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어린이날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5월 > 양력세시

집필자 김혜경(金惠慶)

정의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닌 민주시민으로서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는 것을 고취하기 위해 만든 기념일. 매년 5월 5일이며, 1970년 이래 현재까지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변천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시작된 최초의 해는 1923년으로 알려져 있다.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사위이기도 한 방정환(方定煥)이 어린이의 고유 문화와 예술 활동을 진작시키며, 어린이의 인권의식을 기를 목적으로 1922년 3월 16일 동경에서 색동회를 조직하였는데, 이것이 23년 어린이날 선언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3·1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는 소년들의 민족의식을 배경으로 1921년에 결성된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22년에는 이와 함께 불교소년회와 조선소년군이 모여 ‘조선소년운동협회’를 만들고 기념행사를 열기 시작했다는 의견도 있다. 1923년 5월 5일 발표된 어린이날 선언문에는, “어린이를 종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완전한 인격적 대우를 허용하고”,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연소노동을 금지하며”, “어린이가 배우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가정과 사회시설을 보장할 것”과 같은 아동존중사상이 드러나 있다. 동시에 어린이날을 노동자 계급의 기념일인 ‘메이데이’와 같은 날로 정함으로써 정치적 해방운동으로서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어린이날 행사와 어린이(소년)운동은 무산아동의 해방론과 같은 계급적 항일적 성격의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행사가 금지되는 등 탄압을 받게 되었다. 1931년부터는 일본측의 ‘유아애호주간(幼兒愛好週間)’으로 어린이날 행사의 주도권이 넘어감과 동시에 어린이의 권리 차원이 아닌 육체적 건강을 강조하였다. 총독부의 조선사회사업협회가 주관하는 유아애호주간 행사는 어린이의 건강검진, 영양강습회 같은 계몽사업을 전개하였으며, 날짜는 꼭 5월 5일로 정해져 있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그 즈음 일주일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1937년 소년운동단체는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되었으며, 어린이날 행사도 중단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부활된 어린이날은 5월 5일로 정했으며,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1961년 제정된 아동복지법에서는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명시하였고, 1970년 ‘관공서의공휴일에관한규정’에 따라 공휴일로 지정된 이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어린이헌장은 1988년 민주시민으로서의 지향을 담은 내용으로 개정되었으나, 따뜻한 가정에서 자랄 권리를 비롯하여 건강에 대한 권리, 즐겁게 놀 수 있는 권리 같은 기본가치는 1923년 어린이날 선언문의 아동존중사상을 계승하고 있다.

내용

매년 5월 5일에 정부와 어린이 관련단체 주관으로 어린이날 기념식이 열리는데, 어린이헌장을 낭독하거나 모범어린이를 선발하고, 아동복지사업 유공자를 시상하는 행사가 펼쳐진다. 또한 청와대 기념행사에는 낙도나 오지의 어린이, 소년소녀 가장, 시설보호 어린이 같은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를 초청하여 위안하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다. 그 밖에도 기념잔치, 체육대회, 글짓기대회, 미술대회 같이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가 벌어진다. 이날 어린이들은 어린이날 노래(윤석중 작사)를 목청껏 부르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이 해맑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린이를 기쁘게 하는 것은 그날 어린이는 각종 놀이시설, 공원, 체육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날 어린이들은 부모로부터 선물을 받고, 놀이시설 등에 부모님과 함께 놀러가서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그러나 점차 어린이날 행사가 상업화되어 백화점의 어린이용품 판매 증대를 위한 중요 이벤트가 되고 있다.

의의

일본에서는 유아애호주간이라는 이름으로 1921년 11월 오사카에서 먼저 시작했으며, 1926년 12월 전국적 행사로 커졌고, 다음 해부터는 5월 5일 단오절을 유아애호데이로 정하여 실시하였다. 애초 일본에서 어린이날 행사의 시작은 유아 사망률 저하와 어린이의 건강 증진 등 건강한 노동자와 병사의 양성과 같은 제국주의적 관심사와 맞닿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 특색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1923년 어린이날 선언은 1924년 제네바의 국제연합협회의에서 채택된 국제아동인권선언보다도 일년 앞섰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 어린이날 행사를 주관한 소년운동측에 의해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는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문헌

개벽운동과 합치되는 조선의 소년운동 (김기전, 『개벽』, 1923년 5월), 어린이운동의 역사 (조철호, 동아일보, 1934.5.6), 한국신문화운동사 (조용만, 정음사, 1975), 한국유치원교육사 (이상금, 이대출판부, 1987), 일제하 ‘어린이기’의 형성과 가족변화에 관한 연구 (김혜경,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8)

어린이날

어린이날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5월 > 양력세시

집필자 김혜경(金惠慶)

정의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닌 민주시민으로서 바르고,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는 것을 고취하기 위해 만든 기념일. 매년 5월 5일이며, 1970년 이래 현재까지 법정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변천

