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제(井祭)

우물제

한자명

井祭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의

집필자 표인주(表仁柱)

정의

우물에 있는 용신(龍神)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제의. 샘제 또는 용제라고도 불린다.

역사

우물제와 관련된 용신은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수렵채취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되면서 용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종교사적 측면에서 보면 용신은 고려시대에 중요한 신격으로 자리하게 되었고, 용신신앙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것은 단순히 고려시대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선대의 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용의 영험성ㆍ신성성 등을 수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용을 신앙적으로 인식한 시기는 훨씬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물과 용의 관계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용현정(龍現井)’으로 무수히 나타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삼국사기』에는 “용 두 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 나타났다. 이때 소낙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며, 성 남문에 벼락이 떨어졌다.”라는 기록이 있고, 백제 무왕인 서동은 그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지변(南池邊)에서 살던 중 그 연못의 지룡(池龍)과 교통하여 출생하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용왕제가 삼국시대 초기부터 계속 전승되어 왔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고려시대에 와서도 고려 건국주인 왕건의 가계도를 보면 왕건이 용부인에 얽히는 개성대정설화(開城大井說話)에 우물과 용의 복합 관념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용왕제인 우물제의 역사는 원초 이래로 유구한 전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우물제는 정월 세시풍속의 하나로 거행되는 경우가 많다. 우물에 음식을 차려 놓고 물의 풍족함을 기원하기 위해 가정 단위로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마을 단위로 우물제를 지내기도 한다. 우물제의 신격은 용신이며, 물을 신격화한 수신(水神)이다. 용은 못이나 강 또는 바다와 같은 물속에 살며, 비나 바람을 일으키거나 몰고 다닌다고 여겨져 왔다. 이처럼 용은 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용을 위한 제사가 모두 물가라는 점도 용의 수신적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 이 수신이 마을의 공동우물을 지켜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을의 동신(洞神)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용신이 본래 수신으로서 물의 풍족함을 관여하는 신격이기 때문에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격으로 그 기능이 확대되었다. 급기야는 가정의 복록을 주관하거나 무병장수, 부귀다남, 무사안녕, 만사형통을 주관하는 신격으로서 다층적인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정월에 풍물굿으로 반드시 샘굿을 쳤다.

가정과 마을로 나누어 우물제의 제의적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가정 단위의 제사 내용이다. 정월 열 나흗날에 집 안의 우물을 다 퍼내고 밤에 부인이 목욕재계한 뒤 상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절을 하며 집안의 행운을 빈다. 제물은 밥, 미역국, 정화수 한 그릇이다. 우물 앞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상을 차려 촛불을 밝혀 놓고 제물을 진설한다. 이와 같은 우물제는 집 안에 샘이 없는 경우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하기도 하고, 집 안이 아닌 마을의 공동우물이나 냇가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 마을 단위의 우물제는 제의적인 절차와 풍물굿이 복합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풍물굿으로만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 제사와 풍물이 어우러지는 우물제의 대표적인 예로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정동마을 정호제를 들 수 있다. 정호제는 ‘우물제’라고도 부르며,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마을의 재난 예방과 풍년ㆍ풍어를 기원하는 샘굿이다. 남녀노소가 참여하여 당산굿을 필두로 우물제를 올리고 샘굿을 친다. 샘굿이 끝나면 2월 초하루까지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지신밟기를 하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생기복덕을 맞추어 제관을 정하고 제관 가운데 가장 청결한 제관의 집을 선정하여 제사 음식을 준비한다. 제물로는 술, 흰 설기떡, 삼채, 오과, 포, 육어, 촛불 등이 있다. 제사는 유교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며, 초헌관이 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다. 축문의 내용은 “維歲次 干支 某月干支某日干支十五日干支 幼學某祭官(姓名)敢昭告于, 높으신 우리 샘 각씨님께 드리옵니다. 금년에도 이 정성을 모아 공을 드리오니, 우리 동네 매사가 형통하고 마을 전체 인물들이 훌륭하게 출세할 것이며, 마을 사람 전체가 이 샘물이 약이 되어 여러 병질을 몰아내어 무병할 것을 축원하오니 흠향하옵시고 항시 맑은 물이 되시길 재배 상향 하옵니다.”이다. 아헌이 잔을 올리고 종헌첨작한 다음 본격적으로 풍물을 친다. 풍물은 꽹과리 3, 쟁 1, 장구 1, 북 1, 상모 3, 소고 15, 영기 2, 농기 1명으로 구성된다. 먼저 1, 2, 3채를 돌려 치고 4, 5채로 풍물패가 서서 재배한 뒤 “컹컹 나으소서 자발자발 나으소서.”라고 소리 맞추어 외친다. 1, 2, 3채를 느리게 맞추어 치면 샘 세 바퀴를 돌고 굿을 그친다. 그런 뒤 제관 이하 마을 사람 및 풍물패가 모두 음복을 하고 샘굿을 친 뒤 퇴장한다.

