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굿(灵登巫祭)

영등굿

한자명

灵登巫祭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제의

집필자 이수자(李秀子)

정의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루와 열나흘 날 사이에 제주도 해안가 마을의 본향당에서 바람의 신인 영등신을 맞이하여 풍어 및 해상안전과 해녀들의 채취물인 소라·전복·미역 등의 풍성을 기원하는 굿. 여러 마을에서 행해지는 영등굿 가운데 제주시 건입동에서 행해지는 영등굿은 특별히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라 하여 1980년 11월 1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고, 1986년 11월 1일 단체로 인정되었다. 현재 이 굿은 김윤수 심방을 기능보유자로 하여 제주칠머리당굿보존회에서 맡아 전승하고 있다.

역사

조선조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8 제주목 풍속 조에 “2월 초하루에 제주의 귀덕(歸德), 김녕(金寧), 애월(厓月) 등지에서 영등굿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귀덕과 김녕 등지에서는 나무 장대 12개를 세워 놓고 신을 맞아 제사했다 하고, 애월에 사는 사람들은 약마희(躍馬戱)를 하여 신을 즐겁게 하다가 보름날이 되면 파했는데 이를 연등(燃燈)[영등]이라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약마희에 대한 해석에는 다소 이견이 있다. 이 부분의 원문은 ‘涯月居人 得槎形如馬頭者 飾以彩帛 作躍馬戱’이다. 이 가운데 ‘槎(사)’ 자를 ‘나무 또는 나무등거리’로 해석하는지 혹은 ‘뗏목’으로 보는지에 따라 견해가 달라진다. 나무 혹은 나무 등거리로 해석하여 나무가 말머리 모양 같은 것을 얻어 이를 채색비단으로 꾸며 말이 뛰는 놀이인 약마희를 하였다고 해석한 자료가 있는가 하면, 뗏목으로 해석하여 떼배를 말머리 모양으로 만들어 이를 채색비단으로 꾸며 약마희를 하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약마희는 바다에서 놀아졌던 경조민속(競漕民俗) 놀이가 되지만 전자는 그렇지 않다. 자료에는 또한 “이 달에는 배타는 것을 금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러한 제주도의 영등굿에 관한 내용들은 이원진(李元鎭, 1594~1665)의 『탐라지(耽羅志)』를 비롯해 헌종 15년(1849)에 편찬된 홍석모(洪錫謨, 1781~1850)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비슷하게 나온다. 이로 보아 제주도의 영등굿 역사는 최소한 500년 이상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용

주로 해녀 및 어업, 선박업자의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연행되는 영등굿은 봄을 맞는 문턱에서 행해지는 계절제로서의 의미가 있다. 영등신은 내방신으로서 풍우신·풍농신·어업신·해신·해산물증식신 등으로 관념된다. 예전에는 제주도 중산간을 포함하여 해안가 마을에서 행해졌다고 하나 현재는 주로 해안가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영등신은 2월 초하루에 와서 보름에 떠난다고 믿고 있기에 이 기간에 해안마을 곳곳에서 영등굿이 행해진다. 칠머리당영등굿에서는 음력 2월 1일 영등환영제, 2월 14일 영등송별제가 행해지는데, 이 가운데 송별제가 좀 더 성대하다. 환영제 때는 신앙민만 모이기 때문에 굿이 간소해 대개 오전 중에 끝나지만, 송별제 때에는 그 외의 신앙민과 관광객도 많이 모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큰 굿판이 벌어진다.

