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진용신제(축제)(伽倻津龍神祭)

가야진용신제(축제)

한자명

伽倻津龍神祭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4월 > 양력세시

집필자 김승찬(金承璨)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당곡마을 앞 가야진사(伽倻津祠)와 낙동강변에서 매년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에 행하는 축제. 1997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고, 가야진보존회에서 축제를 관장하고 있다.

유래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잡지(雜誌)」 제사조(祭祀條)에 따르면, 가야진용신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국가적 제전(祭典)으로 제정한 중사(中祀) 가운데 사독(四瀆)의 하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2, 양산군 산천조에 “가야진은 일명 옥지연(玉池淵)라고도 한다. 고을 서쪽 40리이며 황산강(黃山江) 상류에 있다. 우리 세종조 때 황룡이 물속에 나타났으며, 가물 때 비를 빌면 문득 효험이 있었다.”라고 기록된 것과 같은 책 사묘조(祠廟條)에 “가야진사는 사전(祀典)에 공주·웅진과 함께 남독을 삼았다고 중사에 실려 있다. 나라에서 해마다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지낸다.”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가야진사는 예로부터 있었으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가야진사는 1983년 경상남도 지정 민속자료 7호로 지정되었다. 가야진사의 용왕제는 조선조 말기까지는 국가적 제례로 낙동강 도하(渡河)의 안전과 우순풍조를 용신에게 비는 제례였으나,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사당의 복원·정비 공사가 진행될 때 가야진용신제의 예능보유자였던 이장백 옹이 가야진용신제보존회를 조직하고 용신제의 내용을 고증·보완하여 민속놀이인 ‘용신제놀이’로 구성하였다. 따라서 가야진용신제 축제는 재래의 국가적 제례와 기우제 및 풍물놀이의 복합적 민속축제인 것이다.

내용

가야진사 용신제 축제는 부정(不淨)가시기, 칙사영접, 용신제, 용소(龍沼)풀이, 사신(辭神)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정가시기는 제관들이 목욕재계하고 부정을 가시기 위해 제당 주변에 황토를 뿌리고 출입문에 금줄을 친 뒤 제수를 준비한다. 칙사영접은 칙사(勅使, 양산 군수)가 당도하면 선창자가 지신풀이를 하고 영접길에 오르는데, 풍물패는 풍물을 치며 뒤따라간다. 칙사를 맞이하여 사인교에 태워 제당으로 모셔온다. 칙사가 가야진사에 당도하면 집례관이 칙사의 입실을 고하고 집례관의 집전 하에 용신제를 엄숙히 거행한다. 용신제의 진행 과정은 홀기에 따라 거행한다. 제물은 모두 익히지 않은 제물을 쓴다. 용소풀이는 용소침돈례(龍沼沈豚禮)의 과정이다. 용신제를 마치면 칙사를 비롯한 제관이 강변에 지어놓은 송막(松幕, 불집)으로 가는데, 풍물패가 풍물을 치며 따라가서 송막을 한 바퀴 돌면 칙사가 송막에 불을 지른다. 이때 풍물패의 잡색들은 기우제의 일환으로 짚신을 벗어 불길에 던지며 용의 승천을 기원하고 한바탕 풍물놀이를 벌인다.

한편 알자(謁者)의 안내로 칙사는 집례, 대축, 사령을 대동하고 배에 올라, 희생물인 돼지를 싣고 용소(龍沼)로 향한다. 용소에 당도하면 희생물을 뱃머리에 두고 칙사가 용신에게 헌작 재배한 후 돼지를 강에 던지면서 “침하돈(沈下豚)”이라 세 번 외친다. 사신은 용소풀이가 끝나면 제례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풍물패들이 풍물을 치고 춤을 추면서 가야진사로 오면, 알자가 제당을 향해 제향이 끝났음을 고한다. 그러면 칙사는 관복을 벗고 제관을 비롯한 모든 참례자들이 풍물패와 어울려서 술과 음식을 먹고 한바탕 난장을 벌인다.

의의

가야진용신제 축제는 현재 사독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용신제이다. 가물었을 때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보장해주는 기우제와 풍물놀이가 합쳐진 양산지방 특유의 민속축제이다.

