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포(殮布)

한자명

殮布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송미경(宋美京)

정의

소렴小殮과 대렴大殮 때에 시신을 감싼 후 종횡으로 묶는 옷감.

역사

염포에 관한 기록은 『예기禮記』에서 찾아볼 수 있어, 유교식 상례에서는 염포 사용이 오래된 풍습임을 알 수 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비롯한 조선시대의 많은 예서에서 염포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들 예서에서는 염포를 ‘교포絞布’ 또는 ‘교絞’라고도 했다. 2000년 경기도 지방에서는 ‘매’라고 불러, 횡교橫絞는 ‘가로매’, 종교縱絞는 ‘세로매’라고도 한다. 또, 종교를 ‘장포’, 횡교를 ‘단포’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멧베’라는 이름도 있다. 2014년 현재 장례관련 업체에서는 염포를 ‘장매’라고 부르고 있다.

내용

염포는 시신을 종縱으로 감싸거나 묶을 때 사용하는 ‘종교’와 횡橫으로 감싸거나 묶을 때 사용하는 ‘횡교’가 있다. 상례의 순서에 따라 소렴과 대렴 때 사용하는 염포는 각각 ‘소렴교小殮絞’, ‘대렴교大殮絞’로 구별해서 불렀다. 즉, 소렴에 사용하는 소렴포로는 소렴종교 , 소렴횡교가 있고, 대렴에 사용하는 염포인 대렴포大殮布로는 대렴종교, 대렴횡교가 있다.

국조오례의』와 『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는 “소렴포는 횡으로 3개를 먼저 놓고, 종으로 1개를 깐다. 이때 염포는 옷감 한 폭을 세 갈래로 갈라 사용한다. 대렴포는 횡 두 폭을 세 갈래로 나누어 총 여섯 갈래로 가른 다음 그중 다섯 갈래만 사용한다. 종포는 한 폭을 세 갈래로 나누어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는 “소렴포는 고운 베를 정련하여 사용하며, 종縱의 길이는 10척尺(자) 정도는 허용된다. 양 끝을 세 갈래로 가르되, 길이의 중간 3분의 2는 갈라지지 않도록 한다. 횡橫 세 폭의 길이는 각 4척이나 3척 정도로 한다. 종포도 끝을 세 갈래로 나누되, 중간 8촌寸 정도에서 멈추어 가르지 않도록 한다. 대렴포는 종 3척, 횡 5척으로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1942년에 출간된 『사례의절四禮儀節』에서는 “소렴포는 세련포洗練布를 사용하되, 횡교는 네 폭의 양 끝을 갈라 8개로 만들고 반半 폭을 더하여 아홉 갈래를 쓰고, 종교는 한 폭의 양 끝을 세 갈래로 갈라 중간은 찢지 않고 사용한다. 대렴포는 정련한 포 세 폭의 각 끝을 갈라 여섯 갈래[絞]로 만들어 한 갈래는 버리고 다섯 갈래를 이용한다. 종교는 한 폭을 이용하여 양 끝을 세 갈래로 갈라서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이상의 기록을 통해, 염포의 사용은 시대마다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염포의 옷감은 문헌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사용되었다. 『국조오례의』에서는 고운 모시나 채綵(오색 비단)을 사용한다고 했고, 『가례언해家禮諺解』에서는 가는 베 또는 비단을 쓴다고 하였다. 『사례편람』에서는 “가는 포(베)를 두들겨 세탁한 것을 사용한다.”라고 했다. 정문공正文公 김수근金洙根(1798~1854)과 문헌공文獻公 김병학金炳學(1821~1879), 김정규金貞圭의 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1865~1915)의 『신종록愼終錄』에는 세포를 정련하여[練細布] 사용한 기록이 있다. 『사례의절』에는 ‘천금’ 관련 기록이 있다. 2014년 현재 장례업체에서는 대부분 삼베로 만든 염포를 판매하고 있다. 조선시대 무덤에서 수습되는 염포의 재질은 고운 모시와 베, 그리고 명주 등으로 다양하다.

2001년 장례업체에서 시행한 대렴은 조선시대와 달리, 염포의 위와 아래를 묶어주고 왼쪽을 덮은 후 오른쪽으로 덮는다. 7개의 멧베를 사용하여 염포로 싼 시신을 묶는데, 멧베의 양 끝을 세 가닥으로 갈라서 총 스물한 가닥으로 만든 후 시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단히 묶는 것으로 대렴 과정이 끝난다.

특징 및 의의

『사례찬설四禮纂說』에서는 이암頤庵 송인宋寅(1517~1584)의 말을 인용하여 “소렴과 대렴은 시신을 보호하는 것인데 지금은 이 뜻을 알지 못하고 단단히 묶는 것만 능사로 알아 힘센 사람을 택하여 힘써 묶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소렴할 때 교絞로 묶지 않는 것은 효자가 수시로 그 얼굴을 보고 싶어 함이며, 혹 사람이 죽은 지 2~3일 만에 살아나기도 해서이다.”라고 하였다. 염포는 시신을 묶는 용도로 소렴과 대렴에 사용하는 염습구이지만, 소렴에서는 단단하게 묶지 않는다. 조선시대 출토 복식에서도 꼬아서 비틀어 넣은 상태로 수습된다. 이는 소렴에서 혹시라도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의 표현으로, 효사상을 나타낸다.

참고문헌

염습의에 관한 연구(송미경, 서울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9), 전통수의에 관한 연구(김진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조선재봉전서(김숙당, 활문사, 1925), 한국의 수의문화(박성실・정종수・이은주 외, 신유, 2002).