제주도에서는 겨울과 봄의 전환기인 음력 2월에 바람신 영등할망이 제주에 온다 하여 이 달을 특히 ‘영등달’이라고 한다. 영등달에는 바람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영등굿’을 한다. 이때에는 마치 꽃샘추위가 닥치는 것처럼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한다. 영등신은 정월 그믐에 우도에 들어가 이튿날부터 15일까지 해조류를 따먹고 우도 질진깍을 떠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월 보름이 지나면 소라나 전복 등의 속이 텅 비어 있다고 한다. 이 기간에 제주시 건입동, 조천읍 북촌리·함덕리, 구좌읍 김녕리·하도리·세화리, 우도면,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수산리·신양리·온평리, 안덕면 사계리 등 해안가 마을에서는 영등굿을 한다. 영등굿은 특히 해녀를 기반으로 전승되고 있어 앞으로 해녀 즉 잠수업을 하는 사람이 줄어듦으로써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영등굿은 제주도의 여러 마을에서 행해진 것으로 제주도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건입동 칠머리당에서 행해지는 영등굿이 규모가 크고 의의도 있어 1980년 11월 1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 굿을 중심으로 영등굿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을 모신 본향당이 있다. 이 가운데 건입동의 본향당은 원래 일곱 개의 머리 모양을 한 칠머리에 있어서 칠머리당이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에 따라 굿이름도 칠머리당영등굿이 됐다. 칠머리당은 건입포 포구에 있다가 건입포 산지항 축항공사로 본향당이 있던 곳에 해안도로를 냄으로써 현재 제주항 동편 사라봉과 별도봉의 중간 바닷가 언덕으로 옮겨졌다. 옆에는 만덕기념관과 칠머리당영등굿 전수회관이 있다.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영등굿은 영등신을 모시고 해상에서의 안전 및 어업과 해녀가 채취하는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굿이기도 하지만 마을을 수호하는 본향당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과태평을 기원하기도 하여 당굿도 겸하고 있다. 당에는 세 개의 바위가 있는데, 각각의 바위에는 두 분씩의 신명(神名)이 적혀 있다. 서쪽에는 ‘영등대왕·해신선왕’, 중앙에는 ‘도원수감찰지방관·요왕부인’, 동쪽에는 ‘남당하르방·남당할망’이다. 중앙의 신들이 마을의 본향신 부부이며 동쪽의 신들은 제주시 일도동 막은골이라는 곳에 있던 남당의 신이었으나 이 당이 헐리면서 여기에 함께 모셔졌다. 칠머리당영등굿은 예전에는 건입동 사람들이 대부분 참여하던 성대한 굿이었다고 한다. 정월 보름부터 마을 걸궁패가 집집마다 돌며 문굿을 쳐주고 쌀을 받아 기금을 마련하여 영등굿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 탑동이 매립됨에 따라 바다밭이 줄어 해녀 및 어부의 수도 줄고, 건입동 토박이들도 다른 곳으로 많이 이주했다. 또 비행기로 수하물을 운반함에 따라 수하물 운반을 전담하던 선박도 줄어 지금은 규모가 예전에 비해 훨씬 줄어 들었다. 현재 칠머리당영등굿은 마을굿의 기능을 상실하고 어부와 잠녀를 위한 굿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녀나 선주의 부인들은 영등굿이 있기 전날 밤새워 떡과 음식을 마련한다. 영등굿이 있는 날 새벽 이들은 집에서 음식과 돗자리 등을 가지고 와서 상을 차린다. 제물은 기본적으로 밥 세 그릇과 과일·해물·시루떡·백편 등을 준비한다. 배를 갖고 있으면 배서낭 몫, 익사한 사람이 있으면 그 숫자만큼 밥그릇을 추가한다. 월덕기 및 기매 등이 본향당에 설치되어 있는 가운데 굿은 단골신앙민들이 차려 놓은 제상에 촛불을 켜며 시작된다. 이어 잠수회, 선주, 단골민들이 삼배를 하고, 심방들이 공시상에 무구를 바친다. 이후에 심방들이 초감제, 본향듦, 요왕맞이, 씨드림과 씨점, 마을 도액막음, 영감놀이, 배방선과 지드림, 도진 등의 순서로 굿을 진행한다.

  1. 초감제는 굿에서 모시는 수많은 신을 제청에 불러 자리에 앉히고 굿하는 이유를 밝히며 술잔을 바치면서 굿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2. 본향듦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본향신을 모셔 들이고 자손들의 소지를 올리면서 지역 주민들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3. 요왕맞이는 사해용왕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신을 맞기 위해 용왕길을 정성껏 치운다. 용왕문은 푸른 잎이 붙은 댓가지를 10〜12개씩 제장 중앙에 두 줄로 꽂아 놓은 것이다. 그 사잇길이 용왕길로 상징된다. 이들 댓가지에는 백지, 지전, 현찰 등을 매달아 놓는다. 심방이 이 사이에서 길을 깨끗이 닦는 시늉을 하면 해녀 대표들은 용왕길을 나아가면서 “풍파 만날 일 막아줍서···” 등의 말을 하면서 어업의 안전과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며 용왕문을 열어 나간다. 용왕문을 연다는 것은 댓가지를 차례로 뽑아 용왕다리와 함께 접어 나가는 것이다. 나중에 여기에 사용된 기물들을 모두 불에 태운다.

