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시줄다리기(機池市­)

기지시줄다리기

한자명

機池市­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봄(春) > 3월 > 놀이

집필자 이필영(李弼泳)

정의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기지시리(機池市里)에 전승되고 있는 줄다리기. 윤년(閏年)이 드는 해 음력 3월초에 인근의 마을들은 수하(水下)편과 수상(水上)편으로 나뉘어 시장의 번성과 지역의 제액초복(除厄招福) 그리고 대동(大同)을 위하여 줄다리기를 한다.

이칭

기지시는 틀못[機池] 또는 틀모시라고도 불러왔고, 줄다리기는 원래 줄난장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기지시줄다리기를 틀모시줄난장이라고 불렀다. 줄다리기로 인하여 난장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유래

기지시리는 본래 면천군(沔川郡) 승선면의 지역으로서 틀처럼 생긴 못이 있다 하여 틀모시라고 불렀다. 조선 후기에 면천의 남쪽과 서쪽의 고을 사람들이 한양을 가려면 이 곳 면천을 거쳐 기지시를 통과해 한나루[漢津]를 건너야 했다. 이러한 교통의 요지인 기지시에 이미 19세기 중엽 이전에는 정기 시장(市場)이 섰고, 내포(內浦) 지역에서 면천 읍내장과 더불어 가장 번성한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그 후 점차 상인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모여든 주민들이 마을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줄다리기가 행해졌다.

현지 고로(古老)들의 증언에 의하면, 1910년 이전부터 1940년대 초까지 윤년마다 줄난장을 벌였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줄난장의 수준은 아니었고,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대규모의 줄다리기로 발전했다. 1940년대 초반 이후 20년 정도 중단되었다가, 1960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다시 줄다리기를 해왔다. 그 후 충청남도 지방문화재 지정을 받고, 여러 차례 백제문화제에도 참여했으며, 1981년에는 ‘국풍(國風) 81’에 참가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2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을 받았다.

한편, 시장의 번성과 촌락의 형성이 계기가 된 줄다리기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곧 예부터 이 곳의 지형은 풍수상으로 보아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이라고 한다. 기지시라는 지명도 바로 이와 관련이 있다. 이 곳의 지형이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이기 때문에 베틀 기(機)자가 들어가고, 또한 짠 베를 물에 담가서 우려낼 못이 필요하다 하여 연못 지(池)자가 합성이 된 것이다. 시(市)는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형국의 시장에서 줄다리기를 하여 베를 짜고 마전(피륙을 삶거나 빨아서 바래는 일)하는 흉내를 내면 모든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이 지역 주민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기는 것이 마전하는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삼베, 짚, 늑다리, 칡넝쿨 따위로 줄을 꼬아 소규모로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지시가 베틀에서 유래된 지명이 아니라, 농경지에 물을 대는 좁은 둑에 둘러싸인 저수지인 틀못이가 한자어 기지(機池)로 표기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또 다른 설화에 의하면 이 곳의 지형이 지네 형국이기 때문에 지네 같은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함으로써 지기(地氣)를 누르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고 한다. 이러한 설화들은 시장의 번영을 위하여 난장으로서 시작된 줄다리기를 정당화하는 데 직간접으로 기여하고 있다.

내용 및 특성

현재 기지시줄다리기는 보존회가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윤년마다 하는 대제(大祭)는 나흘간에 걸쳐서 하는데, 첫쨋날은 당제와 용왕제를 지내고, 둘쨋날과 셋쨋날은 여러 민속 놀이를 부대 행사로 펼치며, 마지막 날에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 일시는 양력 4월 1일로 고정시켰다. 소제(小祭)는 매년 음력 정월 그믐과 이월 초하루에 치르는데, 이때에는 줄다리기를 하지 않는다.

