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다루기(逗新郎)

신랑다루기

한자명

逗新郎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최인학(崔仁鶴)

정의

장가든 신랑이 신부집에 머무르는 동안 신부집의 젊은 일가친척들이나 마을 청년들이 신랑에게 괴로움을 주어 고초를 겪게 하는 의식.

역사

한자로는 ‘동상례東床禮, 東牀禮, 東廂禮’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즉 중국 진대晉代의 명필인 왕희지王羲之가 장가를 들 무렵 그의 장인 될 사람이 그를 자기 집의 동상東廂(동쪽의 건물)에 두고 행동거지를 살핀 뒤 사위로 삼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사위를 ‘동상’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 우리나라에서 동상례라고 하는 말은 이 고사로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사위를 동상이라 하지 않았고, 또한 중국에는 동상례라는 말이 없다. 신랑다루기 풍속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데, 지방에 따라 행사의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옛날의 신랑다루기의 모습은 조선 정조 때의 한양산인漢陽山人이 작성한 「동상기東廂記」에 잘 나타나 있다.

내용

신랑다루기 중에서 신랑매달기는 신부 집에서 치르는 것으로, 혼례식이 끝난 뒤에 여러 가족・친지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신랑・신부를 방안에 불러 앉히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대개 신랑과 가까운 친구들은 혼례식 이전부터 신랑에게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으르기도 하지만, 친구 중의 한 사람이 주위를 돌아보며 “신랑의 어른들에 대한 예의가 어떠한고?”라고 짐짓 심문하는 투로 물으면, 곁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한결같이 “음, 많이 부족하지.”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미리 준비했던 긴 백포白布와 다듬잇방망이를 꺼낸 뒤 몇 사람이 달려들어 신랑의 한쪽 발을 추켜들고 방망이로 발바닥을 몇 차례 때린다. 그러면 옆에 앉아있던 신부가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하게 마련이다.

신부는 부엌 쪽에서 자리를 함께하던 어머니에게 상을 차려오도록 부탁하여 성의를 표시하나, 이때는 으레 조그마한 상에 조촐하게 차린 음식과 술이 들어온다. 그러면 신랑의 친구들은 이 음식을 구경꾼들에게 나눠 먹게 한다. 그리고 아직도 새신랑이 예의가 부족하다면서 건장한 청년이 달려들어 신랑의 한쪽 발을 백포로 만든 고리에 넣어 묶은 뒤, 천정의 단단한 시렁 같은 곳에 걸어서 잡아당기는 시늉을 한다. 이런 때에는 더 많은 음식과 술이 들어오게 되고, 친지들과 마을 사람들은 함께 음식과 술을 들며 이제부터는 어른이라는 덕담을 해주곤 한다. 이러한 것들은 결혼에 대한 축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여러 사람의 정이 가득 담겨있는 훈훈한 모습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경사로운 일이 생기면 많은 사람이 자리를 함께하여 여러 가지 소극笑劇을 연출하며 함께 즐긴다. 이는 경사의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경사스러운 날을 오래도록 간직하도록 서로가 깊이 배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신랑・신부 다루는 습속이 도가 지나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지역사례

함흥과 그 인근 지방에서는 ‘ 장가턱’이라고도 한다. 신랑과 동년배인 청소년들이 몰려와서 한시漢詩한 구절을 제시하고 신랑더러 거기에 알맞은 대구對句를 지으라고 한다. 신랑이 대구를 짓지 못하면 무식하다고 야유하고, 대구를 지어도 졸작이라고 트집을 잡아 신랑을 곤욕스럽게 한다. 또 장가턱 단자單子라 하여 술과 음식 그리고 금액을 적은 종이쪽지를 신랑에게 건네주고, 그 돈을 처가에서 받아내 오라고 강요한다. 신랑이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곤욕을 치르게 되면 신부 집에서는 성찬으로 청년들을 대접하거나 상당한 금액을 제공하여 신랑의 곤욕을 풀게 한다.