특징

우물제는 단순히 샘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물이 있는 곳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마을에서 물을 흔히 접할 수 있는 곳이 샘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제사를 많이 지내는 것뿐이지 샘이 지니는 신앙적인 의미 때문에 제사를 많이 지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물제가 용신신앙의 일환으로 행해진다는 사실이다. 용신신앙의 일환으로 거행되기 때문에 용신을 모실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우물제나 용왕제를 지낼 수 있다. 따라서 우물제는 단순히 샘이라는 장소성보다도 물과 관련된 용신을 모실 수 있는 곳이고, 용신신앙의 실천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물제는 마을의 샘에서 지내는 제사로만 국한시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을의 냇가나 깊은 산속의 샘, 바닷가 등지에서 지내는 용왕제로 확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례

강원도 삼척지역에서 지내는 용왕제마을 앞 냇가에서 지내는 경우와 선창이나 바닷가에 제물을 진설하여 용왕에게 풍어를 비는 경우가 있다. 냇가에서 지내는 경우는 한 해 동안 식구들이 객지에서 탈나지 않고, 특히 물가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원한다. 용왕제를 지내는 사람은 정월대보름날 식전에 보름밥을 차려서 냇가로 나간다. 주로 그 집안의 주부가 지내며, 용왕에게는 밥을 해서 던져 넣는다. 이때 흰 종이에 집안 식구 수대로 밥을 싼다. 그해 운수가 좋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그 식구의 몫에는 부적을 미리 구해놓았다가 한데 넣기도 한다. 용왕에게 재배하고 밥을 냇가에 던지면서 올해 운수대통하게 해 달라고 빈다. 이를 용왕제 또는 어부제라고 부른다. 식구 중에 액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새벽에 미리 냇가에 가서 촛불을 밝히고 그 앞에 메 한 그릇을 지어 올린다. 그리고 용왕님께 “나쁜 액운을 모두 막아주십사.”하고 빈다. 용왕제에 올린 제물은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다. 화천군 상서면에서는 정월대보름날 밤에 우물에 용이 내려와서 먹는다고 하여 찰밥이나 떡을 해서 물에다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세 번씩만 숟가락으로 떠서 던지고 소원을 빌었다. 이상과 같이 강원도 지역의 용왕제는 액맥이 성격이 강하게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내북면에서는 정월 열 나흗날이나 대보름날에는 산골짜기에 있는 샘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제물은 팥 시루떡, 삼색실과, 청수 등이다. 소지종이, 초, 짚 등을 준비해서 가지고 간다. 산속에 있는 샘가에 짚을 열십자로 깔고 그 위에 준비한 제물을 진설한다. 용왕에게는 ‘집안이 태평하게 해 달라, 아들과 딸이 건강하게 크게 해 달라’ 등의 기원을 한다. “용왕님”이라고 세 번 부르고 나서 용왕에게 반절을 한다. 이때 횟수는 크게 상관이 없다. 자신이 만족할 만큼 하면 된다. 그리고 동서남북으로 세 번씩 절을 한다. 용왕님소지와 식구소지를 올린다. 식구소지는 대주의 소지를 가장 먼저 올리고, 나머지 가족의 순으로 올린다. 소지를 올린 뒤에는 제물을 조금씩 떼어두고 온다. 나머지 제물은 집으로 가지고 와서 가족들이 나누어 먹는다. 그런가 하면 영동군 용화면이나 심천면에서는 용왕제를 냇가에서 지낸다. 이처럼 충북지역에서는 용왕제를 냇가에서 많이 지낸다.

