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영반(常用靈飯)

상용영반

한자명

常用靈飯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사찰 등에서 승려의 집전으로 치르는 불교식 제사.

역사

우리나라에서 천지신명과 왕실에 대한 제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내왔으나 유교 기제사는 고려 말에 성리학과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들어오면서 왕실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이에 비해 기일에 지내는 불교식 제사는 고려 초기부터 성행하였다. 상용영반이라는 용어는 조선 후기에 생겨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불교 기제사를 기재忌齋・기일재忌日齋 등으로 불렀다. 광종은 봉은사奉恩寺를 설립하여 개국시조인 아버지 태조를 모시고, 불일사佛日寺를 세워 태조의 왕비인 어머니 유씨劉氏를 모셔 원당으로 삼았다. 이후의 왕들도 태조의 기일을 비롯하여 선대왕의 기일에 재를 지내는 전통을 이어나갔다. 고려 초기에도 유교 제사가 들어와 있었으나 봉사奉祀를 통한 종법 질서로 이어지지는 못하였고, 망혼의 극락왕생과 음덕을 기원하는 불교의 기일의식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 “고려시대에는 무릇 선친의 기일이 돌아오면 대부분 절에서 천복薦福하였으니, 매우 온당하지 못한 일”이라고 한 유계兪棨의 글이 실린 것도 이러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승려 사회에서도 제자가 스승의 기일을 추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려시대 승통僧統이었던 원증圓證은 임종 무렵에 문도를 불러놓고 “내가 죽은 뒤 재일齋日을 맞게 되면 깨끗한 가사를 입고 대승경전을 읽고 절하며 당래미륵존불을 염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삼보를 공양함으로써 자비하신 도움을 기원하라. 나에게 관한 일은 오직 향香과 등燈으로 고산孤山에 청풍과 명월이 지나가듯 끝내고, 시끄럽고 번잡한 것은 피하라. 간소하고 편한 것을 따르는 것이 효라고 할 것이다.”라는 유서를 지어 보여주었다. 당시 불가에서도 스승의 기일을 크게 모시는 풍조가 있었기에 이를 경계한 글을 남긴 것이다.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불교기제사는 기신재忌晨齋라 불렀는데, 민간 제사와 구분하기 위해 일日의 높임말인 신晨을 사용한 듯하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왕실 제사는 본격적으로 ‘기신’이라 칭하면서 불교식으로 치를 때는 기신재, 유교식일 때는 기신제라 부르게 된다. 기신재 폐지를 청하는 유학자들의 상소는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그 내용 가운데 "기신재는 …… 바야흐로 부처를 공양할 때는 선왕과 선후의 신주神主를 먼저 욕실에 보내어 목욕을 시킨 뒤뜰에 꿇어앉아 절하게 하니 …… ”라는 대목이 있다. 이는 망혼의 업을 씻어주는 관욕灌浴을 묘사한 것으로, 불교 기제사가 망혼 천도의식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1420년(세종 2)에 불교식 상례・제례에 해당하는 추천재・기신재 등을 수륙재水陸齋로 합설케 하였으며, 중종대에서 선조대에 이르면 왕실의 불교 제사는 공식적으로 폐지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물론 왕실과 지배층의 사적 영역에서는 불교 제사가 지속되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유교 이념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배층에서 불교제사를 계속했던 것은 두 의례의 기능이 뚜렷이 구분되기 때문이었다. 당시 불교 제사를 지냈던 이들이 기일에 유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사찰 제사만 지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날짜를 달리하거나, 사찰에 제주 이외의 누군가를 보내어 치르게 하였을 것이다. 이들에게 유교 제사는 마땅히 지내야 할 후손의 도리였고, 불교제사는 종교적 목적으로 치르는 의례로 수용되었다. 18세기 이후 일반 백성에게까지 『주자가례』가 확산되면서 점차 기일은 유교 제사로 통일되고, 조상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의례는 7월 백중의 우란분재盂蘭盆齋 등 합동 천도재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신앙심이 깊고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이들은 여전히 사찰에 위패영정을 모셔놓고 개인적인 재로써 기제사를 치렀음은 물론이다.

