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재(薦度齋)

천도재

한자명

薦度齋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망자亡者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 위해 치르는 불교의식.

역사

천도재薦度齋는 고대 인도의 조령제祖靈祭를 불교에서 수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인도사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프레타(preta)라는 중간단계를 거쳐 조령祖靈이 되는데, 조령이 되기 위해서는 제를 지내야한다고 보았다. 이때의 프레타는 귀鬼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굶주려 있고 미혹과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라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생전에 지은 선악과 무관하게 조상으로 좌정하는 유교 조상신과 달리, 종교적 구원의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불교에서도 중유中有의 존재는 음식 냄새를 맡음으로써 생을 이어간다고 보면서 조령제를 수용하였다. 그 뒤 중국불교에서는 굶주린 아귀에게 음식을 베푸는 법회라하여, 이를 ‘시아귀회施餓鬼會’라고 불렀다. 이처럼 조령제는 윤회사상에 입각한 불교 중유설의 성립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망혼을 위한 의례에 종교적 근거를 제공하면서 시아귀회를 거쳐 오늘날의 천도재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망자를 위해 재를 올린 기록이 등장하며, 고려시대 이후 왕실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사십구재四十九齋인 칠칠재七七齋에서부터 기재忌齋에 이르기까지 상례喪禮・제례祭禮 기간에 다양한 천도재가 활발하게 치러졌다. 이 외에도 970년(광종 21)에 수륙재水陸齋를 행한 기록과 1106년(예종 원년)에 우란분재盂蘭盆齋를 행한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데, 당시 시왕신앙十王信仰이 성행한 점으로 미루어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또한 고려시대에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중반까지는 망자를 위한 불교의례를 주로 ‘추천追薦’이라 불렀다. ‘천도薦度’라는 용어는 고려 말에 처음 등장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관혼상제를 비롯한 모든 생활규범이 유교적 질서로 대체되는 가운데 사후구제를 제시하는 천도재는 유교의 상례・제례와 더불어 나란히 존속해왔다. 1420년(세종 2)부터 불교식 상제喪祭에 해당하는 모든 천도재를 수륙재로 치르도록 하는 등 여러변화를 거치면서도 천도재는 조선시대 내내 성행하였다. 18세기 이후 기존의 문헌들을 간추려 펴낸 『범음집梵音集』・『작법귀감作法龜鑑』 등의 의식집 내용이 천도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이러한 경향을 말해준다.

내용

불교에서는 삼보에 공양을 올리고 그 공덕을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의례를 ‘재齋’라 하며, 망자를 위해 올리는 재를 ‘천도재’라 한다. 천도薦度의 ‘천薦’은 ‘천거하다’, ‘도度’는 ‘법도’의 뜻이다. 글자 자체의 뜻만으로도, 천도는 불보살의 힘으로 망혼을 극락과 같이 좋은 곳에 보내줄 것을 천거하는 법식임을 알 수 있다. 장례를 마친 이후 망혼에게 지내는 불교의례는 모두 천도재에 해당하며, 기일이나 명절에 사찰에 와서 지내는 제사도 ‘재’로 수용되면서 ‘천도’의 뜻을 지닌다. 특히 임종 후 중유에 머무는 동안 치르는 사십구재는 천도재의 핵심을 이룬다. 이 기간에 천도재를 지냄으로써, 망자의 영혼이 더욱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천도재는 의례의 목적과 양상에 따라 사십구재・수륙재・영산재・생전예수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십구재는 죽은 뒤 다음 생을 받기까지 중유로 머무는 49일 동안 치르는 천도재이며, 수륙재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위한 무차평등無遮平等의 천도재라 할 수 있다. 영산재靈山齋는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당시 법회의 환희를 재현하여 치르는 천도재이며, 생전예수재는 내세를 위해 명부세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모시고 생전에 미리 천도재를 올려 공덕을 쌓는 의례이다. 이 밖에 백중百中이자 하안거夏安居가 끝나는 날인 음력 7월 보름에 승려들을 공양하면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우란분재의 경우는 특정한 날에 치르는 천도재에 해당한다. 이들 천도재는 대부분 고려시대부터 성행했던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각 사찰에서는 명절이나 특정한 때에 다양한 천도재를 지내고 있다.

