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秋夕)

추석

한자명

秋夕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8월 > 정일

집필자 김명자(金明子)

정의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말.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연중 으뜸 명절이다.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가위,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한다. 가위나 한가위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가배는 가위를 이두식의 한자로 쓰는 말이다.

어원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추석’이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용어라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추석 무렵을 중추(中秋) 또는 월석(月夕)이라 하는데, 『예기(禮記)』에 나오는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추석날 밤에는 달빛이 가장 좋다고 하여 월석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중엽 이후 한자가 성행하게 된 뒤 중국인이 사용하던 중추니 월석이니 하는 말을 합해서 축약하여 추석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중추절이라 하는 것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로 나누었을 때 추석이 음력 8월 중추에 해당하므로 붙은 이름이다.

유래

추석의 시원(始原)이나 유래에 대한 명확한 문헌 자료는 없다. 중국의 『수서(隨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는 “8월 15일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상으로 말이나 포목을 준다.”라고 했다. 『구당서(舊唐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도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이면 서로 하례하는 예식을 여는데 왕이 잔치를 베풀고 또 해와 달의 신에게 절을 한다. 팔월 보름이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쏜 자에게는 상으로 포목을 준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인들은 산신(山神)에 제사 지내기를 좋아하며 8월 보름날이면 크게 잔치를 베풀고 관리들이 모여서 활을 잘 쏜다.”라고 하였다.

우리 문헌에는 12세기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추석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나지만 그 시원을 밝히는 내용은 아니다. 이 자료를 통해서 추석이 신라 초기에 이미 자리 잡았으며,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신라본기(新羅本紀)」1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조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왕이 육부(六部)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편을 짜고, 7월 16일부터 날마다 육부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했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게 하고 8월 보름에 이르러 그 공(功)의 다소를 살펴 지는 편은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으니 이를 가배라 한다. 이때 진 편의 여자들이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 하였는데 그 소리가 구슬프면서 아름다웠으므로 뒷사람들이 그 소리를 인연으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특히 여자들이 패를 나누어 길쌈을 했다는 것은 두레길쌈의 효시로 볼 수 있는데, 당시 길쌈이 이미 보편화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실 추석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의 의복을 장만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옷감을 짜는 풍속은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는데 세시명절은 농경에 적응하여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세시명절인 한가위는 고대 농경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신라시대에는 이미 일반화된 명절로 자리 잡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추석의 관습이 가락국에서 왔다고 했다.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은 그의 저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당시 산동(山東) 근방에서 살던 신라인들이 절에서 가배명절을 즐겼던 사실을 기록했다. 특히 그는 신라인들이 발해와의 싸워 이긴 기념으로 추석을 명절로 즐겼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기록된 육부(六部)를 방증할 수 있는 자료가 발굴되기도 했다. 신라가 육부였음은 1988년 4월 15일 경북 울진군 죽변면(竹邊面) 봉평리(鳳坪里)에서 출토된 신라 비석의 내용으로 확인이 된다. 비석은 법흥왕 11년(524)에 세워진 것으로, 육부 중의 하나인 탁부 출신의 박사가 건립하였다고 하여 가배풍속과 관련된 육부의 존재가 분명해졌다.

이처럼 신라시대에 이미 세시명절로 자리 잡던 추석은 고려에 와서도 큰 명절로 여겨져 9대 속절(俗節)에 포함되었다. 고려 9대 속절은 원정(元正, 설날)·상원(上元, 정월대보름)·상사(上巳)·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중구(重九)·팔관(八關)·동지(冬至)였다. 이 명절들은 조선시대로 이어졌고 조선시대에 추석은 설날, 한식, 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꼽혔다.

우리나라에서 추석 명절을 비롯한 세시명절의 위상은 근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세시풍속이 농경의례로서 농사라는 생업과 직결되어 있었던 것만큼 산업사회 이후 공업이 생업의 중심이 되면서 농촌사회가 변화하여 세시명절이 약화하기 시작했다. 추석 또한 전통적인 성격이 퇴색하여 차례와 성묘하는 날로 축소되었지만, 국가 차원의 공휴일로 지정됨으로써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에서 큰 명절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관

추석은 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하며, 가을의 한가운데, 곧 가을 중의 가을인 명절이다. 추석 무렵은 좋은 계절이어서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5월은 농부들이 농사를 잘 짓기 위하여 땀을 흘리면서 등거리가 마를 날이 없지만 8월은 한해 농사가 다 마무리된 때여서 봄철 농사일보다 힘을 덜 들이고 일을 해도 신선처럼 지낼 수 있다는 말이니 그만큼 추석은 좋은 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듯이 추석은 연중 으뜸 명절이다. 특히 농촌에서 가장 큰 명절이니 이때는 오곡이 익는 계절인 만큼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거운 놀이로 밤낮을 지내므로, 이날처럼 잘 먹고 잘 입고 놀고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새삼 간절해진다.

달의 명절로도 일컬어지는 추석에는 풍요를 기리는 각종 세시풍속이 행해진다.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차례와 같이 엄숙한 세시풍속이 있는가 하면 한바탕 흐드러지게 노는 세시놀이 역시 풍성하게 행해진다.

추석은 애초 농공감사일(農功感謝日)로서 이날 명절식으로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올려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것이 중요한 행사다. 추석 전에 조상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하여 여름 동안 묘소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준다. 추석날 아침에는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차례는 대체로 4대 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부터의 관행이다.

의례

추석에 행하는 의례로 올베심리와 풋바심이 있다. 올베심리란 주로 호남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올벼 천신(薦新)을 말한다. 올기심리, 올계심리, 오리십리, 올비신미라고 부른다. 올벼란 ‘일찍 수확한 벼’를 일컫는 것으로, 벼가 다 여문 무렵 혹은 채 여물기 전에 여문 부분을 골라 찧은 쌀이다. 벼가 덜 여물면 미리 솥에 볶아서 말려두었다가 밥을 짓는다. 술과 조기, 햇병아리, 햇무 같은 것들을 상에 차려 조상에게 바치고 온 집안 식구가 모여 그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미리 베어온 벼포기는 안방 윗목 벽에 가로 묶어 두기도 한다. 호남지방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는 집에서도 벼포기를 사다 걸어둘 정도로 이 풍속은 일반화되어 있다. 올벼심리는 대개 추석 무렵에 올리지만 ‘벼가 익을 무렵’에 올리므로 그 시기는 일정치 않다.

벼뿐만 아니라 다른 곡식을 함께 걸어두기도 한다.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같은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베어다가 묶어 기둥이나 문설주에 걸어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고도 한다. 올게심니를 할 때에는 술과 음식을 차리고 이웃을 청해서 주연을 베풀기도 한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해에 씨로 사용하거나 떡을 해서 사당에 천신하거나 터주를 비롯한 가신(家神)에게 올렸다가 먹는다. 올게심니는 이듬해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기원의 뜻과 풍농을 예축하는 의미가 있다.