줄다리기 한 달 전부터 수상(水上)과 수하(水下)에 속한 마을들이 각각 짚단을 가져와 줄을 만든다. 먼저 짚단을 한 주먹씩 넣고 비벼 꼬아서 작은 줄을 만들고, 이 작은 줄 70가닥을 다시 큰 줄로 만들고, 큰 줄 세 개를 마련한 후 줄틀을 이용하여 하나의 거대한 원줄을 만든다. 여기에 줄을 잡아당기는 데 쓸 수 있도록 곁줄을 연결한다. 줄은 암줄과 숫줄 두 개를 만드는데, 암줄의 머리는 타원형으로 크게 만들고 숫줄의 머리는 원형으로 작게 만든다. 암숫줄 모두 길이는 200미터 정도 되고, 직경은 1미터, 둘레는 1.8미터에 달한다.

줄이 완성되면, 일종의 전야제로서 당제와 용왕제를 지낸다. 당제는 마을의 동쪽에 있는 국수봉에서 지내는데, 유교식의 제사에 이어 승려의 독경과 무당의 굿으로 진행된다. 이를 보존회에서는 유불선(儒彿仙)의 합동 제사라고 한다. 다음에는 마을 한복판에 있는 우물에서 용왕제를 모시는데, 제사 방식은 당제와 동일하다. 밤에는 일종의 축원 행사로 시장에서 굿을 벌인다.

둘쨋날과 셋쨋날은 풍물 경연, 씨름, 그네뛰기, 궁도, 연날리기, 시조 경창, 민요 경창, 널뛰기, 윷놀이, 새끼 꼬기, 베짜기 그리고 효자효부 선발과 표창이 부대 행사로 벌어진다. 마지막 날 오전에는 면사무소 광장에서 대회식을 치르고, 오후 2시부터 약 두시간 동안 줄을 옮긴다. 줄을 마련해놓은 시장통에서 줄을 당기는 흥척동까지 줄을 운반하는 과정이다. 숫줄이 앞에 서고 암줄이 뒤를 따른다.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양편 주민들은 풍물을 울려 기세를 올리며 줄 옆에 모여 선다. 중앙선에 기지시의 두레농기를 꽂고 좌우에 수상의 청기(靑旗)와 수하의 황기(黃旗)를 세운다. 양편은 대장이 지휘하는데 심판의 신호에 따라서 첫 번째 신호에 줄을 잡고 두 번째 신호에 줄을 들고 세 번째 신호에서는 줄을 당겨 끌어간 쪽이 이긴다.

수하편 곧 암줄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매번 수하편이 승리한다. 수하 쪽이 수상 쪽보다 지형이 낮아서 수하가 줄을 당기기에 유리하다. 승부가 결정이 되면 줄다리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넓은 들판에 널려 있는 줄에 달려들어 칼이나 도끼 따위로 줄을 잘라 간다. 이 줄들은 개인이나 가정의 각종 소망을 이루는 용도로 쓰인다. 특히 암줄과 숫줄을 결합시켰던 비녀목을 꽂았던 부분의 줄은 불임과 요통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또 원줄은 썰어서 논에 거름으로 쓰기도 한다.

의의

기지시줄다리기에는 시장의 번성을 위한 난장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일반 벼농사 지대의 줄다리기와는 다소 성격이 다른 점이 있다. 한편 예전에는 충남의 일부 지역에서도 줄다리기가 전승되었지만, 현재로는 기지시줄다리기가 가장 대표성을 지니게 되었다.

참고문헌

틀못시 유래 (김기호, 당문사, 1981), 중요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145호 기지시줄다리기 (임동권, 문화재관리국, 1982), 機池市 줄다리기 (李禹永, 集文堂, 198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기지시줄다리기 (宋鳳和, 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 1998), 중요무형문화재2-연극과 놀이 (문화재연구회, 대원사, 1999), 기지시 줄다리기의 재조명 (이인화, 考古와 民俗4, 韓南大學校博物館, 2001), 기지시 줄다리기 (이필영, 중요무형문화재 단체종목 전승실태조사 및 지원관리방안 연구, 문화재청·한국역사민속학회, 2003), 韓·日 兩國의 民俗줄다리기에 관한 考察-機池市와 刈和野줄다리기를 中心으로 (李載喆, 韓瑞大學校 碩士學位論文, 2003)

기지시줄다리기

기지시줄다리기
한자명

機池市­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봄(春) > 3월 > 놀이

집필자 이필영(李弼泳)

정의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기지시리(機池市里)에 전승되고 있는 줄다리기. 윤년(閏年)이 드는 해 음력 3월초에 인근의 마을들은 수하(水下)편과 수상(水上)편으로 나뉘어 시장의 번성과 지역의 제액초복(除厄招福) 그리고 대동(大同)을 위하여 줄다리기를 한다.