천도재는 의례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치러지지만, 기본적인 의례구조는 유사하다. 가장 간략한 구도를 살펴보면, 천도재의 대상을 의례공간으로 청해 모시고, 생전에 지은 업을 씻는 정화의식을 거친 다음, 불보살 앞으로 나아가 공양과 불공을 올리며, 망혼에게 시식施食을 대접하고 다시 돌려보냄으로써 의례를 마친다. 이때 극락천도를 위해 불보살에게 올리는 기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망혼을 향해 끊임없이 법문을 들려줌으로써 미혹한 마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천도재에는 유교제사의 음식공양과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법공양法供養이 결합되어 있다. 이처럼 민간의 제사를 재에 접목했기 때문에, 망혼을 모신 영단 앞에서 치르는 시식의 단계는 제사와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불교의 재齋는 제사와 뚜렷이 구분되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재齋는 불佛・법法・승僧이라는 삼보三寶의 범주 속에서 이루어진다. 불보살[佛]을 모시고 승려[僧]의 집전과 불법[法]의 염송으로 의식을 치르므로, 영단 앞에서 유족이 올리는 의식은 일반제사와 다를 바 없으나 승려의 염송 내용이 곧 제사의 의미를 규정하는 텍스트의 구실을 한다. 둘째, 제사의 의미가 고인에 대한 추모와 효의 실천이라면, 재는 이에 더하여 망혼을 더욱 좋은 내세로 인도하기 위한 천도의 의미를 지닌다. 천도의 방식은 불보살의 가피加被를 기원함과 동시에, 망자에게 불법을 들려줌으로써 스스로 깨우침을 얻도록 하는 불교 특유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셋째, 개인을 위한 천도재라 하더라도 천도되지 못한 채 떠도는 모든 고혼孤魂과 지옥중생을 함께 의례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불교에서 중시하는 회향廻向의 실천으로, 대승적 차원에서 자신이 지은 선행의 공덕을 중생을 위해 돌리는 것이다. 넷째, 상차림에서 육류・어류와 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곧 불교 재물齋物과 일반 제물祭物의 기본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특징 및 의의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후의례는 유교식 상례・제례가 주축을 이루었지만, 불교 천도재와 무속 넋굿이 각기 담당하는 영역은 비교적 뚜렷하였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의식의 변화로 사후의례가 약화됨에 따라, 천도재가 점차 전통적 죽음의례에서 통합적 구실을 담당해가고 있다. 불교적 믿음과 무관하게 탈상脫喪을 위해 사십구재를 선택하는가 하면, 집에서 제사를 치르기 힘든 이들이 사찰에 의뢰하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생전의 문제로 눈을 감지 못하는 망혼의 해원解寃은 무속의 넋굿이 맡아왔으나, 무속환경이 위축되면서 이러한 기능을 천도재에서 폭넓게 수용해가고 있다. 죽음을 둘러싼 환경은 변화할지 몰라도, 죽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관념적 문제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 본연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천도재는 사회적・문제적 죽음에 대응하고 여론을 환기하는 공동체적 제의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갈등으로 초래된 문제적 죽음을 맞아, 종교를 초월한 일종의 위령제로 망혼을 천도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천도재는 사찰별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주로 사회단체와의 광범위한 연대를 통해 실행되고 있어, 의례의 당위성을 공감하는 공동체구성원이 모두 의례주체가 되는 천도재의 궁극적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행하는 폐쇄적 구도에서 벗어나 광장으로 나아가는 이러한 현상은, 불교의 죽음의례가 공동체의 문제를 공유하고 성찰하며 화합으로 이끄는 자생적 힘의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천도재가 앞으로 어떠한 변화의 경로를 거칠지 그 행보가 주목된다.

참고문헌

불교 상제례 안내(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 조계종출판사, 2011), 불교 제례의 의미와 행법-시아귀회를 중심으로(정각, 한국불교학33, 한국불교학회, 2002), 여말선초 불교의례의 축소와 천도재의 역할(이응주,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한국불교 천도재의 중층적 위상(구미래, 역사민속학28, 역사민속학회, 2008), 한국불교의 일생의례(구미래, 민족사, 2012).

천도재

천도재
한자명

薦度齋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망자亡者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 위해 치르는 불교의식.