충청남도 예산지역에서는 샘제를 정초에 샘에서 지낸다. 선거리나 제를 잘 모시는 사람들이 좋은 날을 알려 주면 그날 제를 모신다. 대체로 용날(辰日)이 좋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정초에는 지신제, 용왕제 등을 지내느라 바쁘다. 용왕제 역시 집안 식구들이 한 해 무탈하고 좋길 바라는 마음으로 용왕에게 비는 것이다. 고사날 저녁이 되면 주부가 직접 제물을 지고 샘으로 간다. 상황에 따라서 선거리를 부르기도 하고, 본인 혼자 가기도 한다. 제물로는 메, 떡시루, 명태 등을 올린다. 과일이나 대추, 감 등은 놓지 않는다. 용왕에게 비손과 절을 한 뒤에 식구 수대로 소지를 올려주고 온다. 공주시 탄천면에서는 정월 열 나흗날 땅거미가 진 뒤에 밥, 미역국, 나물 등을 마련해 샘으로 나간다. 샘 앞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마련해 간 제물을 올려놓는다. 그런 뒤 그 앞에서 자손들이 물가를 다니더라도 안전하게 해달라고 비손한다. 치성을 마친 후에는 불밝이쌀을 조금씩 세 번 집어서 샘에 넣는다. 샘에서 치성을 드릴 때에는 김쌈을 넣지 않지만 냇가에서 치성을 드릴 경우에는 미리 가져간 김에 밥을 조금씩 싸서 냇물에 던져 넣기도 하고 명태 머리를 잘라서 넣기도 한다. 이렇게 제물을 조금씩 넣는 것은 용왕님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한다. 논산시 광석면에서는 용왕제를 자신들이 먹는 마을 샘에서 지낸다. 제일은 무당이나 스님이 음력 정월에 길일을 택해주기도 하지만, 주로 정월 초승이나 보름, 그믐에 행한다. 일반적으로 충남지역에서는 용왕제는 내용은 대동소이하고, 자신들이 먹는 샘에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

경상남도 의령군 칠곡면에서는 용왕제를 ‘용왕먹이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의의 목적은 안과태평, 자식들의 소원성취, 수복장수이다. 주로 정월대보름이나 이월 초하룻날에 지낸다. 제의 시간은 가정마다 다르다. 아침에 행하거나 낮에 행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인적이 드문 밤이나 새벽에 행하기도 한다. 제사는 예전에는 공동우물에서 행하였으나 우물이 없어지고 난 이후에는 근처 냇가나 산에 있는 개울에서 주로 행한다. 용왕을 먹일 때는 먼저 주부가 아침 일찍 목욕재계를 한 뒤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깨끗한 물을 길어 그 물로 제물을 장만한다. 장만한 제물을 제터로 옮길 때에는 더러운 것을 봐서는 안 된다. 특히 상주와 동물의 사체, 오물을 꺼린다. 제터는 각기 깨끗한 곳을 가려 정하며, 제물은 바닥에 깨끗한 짚이나 종이를 깐 뒤 진설한다. 제물은 밥, 나물, 마른 명태, 소금 등이다. 제의 절차는 간소하다. 제물을 진설한 뒤 삼배 또는 사배를 올린 다음 “용왕님네! 산신님네! 우리 자식들 소원성취 시켜 주시고 재수 있게 해 주이소, 집안 편케 해 주이소.”라고 이령수를 외며 비손한다고 한다. 비손이 끝나면 식구 수대로 소지를 올린다. 소지종이의 재가 하늘 높이 올라가면 길하다고 한다. 제의가 끝나면 각 제물을 세 번씩 나누어 물에 던지고 나머지는 그대로 둔다. 일반적으로 경남지역에서는 용왕제를 용왕먹이기라고 부른다. 일 년에 세 번, 즉 정월대보름, 삼월삼짇날 및 시월에 먹이는 경우가 많다. 용왕을 먹이는 장소는 깨끗한 냇가나 골짜기로, 각 가정이 매년 먹이는 장소가 고정되어 있다. 제사를 지내러 갈 때는 반드시 소금을 가지고 간다. 이것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뿌리면서 나쁜 것을 쳐 낸다.

