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일(擇日)

택일

한자명

擇日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용어

집필자 김만태(金萬泰)

정의

행사를 하기에 앞서 피흉추길의 한 방법으로 음양오행 원리와 육갑 신살법 등에 의거하여 좋은 날을 가리고 나쁜 날을 피하는 일련의 행위. “길흉일을 구별하여 고르다, 가리다”는 의미에서 ‘날가림’, “길일을 점쳐서 골라 정하다”는 의미에서 ‘복일(卜日)’, “길일을 물어서 취하다”는 의미에서 ‘추길(諏吉)’․‘추일(諏日)’이라고도 한다.

유래

인간의 삶에서 시간적 요소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중대한 행사인 경우 여러 가지 여건을 감안해 미리 그 기일(期日)을 정해놓고 행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에 따라 중대한 행사에 포함되는 내용이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혼인․출산․개업․이사․이장․고사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인생사에서 중요한 일들의 경우 “새 사람 들어오고 3년, 새 집 짓고 3년 나기 어렵다.”는 말처럼 결과의 좋고 나쁨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따라서 인생의 중대사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신중하게 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떠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피흉추길의 한 방법으로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좋은 날을 고르고 나쁜 날을 피하는 방법을 고안해 사용해 왔다.

사람들이 택일을 하는 동기는 좋은 날에 행해지는 일은 그날의 좋은 기운을 받아 그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좋은 결과는 더 크게 하고 나쁜 결과는 더 작게 하기 위한 조치로써 길흉일을 가려 어떤 일을 행하려는 사람들의 믿음은 인류가 지닌 보편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길흉일에 관한 풍속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대부분 문화권에서 널리 있어 왔다. 한국에서도 길흉일을 가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풍속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이런 택일풍속이 언제 어떻게 한국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자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택일과 직접 관련되는 가장 초기의 자료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 진평왕(재위 579~632) 때 “설씨녀(薛氏女)가 혼인을 앞두고 날을 고른다[卜日]”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볼 때, 6세기 말에 이미 민가에서도 혼인을 앞두고 좋은 날을 택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도 신부 측에서 혼인 날짜를 정하는 연길(涓吉)․날받이 관행과 비슷하다.

설씨녀는 율리 마을 민가의 여자이다. (…) 진평왕 때 (…) 설씨가 말하기를 “혼인은 인간의 윤리라 갑작스레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제가 마음으로 허락한 이상 죽어도 변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대가 변방 방위에 나갔다가 교대하여 돌아온 후에 날을 골라서[卜日] 예식을 올려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일자(日者)·일관(日官)에 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이들이 길흉일을 가리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삼국사기』 열전에는 궁예(弓裔)의 출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궁예는 신라 사람으로 (…)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는데 (…) 일관이 아뢰기를 “이 아이는 중오일(重午日)에 출생하였고 (…) 장차 국가에 이롭지 못할 것이오니 마땅히 이를 키우지 마십시오!” 라고 했다. 왕이 궁중의 사람을 시켜 그 집에 가서 죽이게 했다.

중오일(重午日)의 ‘午’는 ‘五’와 통하여 단오인 5월 5일을 말한다. 이는 남송(南宋)에서도 5월 5일을 특히 흉한 날로 여겨 이날에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꺼렸다는 기록과도 일치한다. 이를 통해 볼 때 택일 풍속과 관련해 당시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적지 않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국가나 왕실에서 건물을 새로 짓거나 능을 개장할 때, 기설제(祈雪祭) 등 각종 제사를 지낼 때 사천대의 일관에게 명하여 택일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 밖에도 좋은 날과 방위를 가리는 관행이 널리 행해졌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국가·왕실과 민간에서 날을 가리는 풍습은 지속되고 성행하였다. 17세기 초 경상도 현풍에 살았던 곽주(郭澍)와 그 가족들이 쓴 한글편지인 『현풍곽씨언간(玄風郭氏諺簡)』은 당시의 다양했던 택일 관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손 없고 조용한 날(손 업고 죠용 날)을 가려 말[馬]을 보내고, 십악대패일(十惡大敗日)과 천구일(天狗日)이나 책력(녁)과 날 받는 책(날 밧 )을 이용하여 딸의 혼인날을 받고, 잿굿하는 날은 귀혼(鬼魂)날이니 사람이 아무나 불의(不意)에 죽게 되어 있는 날이며, 살풀이 하는 날(살 므날)을 가리는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다.

