬아 거는 것이 다르다. 복수면 다복마을에서는 엿샛날 저녁에 주부가 목욕재계를 하고, 떡을 쪄서 청수와 같이 장광의 한쪽에 짚을 가지런히 깔고 그 위에 놓는다. 그리고 칠석날에는 아침에 밥을 해서 양푼에 담아 장광에 가져다 두는데, 양푼에는 식구수대로 숟가락을 꽂아 나물과 함께 놓고 자손의 안녕을 기원한다. 보령시 웅천읍 노천리 가리티마을이나 부여군 부여읍 저석리 서원마을에서는 칠성 위하기를 할 때 주부가 월경을 하면 부정하다 하여 칠석제를 뒤로 물린다.

강원도 춘천시 동산면, 서면에서는 집집마다 장독대 앞에 칠성당이라고 하여 넓은 돌을 놓아두고, 칠석날 이곳에 음식을 차려 칠석제를 지낸다. 동산면 조양 2리 밭치리마을에서는 칠석제를 할 때 장독대에는 황토를 깔지 않지만, 대문에는 금줄을 치고 황토를 깔아놓는다. 서면 덕두원 1리에서는 주부가 목욕재계를 하고 밤 12시에 칠석제를 지내는데,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린다. 가장은 산제당에 가서 산치성을 드린다. 화천군 화천읍 신읍 1리 동지화마을에서는 장독대 앞에 칠성단을 만들고 저녁에 밀떡과 정화수를 놓고 간단히 치성을 드리며, 금줄이나 황토는 치지 않는다. 원주시 호저면 고산리 개젖마을에서는 자식이 귀해 칠성을 모시는 집에서는 삼월 삼짓날, 사월 초파일과 함께 칠월 칠석날이면 집안에 모시고 있는 칠성단지에 고사를 지낸다.경북 상주에서는 칠성단에 참기름으로 불을 켜서 자손들의 장수와 명복을 빌고 점장이를 찾아 아이를 바위, 나무 등에 팔기도 한다. 북두칠성을 향하여 물을 떠놓고 마당에서 소지올리고 절을 한다.

제주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리에서는 칠성제를 지내는데, 북두칠성을 대상으로 한 칠원성군제로 지낸다.

해질 무렵 부녀자들이 제상에 바늘과 실, 실패 등을 올려놓고 바느질과 길쌈 솜씨를 좋게 해주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이것은 간혹 칠석에 북두칠성에게 가족의 장수와 집안의 평안, 풍농을 기원하는 것과 병행하여 행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풍속은 충북, 경북, 경남 등에서 많이 행해졌다.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에서는 칠석날 칠성단을 모시고 여기에 청수와 떡시루를 놓고 칠성제를 지내며, 처녀들은 저녁에 바느질 솜씨가 늘게 해달라고 빌었다. 영동군 매곡면 수동리에서는 해질 무렵 마당에 바느질감을 흩어놓고 한 구석에 백설기와 정화수를 진설하고, 촛불을 켠 후 사방을 향해 재배하면서 “칠석님께 비나이다. 칠석님께 비나이다. 아무쪼록 베 짜는 기술이 날로 늘어 더욱 일이 많게 해 주시옵고, 또 우리 가족이 평안하게 해 주십시오.” 하며 비손했다. 비손을 한 후에는 마당에 누워 북두칠성을 보았는데, 북두칠성이 입안 가득 들어오기를 기원하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고 한다.

칠석에 집안의 여러 가신(家神)과 조상신에게 고사를 지내는데, 경기도, 충남, 강원도에서는 지난 가을에 햅쌀을 따로 담아 보관하여 놓았던 성주단지나 제석단지의 쌀로 밥을 짓거나 떡을 하여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경기도 시흥시 신현동과 포동의 새우개에서는 밀부침개를 하여 성주와 터주신에 갖다 놓고, 마당에는 도당할머니와 할아버지 몫으로 술 한 잔과 부침개, 무나물 등을 따로 차려 도당을 향해 놓았다. 안양시 만안구 삼막마을에서는 고사떡을 집안의 성주와 위하던 항아리에 올리고 터줏가리에는 밀떡과 참외를 올리고 안택고사를 지낸다. 수원시 팔달구 의상마을에서는 호박을 넣은 밀떡과 아무것도 넣지 않은 하얀 밀떡을 부쳐 성주와 터줏가리 등에 올려 천신을 하고, 우물에도 제물을 놓고 물이 잘 나오기를 기원하는 우물고사를 지냈다. 충남 연기군 전의면 읍내리 북동네 마을에서는 칠석날을 명절이라 하여 흰쌀밥과 미역국, 호박나물, 가지나물 등을 볶아서 먹는다. 이때 쌀은 성주단지가 있으면 그것을 헐거나 제석쌀을 덜어서 밥을 짓고, 미역국은 고기를 넣지 않고 맑은 장국으로 끓이는데, 밥 한 그릇과 청수 한 그릇을 장광에 올렸다가 내려서 먹는다. 충남 제천시 금성면 구룡리 큰말에서는 타작할 때 수지 벼를 떠서 집안 깨끗한 곳에 모셨다가 이것으로 칠석날 방아를 빻아 깨끗한 곳에 가지고 가 집안의 무사태평을 빈다. 강원도 철원군 서면 와수 2리 안마을에서는 가을에 햅쌀을 담아 터주와 성주, 지석(제석)을 모시는데, 특히 칠석에는 지석동이(원귀동이)의 쌀로 백설기를 만들어 가족끼리 먹는다. 비어 있는 지석동이에는 가을에 처음 수확한 쌀을 넣는다. 경북 봉화, 예천, 안동에서는 외(참외), 수박으로 조상께 제사 지내고, 김천, 월성에서는 죽은 부모형제의 영혼을 위로한다. 경남 하동군 화개면 석문마을에서는 칠석날 아침에 참외, 수박 같은 여름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신께 제를 지낸다.

