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박첨지놀이(瑞山朴僉知-)

서산박첨지놀이

한자명

瑞山朴僉知-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8월 > 정일

집필자 허용호(許龍鎬)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 4리에서 전승되는 인형극. 마을 입구 안내판에는 ‘서산 박첨지 인형극 놀이’라고 쓰여 있지만, 일반적으로 ‘서산박첨지놀이’라 부른다. 매년 추석(秋夕)을 전후해 마을에서 연행되는 추석놀이의 하나로, 현전하는 유일한 토박이 대패 인형극으로 주목받고 있다. 서산박첨지놀이는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박첨지놀이보존회를 중심으로 그 연행과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래

서산박첨지놀이는 1920년대 후반부터 충남 서산시 음암면 탑곡 4리 마을 토박이들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왔다. 서산박첨지놀이 전승에는 유영춘과 주연산이라는 인물이 그 중심에 있다. 탑곡 4리 출신인 주연산이 20세 때 운산면 신창리에 나가서 살고 있었는데, 당시 강원도에서 이사와 그 마을에 살았던 유영춘에게서 인형 제작법, 놀이 방법, 재담을 배우면서 전승이 시작되었다. 사당패 출신이라 전해지는 유영춘에게서 3년 동안 인형극 연행 방식을 배우고 익힌 주연산은 이후 고향인 탑곡 4리로 돌아와 마을의 젊은이들과 함께 주로 명절 때 연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연행은 탑곡마을에서만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고 인근 마을까지 나가서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서산박첨지놀이의 연행은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1953년까지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일시 중단된다. 이후 1954년부터 다시 연행이 이루어져, 거의 매년 추석을 전후해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한바탕 노는 마을의 오락거리로 자리를 잡아왔다. 그러다가 1989년을 기점으로 서산박첨지놀이는 전국적으로 소개되어 주목을 받게 되었고, 여러 지역 행사에 초청을 받아 그 연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행 양상이 추석을 전후해서 마을 사랑방이나 공터에서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던 것이 점차 마을을 벗어나 초청 공연이나 행사 참여가 주가 되고 있다.

내용

장면 전환의 지표로 기능하는 악사들의 “떼루 떼루아 떼루야”라는 구음을 기준으로 한다면, 서산박첨지놀이는 대략 20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나누어진 장면과 그 핵심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박첨지의 팔도 유람 ② 박첨지 작은마누라의 인사 ③ 박첨지 동생과 박첨지의 만남과 다툼 ④ 박첨지 큰마누라와 박첨지의 만남과 다툼 ⑤ 박첨지 처남 명노와 박첨지의 만남과 다툼 ⑥ 재산 분배를 결심하는 박첨지와 악사의 조언 ⑦ 박첨지의 편파적 재산 분배와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의 싸움 ⑧ 평양감사의 꿩사냥을 위한 홍동지의 길 닦기 ⑨ 박첨지의 홍동지 길 닦기 평가 ⑩ 평양감사의 꿩사냥 ⑪ 평양감사의 병환 소식과 악사의 치료 방법 조언 ⑫ 구렁이가 병 치료에 쓰일 홍새를 잡아먹음 ⑬ 평양감사의 장례 소식 ⑭ 평양감사의 장례식 ⑮ 절을 짓기 위한 시주 소식 ⑯ 절을 짓기 위한 스님의 시주 부탁 ⑰ 공중사 짓기 ⑱ 소경이 눈 뜬다는 소식 ⑲ 소경 눈뜨기 ⑳ 등장 인물들이 모두 나와서 춤추며 놀기

20장면으로 이루어진 서산박첨지놀이의 내용은 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전체적으로 그 내용이 유사하여 동일 계통의 인형극이라 말할 수 있다. 남과 여, 상층과 하층, 종교인과 세속인 등으로 정리되는 각 장면 속 등장 인물 간의 역학 관계 역시 유사하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서산박첨지놀이만이 지닌 독특함이 나타난다.