오월 초이튿날, 오월 열이튿날, 오월 열나흗날, 오월 스무나흗날, 오월 스무엿샛날, 유월 초엿샛날, 유월 초여드렛날, 유월 열여드렛날, 유월 스무날, 칠월 초하룻날, 칠월 초사흗날 (이날에는) 방문 밖에도 나가지 말고, 뒤(대소변)도 뒷간에 가서 보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보아라. 여기에 적힌 열한 날에는 매우매우 조심조심하여라.

김순복에게 가서 (그날 일진을) 물어 보고자 하네. (…) 김순복에게 물어서 (그날이) 궂다(일진이 좋지 않다)고 말하면 아이는 내가 함께 아니 데려갈 것이니 (…)

곽주가 그의 둘째 부인 하씨에게 금기일과 근신일을 적어서 보낸 편지에는 생활의 크고 작은 일을 함에 있어서 모두 날짜를 가려 행한 당시의 택일 풍속이 잘 나타나 있다. 길을 나설 때조차도 그날의 일진을 뽑아보고서 출발과 동행 여부를 결정한 것이다.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에는 담장과 집, 성(城)을 수리할 때 날을 점쳐 길일을 얻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가 지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의사를 구하기 좋은 날, 꺼리는 날, 약을 못 쓰는 날 등이 적혀있다. 신재효(申在孝)가 개작한 판소리박타령>의 놀부 심술을 묘사하는 대목 중에 “본명방(本命方)에 벌목하고, 잠사각(蠶糸角)에 집짓기와 오귀방(五鬼方)에 이사 권코, 삼재(三災) 든 데 혼인하기”라는 사설이 나온다. 이 사설을 미뤄 볼 때 조선시대 후기 사람들도 날짜와 관련되는 방위를 가려서 일을 처리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놀부가 사랑 앞에 심을 때도 책력을 펴놓고 재종일(栽種日)을 가리고, 박통을 탈 때에도 책력을 펴놓고 납재일(納財日)을 가리는 대목이 나온다.

장례와 관련해서도 길흉일을 가리는 풍속이 성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장기(葬期)를 정해 장사를 치르는 게 법도였다. 그러나 신분에 따른 법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장기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태어난 시가 좋으면 팔자가 좋고, 장삿날이 좋으면 자손들이 좋다’는 믿음에 따라 길일을 택해 장사를 지내고자 너도나도 장기를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내용

근대에 이르러 과학이 발전하고 사회가 문명화하면서 택일풍속에 대한 회의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국가와 민간에서 중시하던 택일풍속은 점차 그 힘을 잃는 방향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일각에서는 ‘굳이 택일을 믿어서가 아니라 좋은 게 좋으니까’라는 보험심리에서 길일이라고 알려진 날에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예식장이 붐비고 이삿짐 업체는 유난히 바쁘다.