경북 안동을 비롯한 영남에서는 올베심리와 비슷한 것으로 풋바심이 전한다. 논 가운데 누렇게 잘 익은 부분을 지게로 한 짐 정도, 벼로는 두 말 정도, 쌀로는 한 말 정도 미리 베어서 탈곡한다. 이 쌀로 밥을 짓고 제물을 갖춰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올베심리와 같다.

또다른 추석의 풍속으로 반보기와 근친(覲親)이 있다. 충남 지역에서는 추석 무렵에 반보기를 하는데 이는 반나절 동안 만나는 것을 말한다. 늦여름이 다 가도록 농사에 바빴던 일가 친척들이 추석 무렵이면 서로 약속하여, 양편의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 이것이 반보기인데 중간지점에서 만난다 하여 중로상봉(中路相逢) 또는 중로보기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특히 시집간 딸이 이 반보기를 통해 친정식구와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지역에서 추석 전후가 되면 이런 반보기가 아니라 ‘온보기’로 새색시들이 근친가는 일이 많았다.

절식

설날의 명절식이 떡국인 반면 추석의 명절식은 송편이다. 명절식은 차례상에 올려 조상에게 제를 지내고 가족과 친척 그리고 이웃이 나누어 먹는다. 송편은 지역에 따라 음력 이월 초하루머슴날 또는 설날에도 만들어 먹지만 역시 가을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가을 맛은 송편에서 오고 송편 맛은 솔내에서 온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의 음식은 원래 계절에 유난히 민감하여 제철음식이란 말이 있다. 많은 떡 가운데 개피떡과 송편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아니한 봄과 가을의 음식이지만 그 중에서도 개피떡은 따뜻한 편에 가깝고 송편은 서늘한 편에 가깝다. 그래서 봄에는 송편이 먼저 나온 뒤 개피떡이 등장하며 가을에는 개피떡이 먼저 나오고 송편이 뒤에 등장한다. 봄 송편은 햇솔로 묵은 쌀의 향기를 새롭게 하지만 가을 송편은 햅쌀로 솔내를 맑게 해준다. 그래서 추석에는 올벼로 만든 오려송편이 제격이다. 웃기로 쓰는 송편은 삼각형의 작은 골무만한 것으로 이를 골무송편이라 한다.

송편은 쌀가루를 익반죽하여 햇녹두, 청태콩, 동부, 깨, 밤, 대추, 고구마, 곶감, 계피가루 같은 것을 소로 넣어 둥글게 빚는다. 송편이란 이름은 송편을 찔 때에 켜마다 솔잎을 깔기 때문에 붙여졌다. 쌀가루를 익반죽할 때 쑥이나 송기를 찧어넣어 쑥송편이나 붉은 색의 송기송편을 만들기도 한다. 한가위 때 햅쌀로 빚은 송편은 각별히 오려송편이라고 한다. 오려란 올벼를 뜻하는 말이다.

추석의 명절식으로 송편과 함께 토란국을 차례상에 올리기도 한다. 토란국은 다시마와 쇠고기를 섞어서 끓인다. 화양적누름적도 명절식인데 화양적은 햇버섯, 도라지, 쇠고기에 갖은 양념을 하여 볶아 꼬챙이에 끼운 음식이다. 누름적은 화양적과 같은 방법으로 하되 밀가루나 달걀을 묻혀 지진 음식이다. 이 음식들 역시 차례상에 올린다. 또 닭이 살이 올라 가장 맛있는 계절이므로 추석의 절식으로 닭찜을 한다. 찹쌀가루를 쪄서 계란같이 둥근 떡을 만들고 삶은 밤을 꿀에 개어 붙이는 율단자도 추석의 명절식이다. 밤 대신 토란을 사용한 토란단자도 이때 먹는다.

추석 무렵에는 송이버섯의 향기가 유난히 좋다. 송이회, 송이전, 송이전골이 일품이며 음식의 고명으로도 송이버섯을 많이 사용한다. 한편 추석 무렵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의 저장용 반찬거리를 마련할 시기여서 박고지, 호박고지, 호박순, 고구마순도 거두어 말리고 산채를 말려 묵은나물을 준비한다.

놀이

추석에는 강강술래, 줄다리기, 가마싸움, 소놀이, 거북놀이, 소싸움, 닭싸움 같은 놀이를 한다. 특히 추석과 같은 보름 명절에는 강강술래와 같은 원무(圓舞)가 중심을 이룬다. 한가윗날 보름달 아래서 노는 원무는 한층 운치가 있다. 추석놀이들은 단순한 놀이일 뿐만 아니라 풍농을 기원하고 예축하는 신앙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1.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풍요를 상징하는 달에 비유되는 놀이이다. 농경사회에서 보름달은 풍요를 상징하며 이는 여성과도 관련된다. 여성은 생산의 주체이므로 여성 자체가 풍요를 상징하는 존재이며, 정월대보름의 만월(滿月)은 만삭의 여성으로 비유된다. 따라서 대보름날의 강강술래놀이는 여성들이 풍요의 달 아래에서 논다는 의미에서 풍요의 극치를 의미한다.

    강강술래는 여러 가지 형태의 놀이로 이루어지지만 그 중에서도 원무는 보름달의 형상을 상징하여 한층 중요하다. 강강술래는 원무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고사리껑자(꺽자), 덕석몰이, 청어영짝(엮자), 문열어라, 기와밟기, 가마등, 닭살이, 남생이놀아라 같은 여러 놀이가 있다. 이것을 모두 하는 것은 아니고 몇 개씩 어울려서 한 놀이를 이룬다. 하지만 놀이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것은 역시 원무이다.

    노래는 목청 좋은 사람이 선소리[선창(先唱)]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뒷소리[합창(合唱)]로 받는다. 가사는 시집살이 노래건 베틀가건 전해 내려오는 민요나 즉흥적인 작사를 하면 후렴을 ‘강강술래’라는 합창으로 받는다. 처음에는 느린 가락의 진양조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점점 빠른 가락인 중머리, 중중머리, 잦은머리로 바뀌어가고 동작도 빨라진다. 이것을 ‘뛴다’라고 한다. 이렇게 뛰다가 지치면 쉬고, 쉬었다가 뛰고 하며 즐긴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뛰고 노는 늦은 강강술래가 잦은 강강술래로 바뀌고 그것이 끝나고 나면 고사리꺾기가 시작된다.

    고사리꺾기는 손을 맞잡고 일렬로 서서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다음 사람의 오른손과 맞잡은 왼손 밑으로 차례차례 꿰어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덕석몰이는 일렬로 서서 가장 끝에 선 사람이,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도는 놀이다. 이렇게 몇 번이고 계속하면 한 덩어리로 뭉치게 되는데 이때 “몰이몰이 덕석몰이 늦인늦인 뱅애몰이”라며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되풀이해서 덕석을 다 몰면 반대로 해서 풀기 시작한다. 이때에는 “벗겨라 덕석몰이 늦인늦인 뱅애몰이”라며 노래를 부른다. 덕석이 다 풀리면 다시 일렬로 서게 된다.

