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년식(成年式)

성년식

한자명

成年式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관례|계례

집필자 박홍갑(朴洪甲)

정의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젊은이에게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필요한 규범과 가치, 생활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 등을 가르치고 성인이 되었음을 축하하기 위해 행하던 일종의 통과의례通過儀禮.

개관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고비마다 치르는 통과의례는 다양한데, 그중 성년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치르는 성년식成年式은 동서고금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성년식의 통과의례에서 인간은 대개 육체적 가학을 통한 분리의례에 의해 특정 집단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끔 거듭난다. 분리의례의 대표적인 것이 ‘할례’이다. 박혁거세朴赫居世 신화 속의 알영閼英이 북천北川에서 부리를 떨어뜨린 것 역시 일종의 할례의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부족국가 마한馬韓에서 소년들이 등에다 상처를 내어 줄을 꿰고 통나무를 끌면서 그들이 훈련받을 집을 지었다는 것처럼, 성년식의 통과의례를 암시하는 단면도 발견된다. 특히 965년(고려 광종 16)에 세자 유伷에게 원복元服의 예를 행했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사가 보이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행한 관례의식冠禮儀式을 처음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고려 왕실에서 관례의식을 도입했지만, 관례의식이 민간에서까지 통용된 것은 조선시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유교가 널리 보급되면서 성년식은 왕실에서 양반까지 반드시 행하던 통과의례가 되었다. 특히, 고려 말에 도입된 『주자가례朱子家禮』가 조선조 양반가의 필수적인 의례로 정착되면서, 관례는 관혼상제의 첫 번째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는 관례는 15세에서 20세 사이의 남자아이에게 땋아 내렸던 머리를 올려 복건幅巾・초립草笠・사모紗帽・탕건宕巾 등을 씌워주는 의식이었는데, 이를 통해 관례를 치른 아이는 성인으로서의 예절 및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지켜야 함을 깨닫게 했다. 여자아이도 15세 전후가 되면 쪽을 찌어올리고 비녀를 꽂아주는 계례筓禮를 행하였는데, 계례는 혼례 속에 흡수되어 관례만큼 보편화되지 않았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는 동안 생긴 조혼 풍습으로 10세 전후에 관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관례의식을 치르지 않은 채 초립이나 복건을 씌우는 풍습까지 생겨나 ‘초립동草笠童(초립을 쓴 사내아이)’이란 말도 생겨났다. 이렇듯 우리 성년식인 관례는 지역과 가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행해지다가 갑오개혁을 전후하여 그 의미가 퇴색하였다. 1895년의 단발령 이후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오늘날의 성년식 또한 매년 5월에 유교적 의례에 맞춰 행해지고는 있지만, 보편적인 의례가 아니란 점에서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형편이다.

내용

반 게넵(A. Van Gennep)은,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처한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로, 혹은 어떤 사회적 세계로부터 다른 세계로 통과하거나 전이하는 고비에서 행해지는 의례 체계를 ‘통과의례’로 정의했다 . 그는 통과의례에 분리─전이─통합의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틀을 모든 사회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그 기본적 틀이 공통적인 관습구조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듯 인간이 사회화・문화화의 과정에서 지위와 역할을 획득하는 데 따른 시련이 통과의례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성인이 되기 위한 ‘입사의례入社儀禮(initiation)’이다. 입사의례의 중심개념을 ‘죽음과 재생’으로 파악한 엘리아데(M. Eliade) 역시 인간은 태어날 때에 아직 완성되지 못한 단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불완전한 태아 상태의 인간이 통과의례를 거쳐 영적으로 거듭나야만 비로소 완전하고 성숙해진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통합의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상적 죽음이 필요한데, 이때 자주 동원되던 것이 육체적 가학과 술이었다. 한편, 우리전통사회의 관례에서 행해지던 ‘술 마시기’ 의례는 아이의 모습이 없어졌음을 공인하면서 동시에 어른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였다.

이런 성년식은 부족사회나 초기 국가사회에서는 사회적 의미가 매우 컸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성년의 단계로 들어선다는 것은 비로소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년식으로 치러지는 통과의례는 동서고금을 통해 공통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고대국가에서 행해지던 대표적인 성년식인 ‘할례割禮’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통과의례에는 신체 일부를 절단・절제하거나 상처를 내는 절차가 따랐다. 입묵入墨, 반흔문신, 발치拔齒(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등), 또는 새끼손가락의 제1・2관절부터 앞부분을 절단(아프리카 남부)하거나, 귓불을 자르거나, 귓불 또는 코의 격벽에 구멍을 뚫는 천공 관습, 머리털을 일정한 형태로 자르는 것 등도 이런 의례에 해당했다. 이처럼 신체에 훼손을 받은 사람은 이에 따른 분리의례에 의해서 일반 세간에서 격리되며, 이후 특정 집단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치며 거듭나게 된다.