역사

천도재薦度齋는 고대 인도의 조령제祖靈祭를 불교에서 수용한 데서 비롯되었다. 당시 인도사회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프레타(preta)라는 중간단계를 거쳐 조령祖靈이 되는데, 조령이 되기 위해서는 제를 지내야한다고 보았다. 이때의 프레타는 귀鬼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굶주려 있고 미혹과 업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존재라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은 생전에 지은 선악과 무관하게 조상으로 좌정하는 유교 조상신과 달리, 종교적 구원의 필요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불교에서도 중유中有의 존재는 음식 냄새를 맡음으로써 생을 이어간다고 보면서 조령제를 수용하였다. 그 뒤 중국불교에서는 굶주린 아귀에게 음식을 베푸는 법회라하여, 이를 ‘시아귀회施餓鬼會’라고 불렀다. 이처럼 조령제는 윤회사상에 입각한 불교 중유설의 성립에 중요한 기반이 되었으며, 망혼을 위한 의례에 종교적 근거를 제공하면서 시아귀회를 거쳐 오늘날의 천도재로 정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망자를 위해 재를 올린 기록이 등장하며, 고려시대 이후 왕실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사십구재四十九齋인 칠칠재七七齋에서부터 기재忌齋에 이르기까지 상례喪禮・제례祭禮 기간에 다양한 천도재가 활발하게 치러졌다. 이 외에도 970년(광종 21)에 수륙재水陸齋를 행한 기록과 1106년(예종 원년)에 우란분재盂蘭盆齋를 행한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데, 당시 시왕신앙十王信仰이 성행한 점으로 미루어 생전예수재生前預修齋 또한 고려시대에 행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중반까지는 망자를 위한 불교의례를 주로 ‘추천追薦’이라 불렀다. ‘천도薦度’라는 용어는 고려 말에 처음 등장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관혼상제를 비롯한 모든 생활규범이 유교적 질서로 대체되는 가운데 사후구제를 제시하는 천도재는 유교의 상례・제례와 더불어 나란히 존속해왔다. 1420년(세종 2)부터 불교식 상제喪祭에 해당하는 모든 천도재를 수륙재로 치르도록 하는 등 여러변화를 거치면서도 천도재는 조선시대 내내 성행하였다. 18세기 이후 기존의 문헌들을 간추려 펴낸 『범음집梵音集』・『작법귀감作法龜鑑』 등의 의식집 내용이 천도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이러한 경향을 말해준다.

내용

불교에서는 삼보에 공양을 올리고 그 공덕을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의례를 ‘재齋’라 하며, 망자를 위해 올리는 재를 ‘천도재’라 한다. 천도薦度의 ‘천薦’은 ‘천거하다’, ‘도度’는 ‘법도’의 뜻이다. 글자 자체의 뜻만으로도, 천도는 불보살의 힘으로 망혼을 극락과 같이 좋은 곳에 보내줄 것을 천거하는 법식임을 알 수 있다. 장례를 마친 이후 망혼에게 지내는 불교의례는 모두 천도재에 해당하며, 기일이나 명절에 사찰에 와서 지내는 제사도 ‘재’로 수용되면서 ‘천도’의 뜻을 지닌다. 특히 임종 후 중유에 머무는 동안 치르는 사십구재는 천도재의 핵심을 이룬다. 이 기간에 천도재를 지냄으로써, 망자의 영혼이 더욱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천도재는 의례의 목적과 양상에 따라 사십구재・수륙재・영산재・생전예수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사십구재는 죽은 뒤 다음 생을 받기까지 중유로 머무는 49일 동안 치르는 천도재이며, 수륙재는 인간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위한 무차평등無遮平等의 천도재라 할 수 있다. 영산재靈山齋는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던 당시 법회의 환희를 재현하여 치르는 천도재이며, 생전예수재는 내세를 위해 명부세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모시고 생전에 미리 천도재를 올려 공덕을 쌓는 의례이다. 이 밖에 백중百中이자 하안거夏安居가 끝나는 날인 음력 7월 보름에 승려들을 공양하면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우란분재의 경우는 특정한 날에 치르는 천도재에 해당한다. 이들 천도재는 대부분 고려시대부터 성행했던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외에도 각 사찰에서는 명절이나 특정한 때에 다양한 천도재를 지내고 있다.