    청어엮기의 놀이방법은 고사리꺾기와 거의 같고 노래만 다를 뿐이다. 문열기놀이(문열어라)는 우선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손을 맞잡고 서 있으면, 다른 일렬로 선 사람들이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약간 구부린다. 그리고 일렬로 문을 꿰어간다. 문지기인 두 사람은 맨 끝 사람이 문 속을 꿰어 가려는 순간 손을 내민다. 그때 잡히면 문지기가 되고 문지기였던 한 사람은 맨 앞에 가서 선다. 그러나 끝 사람이 날쌔게 뛰어 나가면 다시 문지기를 해야 한다. 이때에는 “문지기야 문지기야 문열어라(여러 사람) 열쇠없어 못열겠네(문지기).”라며 노래를 부른다.

    기와밟기는 놀이꾼들이 허리를 굽혀 앞 사람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아 기와처럼 엮으면 맨 끝 사람이 엎드린 사람들의 등 위를 밟고 가는 놀이이다. 이렇게 하여 앞 사람들이 다 지나가면 다시 맨 끝의 사람이 올라가 밟고 지나간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 놀이가 이어진다. 가마등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양팔로 가마를 만들고 그 위에 한 사람을 올려 앉히고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다니며 노는 것이다. 남생아 놀아라는 남생이의 흉내를 내며 노는 놀이다. 놀이꾼 중에서 춤을 잘 추고 사람들을 웃기는 몸짓을 잘 하는 두세 사람이 원 안으로 들어가서 온갖 몸짓을 하며 논다. 이때 몸짓은 곱사춤, 궁둥이춤, 아장거리는 춤 등 다양하다.

    닭살이는 살쾡이가 닭을 잡아가는 시늉을 하는 놀이다. 가위바위보를 하여 꼴찌가 된 사람이 살쾡이가 되고 그 다음 사람이 닭이 된다. 나머지 놀이꾼들은 손과 손을 잡고 원을 그린다. 이때 닭은 원 안에 있고 살쾡이는 원 밖에 서성이면서 닭을 잡는 것이다.

    강강술래가 주로 전라도에서 즐기는 놀이인 반면, 경상도에서는 이와 같은 맥락의 놀이로 월월이청청, 놋다리밟기가 있다. 또 이 놀이들이 여성원무 중심의 놀이인 반면 남자들이 원무를 중심으로 노는 놀이로 쾌지나칭칭이 있다.

  2. 소놀이와 거북놀이: 소놀이는 멍석을 쓰고 소 모양으로 가장하여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즐겁게 놀아주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년 기원 놀이이다.

    두 사람이 서로 궁둥이를 맞대고 엎드린 후 그 위에 멍석을 씌운다. 앞사람은 멍석 밑에서 잘 깎은 막대기 두 개를 내밀어 마치 뿔처럼 보이게 하고 뒷사람은 동아줄을 한 가닥 늘어뜨려 마치 쇠꼬리처럼 보이게 한다. 이때 농부 한 사람이 앞에서 소의 고삐를 잡고 끌고 간다. 소 뒤에는 풍물패가 따르며 흥을 돋운다. 소를 앞세운 일행은 부자집을 찾아간다. 대문 앞에서 쇠고삐를 잡은 사람이 “소가 배가 고파서 왔습니다. 여물과 뜨물을 주시오.”라고 소리치면 주인은 음식을 차려 대접한다. 이렇게 여러 집을 찾아다니며 마을 사람 모두가 즐겁게 보낸다. 거북놀이는 소 대신 거북으로 가장하여 노는 것이다.

    소는 농부와 마찬가지로 농사일을 하는 존재로서 생구(生口)라 할 정도로 가족의 일원으로 여겼다. 거북은 십장생에도 등장하는 영물로서 수신(水神)과 농경신의 기능을 한다. 따라서 이 놀이들은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의 성격을 지닌다.

  3. 가마싸움과 원놀이: 가마싸움은 1900년대 초까지 경북 의성 지역에서 전해오던 서당 학동들의 놀이다. 추석 때 훈장이 차례를 지내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서당을 비우면 놀이가 시작된다. 모처럼 글공부에서 해방된 학동들이 모여서 나무로 가마를 만들며 놀이를 만끽하는 것이다.

    옛날 의성에는 남부에 넷, 북부에 하나로 모두 다섯 곳의 서당이 있었다. 이 서당의 학생들이 남북으로 편을 가른 후 가마를 제작한다. 가마는 나무로 높이 1미터, 길이 1.7미터, 가로 1.2미터의 크기이며 바퀴 4개가 달려 있다. 가마 안에는 애호박을 따서 먹으로 사람 얼굴을 그려놓고 원님이라 불렀다. 각각 선두에 사령기를 비롯한 깃발들을 선두에 세우고 공격대와 수비대의 순서로 서서 싸움을 벌인다. 힘센 공격대원들이 먼저 적진에 뛰어들어 기를 뺏고, 가마를 발길로 차고 혼전을 벌여 가마와 가마끼리 부딪쳐 부서지는 쪽이 지는 것으로 한다. 이긴 편의 서당에서 과거 급제자가 많이 나온다고 여긴다.

  4. 씨름: 추석날 남자들이 힘을 자랑하는 놀이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씨름이다. 씨름은 5월 단오, 음력 7월 백중에도 하지만 추석놀이로도 많이 즐긴다. 한 마을에서 힘깨나 쓴다는 씨름꾼들이 체급과 나이에 상관없이 모여들면 이들을 마을의 대표 선수로 삼아 다른 마을 사람들과 겨루게 된다. 진짜 장사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도전자가 없을 때까지 겨루어 뽑는데, 이기게 되면 ‘판막음했다’고 한다. 마을과 마을의 대항인지라 그 치열함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힘겨루기는 추석 무렵 알찬 수확을 과시하는 놀이임에 틀림없다. 겨루기 싸움에서 이기는 편은 그해 혹은 이듬해의 풍년을 보장받기 때문에 씨름판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5. 소싸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힘겨루기를 하는 날이 또한 추석이다. 봄부터 여름내 소먹이는 머슴들이 산등성이와 강변에서 소싸움을 붙여 그 마을에서 가장 힘센 소를 뽑는다. 이렇게 뽑힌 소에게는 극진한 대접을 하는데 심지어 보약까지 먹인다.

    상머슴이 고삐를 잡고 싸움판에 소를 끌고 들어가 싸움을 붙인 한쪽 소가 밀리거나 달아나면 지는 것으로 정한다. 만약 소가 다칠 염려가 있으면 중도에 싸움을 그치게 한다. 소싸움은 주로 마을과 마을의 경계 또는 넓은 강변에서 벌인다. 넓고 튼튼한 우리를 만들어서 황소 두 마리를 풀어두면 싸움이 시작된다. 앞발로 땅을 긁어 흙을 파헤치면 화가 났다는 표시인데 이 신호를 시작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뿔로 밀고 받치며 열을 올린다. 힘이 모자란 놈은 한쪽 구석으로 몰려 “쿵” 하고 나가떨어지거나 슬금슬금 도망가게 되어 승부가 난다. 소끼리의 싸움이지만 주위의 열기도 만만치 않다.