전라남도지역에서는 샘에 가서 드리는 공을 ‘용왕공’이라고 한다. 곡성군 오곡면에서는 정월대보름날 밤에 동네 부녀자들이 각자 음식을 대야에 담아서 마을 앞에 흐르고 있는 섬진강 가에 가서 차린 다음 비손하고 소지하는 것으로 용왕공을 드린다. 소지를 한 다음에는 한쪽에 짚을 깔고 음식을 담아 헌식을 한다. 그러나 집 안에 샘을 판 뒤부터는 섬진강까지 가지 않고 집 안 우물 앞에서 용왕공을 드린다. 요즘에는 절에 가서 방생하는 것으로 용왕공을 대신하는 경우도 생겼다. 담양군 금성면에서는 정월대보름날이 되면 아이가 잘될 수 있도록 샘이나 우물에 가서 용왕공을 드린다. 마을에서는 샘굿을 칠 때 용왕제를 함께 지내는 경우도 있다. 목포시 서산동에서는 밥, 나물, 술 등을 준비해 샘에 가서 비손을 한다. 이를 ‘용왕’이라고 부른다. 여수시 돌산읍에서는 우물신이라 하여 정월대보름날에 보름음식을 준비하여 우물 앞에다 상을 차려 놓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전남지역에서 정월대보름날에 용왕제를 모시는 곳은 샘․냇가․강 등 물이 있는 곳이며, 가족들의 안녕과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정초에 가족 중 손재수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용왕제를 모시기도 한다.

의의

우물제는 주로 정월대보름에 행해진다는 점에서 기풍제의적인 의미와 세시의례적인 의미가 있다. 단순히 농경사회에서 용이 지니는 풍요의 대상으로서 종교적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안녕과 만사형통 등을 보장해 주는 신적 존재로 확대되어 온 것이다. 그러면서 우물제가 용의 영험성과 신성성을 구현하는 의례적인 실천으로써 가족 중심의 신앙 형태에서 마을신앙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사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문화상징사전 (동아출판사, 1992), 한국민속대관 3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95), 한국의 가정신앙-강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충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경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한국의 가정신앙-전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한국민속신앙사전-마을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10)

우물제

우물제
한자명

井祭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의

집필자 표인주(表仁柱)

정의

우물에 있는 용신(龍神)을 대상으로 행해지는 제의. 샘제 또는 용제라고도 불린다.

역사

우물제와 관련된 용신은 역사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보면 수렵채취 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되면서 용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종교사적 측면에서 보면 용신은 고려시대에 중요한 신격으로 자리하게 되었고, 용신신앙이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것은 단순히 고려시대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선대의 용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용의 영험성ㆍ신성성 등을 수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용을 신앙적으로 인식한 시기는 훨씬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물과 용의 관계성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용현정(龍現井)’으로 무수히 나타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삼국사기』에는 “용 두 마리가 금성 우물 속에 나타났다. 이때 소낙비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며, 성 남문에 벼락이 떨어졌다.”라는 기록이 있고, 백제 무왕인 서동은 그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지변(南池邊)에서 살던 중 그 연못의 지룡(池龍)과 교통하여 출생하였다고 하는 것을 보면 용왕제가 삼국시대 초기부터 계속 전승되어 왔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고려시대에 와서도 고려 건국주인 왕건의 가계도를 보면 왕건이 용부인에 얽히는 개성대정설화(開城大井說話)에 우물과 용의 복합 관념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용왕제인 우물제의 역사는 원초 이래로 유구한 전통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우물제는 정월 세시풍속의 하나로 거행되는 경우가 많다. 우물에 음식을 차려 놓고 물의 풍족함을 기원하기 위해 가정 단위로 행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마을 단위로 우물제를 지내기도 한다. 우물제의 신격은 용신이며, 물을 신격화한 수신(水神)이다. 용은 못이나 강 또는 바다와 같은 물속에 살며, 비나 바람을 일으키거나 몰고 다닌다고 여겨져 왔다. 이처럼 용은 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용을 위한 제사가 모두 물가라는 점도 용의 수신적 성격을 잘 나타내 준다. 이 수신이 마을의 공동우물을 지켜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을의 동신(洞神)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였다. 용신이 본래 수신으로서 물의 풍족함을 관여하는 신격이기 때문에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격으로 그 기능이 확대되었다. 급기야는 가정의 복록을 주관하거나 무병장수, 부귀다남, 무사안녕, 만사형통을 주관하는 신격으로서 다층적인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정월에 풍물굿으로 반드시 샘굿을 쳤다.

