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開天節)

한자명

開天節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0월 > 양력세시

집필자 정영훈(鄭榮薰)

정의

국조(國祖) 단군(檀君)이 최초의 민족 국가인 고조선(古朝鮮)을 건국했음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國慶日). 3·1절(三一節), 광복절(光復節), 제헌절(制憲節), 한글날과 함께 대한민국 5대 국경일의 하나로 매년 10월 3일에 해당한다. 개천절은 민족사의 출발을 경축하는 기념일이라 할 수 있다. 통상 단기(檀紀)에서 한 해를 뺀 수로 횟수를 계산하는데, 단기 4339년인 2006년의 개천절은 제4338주년 개천절이 된다.

배경

개천절은 본래 한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檀君神話)와 관련이 있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천제(天帝) 환인(桓因)이 홍익인간(弘益人間)하고자 하는 뜻에 따라 그 아들 환웅(桓雄)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하고, 환웅의 아들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여 민족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개천(開天; 하늘이 열림)이라 함은 최초의 인간공동체인 신시를 열고 첫 국가 고조선을 건설한 사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를테면 민족의 탄생이나 민족사의 시작을 의미하는 말이라 하겠다. 해방 후 국경일을 정할 때 그 이름을 단군의 건국을 기념한다는 의미의 ‘건국기념일(建國記念日)’로 하지 않고 개천절이라 한 것은 이 표현이 좀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용

개천절을 국경일로 제정한 것과 관련하여 언급해야 할 것은 단군의 건국을 민족사의 출발점으로 보아온 전통이다. 한국 정신사 속에는 단군을 국조로 보고, 우리 민족을 단군의 자손으로 생각해온 전통이 있는데, 이 같은 인식의 뿌리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유래를 갖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은 역사를 통하여 한민족을 민족적 각성과 자주 및 결속의 방향으로 인도해왔는데, 조선말을 거쳐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면 이 단군의 자손 의식이 대중화하면서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의 동력으로 활용되게 된다. 조선말에 중광(重光; 기존의 교단을 중흥함)한 대종교는 이 같은 인식을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승화시켰는데, 개천절이라는 이름의 제례(祭禮)를 자기들의 종교의례 속에 포함시켰다. 대종교는 개천절을 단군의 선거일(仙去日)인 어천절(御天節: 3월 15일)과 함께 두 개의 대제(大祭)로 정하여 기념했었다. 개천절이 10월 3일로 된 과정은 확실치 않은데, 아마도 조선조 이래 단군 관련 제사 전통이나 민속 전승에서 유래되어 대종교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민간에서는 수확의 계절인 10월을 상달[上月]이라 하여 중시해왔고, 3이란 숫자를 길한수[吉數]로 여겨 신성시해왔었다. 대종교는 개천절을 고구려(高句麗)의 동맹(東盟),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예(濊)의 무천(舞天)과 같은 고대의 제천 행사와 같은 연원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개천절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데는 국학파 학자들과 애국계몽운동가들의 계몽 활동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1919년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임시정부는 그해 음력 10월 3일에 국무원 주최로 건국기원절(建國紀元節)이라는 이름의 기념 행사를 지냈다. 그리고 이 행사는 이후 교민들이 거주하는 곳마다 거류민단의 주도로 지속되었다. 국내에서도 계몽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기념 행사가 열렸는데, 1920년대 중반에는 건국기원절보다는 개천절이라는 이름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개천절 행사는 일제의 탄압으로 인하여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개천절이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음을 일제가 경계하였던 것이다.

