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신(厕神)

측신

한자명

厕神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신격

집필자 김명자(金明子)

정의

뒷간, 변소에 있는 가신(家神). 측간신, 뒷간귀신, 측도부인, 측신각시, 치귀, 정낭각시, 부출각시, 통시각시, 구릉장군, 똥장군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측신은 머리가 쉰댓 자나 되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여신(女神)으로, 신체(神體)가 없는 건궁이다.

내용

성정(性情)이 사납다는 측신의 유래담은 제주도 무속신화 <문전본풀이>에 나온다. <문전본풀이>는 제주도 무당굿에서 심방(무당)이 노래하는 문신(門神)의 신화 또는 그 신화를 노래하고 문신에게 기원하는 제차(祭次)를 일컫는다. 제주도지역의 집안에서 하는 굿에는 반드시 이 <문전본풀이>가 들어간다. 이는 문신의 내력담일 뿐만 아니라 조왕, 측간신, 주목지신, 오방토신 등의 내력담이기도 하다. 이들 신 중 문신이 가장 상위의 신이어서 <문전본풀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옛날에 남선고을의 남선비와 여산고을의 여산부인이 부부가 되어 살았다. 집안이 가난하여 살림이 궁한데 아들이 일곱형제나 태어났다. 여산부인은 살아갈 궁리를 하다가 남편에게 무곡(貿穀) 장사를 하도록 권했다. 남선비는 부인의 말대로 배 한 척을 마련하고 남선고을을 떠났다. 배는 오동나라에 닿았다. 오동나라 오동고을에는 간악하기로 소문난 노일제대귀일의 딸이 있었다. 귀일의 딸은 남선비의 소식을 듣고 선창가로 달려와 남선비를 유혹했다. 홀림에 빠진 남선비는 장기판을 벌여놓고 내기를 시작했다. 결국 남선비는 배도 팔고 쌀을 살 돈도 모조리 빼앗겼다. 오도 가도 못한 남선비는 귀일의 딸을 첩으로 삼아 끼니를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 이 집에서 남선비는 첩이 끓여준 겨죽을 먹으며 연명하다 눈마저 어두워졌다.

한편 여산부인은 남편이 돈을 벌어오기를 기다리다가 소식이 없자 아들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배를 한 척 지어주면 아버지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아들들이 배를 지어 내놓자 이 배를 타고 남선고을을 떠났다. 배가 오동나라에 닿자 여산부인은 오동나라의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기장밭에서 새 쫓는 아이의 도움으로 남편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은 돌쩌귀에 거적문을 단 움막에 앉아 겨죽을 먹으며 살고 있었다. 여산부인이 사정을 하여 들어갔으나 눈이 어두운 남선비는 부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겨우 허락을 받아 들어간 여산부인은 겨죽이 눌어붙은 솥을 씻고 쌀밥을 지어 남선비에게 들고 갔다. 남선비는 첫술을 뜨고는 눈물을 흘렸다. 부인이 찾아왔음을 겨우 안 남선비는 부인의 손목을 잡고 만단정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귀일의 딸이 들어와서 야단을 치다가 본처가 찾아온 것을 알고는 어리광을 부려가며 큰부인으로 대접하였다. 그러면서 우선 더운데 목욕이나 하고 와서 놀자고 꼬드겼다. 귀일의 딸은 여산부인과 목욕하러 가서 등을 밀어주는 척하다가 여산부인을 물속으로 밀어 넣어 죽였다. 그러고는 남선비에게 돌아와 큰부인인 체하며, “노일제대귀일의 딸의 행실이 괘씸하기에 죽였다.”고 하였다. 이 말을 곧이들은 남선비는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남선비와 귀일의 딸은 남선고을로 향했다. 일곱 형제가 마중나와서 보니 아무래도 친어머니 같지가 않았다. 앞장서서 가는 어머니는 길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고, 집에 와서도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들들의 의심은 날로 깊어갔다. 눈치를 챈 귀일의 딸은 일곱 형제를 죽일 계략을 꾸몄다. 우선 배가 아파 죽어가는 시늉을 하면서 당황해하는 남편에게 점을 쳐 보도록 했다. 남편이 점을 치러 나가니 귀일의 딸은 지름길로 달려가 점쟁이인 척하면서 기다리다가 남편에게 일곱 형제의 간을 먹어야 낫겠다고 말했다. 부인을 사랑하는 남편은 “아들이야 다시 낳으면 된다.”는 부인의 말을 듣고 칼을 갈았다. 이것을 알아차린 똑똑한 막내아들이 아버지 대신 형들의 간을 내어 오겠다고 하고는 갈고 있는 칼을 받아서 형들과 같이 산으로 올라갔다. 도중에 지쳐 잠을 자는데 어머니 영혼이 꿈에 나타나 노루의 간을 내어 가라고 일러 주었다. 잠을 깨니 과연 노루새끼 일곱 마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노루는 산돼지의 간이 낫다면서 일러주고 꼬리를 끊어 형제들의 손에서 벗어났다. 이윽고 나타난 산돼지 여섯 마리를 잡아 간을 내고 계모에게 가져갔다. 계모는 먹는 체하며 간을 자리밑에 숨겼다. 문틈으로 엿보던 막내아들이 들어가 자리를 걷어치우자 형들도 왈칵 달려들었다.