가정과 마을로 나누어 우물제의 제의적인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가정 단위의 제사 내용이다. 정월 열 나흗날에 집 안의 우물을 다 퍼내고 밤에 부인이 목욕재계한 뒤 상 위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절을 하며 집안의 행운을 빈다. 제물은 밥, 미역국, 정화수 한 그릇이다. 우물 앞에 짚을 깔고 그 위에 상을 차려 촛불을 밝혀 놓고 제물을 진설한다. 이와 같은 우물제는 집 안에 샘이 없는 경우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와 하기도 하고, 집 안이 아닌 마을의 공동우물이나 냇가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 마을 단위의 우물제는 제의적인 절차와 풍물굿이 복합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풍물굿으로만 대체하는 경우도 많다. 제사와 풍물이 어우러지는 우물제의 대표적인 예로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정동마을 정호제를 들 수 있다. 정호제는 ‘우물제’라고도 부르며, 정월대보름날 새벽에 마을의 재난 예방과 풍년ㆍ풍어를 기원하는 샘굿이다. 남녀노소가 참여하여 당산굿을 필두로 우물제를 올리고 샘굿을 친다. 샘굿이 끝나면 2월 초하루까지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지신밟기를 하였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 가운데 생기복덕을 맞추어 제관을 정하고 제관 가운데 가장 청결한 제관의 집을 선정하여 제사 음식을 준비한다. 제물로는 술, 흰 설기떡, 삼채, 오과, 포, 육어, 촛불 등이 있다. 제사는 유교적 절차에 따라 진행되며, 초헌관이 잔을 올리고 축문을 읽는다. 축문의 내용은 “維歲次 干支 某月干支某日干支十五日干支 幼學某祭官(姓名)敢昭告于, 높으신 우리 샘 각씨님께 드리옵니다. 금년에도 이 정성을 모아 공을 드리오니, 우리 동네 매사가 형통하고 마을 전체 인물들이 훌륭하게 출세할 것이며, 마을 사람 전체가 이 샘물이 약이 되어 여러 병질을 몰아내어 무병할 것을 축원하오니 흠향하옵시고 항시 맑은 물이 되시길 재배 상향 하옵니다.”이다. 아헌이 잔을 올리고 종헌이 첨작한 다음 본격적으로 풍물을 친다. 풍물은 꽹과리 3, 쟁 1, 장구 1, 북 1, 상모 3, 소고 15, 영기 2, 농기 1명으로 구성된다. 먼저 1, 2, 3채를 돌려 치고 4, 5채로 풍물패가 서서 재배한 뒤 “컹컹 나으소서 자발자발 나으소서.”라고 소리 맞추어 외친다. 1, 2, 3채를 느리게 맞추어 치면 샘 세 바퀴를 돌고 굿을 그친다. 그런 뒤 제관 이하 마을 사람 및 풍물패가 모두 음복을 하고 샘굿을 친 뒤 퇴장한다.

특징

우물제는 단순히 샘과 관계된 것이 아니라 물이 있는 곳에서 제사를 지낸다는 점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마을에서 물을 흔히 접할 수 있는 곳이 샘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제사를 많이 지내는 것뿐이지 샘이 지니는 신앙적인 의미 때문에 제사를 많이 지내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물제가 용신신앙의 일환으로 행해진다는 사실이다. 용신신앙의 일환으로 거행되기 때문에 용신을 모실 수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우물제나 용왕제를 지낼 수 있다. 따라서 우물제는 단순히 샘이라는 장소성보다도 물과 관련된 용신을 모실 수 있는 곳이고, 용신신앙의 실천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물제는 마을의 샘에서 지내는 제사로만 국한시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마을의 냇가나 깊은 산속의 샘, 바닷가 등지에서 지내는 용왕제로 확대하여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역사례

