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红豆粥)

팥죽

한자명

红豆粥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물

집필자 주영하(周永河)

정의

동지 때 가정에서 잡귀잡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집의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뿌리는 팥으로 만든 죽.

역사

중국 창장(長江) 강 중류 유역 형초(荊楚) 지역의 7세기경 연중세시기인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음력 동지에 팥죽을 쑤어 역귀(疫鬼)를 물리쳤다는 데서 유래한 풍속이다. 『형초세시기』에 따르면 “공공씨(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되어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라고 했다. 그러니 당초에는 동지 때 팥죽을 먹는 풍속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이에 대해 기록한 알려진 문헌으로는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시고(牧隱詩藁)』에 나오는 ‘팥죽[豆粥]’이란 시가 가장 앞선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지가 되면 시골풍속에 팥죽을 진하게 쑨다네(冬至鄕風豆粥濃), 비취 주발색으로 흘러넘쳐서 공중에 떠오르는 듯하네(盈盈翠鉢色浮空), 석청으로 맛을 내어 목구멍을 적셔 내리니(調來崖蜜流喉吻), 음흉하고 사악한 기운을 모두 씻어내고 뱃속을 살찌운다네(洗盡陰邪潤腹中)”

추정컨대 명나라 때 간행된 『형초세시기』가 고려시대 말에 전해지면서 동지에 팥죽을 먹는 풍속이 행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에서 “동지의 팥죽은 본래 귀신을 물리치는 물건이니 사당에 올리는 것은 매우 부당한 듯합니다.(冬至豆粥 本禳鬼之物 薦廟似甚無謂)”라고 했다. 17~18세기 초반에 사람들은 동지 때 팥죽을 쑤어 사당에 올리고 그것을 여러 그릇에 담아서 각 방과 장독간, 헛간 등 집안의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놓아두는 풍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득공(柳得恭, 1749~?)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 동지 때 “팥죽을 문짝에 뿌려 악을 물리친다.”고 적었다. 이를 통하여 조선 후기에 와서 동지 때 반드시 팥죽을 쑤어 사당에 올리고, 집안 곳곳의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뿌려서 악귀를 물리치는 풍속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내용

팥죽은 팥을 삶아 으깨어 거른 물에 쌀을 넣고 쑨 죽이다. 한자로는 두탕(豆湯) 또는 두탕적두(豆湯赤豆)라고 한다. 고려 말에 『형초세시기』가 전해지면서 동지 때 팥죽 먹는 풍속이 생겼다. 조선시대 후기가 되면 동지 때 팥죽을 쑤어 사당에 올리고, 집안의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두었다. 이와 동시에 팥죽을 대문에 뿌리기도 했다. 심지어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뿌리는 풍속도 생겨났다. 1970년대까지도 동지 때 팥죽을 먹고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팥죽을 두거나 뿌리는 풍속은 지방에 따라 지속되었다. 그러나 도시화와 주택의 변화로 인해 1990년대 이후에 이러한 풍속을 보기는 어렵다.

지역사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지역에서는 동지 때 사당에 팥죽으로 동지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장광 등에 한 그릇씩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었다. 경상도지역에서는 동지 때 팥죽을 쑤어 가지에 적셔 집안 대문을 비롯하여 담장이나 마당에 뿌렸다. 아울러 마을 어귀의 큰 고목에도 팥죽을 뿌려 잡귀의 동네 침입을 막은 것으로 전해진다.

참고문헌

牧隱詩藁, 寒水齋集, 京都雜志, 한국의 가정신앙-강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2007)

팥죽

팥죽
한자명

红豆粥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물

집필자 주영하(周永河)

정의

동지 때 가정에서 잡귀잡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집의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뿌리는 팥으로 만든 죽.

역사

중국 창장(長江) 강 중류 유역 형초(荊楚) 지역의 7세기경 연중세시기인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서 음력 동지에 팥죽을 쑤어 역귀(疫鬼)를 물리쳤다는 데서 유래한 풍속이다. 『형초세시기』에 따르면 “공공씨(共工氏)에게 바보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동짓날에 죽어서 역질 귀신이 되어 붉은 팥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동짓날 붉은 팥죽을 쑤어서 그를 물리친다.”라고 했다. 그러니 당초에는 동지 때 팥죽을 먹는 풍속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이에 대해 기록한 알려진 문헌으로는 이색(李穡, 1328~1396)의 『목은시고(牧隱詩藁)』에 나오는 ‘팥죽[豆粥]’이란 시가 가장 앞선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동지가 되면 시골풍속에 팥죽을 진하게 쑨다네(冬至鄕風豆粥濃), 비취 주발색으로 흘러넘쳐서 공중에 떠오르는 듯하네(盈盈翠鉢色浮空), 석청으로 맛을 내어 목구멍을 적셔 내리니(調來崖蜜流喉吻), 음흉하고 사악한 기운을 모두 씻어내고 뱃속을 살찌운다네(洗盡陰邪潤腹中)”

추정컨대 명나라 때 간행된 『형초세시기』가 고려시대 말에 전해지면서 동지에 팥죽을 먹는 풍속이 행해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에서 “동지의 팥죽은 본래 귀신을 물리치는 물건이니 사당에 올리는 것은 매우 부당한 듯합니다.(冬至豆粥 本禳鬼之物 薦廟似甚無謂)”라고 했다. 17~18세기 초반에 사람들은 동지 때 팥죽을 쑤어 사당에 올리고 그것을 여러 그릇에 담아서 각 방과 장독간, 헛간 등 집안의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놓아두는 풍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득공(柳得恭, 1749~?)은 『경도잡지(京都雜志)』에서 동지 때 “팥죽을 문짝에 뿌려 악을 물리친다.”고 적었다. 이를 통하여 조선 후기에 와서 동지 때 반드시 팥죽을 쑤어 사당에 올리고, 집안 곳곳의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뿌려서 악귀를 물리치는 풍속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내용

팥죽은 팥을 삶아 으깨어 거른 물에 쌀을 넣고 쑨 죽이다. 한자로는 두탕(豆湯) 또는 두탕적두(豆湯赤豆)라고 한다. 고려 말에 『형초세시기』가 전해지면서 동지 때 팥죽 먹는 풍속이 생겼다. 조선시대 후기가 되면 동지 때 팥죽을 쑤어 사당에 올리고, 집안의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두었다. 이와 동시에 팥죽을 대문에 뿌리기도 했다. 심지어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뿌리는 풍속도 생겨났다. 1970년대까지도 동지 때 팥죽을 먹고 가정신이 머무는 곳에 팥죽을 두거나 뿌리는 풍속은 지방에 따라 지속되었다. 그러나 도시화와 주택의 변화로 인해 1990년대 이후에 이러한 풍속을 보기는 어렵다.

지역사례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경기도지역에서는 동지 때 사당에 팥죽으로 동지차례를 지낸 다음 방, 마루, 장광 등에 한 그릇씩 놓고 식구들이 둘러앉아 먹었다. 경상도지역에서는 동지 때 팥죽을 쑤어 솔가지에 적셔 집안 대문을 비롯하여 담장이나 마당에 뿌렸다. 아울러 마을 어귀의 큰 고목에도 팥죽을 뿌려 잡귀의 동네 침입을 막은 것으로 전해진다.

참고문헌

牧隱詩藁, 寒水齋集, 京都雜志, 한국의 가정신앙-강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세시풍속사전 (국립민속박물관,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