흉계가 드러나자 귀일의 딸은 측간으로 도망가 목을 매어 죽어 측간신 측도부인(厠道婦人)이 되고, 남선비는 달아나다 정낭(집의 출입구에 대문 대신 걸쳐놓은 굵은 막대기)에 목이 걸려 숨져 주목지신(柱木之神)이 되었다. 일곱 형제는 서천 꽃밭에 가서 환생꽃을 얻어다가 물에 빠져 숨진 어머니를 살려 조왕신으로 앉혔다. 그런 뒤 일곱 형제는 각각 자기의 직분을 차지하여 신이 되었다. 첫째는 동방 청대장군, 둘째는 서방 백대장군, 셋째는 남방 적대장군, 넷째는 북방 흑대장군, 다섯째는 중앙 황대장군, 여섯째는 뒷문전(뒷문의 신), 영리한 막내는 일문전(앞쪽 문신)이 되었다.

이 신화에서 정실부인은 착하고 지혜로운 일곱 아들의 힘으로 살아나 부엌신인 조왕신으로 앉게 되었다. 그러나 첩은 어둡고 냄새나는 변소신인 측신이 되었다. 측신을 정낭각시라고도 하는 것은 <문전본풀이> 신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정낭은 제주도지역에서 집의 출입구에 대문 대신 걸쳐 놓은 굵은 막대기를 말하는데 남선비가 정낭에 목이 걸려 숨진다는 이야기에서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제주도의 다른 무속신화에는 첩이 변소로 도망가 겁에 질려 죽고 아비(남선비)도 겁이 나 도망치다가 올내청의 기둥에 걸려 죽는다는 내용도 있다. 이 신화에서 아들들은 노일제대귀일의 딸의 팔을 빼서 올내청의 쌀주머니를 만들고, 다리는 디딜방아를 만들고, 이빨은 주발을 만들고, 몸뚱이는 찢어서 바람에 날리게 하는 등 온몸을 해체한다. 귀일의 딸에게 살해된 어머니를 환생시키고 큰아들은 상정주(정주는 부엌), 둘째는 중정주, 셋째는 하정주, 넷째는 처신, 다섯째와 여섯째는 오방신장, 일곱째는 문전을 각각 차지한다. 환생한 어미(여산부인)는 조왕할망(조왕할멈)이 된다.