  4. 씨드림과 씨점은 바다와 같은 곳, 즉 바다밭에 씨를 뿌려서, 어떤 해산물이 풍작을 이룰 것인가를 점치는 것이다. 씨드림은 해녀들이 바다에 좁씨를 뿌리는 것이다, 좁씨는 해산물의 씨앗을 상징한다. 후에는 씨점을 친다, 이것은 어떤 바다에서 어떤 종류의 해산물이 많이 날 것인지를 점치는 것이다. 소미들은 점을 쳐 해녀들에게 이 내용을 알려준다. 씨드림은 바다밭에 씨를 뿌리며,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5. 마을 도액막음은 마을주민들의 안전을 기원하고자 액을 막는 의식이다. 심방들은 쌀점을 하여 단골신앙민들의 앞날을 점쳐 준다.

  6. 영감놀이는 바다의 풍어를 가져다 준다는 영감신(도깨비신)을 대접하여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어부나 선주들을 위해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하는 것으로, 가면을 쓰고 한다는 특징이 있다.

  7. 배방선과 지드림은 모든 액을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내면서 용왕에게 제물을 바치며 기원하는 것이다. 배방선은 짚으로 만든 1m 안팎의 모형 배에 오색의 비단으로 만든 돛을 달고, 제상에 올렸던 제물 약간씩과 살아 있는 수탉을 실어 먼 바다로 띄어 보내는 것이다. 지드림은 ‘지아룀’이라고도 한다. 해녀들이 한지(韓紙)에 자신이 가져온 제물을 조금씩 떼어 주먹만한 크기로 싸서 바다에 던지는 것이다. 집안의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 숫자와 바다에서 익사한 사람 숫자만큼 지(紙)를 만들어 용왕에게 축원한다. 이것은 용왕과 배서낭, 죽은 영혼들을 대접하는 것이다.

  8. 도진은 굿에 모신 모든 신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이로써 모든 영등굿이 끝난다.

칠머리당영등굿의 순서는 대체로 이상과 같다. 그러나 심방은 상황에 따라 굿의 내용이나 속도를 가감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은 영등굿은 마을의 본향당굿과 잠녀굿의 기본인 요왕맞이, 어부들의 풍어굿인 영감놀이 등이 복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주도칠머리당영등굿에 관한 최초의 보고서 및 1981년과 1982년 자료를 보면 칠머리당영등굿에서 영감놀이는 행해지지 않았었다. 따라서 이 놀이는 원래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어업에 종사하는 단골신앙민이 많아서 풍어를 더욱 강조하여 기원하고자 언젠가 이 놀이는 칠머리당영등굿에 수용되어 포함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문화는 실용적 기능 때문에 변화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와 같은 상황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영등굿이 어떻게 하여 행해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신화에는 당나라 상인의 배가 제주에서 난파한 결과 네 조각의 시신이 제주도의 네 곳에 떠올랐으며 그 후로 정월 그믐에 서해로부터 바람이 불면 영등신이 왔다고 하여 어촌 사람들이 무당을 불러 굿을 하였다는 내용도 있고, 이월 초하루에 죽은 전영등이라는 글 선생을 제사 지내준 결과 유대감이 풍년을 맞자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이 이날 전영등을 제사한 까닭에 영등굿이 시작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자료는 외눈백이와 관련된 신화라 할 수 있다. 이 내용은『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에 소개되어 있다.