장면 ①에서 장면 ⑦까지는 집안을 돌보지 않고 축첩을 일삼는 박첨지에 대한 다른 가족들의 비판이 주된 내용이다. 큰마누라는 물론이고 처남, 동생이 박첨지의 무책임과 축첩을 비판하고 웃음거리로 만든다.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에서처럼 남성 횡포의 비판이 큰마누라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박첨지 가족 모두가 박첨지의 횡포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는 축첩을 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며, 집안이 어지럽게 된다는 마을 공동체의 의식이 강하게 함축되어 있다.

장면 ⑧에서 장면 ⑭까지는 벼슬아치와 일반 평민의 갈등을 통해서 나타나는 신분적 특권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꼭두각시놀음에 비해 홍동지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어, 상층 계급에 대한 풍자의 정도가 감소되기는 하지만, 하층민들에게 피해만 주는 평양감사의 행태에 대한 비판 의식은 그대로 살아 있다.

서산박첨지놀이의 내용이 지닌 독특함은 장면 ⑮에서 장면 ⑳까지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배층인 평양감사의 횡포로 시력을 잃게 된 소경이 불공을 통하여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 전개는 종교인과 세속인의 우호적인 관계를 통해서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불교적 해원(解寃)이라는 주제를 만들어낸다. 이는 종교인과 세속인의 갈등을 통해서 관념적 허위를 비판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꼭두각시놀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서산박첨지놀이는 불교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기보다는 불교적 기적 혹은 불교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서산박첨지놀이 전승 공동체의 불교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을 이 대목에서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서산박첨지놀이는 떠돌이 대패인 남사당패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지만, 남사당패의 인형극 꼭두각시놀음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는 않다. 인형극을 배워 전승하는 과정에서는 서산박첨지놀이만의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된다. 바가지, 소나무 껍질, 칡넝쿨 속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만든 소박한 인형들, 독특한 주머니 인형 형태와 주머니 인형 조종 방식, 서산 방언의 사용, 소경 눈뜨기와 같은 독특한 연행술, 열린 연행자 수급과 여성 연행자의 참여, 목소리 변조기의 소멸, 인형 목소리 연기의 일인일역적 경향, 전승 공동체의 성격에 맞게 변형된 연행 내용은 서산박첨지놀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들이다. 일정한 지역에서 붙박이로 살고 있는 토박이 광대패의 속성에서 나온 토착화된 특성들인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주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솜씨를 다하여 소박한 인형들을 제작하고, 자신들의 말투에 맞게 인형들의 목소리 연기를 하며, 소박하지만 독특한 연행술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세계관에 따라 연행 내용을 만들어 나간 것이 서산박첨지놀이다. 또한 남사당패처럼 연행 참여에 일정한 제약이나 규제가 없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 중에서 연행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제약 없이 참여하게 되었으며, 여성의 외부 활동에 대한 인식 변화와 어우러지면서 여성 연행자 역시 생겨나 연행자 수가 증가했다. 연행자 수의 증가는 결국 목소리 연기의 일인일역적 경향성을 낳게 하였다. 이러한 일인일역적 경향성은 이제 굳이 목소리를 변성할 필요를 못 느끼게 하였고, 이에 따라 종이를 댄 참빗이나 죽통 같은 목소리 변조기도 사라졌다. 목소리 변조기라는 전문 광대패적 특성이 토박이 광대패의 전승이 갖는 특성에 의해 대체된 것이다.