염포

염포
한자명

殮布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상장례

집필자 송미경(宋美京)

정의

소렴小殮과 대렴大殮 때에 시신을 감싼 후 종횡으로 묶는 옷감.

역사

염포에 관한 기록은 『예기禮記』에서 찾아볼 수 있어, 유교식 상례에서는 염포 사용이 오래된 풍습임을 알 수 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를 비롯한 조선시대의 많은 예서에서 염포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들 예서에서는 염포를 ‘교포絞布’ 또는 ‘교絞’라고도 했다. 2000년 경기도 지방에서는 ‘매’라고 불러, 횡교橫絞는 ‘가로매’, 종교縱絞는 ‘세로매’라고도 한다. 또, 종교를 ‘장포’, 횡교를 ‘단포’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멧베’라는 이름도 있다. 2014년 현재 장례관련 업체에서는 염포를 ‘장매’라고 부르고 있다.

내용

염포는 시신을 종縱으로 감싸거나 묶을 때 사용하는 ‘종교’와 횡橫으로 감싸거나 묶을 때 사용하는 ‘횡교’가 있다. 상례의 순서에 따라 소렴과 대렴 때 사용하는 염포는 각각 ‘소렴교小殮絞’, ‘대렴교大殮絞’로 구별해서 불렀다. 즉, 소렴에 사용하는 소렴포로는 소렴종교 , 소렴횡교가 있고, 대렴에 사용하는 염포인 대렴포大殮布로는 대렴종교, 대렴횡교가 있다.

『국조오례의』와 『상례비요喪禮備要』에서는 “소렴포는 횡으로 3개를 먼저 놓고, 종으로 1개를 깐다. 이때 염포는 옷감 한 폭을 세 갈래로 갈라 사용한다. 대렴포는 횡 두 폭을 세 갈래로 나누어 총 여섯 갈래로 가른 다음 그중 다섯 갈래만 사용한다. 종포는 한 폭을 세 갈래로 나누어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사례편람四禮便覽』에서는 “소렴포는 고운 베를 정련하여 사용하며, 종縱의 길이는 10척尺(자) 정도는 허용된다. 양 끝을 세 갈래로 가르되, 길이의 중간 3분의 2는 갈라지지 않도록 한다. 횡橫 세 폭의 길이는 각 4척이나 3척 정도로 한다. 종포도 끝을 세 갈래로 나누되, 중간 8촌寸 정도에서 멈추어 가르지 않도록 한다. 대렴포는 종 3척, 횡 5척으로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1942년에 출간된 『사례의절四禮儀節』에서는 “소렴포는 세련포洗練布를 사용하되, 횡교는 네 폭의 양 끝을 갈라 8개로 만들고 반半 폭을 더하여 아홉 갈래를 쓰고, 종교는 한 폭의 양 끝을 세 갈래로 갈라 중간은 찢지 않고 사용한다. 대렴포는 정련한 포 세 폭의 각 끝을 갈라 여섯 갈래[絞]로 만들어 한 갈래는 버리고 다섯 갈래를 이용한다. 종교는 한 폭을 이용하여 양 끝을 세 갈래로 갈라서 사용한다.”라고 하였다. 이상의 기록을 통해, 염포의 사용은 시대마다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염포의 옷감은 문헌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사용되었다. 『국조오례의』에서는 고운 모시나 채綵(오색 비단)을 사용한다고 했고, 『가례언해家禮諺解』에서는 가는 베 또는 비단을 쓴다고 하였다. 『사례편람』에서는 “가는 포(베)를 두들겨 세탁한 것을 사용한다.”라고 했다. 정문공正文公 김수근金洙根(1798~1854)과 문헌공文獻公 김병학金炳學(1821~1879), 김정규金貞圭의 부인 한산이씨韓山李氏(1865~1915)의 『신종록愼終錄』에는 세포를 정련하여[練細布] 사용한 기록이 있다. 『사례의절』에는 ‘천금’ 관련 기록이 있다. 2014년 현재 장례업체에서는 대부분 삼베로 만든 염포를 판매하고 있다. 조선시대 무덤에서 수습되는 염포의 재질은 고운 모시와 베, 그리고 명주 등으로 다양하다.

2001년 장례업체에서 시행한 대렴은 조선시대와 달리, 염포의 위와 아래를 묶어주고 왼쪽을 덮은 후 오른쪽으로 덮는다. 7개의 멧베를 사용하여 염포로 싼 시신을 묶는데, 멧베의 양 끝을 세 가닥으로 갈라서 총 스물한 가닥으로 만든 후 시신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단히 묶는 것으로 대렴 과정이 끝난다.

특징 및 의의

『사례찬설四禮纂說』에서는 이암頤庵 송인宋寅(1517~1584)의 말을 인용하여 “소렴과 대렴은 시신을 보호하는 것인데 지금은 이 뜻을 알지 못하고 단단히 묶는 것만 능사로 알아 힘센 사람을 택하여 힘써 묶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소렴할 때 교絞로 묶지 않는 것은 효자가 수시로 그 얼굴을 보고 싶어 함이며, 혹 사람이 죽은 지 2~3일 만에 살아나기도 해서이다.”라고 하였다. 염포는 시신을 묶는 용도로 소렴과 대렴에 사용하는 염습구이지만, 소렴에서는 단단하게 묶지 않는다. 조선시대 출토 복식에서도 꼬아서 비틀어 넣은 상태로 수습된다. 이는 소렴에서 혹시라도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다리는 마음의 표현으로, 효사상을 나타낸다.

참고문헌

염습의에 관한 연구(송미경, 서울여자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89), 전통수의에 관한 연구(김진아, 단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1), 조선재봉전서(김숙당, 활문사, 1925), 한국의 수의문화(박성실・정종수・이은주 외, 신유,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