성은 황씨이고 이름은 영등이란 신이 요왕황제국에 있었다. 마침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의 고기배가 풍파를 만나 외눈배기 땅에 불려가게 되었다. 영등대왕이 배를 숨겨 이들을 구해주고 가남보살[관음보살]을 외며 돌아가라 했다. 중간에 파도가 가라앉자 어부들은 이제는 괜찮겠지 하며 이를 외지 않았다. 홀연히 강풍이 불어 배가 다시 외눈배기 땅으로 들어갔다. 영등대왕이 다시 나타나 이들을 살려준 후 가남보살을 외며 가라 하면서 영등달 초하룻날은에 자기를 생각해 달라고 하였다. 외눈배기들은 영등대왕 때문에 좋은 음식을 못 먹게 되자 3등분하여 그를 죽였다. 영등대왕의 머리는 소섬, 발은 한수리 비꿀물(우물이름), 몸통은 성산으로 각각 떠올랐다.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온 어부들은 바다의 수중액을 막아준 영등대왕의 은혜를 생각하여 정월 그믐날에는 소섬 , 초하루에는 한수리 비꿀물, 그리고 초닷새날에는 성산에서 각각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화는 영등대왕이 해상사고를 미연에 방지해 주는 바다의 수호신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게 하며, 현재 소섬과 한수리 영등당 및 성산 등지에서 순서대로 영등굿을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신화가 있어서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에 있는 영등당은 마을의 본향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주도에서 유일무이한 영등당이 되었다고 한다. 또 여기에서 행해지는 영등굿에는 전도적 차원에서 많은 신앙민이 참여해 왔다고 한다. 영등굿은 기본적으로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을 모시고 하는 굿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신화를 중시하면 영등굿에서 모시는 신이 언제부터 남신인 영등대왕으로 바뀌어졌는지 앞으로의 연구과제가 된다.

지역사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 2월 삭일 조에는 “영남 지방의 풍속에 집집마다 신에게 제사하는 풍속이 있다. 이를 영등(靈登)이라 한다. 이 신이 무당에게 내리면 무당은 동네로 나돌아 다니며, 사람들은 다투어 이를 맞아다가 즐긴다. 이달 1일부터 사람을 꺼려 만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기를 15일 혹은 20일까지 간다”는 내용이 있다. 이처럼 영등신에 대한 인식이나 영등굿은 우리나라 육지에도 있다. 영등신앙은 주로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간농촌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영남지방에서는 이 신을 바람할매라고 한다. 영등할머니는 2월 1일에 내려와서 2월 20일 상천(上天)한다고 믿고 있다. 육지의 경우 영등할머니는 바람신, 농사신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비해 제주도에서는 비바람신, 농신의 성격도 있지만 이 보다 해양신에다 소라·전복·미역 등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을 풍성하게 해주는 증식신이 되기도 하고 마을 공동체에서 모셔지는 신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제주도의 경우, 영등굿은 주로 해안가 마을에서 촌락 공동제의로 행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비해 육지에서는 가정을 단위로 한 개별제의라는 점이 다르다.

육지에서는 영등할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해에는 며느리가 비를 맞아 험상궂게 보이도록 하려고 비를 몰고 오기 때문에 풍년이 들며, 딸을 데리고 오는 해에는 옷이 바람에 나부껴서 딸을 이쁘게 보이도록 하려고 바람을 몰아 오기 때문에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제주도에서는 영등할망이 딸을 데리고 오면 딸과 사이가 좋아 날씨가 좋다고 하며,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에는 서로 사이가 나빠 날씨가 궂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영등신은 ‘영등할망’으로 대표되지만 간혹 영등대왕이 식솔을 데리고 온다고도 한다. 식솔은 영등하르방, 영등대왕, 영등별감, 영등좌수, 영등호장, 영등우장 등이다. 비옷을 입은 영등우장이 오면 비가 오고, 두터운 솜 외투를 입은 영등이 오면 그해 영등달에 눈이 많이 오며, 차림이 허술한 영등이 오면 날씨가 좋다고 하기도 한다. 영등신이 왔다가 가는 기간에 많은 금기가 있는 것은 육지나 제주도나 비슷하다. 육지에서는 논밭갈이는 물론 땅을 다루는 일, 쌀을 집 안에서 밖으로 내는 일, 물건을 사고 파는 일, 심지어는 빨래까지도 금하기도 한다. 빨래를 하면 구더기가 생긴다고 하는 속신도 있는데, 이 속신은 제주도에도 있다.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新增東國輿地勝覽, 제주도 영등굿 (장주근·이보형, 悅話堂, 1983),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진성기, 민속원, 1991), 바람의 축제 칠머리당 영등굿 (문무병·칠머리당굿보존회, 황금알, 2005)

영등굿

영등굿
한자명

灵登巫祭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무속신앙 > 무속제의

집필자 이수자(李秀子)

정의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루와 열나흘 날 사이에 제주도 해안가 마을의 본향당에서 바람의 신인 영등신을 맞이하여 풍어 및 해상안전과 해녀들의 채취물인 소라·전복·미역 등의 풍성을 기원하는 굿. 여러 마을에서 행해지는 영등굿 가운데 제주시 건입동에서 행해지는 영등굿은 특별히 제주칠머리당영등굿이라 하여 1980년 11월 1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지정되었고, 1986년 11월 1일 단체로 인정되었다. 현재 이 굿은 김윤수 심방을 기능보유자로 하여 제주칠머리당굿보존회에서 맡아 전승하고 있다.