본풀이에서 신의 이름은 심방(무당)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문신의 이야기에도 막내아들이 문신(일문전)이 되었다고 하지만 어떤 심방은 아버지가 문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아버지는 문전신,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측신, 본부인은 부엌신, 일곱 아들은 칠성이 각각 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측신은 유래담에 나타나듯 악한 신이다.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 제5권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은 측신이 인간에게 화(禍)를 주는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도성(都城) 안에 명통사(明通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맹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들은 초하루와 보름에 한 번씩 모여 독경과 축수를 일삼았다. 그중 높은 사람은 당 안에 들어가고 낮은 사람은 문을 지킨다. 여러 문에 창을 벌여 놓아서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 서생이 몸을 솟구쳐 넘어 들어가서 대들보에 올라앉았다. 맹인이 조그만 종을 치는 것을 보고 서생이 종을 끌어올려 버리니 맹인은 종치는 방망이를 휘둘러 허공을 친다. 그런 뒤에 다시 종을 내려놓았다. 맹인이 손으로 만져보니 종이 여전히 있었다. 이렇게 하기를 서너 번 거듭하니 맹인이 말하기를 “당 안의 작은 종이 무엇인가에 끌려 올라간다.”고 하였다. 여러 맹인이 둘러앉아서 점을 쳤다. 한 맹인이 “이것은 벽 사이에 박쥐가 붙어서 그렇게 한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에 모두 일어나서 벽을 만져 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또 한 맹인이 “이것은 틀림없이 저녁 닭이 대들보 위에 앉아서 그런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맹인이 앞다투어 길다란 막대기로 대들보 위를 두들겼다. 서생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땅에 떨어졌다. 맹인들이 서생을 묶고 매질을 하였으므로 서생은 엉금엉금 기어서 돌아왔다.

이튿날 서생이 삼노끈 두어 가닥을 갖고 절에 가서 측간에 숨어 있으니 주맹인이 변소에 와서 웅크리고 앉는 것이었다. 서생이 갑자기 노끈으로 맹인의 양근(陽根)을 매어 당기니 맹인이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구원을 청했다. 여러 맹인이 앞다투어 와서 축원을 했다. “주사(主師)가 측귀에게 화를 입게 되었소.”라고 하였다. 혹은 이웃을 불러 약을 구하는 자가 있고, 혹은 북을 울리며 명을 비는 자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측신이 실제로 화를 준 것이 아니라 서생이 맹인 점복자를 골탕 먹이는 것인데 맹인 점복자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측신에게서 화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맹인 점복자를 대단히 폄하하고 점복을 풍자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는 성현이 성리학자로서 점복을 음사(陰祀)로 여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변소신을 ‘측귀(廁鬼)’라고 할 만큼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측신은 흔히 사납고 무서운 속성을 지닌 신으로 알려져 있다. 재래 변소는 어둡고 칙칙했다. 이런 곳에서 변을 당하면 살(煞)을 맞았다고 하여 불길하게 생각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변소에 빠지거나 거름통 또는 거름밭에 빠지면 떡을 찌고 간략하게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는 측신의 노여움을 경계하는 것이며, 오물독(汚物毒)을 제거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측신을 무작정 악신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무서운 속성을 지닌 귀신이기 때문에 변소의 살을 거두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처럼 신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모호하며 양면성이 있다.

강원도 측신각시는 언제나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있다가 갑자기 사람이 들어오면 놀란 나머지 머리카락으로 목을 조른다. 이때 얻은 병은 무당의 굿도 듣지 않아 결국 숨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뒷간에 가까이 갈 때에는 미리 헛기침을 해야 탈이 안 난다는 것이다. 한편 측신이 변소에 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월 6일, 16일, 26일 등 6의 날에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이날은 가능한 한 변소에 가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도 한다. 측신에 대한 이와 같은 생각은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어찌됐든 측신은 분명히 악신 쪽에 해당한다. 평생 ‘못된 짓’만 하다가 죽어 귀신이 된 존재로서 사나운 신이 될 소지는 충분하다.

측신은 비록 집안에 거주하는 신이지만 평소에는 대우를 하여 섬기지 않는다. 차례 때나 별식이 나면 간략하게 바치는 정도이다. 특히 떡과 같은 제물을 그릇에 담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떼어서’ 놓는 것이 보편적이다. 측신의 다른 명칭에 각시, 부인 등이 붙여진 것은 워낙 사나운 신이어서 해를 면하기 위해 우대하여 부르는 것이다. 또한 무속신화에 등장하는 내용에 따라 인격화하여 붙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출각시의 부출은 발로 디디고 앉아서 변을 보도록 변소 바닥 양쪽에 놓는 ‘부춛돌’에서 온 말이다.

