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종(初終)

초종

한자명

初終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장동우(張東宇)

정의

사망 전후 특정 단계까지 진행되는 상례 의식.

역사

초종初終이라는 말에는 ‘막 사망하다’의 뜻과 ‘사망 전후 특정 단계까지의 상례 절차’라는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예기禮記』의 「상대기喪大記」와 정현鄭玄의 『삼례목록三禮目錄』에는 모두 초종이라는 용어 대신 ‘시사始死’ 또는 ‘시졸始卒’이라는 말을 전자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의례儀禮』 「사상례士喪禮」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대漢代 이전에는 ‘막 사망하다’의 의미를 나타내는 용어로는 ‘시사’와 ‘시졸’이 사용되고, 초종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망 전후 특정 단계까지의 절차’의 의미로 초종이 사용되는 최초의 사례는 당대唐代 『개원례開元禮』에서 찾을 수 있다. 『개원례』에서는 초종이 사망 전 그리고 사망한 뒤 ‘복復’을 하기 전까지의 절차, 예를 들면 ‘정침에 병자를 모시는 일’, ‘병자의 옷을 갈아입히는 일 ’, ’안팎을 청소하는 일’, ‘시중드는 사람이 병자의 수족을 부축하는 일’, ‘유언을 적는 일’, ‘촉광屬纊을 하는 일’, ‘사망을 한 뒤 침상을 치우고 땅에 눕히는 일’, ‘주인主人과 중주인衆主人들이 곡을 하는 일’, ‘남자와 부인이 옷을 갈아입는 일’ 등을 부속 내용으로 하는 독립된 절차의 의미로 사용된다. ‘막 사망하다’의 의미로는 여전히 ‘시사’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송대宋代 『정화오례신의政和五禮新儀』에 이르면 초종의 범위는 ‘습襲’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이는 초종이 사망하기 전과 사망 당일 이루어지는 일련의 절차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광司馬光의 『서의書儀』는 『개원례』를 따라 초종을 ‘병환이 심해져 막 사망할 때까지의 절차’ 즉 ‘복’ 이전의 절차로 한정하여 사용하고, 『가례家禮』는 ‘습’ 이전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청대淸代 서건학徐乾學 의 『독례통고讀禮通考』에서는 ‘질병疾病(병환이 깊어지다)’, ‘정종正終(죽음을 바르게 맞이하다)’, ‘초종’을 구분하여, 사망 전에 이루어지는 절차를 ‘초종’에서 제외하고, ‘막 사망하다[始死]’, ‘복을 하다[復]’, ‘시신을 옮기다[遷尸]’, ‘설치와 철족을 하다[楔齒綴足]’, ‘휘장을 친다[帷堂]’, ‘부고를 명하고 빈에게 배례하다[命訃拜賓]’, ‘곡위를 마련하다[哭位]’, ‘국군이 사신을 보내 조문하다[君使弔]’, ‘부의를 보내다[致襚]’, ‘명정을 만들다[爲銘]’, ‘구덩이를 파다[掘坎]’, ‘복과 기물을 진설하다[陳服器]’, ‘시신을 목욕시키고 얼음을 진설하다[沐浴及設氷]’, ‘반함을 하다[飯含]’, ‘습을 하다[襲]’, ‘모를 진설하다[設冒]’, ‘머리카락과 손톱을 매장하다[埋髮爪]’, ‘중을 설치하다[設重]’ 등 사망 이후 소렴小斂 이전까지를 초종의 범위로 설정하고 있다. 초종을 사망 당일까지로 한정한다는 점에서는 『정화오례신의』와 동일하지만, ‘질병’, ‘정종’ 등 사망 이전의 절차를 초종에서 제외하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조선의 학자들은 대부분 『가례』를 따라 습 이전까지를 초종의 범위로 규정했다. 김장생金長生의 『상례비요喪禮備要』, 이재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 유장원柳長源의 『상변통고常變通攷』,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家禮增解』는 물론 정약용丁若鏞의 『상의절요喪儀節要』의 경우도 이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허전許傳의 『사의士儀』는 ‘초종’ 이전의 절차로 ‘신질愼疾’을 설정하고, 『의례』 「사상례」의 ‘적실에서 사망한다[死于適室]’로부터 『가례』의 ‘상주를 세운다[立喪主]’는 절차 이전까지로 ‘초종’의 범위를 축소하였다. 이와는 달리 19세기 말 예서인 『광례람廣禮覽』은 ‘초종’ 항목에 ‘습’, ‘소렴’, ‘대렴’, ‘입관’까지를 포함하여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내용

『가례』의 규정에 따라 습 이전까지를 초종으로 본다면, 초종은 ①병환이 심해지면 정침으로 거처를 옮긴다. ②숨이 끊어지면 이에 곡을 한다. ③초혼을 한다. ④상주喪主와 주부主婦와 호상護喪과 사서司書와 사화司貨를 세운다. ⑤이에 옷을 갈아입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 ⑥관을 만든다. ⑦친척, 동료, 친구에게 부고한다.라는 세부적인 의절을 포함한다.