일제강점기 이후 인쇄시설의 보급으로 가정보감(家庭寶鑑)류가 일반에게 많이 제공되었는데 그 안에는 가정에서 손쉽게 참고할 수 있는 다양한 택일항목들이 실려 있었다. 광복이후 1945년부터는 민간 출판사에서 다양한 택일관련 책자들을 발행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택일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지금도 민간에서 널리 행하는 택일풍속 중의 하나로 장 담그기가 있다. 장 담그기 좋은 날[造醬吉日]로 『천기대요(天機大要)』에서는 정묘·병인·병오·천덕합·월덕합·만·성·개·오일을 들고 있으며, 신일(辛日)은 피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지금 민간에서는 장 담그기 좋은 날로 대개 정월 말날[午日]이나 닭날[酉日], 돼지날[亥日]을 꼽고 있다. 그 까닭은 “말날은 장이 맑으라고, 닭날은 장이 달으라고, 돼지날은 장이 꿀맛처럼 되라”고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택일풍속의 전반적인 전승실태를 살펴보면, 혼인·이사 택일이 가장 성행한다. 그 다음으로 개업․출산 택일이 중요시된다. 장례·이장·집수리에 관한 택일은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상량 택일은 좀처럼 행해지지 않는다. 『천기대요』 등 과거 택일서에서 기조문(起造門)으로 매우 중시되던 건축 택일이 예전에는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던 출산 택일보다 그 비중이 현저히 낮아졌다. 이런 현상은 아파트라는 기성·공동 주택문화의 확산, 한 두 명의 자녀만 낳아 잘 키우려는 저출산 등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건축 택일은 점점 사라지고 출산 택일은 보다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장사일과 이장일을 정할 때도 예전에는 중상(重喪)·복일(復日)·중일(重日)을 모두 엄격하게 가렸지만 지금은 중상조차 가리지 않고 3일장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이후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3일장이 보편화되면서 장례에 관한 택일에서도 금기사항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혼인 택일은 신랑신부의 본명생기법(本命生氣法)에 의거하거나 신랑신부의 사주로 택일 원리에 맞추어 하는 것이 본래 원칙이다. 그러나 생활주기가 1주일인 현대인들은 역학상 길일보다 하객들이 편하게 많이 참석할 수 있는 공휴일을 선호한다. 여기에 길일까지 겹치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한다. 주5일 근무제가 보편화되면서 금요일로 택일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현재 민간에서 이사·혼인·집수리 등을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바로 ‘손’이다. 우리 민속에서 ‘손’은 날짜에 따라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해코지하는 귀신인 ‘손님’을 줄여 부른 것이다. 음력으로 1일과 2일은 동쪽, 3일과 4일은 남쪽, 5일과 6일은 서쪽, 7일과 8일은 북쪽에 있다가 나머지 이틀간(9일과 10일)동안은 하늘로 올라가서 사라진 뒤 11일에 다시 땅에 내려와 동쪽에 나타나는 등 10일 간격으로 돌아다닌다. 사람들은 손 있는 날이나 방위에 이사·혼인·집수리 등을 했다가는 큰 재앙을 당한다고 믿어왔다.

속칭 ‘손’을 『천기대요』에서는 태백살(太白殺)이라고 하는데 대례(大禮) 때 초례상을 차리는 방향을 피하는 정도로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17세기 초 『현풍곽씨언간(玄風郭氏諺簡)』에서 말[馬]을 보내는 날을 ‘손 없고 조용한 날’로 꼽고 있는 것을 봤을 때 오래 전부터 민간에서 행사 택일 시 손 없는 날을 두루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풍속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손 없는 날에 이사·혼인·개업·집수리·장 뜨기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도 좋다고 확장해서 인식하는 것이다. 손 없는 날은 순서대로 항상 반복되기 때문에 누구나 책력 없이도 쉽게 알 수 있어 민간에서 행사일을 잡는 데 널리 쓰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한다. 즉 손 없는 날도 장 담그는 날과 비슷한 변화, 즉 단순·규칙화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길흉화복을 나타내는 점복·주술·금기·무속이야말로 인간의 감정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문화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길흉화복에 가장 집착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날의 길흉을 가리는 택일 풍속에는 한국인 고유의 신앙심과 인식구조가 꾸밈없이 함축되어 있으며, 한국인의 진솔한 삶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택일 풍속도 비록 모습이 크게 달라졌지만 지금도 한국인의 생활 속에서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역사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서미마을에서는 화(火)일에 초가지붕을 이면 불이난다고 해서 반드시 이날을 피해 지붕을 이었으며, 구들장을 뜯어서 안의 재를 후벼내고 구들을 새로 놓는 날은 매년 음력 7월 공망일에 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지붕 개량을 하고 보일러를 설치하면서 이런 택일 풍속도 사라졌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주거환경이 바뀜에 따라 택일 풍속이 소멸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담장을 고치고 벽에 황토를 바르고 못을 치는 것도 공망일에 손 없는 방향에 했는데 지금은 가리지 않는다. 마을 안에서 이사를 할 때도 대주(大主)의 사주를 넣어서 꼭 이삿날을 받아 했으며 이사방위도 반드시 가렸다. 그래서 이사를 가려고 집을 샀다가도 이삿날이 나오지 않아 해를 넘겨 이사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굳이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도 초가지붕을 갈아 덮는 데는 택일을 받아서 하고, 되도록 천화일(天火日: 자子․오午․묘卯․유酉일)을 피하고 만약 천화일을 무시하고 지붕을 손보았다가는 집안이 화를 입게 된다는 속신이 지켜지고 있다. 10월에 ‘대액막이’ 굿을 할 때도 택일을 받아 하는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택일 관행이 많이 사라졌다.