지역사례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전국에서 박첨지놀이 또는 홍동지놀이라 부르는 민속인형극들이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 고양·이천·장단·개풍(현재는 황해북도에 속함), 충청도 영동·음성·제천·논산·아산, 강원도 강릉·울진(현재는 경북에 속함)·정선·영월·원주·홍천·철원·평강·춘천, 황해도 연백·금천·평산·옹진·송화·안악·재령·황주·수안·장연, 평안도 용강, 함경도 고원·홍원·성진·무산·종성이 그 전승 지역들이다. 이러한 조사 자료들을 통해서 볼 때, 인형극 역시 가면극 못지않게 전국 각지에서 다양하게 전승되며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상의 사례들은 그저 기록상으로만 접할 수 있을 뿐이다. 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처럼 현재까지 연행되면서, 그 구체적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양한 양상의 인형극과 연행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추론만이 가능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산박첨지놀이의 존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의 민속인형극이 더 이상 유일하지 않으며, 유랑광대패의 전유물이 아님을 입증하는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사례로 서산박첨지놀이가 있는 것이다.

의의

서산박첨지놀이는 사당패라는 전문적인 떠돌이 대패 연행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지만, 일정한 지역에 근거를 둔 토박이 광대패에 의한 연행과 전승이라는 특징에 따라 독특한 면모를 가지게 되었다. 그 기원이 외래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전승 과정을 통해 마을 공동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독특하고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서산박첨지놀이는 인형극과 마을 공동체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흔치않은 대상이다. 우리의 민속인형극이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만이 유일한 것이 아니며, 떠돌이 광대패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소중한 대상이 바로 서산박첨지놀이다.

참고문헌

朝鮮の鄕土娛樂 (村山智順, 朝鮮總督府, 1941), 신명나는 서산 박첨지 놀이 (서연호, 문화예술11·12월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89), 서산 박첨지 놀이 연구 (허용호, 口碑文學硏究10, 한국구비문학회, 2000), 서산박첨지놀이의 전승 양상 (허용호, 民俗學硏究13, 국립민속박물관, 2003), 토박이 대패 인형극의 전승 양상 (허용호, 口碑文學硏究20, 韓國口碑文學會, 2005)

서산박첨지놀이

서산박첨지놀이
한자명

瑞山朴僉知-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가을(秋) > 8월 > 정일

집필자 허용호(許龍鎬)

정의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탑곡 4리에서 전승되는 인형극. 마을 입구 안내판에는 ‘서산 박첨지 인형극 놀이’라고 쓰여 있지만, 일반적으로 ‘서산박첨지놀이’라 부른다. 매년 추석(秋夕)을 전후해 마을에서 연행되는 추석놀이의 하나로, 현전하는 유일한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으로 주목받고 있다. 서산박첨지놀이는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박첨지놀이보존회를 중심으로 그 연행과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다.

유래

서산박첨지놀이는 1920년대 후반부터 충남 서산시 음암면 탑곡 4리 마을 토박이들을 중심으로 전승되어왔다. 서산박첨지놀이 전승에는 유영춘과 주연산이라는 인물이 그 중심에 있다. 탑곡 4리 출신인 주연산이 20세 때 운산면 신창리에 나가서 살고 있었는데, 당시 강원도에서 이사와 그 마을에 살았던 유영춘에게서 인형 제작법, 놀이 방법, 재담을 배우면서 전승이 시작되었다. 남사당패 출신이라 전해지는 유영춘에게서 3년 동안 인형극 연행 방식을 배우고 익힌 주연산은 이후 고향인 탑곡 4리로 돌아와 마을의 젊은이들과 함께 주로 명절 때 연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연행은 탑곡마을에서만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고 인근 마을까지 나가서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서산박첨지놀이의 연행은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1953년까지 시대적 상황 때문에 일시 중단된다. 이후 1954년부터 다시 연행이 이루어져, 거의 매년 추석을 전후해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한바탕 노는 마을의 오락거리로 자리를 잡아왔다. 그러다가 1989년을 기점으로 서산박첨지놀이는 전국적으로 소개되어 주목을 받게 되었고, 여러 지역 행사에 초청을 받아 그 연행이 이루어지고 있다. 연행 양상이 추석을 전후해서 마을 사랑방이나 공터에서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던 것이 점차 마을을 벗어나 초청 공연이나 행사 참여가 주가 되고 있다.

