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남사당풍물놀이(安城男寺黨風物-)

안성남사당풍물놀이

한자명

安城男寺黨風物-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9월 > 놀이

집필자 김헌선(金憲宣)

정의

경기도 안성(安城) 일대에 전승되는 풍물놀이. 안성남사당풍물놀이(安城男寺黨風物-)는 붙박이로 하는 농악이라기보다는 안성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전국적인 유랑을 하는 농악 연희패의 연희를 일컫는다. 유랑 연예인 풍물놀이패라고 보는 편이 적절하며, 세시절기에 따라 풍물놀이를 연행하면서 걸립과 판굿놀이를 행하였다. 1997년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

유래

경기도 안성의 풍물놀이가 사당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안성 청룡사(靑龍寺) 때문이다. 안성시 서운면 산중에 자리 잡은 청룡사가 남사당패의 본거지가 되었는데, 이는 청룡사가 교통의 요충지가 되는 안성에 있어 걸립꾼들이 쉽사리 갈라지고 모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걸립꾼들은 안성 청룡사의 신표를 받아야 걸립을 다닐 수 있었다.

안성남사당패의 실질적인 기원은 청룡사의 후원을 받은 불당골 사당패로서 이는 중시조격에 해당한다. 흥선대원군이 고종 2년(1865)에 경복궁을 중건하고 일꾼들을 위무하고 놀릴 생각으로 전국의 놀이패를 초청해서 연행하게 한 바 있다. 이때에 농악놀이를 가장 잘 놀았다는 이유로 옥관자(玉貫子)를 하사받은 패거리가 곧 안성 바우덕이패이다. 바우덕이패는 안성개다리패라고도 했다. 현재 바우덕이의 무덤이 불당골 근처에 남아 있어서 바우덕이가 실제 인물이었음이 확인된다. 옥관자를 두레기 위에 달고 그 깃발의 아랫부분에 오색삼기(五色三旗)를 달고서 위세를 자랑하게 되었다. 다른 농악대의 두레기가 이 깃발을 만나면 기절[旗歲拜]을 하고 예우를 갖추었으며, 이때문에 안성농악이 영좌농악(領座農樂)으로 지칭되었다. 그러나 농악이 발달한 고장에서는 널리 확인되며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기절을 받는 영좌기가 있게 마련이므로 그같은 전통이 확대되고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안성 남사당패의 중시조에 이어서 여러 놀이패가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하였음이 확인되는데, 1930년대까지 개다리패, 오명선패, 심선옥패, 안성 복만이패, 원육덕패, 이원보패 해서 여섯 정도의 패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현재 남사당패의 실질적 기원을 이어 온 계보가 있으니, 곧 ‘바우덕이 ­ 김복만 ­ 원육덕 ­ 이원보 ­ 김기복’으로 이어지는 꼭두쇠의 계보이다. 꼭두쇠는 패거리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데, 이 패거리의 전승 계보가 곧 남사당 풍물놀이의 전승과 내력을 밝히는 증거가 된다.

안성남사당풍물패의 활동 범위는 광범위하여 경기도 안성 일대를 중심으로 한 경기도 북부 지역은 물론 멀리 북간도, 일본의 대마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대체로 경기도를 중심으로 걸립을 다녔으며 이원보패가 마지막까지 안성 일대에서 활약을 하였다. 이원보 행중의 뒤를 이은 상쇠는 김기복(金起福)으로 현재 전승되는 안성남사당풍물놀이의 주체(主體)이다. 안성남사당보존회는 1982년 4월에 오함헌을 회장으로 하고, 김기복 상쇠를 주축으로 결성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어서 1989년 9월 제3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내용