역사

조선조 중종 25년(1530)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권38 제주목 풍속 조에 “2월 초하루에 제주의 귀덕(歸德), 김녕(金寧), 애월(厓月) 등지에서 영등굿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귀덕과 김녕 등지에서는 나무 장대 12개를 세워 놓고 신을 맞아 제사했다 하고, 애월에 사는 사람들은 약마희(躍馬戱)를 하여 신을 즐겁게 하다가 보름날이 되면 파했는데 이를 연등(燃燈)[영등]이라 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약마희에 대한 해석에는 다소 이견이 있다. 이 부분의 원문은 ‘涯月居人 得槎形如馬頭者 飾以彩帛 作躍馬戱’이다. 이 가운데 ‘槎(사)’ 자를 ‘나무 또는 나무등거리’로 해석하는지 혹은 ‘뗏목’으로 보는지에 따라 견해가 달라진다. 나무 혹은 나무 등거리로 해석하여 나무가 말머리 모양 같은 것을 얻어 이를 채색비단으로 꾸며 말이 뛰는 놀이인 약마희를 하였다고 해석한 자료가 있는가 하면, 뗏목으로 해석하여 떼배를 말머리 모양으로 만들어 이를 채색비단으로 꾸며 약마희를 하였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후자의 경우 약마희는 바다에서 놀아졌던 경조민속(競漕民俗) 놀이가 되지만 전자는 그렇지 않다. 자료에는 또한 “이 달에는 배타는 것을 금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이러한 제주도의 영등굿에 관한 내용들은 이원진(李元鎭, 1594~1665)의 『탐라지(耽羅志)』를 비롯해 헌종 15년(1849)에 편찬된 홍석모(洪錫謨, 1781~1850)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비슷하게 나온다. 이로 보아 제주도의 영등굿 역사는 최소한 500년 이상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용

주로 해녀 및 어업, 선박업자의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연행되는 영등굿은 봄을 맞는 문턱에서 행해지는 계절제로서의 의미가 있다. 영등신은 내방신으로서 풍우신·풍농신·어업신·해신·해산물증식신 등으로 관념된다. 예전에는 제주도 중산간을 포함하여 해안가 마을에서 행해졌다고 하나 현재는 주로 해안가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영등신은 2월 초하루에 와서 보름에 떠난다고 믿고 있기에 이 기간에 해안마을 곳곳에서 영등굿이 행해진다. 칠머리당영등굿에서는 음력 2월 1일 영등환영제, 2월 14일 영등송별제가 행해지는데, 이 가운데 송별제가 좀 더 성대하다. 환영제 때는 신앙민만 모이기 때문에 굿이 간소해 대개 오전 중에 끝나지만, 송별제 때에는 그 외의 신앙민과 관광객도 많이 모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큰 굿판이 벌어진다.