    소싸움은 여름내 어느 집 머슴이 소를 잘 먹이고 건강하게 하였는가를 가리는 싸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긴 소는 목과 뿔을 비단과 종이꽃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 머슴이 타고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면 주인집에서 거나하게 술을 한잔 대접한다. 근래에는 경북 청도의 소싸움이 유명하다.

  6. 조리희(照里戱):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에도 많이 하지만 지역에 따라 추석에 하기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제주도 풍속에 매년 8월 보름날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좌우로 편을 갈라 큰 줄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승부를 가린다. 줄이 만약 중간에서 끊어지면 양편이 모두 땅에 자빠진다. 구경꾼들이 크게 웃는다. 이를 조리지희(照里之戱)라 한다.” 이는 우리 줄다리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줄이 끊어지도록 만들어서 노는 데에 조상의 익살이 보인다.

속신

전남 진도에서는 추석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벌거벗고 나이수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때 음식을 장만하여 밭둑에 놓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 된다고 한다.

설날과 정월대보름에 날씨를 보고 농사점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추석 때에도 그날의 날씨와 사정을 보아 점을 친다. 8월 초순이면 대개 백로(白露)가 들고 곧 서리가 내리는 중추(中秋)이다. 만일 백로 전에 서리가 내리면 그해는 시절이 나쁘다. 그래서 백로를 전후하여 날씨를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만약 백로에 바람이 불면 벼가 검은 빛으로 여물게 되어 흉년이다. 논의 나락은 늦어도 백로 전에 피어야 하며 백로를 지나서 핀 나락은 결실하기 어렵다.

추석에 비가 내려도 흉년이 든다. 특히 이듬해 보리농사가 흉작이 된다. 또 추석에 달이 보이지 않으면 개구리가 알을 배지 못하고, 토끼도 새끼를 배지 못한다. 메밀을 비롯한 곡식도 흉작이다. 추석에 구름이 너무 많거나 구름이 한 점도 없으면 그해 보리농사가 흉년이다. 구름이 적당히 떠서 벌어져 있어야 풍년이라고 한다.

인접국가사례

중국에서는 중추를 한식이나 단오에 비하여 그렇게 중요한 명절로 여기지는 않았다. 당나라와 송나라 때에도 추석은 축일이 아니었으며, 중국의 대표적인 세시기로 알려진 종름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도 중추나 월석이란 말은 없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중추의 행사에 대하여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역시 월석에 대한 기록은 없다. 월병(月餠)이 중추 명절식이 된 시기가 명나라대이니 중국에서 중추를 오늘날과 같은 명절로 여긴 것은 후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팔월 보름을 월석이라 하여 달구경을 하는 절일(節日)로 삼고 달과 관련된 시와 노래를 짓곤 했다. 그날 시식하는 절식(節食)이 중추월병(中秋月餠)인데 월병은 이름도 달떡인데다 모양 역시 달처럼 동그랗게 만든다. 그리고 그 표면에는 금두꺼비와 옥토끼 무늬를 넣는다. 중국인들은 예부터 두꺼비가 달의 정령으로 토끼와 함께 달에 사는 동물로 믿어왔다. 이러한 영향인지 우리나라에서도 달 속에 토끼가 있다고 한다. 이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공유하는 문화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월병은 그 맛이 달고 기름진데 특히 중추월병은 단원(團圓) 또는 원만(圓滿)의 뜻을 지닌다고 하며, 추석날 저녁에는 월병을 만들어 조상에게 제사하는 배월랑(拜月娘)을 하고 달을 감상한다. 우리의 송편은 반달 모양으로 계속 증장(增長)과 발전을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인들은 월병을 각별히 좋아하는데 주나라 때 이미 병식(餠食)이 있었으며 한대(漢代)에 들어 증병, 호병(胡餠)이 보이고 원대(元代)에 월병이 있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중추 명절식이 된 시기는 명대(明代)로 보고 있다.

의의

추석은 정월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과 함께 보름명절이다. 보름 명절 가운데서도 정월대보름과 추석은 가장 큰 명절이다. 대보름은 신년에 처음 맞는 명절이어서 중시되는 반면 추석은 수확기가 시작되는 시기의 보름명절이어서 중시된다. 추석은 그동안 농사를 잘 하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농공감사일(農功感謝日)이며 농사의 결실을 보는 절일이다. 아울러 한해 농사의 마무리를 하는 시기로서, 또 이듬해의 풍농을 기리는 시기로서 깊은 의미가 있다.

농경사회에서 보름의 만월은 농사의 풍작을 비롯하여 풍요다산을 상징하여 대단히 중시된다. 추석은 만월이 뜨는 보름날이다. 만월인 보름달은 곡물로 치면 수확 직전의 알이 꽉 찬 모습이다. 그래서 추석을 달의 명절이라 한다.

곡물 농사는 싹이 돋아 만개하여 열매를 맺으면 거두어들인다. 이는 한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반복, 순환한다. 말하자면 재생을 하는 것인데 이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달의 속성과도 같다. 초승에 소생한 달은 보름에 생명력의 극치를 보여주다가 그믐 무렵이면 소멸하고 이어서 다시 초승에 소생하여 ‘차고 기움’이라는 순환을 반복한다. 이는 죽음과 삶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곧 재생하는 속성을 의미한다. 농경사회에서는 이러한 달의 재생과 농사의 재생적인 속성을 같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달의 형상 가운데서도 풍요를 상징하는 만월은 중요하며 만월명절은 당연히 중시된다.

참고문헌

舊唐書, 東國歲時記, 三國史記, 隨書, 呂氏春秋, 洌陽歲時記, 禮記, 五洲衍文長箋散稿, 入唐求法巡禮行記, 荊楚歲時記, 朝鮮史外史1 (車相瓚, 明星社, 1947), 韓國의 歲時風俗 (張籌根, 螢雪出版社, 1984), 韓國歲時風俗硏究 (任東權, 集文堂, 1985), 韓·中 歲時風俗 및 歌謠硏究 (張正龍, 集文堂, 1988), 歲時風俗의 機能과 그 變化 (金明子, 民俗硏究2,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1992)

추석

추석
한자명

秋夕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8월 > 정일

집필자 김명자(金明子)

정의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말. 가을의 한가운데 달이며 또한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연중 으뜸 명절이다. 가배(嘉俳), 가배일(嘉俳日), 가위, 한가위, 중추(仲秋), 중추절(仲秋節),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도 한다. 가위나 한가위는 순수한 우리말이며 가배는 가위를 이두식의 한자로 쓰는 말이다.

어원

추석(秋夕)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가을 저녁, 나아가서는 가을의 달빛이 가장 좋은 밤이라는 뜻이니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추석’이란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용어라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추석 무렵을 중추(中秋) 또는 월석(月夕)이라 하는데, 『예기(禮記)』에 나오는 조춘일(朝春日), 추석월(秋夕月)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추석날 밤에는 달빛이 가장 좋다고 하여 월석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중엽 이후 한자가 성행하게 된 뒤 중국인이 사용하던 중추니 월석이니 하는 말을 합해서 축약하여 추석이라고 했다는 설이 있다. 중추절이라 하는 것은 가을을 초추(初秋), 중추(中秋), 종추(終秋)로 나누었을 때 추석이 음력 8월 중추에 해당하므로 붙은 이름이다.