단군을 민족적 정체성과 통합의 구심점으로 인식해온 전통은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구성되면서 통합기제의 한 축으로 국가의 제도의례 속에 편입되었다. 이를테면 개천절이 국경일로 제정되고, 홍익인간이 교육 이념으로 지정되며, 단군기원(檀君紀元: 단기)이 정부의 공식 연호로 지정된 것 등이 그것이다. 국경일로 지정되면서 그동안 음력 10월 3일에 열렸던 개천절이 양력 10월 3일로 고정되었다. 서구화가 진전되면서 단기가 서기(西紀)로 바뀌는 것과 같은 변화가 있었지만, 국경일 개천절은 교육 이념인 홍익인간과 함께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개천절이 되면 가정과 관공서마다 국기를 게양하며, 오전에는 정부가 주관하는 공식기념 행사가 각계 인사의 참석 속에 개최된다. 경축식에서는 대통령명의의 경축사를 통상 국무총리가 대독(代讀)하며, 행사 전 과정은 방송을 통하여 중계된다. 식이 끝난 후에는 전통예술을 주제로 한 기념 공연이 이어진다. 1970년대 말까지는 지방에서도 행정기관과 학교에서 개천절 기념 행사를 개최해왔는데, 최근에는 개별 기관 차원의 행사는 생략되고 있는 추세이고, 대신 민간 차원의 행사들이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개최된다.

특히 서울 사직공원 등 각 지방에 산재한 단군사당(檀君祠堂)에서는 개천절마다 기념 제례가 열리며, 마니산이나 태백산 정상에서는 천제가 봉행되기도 한다. 대종교를 비롯한 단군 관련 종교 단체에서는 개천절을 특별한 기념일로 여겨 규모 있는 행사를 마련하는데, 민간 차원의 기념 행사는 양력이 아닌 음력 개천절에 열리기도 한다. 대종교에서는 고대의 제천 행사를 복원했다는 선의식이라는 이름의 기념 제례를 지낸다. 경남 진주에서는 개천예술제(開天藝術祭)라는 이름의 지역 축제를 개천절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해외에서도 교민단체들의 주관 하에 개천절 기념식이 거행되기도 하며, 특히 외국에 주재하는 한국대사관에서는 각국 외교사절들을 초청하여 개천절 기념 리셉션을 열고 있다.

최근 들어 특기할 사항은 북한에서도 개천절을 기념일로 지정하여 기념 행사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단군을 민족사의 기점으로 보고 기념하는 일을 부르주아적 유산이라 하여 외면해왔으나, 1993년에 단군릉에서 5000여 년 전의 단군 유골을 발굴하였다는 학술보고를 내놓은 후, 우리 민족이 단군의 자손으로 실증되었다는 주장과 함께 남북한과 해외의 동포들이 단군의 자손으로의 민족정체성과 자긍심에 토대하여 단결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1994년에는 단군릉을 대규모로 개건하였고, 그때부터 남쪽의 사회단체 대표들과 해외 동포들까지 참여한 기념 행사를 개천절 기념 민족공동 행사라는 이름으로 단군릉에서 거행해오고 있다.

의의

개천절은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일 민족의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그를 통하여 민족적 통합을 달성하고자 하는 의도와 함께 기념되어왔다. 개천절을 대한민국 정부가 국경일로 지정하여 경축해오고 있는 것이나, 최근에 와서 북한도 기념일로 지정하여 민족공동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것은, 개천절이 가지는 의미를 남북이 공히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다원화가 진전되고 개인주의나 세계주의 또는 서구중심주의 같은 탈민족적 사조가 확산되면서 개천절의 의의에 대한 인식이 해이해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공휴일을 줄이자는 논의가 일 때마다 개천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고 있고, 특히 개신교 일부에서는 단군 숭앙을 민족정체성 및 동질성에 관련된 상징 기제가 아닌 종교 차원의 우상 숭배로 여겨 배척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그러나 탈민족적 인식들이 확대되어가는 가운데서도 개천절이 가지는 의의를 중시하는 입장은 여전한데, 최근 재외동포사회에서는 개천절을 민족의 정체성과 결속을 도모하는 축제의 장으로 활성화시켜가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檀君 (윤이흠 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단군과 고조선 연구 (단군학회 엮음, 지식산업사, 2005), 동아시아의 지역과 인간 (윤내현 엮음, 지식산업사, 2005)

개천절

개천절
한자명

開天節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겨울(冬) > 10월 > 양력세시

집필자 정영훈(鄭榮薰)

정의

국조(國祖) 단군(檀君)이 최초의 민족 국가인 고조선(古朝鮮)을 건국했음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국경일(國慶日). 3·1절(三一節), 광복절(光復節), 제헌절(制憲節), 한글날과 함께 대한민국 5대 국경일의 하나로 매년 10월 3일에 해당한다. 개천절은 민족사의 출발을 경축하는 기념일이라 할 수 있다. 통상 단기(檀紀)에서 한 해를 뺀 수로 횟수를 계산하는데, 단기 4339년인 2006년의 개천절은 제4338주년 개천절이 된다.