변소에 빠지면 반드시 떡을 만들어 먹는다. 이는 인분의 독도 예방하고 측신을 잘 대접하여 피해를 막는다는 의미이다.

지역사례

강원도지역에서는 뒷간을 지으면 날을 받아 음식을 차리고 불을 밝힌 뒤 “탈 없도록 도와주소서.” 하고 빈다. 제주도지역에서는 돼지 돌림병이 돌 때 이같이 한다. 변소를 새로 지을 때에도 날을 잡으며 부춛돌을 함부로 옮기지 않는다. 흔히 음력 시월 상달고사 때 측신에게도 떡을 바치지만 각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떼어놓는 정도이다.

변소를 지을 때 택일하는 것은 제주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집 수리, 특히 변소를 고치는 일을 각별히 조심했다.

흔히 똥통에 빠지면 검은 콩밥을 해 먹고, 독이 오르면 보리 가시랭이를 태워 연기를 낸다. 어린아이가 빠지는 것은 측신이 밑에서 잡아당긴 탓이라고 여긴다. 이때는 쌀가루를 송편처럼 동그랗게 빚은 떡 백 개를 아이가 들고 “똥떡이오, 똥떡이오.”라고 외치며 이웃에 돌렸다. 이것은 결국 측신을 의식하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지역에서는 측신을 측도부인, 측시부인이라고도 한다. 이 신에 대한 의례는 변소에 기르는 돼지가 흉보였다거나 ‘변소동티’가 났다는 점괘가 내린 때가 아니라면 별로 하지 않는다. 또한 아이가 뒷간 바닥에 떨어지면 얼이 나갔다고 여겨서 ‘넋들이기’를 하였다. 부춛돌 옆에 물 한 바가지를 떠 놓고 아이 머리에 물을 찍어 발라서 두드리면 넋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호남지방에서는 6일, 16일, 26일 등 측신이 변소에 머무르고 있는 날, 변소에 가서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여 불경스럽게 굴면 신경질적인 측신의 비위를 건드려 주당을 맞는다고 한다. 주당은 살과 같은 것이어서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는 측신에 의해 신벌(神罰)을 받는 것이다. 신벌을 받게 되면 갑자기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면서 혼절하고 그대로 두면 숨질 수도 있기 때문에 서둘러서 주당맥이굿을 한다. 왼새끼를 꼬아 환자의 몸을 일곱 매듭으로 묶어 마당의 중앙에 짚을 깔아 뉘어 놓고 풍물굿을 한다. 그리고 절구공이, 쇠스랑, 괭이 등으로 땅을 찧으면서 환자의 주변을 돈다. 이때 “주당맥이 하자, 주당귀신 물러가라.”고 주언을 한다. 그렇게 되면 환자가 크게 숨을 몰아쉬면서 깨어난다. 이는 무당의 병굿과 마찬가지로 민간의 신앙치료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 고양지역에서는 가을에 고사를 지내면 추녀 밑에 팥떡을 꽂아 두었다. 이는 변소에 가서 넘어지지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변소는 음양(陰陽)에서 음이 한층 강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귀신도 더욱 음산할 수 있다. 측신을 각별히 조심하는 것은 무서운 신이라는 점도 있지만 우리의 재래식 변소가 워낙 어둡고 냄새나며 꺼리는 장소였기 때문에 아울러 조심한다는 현실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참고문헌

남국의 전설 (진성기, 학문사, 1978), 용재총화 (성현, 남만성 역, 대양출판사, 1982), 한국의 무속신화 (김태곤, 집문당, 1985), 제주도무속연구 (현용준, 집문당, 1986), 조선무속의 연구-상 (赤松智城․秋葉隆, 심우성 역, 동문선, 1991), 무속신화에 나타난 조왕신과 측신의 성격 (김명자, 고전작가 작품의 이해, 박이정, 1998), 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김형주, 민속원, 2002), 한국의 가정신앙-경기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뒷간 (김광언, 기파랑, 2009)

측신

측신
한자명

厕神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신격

집필자 김명자(金明子)

정의

뒷간, 변소에 있는 가신(家神). 측간신, 뒷간귀신, 측도부인, 측신각시, 치귀, 정낭각시, 부출각시, 통시각시, 구릉장군, 똥장군 등 여러 가지로 불린다. 측신은 머리가 쉰댓 자나 되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여신(女神)으로, 신체(神體)가 없는 건궁이다.

