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천제단(太白山 天祭壇)

태백산천제단

한자명

太白山 天祭壇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장소

집필자 김도현(金道賢)

정의

천제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 태백산 정상에 있으며, 소재지는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산 80 및 혈동 산87-2이다. 장군단, 하단과 함께 1991년 10월 23일에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천제단(天祭壇)은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3기의 제단 가운데 하나로, 장군단과 하단의 중간에 있는 해발 1,560m의 봉우리에 위치한 중심 제단이다.천제단은 규모 면에서 여느 단과 달리 월등히 크며, 아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 태백천왕당(太伯天王堂)․신사(神祠)․태백산사(太白山祠)․천왕당(天王堂)․태백신사(太白神祠)․태백사(太白祠)․천왕사(天王祠)․태백당(太白堂)․구령탑등으로 일컫기도 하였다.

기록 (시기) 제당·제의·제관 명칭 제사 일시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지(祭祀志) 중사(中祀)
『고려사(高麗史)』열전(列傳) 김방경(金方慶) (1283) 태백산제고사 (太白山祭告使)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태백천왕당 (太伯天王堂) 봄·가을
『세조실록(世祖實錄)』 세조(世祖) 2년(1456) 3월 28일 신사(神祠)
성현(成俔)의『 허백당집(虛白堂集)』 신당퇴우설(神堂退牛說) 태백산에 당이 있다. 4월 8일 강림, 5월 5일 태백산으로 돌아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강원도(江原道)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사묘(祠廟) 태백산사(太白山祠) 천왕당(天王堂) 봄·가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慶尙道) 봉화현(奉化縣) 역원(驛院) 태백산제(太白山祭)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 (1625년 경상도 관찰사 김치(金緻) 재위 시기) 태백신사(太白神祠)
허목(許穆)의『 미수기언(眉叟記言)』(1595∼1682) 태백사(太白祠)
허목(許穆)의『 척주지(陟州誌)』(1595∼1682) 천왕사(天王祠)
강재항(姜再恒)의「 황지기(黃池記)」(1719) 태백신사(太白神祠)
이인상(李麟祥)의「 유태백산기(遊太白山記)」(1736) 천왕당(天王堂, 천왕 모심, 천왕신도 언급), 석불도 모심
심의승(沈宜昇)의『 삼척군지(三陟郡誌)』(1916) 태백당(太白堂)
사건번호 소화16년형제936호(事件番號 昭和16年刑第936號)(1938) 구령탑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1942) 태백당(太白堂)

역대 기록에 나타난 태백산 관련 제당 명칭

태백천왕당ㆍ천왕당ㆍ천왕사ㆍ구령탑이라는 명칭은 모시는 신령(神靈)을 모두 천신(天神)․천왕(天王)으로 보는 호칭이며, 구령탑은 천(天)의 9개 분야(分野)인 구천(九天)에서 유래한다. 신사(神祠)ㆍ태백산사(太白山祠)ㆍ태백신사(太白神祠)ㆍ태백사(太白祠)는 태백산의 신령을 위하는 사당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후대에 일부에서 부르는 마고탑은 태초(太初)에 천지를 이룩한 거인 할머니가 쌓은 탑이라는 의미로서 천지가 시작된 공간임을 암시한다.

1736년에 쓴 이인상(李麟祥)의 「유태백산기(遊太白山記)」에 당시 태백산 천왕당(天王堂)에 대하여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 천왕당에 도착했다. 통금시간까지 도착하기로 약정했는데 드디어 60리 길을 걸어온 것이다. 천왕당 서쪽 당에는 석불이 있고 동쪽 당에는 나무상이 있는데 이것을 이른바 천왕이라고 한다. …