평안도에서는 신랑에게 한시漢詩를 지으라고 강요하여 괴롭힘을 주는데, 만약 신랑이 한시를 잘 지어낸다면, 또 다른 시를 주고 몇 번이고 새로 지으라고 한다. 이러한 풍습 때문에 이 지방에서는 신랑집에서 한문에능한 학우나 친척 남자를 신랑과 동반하게 한다. 동반자는 신랑이 말하는 것을 한문으로 표기한다. 신랑이 주위에 있는 것, 예컨대 천장에 거미집이 있는 것을 보고 “천장에 거무집”하면, 동반자는 “天長에 去無執”, 즉 “하늘이 넓고 커서 잡을 수 없다.”라는 뜻의 한자로 적는다. 화로에 겻불 냄새가 나는 것을 보고 “화로에 겻불래”하면 동반자는 “花老에 蝶不來”, 즉 “꽃이 시드니 나비가 오지 않는다.”라는 뜻의 한자로 표기한다. 그러면 신부집에서는 글 잘하는 유식한 사위를 맞았다며 성찬으로 향응을 베푼다.

경기도나 그 이남의 삼남지방에서는 신랑다루기에 시작詩作이나 시구 대응對應 등을 강요하지 않는다. 신랑의 발목을 묶어 건장한 사람이 어깨에 거꾸로 매달고 다른 청년들은 방망이나 목봉으로 신랑의 발바닥을 사정없이 때리면서 이 집에 “무엇하러 왔느냐?”라고 묻는다. 신랑이 장가들러 왔다고 해도 그런 대답은 무시하면서, “이놈은 필시 이 집 귀한 처녀를 도적질하러 들어온 놈이니, 그냥 둘 수 없다.”라고 하며 발바닥을 다시 내려친다. 또 “이 집에 들어올 적에 문전에 숲이 많이 우거졌더냐? 문턱이 높더냐, 낮더냐? 안방이 깊숙이 있더냐? 생물이 많더냐 말랐더냐? 집은 새 집이더냐 헌 집이더냐? 들어가는데 애먹었느냐 쉽게 들어갔느냐?” 등 신방의 비밀스러운 얘기를 비유로 꼬치꼬치 묻는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대답하라고 때리고, 모호하게 대답하면 분명히 말하라고 때리고, 거짓말을 하면 바른대로 대라고 때린다. 이때 신랑은 육체적 고통을 받아 심하면 보행이 어렵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신부집에서 큰상을 차려 내오면 신랑다루기를 멈추고 청년들은 신랑과 함께 향응을 즐긴다.

특징 및 의의

신랑다루기는 신랑에게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지만,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례賀禮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즉, 경사를 더욱 즐겁게 축하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행사가 따르게 된다. 따라서 신랑다루기는 역설적 하례라 할 수 있다. 신랑이나 신랑집 그리고 신부집이 인심을 얻지 못하였다든가, 사회적 덕망 또는 명성이 없으면 신랑을 다루려는 청년이 몰려오지 않는다. 신랑을 여러 번 다룬다는 것, 신랑다루는 청년이 많이 모여든다는 것은 신랑이나 신부집이 명성과 덕망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표징이 되므로, 이를 기뻐하고 만족하였다. 그러나 신랑다루기는 경하의 행사일 뿐 주술적 행사는 아니다. 신랑다루기의 변형으로 신부다루기가 있다. 신혼예식이 끝난 다음 날 신부집의 일가친척인 기혼 부녀자들이 신부 단독으로 또는 신랑과 함께 묶어놓고 여러 가지로 놀리면서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고 즐긴다. 신부다루기는 동상례라고 하지는 않는다. 한편, 신랑이 본가에 돌아와서도 마을의 동년배나 학우들에 의하여 신랑다루기가 행해진다. 그러나 신랑다루기가 시집의 마을 부녀자들에 의하여 행해지는 경우는 없다. 신랑다루기는 신랑의 사회적 지위를 승인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신체적 시련, 이를테면 성인식의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晉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3(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의 민속(김성배, 집문당, 1980), 李朝社會の婚姻儀式に就て(完)(張承斗, 朝鮮292, 조선총독부, 1939).

