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빈(筓賓)

계빈

한자명

筓賓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관례|계례

집필자 박홍갑(朴洪甲)

정의

관례冠禮를 치를 때에 주례를 청하는 일.

역사

성리학 도입과 함께 널리 보급된 관례의 시행 단계에서 행하는 계빈筓賓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례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기록이 나타난다. 즉, 『고려사高麗史』에 광종光宗・예종睿宗・의종대毅宗代에 왕태자의 관례를 행한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에 성리학적 질서가 정착하면서 사대부 집안에서는 예서에 따라 관례를 행하였지만, 대부분 예서보다 더 간소하게 행하였다. 그리고 근래에는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이후 단발령으로 ‘상투틀기’라는 전통적 의미의 관례는 사라졌고, 다만 여자들의 계례筓禮만 구식 혼례식에 흡수되어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이다. 관례를 치를 때 주례자 역할을 청하는 계빈 또한 예서에서 규정한 것과는 달리 마을에서 복 있는 자로 초빙하는 것으로 변해, 우리 전통사회의 현실이 반영되어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예기禮記』 「관의冠義」에 의하면, “옛날 관례에 주례자를 점쳐 가린다.”고 하였는데, 이는 어진 사람을 택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계빈으로 청할 때는 벗 중에서 어질고 예의 바른 사람을 가리면 된다. 이날 주인은 심의深衣(선비들이 입는 소매가 넓은 흰 윗옷)를 입고 , 그 집에 나아가 평상시의 예절대로 서로 만난다. 초청하는 사람이 일어나서 “저에게 아들 ○○가 있는데, 앞으로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자 하니, 당신께서 지도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면, “제가 불민하여 일을 제대로 돕지 못하여 당신께 폐가 될까 두려워 감히 사양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초청하는 사람이 다시 “당신이 끝내 지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청하면 “당신께서 거듭 청하시니 제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한다. 이렇듯 고례에는 첫 번째 요청은 사양하고 두 번째 요청에 따르도록 하였으나,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 “지금은 간략함을 취한다.”라고 하였다. 통상적으로 계빈은 관례일 3일 전에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거리가 먼 경우에는 편지를 보내는데, 처음에 초청하는 말을 써서 자제를 시켜 보낸다. 초청받은 사람이사양하면, 심부름한 사람이 굳이 청하여 허락을 받아낸 후 답장을, “당신께서 명하시니, ○○○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쓴다. 종자宗子가 스스로 관례를 하는 경우에는 고하는 말을, “○○○가 장차 머리에 관을 쓰고자 합니다.”라고 한다.

관례를 치르기 하루 전날 숙빈宿賓(빈에게 고함)을 하는데, 자제를 시켜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내일 ○○○가 장차 아들 ○○에게 관례를 시키고자 하오니, 당신께서 참석해 주시기 바라며 감히 예고합니다. ○○○는 ○○○께 올립니다.”라고 하면, 대답하기를, “제가 감히 일찍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가 ○○○께 올립니다.”라고 한다. 만약 종자가 스스로 관례를 할 때에는 계빈하는 말과 같이 한다. 어떤 이는 숙宿을 ‘나아감’으로 해석했으나, 정약용은 ‘숙’을 ‘엄숙하고 삼가 함’이라 풀이하였다. 빈賓이 자기 집에 잔다면 글을 보내야 하지만, 주인집에서 묵는다면 숙빈의 예를 하지 않는다.

계빈할 때의 준비물인 심의深衣, 치관緇冠(검은색 관, 유생들이 평소에 쓰던 것으로 검은색 베로 만든 치포관緇布冠이 있었음), 복건幅巾(검은 천으로 만든 관모, 만들때 온폭의 천을 사용하기 때문에 복건이라 이름함), 큰띠, 실띠, 신발 등은 주인과 빈자가 입는 것이다. 아울러 글을 쓰기 위한 전지牋紙와 보자기를 준비해야 한다.

계빈을 청하는 서식은 대략 다음과 같다.

계빈을 청하는 서식
○○마을의 ○○○는 두 번 절하고 ○○벼슬의 집사에게 봉계奉啓(받들어아룀)합니다. ○○에게 아들 ○○가 있는데(종자 스스로 관을 쓸 때에는 ‘아들 ○○가 있는데’를 뺀다) 나이가 어른이 되어, ○월 ○일에 그(종자 스스로 관을 쓸 때는 ‘그’는 뺀다)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자 하여, 이를 지도해 주실 분을 구합니다. 모두가 덕으로나 연세로나 당신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하니, 당신께서는 그날 저버리지 마시고 왕림하셔서 은혜로이 지도해 주시면, ○○○부자(종자 스스로 관을 쓸 때는 ‘○○○부자’는 뺀다)는 지극히 고맙겠습니다. 직접 댁에 가서 뵙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년 ○월 ○일 구위具位(직위를 갖추어) ○○○ 재배再拜

아울러 봉투 쓰는 법은 다음과 같다.