이 자료는 당시 천왕당이 당집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천왕당에 석불(石佛)과 함께 천왕이라 불리는 나무상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천왕당에서의 종교 의례가 불교와 민간신앙이 공존하는 형태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1953년 사진 자료에 따르면 제단의 돌이 흐트러져 방추형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후 정비하여 현재의 형태를 갖추었다. 현재 제단은 자연석 편마암으로 쌓았으며 둘레 27.5m, 높이 2.4m, 폭은 좌우 7.4m, 전후 8.4m의 약간 타원형을 이룬 원형제단이다. 남쪽으로만 계단이 설치되었고 석단 상부에는 제단이 설치되었다. 제단의 앞면 축대에는 「천제단 대종교태백지사근제(天祭壇 大倧敎太白支司謹製)」라 새긴 글이 남아 있다. 제단 위에는 높이 76㎝, 폭 40㎝, 두께 30㎝ 정도의 「한배검」이란 비가 있다.

그리고 태백산 천제단과 장군단 일원에서 2000년 4월 9일 신인수에 의하여 쇠말 네 점이 수습되어, 2000년 11월 30일 국가에 귀속된 후,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네 점 모두 말의 등에 안장이 놓여지고 한 개를 제외하고 꼬리 쪽에 말띠꾸미개가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현재 태백산 정상부 바로 아래에 있는 망경사(望鏡寺) 옆 산기슭에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되는 석불과 대좌가 파손된 채 발견되었다. 심의승(沈宜昇)의 『삼척군지(三陟郡誌)』와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의 기록을 종합하면 망경사 터에 태백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에 망경사 옆에서 발견된 석불과 대좌가 당시 태백당(천왕당)에 모셔졌던 석불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장군단(將軍壇)은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3기의 제단 가운데 하나로 중앙에 위치한 천제단에서 북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다. 지도상에서 해발 1,566m의 「태백산」이라 표기되어 있는 봉우리가 장군단이 있는 지점이다.

유일사 방향에서 등산하면 세 개의 제단 중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단이다. 제단의 높이는 약 2.9m이고, 둘레는 약 20m로 장방형이며 편마암으로 축조하였다.
남쪽으로만 계단을 설치하였고, 내부의 중앙에 70㎝ 정도의 제단을 쌓았다. 제단 내에는 자연석을 세워 놓았다. 장군단의 신격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단(下壇)은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3기의 제단 중 하나로, 천제단 남쪽 언덕 아래로 0.2㎞ 지점에 있다. 부소단(夫蘇壇) 또는 구을단(丘乙壇)으로도 불린다.

별도로 지내는 제는 없으며, 북쪽으로만 계단이 없고 나머지 세 방향에는 모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제단 꼭대기의 북쪽 면에 45㎝가량의 자연석을 세워 놓았다.
현재의 모습은 최근에 정비한 것으로 단의 총 높이는 약 190㎝, 폭은 약 510㎝×410㎝이다.

태백산 정상에서 500m쯤 아래에 망경사라는 사찰이 있고, 여기에 용정(龍井)이 있어 옛날부터 천제에 올릴 제수(祭需) 준비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망경사 부근에는 ‘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비(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碑)’라는 명문이 새겨진 단종비각(端宗碑閣)이 세워져 있다. 1950년대 중반에 한 무녀의 꿈에 단종이 태백산신으로 현몽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는 18세기부터 단종이 사후 태백산신으로 좌정하였다는 믿음이 태백산 주변을 비롯해 영월 지역 주민들과 무당들 사이에 뿌리 내렸다는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 준다.

현재 태백산 내의 신앙 공간을 크게 정리하면 당골 입구에 있는 서낭당[부정당으로 여김]에서 시작하여 장승거리, 반재, 망경사 입구에 있는 서낭당을 지나 망경사와 용경, 단종비각, 천제단, 장군단, 하단을 거쳐 문수봉에 이르는 넓은 영역이 신성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천제를 위한 실제 종교 공간은 망경사 입구에 있는 서낭당 터부터라고 하며, 여기서부터는 근신하여야 한다.