내용

사찰에서 치르는 제사를 상용영반이라 부르는 것은 망혼을 모시고 공양을 대접하는 의식이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혼을 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불보살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극락과 같은 보다 수승殊勝한 세계에 이르도록 이끌어주는 기본 구도는 천도재와 같다. 1827년의 『작법귀감作法龜鑑』에는 상용영반과 별개로 종사영반宗師靈飯을 두고 있는데, 이는 모든 승려에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종단에서 품수한 법계가 종사・대종사・대선사인 승려에게만 해당된다고 하였다. 상용영반은 천도재의 관음시식觀音施食과 유사하며, 『작법귀감』의 상용영반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거불擧佛로 불보살에게 귀의한 후, 망혼을 모시고 법어를 내린 다음, 여러 부처님께 오늘 재를 열게 된 이유를 고한다. 망혼에게 자리에 편히 앉도록 청하고 차를 올리며, 이후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발원과 회향의 가지소加持疏, 귀신에게 시식하는 시귀식진언施鬼食眞言, 공양을 올리는 주문인 공양주供養呪, 회향하는 주문인 회향주回向呪, 산회하는 게송인 파산게破散偈에 이르기까지 상용시식의常用施食儀와 같다.”라고 하였다.

아울러 『석문의범釋門儀範』 이후 여러 의식집을 보면, 사십구재 등 천도의식편의 ‘관음시식’과 ‘상용영반시식’의 내용이 대동소이하지만, 망혼에게 하는 착어着語에 상징적인 차이가 있다. 상용영반시식의 마지막에는 “잠시 쉬어 진계에서 이 향단에 내려오소서暫辭眞界下香壇”라고 표현하여 제사의 대상이 진계眞界에 머무는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십구재로 천도하기 이전의 존재는 삼악도에 머물고, 천도한 존재는 진계나 극락에 머물기 때문에 상용영반 등 불교 제사에는 천도의 의미가 없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진계’라는 말은 조상을 모시는 데 따른 의례적儀禮的 표현으로 봐야 한다. 어느 곳에 머물든 불교의 가르침으로 더욱 수승한 단계로 인도하는 것이 망혼을 대상으로 한 불교 의례의 기본 맥락을 이루기 때문이다. 천도 이전의 존재는 명부의 지옥 중생이고, 천도 이후의 존재는 진계의 조상신으로 양분하는 것은 불교적 의미에 맞지 않을뿐더러 천도재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으로 만들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삼보의 한 존재인 승려의 천도재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머무는 곳과 무관하게 불법으로 천도하는 것이고, 그때마다 모든 삼악도의 존재들과 유주무주 고혼을 함께 청한다는 의미로 정리해야 할 것이다.

상용영반의 내용은 대략 다음의 절차로 진행된다. 고인의 왕생을 이끌어줄 불보살께 귀의하는 거불擧佛, 마련해놓은 단에 망혼이 자리해줄 것을 청하는 창혼唱魂, 망혼에게 법어를 전하는 착어着語, 천도 대상이 되는 뭇 존재를 청하는 진령게振鈴偈, 망혼을 다시 청하는 고혼청孤魂請, 향을 사르며 청하는 향연청香煙請, 차를 올리는 헌다게獻茶偈, 공양을 올리는 헌식소獻食疏, 참석한 모든 중생이 함께하는 반야심경般若心經,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가지소加持疏, 아귀에게 법식을 권하는 시귀식진언施鬼食眞言, 널리 공양을 권하는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널리 회향하는 보회향진언普回向眞言, 공양을 찬탄하는 공양찬供養讚, 여래십호의 명호를 부르는 여래십호如來十號, 아미타부처님을 찬탄하는 장엄염불莊嚴念佛, 발원을 읊는 발원게發願偈, 왕생극락을 바라는 왕생게往生偈, 편안히 모시는 안과게安過偈, 망혼을 보내는 봉송게奉送偈 등이다.

특징 및 의의

사찰에서 지내는 제사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거나 아들・후손이 없는 경우가 주를 이루지만, 간편하게 제사를 모시기 위해 의뢰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제사는 삶의 맥락이 달라진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의례이지만, 봉사대상을 줄이고 합치거나 형제간에 제사를 나누어 모시는 방법 등으로, 점차 간소함과 편리를 위한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제사를 모시기 위해 사찰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제사를 둘러싼 현대인의 대안 가운데 하나로 상용영반이 주목되고 있다.

참고문헌

東史綱目, 作法龜鑑, 불교상용의례집(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조계종종출판사, 2013), 상용불교의식(법안・우천 편역, 정우서적, 2012), 석문의범(안진호, 보련각, 1968), 조선전기 수륙재의 설행과 의례(심효섭, 동국사학40, 동국사학회, 2004), 한국불교의 일생의례(구미래, 민족사, 2012).

상용영반

상용영반
한자명

常用靈飯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제례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사찰 등에서 승려의 집전으로 치르는 불교식 제사.