이칭

기지시는 틀못[機池] 또는 틀모시라고도 불러왔고, 줄다리기는 원래 줄난장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기지시줄다리기를 틀모시줄난장이라고 불렀다. 줄다리기로 인하여 난장이 벌어졌다는 뜻이다.

유래

기지시리는 본래 면천군(沔川郡) 승선면의 지역으로서 틀처럼 생긴 못이 있다 하여 틀모시라고 불렀다. 조선 후기에 면천의 남쪽과 서쪽의 고을 사람들이 한양을 가려면 이 곳 면천을 거쳐 기지시를 통과해 한나루[漢津]를 건너야 했다. 이러한 교통의 요지인 기지시에 이미 19세기 중엽 이전에는 정기 시장(市場)이 섰고, 내포(內浦) 지역에서 면천 읍내장과 더불어 가장 번성한 시장으로 성장하였다. 그 후 점차 상인을 비롯하여 각지에서 모여든 주민들이 마을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줄다리기가 행해졌다.

현지 고로(古老)들의 증언에 의하면, 1910년 이전부터 1940년대 초까지 윤년마다 줄난장을 벌였다고 한다. 물론 처음에는 줄난장의 수준은 아니었고,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대규모의 줄다리기로 발전했다. 1940년대 초반 이후 20년 정도 중단되었다가, 1960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다시 줄다리기를 해왔다. 그 후 충청남도 지방문화재 지정을 받고, 여러 차례 백제문화제에도 참여했으며, 1981년에는 ‘국풍(國風) 81’에 참가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2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을 받았다.

한편, 시장의 번성과 촌락의 형성이 계기가 된 줄다리기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곧 예부터 이 곳의 지형은 풍수상으로 보아 옥녀직금형(玉女織錦形)이라고 한다. 기지시라는 지명도 바로 이와 관련이 있다. 이 곳의 지형이 옥녀가 비단을 짜는 형국이기 때문에 베틀 기(機)자가 들어가고, 또한 짠 베를 물에 담가서 우려낼 못이 필요하다 하여 연못 지(池)자가 합성이 된 것이다. 시(市)는 물건을 사고 파는 시장을 뜻한다. 그런데 이러한 형국의 시장에서 줄다리기를 하여 베를 짜고 마전(피륙을 삶거나 빨아서 바래는 일)하는 흉내를 내면 모든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이 지역 주민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기는 것이 마전하는 모습을 닮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부녀자들이 중심이 되어 삼베, 짚, 늑다리, 칡넝쿨 따위로 줄을 꼬아 소규모로 줄다리기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지시가 베틀에서 유래된 지명이 아니라, 농경지에 물을 대는 좁은 둑에 둘러싸인 저수지인 틀못이가 한자어 기지(機池)로 표기되었다는 견해도 있다.

또 다른 설화에 의하면 이 곳의 지형이 지네 형국이기 때문에 지네 같은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함으로써 지기(地氣)를 누르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고 한다. 이러한 설화들은 시장의 번영을 위하여 난장으로서 시작된 줄다리기를 정당화하는 데 직간접으로 기여하고 있다.

내용 및 특성

현재 기지시줄다리기는 보존회가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윤년마다 하는 대제(大祭)는 나흘간에 걸쳐서 하는데, 첫쨋날은 당제와 용왕제를 지내고, 둘쨋날과 셋쨋날은 여러 민속 놀이를 부대 행사로 펼치며, 마지막 날에 줄다리기를 한다. 줄다리기 일시는 양력 4월 1일로 고정시켰다. 소제(小祭)는 매년 음력 정월 그믐과 이월 초하루에 치르는데, 이때에는 줄다리기를 하지 않는다.