그리고 대종교 종단은 1987년에 지역 유지들과 제휴하여 당골에 단군성전을 건립하면서 태백 지역 주민들과 함께한 천제에서 분리되어 자체 건립한 단군성전에서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역사

태백산의 영역은 태백산 봉우리를 포함하여 주변의 문수봉ㆍ함백산(크고 작은 작약봉)ㆍ창옥산ㆍ천의봉ㆍ상대봉ㆍ장산ㆍ금대봉ㆍ연화봉 등을 모두 포함하는 폭넓은 권역이다. 동쪽으로 우보산과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는 충북 단양군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금대봉을 경계로 하며, 남쪽으로는 경상도 순흥부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권을 중심으로 설정하여도 태백산 권역은 강원도 영동 남부지역과 경북 북부지방, 충청도를 아우르는 매우 넓은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태백산에서의 제사는 신라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 차원이든 개인 차원이든 꾸준히 이어져 왔으며, 제의를 주관한 주체나 형식은 시대에 따라 달리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국토 방위를 위하여 다섯 곳에 중사(中祀)를 설치하였다. 이 가운데 태백산이 중사에 속했음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김방경의 아들 김순을 태백산제를 지내기 위한 외산제고사(外山祭告使)로 파견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 봉화현 역원조에 기재된 도심역 관련 내용을 분석해보면 고려의 사전에 태백산제가 공식적으로 등재되지 않았지만 김순에 의한 1회성 태백산제가 아니라 태백산제를 위해 파견된 관리들을 위해 상설역인 도심역을 설치하였다는 것은 고려시대에 태백산제를 지속적으로 설행하였고, 이는 고려시대에도 태백산을 국가제사를 위한 제장으로 여겼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세조대에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가 태백산을 동진으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후 태백산에서 비록 국가제사를 지내지 않았지만 민간에서 태백산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고, 이에 따라 지방 관청과 무당들이 백성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현의 『허백당집(虛白堂集)』등을 보았을 때 조선시대 태백산에서의 제사는 일정 부분을 향리들이 주도하면서, 백성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한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조선시대 때 태백산에 설치된 제당을 ‘태백천왕당․천왕당․천왕사’라 하였다는 것은 천왕신(天王神)을 모신 제의가 행해졌음을 보여 준다. 이와 함께 각종 기록을 종합하면 태백산사는 천왕당(天王堂)이고, 태백사는 천왕사(天王祠)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태백산사나 태백사 등으로 불리는 제당에서도 천왕신을 모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태백산과 함께 인근에 있는 삼척의 근산사(近山祠)를 천왕을 모신 천왕당(天王堂)이라 하였으며, 현재 충청북도 속리산에도 천왕사(天王祠)가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태백산 천왕당에서 모신 천왕을 천신(天神)으로 볼 것인지, 산신(山神)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천왕은 지역이나 제당에 따라 산신이나 천신으로 비정될 수 있으며, 사전에서는 그 의미를 ‘불교에서 욕계나 색계 따위의 온갖 하늘의 임금, 역사적으로 상고(上古)시대에 수호신을 이르던 말, ‘환웅’을 높여 이르던 말, ‘해모수’를 높여 이르던 말, 중국에서 천자를 이르던 말’로 설명되어 있다.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천왕지신(天王地神)’이란 표현이 나온다. 이는 도교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고려시대에 왕실에서 외산제고사를 파견하여 태백산제를 지낼 때 모신 신령은 산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18세기부터 단종이 사후 태백산신으로 좌정하였다는 믿음이 태백산 주변 및 영월 지역 주민과 무당들 사이에 뿌리내렸으며, 단종대왕을 천왕으로 여기는 사례가 없다는 사실은 태백산신과 천왕을 별개로 여겨야 함을 보여 준다. 이와 함께 1735~1737년에 기록된 이인상의 「유태백산기」에 천왕신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당시 태백산 천왕당[태백당]에서 모신 천왕을 천신으로 보아야 할 가능성을 좀 더 높여 준다.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한 경상좌도 의병장 유종개를 비롯하여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의병운동이나 동학을 비롯한 신종교의 신자들 및 이들을 지도하는 사람들이 태백산에 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수련 활동 또는 독립을 기원하기 위해 태백산에 제단을 차리거나, 탑을 쌓은 뒤 하늘에 제사를 지낸 예를 많이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동학에서 강원도를 기반으로 한 동학교단 재건활동의 효시여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게 된 49일 수련법은 이곳 태백산 자락에서 처음 시작되어 동학의 공식적인 수련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37년에는 태극교도(천지중앙 명류도)들이 조선의 독립을 기원하기 위해 태백산 정상에 구령탑을 쌓은 후, 1938년 6월 15일(음력 5월 7일) 이튿날 독립 기원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 때 28수기(宿旗)를 비롯한 각종 깃발과 제단을 준비하여 천제를 지냈다.