한편, 영국의 교육철학자 피터스(R. S. Peters)는 교육을 성년식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즉, 교육은 새로운 세대에서 기성 문화체제로 입문하게 하는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년식은 소년기에서 성년기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신체적・정신적 성숙을 축하하며, 가족의 일원에서 벗어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재탄생한 개인에게 교육받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성년식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과 의식 절차는 지역이나 부족마다 달랐으나, 대개 10~18세 사이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각 부족의 종교적 의식을 빌려 실시되었다. 부족 단위의 큰 행사로 열리는 성년식은 주로 남자를 대상으로 며칠씩 열리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나 오늘날 일부에서는 2차 성징의 신체적 변화를 성년의 구체적 기준으로 보기도 하지만, 종교적 기준으로는 보통 나이로 성인식 시기를 판단한다. 서구사회에서는 대개 16~22세에 도달하면 성년식을 행하며, 유년을 벗어나 법적으로 성년의 권리를 가지는 시기에 성년이 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년식은 성년이 되는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구성원이 된다거나 어떤 작업집단에 속하게 되는 과정에서 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각 지역과 문화권마다 특색 있게 치러지던 성년식이 오늘날에는 하나의 형식으로만 남은 경우가 많다.

지역사례

문화권역마다 각기 다른 성년의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승불교에서는 20세 미만의 남자아이들에게 단기간 출가하여 승려 체험을 하게 하는 ‘신분의식’을 통해 성인의식을 치른다. 기독교 사회에서는 청년 스스로 성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 바하이교에서는 15세가 되면 성년으로 간주하여, 바하이 공동체에 남을 지를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힌두교에서는 ‘드비자(Dvija)’라고 부르는 종교적 재생 의식을 통해 가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음을 일깨워주는데, 소년들은 가면을 쓰고 종교 의례를 준비하고, 여자는 사리를 입고 의례를 행함으로써 성인임을 인정받는다. 유대교의 경우에는 소년이면 13세에 종교적으로 성숙함을 인정하여 ‘바르미츠바(bar mitzvah)’라는 의식을 치르고, 소녀일 때는 12세에 ‘바트미츠바(batmitzvah)’라는 의식을 치른다. 아울러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미성년자에게 샤리아 율법을 연마하여 알라의 말씀을 듣고 이슬람 전통을 배우도록 하였다가, 성인이 되었다는 증표가 나타나면 샤리아에 따라 예배 참여와 율법적 의무의 이행을 강요한다. 한자문화권의 유교국가에서는 성년식이 통상 15~20세 전후로 이뤄졌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행해진 성년식은 관례와 계례이다. 이 두 의식은 중국에서 도입된 『주자가례』에 근거한 것으로, 각 신분에 따라 의복이나 절차가 달랐다.

특징 및 의의

인간은 집단적인 사회에서 그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평생 치르는 통과의례가 매우 중요한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지닌다. 태어나기 전의 기자祈子 습속에서부터 출생의례와 결혼 및 장례의례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고비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통과의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치르는 성년식은 개인적으로는 독립된 인격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는 사회의 새 구성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식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성년식은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성년식의 사회적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청소년들에게도 중요하다.

또한, 통과의례는 분리・통합의 과정에서 과도기가 설정된다. 그 과도기에는 대체로 상징적 죽음이 전제되었는데, 이때 등장하는 것이 육체적 가학과 술이었다. 따라서 우리 전통사회의 성년식인 관례에서도 술 마시기를 통한 분리・통합의 과정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관례의 분리・통합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육체적 가학을 통한 상징적 죽음을 동원하지 않았다. 우리 전통 관례는 엄숙하고 절제된 유교적 의례로만 치르는 특징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朱子家禮, 성과 속(M. Eliade, 이동하 역, 역민사, 1983), 통과의례(A. Van Gennep, 전경수 역, 을유문화사, 1985), 한국의 관혼상제(장철수, 집문당, 1977).

성년식

성년식
한자명

成年式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관례|계례

집필자 박홍갑(朴洪甲)

정의

일정한 나이에 도달한 젊은이에게 그 사회의 일원으로서 필요한 규범과 가치, 생활에 필요한 기술과 지식 등을 가르치고 성인이 되었음을 축하하기 위해 행하던 일종의 통과의례通過儀禮.