유래

추석의 시원(始原)이나 유래에 대한 명확한 문헌 자료는 없다. 중국의 『수서(隨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는 “8월 15일이면 왕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쏘게 하여 잘 쏜 자에게는 상으로 말이나 포목을 준다.”라고 했다. 『구당서(舊唐書)』 「동이전(東夷傳)」 신라조(新羅條)에도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이면 서로 하례하는 예식을 여는데 왕이 잔치를 베풀고 또 해와 달의 신에게 절을 한다. 팔월 보름이면 풍류를 베풀고 관리들을 시켜 활을 쏜 자에게는 상으로 포목을 준다.”라는 기록이 있으며, “신라인들은 산신(山神)에 제사 지내기를 좋아하며 8월 보름날이면 크게 잔치를 베풀고 관리들이 모여서 활을 잘 쏜다.”라고 하였다.

우리 문헌에는 12세기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추석에 대한 기록이 최초로 나타나지만 그 시원을 밝히는 내용은 아니다. 이 자료를 통해서 추석이 신라 초기에 이미 자리 잡았으며,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명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신라본기(新羅本紀)」1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조에 기록된 추석에 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왕이 육부(六部)를 정한 후 이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거느리게 하여 편을 짜고, 7월 16일부터 날마다 육부의 마당에 모여 길쌈을 했는데 밤늦게야 일을 파하게 하고 8월 보름에 이르러 그 공(功)의 다소를 살펴 지는 편은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모두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를 하였으니 이를 가배라 한다. 이때 진 편의 여자들이 일어나 춤추며 탄식하기를, ‘회소회소(會蘇會蘇)’ 하였는데 그 소리가 구슬프면서 아름다웠으므로 뒷사람들이 그 소리를 인연으로 노래를 지어 회소곡(會蘇曲)이라 하였다.”특히 여자들이 패를 나누어 길쌈을 했다는 것은 두레길쌈의 효시로 볼 수 있는데, 당시 길쌈이 이미 보편화되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사실 추석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의 의복을 장만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옷감을 짜는 풍속은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시대부터 있었는데 세시명절은 농경에 적응하여 생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세시명절인 한가위는 고대 농경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신라시대에는 이미 일반화된 명절로 자리 잡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추석의 관습이 가락국에서 왔다고 했다. 일본인 승려 원인(圓仁)은 그의 저서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당시 산동(山東) 근방에서 살던 신라인들이 절에서 가배명절을 즐겼던 사실을 기록했다. 특히 그는 신라인들이 발해와의 싸워 이긴 기념으로 추석을 명절로 즐겼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그런데 『삼국사기』에 기록된 육부(六部)를 방증할 수 있는 자료가 발굴되기도 했다. 신라가 육부였음은 1988년 4월 15일 경북 울진군 죽변면(竹邊面) 봉평리(鳳坪里)에서 출토된 신라 비석의 내용으로 확인이 된다. 비석은 법흥왕 11년(524)에 세워진 것으로, 육부 중의 하나인 탁부 출신의 박사가 건립하였다고 하여 가배풍속과 관련된 육부의 존재가 분명해졌다.

이처럼 신라시대에 이미 세시명절로 자리 잡던 추석은 고려에 와서도 큰 명절로 여겨져 9대 속절(俗節)에 포함되었다. 고려 9대 속절은 원정(元正, 설날)·상원(上元, 정월대보름)·상사(上巳)·한식(寒食)·단오(端午)·추석·중구(重九)·팔관(八關)·동지(冬至)였다. 이 명절들은 조선시대로 이어졌고 조선시대에 추석은 설날, 한식, 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꼽혔다.

우리나라에서 추석 명절을 비롯한 세시명절의 위상은 근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우리 세시풍속이 농경의례로서 농사라는 생업과 직결되어 있었던 것만큼 산업사회 이후 공업이 생업의 중심이 되면서 농촌사회가 변화하여 세시명절이 약화하기 시작했다. 추석 또한 전통적인 성격이 퇴색하여 차례와 성묘하는 날로 축소되었지만, 국가 차원의 공휴일로 지정됨으로써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에서 큰 명절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개관

추석은 중추절(仲秋節) 또는 중추가절(仲秋佳節)이라고 하며, 가을의 한가운데, 곧 가을 중의 가을인 명절이다. 추석 무렵은 좋은 계절이어서 “5월 농부 8월 신선”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5월은 농부들이 농사를 잘 짓기 위하여 땀을 흘리면서 등거리가 마를 날이 없지만 8월은 한해 농사가 다 마무리된 때여서 봄철 농사일보다 힘을 덜 들이고 일을 해도 신선처럼 지낼 수 있다는 말이니 그만큼 추석은 좋은 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듯이 추석은 연중 으뜸 명절이다. 특히 농촌에서 가장 큰 명절이니 이때는 오곡이 익는 계절인 만큼 모든 것이 풍성하고 즐거운 놀이로 밤낮을 지내므로, 이날처럼 잘 먹고 잘 입고 놀고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새삼 간절해진다.

달의 명절로도 일컬어지는 추석에는 풍요를 기리는 각종 세시풍속이 행해진다.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차례와 같이 엄숙한 세시풍속이 있는가 하면 한바탕 흐드러지게 노는 세시놀이 역시 풍성하게 행해진다.

추석은 애초 농공감사일(農功感謝日)로서 이날 명절식으로 송편을 빚어 조상에게 올려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것이 중요한 행사다. 추석 전에 조상의 산소를 찾아 벌초를 하여 여름 동안 묘소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를 베어준다. 추석날 아침에는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차례는 대체로 4대 봉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조선 후기부터의 관행이다.

의례

추석에 행하는 의례로 올베심리와 풋바심이 있다. 올베심리란 주로 호남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올벼 천신(薦新)을 말한다. 올기심리, 올계심리, 오리십리, 올비신미라고 부른다. 올벼란 ‘일찍 수확한 벼’를 일컫는 것으로, 벼가 다 여문 무렵 혹은 채 여물기 전에 여문 부분을 골라 찧은 쌀이다. 벼가 덜 여물면 미리 솥에 볶아서 말려두었다가 밥을 짓는다. 술과 조기, 햇병아리, 햇무 같은 것들을 상에 차려 조상에게 바치고 온 집안 식구가 모여 그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미리 베어온 벼포기는 안방 윗목 벽에 가로 묶어 두기도 한다. 호남지방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는 집에서도 벼포기를 사다 걸어둘 정도로 이 풍속은 일반화되어 있다. 올벼심리는 대개 추석 무렵에 올리지만 ‘벼가 익을 무렵’에 올리므로 그 시기는 일정치 않다.