1949년 기록에도 태백산에서 10월 3일 자시(子時)를 기해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왕당에서 천제를 거행하였다. 이때 중앙에는 태극기, 중간에는 칠성기(七星旗)와 현무기(玄武旗)를 각각 꽂고 주변에 33천기와 28수기를 배치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태백산에서 국가제사를 지낸 전통과 함께 민간인이 많이 찾은 종교적 성소이면서 의병운동과 신종교 활동을 한 단체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광복 이후에는 대종교 교인들이 태백산 정상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지금은 태백산천제위원회가 결성되어 1987년부터 매년 10월 3일에 천제를 지낸다.

의의

태백산에서 천제를 지내거나 태백산신을 모신 전통은 태백산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어, 태백산에서 제사를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백산 줄기가 내려온 산봉우리나 능선 아래에 상당으로 여기는 천제단(천제당 또는 천지단)을 마을 단위로 만들어 천제를 지내는 것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즉 많은 마을에서 태백산과 관련한 당신화가 만들어져 단군을 모시거나 천제를 지내는 예를 발견할 수 있으며, 태백산신령을 마을 제당의 주신(主神)으로 모셔서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마을 또한 많다.

이들 마을에서는 천신을 자연신으로 인식하면서 마을신으로 모시는 서낭신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닌 신령으로 여기고 기우제를 지낼 때 모시거나 거리고사를 지낼 때 상당신으로 모신다.

태백산에서 설행된 신앙 의례와 함께 사길령 산령각 중수기 등으로 보아 전국을 무대로 활동한 보부상들이 이곳 태백산을 백두대간을 통한 전근대 교역의 중심지로 여겼다는 점 또한 태백산과 천제단이 지닌 매우 중요한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참조

태백산 천제

참고문헌

南冥先生別集, 昭和 十六年 刑公 第 310號 (事件番號 昭和16年刑第936號, 遊太白山記, 遊黃池記, 立齋遺稿, 崔先生文集道源記書, 姜時元), 秋江集, 虛白堂集, 강원도 영동 남부지역 고을 및 마을신앙 (김도현,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1880), 태백산 천제의 역사와 의례 (김도현, 역사민속학 31, 한국역사민속학회, 1993), 국립춘천박물관 (국립춘천박물관, 1995), 한국의 마을제당-강원도 (국립민속박물관, 1997), 문화재대관-중요민속자료 1-신앙·생활자료 (문화재청, 2002), 사료로 읽는 태백산과 천제 (김도현, 강원도민일보ㆍ강원도ㆍ태백시, 2009), 함백산 절골 천제당 운영 양상과 그 성격 (김도현, 강원문화연구 30, 강원대학교 강원문화연구소, 2009), 태백시 문화유적 분포지도 (태백시·예맥문화재연구원, 2009),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조선총독부, 2009), 고대 한국의 국가와 제사 (최광식, 한길사, 2009)