상장上狀
○○ 벼슬 집사執事(편지글에서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칭호) 구위具位○○○ 근봉謹封

계빈을 청하는 편지글에 대한 답장 서식은 다음과 같다.

계빈을 청하는 편지글에 대한 답장 서식
○○마을 ○○○는 두 번 절하고 ○○벼슬 집사 ○○○께 답장을 드립니다. ○○○는 변변치도 못한데 당신께서 저버리지 않고 관빈冠賓(관례의 빈자)으로 초대해 주심을 입으니, 일을 제대로 못 하여 훌륭한 예에 누가 될까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나 엄명을 더하시니, 어떻게 감히 힘써 따르지 않겠습니까? 관례일에 삼가 직접 나아갈 것을 편지로 아뢰니, 경건하지 못하옵니다. 나머지는 뵙고 다 하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구위 ○○○는 두 번 절하고 답서答書를 바칩니다.

답장에 대한 봉투 쓰는 법은 위에 소개했던 양식과 같다. 하루 전날 숙빈할 때에도 편지글을 쓸 전지를 준비해야하며, 편지글 서식은 다음과 같다.

편지글 서식
○○○는 ○○벼슬 집사께 올립니다. ○○○가 내일 아들 ○○(종자가 스스로 관을 쓸 때는 ‘아들 ○○’라는 글자를 뺀다)에게 관을 씌우고자 합니다(종자의 아들이 아닌 경우에는 이 밑에 ‘○○의 친속 ○○○의’라는 말을 더해야 한다). 당신께서 이미 왕림해 주시기를 허락하셨으니, 왕림해 주시기를 감히 예고합니다.
○○○는 두 번 절하고 올립니다.

숙빈 편지글에 대한 답장 서식은 다음과 같다.

숙빈 편지글에 대한 답장 서식
○○○는 ○○벼슬 집사께 답장을 올립니다. 내일 예를 행하라는 명을 받들어 이미 예고함을 받았으니, 감히 일찍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는 두 번 절하고 올립니다.

계례筓禮를 행할 때의 계빈 역시 사흘 전에 행하고 , 하루 전날 숙빈한다. 빈은 친인척 여자 중에서 어질고 예를 아는 사람을 골라 삼고, 편지에 그 말을 써서 사람을 통해 보낸다.

이때의 편지글 서식은 다음과 같다.

편지글 서식
“첨친忝親(변변치 못한 친속) ○○○가 절하고 ○○친親 ○○봉封(친속이 아니면 ‘○○봉封 부인夫人’ 혹은 ‘유인孺人’ 등의 칭하는 바에 따른다) 장차粧次(부인에 대한 존칭)께 아룁니다. 저에게 딸이 있어 나이가 마침 계례를 할 만하여 예를 거행하고자 합니다. 엎드려 듣건대, 우리 친속께서 예법에 익숙하시다 하니, 굽어살피시어 왕림하여 가르쳐 주셨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월 ○일 ○씨 배백拜白(절하고 아뢰옵니다)

이에 대한 답장 서식은 다음과 같다.

답장 서식
첨친忝親 ○○○가 ○○친親 ○○봉封 장차粧次께 절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저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계빈으로 불러주심을 받자오니, 스스로 생각하건대 거칠고 속되어 성대한 예를 돕는데 부족하다 생각되오나, 이미 명이 있사온지라 감히 힘써 따르지 않겠습니까? 삼가 이에 답서를 올립니다.
○월 ○일 ○○○ 배복拜復(절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특징 및 의의

관례의 절차는 준비, 시행, 종결의 세 단계로 구분되는데, 이 중에서 계빈은 시행 단계의 첫머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준비 단계에서의 택일이나 사당에 고하는 의식 못지않게 빈객을 선택하는 일 또한 매우중요하다. 빈객의 조건에 대해 예서에서는 어질고 예를 아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같은 마을의 복이 있는 사람으로 선택하는 것이 상례였다.

참고문헌

四禮便覽, 與猶堂全書, 朱子家禮, 관혼상제(이민수, 을유문화사, 1975), 조선시대 관혼상제-1(문옥표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조선의 관혼상제(사회과학원, 중심, 2002), 한국민속대관1(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0), 한국전통사회의 관혼상제(장철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

계빈

계빈
한자명

筓賓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관례|계례

집필자 박홍갑(朴洪甲)

정의

관례冠禮를 치를 때에 주례를 청하는 일.

