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례(筓禮)

계례

한자명

筓禮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관례|계례

집필자 최순권(崔順權)

정의

혼례하기 전에 여자가 쪽을 찌어 올리고 비녀를 꽂는 성년의례.

역사

부인婦人은 관冠을 쓰지 않고 단지 비녀로 쪽을 단단하게 할 뿐이므로 계례筓禮라고 한다. 또한, 남자의 성인식을 관례라고 하기 때문에 계례를 여자의 성인식이라 하여 ‘여자관례’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가례家禮』의 영향으로 남자는 ‘관례冠禮’, 여자는 ‘계례’라는 성인식을 하였다. 여자는 15세 전후에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행하였는데, 혼례로 성인식을 대신하였으므로 일반적으로 혼례 전에 행하였다.

『가례』에 따르면, 여자의 시집을 허락하면 계례를 하는데, 15세가 되면 시집을 가지 않았더라도 자기 집안의 제부諸婦들로 하여금 계례를 거행하게 하였다. 다만, 이때에는 비록 이미 계례를 올렸더라도 나이 어린여자로 처신하였다. 여자가 15세에 계례를 행하는 것은, 여자는 음陰이고 15는 양陽이므로 15세에 음과 양의 조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또 달은 15일日에 둥글어지기 때문에 여자의 나이가 이 수에 이르면 계례笄禮를 올리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례가 실제 어느 정도 실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계례는 남자의 관례만큼 보편화되지는 않았으며, 관례와 달리 혼례 속에 흡수되어 실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권상하權尙夏(1641~1721)의 『한수재선생문집寒水齋先生文集』에서는 계례를 행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하였고, 이세구李世龜(1646~1700)의 『양와집養窩集』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계례는 행하지 않아 이미 풍속이 되었고, 혹 고례에 의해 계례를 행하더라도 혼례가 임박했을 때 계례를 한다.”라고 하였다. 즉, 혼인 전날에 댕기머리를 풀고 머리를 땋아 틀어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아주는 식으로 계례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윤봉구尹鳳九(1683~1767)의 『병계선생집屛溪先生集』에서는 “지금 풍속에 혼례가 지난 후에 반드시 혼가에서 머리를 올려주기를 기다린다.”라고 하였고, 『금곡선생문집錦谷先生文集』에서는 “근세에는 각 집안마다 달리 하여 우귀于歸 뒤에 시가[舅家]에서 관례를 행한다.”라고 하였으며, 송래희宋來熙(1791~1867)의 『성재선생문집省齋先生文集』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의례적으로 신부가 시부모를 뵙는 다음 날에 머리 장식을 올리고, 이를 관례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성해응成海應(1760~1839)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서는 “지금의 풍속을 보면 딸이 시집을 간 이후에 비로소 신랑 집으로부터 계례를 한다.”고 하였다. 이상의 기록을 보면, 혼례 후에 비로소 비녀를 꽂거나 화관 등을 쓰는 계・관례를 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계례도 관례처럼 1895년 단발령 이후 크게 쇠퇴하였다. 그리고 1934년 「의례준칙」에는 관례 및 계례 내용이 생략되었다. 그러나 중추원 조사 자료에, 결혼식 당일 친척 여자 중에 수모隨姆를 정하여 늘어뜨린 머리를 들어 올려 머리를 묶고 용잠龍簪을 꼽고 축하한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계례는 혼례와 연관된 성인례成人禮이기 때문에 전통혼례와 병행하여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내용

계례의 주인은 어머니이다. 계례도 관례와 같이 3일 전에 계례의 주례를 맡을 빈賓에게 알리고[戒賓], 하루 전에 빈에게 거듭 알려서[宿賓] 잊지 않고 준비하게 한다. 빈賓은 친인척 여자 중에서 어질고 예를 아는 사람을 골라 삼고, 편지를 써서 사람을 시켜 보낸다. 주자朱子는 시집을 허락하기 이전에 계례를 하는 경우는 여빈女賓을 모시지 않고 자기 집안의 제부 중 한 사람이 계례를 행한다고 하였다.