유월 용날, 혹은 유두에 용신제를 지내는 곳이 많은데, 경남 지역에서는 칠월 칠석에도 용신제를 지냈다. 용신제는 ‘용왕먹인다’, ‘용왕제’, ‘용왕산제’, ‘물산제’라고도 한다. 지역에 따라 안주인이 아닌 바깥주인이 지내는 곳도 있고, 지내는 시간도 새벽과 저녁으로 나뉜다. 경남 의령에서는 유두보다 칠석용왕을 강조하고 있으며, 통영시 욕지면에서는 안주인이 저녁에 용신제를 하는 반면 통영시 사량면, 부산광역시 창선동에서는 남자주인 혹은 머슴이 저녁에 지낸다. 용신제는 주인이 목욕재계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논두렁에 가서 제수를 차리고 곡식이 잘 되기를 비는데, 사량과 같은 곳에서는 물구멍 옆의 논두렁에 추린 짚단을 펴고 그 위에 음식을 차리고 술잔을 채워 산 쪽을 향해 고사를 지내며 농사가 잘 되기를 빈다. 음식은 논두렁에 그대로 두는데, 그러면 농부들이나 아이들이 와서 나눠 먹었다. 칠석의 용신제는 대개 밀개떡, 밀부침이(전), 장어 등을 제물로 쓰는데, 장어는 벼 이삭이 장어처럼 굵고 길어지라는 뜻에서 토막을 내지 않고 통째로 굽거나 쪄서 사용한다.

경기도 오산의 부산동이나 평택시 현덕면 기산 1리에서는 칠성주머니를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광목이나 비단, 창호지로 만들었는데, 여기에 햅쌀을 넣어 안방 벽에다 걸어놓았다가 칠석날 아침에 햅쌀을 꺼내 밥을 지어 미역국, 나물과 함께 주머니 밑에 차려놓았다가 먹는다. 주머니는 빨거나 새로 만들어놓았다가 가을에 햅쌀이 나오면 채워서 걸어둔다. 이천시 산대마을에서는 칠석날 집집마다 떡을 하여 마을에 있는 큰 향나무에 천신한 다음 나누어 먹었다.

강원도 횡성군 강림면 강림 2리에서는 칠석날 아낙네들이 산에 가서 치성을 드리거나 물가에서 밥을 하여 제물을 올려서 치성을 드렸다.

경북 안동에서는 까마귀밥을 해서 담에 올려놓았다. 경북 고령, 봉화에서는 농작물의 결실을 위하여 죽은 사람의 영혼을 추모했다. 경북 영주시 풍기읍 삼가리 당골마을에서는 칠석제를 지낼 때 집 근처나 산에 미리 정해 놓은 칠성바위에 초를 일곱 개를 켜고, 칠색 천을 바위에 묶어놓고 제물로 깨끗한 물과 삼색 나물을 놓고 마지막에 소지를 하며 무병장수를 빈다. 자식이 없는 사람은 평소에도 수시로 칠성에게 치성을 드렸다.

경남 남해군 삼동면 물건마을의 경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이날 논두렁에 메, 떡, 나물, 생선 등을 차려놓고 그해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며 비손을 한다. 제물로 사용하는 생선은 숭어와 마티미는 올리지 않는데, 숭어는 머리가 뱀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경남 사천시 동서동 신수도에서는 칠석날 칠성고사를 지내는데, 유두 때 밭에서 고사를 지냈다면, 칠석 때에는 논에 가서 고사를 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섬에는 논이 없기 때문에 이날도 다시 밭에 나가 고사를 지내는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집을 나가서 언제 죽었는지 몰라 제삿날을 모르는 사람의 망제(忘祭)를 그 분의 생일이나 9월 9일에 많이 지내는데, 경남 양산에서는 7월 7일 지내는 경우도 있었다.

참고문헌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69~1981)
韓國歲時風俗硏究 (任東權, 集文堂, 1985)
全南의 歲時風俗 (全羅南道 鄕土文化叢書29, 全羅南道, 1988)
民俗誌 (江原道, 1989)
安城郡誌 (安城郡誌編簒委員會, 安城郡, 1990)
한국민속대사전2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민족문화사, 1991)
濟州道誌3 (濟州道, 1993)
서울民俗大觀 3-세시풍속과 놀이 編 (서울特別市, 1993)
韓國의 歲時風俗Ⅰ (국립민속박물관, 1997)
北韓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97)
삼척민속지1~5 (김진순, 삼척문화원, 1997~2002)
함경도의 민속 (전경욱, 고려대학교 출판부, 1999)
경기민속지Ⅲ (경기도박물관, 2000)
세시풍속 (국립문화재연구소, 2001~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