역사

성리학 도입과 함께 널리 보급된 관례의 시행 단계에서 행하는 계빈筓賓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례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기록이 나타난다. 즉, 『고려사高麗史』에 광종光宗・예종睿宗・의종대毅宗代에 왕태자의 관례를 행한 기록이 보인다. 조선시대에 성리학적 질서가 정착하면서 사대부 집안에서는 예서에 따라 관례를 행하였지만, 대부분 예서보다 더 간소하게 행하였다. 그리고 근래에는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 이후 단발령으로 ‘상투틀기’라는 전통적 의미의 관례는 사라졌고, 다만 여자들의 계례筓禮만 구식 혼례식에 흡수되어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이다. 관례를 치를 때 주례자 역할을 청하는 계빈 또한 예서에서 규정한 것과는 달리 마을에서 복 있는 자로 초빙하는 것으로 변해, 우리 전통사회의 현실이 반영되어 시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예기禮記』 「관의冠義」에 의하면, “옛날 관례에 주례자를 점쳐 가린다.”고 하였는데, 이는 어진 사람을 택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계빈으로 청할 때는 벗 중에서 어질고 예의 바른 사람을 가리면 된다. 이날 주인은 심의深衣(선비들이 입는 소매가 넓은 흰 윗옷)를 입고 , 그 집에 나아가 평상시의 예절대로 서로 만난다. 초청하는 사람이 일어나서 “저에게 아들 ○○가 있는데, 앞으로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자 하니, 당신께서 지도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하면, “제가 불민하여 일을 제대로 돕지 못하여 당신께 폐가 될까 두려워 감히 사양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초청하는 사람이 다시 “당신이 끝내 지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청하면 “당신께서 거듭 청하시니 제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한다. 이렇듯 고례에는 첫 번째 요청은 사양하고 두 번째 요청에 따르도록 하였으나,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서 “지금은 간략함을 취한다.”라고 하였다. 통상적으로 계빈은 관례일 3일 전에 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거리가 먼 경우에는 편지를 보내는데, 처음에 초청하는 말을 써서 자제를 시켜 보낸다. 초청받은 사람이사양하면, 심부름한 사람이 굳이 청하여 허락을 받아낸 후 답장을, “당신께서 명하시니, ○○○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습니까?”라고 쓴다. 종자宗子가 스스로 관례를 하는 경우에는 고하는 말을, “○○○가 장차 머리에 관을 쓰고자 합니다.”라고 한다.

관례를 치르기 하루 전날 숙빈宿賓(빈에게 고함)을 하는데, 자제를 시켜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내일 ○○○가 장차 아들 ○○에게 관례를 시키고자 하오니, 당신께서 참석해 주시기 바라며 감히 예고합니다. ○○○는 ○○○께 올립니다.”라고 하면, 대답하기를, “제가 감히 일찍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가 ○○○께 올립니다.”라고 한다. 만약 종자가 스스로 관례를 할 때에는 계빈하는 말과 같이 한다. 어떤 이는 숙宿을 ‘나아감’으로 해석했으나, 정약용은 ‘숙’을 ‘엄숙하고 삼가 함’이라 풀이하였다. 빈賓이 자기 집에 잔다면 글을 보내야 하지만, 주인집에서 묵는다면 숙빈의 예를 하지 않는다.

계빈할 때의 준비물인 심의深衣, 치관緇冠(검은색 관, 유생들이 평소에 쓰던 것으로 검은색 베로 만든 치포관緇布冠이 있었음), 복건幅巾(검은 천으로 만든 관모, 만들때 온폭의 천을 사용하기 때문에 복건이라 이름함), 큰띠, 실띠, 신발 등은 주인과 빈자가 입는 것이다. 아울러 글을 쓰기 위한 전지牋紙와 보자기를 준비해야 한다.

계빈을 청하는 서식은 대략 다음과 같다.

계빈을 청하는 서식
○○마을의 ○○○는 두 번 절하고 ○○벼슬의 집사에게 봉계奉啓(받들어아룀)합니다. ○○에게 아들 ○○가 있는데(종자 스스로 관을 쓸 때에는 ‘아들 ○○가 있는데’를 뺀다) 나이가 어른이 되어, ○월 ○일에 그(종자 스스로 관을 쓸 때는 ‘그’는 뺀다)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자 하여, 이를 지도해 주실 분을 구합니다. 모두가 덕으로나 연세로나 당신보다 나은 사람이 없다고 하니, 당신께서는 그날 저버리지 마시고 왕림하셔서 은혜로이 지도해 주시면, ○○○부자(종자 스스로 관을 쓸 때는 ‘○○○부자’는 뺀다)는 지극히 고맙겠습니다. 직접 댁에 가서 뵙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년 ○월 ○일 구위具位(직위를 갖추어) ○○○ 재배再拜

아울러 봉투 쓰는 법은 다음과 같다.