내용

성정(性情)이 사납다는 측신의 유래담은 제주도 무속신화 <문전본풀이>에 나온다. <문전본풀이>는 제주도 무당굿에서 심방(무당)이 노래하는 문신(門神)의 신화 또는 그 신화를 노래하고 문신에게 기원하는 제차(祭次)를 일컫는다. 제주도지역의 집안에서 하는 굿에는 반드시 이 <문전본풀이>가 들어간다. 이는 문신의 내력담일 뿐만 아니라 조왕, 측간신, 주목지신, 오방토신 등의 내력담이기도 하다. 이들 신 중 문신이 가장 상위의 신이어서 <문전본풀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옛날에 남선고을의 남선비와 여산고을의 여산부인이 부부가 되어 살았다. 집안이 가난하여 살림이 궁한데 아들이 일곱형제나 태어났다. 여산부인은 살아갈 궁리를 하다가 남편에게 무곡(貿穀) 장사를 하도록 권했다. 남선비는 부인의 말대로 배 한 척을 마련하고 남선고을을 떠났다. 배는 오동나라에 닿았다. 오동나라 오동고을에는 간악하기로 소문난 노일제대귀일의 딸이 있었다. 귀일의 딸은 남선비의 소식을 듣고 선창가로 달려와 남선비를 유혹했다. 홀림에 빠진 남선비는 장기판을 벌여놓고 내기를 시작했다. 결국 남선비는 배도 팔고 쌀을 살 돈도 모조리 빼앗겼다. 오도 가도 못한 남선비는 귀일의 딸을 첩으로 삼아 끼니를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 이 집에서 남선비는 첩이 끓여준 겨죽을 먹으며 연명하다 눈마저 어두워졌다.

한편 여산부인은 남편이 돈을 벌어오기를 기다리다가 소식이 없자 아들들을 불렀다. 그러고는 배를 한 척 지어주면 아버지를 찾아오겠다고 했다. 아들들이 배를 지어 내놓자 이 배를 타고 남선고을을 떠났다. 배가 오동나라에 닿자 여산부인은 오동나라의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기장밭에서 새 쫓는 아이의 도움으로 남편을 찾을 수 있었다. 남편은 돌쩌귀에 거적문을 단 움막에 앉아 겨죽을 먹으며 살고 있었다. 여산부인이 사정을 하여 들어갔으나 눈이 어두운 남선비는 부인을 알아보지 못했다. 겨우 허락을 받아 들어간 여산부인은 겨죽이 눌어붙은 솥을 씻고 쌀밥을 지어 남선비에게 들고 갔다. 남선비는 첫술을 뜨고는 눈물을 흘렸다. 부인이 찾아왔음을 겨우 안 남선비는 부인의 손목을 잡고 만단정화를 나누었다.