①에서 정침은 평상시에 거처하는 곳인 연침燕寢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정사政事를 처리하고 조회朝會를 보는 곳이며, 재계齋戒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도 거처하는 공간이다. 이곳으로 옮기는 이유는 죽음을 앞두고 재계를 때처럼 몸가짐과 마음가짐[情性]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③은 ‘복復’으로 ‘떠나가는 신혼神魂을 불러 체백體魄으로 되돌리려는 것[招魂復魄]’이다. 초혼을 한 뒤에도 소생하지 않으면 이때부터 죽음을 처리하는 일들을 시행한다. ④는 상례를 진행할 때 담당해야 하는 역할을 분담하는 절차이다. ‘상주’는 상을 주관하는 사람으로 맏아들 또는 맏아들이 없는 경우 맏손자가 승중承重하여 궤전饋奠을 받드는 일을 담당한다. 조문객을 예대禮待하는 일은 친속 가운데 항렬이 높은 사람이 맡는다. ‘주부’는 망자의 아내 또는 상주의 아내가 한다. ‘호상’은 자제 가운데 예를 알고 일을 잘 하는 사람에게 맡기는데, 상례에 관한 일은 모두 그에게 물어보고 처리한다. ‘사서’는 부고를 쓰거나 상례에 사용되는 물건과 돈의 출입 그리고 친척과 조문객들의 부의의 수량을 기록하는 등의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사화’는 상례에서 회계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자제나 집안의 일꾼이 맡는다. ‘상주를 세운다’는 조항은 고례에 보이지 않는다. 『주자가례』는 『서의』를 따라, 상주를 세우는 것이 초혼을 마치고 주부와 호상 그리고 사서와 사화를 세우는 것과 동시에 진행된다. 그러나 『상의절요』에서는 초혼 이전에 상주를 세우는 절차를 마련하여, 주부와 호상 그리고 사서・사화를 세우는 것과는 분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⑤의 경우에는 아내・자식・며느리・첩이 모두 관과 정장을 벗고 머리를 푼다. 남자는 상의의 앞섶을 꽂고 맨발을 한다. 나머지 복服이 있는 사람은 모두 화려한 장식을 제거한다. 자식들은 3일 동안 먹지 않는다. 기년과 9개월 동안 상복을 하는 사람은 세 끼를 먹지 않는다. 5개월과 3개월 동안 상복을 하는 사람은 두 끼를 먹지 않는다. 친척이나 이웃이 미음과 죽을 쑤어 줄 때, 어른들이 권하면 조금 먹어도 괜찮다. ⑥에서 호상은 장인에게 나무를 골라 관을 만들도록 명한다. 관의 제도는 반듯하고 곧게 하되, 머리 쪽은 크고 다리 쪽은 작게 하여 겨우 몸이 들어갈 수 있게 한다. 높고 크게 하지도, 허첨虛簷(관의 사방을 처마처럼 장식한 것)과 고족高足(다리처럼 관을 괴는 받침)을 만들지도 못하게 한다 . 안팎으로 모두 회칠하고, 안에는 다시 역청을 녹여 바르는데, 두께는 반 치 이상으로 한다. 불에 태운 차좁쌀의 회를 네 치쯤 되는 두께로 바닥에 깔고 칠성판七星板을 놓는다. 바닥의 네 귀퉁이에 각각 큰 쇠고리를 박아두고 이동할 때에는 굵은 새끼를 고리에 꿰어 든다. ⑦의 경우에는 호상과 사서가 주인을 대신해 서신을 발송한다. 호상과 사서가 없을 때에는 주인이 직접 친척에게 부고하는데, 동료와 친구에게는 부고하지 않는다. 그 이외의 서신과 위문은 모두 중지한다. 서신으로 조문한 사람에게는 졸곡卒哭이 지난 뒤에 답한다.