제주도에서는 겨울과 봄의 전환기인 음력 2월에 바람신 영등할망이 제주에 온다 하여 이 달을 특히 ‘영등달’이라고 한다. 영등달에는 바람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영등굿’을 한다. 이때에는 마치 꽃샘추위가 닥치는 것처럼 바람이 불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한다. 영등신은 정월 그믐에 우도에 들어가 이튿날부터 15일까지 해조류를 따먹고 우도 질진깍을 떠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2월 보름이 지나면 소라나 전복 등의 속이 텅 비어 있다고 한다. 이 기간에 제주시 건입동, 조천읍 북촌리·함덕리, 구좌읍 김녕리·하도리·세화리, 우도면,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수산리·신양리·온평리, 안덕면 사계리 등 해안가 마을에서는 영등굿을 한다. 영등굿은 특히 해녀를 기반으로 전승되고 있어 앞으로 해녀 즉 잠수업을 하는 사람이 줄어듦으로써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영등굿은 제주도의 여러 마을에서 행해진 것으로 제주도 문화를 대표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건입동 칠머리당에서 행해지는 영등굿이 규모가 크고 의의도 있어 1980년 11월 1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 굿을 중심으로 영등굿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주도에는 마을마다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을 모신 본향당이 있다. 이 가운데 건입동의 본향당은 원래 일곱 개의 머리 모양을 한 칠머리에 있어서 칠머리당이이란 이름이 붙었다. 이에 따라 굿이름도 칠머리당영등굿이 됐다. 칠머리당은 건입포 포구에 있다가 건입포 산지항 축항공사로 본향당이 있던 곳에 해안도로를 냄으로써 현재 제주항 동편 사라봉과 별도봉의 중간 바닷가 언덕으로 옮겨졌다. 옆에는 만덕기념관과 칠머리당영등굿 전수회관이 있다.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영등굿은 영등신을 모시고 해상에서의 안전 및 어업과 해녀가 채취하는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굿이기도 하지만 마을을 수호하는 본향당신을 모시고 마을의 안과태평을 기원하기도 하여 당굿도 겸하고 있다. 당에는 세 개의 바위가 있는데, 각각의 바위에는 두 분씩의 신명(神名)이 적혀 있다. 서쪽에는 ‘영등대왕·해신선왕’, 중앙에는 ‘도원수감찰지방관·요왕부인’, 동쪽에는 ‘남당하르방·남당할망’이다. 중앙의 신들이 마을의 본향신 부부이며 동쪽의 신들은 제주시 일도동 막은골이라는 곳에 있던 남당의 신이었으나 이 당이 헐리면서 여기에 함께 모셔졌다. 칠머리당영등굿은 예전에는 건입동 사람들이 대부분 참여하던 성대한 굿이었다고 한다. 정월 보름부터 마을 걸궁패가 집집마다 돌며 문굿을 쳐주고 쌀을 받아 기금을 마련하여 영등굿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 탑동이 매립됨에 따라 바다밭이 줄어 해녀 및 어부의 수도 줄고, 건입동 토박이들도 다른 곳으로 많이 이주했다. 또 비행기로 수하물을 운반함에 따라 수하물 운반을 전담하던 선박도 줄어 지금은 규모가 예전에 비해 훨씬 줄어 들었다. 현재 칠머리당영등굿은 마을굿의 기능을 상실하고 어부와 잠녀를 위한 굿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녀나 선주의 부인들은 영등굿이 있기 전날 밤새워 떡과 음식을 마련한다. 영등굿이 있는 날 새벽 이들은 집에서 음식과 돗자리 등을 가지고 와서 상을 차린다. 제물은 기본적으로 밥 세 그릇과 과일·해물·시루떡·백편 등을 준비한다. 배를 갖고 있으면 배서낭 몫, 익사한 사람이 있으면 그 숫자만큼 밥그릇을 추가한다. 월덕기 및 기매 등이 본향당에 설치되어 있는 가운데 굿은 단골신앙민들이 차려 놓은 제상에 촛불을 켜며 시작된다. 이어 잠수회, 선주, 단골민들이 삼배를 하고, 심방들이 공시상에 무구를 바친다. 이후에 심방들이 초감제, 본향듦, 요왕맞이, 씨드림과 씨점, 마을 도액막음, 영감놀이, 배방선과 지드림, 도진 등의 순서로 굿을 진행한다.

초감제는 굿에서 모시는 수많은 신을 제청에 불러 자리에 앉히고 굿하는 이유를 밝히며 술잔을 바치면서 굿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의식이다.

본향듦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인 본향신을 모셔 들이고 자손들의 소지를 올리면서 지역 주민들의 안과태평을 기원하는 의식이다.

요왕맞이는 사해용왕을 맞이하는 의식이다. 신을 맞기 위해 용왕길을 정성껏 치운다. 용왕문은 푸른 잎이 붙은 댓가지를 10〜12개씩 제장 중앙에 두 줄로 꽂아 놓은 것이다. 그 사잇길이 용왕길로 상징된다. 이들 댓가지에는 백지, 지전, 현찰 등을 매달아 놓는다. 심방이 이 사이에서 길을 깨끗이 닦는 시늉을 하면 해녀 대표들은 용왕길을 나아가면서 “풍파 만날 일 막아줍서···” 등의 말을 하면서 어업의 안전과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며 용왕문을 열어 나간다. 용왕문을 연다는 것은 댓가지를 차례로 뽑아 용왕다리와 함께 접어 나가는 것이다. 나중에 여기에 사용된 기물들을 모두 불에 태운다.