사당패는 우두머리인 꼭두쇠를 중심으로 그 아래에 뜬쇠라고 부르는 4∼5명의 연희자가 있는 놀이 집단으로 일정한 거처가 없는 유랑 연예인 집단이며 남색(男色)을 파는 독신 남자만의 사회집단이기도 하다. 꼭두쇠는 패거리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그 밑의 곰뱅이쇠는 꼭두쇠의 보좌로서 마을을 방문하여 주민들에게 놀이마당을 열어도 좋다는 승낙을 미리 받는 일을 맡는다. 뜬쇠는 실제 남사당놀이의 기능자 가운데 각 연희 분야의 선임자(先任者)를 일컫고, 그 아래로 가열이 있으니 일종의 뜬쇠들 보조자이다. 가열 아래에 삐리를 두는데, 기예를 익히기 위하여 가열 밑에 있는 초입자를 이른다. 이 밖에도 저승패와 등짐꾼을 포함하여 40∼50여 명으로 구성된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패는 남사당패 일반의 조직과 예능을 보존하려고 힘쓴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는 풍물놀이를 중심으로 하면서 다른 기예능을 곁들이기도 한다. 남사당패에는 여섯 가지 기예능이 있는데 풍물놀이,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가 그것이다. 풍물놀이는 농악놀이를 말하고, 버나는 접시돌리기 따위를 말하며, 살판은 땅재주 넘기, 덧뵈기는 탈놀이, 어름은 줄타기, 덜미는 꼭두각시놀음을 지칭한다. 남사당패는 각각의 놀이가 독자적으로 전승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나의 집단으로 결성하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구경거리의 밑천으로 삼았다. 현재 안성남사당풍물놀이에서는 남사당패만의 본질적인 기예능을 모두 전승하지 못하고, 풍물놀이와 버나만을 전승하고 있다.

풍물놀이는 가락, 진풀이, 법구와 무동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가락은 안성의 토박이 가락에 기초하고 있는데, 안성 가락은 크게 보면 안성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도, 충청도 일대의 농악 가락에 준거한다. 이른바 남사당패의 지역 분류로 웃다리 가락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적으로 가다듬어진 것으로 세부적이고 변화무쌍한 가락과 여러 부침새가 붙는 이른 바 사치스러운 가락이 아니라 안성 지역에서만 전승되는 토박이 가락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토박이 가락을 근간으로 해서 떠돌이 가락의 사치스러운 면모가 발전하기 때문에 이 점을 중심으로 논의해야만 안성남사당풍물놀이 가락의 정체성을 논의할 수 있다.

웃다리 가락은 길군악 7채, 동리 3채 또는 쩍쩍이 가락, 마당굿 1채, 굿거리 탈춤가락이 다채롭게 쓰이면서도 소박한 것이 특징이다. 웃다리 가락은 남사당패의 은어로 쓰는 말로 아랫다리와 대응이 되는 가락이다. 웃다리 가락에는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 가락이 있는데, 첫째는 2소박 3소박이 혼합되어 있는 혼소박의 가락이다. 길군악 7채와 마당굿 1채의 가락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는 다르게 3소박 4박자의 복합가락이 있는데 쩍쩍이 가락, 굿거리 탈춤가락이다. 또 2소박 4박자 유형으로 된 단순 박자의 가락은 안성 남사당 풍물가락의 주된 가락 유형으로 분류된다. 그 가운데서도 경기도 안성 쇠가락의 진면목은 길군악 7채와 6채 가락 또는 마당굿 1채에서 발견된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의 특색은 판굿에서의 진풀이에 따른 무동놀이와 벅구놀이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무동놀이나 벅구놀이는 안성남사당풍물놀이에서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다. 벅구놀이는 당산벌림을 한 뒤에 치배, 무동, 벅구잽이들이 ‘ㄷ’자 형으로 서고 상쇠가 나와서 벅구잽이들을 이끌고 노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벅구잽이와 상쇠가 서로 어울려 농사 짓는 흉내를 하면서 춤사위를 한다. 벅구잽이들이 늘어서는 대형이나 상징적인 행렬은 모의농경의례로서 속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안성남사당풍물놀이의 벅구놀이가 가지는 중요성을 일깨운다.