이윽고 귀일의 딸이 들어와서 야단을 치다가 본처가 찾아온 것을 알고는 어리광을 부려가며 큰부인으로 대접하였다. 그러면서 우선 더운데 목욕이나 하고 와서 놀자고 꼬드겼다. 귀일의 딸은 여산부인과 목욕하러 가서 등을 밀어주는 척하다가 여산부인을 물속으로 밀어 넣어 죽였다. 그러고는 남선비에게 돌아와 큰부인인 체하며, “노일제대귀일의 딸의 행실이 괘씸하기에 죽였다.”고 하였다. 이 말을 곧이들은 남선비는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남선비와 귀일의 딸은 남선고을로 향했다. 일곱 형제가 마중나와서 보니 아무래도 친어머니 같지가 않았다. 앞장서서 가는 어머니는 길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고, 집에 와서도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들들의 의심은 날로 깊어갔다. 눈치를 챈 귀일의 딸은 일곱 형제를 죽일 계략을 꾸몄다. 우선 배가 아파 죽어가는 시늉을 하면서 당황해하는 남편에게 점을 쳐 보도록 했다. 남편이 점을 치러 나가니 귀일의 딸은 지름길로 달려가 점쟁이인 척하면서 기다리다가 남편에게 일곱 형제의 간을 먹어야 낫겠다고 말했다. 부인을 사랑하는 남편은 “아들이야 다시 낳으면 된다.”는 부인의 말을 듣고 칼을 갈았다. 이것을 알아차린 똑똑한 막내아들이 아버지 대신 형들의 간을 내어 오겠다고 하고는 갈고 있는 칼을 받아서 형들과 같이 산으로 올라갔다. 도중에 지쳐 잠을 자는데 어머니 영혼이 꿈에 나타나 노루의 간을 내어 가라고 일러 주었다. 잠을 깨니 과연 노루새끼 일곱 마리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노루는 산돼지의 간이 낫다면서 일러주고 꼬리를 끊어 형제들의 손에서 벗어났다. 이윽고 나타난 산돼지 여섯 마리를 잡아 간을 내고 계모에게 가져갔다. 계모는 먹는 체하며 간을 자리밑에 숨겼다. 문틈으로 엿보던 막내아들이 들어가 자리를 걷어치우자 형들도 왈칵 달려들었다.

흉계가 드러나자 귀일의 딸은 측간으로 도망가 목을 매어 죽어 측간신 측도부인(厠道婦人)이 되고, 남선비는 달아나다 정낭(집의 출입구에 대문 대신 걸쳐놓은 굵은 막대기)에 목이 걸려 숨져 주목지신(柱木之神)이 되었다. 일곱 형제는 서천 꽃밭에 가서 환생꽃을 얻어다가 물에 빠져 숨진 어머니를 살려 조왕신으로 앉혔다. 그런 뒤 일곱 형제는 각각 자기의 직분을 차지하여 신이 되었다. 첫째는 동방 청대장군, 둘째는 서방 백대장군, 셋째는 남방 적대장군, 넷째는 북방 흑대장군, 다섯째는 중앙 황대장군, 여섯째는 뒷문전(뒷문의 신), 영리한 막내는 일문전(앞쪽 문신)이 되었다.

이 신화에서 정실부인은 착하고 지혜로운 일곱 아들의 힘으로 살아나 부엌신인 조왕신으로 앉게 되었다. 그러나 첩은 어둡고 냄새나는 변소신인 측신이 되었다. 측신을 정낭각시라고도 하는 것은 <문전본풀이> 신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 정낭은 제주도지역에서 집의 출입구에 대문 대신 걸쳐 놓은 굵은 막대기를 말하는데 남선비가 정낭에 목이 걸려 숨진다는 이야기에서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제주도의 다른 무속신화에는 첩이 변소로 도망가 겁에 질려 죽고 아비(남선비)도 겁이 나 도망치다가 올내청의 기둥에 걸려 죽는다는 내용도 있다. 이 신화에서 아들들은 노일제대귀일의 딸의 팔을 빼서 올내청의 쌀주머니를 만들고, 다리는 디딜방아를 만들고, 이빨은 주발을 만들고, 몸뚱이는 찢어서 바람에 날리게 하는 등 온몸을 해체한다. 귀일의 딸에게 살해된 어머니를 환생시키고 큰아들은 상정주(정주는 부엌), 둘째는 중정주, 셋째는 하정주, 넷째는 처신, 다섯째와 여섯째는 오방신장, 일곱째는 문전을 각각 차지한다. 환생한 어미(여산부인)는 조왕할망(조왕할멈)이 된다.