씨드림과 씨점은 바다와 같은 곳, 즉 바다밭에 씨를 뿌려서, 어떤 해산물이 풍작을 이룰 것인가를 점치는 것이다. 씨드림은 해녀들이 바다에 좁씨를 뿌리는 것이다, 좁씨는 해산물의 씨앗을 상징한다. 후에는 씨점을 친다, 이것은 어떤 바다에서 어떤 종류의 해산물이 많이 날 것인지를 점치는 것이다. 소미들은 점을 쳐 해녀들에게 이 내용을 알려준다. 씨드림은 바다밭에 씨를 뿌리며,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마을 도액막음은 마을주민들의 안전을 기원하고자 액을 막는 의식이다. 심방들은 쌀점을 하여 단골신앙민들의 앞날을 점쳐 준다.

영감놀이는 바다의 풍어를 가져다 준다는 영감신(도깨비신)을 대접하여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어부나 선주들을 위해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하는 것으로, 가면을 쓰고 한다는 특징이 있다.

배방선과 지드림은 모든 액을 배에 실어 바다에 띄워 보내면서 용왕에게 제물을 바치며 기원하는 것이다. 배방선은 짚으로 만든 1m 안팎의 모형 배에 오색의 비단으로 만든 돛을 달고, 제상에 올렸던 제물 약간씩과 살아 있는 수탉을 실어 먼 바다로 띄어 보내는 것이다. 지드림은 ‘지아룀’이라고도 한다. 해녀들이 한지(韓紙)에 자신이 가져온 제물을 조금씩 떼어 주먹만한 크기로 싸서 바다에 던지는 것이다. 집안의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 숫자와 바다에서 익사한 사람 숫자만큼 지(紙)를 만들어 용왕에게 축원한다. 이것은 용왕과 배서낭, 죽은 영혼들을 대접하는 것이다.

도진은 굿에 모신 모든 신을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이로써 모든 영등굿이 끝난다.

칠머리당영등굿의 순서는 대체로 이상과 같다. 그러나 심방은 상황에 따라 굿의 내용이나 속도를 가감하기도 한다. 이상과 같은 영등굿은 마을의 본향당굿과 잠녀굿의 기본인 요왕맞이, 어부들의 풍어굿인 영감놀이 등이 복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주도칠머리당영등굿에 관한 최초의 보고서 및 1981년과 1982년 자료를 보면 칠머리당영등굿에서 영감놀이는 행해지지 않았었다. 따라서 이 놀이는 원래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어업에 종사하는 단골신앙민이 많아서 풍어를 더욱 강조하여 기원하고자 언젠가 이 놀이는 칠머리당영등굿에 수용되어 포함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문화는 실용적 기능 때문에 변화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와 같은 상황은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른다.

영등굿이 어떻게 하여 행해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신화에는 당나라 상인의 배가 제주에서 난파한 결과 네 조각의 시신이 제주도의 네 곳에 떠올랐으며 그 후로 정월 그믐에 서해로부터 바람이 불면 영등신이 왔다고 하여 어촌 사람들이 무당을 불러 굿을 하였다는 내용도 있고, 이월 초하루에 죽은 전영등이라는 글 선생을 제사 지내준 결과 유대감이 풍년을 맞자 이를 알게 된 사람들이 이날 전영등을 제사한 까닭에 영등굿이 시작되었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자료는 외눈백이와 관련된 신화라 할 수 있다. 이 내용은『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에 소개되어 있다.