역사

우리나라에서 천지신명과 왕실에 대한 제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지내왔으나 유교 기제사는 고려 말에 성리학과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들어오면서 왕실과 지배층을 중심으로 행해졌다. 이에 비해 기일에 지내는 불교식 제사는 고려 초기부터 성행하였다. 상용영반이라는 용어는 조선 후기에 생겨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불교 기제사를 기재忌齋・기일재忌日齋 등으로 불렀다. 광종은 봉은사奉恩寺를 설립하여 개국시조인 아버지 태조를 모시고, 불일사佛日寺를 세워 태조의 왕비인 어머니 유씨劉氏를 모셔 원당으로 삼았다. 이후의 왕들도 태조의 기일을 비롯하여 선대왕의 기일에 재를 지내는 전통을 이어나갔다. 고려 초기에도 유교 제사가 들어와 있었으나 봉사奉祀를 통한 종법 질서로 이어지지는 못하였고, 망혼의 극락왕생과 음덕을 기원하는 불교의 기일의식이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 “고려시대에는 무릇 선친의 기일이 돌아오면 대부분 절에서 천복薦福하였으니, 매우 온당하지 못한 일”이라고 한 유계兪棨의 글이 실린 것도 이러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승려 사회에서도 제자가 스승의 기일을 추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고려시대 승통僧統이었던 원증圓證은 임종 무렵에 문도를 불러놓고 “내가 죽은 뒤 재일齋日을 맞게 되면 깨끗한 가사를 입고 대승경전을 읽고 절하며 당래미륵존불을 염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삼보를 공양함으로써 자비하신 도움을 기원하라. 나에게 관한 일은 오직 향香과 등燈으로 고산孤山에 청풍과 명월이 지나가듯 끝내고, 시끄럽고 번잡한 것은 피하라. 간소하고 편한 것을 따르는 것이 효라고 할 것이다.”라는 유서를 지어 보여주었다. 당시 불가에서도 스승의 기일을 크게 모시는 풍조가 있었기에 이를 경계한 글을 남긴 것이다.

고려 말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실의 불교기제사는 기신재忌晨齋라 불렀는데, 민간 제사와 구분하기 위해 일日의 높임말인 신晨을 사용한 듯하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들어서면 왕실 제사는 본격적으로 ‘기신’이라 칭하면서 불교식으로 치를 때는 기신재, 유교식일 때는 기신제라 부르게 된다. 기신재 폐지를 청하는 유학자들의 상소는 끊임없이 이어졌는데, 그 내용 가운데 "기신재는 …… 바야흐로 부처를 공양할 때는 선왕과 선후의 신주神主를 먼저 욕실에 보내어 목욕을 시킨 뒤뜰에 꿇어앉아 절하게 하니 …… ”라는 대목이 있다. 이는 망혼의 업을 씻어주는 관욕灌浴을 묘사한 것으로, 불교 기제사가 망혼 천도의식과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1420년(세종 2)에 불교식 상례・제례에 해당하는 추천재・기신재 등을 수륙재水陸齋로 합설케 하였으며, 중종대에서 선조대에 이르면 왕실의 불교 제사는 공식적으로 폐지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물론 왕실과 지배층의 사적 영역에서는 불교 제사가 지속되었다. 이처럼 조선시대에 유교 이념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지배층에서 불교제사를 계속했던 것은 두 의례의 기능이 뚜렷이 구분되기 때문이었다. 당시 불교 제사를 지냈던 이들이 기일에 유교 제사를 지내지 않고 사찰 제사만 지냈다고 보기는 어렵다. 날짜를 달리하거나, 사찰에 제주 이외의 누군가를 보내어 치르게 하였을 것이다. 이들에게 유교 제사는 마땅히 지내야 할 후손의 도리였고, 불교제사는 종교적 목적으로 치르는 의례로 수용되었다. 18세기 이후 일반 백성에게까지 『주자가례』가 확산되면서 점차 기일은 유교 제사로 통일되고, 조상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불교 의례는 7월 백중의 우란분재盂蘭盆齋 등 합동 천도재로 대체되었을 것이다. 신앙심이 깊고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이들은 여전히 사찰에 위패나 영정을 모셔놓고 개인적인 재로써 기제사를 치렀음은 물론이다.