본풀이에서 신의 이름은 심방(무당)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문신의 이야기에도 막내아들이 문신(일문전)이 되었다고 하지만 어떤 심방은 아버지가 문신이 되었다고 한다. 이 밖에 아버지는 문전신, 노일제대귀일의 딸은 측신, 본부인은 부엌신, 일곱 아들은 칠성이 각각 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측신은 유래담에 나타나듯 악한 신이다.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 제5권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은 측신이 인간에게 화(禍)를 주는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도성(都城) 안에 명통사(明通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맹인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들은 초하루와 보름에 한 번씩 모여 독경과 축수를 일삼았다. 그중 높은 사람은 당 안에 들어가고 낮은 사람은 문을 지킨다. 여러 문에 창을 벌여 놓아서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 서생이 몸을 솟구쳐 넘어 들어가서 대들보에 올라앉았다. 맹인이 조그만 종을 치는 것을 보고 서생이 종을 끌어올려 버리니 맹인은 종치는 방망이를 휘둘러 허공을 친다. 그런 뒤에 다시 종을 내려놓았다. 맹인이 손으로 만져보니 종이 여전히 있었다. 이렇게 하기를 서너 번 거듭하니 맹인이 말하기를 “당 안의 작은 종이 무엇인가에 끌려 올라간다.”고 하였다. 여러 맹인이 둘러앉아서 점을 쳤다. 한 맹인이 “이것은 벽 사이에 박쥐가 붙어서 그렇게 한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에 모두 일어나서 벽을 만져 보았으나 아무것도 없었다. 또 한 맹인이 “이것은 틀림없이 저녁 닭이 대들보 위에 앉아서 그런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에 여러 맹인이 앞다투어 길다란 막대기로 대들보 위를 두들겼다. 서생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땅에 떨어졌다. 맹인들이 서생을 묶고 매질을 하였으므로 서생은 엉금엉금 기어서 돌아왔다.

이튿날 서생이 삼노끈 두어 가닥을 갖고 절에 가서 측간에 숨어 있으니 주맹인이 변소에 와서 웅크리고 앉는 것이었다. 서생이 갑자기 노끈으로 맹인의 양근(陽根)을 매어 당기니 맹인이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 구원을 청했다. 여러 맹인이 앞다투어 와서 축원을 했다. “주사(主師)가 측귀에게 화를 입게 되었소.”라고 하였다. 혹은 이웃을 불러 약을 구하는 자가 있고, 혹은 북을 울리며 명을 비는 자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측신이 실제로 화를 준 것이 아니라 서생이 맹인 점복자를 골탕 먹이는 것인데 맹인 점복자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측신에게서 화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맹인 점복자를 대단히 폄하하고 점복을 풍자한 내용이기도 하다. 이는 성현이 성리학자로서 점복을 음사(陰祀)로 여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변소신을 ‘측귀(廁鬼)’라고 할 만큼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측신은 흔히 사납고 무서운 속성을 지닌 신으로 알려져 있다. 재래 변소는 어둡고 칙칙했다. 이런 곳에서 변을 당하면 살(煞)을 맞았다고 하여 불길하게 생각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변소에 빠지거나 거름통 또는 거름밭에 빠지면 떡을 찌고 간략하게 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이는 측신의 노여움을 경계하는 것이며, 오물독(汚物毒)을 제거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측신을 무작정 악신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무서운 속성을 지닌 귀신이기 때문에 변소의 살을 거두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처럼 신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모호하며 양면성이 있다.

강원도 측신각시는 언제나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있다가 갑자기 사람이 들어오면 놀란 나머지 머리카락으로 목을 조른다. 이때 얻은 병은 무당의 굿도 듣지 않아 결국 숨지게 된다. 이런 이유로 뒷간에 가까이 갈 때에는 미리 헛기침을 해야 탈이 안 난다는 것이다. 한편 측신이 변소에 늘 있는 것이 아니라 매월 6일, 16일, 26일 등 6의 날에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이날은 가능한 한 변소에 가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도 한다. 측신에 대한 이와 같은 생각은 중국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어찌됐든 측신은 분명히 악신 쪽에 해당한다. 평생 ‘못된 짓’만 하다가 죽어 귀신이 된 존재로서 사나운 신이 될 소지는 충분하다.