성은 황씨이고 이름은 영등이란 신이 요왕황제국에 있었다. 마침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의 고기배가 풍파를 만나 외눈배기 땅에 불려가게 되었다. 영등대왕이 배를 숨겨 이들을 구해주고 가남보살[관음보살]을 외며 돌아가라 했다. 중간에 파도가 가라앉자 어부들은 이제는 괜찮겠지 하며 이를 외지 않았다. 홀연히 강풍이 불어 배가 다시 외눈배기 땅으로 들어갔다. 영등대왕이 다시 나타나 이들을 살려준 후 가남보살을 외며 가라 하면서 영등달 초하룻날은에 자기를 생각해 달라고 하였다. 외눈배기들은 영등대왕 때문에 좋은 음식을 못 먹게 되자 3등분하여 그를 죽였다. 영등대왕의 머리는 소섬, 발은 한수리 비꿀물(우물이름), 몸통은 성산으로 각각 떠올랐다.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온 어부들은 바다의 수중액을 막아준 영등대왕의 은혜를 생각하여 정월 그믐날에는 소섬 , 초하루에는 한수리 비꿀물, 그리고 초닷새날에는 성산에서 각각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신화는 영등대왕이 해상사고를 미연에 방지해 주는 바다의 수호신적 성격을 띠고 있음을 알게 하며, 현재 소섬과 한수리 영등당 및 성산 등지에서 순서대로 영등굿을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신화가 있어서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에 있는 영등당은 마을의 본향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주도에서 유일무이한 영등당이 되었다고 한다. 또 여기에서 행해지는 영등굿에는 전도적 차원에서 많은 신앙민이 참여해 왔다고 한다. 영등굿은 기본적으로 바람의 신인 영등할망을 모시고 하는 굿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신화를 중시하면 영등굿에서 모시는 신이 언제부터 남신인 영등대왕으로 바뀌어졌는지 앞으로의 연구과제가 된다.

지역사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 2월 삭일 조에는 “영남 지방의 풍속에 집집마다 신에게 제사하는 풍속이 있다. 이를 영등(靈登)이라 한다. 이 신이 무당에게 내리면 무당은 동네로 나돌아 다니며, 사람들은 다투어 이를 맞아다가 즐긴다. 이달 1일부터 사람을 꺼려 만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기를 15일 혹은 20일까지 간다”는 내용이 있다. 이처럼 영등신에 대한 인식이나 영등굿은 우리나라 육지에도 있다. 영등신앙은 주로 우리나라 중부 이남의 산간농촌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영남지방에서는 이 신을 바람할매라고 한다. 영등할머니는 2월 1일에 내려와서 2월 20일 상천(上天)한다고 믿고 있다. 육지의 경우 영등할머니는 바람신, 농사신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비해 제주도에서는 비바람신, 농신의 성격도 있지만 이 보다 해양신에다 소라·전복·미역 등 해녀들이 채취하는 해산물을 풍성하게 해주는 증식신이 되기도 하고 마을 공동체에서 모셔지는 신이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제주도의 경우, 영등굿은 주로 해안가 마을에서 촌락 공동제의로 행해진다는 특징이 있다. 이에 비해 육지에서는 가정을 단위로 한 개별제의라는 점이 다르다.

육지에서는 영등할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오는 해에는 며느리가 비를 맞아 험상궂게 보이도록 하려고 비를 몰고 오기 때문에 풍년이 들며, 딸을 데리고 오는 해에는 옷이 바람에 나부껴서 딸을 이쁘게 보이도록 하려고 바람을 몰아 오기 때문에 흉년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제주도에서는 영등할망이 딸을 데리고 오면 딸과 사이가 좋아 날씨가 좋다고 하며, 며느리를 데리고 올 때에는 서로 사이가 나빠 날씨가 궂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영등신은 ‘영등할망’으로 대표되지만 간혹 영등대왕이 식솔을 데리고 온다고도 한다. 식솔은 영등하르방, 영등대왕, 영등별감, 영등좌수, 영등호장, 영등우장 등이다. 비옷을 입은 영등우장이 오면 비가 오고, 두터운 솜 외투를 입은 영등이 오면 그해 영등달에 눈이 많이 오며, 차림이 허술한 영등이 오면 날씨가 좋다고 하기도 한다. 영등신이 왔다가 가는 기간에 많은 금기가 있는 것은 육지나 제주도나 비슷하다. 육지에서는 논밭갈이는 물론 땅을 다루는 일, 쌀을 집 안에서 밖으로 내는 일, 물건을 사고 파는 일, 심지어는 빨래까지도 금하기도 한다. 빨래를 하면 구더기가 생긴다고 하는 속신도 있는데, 이 속신은 제주도에도 있다.

참조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참고문헌

東國歲時記
新增東國輿地勝覽
제주도 영등굿 (장주근·이보형, 悅話堂, 1983)
제주도무가본풀이사전 (진성기, 민속원, 1991)
바람의 축제 칠머리당 영등굿 (문무병·칠머리당굿보존회, 황금알,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