태백산천제단

태백산천제단
한자명

太白山 天祭壇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장소

집필자 김도현(金道賢)

정의

천제를 지내기 위해 만든 제단. 태백산 정상에 있으며, 소재지는 강원도 태백시 소도동 산 80 및 혈동 산87-2이다. 장군단, 하단과 함께 1991년 10월 23일에 ‘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천제단(天祭壇)은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3기의 제단 가운데 하나로, 장군단과 하단의 중간에 있는 해발 1,560m의 봉우리에 위치한 중심 제단이다.천제단은 규모 면에서 여느 단과 달리 월등히 크며, 아래 표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 태백천왕당(太伯天王堂)․신사(神祠)․태백산사(太白山祠)․천왕당(天王堂)․태백신사(太白神祠)․태백사(太白祠)․천왕사(天王祠)․태백당(太白堂)․구령탑등으로 일컫기도 하였다.

기록 (시기) 제당·제의·제관 명칭 제사 일시 『삼국사기(三國史記)』 제사지(祭祀志) 중사(中祀) 『고려사(高麗史)』열전(列傳) 김방경(金方慶) (1283) 태백산제고사 (太白山祭告使)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태백천왕당 (太伯天王堂) 봄·가을 『세조실록(世祖實錄)』 세조(世祖) 2년(1456) 3월 28일 신사(神祠) 성현(成俔)의『 허백당집(虛白堂集)』 신당퇴우설(神堂退牛說) 태백산에 당이 있다. 4월 8일 강림, 5월 5일 태백산으로 돌아감.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강원도(江原道) 삼척도호부(三陟都護府) 사묘(祠廟) 태백산사(太白山祠) 천왕당(天王堂) 봄·가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경상도(慶尙道) 봉화현(奉化縣) 역원(驛院) 태백산제(太白山祭) 정약용(丁若鏞)의『 목민심서(牧民心書)』 (1625년 경상도 관찰사 김치(金緻) 재위 시기) 태백신사(太白神祠) 허목(許穆)의『 미수기언(眉叟記言)』(1595∼1682) 태백사(太白祠) 허목(許穆)의『 척주지(陟州誌)』(1595∼1682) 천왕사(天王祠) 강재항(姜再恒)의「 황지기(黃池記)」(1719) 태백신사(太白神祠) 이인상(李麟祥)의「 유태백산기(遊太白山記)」(1736) 천왕당(天王堂, 천왕 모심, 천왕신도 언급), 석불도 모심 심의승(沈宜昇)의『 삼척군지(三陟郡誌)』(1916) 태백당(太白堂) 사건번호 소화16년형제936호(事件番號 昭和16年刑第936號)(1938) 구령탑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 (1942) 태백당(太白堂)

역대 기록에 나타난 태백산 관련 제당 명칭

태백천왕당ㆍ천왕당ㆍ천왕사ㆍ구령탑이라는 명칭은 모시는 신령(神靈)을 모두 천신(天神)․천왕(天王)으로 보는 호칭이며, 구령탑은 천(天)의 9개 분야(分野)인 구천(九天)에서 유래한다. 신사(神祠)ㆍ태백산사(太白山祠)ㆍ태백신사(太白神祠)ㆍ태백사(太白祠)는 태백산의 신령을 위하는 사당이란 뜻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후대에 일부에서 부르는 마고탑은 태초(太初)에 천지를 이룩한 거인 할머니가 쌓은 탑이라는 의미로서 천지가 시작된 공간임을 암시한다.

