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경(龍耕)

용경

한자명

龍耕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1월 > 절기

집필자 김도현(金道賢)

정의

동지(冬至)를 전후하여 못에 언 얼음의 갈라진 방향을 보고 그해의 풍흉을 알아보는 농사점. 용갈이 또는 용의 밭갈이라고도 한다.

내용

못에 언 얼음이 마치 극젱이로 밭을 갈아놓은 듯이 얼음장이 양쪽으로 넘겨져 있어 사람들은 이것을 ‘용의 짓’이라 하여 이것을 보고 그해의 풍흉을 점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 월내조에 보면 “충청도 홍주(洪州) 합덕지(合德池)에 매년 겨울이 되면 용이 땅을 가는 이상한 변이 있었다. 그 갈아 젖힌 것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있으면 풍년이 들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운데로 향하여 있으면 흉년이 들며, 혹 동서남북이 온통 갈아 젖혀져 있으면 평년작이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경남 밀양(密陽)의 남지(南池)에도 있다고 하였다. 또한 『태종실록(太宗實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따르면 황해도 연안도호부(延安都護府)의 와룡지[臥龍池, 南大池]에서의 용경(龍耕)과 관련한 현상과 이에 대한 농사점을 경기도 관찰사 안노생(安魯生)이 태종에게 보고하자, 태종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매년 춘추(春秋)로 연안부 남지에 제사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성종실록(成宗實錄)』 성종 6년(1475) 8월 28일조에 이르기를, 세조(世祖) 때 남대지(南大池)를 터서 전지(田地)로 개간하자 제언별감(堤堰別監) 이신지(李愼之)가 “남대지는 다만 논에 물을 대어 모자람을 보태는 것만이 아니고, 그 못에는 용(龍)이 있어 매년 겨울에는 얼음이 저절로 갈라지므로 사람들이 이를 용경(龍耕)이라 이르는데, 이것으로써 연사(年事)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게 됩니다.”라고 하니, 세조가 그 말을 듣고 다시 쌓아서 제방(堤防)을 보존하게 하였다고 한다. 성종 또한 “용경(龍耕)이란 말은 괴이하고 허망(虛妄)하여 믿을 수가 없지만, 백성을 위하여 논에 물을 대게 할 뿐이다.”라고 하여 제방을 유지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성종실록』 성종 20년(1489) 10월 30일조에 정석견(鄭錫堅)이 와룡지를 없애지 말 것을 청하면서 말하기를 고려 문종(文宗) 때 이곳을 흥왕사(興王寺)에 주어 논으로 개간하여 그 해에 가뭄이 들었는데 제방을 다시 쌓으니 흑룡이 나타나며 큰 비를 내려 풍년이 들었다고 하였다. 또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용경과 관련한 내용이 있어 함부로 없애면 안 된다는 의견을 내어 저수지로 그대로 두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위와 같은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용경이라는 농사점의 영험을 이용하여 풍흉을 예상하면서, 농업 생산 활동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물의 원활한 공급을 염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역사례

용경과 관련된 저수지는 와룡지 외에도 경북 상주의 공검지(恭儉池), 충남 당진의 합덕지, 황해도 안악(安岳)의 석통지(石筒池), 경남 밀양의 남지가 있다. 이 중 공검지와 관련하여 고상안(高尙顔)의 『태촌집(泰村集)』에 “얼음이 얼면 용이 얼음 위에서 밭갈이를 하여 얼음이 갈라터지는 형상을 보고 이듬해의 풍흉을 점쳤다.”라는 용경 설화가 전한다.

합덕지에서는 매년 결빙기인 음력 정월 14일 밤 빙면(氷面)이 마치 논밭을 간 것처럼 갈리는데, 방죽 가운데 부분이 갈리면 풍년이고, 주변만 갈리면 흉년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곳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도깨비가 방죽 간다.”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충남 일대 각 가정에서는 정월 14일 밤에는 반드시 소에게 밤참으로 소죽을 먹이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 밤참을 먹는 소들은 항상 땀이 차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어른들은 이를 합덕방죽에 가서 논을 갈고 왔기 때문이라 하였다.

