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성묘(-省墓)

설성묘

한자명

-省墓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최순권(崔順權)

정의

설날에 조상의 묘소에 절하고 살펴보는 예(禮).

내용

묘소가 잘 있는지 살펴보러 간다고 하여 성묘(省墓)·전묘(展墓)·상묘(上墓)·상분(上墳)·상총(上塚)·배분(拜墳)·배소례(拜掃禮)·소묘(掃墓)·전소례(展掃禮)라고도 한다. 또는 간단하게 묘소에서 차례를 지낸다고 하여 ‘산소차례’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대체로 묘제(墓祭) 또는 성묘의 의미로 통용되었다. 송시열(宋時烈)이 “성묘 때 처음에 재배하며, 다시 재배하고 물러서는 것은 예의가 더욱 갖추어진 것이다.”고 하였듯이, 조상에게 문안드리듯이 묘소에 절하고 살펴보는 것을 ‘성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조상의 체백(體魄)이 있는 묘소를 중시하여 설 등의 명절에 조상의 묘를 돌아보는[上墳] 풍속이 있었고, 사당을 중요시하는 『가례(家禮)』를 수용한 이후에도 설은 ‘명절’이라 하여 절사로서 묘제를 지냈다. 이에 이이(李珥)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한식과 추석에는 『가례』에 의해 묘제를 지내되, 설과 단오에는 간략하게 제수를 갖추어 단헌(單獻)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설날의 날씨는 대체로 추워서 묘제를 지내기 어려웠고, 또한 『가례』에 의거해서 사당에서 지내는 차례가 강조되면서 설날에는 절사보다는 간략한 성묘를 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설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집에서 차례를 지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차례를 지낸 후에 성묘를 한다.

참고문헌

家禮增解, 擊蒙要訣, 東國歲時記, 奉先雜儀, 四禮便覽, 喪禮備要, 朱子家禮, 가정의례준칙 (常元出版社, 1969), 조선대세시기Ⅰ (국립민속박물관, 2003),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삼국·고려시대 편 (국립민속박물관, 2003),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신문·잡지 편 1876~1945 (국립민속박물관, 2003)

설성묘

설성묘
한자명

-省墓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정월(正月) > 1월 > 정일

집필자 최순권(崔順權)

정의

설날에 조상의 묘소에 절하고 살펴보는 예(禮).

내용

묘소가 잘 있는지 살펴보러 간다고 하여 성묘(省墓)·전묘(展墓)·상묘(上墓)·상분(上墳)·상총(上塚)·배분(拜墳)·배소례(拜掃禮)·소묘(掃墓)·전소례(展掃禮)라고도 한다. 또는 간단하게 묘소에서 차례를 지낸다고 하여 ‘산소차례’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대체로 묘제(墓祭) 또는 성묘의 의미로 통용되었다. 송시열(宋時烈)이 “성묘 때 처음에 재배하며, 다시 재배하고 물러서는 것은 예의가 더욱 갖추어진 것이다.”고 하였듯이, 조상에게 문안드리듯이 묘소에 절하고 살펴보는 것을 ‘성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조상의 체백(體魄)이 있는 묘소를 중시하여 설 등의 명절에 조상의 묘를 돌아보는[上墳] 풍속이 있었고, 사당을 중요시하는 『가례(家禮)』를 수용한 이후에도 설은 ‘명절’이라 하여 절사로서 묘제를 지냈다. 이에 이이(李珥)는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한식과 추석에는 『가례』에 의해 묘제를 지내되, 설과 단오에는 간략하게 제수를 갖추어 단헌(單獻)을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설날의 날씨는 대체로 추워서 묘제를 지내기 어려웠고, 또한 『가례』에 의거해서 사당에서 지내는 차례가 강조되면서 설날에는 절사보다는 간략한 성묘를 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설이 공휴일로 지정되어 집에서 차례를 지내기도 하지만, 대부분 차례를 지낸 후에 성묘를 한다.

참고문헌

家禮增解, 擊蒙要訣, 東國歲時記, 奉先雜儀, 四禮便覽, 喪禮備要, 朱子家禮
가정의례준칙 (常元出版社, 1969)
조선대세시기Ⅰ (국립민속박물관, 2003)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삼국·고려시대 편 (국립민속박물관, 2003)
한국세시풍속자료집성-신문·잡지 편 1876~1945 (국립민속박물관,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