1736년에 쓴 이인상(李麟祥)의 「유태백산기(遊太白山記)」에 당시 태백산 천왕당(天王堂)에 대하여 간단하게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 천왕당에 도착했다. 통금시간까지 도착하기로 약정했는데 드디어 60리 길을 걸어온 것이다. 천왕당 서쪽 당에는 석불이 있고 동쪽 당에는 나무상이 있는데 이것을 이른바 천왕이라고 한다. …

이 자료는 당시 천왕당이 당집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천왕당에 석불(石佛)과 함께 천왕이라 불리는 나무상이 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당시 천왕당에서의 종교 의례가 불교와 민간신앙이 공존하는 형태로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1953년 사진 자료에 따르면 제단의 돌이 흐트러져 방추형을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후 정비하여 현재의 형태를 갖추었다. 현재 제단은 자연석 편마암으로 쌓았으며 둘레 27.5m, 높이 2.4m, 폭은 좌우 7.4m, 전후 8.4m의 약간 타원형을 이룬 원형제단이다. 남쪽으로만 계단이 설치되었고 석단 상부에는 제단이 설치되었다. 제단의 앞면 축대에는 「천제단 대종교태백지사근제(天祭壇 大倧敎太白支司謹製)」라 새긴 글이 남아 있다. 제단 위에는 높이 76㎝, 폭 40㎝, 두께 30㎝ 정도의 「한배검」이란 비가 있다.

그리고 태백산 천제단과 장군단 일원에서 2000년 4월 9일 신인수에 의하여 쇠말 네 점이 수습되어, 2000년 11월 30일 국가에 귀속된 후,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네 점 모두 말의 등에 안장이 놓여지고 한 개를 제외하고 꼬리 쪽에 말띠꾸미개가 간략하게 표현되었다.

현재 태백산 정상부 바로 아래에 있는 망경사(望鏡寺) 옆 산기슭에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되는 석불과 대좌가 파손된 채 발견되었다. 심의승(沈宜昇)의 『삼척군지(三陟郡誌)』와 조선총독부에서 펴낸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의 기록을 종합하면 망경사 터에 태백당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에 망경사 옆에서 발견된 석불과 대좌가 당시 태백당(천왕당)에 모셔졌던 석불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장군단(將軍壇)은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3기의 제단 가운데 하나로 중앙에 위치한 천제단에서 북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있다. 지도상에서 해발 1,566m의 「태백산」이라 표기되어 있는 봉우리가 장군단이 있는 지점이다.

유일사 방향에서 등산하면 세 개의 제단 중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단이다. 제단의 높이는 약 2.9m이고, 둘레는 약 20m로 장방형이며 편마암으로 축조하였다.
남쪽으로만 계단을 설치하였고, 내부의 중앙에 70㎝ 정도의 제단을 쌓았다. 제단 내에는 자연석을 세워 놓았다. 장군단의 신격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단(下壇)은 태백산 정상에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3기의 제단 중 하나로, 천제단 남쪽 언덕 아래로 0.2㎞ 지점에 있다. 부소단(夫蘇壇) 또는 구을단(丘乙壇)으로도 불린다.

별도로 지내는 제는 없으며, 북쪽으로만 계단이 없고 나머지 세 방향에는 모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제단 꼭대기의 북쪽 면에 45㎝가량의 자연석을 세워 놓았다.
현재의 모습은 최근에 정비한 것으로 단의 총 높이는 약 190㎝, 폭은 약 510㎝×410㎝이다.

태백산 정상에서 500m쯤 아래에 망경사라는 사찰이 있고, 여기에 용정(龍井)이 있어 옛날부터 천제에 올릴 제수(祭需) 준비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망경사 부근에는 ‘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비(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碑)’라는 명문이 새겨진 단종비각(端宗碑閣)이 세워져 있다. 1950년대 중반에 한 무녀의 꿈에 단종이 태백산신으로 현몽하여 세웠다고 한다. 이는 18세기부터 단종이 사후 태백산신으로 좌정하였다는 믿음이 태백산 주변을 비롯해 영월 지역 주민들과 무당들 사이에 뿌리 내렸다는 사실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 준다.