배경

개천절은 본래 한민족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檀君神話)와 관련이 있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천제(天帝) 환인(桓因)이 홍익인간(弘益人間)하고자 하는 뜻에 따라 그 아들 환웅(桓雄)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건설하고, 환웅의 아들 단군이 조선을 건국하여 민족사가 시작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서 개천(開天; 하늘이 열림)이라 함은 최초의 인간공동체인 신시를 열고 첫 국가 고조선을 건설한 사건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를테면 민족의 탄생이나 민족사의 시작을 의미하는 말이라 하겠다. 해방 후 국경일을 정할 때 그 이름을 단군의 건국을 기념한다는 의미의 ‘건국기념일(建國記念日)’로 하지 않고 개천절이라 한 것은 이 표현이 좀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내용

개천절을 국경일로 제정한 것과 관련하여 언급해야 할 것은 단군의 건국을 민족사의 출발점으로 보아온 전통이다. 한국 정신사 속에는 단군을 국조로 보고, 우리 민족을 단군의 자손으로 생각해온 전통이 있는데, 이 같은 인식의 뿌리는 『삼국유사(三國遺事)』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유래를 갖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은 역사를 통하여 한민족을 민족적 각성과 자주 및 결속의 방향으로 인도해왔는데, 조선말을 거쳐 일제강점기로 넘어오면 이 단군의 자손 의식이 대중화하면서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의 동력으로 활용되게 된다. 조선말에 중광(重光; 기존의 교단을 중흥함)한 대종교는 이 같은 인식을 종교적 차원으로까지 승화시켰는데, 개천절이라는 이름의 제례(祭禮)를 자기들의 종교의례 속에 포함시켰다. 대종교는 개천절을 단군의 선거일(仙去日)인 어천절(御天節: 3월 15일)과 함께 두 개의 대제(大祭)로 정하여 기념했었다. 개천절이 10월 3일로 된 과정은 확실치 않은데, 아마도 조선조 이래 단군 관련 제사 전통이나 민속 전승에서 유래되어 대종교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민간에서는 수확의 계절인 10월을 상달[上月]이라 하여 중시해왔고, 3이란 숫자를 길한수[吉數]로 여겨 신성시해왔었다. 대종교는 개천절을 고구려(高句麗)의 동맹(東盟), 부여(夫餘)의 영고(迎鼓), 예(濊)의 무천(舞天)과 같은 고대의 제천 행사와 같은 연원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개천절이 대중적으로 보급된 데는 국학파 학자들과 애국계몽운동가들의 계몽 활동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할 수 있다.

1919년 상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후, 임시정부는 그해 음력 10월 3일에 국무원 주최로 건국기원절(建國紀元節)이라는 이름의 기념 행사를 지냈다. 그리고 이 행사는 이후 교민들이 거주하는 곳마다 거류민단의 주도로 지속되었다. 국내에서도 계몽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하여 기념 행사가 열렸는데, 1920년대 중반에는 건국기원절보다는 개천절이라는 이름이 일반화되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개천절 행사는 일제의 탄압으로 인하여 활성화되지 못하였다. 개천절이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음을 일제가 경계하였던 것이다.

단군을 민족적 정체성과 통합의 구심점으로 인식해온 전통은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구성되면서 통합기제의 한 축으로 국가의 제도의례 속에 편입되었다. 이를테면 개천절이 국경일로 제정되고, 홍익인간이 교육 이념으로 지정되며, 단군기원(檀君紀元: 단기)이 정부의 공식 연호로 지정된 것 등이 그것이다. 국경일로 지정되면서 그동안 음력 10월 3일에 열렸던 개천절이 양력 10월 3일로 고정되었다. 서구화가 진전되면서 단기가 서기(西紀)로 바뀌는 것과 같은 변화가 있었지만, 국경일 개천절은 교육 이념인 홍익인간과 함께 아직도 유지되고 있다.