참고문헌

國朝五禮儀, 三國史記, 增補文獻備考, 내고장 傳統 (梁山郡, 1983), 梁山歷史文化觀光選集 (山文化院, 2001), 梁山市誌 上 (梁山市誌編纂委員會, 2004)

가야진용신제(축제)

가야진용신제(축제)
한자명

伽倻津龍神祭

사전위치

한국세시풍속사전 > 여름(夏) > 4월 > 양력세시

집필자 김승찬(金承璨)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당곡마을 앞 가야진사(伽倻津祠)와 낙동강변에서 매년 음력 3월 초정일(初丁日)에 행하는 축제. 1997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고, 가야진보존회에서 축제를 관장하고 있다.

유래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2, 「잡지(雜誌)」 제사조(祭祀條)에 따르면, 가야진용신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국가적 제전(祭典)으로 제정한 중사(中祀) 가운데 사독(四瀆)의 하나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22, 양산군 산천조에 “가야진은 일명 옥지연(玉池淵)라고도 한다. 고을 서쪽 40리이며 황산강(黃山江) 상류에 있다. 우리 세종조 때 황룡이 물속에 나타났으며, 가물 때 비를 빌면 문득 효험이 있었다.”라고 기록된 것과 같은 책 사묘조(祠廟條)에 “가야진사는 사전(祀典)에 공주·웅진과 함께 남독을 삼았다고 중사에 실려 있다. 나라에서 해마다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지낸다.”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가야진사는 예로부터 있었으나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가야진사는 1983년 경상남도 지정 민속자료 7호로 지정되었다. 가야진사의 용왕제는 조선조 말기까지는 국가적 제례로 낙동강 도하(渡河)의 안전과 우순풍조를 용신에게 비는 제례였으나, 1990년부터 1994년까지 사당의 복원·정비 공사가 진행될 때 가야진용신제의 예능보유자였던 이장백 옹이 가야진용신제보존회를 조직하고 용신제의 내용을 고증·보완하여 민속놀이인 ‘용신제놀이’로 구성하였다. 따라서 가야진용신제 축제는 재래의 국가적 제례와 기우제 및 풍물놀이의 복합적 민속축제인 것이다.

내용

가야진사 용신제 축제는 부정(不淨)가시기, 칙사영접, 용신제, 용소(龍沼)풀이, 사신(辭神)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정가시기는 제관들이 목욕재계하고 부정을 가시기 위해 제당 주변에 황토를 뿌리고 출입문에 금줄을 친 뒤 제수를 준비한다. 칙사영접은 칙사(勅使, 양산 군수)가 당도하면 선창자가 지신풀이를 창하고 영접길에 오르는데, 풍물패는 풍물을 치며 뒤따라간다. 칙사를 맞이하여 사인교에 태워 제당으로 모셔온다. 칙사가 가야진사에 당도하면 집례관이 칙사의 입실을 고하고 집례관의 집전 하에 용신제를 엄숙히 거행한다. 용신제의 진행 과정은 홀기에 따라 거행한다. 제물은 모두 익히지 않은 제물을 쓴다. 용소풀이는 용소침돈례(龍沼沈豚禮)의 과정이다. 용신제를 마치면 칙사를 비롯한 제관이 강변에 지어놓은 송막(松幕, 불집)으로 가는데, 풍물패가 풍물을 치며 따라가서 송막을 한 바퀴 돌면 칙사가 송막에 불을 지른다. 이때 풍물패의 잡색들은 기우제의 일환으로 짚신을 벗어 불길에 던지며 용의 승천을 기원하고 한바탕 풍물놀이를 벌인다.

한편 알자(謁者)의 안내로 칙사는 집례, 대축, 사령을 대동하고 배에 올라, 희생물인 돼지를 싣고 용소(龍沼)로 향한다. 용소에 당도하면 희생물을 뱃머리에 두고 칙사가 용신에게 헌작 재배한 후 돼지를 강에 던지면서 “침하돈(沈下豚)”이라 세 번 외친다. 사신은 용소풀이가 끝나면 제례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풍물패들이 풍물을 치고 춤을 추면서 가야진사로 오면, 알자가 제당을 향해 제향이 끝났음을 고한다. 그러면 칙사는 관복을 벗고 제관을 비롯한 모든 참례자들이 풍물패와 어울려서 술과 음식을 먹고 한바탕 난장을 벌인다.

의의

가야진용신제 축제는 현재 사독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용신제이다. 가물었을 때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보장해주는 기우제와 풍물놀이가 합쳐진 양산지방 특유의 민속축제이다.

참고문헌

國朝五禮儀, 三國史記, 增補文獻備考
내고장 傳統 (梁山郡, 1983)
梁山歷史文化觀光選集 (山文化院, 2001)
梁山市誌 上 (梁山市誌編纂委員會,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