참고문헌

‘날가림’ 관습으로 본 가정신앙의 역사성 (안혜경, 한국의 가정신앙­상, 민속원, 2005), 역서류를 통해 본 택일문화의 변화 (김만태, 민속학연구 20, 국립민속박물관, 2007), 한국 택일 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김만태, 정신문화연구 32-1, 한국중앙연구원, 2009), 한국 사주 명리의 활용양상과 인식체계 (김만태, 안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

택일

택일
한자명

擇日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용어

집필자 김만태(金萬泰)

정의

행사를 하기에 앞서 피흉추길의 한 방법으로 음양오행 원리와 육갑 신살법 등에 의거하여 좋은 날을 가리고 나쁜 날을 피하는 일련의 행위. “길흉일을 구별하여 고르다, 가리다”는 의미에서 ‘날가림’, “길일을 점쳐서 골라 정하다”는 의미에서 ‘복일(卜日)’, “길일을 물어서 취하다”는 의미에서 ‘추길(諏吉)’․‘추일(諏日)’이라고도 한다.

유래

인간의 삶에서 시간적 요소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중대한 행사인 경우 여러 가지 여건을 감안해 미리 그 기일(期日)을 정해놓고 행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에 따라 중대한 행사에 포함되는 내용이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혼인․출산․개업․이사․이장․고사 등이 포함된다. 이처럼 인생사에서 중요한 일들의 경우 “새 사람 들어오고 3년, 새 집 짓고 3년 나기 어렵다.”는 말처럼 결과의 좋고 나쁨이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 따라서 인생의 중대사일수록 사람들은 더욱 신중하게 행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떠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피흉추길의 한 방법으로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좋은 날을 고르고 나쁜 날을 피하는 방법을 고안해 사용해 왔다.

사람들이 택일을 하는 동기는 좋은 날에 행해지는 일은 그날의 좋은 기운을 받아 그 결과도 좋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좋은 결과는 더 크게 하고 나쁜 결과는 더 작게 하기 위한 조치로써 길흉일을 가려 어떤 일을 행하려는 사람들의 믿음은 인류가 지닌 보편적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길흉일에 관한 풍속은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의 대부분 문화권에서 널리 있어 왔다. 한국에서도 길흉일을 가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는 풍속이 있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다만 이런 택일풍속이 언제 어떻게 한국에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를 직접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자료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택일과 직접 관련되는 가장 초기의 자료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열전(列傳)」에 진평왕(재위 579~632) 때 “설씨녀(薛氏女)가 혼인을 앞두고 날을 고른다[卜日]”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을 볼 때, 6세기 말에 이미 민가에서도 혼인을 앞두고 좋은 날을 택하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도 신부 측에서 혼인 날짜를 정하는 연길(涓吉)․날받이 관행과 비슷하다.