벼뿐만 아니라 다른 곡식을 함께 걸어두기도 한다. 추석을 전후해서 잘 익은 벼, 수수, 조 같은 곡식의 이삭을 한 줌 베어다가 묶어 기둥이나 문설주에 걸어두는데 이것을 올게심니라고도 한다. 올게심니를 할 때에는 술과 음식을 차리고 이웃을 청해서 주연을 베풀기도 한다. 올게심니한 곡식은 다음해에 씨로 사용하거나 떡을 해서 사당에 천신하거나 터주를 비롯한 가신(家神)에게 올렸다가 먹는다. 올게심니는 이듬해 풍년이 들게 해달라는 기원의 뜻과 풍농을 예축하는 의미가 있다.

경북 안동을 비롯한 영남에서는 올베심리와 비슷한 것으로 풋바심이 전한다. 논 가운데 누렇게 잘 익은 부분을 지게로 한 짐 정도, 벼로는 두 말 정도, 쌀로는 한 말 정도 미리 베어서 탈곡한다. 이 쌀로 밥을 짓고 제물을 갖춰 제사를 지내는 것은 올베심리와 같다.

또다른 추석의 풍속으로 반보기와 근친(覲親)이 있다. 충남 지역에서는 추석 무렵에 반보기를 하는데 이는 반나절 동안 만나는 것을 말한다. 늦여름이 다 가도록 농사에 바빴던 일가 친척들이 추석 무렵이면 서로 약속하여, 양편의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 이것이 반보기인데 중간지점에서 만난다 하여 중로상봉(中路相逢) 또는 중로보기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특히 시집간 딸이 이 반보기를 통해 친정식구와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 지역에서 추석 전후가 되면 이런 반보기가 아니라 ‘온보기’로 새색시들이 근친가는 일이 많았다.

절식

설날의 명절식이 떡국인 반면 추석의 명절식은 송편이다. 명절식은 차례상에 올려 조상에게 제를 지내고 가족과 친척 그리고 이웃이 나누어 먹는다. 송편은 지역에 따라 음력 이월 초하루인 머슴날 또는 설날에도 만들어 먹지만 역시 가을을 상징하는 음식이다. 그래서 가을 맛은 송편에서 오고 송편 맛은 솔내에서 온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의 음식은 원래 계절에 유난히 민감하여 제철음식이란 말이 있다. 많은 떡 가운데 개피떡과 송편은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아니한 봄과 가을의 음식이지만 그 중에서도 개피떡은 따뜻한 편에 가깝고 송편은 서늘한 편에 가깝다. 그래서 봄에는 송편이 먼저 나온 뒤 개피떡이 등장하며 가을에는 개피떡이 먼저 나오고 송편이 뒤에 등장한다. 봄 송편은 햇솔로 묵은 쌀의 향기를 새롭게 하지만 가을 송편은 햅쌀로 솔내를 맑게 해준다. 그래서 추석에는 올벼로 만든 오려송편이 제격이다. 웃기로 쓰는 송편은 삼각형의 작은 골무만한 것으로 이를 골무송편이라 한다.

송편은 쌀가루를 익반죽하여 햇녹두, 청태콩, 동부, 깨, 밤, 대추, 고구마, 곶감, 계피가루 같은 것을 소로 넣어 둥글게 빚는다. 송편이란 이름은 송편을 찔 때에 켜마다 솔잎을 깔기 때문에 붙여졌다. 쌀가루를 익반죽할 때 쑥이나 송기를 찧어넣어 쑥송편이나 붉은 색의 송기송편을 만들기도 한다. 한가위 때 햅쌀로 빚은 송편은 각별히 오려송편이라고 한다. 오려란 올벼를 뜻하는 말이다.

추석의 명절식으로 송편과 함께 토란국을 차례상에 올리기도 한다. 토란국은 다시마와 쇠고기를 섞어서 끓인다. 화양적과 누름적도 명절식인데 화양적은 햇버섯, 도라지, 쇠고기에 갖은 양념을 하여 볶아 꼬챙이에 끼운 음식이다. 누름적은 화양적과 같은 방법으로 하되 밀가루나 달걀을 묻혀 지진 음식이다. 이 음식들 역시 차례상에 올린다. 또 닭이 살이 올라 가장 맛있는 계절이므로 추석의 절식으로 닭찜을 한다. 찹쌀가루를 쪄서 계란같이 둥근 떡을 만들고 삶은 밤을 꿀에 개어 붙이는 율단자도 추석의 명절식이다. 밤 대신 토란을 사용한 토란단자도 이때 먹는다.

추석 무렵에는 송이버섯의 향기가 유난히 좋다. 송이회, 송이전, 송이전골이 일품이며 음식의 고명으로도 송이버섯을 많이 사용한다. 한편 추석 무렵은 앞으로 다가올 겨울의 저장용 반찬거리를 마련할 시기여서 박고지, 호박고지, 호박순, 고구마순도 거두어 말리고 산채를 말려 묵은나물을 준비한다.

놀이

추석에는 강강술래, 줄다리기, 가마싸움, 소놀이, 거북놀이, 소싸움, 닭싸움 같은 놀이를 한다. 특히 추석과 같은 보름 명절에는 강강술래와 같은 원무(圓舞)가 중심을 이룬다. 한가윗날 보름달 아래서 노는 원무는 한층 운치가 있다. 추석놀이들은 단순한 놀이일 뿐만 아니라 풍농을 기원하고 예축하는 신앙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풍요를 상징하는 달에 비유되는 놀이이다. 농경사회에서 보름달은 풍요를 상징하며 이는 여성과도 관련된다. 여성은 생산의 주체이므로 여성 자체가 풍요를 상징하는 존재이며, 정월대보름의 만월(滿月)은 만삭의 여성으로 비유된다. 따라서 대보름날의 강강술래놀이는 여성들이 풍요의 달 아래에서 논다는 의미에서 풍요의 극치를 의미한다.

강강술래는 여러 가지 형태의 놀이로 이루어지지만 그 중에서도 원무는 보름달의 형상을 상징하여 한층 중요하다. 강강술래는 원무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고사리껑자(꺽자), 덕석몰이, 청어영짝(엮자), 문열어라, 기와밟기, 가마등, 닭살이, 남생이놀아라 같은 여러 놀이가 있다. 이것을 모두 하는 것은 아니고 몇 개씩 어울려서 한 놀이를 이룬다. 하지만 놀이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것은 역시 원무이다.

노래는 목청 좋은 사람이 선소리[선창(先唱)]를 하면 다른 사람들이 뒷소리[합창(合唱)]로 받는다. 가사는 시집살이 노래건 베틀가건 전해 내려오는 민요나 즉흥적인 작사를 하면 후렴을 ‘강강술래’라는 합창으로 받는다. 처음에는 느린 가락의 진양조에 맞추어 춤을 추다가 점점 빠른 가락인 중머리, 중중머리, 잦은머리로 바뀌어가고 동작도 빨라진다. 이것을 ‘뛴다’라고 한다. 이렇게 뛰다가 지치면 쉬고, 쉬었다가 뛰고 하며 즐긴다. 둥글게 원을 그리며 뛰고 노는 늦은 강강술래가 잦은 강강술래로 바뀌고 그것이 끝나고 나면 고사리꺾기가 시작된다.