내용

장면 전환의 지표로 기능하는 악사들의 “떼루 떼루아 떼루야”라는 구음을 기준으로 한다면, 서산박첨지놀이는 대략 20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나누어진 장면과 그 핵심 내용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박첨지의 팔도 유람 ② 박첨지 작은마누라의 인사 ③ 박첨지 동생과 박첨지의 만남과 다툼 ④ 박첨지 큰마누라와 박첨지의 만남과 다툼 ⑤ 박첨지 처남 명노와 박첨지의 만남과 다툼 ⑥ 재산 분배를 결심하는 박첨지와 악사의 조언 ⑦ 박첨지의 편파적 재산 분배와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의 싸움 ⑧ 평양감사의 꿩사냥을 위한 홍동지의 길 닦기 ⑨ 박첨지의 홍동지 길 닦기 평가 ⑩ 평양감사의 꿩사냥 ⑪ 평양감사의 병환 소식과 악사의 치료 방법 조언 ⑫ 구렁이가 병 치료에 쓰일 홍새를 잡아먹음 ⑬ 평양감사의 장례 소식 ⑭ 평양감사의 장례식 ⑮ 절을 짓기 위한 시주 소식 ⑯ 절을 짓기 위한 스님의 시주 부탁 ⑰ 공중사 짓기 ⑱ 소경이 눈 뜬다는 소식 ⑲ 소경 눈뜨기 ⑳ 등장 인물들이 모두 나와서 춤추며 놀기

20장면으로 이루어진 서산박첨지놀이의 내용은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전체적으로 그 내용이 유사하여 동일 계통의 인형극이라 말할 수 있다. 남과 여, 상층과 하층, 종교인과 세속인 등으로 정리되는 각 장면 속 등장 인물 간의 역학 관계 역시 유사하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을 보면 서산박첨지놀이만이 지닌 독특함이 나타난다.

장면 ①에서 장면 ⑦까지는 집안을 돌보지 않고 축첩을 일삼는 박첨지에 대한 다른 가족들의 비판이 주된 내용이다. 큰마누라는 물론이고 처남, 동생이 박첨지의 무책임과 축첩을 비판하고 웃음거리로 만든다.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에서처럼 남성 횡포의 비판이 큰마누라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박첨지 가족 모두가 박첨지의 횡포를 비판하고 있다. 여기에는 축첩을 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며, 집안이 어지럽게 된다는 마을 공동체의 의식이 강하게 함축되어 있다.

장면 ⑧에서 장면 ⑭까지는 벼슬아치와 일반 평민의 갈등을 통해서 나타나는 신분적 특권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겨 있다. 꼭두각시놀음에 비해 홍동지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어, 상층 계급에 대한 풍자의 정도가 감소되기는 하지만, 하층민들에게 피해만 주는 평양감사의 행태에 대한 비판 의식은 그대로 살아 있다.