설씨녀는 율리 마을 민가의 여자이다. (…) 진평왕 때 (…) 설씨가 말하기를 “혼인은 인간의 윤리라 갑작스레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제가 마음으로 허락한 이상 죽어도 변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대가 변방 방위에 나갔다가 교대하여 돌아온 후에 날을 골라서[卜日] 예식을 올려도 늦지 않습니다.”

그리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일자(日者)·일관(日官)에 관한 기록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미뤄볼 때, 이들이 길흉일을 가리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삼국사기』 열전에는 궁예(弓裔)의 출생과 관련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궁예는 신라 사람으로 (…) 5월 5일에 외가에서 태어났는데 (…) 일관이 아뢰기를 “이 아이는 중오일(重午日)에 출생하였고 (…) 장차 국가에 이롭지 못할 것이오니 마땅히 이를 키우지 마십시오!” 라고 했다. 왕이 궁중의 사람을 시켜 그 집에 가서 죽이게 했다.

중오일(重午日)의 ‘午’는 ‘五’와 통하여 단오인 5월 5일을 말한다. 이는 남송(南宋)에서도 5월 5일을 특히 흉한 날로 여겨 이날에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꺼렸다는 기록과도 일치한다. 이를 통해 볼 때 택일 풍속과 관련해 당시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적지 않은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시대에는 국가나 왕실에서 건물을 새로 짓거나 능을 개장할 때, 기설제(祈雪祭) 등 각종 제사를 지낼 때 사천대의 일관에게 명하여 택일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 밖에도 좋은 날과 방위를 가리는 관행이 널리 행해졌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국가·왕실과 민간에서 날을 가리는 풍습은 지속되고 성행하였다. 17세기 초 경상도 현풍에 살았던 곽주(郭澍)와 그 가족들이 쓴 한글편지인 『현풍곽씨언간(玄風郭氏諺簡)』은 당시의 다양했던 택일 관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손 없고 조용한 날(손 업고 죠용 날)을 가려 말[馬]을 보내고, 십악대패일(十惡大敗日)과 천구일(天狗日)이나 책력(녁)과 날 받는 책(날 밧 )을 이용하여 딸의 혼인날을 받고, 잿굿하는 날은 귀혼(鬼魂)날이니 사람이 아무나 불의(不意)에 죽게 되어 있는 날이며, 살풀이 하는 날(살 므날)을 가리는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다.

오월 초이튿날, 오월 열이튿날, 오월 열나흗날, 오월 스무나흗날, 오월 스무엿샛날, 유월 초엿샛날, 유월 초여드렛날, 유월 열여드렛날, 유월 스무날, 칠월 초하룻날, 칠월 초사흗날 (이날에는) 방문 밖에도 나가지 말고, 뒤(대소변)도 뒷간에 가서 보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보아라. 여기에 적힌 열한 날에는 매우매우 조심조심하여라.

김순복에게 가서 (그날 일진을) 물어 보고자 하네. (…) 김순복에게 물어서 (그날이) 궂다(일진이 좋지 않다)고 말하면 아이는 내가 함께 아니 데려갈 것이니 (…)

곽주가 그의 둘째 부인 하씨에게 금기일과 근신일을 적어서 보낸 편지에는 생활의 크고 작은 일을 함에 있어서 모두 날짜를 가려 행한 당시의 택일 풍속이 잘 나타나 있다. 길을 나설 때조차도 그날의 일진을 뽑아보고서 출발과 동행 여부를 결정한 것이다.