강원도 삼척지역에서 지내는 용왕제는 마을 앞 냇가에서 지내는 경우와 선창이나 바닷가에 제물을 진설하여 용왕에게 풍어를 비는 경우가 있다. 냇가에서 지내는 경우는 한 해 동안 식구들이 객지에서 탈나지 않고, 특히 물가에서 사고가 나지 않도록 기원한다. 용왕제를 지내는 사람은 정월대보름날 식전에 보름밥을 차려서 냇가로 나간다. 주로 그 집안의 주부가 지내며, 용왕에게는 밥을 해서 던져 넣는다. 이때 흰 종이에 집안 식구 수대로 밥을 싼다. 그해 운수가 좋지 않은 사람이 있으면 그 식구의 몫에는 부적을 미리 구해놓았다가 한데 넣기도 한다. 용왕에게 재배하고 밥을 냇가에 던지면서 올해 운수대통하게 해 달라고 빈다. 이를 용왕제 또는 어부제라고 부른다. 식구 중에 액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새벽에 미리 냇가에 가서 촛불을 밝히고 그 앞에 메 한 그릇을 지어 올린다. 그리고 용왕님께 “나쁜 액운을 모두 막아주십사.”하고 빈다. 용왕제에 올린 제물은 집으로 가지고 들어오지 않는다. 화천군 상서면에서는 정월대보름날 밤에 우물에 용이 내려와서 먹는다고 하여 찰밥이나 떡을 해서 물에다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세 번씩만 숟가락으로 떠서 던지고 소원을 빌었다. 이상과 같이 강원도 지역의 용왕제는 액맥이 성격이 강하게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내북면에서는 정월 열 나흗날이나 대보름날에는 산골짜기에 있는 샘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제물은 팥 시루떡, 삼색실과, 청수 등이다. 소지종이, 초, 짚 등을 준비해서 가지고 간다. 산속에 있는 샘가에 짚을 열십자로 깔고 그 위에 준비한 제물을 진설한다. 용왕에게는 ‘집안이 태평하게 해 달라, 아들과 딸이 건강하게 크게 해 달라’ 등의 기원을 한다. “용왕님”이라고 세 번 부르고 나서 용왕에게 반절을 한다. 이때 횟수는 크게 상관이 없다. 자신이 만족할 만큼 하면 된다. 그리고 동서남북으로 세 번씩 절을 한다. 용왕님소지와 식구소지를 올린다. 식구소지는 대주의 소지를 가장 먼저 올리고, 나머지 가족의 순으로 올린다. 소지를 올린 뒤에는 제물을 조금씩 떼어두고 온다. 나머지 제물은 집으로 가지고 와서 가족들이 나누어 먹는다. 그런가 하면 영동군 용화면이나 심천면에서는 용왕제를 냇가에서 지낸다. 이처럼 충북지역에서는 용왕제를 냇가에서 많이 지낸다.

충청남도 예산지역에서는 샘제를 정초에 샘에서 지낸다. 선거리나 제를 잘 모시는 사람들이 좋은 날을 알려 주면 그날 제를 모신다. 대체로 용날(辰日)이 좋다고 한다. 이에 따라 정초에는 지신제, 용왕제 등을 지내느라 바쁘다. 용왕제 역시 집안 식구들이 한 해 무탈하고 좋길 바라는 마음으로 용왕에게 비는 것이다. 고사날 저녁이 되면 주부가 직접 제물을 지고 샘으로 간다. 상황에 따라서 선거리를 부르기도 하고, 본인 혼자 가기도 한다. 제물로는 메, 떡시루, 명태 등을 올린다. 과일이나 대추, 감 등은 놓지 않는다. 용왕에게 비손과 절을 한 뒤에 식구 수대로 소지를 올려주고 온다. 공주시 탄천면에서는 정월 열 나흗날 땅거미가 진 뒤에 밥, 미역국, 나물 등을 마련해 샘으로 나간다. 샘 앞에 짚을 깔고 그 위에 마련해 간 제물을 올려놓는다. 그런 뒤 그 앞에서 자손들이 물가를 다니더라도 안전하게 해달라고 비손한다. 치성을 마친 후에는 불밝이쌀을 조금씩 세 번 집어서 샘에 넣는다. 샘에서 치성을 드릴 때에는 김쌈을 넣지 않지만 냇가에서 치성을 드릴 경우에는 미리 가져간 김에 밥을 조금씩 싸서 냇물에 던져 넣기도 하고 명태 머리를 잘라서 넣기도 한다. 이렇게 제물을 조금씩 넣는 것은 용왕님께 드리는 선물이라고 한다. 논산시 광석면에서는 용왕제를 자신들이 먹는 마을 샘에서 지낸다. 제일은 무당이나 스님이 음력 정월에 길일을 택해주기도 하지만, 주로 정월 초승이나 보름, 그믐에 행한다. 일반적으로 충남지역에서는 용왕제는 내용은 대동소이하고, 자신들이 먹는 샘에서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다.