현재 태백산 내의 신앙 공간을 크게 정리하면 당골 입구에 있는 서낭당[부정당으로 여김]에서 시작하여 장승거리, 반재, 망경사 입구에 있는 서낭당을 지나 망경사와 용경, 단종비각, 천제단, 장군단, 하단을 거쳐 문수봉에 이르는 넓은 영역이 신성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천제를 위한 실제 종교 공간은 망경사 입구에 있는 서낭당 터부터라고 하며, 여기서부터는 근신하여야 한다.

그리고 대종교 종단은 1987년에 지역 유지들과 제휴하여 당골에 단군성전을 건립하면서 태백 지역 주민들과 함께한 천제에서 분리되어 자체 건립한 단군성전에서 의식을 거행하고 있다.

역사

태백산의 영역은 태백산 봉우리를 포함하여 주변의 문수봉ㆍ함백산(크고 작은 작약봉)ㆍ창옥산ㆍ천의봉ㆍ상대봉ㆍ장산ㆍ금대봉ㆍ연화봉 등을 모두 포함하는 폭넓은 권역이다. 동쪽으로 우보산과 경계를 이루며, 서쪽으로는 충북 단양군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금대봉을 경계로 하며, 남쪽으로는 경상도 순흥부에 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문화권을 중심으로 설정하여도 태백산 권역은 강원도 영동 남부지역과 경북 북부지방, 충청도를 아우르는 매우 넓은 지역으로 인식되었다.

태백산에서의 제사는 신라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가 차원이든 개인 차원이든 꾸준히 이어져 왔으며, 제의를 주관한 주체나 형식은 시대에 따라 달리 나타남을 알 수 있다. 신라시대에는 국토 방위를 위하여 다섯 곳에 중사(中祀)를 설치하였다. 이 가운데 태백산이 중사에 속했음은 『삼국사기』를 비롯한 각종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김방경의 아들 김순을 태백산제를 지내기 위한 외산제고사(外山祭告使)로 파견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 봉화현 역원조에 기재된 도심역 관련 내용을 분석해보면 고려의 사전에 태백산제가 공식적으로 등재되지 않았지만 김순에 의한 1회성 태백산제가 아니라 태백산제를 위해 파견된 관리들을 위해 상설역인 도심역을 설치하였다는 것은 고려시대에 태백산제를 지속적으로 설행하였고, 이는 고려시대에도 태백산을 국가제사를 위한 제장으로 여겼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세조대에 집현전 직제학 양성지가 태백산을 동진으로 지정해 줄 것을 건의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후 태백산에서 비록 국가제사를 지내지 않았지만 민간에서 태백산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컸고, 이에 따라 지방 관청과 무당들이 백성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현의 『허백당집(虛白堂集)』등을 보았을 때 조선시대 태백산에서의 제사는 일정 부분을 향리들이 주도하면서, 백성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한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조선시대 때 태백산에 설치된 제당을 ‘태백천왕당․천왕당․천왕사’라 하였다는 것은 천왕신(天王神)을 모신 제의가 행해졌음을 보여 준다. 이와 함께 각종 기록을 종합하면 태백산사는 천왕당(天王堂)이고, 태백사는 천왕사(天王祠)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태백산사나 태백사 등으로 불리는 제당에서도 천왕신을 모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태백산과 함께 인근에 있는 삼척의 근산사(近山祠)를 천왕을 모신 천왕당(天王堂)이라 하였으며, 현재 충청북도 속리산에도 천왕사(天王祠)가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태백산 천왕당에서 모신 천왕을 천신(天神)으로 볼 것인지, 산신(山神)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여기서 천왕은 지역이나 제당에 따라 산신이나 천신으로 비정될 수 있으며, 사전에서는 그 의미를 ‘불교에서 욕계나 색계 따위의 온갖 하늘의 임금, 역사적으로 상고(上古)시대에 수호신을 이르던 말, ‘환웅’을 높여 이르던 말, ‘해모수’를 높여 이르던 말, 중국에서 천자를 이르던 말’로 설명되어 있다. 또한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천왕지신(天王地神)’이란 표현이 나온다. 이는 도교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이해된다.