남사당풍물놀이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무동놀이이다. 무동은 새미라고도 한다. 단순한 춤사위의 반복을 피하고 벅구잽이들의 어깨를 딛고 그 위에서 가락에 맞춰서 나풀거리는 춤사위를 무동들이 추게 하여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게 하는 아름다움을 고조시켰다. 또한 단무동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삼무동, 사무동, 오무동, 동고리, 곡마단 같은 입체적인 놀이를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칠무동을 세우고 그 위에서 새미를 던지거나 만경창파 돛대사위를 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볼거리를 구성했다. 그런데 문제는 새미받는 행위를 무동놀이로 하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무동을 올리는 행위는 근본적 이치가 주술적 원리에 입각하고 있는 것으로,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그 아이가 곧 성인이 되어서 남녀가 결합하여 아이를 낳듯이 농사의 풍요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거나 거둔 곡식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적 기원을 확인할 수 있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는 주로 가을걷이 무렵을 중심으로 걸립을 많이 다닌 농악이다. 안성 현지를 조사하면 붙박이로 머물면서 토박이 가락을 연주하는 집단이 있고, 이와 달리 마을의 연희자 가운데 가락이 뛰어나고 재주가 있는 사람으로 결성된 남사당 풍물놀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들과 다르게 전문적인 연희 활동을 하면서 전국을 유랑한 집단이 있다. 기반을 이루는 토박이 가락과 지역적 정체성을 지닌 농악은 안성 일대에 마을마다 있는 농악이다. 소박한 가락에 재주와 사치를 더한 농악이 안성남사당풍물놀이이다.

참고문헌

男寺黨牌硏究 (沈雨晟, 東文選, 1994), 김헌선의 사물놀이 이야기 (김헌선, 풀빛, 1995)

안성남사당풍물놀이

안성남사당풍물놀이
한자명

安城男寺黨風物-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9월 > 놀이

집필자 김헌선(金憲宣)

정의

경기도 안성(安城) 일대에 전승되는 풍물놀이. 안성남사당풍물놀이(安城男寺黨風物-)는 붙박이로 하는 농악이라기보다는 안성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전국적인 유랑을 하는 농악 연희패의 연희를 일컫는다. 유랑 연예인 풍물놀이패라고 보는 편이 적절하며, 세시절기에 따라 풍물놀이를 연행하면서 걸립과 판굿놀이를 행하였다. 1997년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

유래

경기도 안성의 풍물놀이가 남사당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안성 청룡사(靑龍寺) 때문이다. 안성시 서운면 산중에 자리 잡은 청룡사가 남사당패의 본거지가 되었는데, 이는 청룡사가 교통의 요충지가 되는 안성에 있어 걸립꾼들이 쉽사리 갈라지고 모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걸립꾼들은 안성 청룡사의 신표를 받아야 걸립을 다닐 수 있었다.

안성남사당패의 실질적인 기원은 청룡사의 후원을 받은 불당골 사당패로서 이는 중시조격에 해당한다. 흥선대원군이 고종 2년(1865)에 경복궁을 중건하고 일꾼들을 위무하고 놀릴 생각으로 전국의 놀이패를 초청해서 연행하게 한 바 있다. 이때에 농악놀이를 가장 잘 놀았다는 이유로 옥관자(玉貫子)를 하사받은 패거리가 곧 안성 바우덕이패이다. 바우덕이패는 안성개다리패라고도 했다. 현재 바우덕이의 무덤이 불당골 근처에 남아 있어서 바우덕이가 실제 인물이었음이 확인된다. 옥관자를 두레기 위에 달고 그 깃발의 아랫부분에 오색삼기(五色三旗)를 달고서 위세를 자랑하게 되었다. 다른 농악대의 두레기가 이 깃발을 만나면 기절[旗歲拜]을 하고 예우를 갖추었으며, 이때문에 안성농악이 영좌농악(領座農樂)으로 지칭되었다. 그러나 농악이 발달한 고장에서는 널리 확인되며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기절을 받는 영좌기가 있게 마련이므로 그같은 전통이 확대되고 과장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안성 남사당패의 중시조에 이어서 여러 놀이패가 이합집산(離合集散)을 거듭하였음이 확인되는데, 1930년대까지 개다리패, 오명선패, 심선옥패, 안성 복만이패, 원육덕패, 이원보패 해서 여섯 정도의 패가 있었다. 그런데 이들 가운데 현재 남사당패의 실질적 기원을 이어 온 계보가 있으니, 곧 ‘바우덕이 ­ 김복만 ­ 원육덕 ­ 이원보 ­ 김기복’으로 이어지는 꼭두쇠의 계보이다. 꼭두쇠는 패거리의 우두머리를 지칭하는데, 이 패거리의 전승 계보가 곧 남사당 풍물놀이의 전승과 내력을 밝히는 증거가 된다.