경상남도 의령군 칠곡면에서는 용왕제를 ‘용왕먹이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의의 목적은 안과태평, 자식들의 소원성취, 수복장수이다. 주로 정월대보름이나 이월 초하룻날에 지낸다. 제의 시간은 가정마다 다르다. 아침에 행하거나 낮에 행하는 가정이 있는가 하면 인적이 드문 밤이나 새벽에 행하기도 한다. 제사는 예전에는 공동우물에서 행하였으나 우물이 없어지고 난 이후에는 근처 냇가나 산에 있는 개울에서 주로 행한다. 용왕을 먹일 때는 먼저 주부가 아침 일찍 목욕재계를 한 뒤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고 깨끗한 물을 길어 그 물로 제물을 장만한다. 장만한 제물을 제터로 옮길 때에는 더러운 것을 봐서는 안 된다. 특히 상주와 동물의 사체, 오물을 꺼린다. 제터는 각기 깨끗한 곳을 가려 정하며, 제물은 바닥에 깨끗한 짚이나 종이를 깐 뒤 진설한다. 제물은 밥, 나물, 마른 명태, 소금 등이다. 제의 절차는 간소하다. 제물을 진설한 뒤 삼배 또는 사배를 올린 다음 “용왕님네! 산신님네! 우리 자식들 소원성취 시켜 주시고 재수 있게 해 주이소, 집안 편케 해 주이소.”라고 이령수를 외며 비손한다고 한다. 비손이 끝나면 식구 수대로 소지를 올린다. 소지종이의 재가 하늘 높이 올라가면 길하다고 한다. 제의가 끝나면 각 제물을 세 번씩 나누어 물에 던지고 나머지는 그대로 둔다. 일반적으로 경남지역에서는 용왕제를 용왕먹이기라고 부른다. 일 년에 세 번, 즉 정월대보름, 삼월삼짇날 및 시월에 먹이는 경우가 많다. 용왕을 먹이는 장소는 깨끗한 냇가나 골짜기로, 각 가정이 매년 먹이는 장소가 고정되어 있다. 제사를 지내러 갈 때는 반드시 소금을 가지고 간다. 이것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뿌리면서 나쁜 것을 쳐 낸다.

전라남도지역에서는 샘에 가서 드리는 공을 ‘용왕공’이라고 한다. 곡성군 오곡면에서는 정월대보름날 밤에 동네 부녀자들이 각자 음식을 대야에 담아서 마을 앞에 흐르고 있는 섬진강 가에 가서 차린 다음 비손하고 소지하는 것으로 용왕공을 드린다. 소지를 한 다음에는 한쪽에 짚을 깔고 음식을 담아 헌식을 한다. 그러나 집 안에 샘을 판 뒤부터는 섬진강까지 가지 않고 집 안 우물 앞에서 용왕공을 드린다. 요즘에는 절에 가서 방생하는 것으로 용왕공을 대신하는 경우도 생겼다. 담양군 금성면에서는 정월대보름날이 되면 아이가 잘될 수 있도록 샘이나 우물에 가서 용왕공을 드린다. 마을에서는 샘굿을 칠 때 용왕제를 함께 지내는 경우도 있다. 목포시 서산동에서는 밥, 나물, 술 등을 준비해 샘에 가서 비손을 한다. 이를 ‘용왕’이라고 부른다. 여수시 돌산읍에서는 우물신이라 하여 정월대보름날에 보름음식을 준비하여 우물 앞에다 상을 차려 놓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전남지역에서 정월대보름날에 용왕제를 모시는 곳은 샘․냇가․강 등 물이 있는 곳이며, 가족들의 안녕과 소원성취를 기원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정초에 가족 중 손재수가 있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용왕제를 모시기도 한다.

의의

우물제는 주로 정월대보름에 행해진다는 점에서 기풍제의적인 의미와 세시의례적인 의미가 있다. 단순히 농경사회에서 용이 지니는 풍요의 대상으로서 종교적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의 안녕과 만사형통 등을 보장해 주는 신적 존재로 확대되어 온 것이다. 그러면서 우물제가 용의 영험성과 신성성을 구현하는 의례적인 실천으로써 가족 중심의 신앙 형태에서 마을신앙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종교사적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문화상징사전 (동아출판사, 1992)
한국민속대관 3 (고려대학교민족문화연구소, 1995)
한국의 가정신앙-강원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충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충북 (국립문화재연구소, 2006)
한국의 가정신앙-경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한국의 가정신앙-전남 (국립문화재연구소, 2008)
한국민속신앙사전-마을신앙 (국립민속박물관,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