얼음을 이용하여 풍흉을 점치는 예는 용경 외에도 함경도 용평역 부근의 장연(長淵)이란 호수에서 동지 전에 결빙하면 대풍, 동지 후에 결빙하면 흉년이라는 결빙복(結氷卜), 정월 소보름날 밤 물 두 사발을 남북으로 갈라놓고 다음날 아침까지 그대로 두었다가 남방과 북방의 풍년을 점치는 동복(凍卜), 봄에 해빙이 빠르면 흉년이라고 여기는 해빙점(解氷占), 겨울철 물이 깊게 얼면 풍년이라는 후동점(厚凍占), 함경도에서 겨울에 도로면이 동결되어서 횡으로 갈라지면 풍년, 종으로 갈라지면 홍수 또는 흉년의 징조라는 도로면점(道路面占)이 있다.

이 밖에 동짓달에 팥죽 열두 그릇을 식혀 나타난 현상을 통해 풍흉을 점치는 방법이 있고, 보리뿌리점, 동짓달 스무날의 달보기, 언땅의 모양, 날씨에 의해 팥죽이 쉬는 정도, 동지날씨점, 고드름으로 점치기, 오동지 점풍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듬해의 풍흉의 정도를 예상해보려는 농사점이 행해진다.

의의

용경은 농경사회에서 풍농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과 겨울 기후와 관련된 민속으로서,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경험에 의해 풍흉을 점치면서 독창적으로 유지되어온 자생적인 민속이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東國輿地勝覽, 成宗實錄, 輿地勝覽, 燃藜室記述, 太宗實錄, 泰村集, 朝鮮の占卜と豫言 (村山智順, 朝鮮總督府, 1933),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69~1981), 恭儉池 (권태을 외 공저, 상주문화원·상주산업대학교, 1995), 韓國의 歲時風俗Ⅰ (국립민속박물관, 1997), 唐津郡誌 하권 (唐津郡, 1997), 韓國의 歲時風俗Ⅱ (국립민속박물관, 1998), 한국 민속의 세계5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

용경

용경
한자명

龍耕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1월 > 절기

집필자 김도현(金道賢)

정의

동지(冬至)를 전후하여 못에 언 얼음의 갈라진 방향을 보고 그해의 풍흉을 알아보는 농사점. 용갈이 또는 용의 밭갈이라고도 한다.

내용

못에 언 얼음이 마치 극젱이로 밭을 갈아놓은 듯이 얼음장이 양쪽으로 넘겨져 있어 사람들은 이것을 ‘용의 짓’이라 하여 이것을 보고 그해의 풍흉을 점친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 월내조에 보면 “충청도 홍주(洪州) 합덕지(合德池)에 매년 겨울이 되면 용이 땅을 가는 이상한 변이 있었다. 그 갈아 젖힌 것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하여 있으면 풍년이 들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운데로 향하여 있으면 흉년이 들며, 혹 동서남북이 온통 갈아 젖혀져 있으면 평년작이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경남 밀양(密陽)의 남지(南池)에도 있다고 하였다. 또한 『태종실록(太宗實錄)』,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따르면 황해도 연안도호부(延安都護府)의 와룡지[臥龍池, 南大池]에서의 용경(龍耕)과 관련한 현상과 이에 대한 농사점을 경기도 관찰사 안노생(安魯生)이 태종에게 보고하자, 태종은 이를 기이하게 여겨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매년 춘추(春秋)로 연안부 남지에 제사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성종실록(成宗實錄)』 성종 6년(1475) 8월 28일조에 이르기를, 세조(世祖) 때 남대지(南大池)를 터서 전지(田地)로 개간하자 제언별감(堤堰別監) 이신지(李愼之)가 “남대지는 다만 논에 물을 대어 모자람을 보태는 것만이 아니고, 그 못에는 용(龍)이 있어 매년 겨울에는 얼음이 저절로 갈라지므로 사람들이 이를 용경(龍耕)이라 이르는데, 이것으로써 연사(年事)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게 됩니다.”라고 하니, 세조가 그 말을 듣고 다시 쌓아서 제방(堤防)을 보존하게 하였다고 한다. 성종 또한 “용경(龍耕)이란 말은 괴이하고 허망(虛妄)하여 믿을 수가 없지만, 백성을 위하여 논에 물을 대게 할 뿐이다.”라고 하여 제방을 유지하게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성종실록』 성종 20년(1489) 10월 30일조에 정석견(鄭錫堅)이 와룡지를 없애지 말 것을 청하면서 말하기를 고려 문종(文宗) 때 이곳을 흥왕사(興王寺)에 주어 논으로 개간하여 그 해에 가뭄이 들었는데 제방을 다시 쌓으니 흑룡이 나타나며 큰 비를 내려 풍년이 들었다고 하였다. 또 『여지승람(輿地勝覽)』에 용경과 관련한 내용이 있어 함부로 없애면 안 된다는 의견을 내어 저수지로 그대로 두게 하였다는 기록도 있다.