줄다리기 한 달 전부터 수상(水上)과 수하(水下)에 속한 마을들이 각각 짚단을 가져와 줄을 만든다. 먼저 짚단을 한 주먹씩 넣고 비벼 꼬아서 작은 줄을 만들고, 이 작은 줄 70가닥을 다시 큰 줄로 만들고, 큰 줄 세 개를 마련한 후 줄틀을 이용하여 하나의 거대한 원줄을 만든다. 여기에 줄을 잡아당기는 데 쓸 수 있도록 곁줄을 연결한다. 줄은 암줄과 숫줄 두 개를 만드는데, 암줄의 머리는 타원형으로 크게 만들고 숫줄의 머리는 원형으로 작게 만든다. 암숫줄 모두 길이는 200미터 정도 되고, 직경은 1미터, 둘레는 1.8미터에 달한다.

줄이 완성되면, 일종의 전야제로서 당제와 용왕제를 지낸다. 당제는 마을의 동쪽에 있는 국수봉에서 지내는데, 유교식의 제사에 이어 승려의 독경과 무당의 굿으로 진행된다. 이를 보존회에서는 유불선(儒彿仙)의 합동 제사라고 한다. 다음에는 마을 한복판에 있는 우물에서 용왕제를 모시는데, 제사 방식은 당제와 동일하다. 밤에는 일종의 축원 행사로 시장에서 굿을 벌인다.

둘쨋날과 셋쨋날은 풍물 경연, 씨름, 그네뛰기, 궁도, 연날리기, 시조 경창, 민요 경창, 널뛰기, 윷놀이, 새끼 꼬기, 베짜기 그리고 효자효부 선발과 표창이 부대 행사로 벌어진다. 마지막 날 오전에는 면사무소 광장에서 대회식을 치르고, 오후 2시부터 약 두시간 동안 줄을 옮긴다. 줄을 마련해놓은 시장통에서 줄을 당기는 흥척동까지 줄을 운반하는 과정이다. 숫줄이 앞에 서고 암줄이 뒤를 따른다. 줄다리기가 시작되면 양편 주민들은 풍물을 울려 기세를 올리며 줄 옆에 모여 선다. 중앙선에 기지시의 두레농기를 꽂고 좌우에 수상의 청기(靑旗)와 수하의 황기(黃旗)를 세운다. 양편은 대장이 지휘하는데 심판의 신호에 따라서 첫 번째 신호에 줄을 잡고 두 번째 신호에 줄을 들고 세 번째 신호에서는 줄을 당겨 끌어간 쪽이 이긴다.

수하편 곧 암줄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매번 수하편이 승리한다. 수하 쪽이 수상 쪽보다 지형이 낮아서 수하가 줄을 당기기에 유리하다. 승부가 결정이 되면 줄다리기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넓은 들판에 널려 있는 줄에 달려들어 칼이나 도끼 따위로 줄을 잘라 간다. 이 줄들은 개인이나 가정의 각종 소망을 이루는 용도로 쓰인다. 특히 암줄과 숫줄을 결합시켰던 비녀목을 꽂았던 부분의 줄은 불임과 요통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또 원줄은 썰어서 논에 거름으로 쓰기도 한다.

의의

기지시줄다리기에는 시장의 번성을 위한 난장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일반 벼농사 지대의 줄다리기와는 다소 성격이 다른 점이 있다. 한편 예전에는 충남의 일부 지역에서도 줄다리기가 전승되었지만, 현재로는 기지시줄다리기가 가장 대표성을 지니게 되었다.

참고문헌

틀못시 유래 (김기호, 당문사, 1981)
중요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145호 기지시줄다리기 (임동권, 문화재관리국, 1982)
機池市 줄다리기 (李禹永, 集文堂, 198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기지시줄다리기 (宋鳳和, 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 1998)
중요무형문화재2-연극과 놀이 (문화재연구회, 대원사, 1999)
기지시 줄다리기의 재조명 (이인화, 考古와 民俗4, 韓南大學校博物館, 2001)
기지시 줄다리기 (이필영, 중요무형문화재 단체종목 전승실태조사 및 지원관리방안 연구, 문화재청·한국역사민속학회, 2003)
韓·日 兩國의 民俗줄다리기에 관한 考察-機池市와 刈和野줄다리기를 中心으로 (李載喆, 韓瑞大學校 碩士學位論文,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