현재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상례의 초종 의식은 임종臨終, 초혼招魂, 수시收屍, 사자상使者床, 상주喪主・호상護喪, 수의壽衣・관棺・장지葬地 준비 등의 의절로 구성되어 『가례』에서 제시한 소렴小斂 이전의 절차를 대체로 포함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가례』에 규정된 초종의 의절에 대해 조선의 학자들은 몇 가지 보완 작업을 진행하였다. 예를 들어 『상례비요』에서는 ③의 절차를 이어 “치아를 떠받치고 발을 묶는다[楔齒綴足].”라는 규정을 『의례』 「사상례」에 근거해서 보충했고, 『사의』에서는 ③의 절차를 이어 “시신을 시상尸床에 옮기고, 시신을 바르게 하는데 머리를 남쪽으로 한다.”라는 조항을 『예기』 「상대기」에 근거하여 보완했다. 이는 조선학자들에게 『가례』가 단순히 준수의 대상이 아니라, 보완의 대상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울러 보완은 고례에 근거해서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보인다. ⑤와 관련하여 정장을 대신하여 갈아입을 옷에 대해 『가례』에서는 본주本註에서 “심의深衣를 입고 성복 때까지 바꾸어 입지 않는다.”라고 규정하지만, 부인들의 경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상례비요』는 “심의가 없으면 직령의直領衣를 사용하고, 여자들은 흰 장옷을 사용한다.”라고 하였고 , 『사의』는 “만약 심의가 없다면 흰 베로 된 도포로 대신 하더라도 괜찮다.”라고 해석했다. 이는 『가례』를 기준으로 하되 중국과는 다른 조선의 시속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현지화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의 『가례』 연구 또는 수행은 고례를 통해 『가례』의 미비점을 보완하면서 조선의 시속을 반영하여 현지화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참고문헌

家禮, 家禮增解, 開元禮, 讀禮通考, 四禮便覽, 士儀, 常變通攷, 喪禮備要, 禮 記, 儀禮, 政和五禮新儀.

초종

초종
한자명

初終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장동우(張東宇)

정의

사망 전후 특정 단계까지 진행되는 상례 의식.