개관

인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고비마다 치르는 통과의례는 다양한데, 그중 성년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치르는 성년식成年式은 동서고금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성년식의 통과의례에서 인간은 대개 육체적 가학을 통한 분리의례에 의해 특정 집단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치며,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끔 거듭난다. 분리의례의 대표적인 것이 ‘할례’이다. 박혁거세朴赫居世 신화 속의 알영閼英이 북천北川에서 부리를 떨어뜨린 것 역시 일종의 할례의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부족국가 마한馬韓에서 소년들이 등에다 상처를 내어 줄을 꿰고 통나무를 끌면서 그들이 훈련받을 집을 지었다는 것처럼, 성년식의 통과의례를 암시하는 단면도 발견된다. 특히 965년(고려 광종 16)에 세자 유伷에게 원복元服의 예를 행했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사가 보이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행한 관례의식冠禮儀式을 처음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고려 왕실에서 관례의식을 도입했지만, 관례의식이 민간에서까지 통용된 것은 조선시대 이후라고 볼 수 있다.

유교가 널리 보급되면서 성년식은 왕실에서 양반까지 반드시 행하던 통과의례가 되었다. 특히, 고려 말에 도입된 『주자가례朱子家禮』가 조선조 양반가의 필수적인 의례로 정착되면서, 관례는 관혼상제의 첫 번째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어른이 되었음을 알리는 관례는 15세에서 20세 사이의 남자아이에게 땋아 내렸던 머리를 올려 복건幅巾・초립草笠・사모紗帽・탕건宕巾 등을 씌워주는 의식이었는데, 이를 통해 관례를 치른 아이는 성인으로서의 예절 및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지켜야 함을 깨닫게 했다. 여자아이도 15세 전후가 되면 쪽을 찌어올리고 비녀를 꽂아주는 계례筓禮를 행하였는데, 계례는 혼례 속에 흡수되어 관례만큼 보편화되지 않았다.

그런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는 동안 생긴 조혼 풍습으로 10세 전후에 관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관례의식을 치르지 않은 채 초립이나 복건을 씌우는 풍습까지 생겨나 ‘초립동草笠童(초립을 쓴 사내아이)’이란 말도 생겨났다. 이렇듯 우리 성년식인 관례는 지역과 가문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행해지다가 갑오개혁을 전후하여 그 의미가 퇴색하였다. 1895년의 단발령 이후로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심해졌다. 오늘날의 성년식 또한 매년 5월에 유교적 의례에 맞춰 행해지고는 있지만, 보편적인 의례가 아니란 점에서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형편이다.

내용

반 게넵(A. Van Gennep)은,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처한 상태로부터 다른 상태로, 혹은 어떤 사회적 세계로부터 다른 세계로 통과하거나 전이하는 고비에서 행해지는 의례 체계를 ‘통과의례’로 정의했다 . 그는 통과의례에 분리─전이─통합의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틀을 모든 사회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그 기본적 틀이 공통적인 관습구조로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렇듯 인간이 사회화・문화화의 과정에서 지위와 역할을 획득하는 데 따른 시련이 통과의례였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성인이 되기 위한 ‘입사의례入社儀禮(initiation)’이다. 입사의례의 중심개념을 ‘죽음과 재생’으로 파악한 엘리아데(M. Eliade) 역시 인간은 태어날 때에 아직 완성되지 못한 단계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불완전한 태아 상태의 인간이 통과의례를 거쳐 영적으로 거듭나야만 비로소 완전하고 성숙해진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통합의 단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상적 죽음이 필요한데, 이때 자주 동원되던 것이 육체적 가학과 술이었다. 한편, 우리전통사회의 관례에서 행해지던 ‘술 마시기’ 의례는 아이의 모습이 없어졌음을 공인하면서 동시에 어른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였다.

이런 성년식은 부족사회나 초기 국가사회에서는 사회적 의미가 매우 컸다.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성년의 단계로 들어선다는 것은 비로소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질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년식으로 치러지는 통과의례는 동서고금을 통해 공통으로 보이는 현상이다. 고대국가에서 행해지던 대표적인 성년식인 ‘할례割禮’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통과의례에는 신체 일부를 절단・절제하거나 상처를 내는 절차가 따랐다. 입묵入墨, 반흔문신, 발치拔齒(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등), 또는 새끼손가락의 제1・2관절부터 앞부분을 절단(아프리카 남부)하거나, 귓불을 자르거나, 귓불 또는 코의 격벽에 구멍을 뚫는 천공 관습, 머리털을 일정한 형태로 자르는 것 등도 이런 의례에 해당했다. 이처럼 신체에 훼손을 받은 사람은 이에 따른 분리의례에 의해서 일반 세간에서 격리되며, 이후 특정 집단에 통합되는 과정을 거치며 거듭나게 된다.