우리나라에서 어린이날이라는 이름의 행사가 시작된 최초의 해는 1923년으로 알려져 있다. 천도교 3대 교주 손병희의 사위이기도 한 방정환(方定煥)이 어린이의 고유 문화와 예술 활동을 진작시키며, 어린이의 인권의식을 기를 목적으로 1922년 3월 16일 동경에서 색동회를 조직하였는데, 이것이 23년 어린이날 선언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이미 3·1운동에 참여한 적이 있는 소년들의 민족의식을 배경으로 1921년에 결성된 천도교소년회는 어린이운동을 시작하였으며, 1922년에는 이와 함께 불교소년회와 조선소년군이 모여 ‘조선소년운동협회’를 만들고 기념행사를 열기 시작했다는 의견도 있다. 1923년 5월 5일 발표된 어린이날 선언문에는, “어린이를 종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완전한 인격적 대우를 허용하고”,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연소노동을 금지하며”, “어린이가 배우고 즐겁게 놀 수 있는 가정과 사회시설을 보장할 것”과 같은 아동존중사상이 드러나 있다. 동시에 어린이날을 노동자 계급의 기념일인 ‘메이데이’와 같은 날로 정함으로써 정치적 해방운동으로서의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어린이날 행사와 어린이(소년)운동은 무산아동의 해방론과 같은 계급적 항일적 성격의 운동으로 발전하면서 행사가 금지되는 등 탄압을 받게 되었다. 1931년부터는 일본측의 ‘유아애호주간(幼兒愛好週間)’으로 어린이날 행사의 주도권이 넘어감과 동시에 어린이의 권리 차원이 아닌 육체적 건강을 강조하였다. 총독부의 조선사회사업협회가 주관하는 유아애호주간 행사는 어린이의 건강검진, 영양강습회 같은 계몽사업을 전개하였으며, 날짜는 꼭 5월 5일로 정해져 있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그 즈음 일주일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1937년 소년운동단체는 일제의 탄압으로 해산되었으며, 어린이날 행사도 중단되었다. 1945년 광복 이후 부활된 어린이날은 5월 5일로 정했으며, 1957년에는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이 선포되었다. 그리고 1961년 제정된 아동복지법에서는 어린이날을 5월 5일로 명시하였고, 1970년 ‘관공서의공휴일에관한규정’에 따라 공휴일로 지정된 이래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어린이헌장은 1988년 민주시민으로서의 지향을 담은 내용으로 개정되었으나, 따뜻한 가정에서 자랄 권리를 비롯하여 건강에 대한 권리, 즐겁게 놀 수 있는 권리 같은 기본가치는 1923년 어린이날 선언문의 아동존중사상을 계승하고 있다.

내용

매년 5월 5일에 정부와 어린이 관련단체 주관으로 어린이날 기념식이 열리는데, 어린이헌장을 낭독하거나 모범어린이를 선발하고, 아동복지사업 유공자를 시상하는 행사가 펼쳐진다. 또한 청와대 기념행사에는 낙도나 오지의 어린이, 소년소녀 가장, 시설보호 어린이 같은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를 초청하여 위안하는 절차가 포함되어 있다. 그 밖에도 기념잔치, 체육대회, 글짓기대회, 미술대회 같이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행사가 벌어진다. 이날 어린이들은 어린이날 노래(윤석중 작사)를 목청껏 부르는데, 그 가사는 다음과 같이 해맑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린이를 기쁘게 하는 것은 그날 어린이는 각종 놀이시설, 공원, 체육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날 어린이들은 부모로부터 선물을 받고, 놀이시설 등에 부모님과 함께 놀러가서 하루를 즐겁게 보낸다. 그러나 점차 어린이날 행사가 상업화되어 백화점의 어린이용품 판매 증대를 위한 중요 이벤트가 되고 있다.

의의

일본에서는 유아애호주간이라는 이름으로 1921년 11월 오사카에서 먼저 시작했으며, 1926년 12월 전국적 행사로 커졌고, 다음 해부터는 5월 5일 단오절을 유아애호데이로 정하여 실시하였다. 애초 일본에서 어린이날 행사의 시작은 유아 사망률 저하와 어린이의 건강 증진 등 건강한 노동자와 병사의 양성과 같은 제국주의적 관심사와 맞닿은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어린이날은 어린이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진 특색이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1923년 어린이날 선언은 1924년 제네바의 국제연합협회의에서 채택된 국제아동인권선언보다도 일년 앞섰다는 점에서 특기할만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외에 어린이날 행사를 주관한 소년운동측에 의해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는 정치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참고문헌

개벽운동과 합치되는 조선의 소년운동 (김기전, 『개벽』, 1923년 5월)
어린이운동의 역사 (조철호, 동아일보, 1934.5.6)
한국신문화운동사 (조용만, 정음사, 1975)
한국유치원교육사 (이상금, 이대출판부, 1987)
일제하 ‘어린이기’의 형성과 가족변화에 관한 연구 (김혜경, 이화여자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