위와 같은 기록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용경이라는 농사점의 영험을 이용하여 풍흉을 예상하면서, 농업 생산 활동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물의 원활한 공급을 염원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역사례

용경과 관련된 저수지는 와룡지 외에도 경북 상주의 공검지(恭儉池), 충남 당진의 합덕지, 황해도 안악(安岳)의 석통지(石筒池), 경남 밀양의 남지가 있다. 이 중 공검지와 관련하여 고상안(高尙顔)의 『태촌집(泰村集)』에 “얼음이 얼면 용이 얼음 위에서 밭갈이를 하여 얼음이 갈라터지는 형상을 보고 이듬해의 풍흉을 점쳤다.”라는 용경 설화가 전한다.

합덕지에서는 매년 결빙기인 음력 정월 14일 밤 빙면(氷面)이 마치 논밭을 간 것처럼 갈리는데, 방죽 가운데 부분이 갈리면 풍년이고, 주변만 갈리면 흉년이 들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이곳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도깨비가 방죽 간다.”라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충남 일대 각 가정에서는 정월 14일 밤에는 반드시 소에게 밤참으로 소죽을 먹이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 밤참을 먹는 소들은 항상 땀이 차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어른들은 이를 합덕방죽에 가서 논을 갈고 왔기 때문이라 하였다.

얼음을 이용하여 풍흉을 점치는 예는 용경 외에도 함경도 용평역 부근의 장연(長淵)이란 호수에서 동지 전에 결빙하면 대풍, 동지 후에 결빙하면 흉년이라는 결빙복(結氷卜), 정월 소보름날 밤 물 두 사발을 남북으로 갈라놓고 다음날 아침까지 그대로 두었다가 남방과 북방의 풍년을 점치는 동복(凍卜), 봄에 해빙이 빠르면 흉년이라고 여기는 해빙점(解氷占), 겨울철 물이 깊게 얼면 풍년이라는 후동점(厚凍占), 함경도에서 겨울에 도로면이 동결되어서 횡으로 갈라지면 풍년, 종으로 갈라지면 홍수 또는 흉년의 징조라는 도로면점(道路面占)이 있다.

이 밖에 동짓달에 팥죽 열두 그릇을 식혀 나타난 현상을 통해 풍흉을 점치는 방법이 있고, 보리뿌리점, 동짓달 스무날의 달보기, 언땅의 모양, 날씨에 의해 팥죽이 쉬는 정도, 동지날씨점, 고드름으로 점치기, 오동지 점풍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듬해의 풍흉의 정도를 예상해보려는 농사점이 행해진다.

의의

용경은 농경사회에서 풍농을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물과 겨울 기후와 관련된 민속으로서,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경험에 의해 풍흉을 점치면서 독창적으로 유지되어온 자생적인 민속이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東國輿地勝覽, 成宗實錄, 輿地勝覽, 燃藜室記述, 太宗實錄, 泰村集
朝鮮の占卜と豫言 (村山智順, 朝鮮總督府, 1933)
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 (文化財管理局, 1969~1981)
恭儉池 (권태을 외 공저, 상주문화원·상주산업대학교, 1995)
韓國의 歲時風俗Ⅰ (국립민속박물관, 1997)
唐津郡誌 하권 (唐津郡, 1997)
韓國의 歲時風俗Ⅱ (국립민속박물관, 1998)
한국 민속의 세계5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