정조의 문집인 『홍재전서(弘齋全書)』에는 담장과 집, 성(城)을 수리할 때 날을 점쳐 길일을 얻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빙허각 이씨(憑虛閣 李氏)가 지은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의사를 구하기 좋은 날, 꺼리는 날, 약을 못 쓰는 날 등이 적혀있다. 신재효(申在孝)가 개작한 판소리 <박타령>의 놀부 심술을 묘사하는 대목 중에 “본명방(本命方)에 벌목하고, 잠사각(蠶糸角)에 집짓기와 오귀방(五鬼方)에 이사 권코, 삼재(三災) 든 데 혼인하기”라는 사설이 나온다. 이 사설을 미뤄 볼 때 조선시대 후기 사람들도 날짜와 관련되는 방위를 가려서 일을 처리하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를 놀부가 사랑 앞에 심을 때도 책력을 펴놓고 재종일(栽種日)을 가리고, 박통을 탈 때에도 책력을 펴놓고 납재일(納財日)을 가리는 대목이 나온다.

장례와 관련해서도 길흉일을 가리는 풍속이 성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장기(葬期)를 정해 장사를 치르는 게 법도였다. 그러나 신분에 따른 법적 제한에도 불구하고 장기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태어난 시가 좋으면 팔자가 좋고, 장삿날이 좋으면 자손들이 좋다’는 믿음에 따라 길일을 택해 장사를 지내고자 너도나도 장기를 지연시켰기 때문이다.

내용

근대에 이르러 과학이 발전하고 사회가 문명화하면서 택일풍속에 대한 회의가 나타났다. 이에 따라 오랫동안 국가와 민간에서 중시하던 택일풍속은 점차 그 힘을 잃는 방향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일각에서는 ‘굳이 택일을 믿어서가 아니라 좋은 게 좋으니까’라는 보험심리에서 길일이라고 알려진 날에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이 예식장이 붐비고 이삿짐 업체는 유난히 바쁘다.

일제강점기 이후 인쇄시설의 보급으로 가정보감(家庭寶鑑)류가 일반에게 많이 제공되었는데 그 안에는 가정에서 손쉽게 참고할 수 있는 다양한 택일항목들이 실려 있었다. 광복이후 1945년부터는 민간 출판사에서 다양한 택일관련 책자들을 발행하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의 다양한 택일욕구에 부응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지금도 민간에서 널리 행하는 택일풍속 중의 하나로 장 담그기가 있다. 장 담그기 좋은 날[造醬吉日]로 『천기대요(天機大要)』에서는 정묘·병인·병오·천덕합·월덕합·만·성·개·오일을 들고 있으며, 신일(辛日)은 피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지금 민간에서는 장 담그기 좋은 날로 대개 정월 말날[午日]이나 닭날[酉日], 돼지날[亥日]을 꼽고 있다. 그 까닭은 “말날은 장이 맑으라고, 닭날은 장이 달으라고, 돼지날은 장이 꿀맛처럼 되라”고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재 택일풍속의 전반적인 전승실태를 살펴보면, 혼인·이사 택일이 가장 성행한다. 그 다음으로 개업․출산 택일이 중요시된다. 장례·이장·집수리에 관한 택일은 비중이 점차 낮아지고, 상량 택일은 좀처럼 행해지지 않는다. 『천기대요』 등 과거 택일서에서 기조문(起造門)으로 매우 중시되던 건축 택일이 예전에는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던 출산 택일보다 그 비중이 현저히 낮아졌다. 이런 현상은 아파트라는 기성·공동 주택문화의 확산, 한 두 명의 자녀만 낳아 잘 키우려는 저출산 등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건축 택일은 점점 사라지고 출산 택일은 보다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장사일과 이장일을 정할 때도 예전에는 중상(重喪)·복일(復日)·중일(重日)을 모두 엄격하게 가렸지만 지금은 중상조차 가리지 않고 3일장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1990년대 이후 병원에서 장례를 치르고 3일장이 보편화되면서 장례에 관한 택일에서도 금기사항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혼인 택일은 신랑신부의 본명생기법(本命生氣法)에 의거하거나 신랑신부의 사주로 택일 원리에 맞추어 하는 것이 본래 원칙이다. 그러나 생활주기가 1주일인 현대인들은 역학상 길일보다 하객들이 편하게 많이 참석할 수 있는 공휴일을 선호한다. 여기에 길일까지 겹치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한다. 주5일 근무제가 보편화되면서 금요일로 택일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현재 민간에서 이사·혼인·집수리 등을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바로 ‘손’이다. 우리 민속에서 ‘손’은 날짜에 따라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해코지하는 귀신인 ‘손님’을 줄여 부른 것이다. 음력으로 1일과 2일은 동쪽, 3일과 4일은 남쪽, 5일과 6일은 서쪽, 7일과 8일은 북쪽에 있다가 나머지 이틀간(9일과 10일)동안은 하늘로 올라가서 사라진 뒤 11일에 다시 땅에 내려와 동쪽에 나타나는 등 10일 간격으로 돌아다닌다. 사람들은 손 있는 날이나 방위에 이사·혼인·집수리 등을 했다가는 큰 재앙을 당한다고 믿어왔다.