신랑다루기

신랑다루기
한자명

逗新郎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혼례

집필자 최인학(崔仁鶴)

정의

장가든 신랑이 신부집에 머무르는 동안 신부집의 젊은 일가친척들이나 마을 청년들이 신랑에게 괴로움을 주어 고초를 겪게 하는 의식.

역사

한자로는 ‘동상례東床禮, 東牀禮, 東廂禮’라고 하는데, 이는 중국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즉 중국 진대晉代의 명필인 왕희지王羲之가 장가를 들 무렵 그의 장인 될 사람이 그를 자기 집의 동상東廂(동쪽의 건물)에 두고 행동거지를 살핀 뒤 사위로 삼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사위를 ‘동상’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 우리나라에서 동상례라고 하는 말은 이 고사로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사위를 동상이라 하지 않았고, 또한 중국에는 동상례라는 말이 없다. 신랑다루기 풍속은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데, 지방에 따라 행사의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옛날의 신랑다루기의 모습은 조선 정조 때의 한양산인漢陽山人이 작성한 「동상기東廂記」에 잘 나타나 있다.

내용

신랑다루기 중에서 신랑매달기는 신부 집에서 치르는 것으로, 혼례식이 끝난 뒤에 여러 가족・친지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신랑・신부를 방안에 불러 앉히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대개 신랑과 가까운 친구들은 혼례식 이전부터 신랑에게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으르기도 하지만, 친구 중의 한 사람이 주위를 돌아보며 “신랑의 어른들에 대한 예의가 어떠한고?”라고 짐짓 심문하는 투로 물으면, 곁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한결같이 “음, 많이 부족하지.”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미리 준비했던 긴 백포白布와 다듬잇방망이를 꺼낸 뒤 몇 사람이 달려들어 신랑의 한쪽 발을 추켜들고 방망이로 발바닥을 몇 차례 때린다. 그러면 옆에 앉아있던 신부가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하게 마련이다.

신부는 부엌 쪽에서 자리를 함께하던 어머니에게 상을 차려오도록 부탁하여 성의를 표시하나, 이때는 으레 조그마한 상에 조촐하게 차린 음식과 술이 들어온다. 그러면 신랑의 친구들은 이 음식을 구경꾼들에게 나눠 먹게 한다. 그리고 아직도 새신랑이 예의가 부족하다면서 건장한 청년이 달려들어 신랑의 한쪽 발을 백포로 만든 고리에 넣어 묶은 뒤, 천정의 단단한 시렁 같은 곳에 걸어서 잡아당기는 시늉을 한다. 이런 때에는 더 많은 음식과 술이 들어오게 되고, 친지들과 마을 사람들은 함께 음식과 술을 들며 이제부터는 어른이라는 덕담을 해주곤 한다. 이러한 것들은 결혼에 대한 축복과 건강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여러 사람의 정이 가득 담겨있는 훈훈한 모습들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경사로운 일이 생기면 많은 사람이 자리를 함께하여 여러 가지 소극笑劇을 연출하며 함께 즐긴다. 이는 경사의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경사스러운 날을 오래도록 간직하도록 서로가 깊이 배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신랑・신부 다루는 습속이 도가 지나치면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지역사례

함흥과 그 인근 지방에서는 ‘ 장가턱’이라고도 한다. 신랑과 동년배인 청소년들이 몰려와서 한시漢詩한 구절을 제시하고 신랑더러 거기에 알맞은 대구對句를 지으라고 한다. 신랑이 대구를 짓지 못하면 무식하다고 야유하고, 대구를 지어도 졸작이라고 트집을 잡아 신랑을 곤욕스럽게 한다. 또 장가턱 단자單子라 하여 술과 음식 그리고 금액을 적은 종이쪽지를 신랑에게 건네주고, 그 돈을 처가에서 받아내 오라고 강요한다. 신랑이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곤욕을 치르게 되면 신부 집에서는 성찬으로 청년들을 대접하거나 상당한 금액을 제공하여 신랑의 곤욕을 풀게 한다.