안성남사당풍물패의 활동 범위는 광범위하여 경기도 안성 일대를 중심으로 한 경기도 북부 지역은 물론 멀리 북간도, 일본의 대마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대체로 경기도를 중심으로 걸립을 다녔으며 이원보패가 마지막까지 안성 일대에서 활약을 하였다. 이원보 행중의 뒤를 이은 상쇠는 김기복(金起福)으로 현재 전승되는 안성남사당풍물놀이의 주체(主體)이다. 안성남사당보존회는 1982년 4월에 오함헌을 회장으로 하고, 김기복 상쇠를 주축으로 결성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어서 1989년 9월 제30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내용

남사당패는 우두머리인 꼭두쇠를 중심으로 그 아래에 뜬쇠라고 부르는 4∼5명의 연희자가 있는 놀이 집단으로 일정한 거처가 없는 유랑 연예인 집단이며 남색(男色)을 파는 독신 남자만의 사회집단이기도 하다. 꼭두쇠는 패거리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그 밑의 곰뱅이쇠는 꼭두쇠의 보좌로서 마을을 방문하여 주민들에게 놀이마당을 열어도 좋다는 승낙을 미리 받는 일을 맡는다. 뜬쇠는 실제 남사당놀이의 기능자 가운데 각 연희 분야의 선임자(先任者)를 일컫고, 그 아래로 가열이 있으니 일종의 뜬쇠들 보조자이다. 가열 아래에 삐리를 두는데, 기예를 익히기 위하여 가열 밑에 있는 초입자를 이른다. 이 밖에도 저승패와 등짐꾼을 포함하여 40∼50여 명으로 구성된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패는 남사당패 일반의 조직과 예능을 보존하려고 힘쓴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는 풍물놀이를 중심으로 하면서 다른 기예능을 곁들이기도 한다. 남사당패에는 여섯 가지 기예능이 있는데 풍물놀이, 버나, 살판, 어름, 덧뵈기, 덜미가 그것이다. 풍물놀이는 농악놀이를 말하고, 버나는 접시돌리기 따위를 말하며, 살판은 땅재주 넘기, 덧뵈기는 탈놀이, 어름은 줄타기, 덜미는 꼭두각시놀음을 지칭한다. 남사당패는 각각의 놀이가 독자적으로 전승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하나의 집단으로 결성하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구경거리의 밑천으로 삼았다. 현재 안성남사당풍물놀이에서는 남사당패만의 본질적인 기예능을 모두 전승하지 못하고, 풍물놀이와 버나만을 전승하고 있다.

풍물놀이는 가락, 진풀이, 법구와 무동으로 나누어 말할 수 있다. 가락은 안성의 토박이 가락에 기초하고 있는데, 안성 가락은 크게 보면 안성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도, 충청도 일대의 농악 가락에 준거한다. 이른바 남사당패의 지역 분류로 웃다리 가락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적으로 가다듬어진 것으로 세부적이고 변화무쌍한 가락과 여러 부침새가 붙는 이른 바 사치스러운 가락이 아니라 안성 지역에서만 전승되는 토박이 가락이 있었음을 무시할 수 없다. 토박이 가락을 근간으로 해서 떠돌이 가락의 사치스러운 면모가 발전하기 때문에 이 점을 중심으로 논의해야만 안성남사당풍물놀이 가락의 정체성을 논의할 수 있다.