속칭 ‘손’을 『천기대요』에서는 태백살(太白殺)이라고 하는데 대례(大禮) 때 초례상을 차리는 방향을 피하는 정도로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17세기 초 『현풍곽씨언간(玄風郭氏諺簡)』에서 말[馬]을 보내는 날을 ‘손 없고 조용한 날’로 꼽고 있는 것을 봤을 때 오래 전부터 민간에서 행사 택일 시 손 없는 날을 두루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풍속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손 없는 날에 이사·혼인·개업·집수리·장 뜨기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도 좋다고 확장해서 인식하는 것이다. 손 없는 날은 순서대로 항상 반복되기 때문에 누구나 책력 없이도 쉽게 알 수 있어 민간에서 행사일을 잡는 데 널리 쓰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한다. 즉 손 없는 날도 장 담그는 날과 비슷한 변화, 즉 단순·규칙화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다.

길흉화복을 나타내는 점복·주술·금기·무속이야말로 인간의 감정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문화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길흉화복에 가장 집착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날의 길흉을 가리는 택일 풍속에는 한국인 고유의 신앙심과 인식구조가 꾸밈없이 함축되어 있으며, 한국인의 진솔한 삶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택일 풍속도 비록 모습이 크게 달라졌지만 지금도 한국인의 생활 속에서 꾸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역사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서미마을에서는 화(火)일에 초가지붕을 이면 불이난다고 해서 반드시 이날을 피해 지붕을 이었으며, 구들장을 뜯어서 안의 재를 후벼내고 구들을 새로 놓는 날은 매년 음력 7월 공망일에 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 새마을사업으로 지붕 개량을 하고 보일러를 설치하면서 이런 택일 풍속도 사라졌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주거환경이 바뀜에 따라 택일 풍속이 소멸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예전에는 담장을 고치고 벽에 황토를 바르고 못을 치는 것도 공망일에 손 없는 방향에 했는데 지금은 가리지 않는다. 마을 안에서 이사를 할 때도 대주(大主)의 사주를 넣어서 꼭 이삿날을 받아 했으며 이사방위도 반드시 가렸다. 그래서 이사를 가려고 집을 샀다가도 이삿날이 나오지 않아 해를 넘겨 이사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굳이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제주도에서도 초가지붕을 갈아 덮는 데는 택일을 받아서 하고, 되도록 천화일(天火日: 자子․오午․묘卯․유酉일)을 피하고 만약 천화일을 무시하고 지붕을 손보았다가는 집안이 화를 입게 된다는 속신이 지켜지고 있다. 10월에 ‘대액막이’ 굿을 할 때도 택일을 받아 하는 수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택일 관행이 많이 사라졌다.

참고문헌

‘날가림’ 관습으로 본 가정신앙의 역사성 (안혜경, 한국의 가정신앙­상, 민속원, 2005)
역서류를 통해 본 택일문화의 변화 (김만태, 민속학연구 20, 국립민속박물관, 2007)
한국 택일 풍속의 전승양상과 특징 (김만태, 정신문화연구 32-1, 한국중앙연구원, 2009)
한국 사주 명리의 활용양상과 인식체계 (김만태, 안동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