상장上狀
○○ 벼슬 집사執事(편지글에서 상대방을 높여 부르는 칭호) 구위具位○○○ 근봉謹封

계빈을 청하는 편지글에 대한 답장 서식은 다음과 같다.

계빈을 청하는 편지글에 대한 답장 서식
○○마을 ○○○는 두 번 절하고 ○○벼슬 집사 ○○○께 답장을 드립니다. ○○○는 변변치도 못한데 당신께서 저버리지 않고 관빈冠賓(관례의 빈자)으로 초대해 주심을 입으니, 일을 제대로 못 하여 훌륭한 예에 누가 될까 매우 걱정스럽습니다. 그러나 엄명을 더하시니, 어떻게 감히 힘써 따르지 않겠습니까? 관례일에 삼가 직접 나아갈 것을 편지로 아뢰니, 경건하지 못하옵니다. 나머지는 뵙고 다 하겠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구위 ○○○는 두 번 절하고 답서答書를 바칩니다.

답장에 대한 봉투 쓰는 법은 위에 소개했던 양식과 같다. 하루 전날 숙빈할 때에도 편지글을 쓸 전지를 준비해야하며, 편지글 서식은 다음과 같다.

편지글 서식
○○○는 ○○벼슬 집사께 올립니다. ○○○가 내일 아들 ○○(종자가 스스로 관을 쓸 때는 ‘아들 ○○’라는 글자를 뺀다)에게 관을 씌우고자 합니다(종자의 아들이 아닌 경우에는 이 밑에 ‘○○의 친속 ○○○의’라는 말을 더해야 한다). 당신께서 이미 왕림해 주시기를 허락하셨으니, 왕림해 주시기를 감히 예고합니다.
○○○는 두 번 절하고 올립니다.

숙빈 편지글에 대한 답장 서식은 다음과 같다.

숙빈 편지글에 대한 답장 서식
○○○는 ○○벼슬 집사께 답장을 올립니다. 내일 예를 행하라는 명을 받들어 이미 예고함을 받았으니, 감히 일찍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는 두 번 절하고 올립니다.

계례筓禮를 행할 때의 계빈 역시 사흘 전에 행하고 , 하루 전날 숙빈한다. 빈은 친인척 여자 중에서 어질고 예를 아는 사람을 골라 삼고, 편지에 그 말을 써서 사람을 통해 보낸다.

이때의 편지글 서식은 다음과 같다.

편지글 서식
“첨친忝親(변변치 못한 친속) ○○○가 절하고 ○○친親 ○○봉封(친속이 아니면 ‘○○봉封 부인夫人’ 혹은 ‘유인孺人’ 등의 칭하는 바에 따른다) 장차粧次(부인에 대한 존칭)께 아룁니다. 저에게 딸이 있어 나이가 마침 계례를 할 만하여 예를 거행하고자 합니다. 엎드려 듣건대, 우리 친속께서 예법에 익숙하시다 하니, 굽어살피시어 왕림하여 가르쳐 주셨으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월 ○일 ○씨 배백拜白(절하고 아뢰옵니다)

이에 대한 답장 서식은 다음과 같다.

답장 서식
첨친忝親 ○○○가 ○○친親 ○○봉封 장차粧次께 절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저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계빈으로 불러주심을 받자오니, 스스로 생각하건대 거칠고 속되어 성대한 예를 돕는데 부족하다 생각되오나, 이미 명이 있사온지라 감히 힘써 따르지 않겠습니까? 삼가 이에 답서를 올립니다.
○월 ○일 ○○○ 배복拜復(절하고 답장을 올립니다)

특징 및 의의

관례의 절차는 준비, 시행, 종결의 세 단계로 구분되는데, 이 중에서 계빈은 시행 단계의 첫머리에 해당한다. 따라서 준비 단계에서의 택일이나 사당에 고하는 의식 못지않게 빈객을 선택하는 일 또한 매우중요하다. 빈객의 조건에 대해 예서에서는 어질고 예를 아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같은 마을의 복이 있는 사람으로 선택하는 것이 상례였다.

참고문헌

四禮便覽, 與猶堂全書, 朱子家禮, 관혼상제(이민수, 을유문화사, 1975), 조선시대 관혼상제-1(문옥표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9), 조선의 관혼상제(사회과학원, 중심, 2002), 한국민속대관1(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80), 한국전통사회의 관혼상제(장철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