계례 당일 계례 장소에 계례에 필요한 배자背子와관冠(족두리), 계筓(비녀)를 준비하고, 계례자는 쌍계雙紒(두 갈래 머리)를 하고 삼자衫子를 입는다. 빈賓이 이르면 주인은 맞이하여 들어가 당에 오른다.

계례자筓禮者가 먼저 쌍계를 풀어 합발合髮하여 계髻(쪽)를 만들면, 빈賓은 관례의 시가 축사식과 동일하게 “좋은 달 좋은 날에 처음으로 원복元服(관)을 씌우니, 너의 어린 마음을 버리고 너의 성숙한 덕을 따라 길하게 오래 살고, 네 큰 복을 더욱 크게 하여라吉月令日, 始加元服, 棄爾幼志, 順爾成德, 壽考維祺, 以介景福.”라고 축사를 하고 관을 씌운 다음 비녀를 꽂아준다. 만약 축사를 하지 못하면 생략한다.

이어 초례醮禮를 한다. 먼저 술 한 잔을 내린다. 관례와 같이 어른이 된 것을 인정하고 그를 축하하는 뜻에서 빈이 한 잔을 주면 받아 마시되 반배返杯는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자례字禮를 하는데, 관례와 같이 자를 준다. 계례를 마친 후에는 관례와 같이 사당에 고한 후에 친척과 빈을 대접한다.

특징 및 의의

예전과 같이 쪽을 지고 비녀를 꽂는 계례의식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화관을 씌우는 ‘성년의 날’ 의식이 여성의 성년을 기념하는 의례로 실행되고 있으므로, 계례가 갖는 성인식이라는 의미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家禮, 錦谷先生文集, 屛溪先生集, 省齋先生文集, 養窩集, 硏經齋全集, 寒水齋先生文集.

계례

계례
한자명

筓禮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관례|계례

집필자 최순권(崔順權)

정의

혼례하기 전에 여자가 쪽을 찌어 올리고 비녀를 꽂는 성년의례.

역사

부인婦人은 관冠을 쓰지 않고 단지 비녀로 쪽을 단단하게 할 뿐이므로 계례筓禮라고 한다. 또한, 남자의 성인식을 관례라고 하기 때문에 계례를 여자의 성인식이라 하여 ‘여자관례’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가례家禮』의 영향으로 남자는 ‘관례冠禮’, 여자는 ‘계례’라는 성인식을 하였다. 여자는 15세 전후에 쪽을 찌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행하였는데, 혼례로 성인식을 대신하였으므로 일반적으로 혼례 전에 행하였다.