개천절이 되면 가정과 관공서마다 국기를 게양하며, 오전에는 정부가 주관하는 공식기념 행사가 각계 인사의 참석 속에 개최된다. 경축식에서는 대통령명의의 경축사를 통상 국무총리가 대독(代讀)하며, 행사 전 과정은 방송을 통하여 중계된다. 식이 끝난 후에는 전통예술을 주제로 한 기념 공연이 이어진다. 1970년대 말까지는 지방에서도 행정기관과 학교에서 개천절 기념 행사를 개최해왔는데, 최근에는 개별 기관 차원의 행사는 생략되고 있는 추세이고, 대신 민간 차원의 행사들이 다양한 주체들에 의해 다양한 내용을 가지고 개최된다.

특히 서울 사직공원 등 각 지방에 산재한 단군사당(檀君祠堂)에서는 개천절마다 기념 제례가 열리며, 마니산이나 태백산 정상에서는 천제가 봉행되기도 한다. 대종교를 비롯한 단군 관련 종교 단체에서는 개천절을 특별한 기념일로 여겨 규모 있는 행사를 마련하는데, 민간 차원의 기념 행사는 양력이 아닌 음력 개천절에 열리기도 한다. 대종교에서는 고대의 제천 행사를 복원했다는 선의식이라는 이름의 기념 제례를 지낸다. 경남 진주에서는 개천예술제(開天藝術祭)라는 이름의 지역 축제를 개천절부터 시작하기도 한다. 해외에서도 교민단체들의 주관 하에 개천절 기념식이 거행되기도 하며, 특히 외국에 주재하는 한국대사관에서는 각국 외교사절들을 초청하여 개천절 기념 리셉션을 열고 있다.

최근 들어 특기할 사항은 북한에서도 개천절을 기념일로 지정하여 기념 행사를 개최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단군을 민족사의 기점으로 보고 기념하는 일을 부르주아적 유산이라 하여 외면해왔으나, 1993년에 단군릉에서 5000여 년 전의 단군 유골을 발굴하였다는 학술보고를 내놓은 후, 우리 민족이 단군의 자손으로 실증되었다는 주장과 함께 남북한과 해외의 동포들이 단군의 자손으로의 민족정체성과 자긍심에 토대하여 단결하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1994년에는 단군릉을 대규모로 개건하였고, 그때부터 남쪽의 사회단체 대표들과 해외 동포들까지 참여한 기념 행사를 개천절 기념 민족공동 행사라는 이름으로 단군릉에서 거행해오고 있다.

의의

개천절은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일 민족의 민족적 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그를 통하여 민족적 통합을 달성하고자 하는 의도와 함께 기념되어왔다. 개천절을 대한민국 정부가 국경일로 지정하여 경축해오고 있는 것이나, 최근에 와서 북한도 기념일로 지정하여 민족공동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것은, 개천절이 가지는 의미를 남북이 공히 인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의 다원화가 진전되고 개인주의나 세계주의 또는 서구중심주의 같은 탈민족적 사조가 확산되면서 개천절의 의의에 대한 인식이 해이해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에는 공휴일을 줄이자는 논의가 일 때마다 개천절을 공휴일에서 제외하자는 주장이 자주 제기되고 있고, 특히 개신교 일부에서는 단군 숭앙을 민족정체성 및 동질성에 관련된 상징 기제가 아닌 종교 차원의 우상 숭배로 여겨 배척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기도 한다. 그러나 탈민족적 인식들이 확대되어가는 가운데서도 개천절이 가지는 의의를 중시하는 입장은 여전한데, 최근 재외동포사회에서는 개천절을 민족의 정체성과 결속을 도모하는 축제의 장으로 활성화시켜가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檀君 (윤이흠 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4)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7)
단군과 고조선 연구 (단군학회 엮음, 지식산업사, 2005)
동아시아의 지역과 인간 (윤내현 엮음, 지식산업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