서산박첨지놀이의 내용이 지닌 독특함은 장면 ⑮에서 장면 ⑳까지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지배층인 평양감사의 횡포로 시력을 잃게 된 소경이 불공을 통하여 눈을 뜨게 된다는 내용 전개는 종교인과 세속인의 우호적인 관계를 통해서 고통받는 민중에 대한 불교적 해원(解寃)이라는 주제를 만들어낸다. 이는 종교인과 세속인의 갈등을 통해서 관념적 허위를 비판하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꼭두각시놀음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서산박첨지놀이는 불교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기보다는 불교적 기적 혹은 불교에 대한 긍정적 사고를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서산박첨지놀이 전승 공동체의 불교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을 이 대목에서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서산박첨지놀이는 떠돌이 광대패인 남사당패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지만, 남사당패의 인형극 꼭두각시놀음을 그대로 따르고 있지는 않다. 인형극을 배워 전승하는 과정에서는 서산박첨지놀이만의 독특한 특징을 갖게 된다. 바가지, 소나무 껍질, 칡넝쿨 속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이용해서 만든 소박한 인형들, 독특한 주머니 인형 형태와 주머니 인형 조종 방식, 서산 방언의 사용, 소경 눈뜨기와 같은 독특한 연행술, 열린 연행자 수급과 여성 연행자의 참여, 목소리 변조기의 소멸, 인형 목소리 연기의 일인일역적 경향, 전승 공동체의 성격에 맞게 변형된 연행 내용은 서산박첨지놀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특징들이다. 일정한 지역에서 붙박이로 살고 있는 토박이 광대패의 속성에서 나온 토착화된 특성들인 것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주로 이용하여 자신들의 솜씨를 다하여 소박한 인형들을 제작하고, 자신들의 말투에 맞게 인형들의 목소리 연기를 하며, 소박하지만 독특한 연행술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세계관에 따라 연행 내용을 만들어 나간 것이 서산박첨지놀이다. 또한 남사당패처럼 연행 참여에 일정한 제약이나 규제가 없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 중에서 연행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제약 없이 참여하게 되었으며, 여성의 외부 활동에 대한 인식 변화와 어우러지면서 여성 연행자 역시 생겨나 연행자 수가 증가했다. 연행자 수의 증가는 결국 목소리 연기의 일인일역적 경향성을 낳게 하였다. 이러한 일인일역적 경향성은 이제 굳이 목소리를 변성할 필요를 못 느끼게 하였고, 이에 따라 종이를 댄 참빗이나 죽통 같은 목소리 변조기도 사라졌다. 목소리 변조기라는 전문 광대패적 특성이 토박이 광대패의 전승이 갖는 특성에 의해 대체된 것이다.

지역사례

일제강점기에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전국에서 박첨지놀이 또는 홍동지놀이라 부르는 민속인형극들이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기도 고양·이천·장단·개풍(현재는 황해북도에 속함), 충청도 영동·음성·제천·논산·아산, 강원도 강릉·울진(현재는 경북에 속함)·정선·영월·원주·홍천·철원·평강·춘천, 황해도 연백·금천·평산·옹진·송화·안악·재령·황주·수안·장연, 평안도 용강, 함경도 고원·홍원·성진·무산·종성이 그 전승 지역들이다. 이러한 조사 자료들을 통해서 볼 때, 인형극 역시 가면극 못지않게 전국 각지에서 다양하게 전승되며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상의 사례들은 그저 기록상으로만 접할 수 있을 뿐이다.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처럼 현재까지 연행되면서, 그 구체적인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다양한 양상의 인형극과 연행 집단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추론만이 가능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산박첨지놀이의 존재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의 민속인형극이 더 이상 유일하지 않으며, 유랑광대패의 전유물이 아님을 입증하는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사례로 서산박첨지놀이가 있는 것이다.

의의

서산박첨지놀이는 남사당패라는 전문적인 떠돌이 광대패 연행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지만, 일정한 지역에 근거를 둔 토박이 광대패에 의한 연행과 전승이라는 특징에 따라 독특한 면모를 가지게 되었다. 그 기원이 외래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역동적이고 주체적인 전승 과정을 통해 마을 공동체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독특하고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서산박첨지놀이는 인형극과 마을 공동체의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주는 흔치않은 대상이다. 우리의 민속인형극이 남사당패의 꼭두각시놀음만이 유일한 것이 아니며, 떠돌이 광대패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소중한 대상이 바로 서산박첨지놀이다.

참고문헌

朝鮮の鄕土娛樂 (村山智順, 朝鮮總督府, 1941)
신명나는 서산 박첨지 놀이 (서연호, 문화예술11·12월호, 한국문화예술진흥원, 1989)
서산 박첨지 놀이 연구 (허용호, 口碑文學硏究10, 한국구비문학회, 2000)
서산박첨지놀이의 전승 양상 (허용호, 民俗學硏究13, 국립민속박물관, 2003)
토박이 광대패 인형극의 전승 양상 (허용호, 口碑文學硏究20, 韓國口碑文學會,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