내용

사찰에서 치르는 제사를 상용영반이라 부르는 것은 망혼을 모시고 공양을 대접하는 의식이 중심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혼을 청하여 공양을 올리고, 불보살의 가르침을 들려주어 극락과 같은 보다 수승殊勝한 세계에 이르도록 이끌어주는 기본 구도는 천도재와 같다. 1827년의 『작법귀감作法龜鑑』에는 상용영반과 별개로 종사영반宗師靈飯을 두고 있는데, 이는 모든 승려에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종단에서 품수한 법계가 종사・대종사・대선사인 승려에게만 해당된다고 하였다. 상용영반은 천도재의 관음시식觀音施食과 유사하며, 『작법귀감』의 상용영반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먼저 거불擧佛로 불보살에게 귀의한 후, 망혼을 모시고 법어를 내린 다음, 여러 부처님께 오늘 재를 열게 된 이유를 고한다. 망혼에게 자리에 편히 앉도록 청하고 차를 올리며, 이후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발원과 회향의 가지소加持疏, 귀신에게 시식하는 시귀식진언施鬼食眞言, 공양을 올리는 주문인 공양주供養呪, 회향하는 주문인 회향주回向呪, 산회하는 게송인 파산게破散偈에 이르기까지 상용시식의常用施食儀와 같다.”라고 하였다.

아울러 『석문의범釋門儀範』 이후 여러 의식집을 보면, 사십구재 등 천도의식편의 ‘관음시식’과 ‘상용영반시식’의 내용이 대동소이하지만, 망혼에게 하는 착어着語에 상징적인 차이가 있다. 상용영반시식의 마지막에는 “잠시 쉬어 진계에서 이 향단에 내려오소서暫辭眞界下香壇”라고 표현하여 제사의 대상이 진계眞界에 머무는 존재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십구재로 천도하기 이전의 존재는 삼악도에 머물고, 천도한 존재는 진계나 극락에 머물기 때문에 상용영반 등 불교 제사에는 천도의 의미가 없다고 보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진계’라는 말은 조상을 모시는 데 따른 의례적儀禮的 표현으로 봐야 한다. 어느 곳에 머물든 불교의 가르침으로 더욱 수승한 단계로 인도하는 것이 망혼을 대상으로 한 불교 의례의 기본 맥락을 이루기 때문이다. 천도 이전의 존재는 명부의 지옥 중생이고, 천도 이후의 존재는 진계의 조상신으로 양분하는 것은 불교적 의미에 맞지 않을뿐더러 천도재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으로 만들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삼보의 한 존재인 승려의 천도재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머무는 곳과 무관하게 불법으로 천도하는 것이고, 그때마다 모든 삼악도의 존재들과 유주무주 고혼을 함께 청한다는 의미로 정리해야 할 것이다.

상용영반의 내용은 대략 다음의 절차로 진행된다. 고인의 왕생을 이끌어줄 불보살께 귀의하는 거불擧佛, 마련해놓은 단에 망혼이 자리해줄 것을 청하는 창혼唱魂, 망혼에게 법어를 전하는 착어着語, 천도 대상이 되는 뭇 존재를 청하는 진령게振鈴偈, 망혼을 다시 청하는 고혼청孤魂請, 향을 사르며 청하는 향연청香煙請, 차를 올리는 헌다게獻茶偈, 공양을 올리는 헌식소獻食疏, 참석한 모든 중생이 함께하는 반야심경般若心經,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가지소加持疏, 아귀에게 법식을 권하는 시귀식진언施鬼食眞言, 널리 공양을 권하는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널리 회향하는 보회향진언普回向眞言, 공양을 찬탄하는 공양찬供養讚, 여래십호의 명호를 부르는 여래십호如來十號, 아미타부처님을 찬탄하는 장엄염불莊嚴念佛, 발원을 읊는 발원게發願偈, 왕생극락을 바라는 왕생게往生偈, 편안히 모시는 안과게安過偈, 망혼을 보내는 봉송게奉送偈 등이다.

특징 및 의의

사찰에서 지내는 제사는 독실한 불교 신자이거나 아들・후손이 없는 경우가 주를 이루지만, 간편하게 제사를 모시기 위해 의뢰하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제사는 삶의 맥락이 달라진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이 쉽게 포기하지 않는 의례이지만, 봉사대상을 줄이고 합치거나 형제간에 제사를 나누어 모시는 방법 등으로, 점차 간소함과 편리를 위한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제사를 모시기 위해 사찰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제사를 둘러싼 현대인의 대안 가운데 하나로 상용영반이 주목되고 있다.

참고문헌

東史綱目, 作法龜鑑, 불교상용의례집(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조계종종출판사, 2013), 상용불교의식(법안・우천 편역, 정우서적, 2012), 석문의범(안진호, 보련각, 1968), 조선전기 수륙재의 설행과 의례(심효섭, 동국사학40, 동국사학회, 2004), 한국불교의 일생의례(구미래, 민족사,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