고사리꺾기는 손을 맞잡고 일렬로 서서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다음 사람의 오른손과 맞잡은 왼손 밑으로 차례차례 꿰어가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덕석몰이는 일렬로 서서 가장 끝에 선 사람이, 맨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큰 원을 그리며 도는 놀이다. 이렇게 몇 번이고 계속하면 한 덩어리로 뭉치게 되는데 이때 “몰이몰이 덕석몰이 늦인늦인 뱅애몰이”라며 노래를 부른다. 이렇게 되풀이해서 덕석을 다 몰면 반대로 해서 풀기 시작한다. 이때에는 “벗겨라 덕석몰이 늦인늦인 뱅애몰이”라며 노래를 부른다. 덕석이 다 풀리면 다시 일렬로 서게 된다.

청어엮기의 놀이방법은 고사리꺾기와 거의 같고 노래만 다를 뿐이다. 문열기놀이(문열어라)는 우선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손을 맞잡고 서 있으면, 다른 일렬로 선 사람들이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약간 구부린다. 그리고 일렬로 문을 꿰어간다. 문지기인 두 사람은 맨 끝 사람이 문 속을 꿰어 가려는 순간 손을 내민다. 그때 잡히면 문지기가 되고 문지기였던 한 사람은 맨 앞에 가서 선다. 그러나 끝 사람이 날쌔게 뛰어 나가면 다시 문지기를 해야 한다. 이때에는 “문지기야 문지기야 문열어라(여러 사람) 열쇠없어 못열겠네(문지기).”라며 노래를 부른다.

기와밟기는 놀이꾼들이 허리를 굽혀 앞 사람의 허리를 두 팔로 감아 기와처럼 엮으면 맨 끝 사람이 엎드린 사람들의 등 위를 밟고 가는 놀이이다. 이렇게 하여 앞 사람들이 다 지나가면 다시 맨 끝의 사람이 올라가 밟고 지나간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 놀이가 이어진다. 가마등은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양팔로 가마를 만들고 그 위에 한 사람을 올려 앉히고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다니며 노는 것이다. 남생아 놀아라는 남생이의 흉내를 내며 노는 놀이다. 놀이꾼 중에서 춤을 잘 추고 사람들을 웃기는 몸짓을 잘 하는 두세 사람이 원 안으로 들어가서 온갖 몸짓을 하며 논다. 이때 몸짓은 곱사춤, 궁둥이춤, 아장거리는 춤 등 다양하다.

닭살이는 살쾡이가 닭을 잡아가는 시늉을 하는 놀이다. 가위바위보를 하여 꼴찌가 된 사람이 살쾡이가 되고 그 다음 사람이 닭이 된다. 나머지 놀이꾼들은 손과 손을 잡고 원을 그린다. 이때 닭은 원 안에 있고 살쾡이는 원 밖에 서성이면서 닭을 잡는 것이다.

강강술래가 주로 전라도에서 즐기는 놀이인 반면, 경상도에서는 이와 같은 맥락의 놀이로 월월이청청, 놋다리밟기가 있다. 또 이 놀이들이 여성원무 중심의 놀이인 반면 남자들이 원무를 중심으로 노는 놀이로 쾌지나칭칭이 있다.

소놀이와 거북놀이: 소놀이는 멍석을 쓰고 소 모양으로 가장하여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즐겁게 놀아주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년 기원 놀이이다.

두 사람이 서로 궁둥이를 맞대고 엎드린 후 그 위에 멍석을 씌운다. 앞사람은 멍석 밑에서 잘 깎은 막대기 두 개를 내밀어 마치 뿔처럼 보이게 하고 뒷사람은 동아줄을 한 가닥 늘어뜨려 마치 쇠꼬리처럼 보이게 한다. 이때 농부 한 사람이 앞에서 소의 고삐를 잡고 끌고 간다. 소 뒤에는 풍물패가 따르며 흥을 돋운다. 소를 앞세운 일행은 부자집을 찾아간다. 대문 앞에서 쇠고삐를 잡은 사람이 “소가 배가 고파서 왔습니다. 여물과 뜨물을 주시오.”라고 소리치면 주인은 음식을 차려 대접한다. 이렇게 여러 집을 찾아다니며 마을 사람 모두가 즐겁게 보낸다. 거북놀이는 소 대신 거북으로 가장하여 노는 것이다.

소는 농부와 마찬가지로 농사일을 하는 존재로서 생구(生口)라 할 정도로 가족의 일원으로 여겼다. 거북은 십장생에도 등장하는 영물로서 수신(水神)과 농경신의 기능을 한다. 따라서 이 놀이들은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의 성격을 지닌다.

가마싸움과 원놀이: 가마싸움은 1900년대 초까지 경북 의성 지역에서 전해오던 서당 학동들의 놀이다. 추석 때 훈장이 차례를 지내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서당을 비우면 놀이가 시작된다. 모처럼 글공부에서 해방된 학동들이 모여서 나무로 가마를 만들며 놀이를 만끽하는 것이다.

옛날 의성에는 남부에 넷, 북부에 하나로 모두 다섯 곳의 서당이 있었다. 이 서당의 학생들이 남북으로 편을 가른 후 가마를 제작한다. 가마는 나무로 높이 1미터, 길이 1.7미터, 가로 1.2미터의 크기이며 바퀴 4개가 달려 있다. 가마 안에는 애호박을 따서 먹으로 사람 얼굴을 그려놓고 원님이라 불렀다. 각각 선두에 사령기를 비롯한 깃발들을 선두에 세우고 공격대와 수비대의 순서로 서서 싸움을 벌인다. 힘센 공격대원들이 먼저 적진에 뛰어들어 기를 뺏고, 가마를 발길로 차고 혼전을 벌여 가마와 가마끼리 부딪쳐 부서지는 쪽이 지는 것으로 한다. 이긴 편의 서당에서 과거 급제자가 많이 나온다고 여긴다.

씨름: 추석날 남자들이 힘을 자랑하는 놀이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씨름이다. 씨름은 5월 단오, 음력 7월 백중에도 하지만 추석놀이로도 많이 즐긴다. 한 마을에서 힘깨나 쓴다는 씨름꾼들이 체급과 나이에 상관없이 모여들면 이들을 마을의 대표 선수로 삼아 다른 마을 사람들과 겨루게 된다. 진짜 장사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도전자가 없을 때까지 겨루어 뽑는데, 이기게 되면 ‘판막음했다’고 한다. 마을과 마을의 대항인지라 그 치열함이 상상을 뛰어넘는다. 힘겨루기는 추석 무렵 알찬 수확을 과시하는 놀이임에 틀림없다. 겨루기 싸움에서 이기는 편은 그해 혹은 이듬해의 풍년을 보장받기 때문에 씨름판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진다.

소싸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힘겨루기를 하는 날이 또한 추석이다. 봄부터 여름내 소먹이는 머슴들이 산등성이와 강변에서 소싸움을 붙여 그 마을에서 가장 힘센 소를 뽑는다. 이렇게 뽑힌 소에게는 극진한 대접을 하는데 심지어 보약까지 먹인다.