한편, 영국의 교육철학자 피터스(R. S. Peters)는 교육을 성년식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즉, 교육은 새로운 세대에서 기성 문화체제로 입문하게 하는 과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년식은 소년기에서 성년기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신체적・정신적 성숙을 축하하며, 가족의 일원에서 벗어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재탄생한 개인에게 교육받을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는 목적이 있었다.

성년식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과 의식 절차는 지역이나 부족마다 달랐으나, 대개 10~18세 사이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각 부족의 종교적 의식을 빌려 실시되었다. 부족 단위의 큰 행사로 열리는 성년식은 주로 남자를 대상으로 며칠씩 열리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나 오늘날 일부에서는 2차 성징의 신체적 변화를 성년의 구체적 기준으로 보기도 하지만, 종교적 기준으로는 보통 나이로 성인식 시기를 판단한다. 서구사회에서는 대개 16~22세에 도달하면 성년식을 행하며, 유년을 벗어나 법적으로 성년의 권리를 가지는 시기에 성년이 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년식은 성년이 되는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특정한 사회구성원이 된다거나 어떤 작업집단에 속하게 되는 과정에서 행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각 지역과 문화권마다 특색 있게 치러지던 성년식이 오늘날에는 하나의 형식으로만 남은 경우가 많다.

지역사례

문화권역마다 각기 다른 성년의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소승불교에서는 20세 미만의 남자아이들에게 단기간 출가하여 승려 체험을 하게 하는 ‘신분의식’을 통해 성인의식을 치른다. 기독교 사회에서는 청년 스스로 성례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한다. 바하이교에서는 15세가 되면 성년으로 간주하여, 바하이 공동체에 남을 지를 스스로 판단하게 한다. 힌두교에서는 ‘드비자(Dvija)’라고 부르는 종교적 재생 의식을 통해 가족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음을 일깨워주는데, 소년들은 가면을 쓰고 종교 의례를 준비하고, 여자는 사리를 입고 의례를 행함으로써 성인임을 인정받는다. 유대교의 경우에는 소년이면 13세에 종교적으로 성숙함을 인정하여 ‘바르미츠바(bar mitzvah)’라는 의식을 치르고, 소녀일 때는 12세에 ‘바트미츠바(batmitzvah)’라는 의식을 치른다. 아울러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미성년자에게 샤리아 율법을 연마하여 알라의 말씀을 듣고 이슬람 전통을 배우도록 하였다가, 성인이 되었다는 증표가 나타나면 샤리아에 따라 예배 참여와 율법적 의무의 이행을 강요한다. 한자문화권의 유교국가에서는 성년식이 통상 15~20세 전후로 이뤄졌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행해진 성년식은 관례와 계례이다. 이 두 의식은 중국에서 도입된 『주자가례』에 근거한 것으로, 각 신분에 따라 의복이나 절차가 달랐다.

특징 및 의의

인간은 집단적인 사회에서 그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평생 치르는 통과의례가 매우 중요한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지닌다. 태어나기 전의 기자祈子 습속에서부터 출생의례와 결혼 및 장례의례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고비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통과의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치르는 성년식은 개인적으로는 독립된 인격체가 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는 사회의 새 구성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식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성년식은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성년식의 사회적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청소년들에게도 중요하다.

또한, 통과의례는 분리・통합의 과정에서 과도기가 설정된다. 그 과도기에는 대체로 상징적 죽음이 전제되었는데, 이때 등장하는 것이 육체적 가학과 술이었다. 따라서 우리 전통사회의 성년식인 관례에서도 술 마시기를 통한 분리・통합의 과정을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관례의 분리・통합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육체적 가학을 통한 상징적 죽음을 동원하지 않았다. 우리 전통 관례는 엄숙하고 절제된 유교적 의례로만 치르는 특징이 있다.

참고문헌

高麗史, 朱子家禮, 성과 속(M. Eliade, 이동하 역, 역민사, 1983), 통과의례(A. Van Gennep, 전경수 역, 을유문화사, 1985), 한국의 관혼상제(장철수, 집문당,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