고려시대에 왕실에서 외산제고사를 파견하여 태백산제를 지낼 때 모신 신령은 산신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18세기부터 단종이 사후 태백산신으로 좌정하였다는 믿음이 태백산 주변 및 영월 지역 주민과 무당들 사이에 뿌리내렸으며, 단종대왕을 천왕으로 여기는 사례가 없다는 사실은 태백산신과 천왕을 별개로 여겨야 함을 보여 준다. 이와 함께 1735~1737년에 기록된 이인상의 「유태백산기」에 천왕신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당시 태백산 천왕당[태백당]에서 모신 천왕을 천신으로 보아야 할 가능성을 좀 더 높여 준다.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한 경상좌도 의병장 유종개를 비롯하여 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전후하여 의병운동이나 동학을 비롯한 신종교의 신자들 및 이들을 지도하는 사람들이 태백산에 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거나, 수련 활동 또는 독립을 기원하기 위해 태백산에 제단을 차리거나, 탑을 쌓은 뒤 하늘에 제사를 지낸 예를 많이 확인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보면 동학에서 강원도를 기반으로 한 동학교단 재건활동의 효시여서 매우 중요하게 여기게 된 49일 수련법은 이곳 태백산 자락에서 처음 시작되어 동학의 공식적인 수련법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37년에는 태극교도(천지중앙 명류도)들이 조선의 독립을 기원하기 위해 태백산 정상에 구령탑을 쌓은 후, 1938년 6월 15일(음력 5월 7일) 이튿날 독립 기원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 때 28수기(宿旗)를 비롯한 각종 깃발과 제단을 준비하여 천제를 지냈다.

1949년 기록에도 태백산에서 10월 3일 자시(子時)를 기해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왕당에서 천제를 거행하였다. 이때 중앙에는 태극기, 중간에는 칠성기(七星旗)와 현무기(玄武旗)를 각각 꽂고 주변에 33천기와 28수기를 배치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태백산에서 국가제사를 지낸 전통과 함께 민간인이 많이 찾은 종교적 성소이면서 의병운동과 신종교 활동을 한 단체들의 주요 활동무대였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 준다. 광복 이후에는 대종교 교인들이 태백산 정상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지금은 태백산천제위원회가 결성되어 1987년부터 매년 10월 3일에 천제를 지낸다.

의의

태백산에서 천제를 지내거나 태백산신을 모신 전통은 태백산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어, 태백산에서 제사를 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백산 줄기가 내려온 산봉우리나 능선 아래에 상당으로 여기는 천제단(천제당 또는 천지단)을 마을 단위로 만들어 천제를 지내는 것도 많이 확인할 수 있다. 즉 많은 마을에서 태백산과 관련한 당신화가 만들어져 단군을 모시거나 천제를 지내는 예를 발견할 수 있으며, 태백산신령을 마을 제당의 주신(主神)으로 모셔서 마을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마을 또한 많다.

이들 마을에서는 천신을 자연신으로 인식하면서 마을신으로 모시는 서낭신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닌 신령으로 여기고 기우제를 지낼 때 모시거나 거리고사를 지낼 때 상당신으로 모신다.

태백산에서 설행된 신앙 의례와 함께 사길령 산령각 중수기 등으로 보아 전국을 무대로 활동한 보부상들이 이곳 태백산을 백두대간을 통한 전근대 교역의 중심지로 여겼다는 점 또한 태백산과 천제단이 지닌 매우 중요한 기능이라고 볼 수 있다.

참조

태백산 천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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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 천제의 역사와 의례 (김도현, 역사민속학 31, 한국역사민속학회,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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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읽는 태백산과 천제 (김도현, 강원도민일보ㆍ강원도ㆍ태백시,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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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시 문화유적 분포지도 (태백시·예맥문화재연구원,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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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의 국가와 제사 (최광식, 한길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