역사

초종初終이라는 말에는 ‘막 사망하다’의 뜻과 ‘사망 전후 특정 단계까지의 상례 절차’라는 의미가 중첩되어 있다. 『예기禮記』의 「상대기喪大記」와 정현鄭玄의 『삼례목록三禮目錄』에는 모두 초종이라는 용어 대신 ‘시사始死’ 또는 ‘시졸始卒’이라는 말을 전자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의례儀禮』 「사상례士喪禮」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한대漢代 이전에는 ‘막 사망하다’의 의미를 나타내는 용어로는 ‘시사’와 ‘시졸’이 사용되고, 초종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사망 전후 특정 단계까지의 절차’의 의미로 초종이 사용되는 최초의 사례는 당대唐代 『개원례開元禮』에서 찾을 수 있다. 『개원례』에서는 초종이 사망 전 그리고 사망한 뒤 ‘복復’을 하기 전까지의 절차, 예를 들면 ‘정침에 병자를 모시는 일’, ‘병자의 옷을 갈아입히는 일 ’, ’안팎을 청소하는 일’, ‘시중드는 사람이 병자의 수족을 부축하는 일’, ‘유언을 적는 일’, ‘촉광屬纊을 하는 일’, ‘사망을 한 뒤 침상을 치우고 땅에 눕히는 일’, ‘주인主人과 중주인衆主人들이 곡을 하는 일’, ‘남자와 부인이 옷을 갈아입는 일’ 등을 부속 내용으로 하는 독립된 절차의 의미로 사용된다. ‘막 사망하다’의 의미로는 여전히 ‘시사’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송대宋代 『정화오례신의政和五禮新儀』에 이르면 초종의 범위는 ‘습襲’을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이는 초종이 사망하기 전과 사망 당일 이루어지는 일련의 절차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마광司馬光의 『서의書儀』는 『개원례』를 따라 초종을 ‘병환이 심해져 막 사망할 때까지의 절차’ 즉 ‘복’ 이전의 절차로 한정하여 사용하고, 『가례家禮』는 ‘습’ 이전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청대淸代 서건학徐乾學 의 『독례통고讀禮通考』에서는 ‘질병疾病(병환이 깊어지다)’, ‘정종正終(죽음을 바르게 맞이하다)’, ‘초종’을 구분하여, 사망 전에 이루어지는 절차를 ‘초종’에서 제외하고, ‘막 사망하다[始死]’, ‘복을 하다[復]’, ‘시신을 옮기다[遷尸]’, ‘설치와 철족을 하다[楔齒綴足]’, ‘휘장을 친다[帷堂]’, ‘부고를 명하고 빈에게 배례하다[命訃拜賓]’, ‘곡위를 마련하다[哭位]’, ‘국군이 사신을 보내 조문하다[君使弔]’, ‘부의를 보내다[致襚]’, ‘명정을 만들다[爲銘]’, ‘구덩이를 파다[掘坎]’, ‘복과 기물을 진설하다[陳服器]’, ‘시신을 목욕시키고 얼음을 진설하다[沐浴及設氷]’, ‘반함을 하다[飯含]’, ‘습을 하다[襲]’, ‘모를 진설하다[設冒]’, ‘머리카락과 손톱을 매장하다[埋髮爪]’, ‘중을 설치하다[設重]’ 등 사망 이후 소렴小斂 이전까지를 초종의 범위로 설정하고 있다. 초종을 사망 당일까지로 한정한다는 점에서는 『정화오례신의』와 동일하지만, ‘질병’, ‘정종’ 등 사망 이전의 절차를 초종에서 제외하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조선의 학자들은 대부분 『가례』를 따라 습 이전까지를 초종의 범위로 규정했다. 김장생金長生의 『상례비요喪禮備要』, 이재李縡의 『사례편람四禮便覽』, 유장원柳長源의 『상변통고常變通攷』, 이의조李宜朝의 『가례증해家禮增解』는 물론 정약용丁若鏞의 『상의절요喪儀節要』의 경우도 이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다만, 허전許傳의 『사의士儀』는 ‘초종’ 이전의 절차로 ‘신질愼疾’을 설정하고, 『의례』 「사상례」의 ‘적실에서 사망한다[死于適室]’로부터 『가례』의 ‘상주를 세운다[立喪主]’는 절차 이전까지로 ‘초종’의 범위를 축소하였다. 이와는 달리 19세기 말 예서인 『광례람廣禮覽』은 ‘초종’ 항목에 ‘습’, ‘소렴’, ‘대렴’, ‘입관’까지를 포함하여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채롭다.

내용

『가례』의 규정에 따라 습 이전까지를 초종으로 본다면, 초종은 ①병환이 심해지면 정침으로 거처를 옮긴다. ②숨이 끊어지면 이에 곡을 한다. ③초혼을 한다. ④상주喪主와 주부主婦와 호상護喪과 사서司書와 사화司貨를 세운다. ⑤이에 옷을 갈아입고 음식을 먹지 않는다. ⑥관을 만든다. ⑦친척, 동료, 친구에게 부고한다.라는 세부적인 의절을 포함한다.