『가례』에 따르면, 여자의 시집을 허락하면 계례를 하는데, 15세가 되면 시집을 가지 않았더라도 자기 집안의 제부諸婦들로 하여금 계례를 거행하게 하였다. 다만, 이때에는 비록 이미 계례를 올렸더라도 나이 어린여자로 처신하였다. 여자가 15세에 계례를 행하는 것은, 여자는 음陰이고 15는 양陽이므로 15세에 음과 양의 조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며, 또 달은 15일日에 둥글어지기 때문에 여자의 나이가 이 수에 이르면 계례笄禮를 올리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계례가 실제 어느 정도 실행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계례는 남자의 관례만큼 보편화되지는 않았으며, 관례와 달리 혼례 속에 흡수되어 실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권상하權尙夏(1641~1721)의 『한수재선생문집寒水齋先生文集』에서는 계례를 행하는 사람이 드물다고 하였고, 이세구李世龜(1646~1700)의 『양와집養窩集』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계례는 행하지 않아 이미 풍속이 되었고, 혹 고례에 의해 계례를 행하더라도 혼례가 임박했을 때 계례를 한다.”라고 하였다. 즉, 혼인 전날에 댕기머리를 풀고 머리를 땋아 틀어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아주는 식으로 계례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윤봉구尹鳳九(1683~1767)의 『병계선생집屛溪先生集』에서는 “지금 풍속에 혼례가 지난 후에 반드시 혼가에서 머리를 올려주기를 기다린다.”라고 하였고, 『금곡선생문집錦谷先生文集』에서는 “근세에는 각 집안마다 달리 하여 우귀于歸 뒤에 시가[舅家]에서 관례를 행한다.”라고 하였으며, 송래희宋來熙(1791~1867)의 『성재선생문집省齋先生文集』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의례적으로 신부가 시부모를 뵙는 다음 날에 머리 장식을 올리고, 이를 관례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성해응成海應(1760~1839)의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에서는 “지금의 풍속을 보면 딸이 시집을 간 이후에 비로소 신랑 집으로부터 계례를 한다.”고 하였다. 이상의 기록을 보면, 혼례 후에 비로소 비녀를 꽂거나 화관 등을 쓰는 계・관례를 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계례도 관례처럼 1895년 단발령 이후 크게 쇠퇴하였다. 그리고 1934년 「의례준칙」에는 관례 및 계례 내용이 생략되었다. 그러나 중추원 조사 자료에, 결혼식 당일 친척 여자 중에 수모隨姆를 정하여 늘어뜨린 머리를 들어 올려 머리를 묶고 용잠龍簪을 꼽고 축하한다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계례는 혼례와 연관된 성인례成人禮이기 때문에 전통혼례와 병행하여 존속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내용

계례의 주인은 어머니이다. 계례도 관례와 같이 3일 전에 계례의 주례를 맡을 빈賓에게 알리고[戒賓], 하루 전에 빈에게 거듭 알려서[宿賓] 잊지 않고 준비하게 한다. 빈賓은 친인척 여자 중에서 어질고 예를 아는 사람을 골라 삼고, 편지를 써서 사람을 시켜 보낸다. 주자朱子는 시집을 허락하기 이전에 계례를 하는 경우는 여빈女賓을 모시지 않고 자기 집안의 제부 중 한 사람이 계례를 행한다고 하였다.

계례 당일 계례 장소에 계례에 필요한 배자背子와관冠(족두리), 계筓(비녀)를 준비하고, 계례자는 쌍계雙紒(두 갈래 머리)를 하고 삼자衫子를 입는다. 빈賓이 이르면 주인은 맞이하여 들어가 당에 오른다.

계례자筓禮者가 먼저 쌍계를 풀어 합발合髮하여 계髻(쪽)를 만들면, 빈賓은 관례의 시가 축사식과 동일하게 “좋은 달 좋은 날에 처음으로 원복元服(관)을 씌우니, 너의 어린 마음을 버리고 너의 성숙한 덕을 따라 길하게 오래 살고, 네 큰 복을 더욱 크게 하여라吉月令日, 始加元服, 棄爾幼志, 順爾成德, 壽考維祺, 以介景福.”라고 축사를 하고 관을 씌운 다음 비녀를 꽂아준다. 만약 축사를 하지 못하면 생략한다.

이어 초례醮禮를 한다. 먼저 술 한 잔을 내린다. 관례와 같이 어른이 된 것을 인정하고 그를 축하하는 뜻에서 빈이 한 잔을 주면 받아 마시되 반배返杯는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자례字禮를 하는데, 관례와 같이 자를 준다. 계례를 마친 후에는 관례와 같이 사당에 고한 후에 친척과 빈을 대접한다.

특징 및 의의

예전과 같이 쪽을 지고 비녀를 꽂는 계례의식은 사라졌다. 그렇지만, 화관을 씌우는 ‘성년의 날’ 의식이 여성의 성년을 기념하는 의례로 실행되고 있으므로, 계례가 갖는 성인식이라는 의미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家禮, 錦谷先生文集, 屛溪先生集, 省齋先生文集, 養窩集, 硏經齋全集, 寒水齋先生文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