웃다리 가락은 길군악 7채, 동리 3채 또는 쩍쩍이 가락, 마당굿 1채, 굿거리 탈춤가락이 다채롭게 쓰이면서도 소박한 것이 특징이다. 웃다리 가락은 남사당패의 은어로 쓰는 말로 아랫다리와 대응이 되는 가락이다. 웃다리 가락에는 대체로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되는 가락이 있는데, 첫째는 2소박 3소박이 혼합되어 있는 혼소박의 가락이다. 길군악 7채와 마당굿 1채의 가락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와는 다르게 3소박 4박자의 복합가락이 있는데 쩍쩍이 가락, 굿거리 탈춤가락이다. 또 2소박 4박자 유형으로 된 단순 박자의 가락은 안성 남사당 풍물가락의 주된 가락 유형으로 분류된다. 그 가운데서도 경기도 안성 쇠가락의 진면목은 길군악 7채와 6채 가락 또는 마당굿 1채에서 발견된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의 특색은 판굿에서의 진풀이에 따른 무동놀이와 벅구놀이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무동놀이나 벅구놀이는 안성남사당풍물놀이에서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다. 벅구놀이는 당산벌림을 한 뒤에 치배, 무동, 벅구잽이들이 ‘ㄷ’자 형으로 서고 상쇠가 나와서 벅구잽이들을 이끌고 노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벅구잽이와 상쇠가 서로 어울려 농사 짓는 흉내를 하면서 춤사위를 한다. 벅구잽이들이 늘어서는 대형이나 상징적인 행렬은 모의농경의례로서 속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안성남사당풍물놀이의 벅구놀이가 가지는 중요성을 일깨운다.

남사당풍물놀이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무동놀이이다. 무동은 새미라고도 한다. 단순한 춤사위의 반복을 피하고 벅구잽이들의 어깨를 딛고 그 위에서 가락에 맞춰서 나풀거리는 춤사위를 무동들이 추게 하여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게 하는 아름다움을 고조시켰다. 또한 단무동의 단조로움을 피하고 삼무동, 사무동, 오무동, 동고리, 곡마단 같은 입체적인 놀이를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칠무동을 세우고 그 위에서 새미를 던지거나 만경창파 돛대사위를 하게 함으로써 다양한 볼거리를 구성했다. 그런데 문제는 새미받는 행위를 무동놀이로 하는가 하는 점이다. 특히 무동을 올리는 행위는 근본적 이치가 주술적 원리에 입각하고 있는 것으로,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그 아이가 곧 성인이 되어서 남녀가 결합하여 아이를 낳듯이 농사의 풍요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거나 거둔 곡식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적 기원을 확인할 수 있다.

안성남사당풍물놀이는 주로 가을걷이 무렵을 중심으로 걸립을 많이 다닌 농악이다. 안성 현지를 조사하면 붙박이로 머물면서 토박이 가락을 연주하는 집단이 있고, 이와 달리 마을의 연희자 가운데 가락이 뛰어나고 재주가 있는 사람으로 결성된 남사당 풍물놀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이들과 다르게 전문적인 연희 활동을 하면서 전국을 유랑한 집단이 있다. 기반을 이루는 토박이 가락과 지역적 정체성을 지닌 농악은 안성 일대에 마을마다 있는 농악이다. 소박한 가락에 재주와 사치를 더한 농악이 안성남사당풍물놀이이다.

참고문헌

男寺黨牌硏究 (沈雨晟, 東文選, 1994)
김헌선의 사물놀이 이야기 (김헌선, 풀빛,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