①에서 정침은 평상시에 거처하는 곳인 연침燕寢과 상대되는 개념으로, 정사政事를 처리하고 조회朝會를 보는 곳이며, 재계齋戒하거나 질병에 걸렸을 때도 거처하는 공간이다. 이곳으로 옮기는 이유는 죽음을 앞두고 재계를 때처럼 몸가짐과 마음가짐[情性]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이다. ③은 ‘복復’으로 ‘떠나가는 신혼神魂을 불러 체백體魄으로 되돌리려는 것[招魂復魄]’이다. 초혼을 한 뒤에도 소생하지 않으면 이때부터 죽음을 처리하는 일들을 시행한다. ④는 상례를 진행할 때 담당해야 하는 역할을 분담하는 절차이다. ‘상주’는 상을 주관하는 사람으로 맏아들 또는 맏아들이 없는 경우 맏손자가 승중承重하여 궤전饋奠을 받드는 일을 담당한다. 조문객을 예대禮待하는 일은 친속 가운데 항렬이 높은 사람이 맡는다. ‘주부’는 망자의 아내 또는 상주의 아내가 한다. ‘호상’은 자제 가운데 예를 알고 일을 잘 하는 사람에게 맡기는데, 상례에 관한 일은 모두 그에게 물어보고 처리한다. ‘사서’는 부고를 쓰거나 상례에 사용되는 물건과 돈의 출입 그리고 친척과 조문객들의 부의의 수량을 기록하는 등의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사화’는 상례에서 회계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자제나 집안의 일꾼이 맡는다. ‘상주를 세운다’는 조항은 고례에 보이지 않는다. 『주자가례』는 『서의』를 따라, 상주를 세우는 것이 초혼을 마치고 주부와 호상 그리고 사서와 사화를 세우는 것과 동시에 진행된다. 그러나 『상의절요』에서는 초혼 이전에 상주를 세우는 절차를 마련하여, 주부와 호상 그리고 사서・사화를 세우는 것과는 분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⑤의 경우에는 아내・자식・며느리・첩이 모두 관과 정장을 벗고 머리를 푼다. 남자는 상의의 앞섶을 꽂고 맨발을 한다. 나머지 복服이 있는 사람은 모두 화려한 장식을 제거한다. 자식들은 3일 동안 먹지 않는다. 기년과 9개월 동안 상복을 하는 사람은 세 끼를 먹지 않는다. 5개월과 3개월 동안 상복을 하는 사람은 두 끼를 먹지 않는다. 친척이나 이웃이 미음과 죽을 쑤어 줄 때, 어른들이 권하면 조금 먹어도 괜찮다. ⑥에서 호상은 장인에게 나무를 골라 관을 만들도록 명한다. 관의 제도는 반듯하고 곧게 하되, 머리 쪽은 크고 다리 쪽은 작게 하여 겨우 몸이 들어갈 수 있게 한다. 높고 크게 하지도, 허첨虛簷(관의 사방을 처마처럼 장식한 것)과 고족高足(다리처럼 관을 괴는 받침)을 만들지도 못하게 한다 . 안팎으로 모두 회칠하고, 안에는 다시 역청을 녹여 바르는데, 두께는 반 치 이상으로 한다. 불에 태운 차좁쌀의 회를 네 치쯤 되는 두께로 바닥에 깔고 칠성판七星板을 놓는다. 바닥의 네 귀퉁이에 각각 큰 쇠고리를 박아두고 이동할 때에는 굵은 새끼를 고리에 꿰어 든다. ⑦의 경우에는 호상과 사서가 주인을 대신해 서신을 발송한다. 호상과 사서가 없을 때에는 주인이 직접 친척에게 부고하는데, 동료와 친구에게는 부고하지 않는다. 그 이외의 서신과 위문은 모두 중지한다. 서신으로 조문한 사람에게는 졸곡卒哭이 지난 뒤에 답한다.

현재 일반적으로 진행되는 상례의 초종 의식은 임종臨終, 초혼招魂, 수시收屍, 사자상使者床, 상주喪主・호상護喪, 수의壽衣・관棺・장지葬地 준비 등의 의절로 구성되어 『가례』에서 제시한 소렴小斂 이전의 절차를 대체로 포함하고 있다.

특징 및 의의

『가례』에 규정된 초종의 의절에 대해 조선의 학자들은 몇 가지 보완 작업을 진행하였다. 예를 들어 『상례비요』에서는 ③의 절차를 이어 “치아를 떠받치고 발을 묶는다[楔齒綴足].”라는 규정을 『의례』 「사상례」에 근거해서 보충했고, 『사의』에서는 ③의 절차를 이어 “시신을 시상尸床에 옮기고, 시신을 바르게 하는데 머리를 남쪽으로 한다.”라는 조항을 『예기』 「상대기」에 근거하여 보완했다. 이는 조선학자들에게 『가례』가 단순히 준수의 대상이 아니라, 보완의 대상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울러 보완은 고례에 근거해서 이루어졌다는 특징을 보인다. ⑤와 관련하여 정장을 대신하여 갈아입을 옷에 대해 『가례』에서는 본주本註에서 “심의深衣를 입고 성복 때까지 바꾸어 입지 않는다.”라고 규정하지만, 부인들의 경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상례비요』는 “심의가 없으면 직령의直領衣를 사용하고, 여자들은 흰 장옷을 사용한다.”라고 하였고 , 『사의』는 “만약 심의가 없다면 흰 베로 된 도포로 대신 하더라도 괜찮다.”라고 해석했다. 이는 『가례』를 기준으로 하되 중국과는 다른 조선의 시속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현지화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조선의 『가례』 연구 또는 수행은 고례를 통해 『가례』의 미비점을 보완하면서 조선의 시속을 반영하여 현지화하는 양상으로 전개된다.

참고문헌

家禮, 家禮增解, 開元禮, 讀禮通考, 四禮便覽, 士儀, 常變通攷, 喪禮備要, 禮 記, 儀禮, 政和五禮新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