평안도에서는 신랑에게 한시漢詩를 지으라고 강요하여 괴롭힘을 주는데, 만약 신랑이 한시를 잘 지어낸다면, 또 다른 시를 주고 몇 번이고 새로 지으라고 한다. 이러한 풍습 때문에 이 지방에서는 신랑집에서 한문에능한 학우나 친척 남자를 신랑과 동반하게 한다. 동반자는 신랑이 말하는 것을 한문으로 표기한다. 신랑이 주위에 있는 것, 예컨대 천장에 거미집이 있는 것을 보고 “천장에 거무집”하면, 동반자는 “天長에 去無執”, 즉 “하늘이 넓고 커서 잡을 수 없다.”라는 뜻의 한자로 적는다. 화로에 겻불 냄새가 나는 것을 보고 “화로에 겻불래”하면 동반자는 “花老에 蝶不來”, 즉 “꽃이 시드니 나비가 오지 않는다.”라는 뜻의 한자로 표기한다. 그러면 신부집에서는 글 잘하는 유식한 사위를 맞았다며 성찬으로 향응을 베푼다.

경기도나 그 이남의 삼남지방에서는 신랑다루기에 시작詩作이나 시구 대응對應 등을 강요하지 않는다. 신랑의 발목을 묶어 건장한 사람이 어깨에 거꾸로 매달고 다른 청년들은 방망이나 목봉으로 신랑의 발바닥을 사정없이 때리면서 이 집에 “무엇하러 왔느냐?”라고 묻는다. 신랑이 장가들러 왔다고 해도 그런 대답은 무시하면서, “이놈은 필시 이 집 귀한 처녀를 도적질하러 들어온 놈이니, 그냥 둘 수 없다.”라고 하며 발바닥을 다시 내려친다. 또 “이 집에 들어올 적에 문전에 숲이 많이 우거졌더냐? 문턱이 높더냐, 낮더냐? 안방이 깊숙이 있더냐? 생물이 많더냐 말랐더냐? 집은 새 집이더냐 헌 집이더냐? 들어가는데 애먹었느냐 쉽게 들어갔느냐?” 등 신방의 비밀스러운 얘기를 비유로 꼬치꼬치 묻는다. 대답을 하지 않으면 대답하라고 때리고, 모호하게 대답하면 분명히 말하라고 때리고, 거짓말을 하면 바른대로 대라고 때린다. 이때 신랑은 육체적 고통을 받아 심하면 보행이 어렵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신부집에서 큰상을 차려 내오면 신랑다루기를 멈추고 청년들은 신랑과 함께 향응을 즐긴다.

특징 및 의의

신랑다루기는 신랑에게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을 주는 것이지만, 고통을 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하례賀禮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즉, 경사를 더욱 즐겁게 축하하기 위하여 이와 같은 행사가 따르게 된다. 따라서 신랑다루기는 역설적 하례라 할 수 있다. 신랑이나 신랑집 그리고 신부집이 인심을 얻지 못하였다든가, 사회적 덕망 또는 명성이 없으면 신랑을 다루려는 청년이 몰려오지 않는다. 신랑을 여러 번 다룬다는 것, 신랑다루는 청년이 많이 모여든다는 것은 신랑이나 신부집이 명성과 덕망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 주는 표징이 되므로, 이를 기뻐하고 만족하였다. 그러나 신랑다루기는 경하의 행사일 뿐 주술적 행사는 아니다. 신랑다루기의 변형으로 신부다루기가 있다. 신혼예식이 끝난 다음 날 신부집의 일가친척인 기혼 부녀자들이 신부 단독으로 또는 신랑과 함께 묶어놓고 여러 가지로 놀리면서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고 즐긴다. 신부다루기는 동상례라고 하지는 않는다. 한편, 신랑이 본가에 돌아와서도 마을의 동년배나 학우들에 의하여 신랑다루기가 행해진다. 그러나 신랑다루기가 시집의 마을 부녀자들에 의하여 행해지는 경우는 없다. 신랑다루기는 신랑의 사회적 지위를 승인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신체적 시련, 이를테면 성인식의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晉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13(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의 민속(김성배, 집문당, 1980), 李朝社會の婚姻儀式に就て(完)(張承斗, 朝鮮292, 조선총독부, 1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