천도재는 의례의 규모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치러지지만, 기본적인 의례구조는 유사하다. 가장 간략한 구도를 살펴보면, 천도재의 대상을 의례공간으로 청해 모시고, 생전에 지은 업을 씻는 정화의식을 거친 다음, 불보살 앞으로 나아가 공양과 불공을 올리며, 망혼에게 시식施食을 대접하고 다시 돌려보냄으로써 의례를 마친다. 이때 극락천도를 위해 불보살에게 올리는 기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망혼을 향해 끊임없이 법문을 들려줌으로써 미혹한 마음을 깨우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다.

천도재에는 유교제사의 음식공양과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는 법공양法供養이 결합되어 있다. 이처럼 민간의 제사를 재에 접목했기 때문에, 망혼을 모신 영단 앞에서 치르는 시식의 단계는 제사와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불교의 재齋는 제사와 뚜렷이 구분되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

첫째, 재齋는 불佛・법法・승僧이라는 삼보三寶의 범주 속에서 이루어진다. 불보살[佛]을 모시고 승려[僧]의 집전과 불법[法]의 염송으로 의식을 치르므로, 영단 앞에서 유족이 올리는 의식은 일반제사와 다를 바 없으나 승려의 염송 내용이 곧 제사의 의미를 규정하는 텍스트의 구실을 한다. 둘째, 제사의 의미가 고인에 대한 추모와 효의 실천이라면, 재는 이에 더하여 망혼을 더욱 좋은 내세로 인도하기 위한 천도의 의미를 지닌다. 천도의 방식은 불보살의 가피加被를 기원함과 동시에, 망자에게 불법을 들려줌으로써 스스로 깨우침을 얻도록 하는 불교 특유의 관점을 취하고 있다. 셋째, 개인을 위한 천도재라 하더라도 천도되지 못한 채 떠도는 모든 고혼孤魂과 지옥중생을 함께 의례대상으로 삼는다. 이는 불교에서 중시하는 회향廻向의 실천으로, 대승적 차원에서 자신이 지은 선행의 공덕을 중생을 위해 돌리는 것이다. 넷째, 상차림에서 육류・어류와 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곧 불교 재물齋物과 일반 제물祭物의 기본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특징 및 의의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사후의례는 유교식 상례・제례가 주축을 이루었지만, 불교 천도재와 무속 넋굿이 각기 담당하는 영역은 비교적 뚜렷하였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방식과 의식의 변화로 사후의례가 약화됨에 따라, 천도재가 점차 전통적 죽음의례에서 통합적 구실을 담당해가고 있다. 불교적 믿음과 무관하게 탈상脫喪을 위해 사십구재를 선택하는가 하면, 집에서 제사를 치르기 힘든 이들이 사찰에 의뢰하는 비율도 늘어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생전의 문제로 눈을 감지 못하는 망혼의 해원解寃은 무속의 넋굿이 맡아왔으나, 무속환경이 위축되면서 이러한 기능을 천도재에서 폭넓게 수용해가고 있다. 죽음을 둘러싼 환경은 변화할지 몰라도, 죽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관념적 문제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 본연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천도재는 사회적・문제적 죽음에 대응하고 여론을 환기하는 공동체적 제의로 부상하고 있다. 사회갈등으로 초래된 문제적 죽음을 맞아, 종교를 초월한 일종의 위령제로 망혼을 천도하고 이를 공론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천도재는 사찰별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주로 사회단체와의 광범위한 연대를 통해 실행되고 있어, 의례의 당위성을 공감하는 공동체구성원이 모두 의례주체가 되는 천도재의 궁극적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행하는 폐쇄적 구도에서 벗어나 광장으로 나아가는 이러한 현상은, 불교의 죽음의례가 공동체의 문제를 공유하고 성찰하며 화합으로 이끄는 자생적 힘의 매개체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측면에서 천도재가 앞으로 어떠한 변화의 경로를 거칠지 그 행보가 주목된다.

참고문헌

불교 상제례 안내(대한불교조계종 포교연구실, 조계종출판사, 2011), 불교 제례의 의미와 행법-시아귀회를 중심으로(정각, 한국불교학33, 한국불교학회, 2002), 여말선초 불교의례의 축소와 천도재의 역할(이응주,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9), 한국불교 천도재의 중층적 위상(구미래, 역사민속학28, 역사민속학회, 2008), 한국불교의 일생의례(구미래, 민족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