상머슴이 고삐를 잡고 싸움판에 소를 끌고 들어가 싸움을 붙인 한쪽 소가 밀리거나 달아나면 지는 것으로 정한다. 만약 소가 다칠 염려가 있으면 중도에 싸움을 그치게 한다. 소싸움은 주로 마을과 마을의 경계 또는 넓은 강변에서 벌인다. 넓고 튼튼한 우리를 만들어서 황소 두 마리를 풀어두면 싸움이 시작된다. 앞발로 땅을 긁어 흙을 파헤치면 화가 났다는 표시인데 이 신호를 시작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뿔로 밀고 받치며 열을 올린다. 힘이 모자란 놈은 한쪽 구석으로 몰려 “쿵” 하고 나가떨어지거나 슬금슬금 도망가게 되어 승부가 난다. 소끼리의 싸움이지만 주위의 열기도 만만치 않다.

소싸움은 여름내 어느 집 머슴이 소를 잘 먹이고 건강하게 하였는가를 가리는 싸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긴 소는 목과 뿔을 비단과 종이꽃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 머슴이 타고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면 주인집에서 거나하게 술을 한잔 대접한다. 근래에는 경북 청도의 소싸움이 유명하다.

조리희(照里戱):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에도 많이 하지만 지역에 따라 추석에 하기도 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제주도 풍속에 매년 8월 보름날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좌우로 편을 갈라 큰 줄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승부를 가린다. 줄이 만약 중간에서 끊어지면 양편이 모두 땅에 자빠진다. 구경꾼들이 크게 웃는다. 이를 조리지희(照里之戱)라 한다.” 이는 우리 줄다리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줄이 끊어지도록 만들어서 노는 데에 조상의 익살이 보인다.

속신

전남 진도에서는 추석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벌거벗고 나이수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때 음식을 장만하여 밭둑에 놓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 된다고 한다.

설날과 정월대보름에 날씨를 보고 농사점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추석 때에도 그날의 날씨와 사정을 보아 점을 친다. 8월 초순이면 대개 백로(白露)가 들고 곧 서리가 내리는 중추(中秋)이다. 만일 백로 전에 서리가 내리면 그해는 시절이 나쁘다. 그래서 백로를 전후하여 날씨를 보고 그해 농사의 풍흉을 점친다. 만약 백로에 바람이 불면 벼가 검은 빛으로 여물게 되어 흉년이다. 논의 나락은 늦어도 백로 전에 피어야 하며 백로를 지나서 핀 나락은 결실하기 어렵다.

추석에 비가 내려도 흉년이 든다. 특히 이듬해 보리농사가 흉작이 된다. 또 추석에 달이 보이지 않으면 개구리가 알을 배지 못하고, 토끼도 새끼를 배지 못한다. 메밀을 비롯한 곡식도 흉작이다. 추석에 구름이 너무 많거나 구름이 한 점도 없으면 그해 보리농사가 흉년이다. 구름이 적당히 떠서 벌어져 있어야 풍년이라고 한다.

인접국가사례

중국에서는 중추를 한식이나 단오에 비하여 그렇게 중요한 명절로 여기지는 않았다. 당나라와 송나라 때에도 추석은 축일이 아니었으며, 중국의 대표적인 세시기로 알려진 종름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도 중추나 월석이란 말은 없다. 『여씨춘추(呂氏春秋)』에는 중추의 행사에 대하여 다양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역시 월석에 대한 기록은 없다. 월병(月餠)이 중추 명절식이 된 시기가 명나라대이니 중국에서 중추를 오늘날과 같은 명절로 여긴 것은 후대적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팔월 보름을 월석이라 하여 달구경을 하는 절일(節日)로 삼고 달과 관련된 시와 노래를 짓곤 했다. 그날 시식하는 절식(節食)이 중추월병(中秋月餠)인데 월병은 이름도 달떡인데다 모양 역시 달처럼 동그랗게 만든다. 그리고 그 표면에는 금두꺼비와 옥토끼 무늬를 넣는다. 중국인들은 예부터 두꺼비가 달의 정령으로 토끼와 함께 달에 사는 동물로 믿어왔다. 이러한 영향인지 우리나라에서도 달 속에 토끼가 있다고 한다. 이는 중국과 우리나라가 공유하는 문화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중국의 월병은 그 맛이 달고 기름진데 특히 중추월병은 단원(團圓) 또는 원만(圓滿)의 뜻을 지닌다고 하며, 추석날 저녁에는 월병을 만들어 조상에게 제사하는 배월랑(拜月娘)을 하고 달을 감상한다. 우리의 송편은 반달 모양으로 계속 증장(增長)과 발전을 뜻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인들은 월병을 각별히 좋아하는데 주나라 때 이미 병식(餠食)이 있었으며 한대(漢代)에 들어 증병, 호병(胡餠)이 보이고 원대(元代)에 월병이 있었다. 그러나 정식으로 중추 명절식이 된 시기는 명대(明代)로 보고 있다.

의의

추석은 정월대보름, 6월 유두, 7월 백중과 함께 보름명절이다. 보름 명절 가운데서도 정월대보름과 추석은 가장 큰 명절이다. 대보름은 신년에 처음 맞는 명절이어서 중시되는 반면 추석은 수확기가 시작되는 시기의 보름명절이어서 중시된다. 추석은 그동안 농사를 잘 하게 해준 것을 감사하는 농공감사일(農功感謝日)이며 농사의 결실을 보는 절일이다. 아울러 한해 농사의 마무리를 하는 시기로서, 또 이듬해의 풍농을 기리는 시기로서 깊은 의미가 있다.

농경사회에서 보름의 만월은 농사의 풍작을 비롯하여 풍요다산을 상징하여 대단히 중시된다. 추석은 만월이 뜨는 보름날이다. 만월인 보름달은 곡물로 치면 수확 직전의 알이 꽉 찬 모습이다. 그래서 추석을 달의 명절이라 한다.

곡물 농사는 싹이 돋아 만개하여 열매를 맺으면 거두어들인다. 이는 한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해마다 반복, 순환한다. 말하자면 재생을 하는 것인데 이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달의 속성과도 같다. 초승에 소생한 달은 보름에 생명력의 극치를 보여주다가 그믐 무렵이면 소멸하고 이어서 다시 초승에 소생하여 ‘차고 기움’이라는 순환을 반복한다. 이는 죽음과 삶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곧 재생하는 속성을 의미한다. 농경사회에서는 이러한 달의 재생과 농사의 재생적인 속성을 같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달의 형상 가운데서도 풍요를 상징하는 만월은 중요하며 만월명절은 당연히 중시된다.

참고문헌

舊唐書, 東國歲時記, 三國史記, 隨書, 呂氏春秋, 洌陽歲時記, 禮記, 五洲衍文長箋散稿, 入唐求法巡禮行記, 荊楚歲時記
朝鮮史外史1 (車相瓚, 明星社, 1947)
韓國의 歲時風俗 (張籌根, 螢雪出版社, 1984)
韓國歲時風俗硏究 (任東權, 集文堂, 1985)
韓·中 歲時風俗 및 歌謠硏究 (張正龍, 集文堂, 1988)
歲時風俗의 機能과 그 變化 (金明子, 民俗硏究2,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