측신은 비록 집안에 거주하는 신이지만 평소에는 대우를 하여 섬기지 않는다. 차례 때나 별식이 나면 간략하게 바치는 정도이다. 특히 떡과 같은 제물을 그릇에 담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떼어서’ 놓는 것이 보편적이다. 측신의 다른 명칭에 각시, 부인 등이 붙여진 것은 워낙 사나운 신이어서 해를 면하기 위해 우대하여 부르는 것이다. 또한 무속신화에 등장하는 내용에 따라 인격화하여 붙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부출각시의 부출은 발로 디디고 앉아서 변을 보도록 변소 바닥 양쪽에 놓는 ‘부춛돌’에서 온 말이다.

변소에 빠지면 반드시 떡을 만들어 먹는다. 이는 인분의 독도 예방하고 측신을 잘 대접하여 피해를 막는다는 의미이다.

지역사례

강원도지역에서는 뒷간을 지으면 날을 받아 음식을 차리고 불을 밝힌 뒤 “탈 없도록 도와주소서.” 하고 빈다. 제주도지역에서는 돼지 돌림병이 돌 때 이같이 한다. 변소를 새로 지을 때에도 날을 잡으며 부춛돌을 함부로 옮기지 않는다. 흔히 음력 시월 상달고사 때 측신에게도 떡을 바치지만 각별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떼어놓는 정도이다.

변소를 지을 때 택일하는 것은 제주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예전에는 집 수리, 특히 변소를 고치는 일을 각별히 조심했다.

흔히 똥통에 빠지면 검은 콩밥을 해 먹고, 독이 오르면 보리 가시랭이를 태워 연기를 낸다. 어린아이가 빠지는 것은 측신이 밑에서 잡아당긴 탓이라고 여긴다. 이때는 쌀가루를 송편처럼 동그랗게 빚은 떡 백 개를 아이가 들고 “똥떡이오, 똥떡이오.”라고 외치며 이웃에 돌렸다. 이것은 결국 측신을 의식하기 때문이었다.

제주도지역에서는 측신을 측도부인, 측시부인이라고도 한다. 이 신에 대한 의례는 변소에 기르는 돼지가 흉보였다거나 ‘변소동티’가 났다는 점괘가 내린 때가 아니라면 별로 하지 않는다. 또한 아이가 뒷간 바닥에 떨어지면 얼이 나갔다고 여겨서 ‘넋들이기’를 하였다. 부춛돌 옆에 물 한 바가지를 떠 놓고 아이 머리에 물을 찍어 발라서 두드리면 넋이 돌아온다는 것이다.

호남지방에서는 6일, 16일, 26일 등 측신이 변소에 머무르고 있는 날, 변소에 가서 혼자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여 불경스럽게 굴면 신경질적인 측신의 비위를 건드려 주당을 맞는다고 한다. 주당은 살과 같은 것이어서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는 측신에 의해 신벌(神罰)을 받는 것이다. 신벌을 받게 되면 갑자기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면서 혼절하고 그대로 두면 숨질 수도 있기 때문에 서둘러서 주당맥이굿을 한다. 왼새끼를 꼬아 환자의 몸을 일곱 매듭으로 묶어 마당의 중앙에 짚을 깔아 뉘어 놓고 풍물굿을 한다. 그리고 절구공이, 쇠스랑, 괭이 등으로 땅을 찧으면서 환자의 주변을 돈다. 이때 “주당맥이 하자, 주당귀신 물러가라.”고 주언을 한다. 그렇게 되면 환자가 크게 숨을 몰아쉬면서 깨어난다. 이는 무당의 병굿과 마찬가지로 민간의 신앙치료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 고양지역에서는 가을에 고사를 지내면 추녀 밑에 팥떡을 꽂아 두었다. 이는 변소에 가서 넘어지지 말라는 뜻이라고 한다.

변소는 음양(陰陽)에서 음이 한층 강한 곳이다. 그러다 보니 귀신도 더욱 음산할 수 있다. 측신을 각별히 조심하는 것은 무서운 신이라는 점도 있지만 우리의 재래식 변소가 워낙 어둡고 냄새나며 꺼리는 장소였기 때문에 아울러 조심한다는 현실적인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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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들의 지킴이 신앙 (김형주, 민속원, 2002)
한국의 가정신앙-경기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5)
뒷간 (김광언, 기파랑,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