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칠일(三七日)

삼칠일

한자명

三七日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용어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중요한 일이 발생한 날로부터 7일을 세 번 지낼 때까지 금기(禁忌)를 지키거나 특별한 의미를 두어 대응하는 기간.

유래

삼칠일은 3ㆍ7일로도 표기한다. 날짜로는 21일에 해당하지만 7일을 3번 거듭하는 기간이라는 데 초점이 있다. 이에 따라 삼칠일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3과 7이라는 수 관념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숫자 7은 북두칠성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하늘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은 1년 어느 때라도 볼 수 있는 북두칠성이 곧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고 섬기면서 점차 칠성신앙(七星信仰)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망원경이 나오기 전까지 인간은 하늘에 별과 지구를 제외하고 해ㆍ달ㆍ수성ㆍ금성ㆍ화성ㆍ목성ㆍ토성이라는 7개의 ‘천체’가 있다고 보아 이를 주일의 기준으로 삼고 각 천체의 이름을 대입하였다. 음양오행사상으로 천지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이치를 해명한 동양에서도 일곱 천체와 7요일의 이름을 음양에 해당하는 일월(日月)과 오행〔火水木金土〕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처럼 숫자 7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하늘을 이루는 근원적인 수로 여기게 되었고, 나아가 우주의 의미를 해명하는 신성한 수이자 음양오행의 동양사상을 담고 있는 수로 파악하였다.

숫자 3은 예부터 한자문화권에서 길수(吉數)ㆍ신성수(神聖數)라 하여 최상의 수로 여겨왔다. 3은 최초의 양수인 1과 최초의 음수인 2가 결합하여 생겨난 변화수로서 음양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수이다. 짝수인 2처럼 둘로 갈라지지 않고 원수(原數)인 1의 신성함을 파괴하지 않은 채 변화하여 ‘완성된 하나’라는 상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근원적인 구조와 신성함을 드러낼 때 숫자 3은 어김없이 등장하게 된다. 예컨대 세계를 이루는 구성요소는 천ㆍ지ㆍ인 3재(三才)이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 과거ㆍ현재ㆍ미래 또는 천계(天界)ㆍ지계(地界)ㆍ명계(冥界)의 삼계(三界)로 구분된다. 또한 우리나라의 시조신인 환인(桓因)ㆍ환웅(桓雄)ㆍ단군(檀君)이 셋이면서 하나로 일체를 이룬다는 삼일신(三一神)적 인식은 인간 필연의 종교의식을 담고 있으며, 불교에서도 불ㆍ법ㆍ승의 삼보(三寶)가 모일 때 비로소 불교가 성립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숫자 3으로 표현되는 상징성과 문화양상은 사상에서 속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아울러 7은 3과 4를 합한 숫자로 그 속에 3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삼계를 뜻하는 성스러운 수 3과, 인간이 사는 세계[四方]를 뜻하는 세속적인 수 4가 결합되어 있어 숫자 7을 신과 인간, 성과 속, 하늘과 땅, 영혼과 육체가 통합된 수로 보았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7년을 주기로 변화를 거듭한다고 보는 이론이 일찍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7이라는 주기성이 여성과 깊이 관련되어 열네살(2×7)에 초경을 시작해 여성으로 거듭나며 마흔아홉살(7×7)에 폐경이 된다고 보았다. 이는 달의 주기와 여성의 생리주기가 일치하듯이 음의 원리를 지닌 달과 여성이 7의 4배수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과도 통한다.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을 받기 전까지 중유(中有)의 존재로 머문다고 보는데, 그 기간을 7ㆍ7일(49일)로 본 것도 이러한 맥락과 함께하고 있다. 불교의 중유기간이 본래부터 7ㆍ7일이 아니라 7일을 단위로 한 여러 설이 공존하는 가운데 7ㆍ7일로 정착되었고, 이때 3ㆍ7일 또한 중요한 날짜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숫자 7은 생명의 변화와 성장을 나타내는 시간리듬이었고 거기에 신성한 3의 수가 배수로 결합됨으로써, 삼칠일은 중요한 변화를 맞아 금기가 따르는 신성한 시간으로 널리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삼칠일에 대한 언급은 단군신화(檀君神話)에서 처음 등장한다. 곰과 호랑이가 환웅(桓雄)을 찾아와 사람 되기를 간청하자, 환웅은 굴속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만 먹으며 백일간 인내하면[百日忌]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에 둘은 굴속에 들어갔으나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중도에 뛰쳐나오지만 곰은 백일이 채 되기 전인 삼칠일 만에 여자의 몸을 받아 웅녀(熊女)가 되었고, 잠시 사람으로 변한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 단군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단군신화에 언급된 삼칠일이 금기의 신성기간으로 주술ㆍ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민간에서는 출산과 같이 중요한 일이 발생할 때 부정을 몰아내고 소원을 성취시키는 중요한 기간으로 삼칠일을 지켜왔다.

내용

삼칠일은 주로 출산 후의 금기기간으로 널리 반영되어 아기가 태어나면 삼칠일 동안 대문금줄을 쳐서 새 생명이 탄생한 공간과 외부세계를 격리시켰다. 갓 태어난 아기는 외부세계의 부정(不淨)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아 산모와 함께 오염된 일상으로부터 분리하여 보호하며, 다른 가족들도 삼칠일이 지나 산모가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여러 가지 금기를 수행하게 된다. 이때 금줄은 출산을 널리 알리면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삿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여 아기와 산모를 보호하는 구실을 하였다. 따라서 금줄이 걸린 집에는 상가를 방문하거나 흉사에 관여한 사람의 출입을 철저히 금하였으며, 가족들도 문상을 가지 않고 동물이 죽는 것을 보았을 경우 산모 방에 들어가지 않는 등 몸가짐을 조심하여 부정이 타지 않도록 하였다.

금줄에는 고추솔가지ㆍ숯ㆍ백지 등을 매달았는데, 이것은 본래 신성과 금기의 공간을 드러내고자 금줄을 칠 때 오행의 기운을 갖추어 그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데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출산뿐만 아니라 장독이나 상량식 등과 같이 중요한 일에 삿된 것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할 때 오방색을 사용해왔다. 곧 솔가지는 생명력, 백지는 신성, 숯은 정화, 고추는 축귀의 의미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새끼줄의 황색, 솔가지의 청색, 고추의 적색, 백지의 백색, 숯의 흑색은 오방색을 나타낸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이러한 오행의 의미를 따지기보다는 부정을 물리치면서 남녀를 구분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자유롭게 표현ㆍ해석하면서 금줄에 미역을 거는 경우도 있다. 특히 고추는 붉은색이 벽사(辟邪)의 의미를 지녀 금줄에 즐겨 등장하는데, 출산 후에 치는 금줄에서는 점차 ‘고추=아들’의 상징이 부각됨에 따라 색깔의 짝을 맞추기 위해 푸른 솔가지를 정절의 의미로 해석하여 딸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청색은 남성, 적색은 여성을 뜻하지만, 고추가 지닌 성적 상징이 색깔의 상징을 넘어선 것이라 하겠다. 또한 금줄은 일상과 반대되는 왼새끼를 사용하여 부정을 쫓았으며, 양끝을 자르지 않고 둠으로써 아기와 산모의 수명이 끝없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삼칠일에 행하는 주요한 의례내용은 초이레(초칠), 두이레(이칠), 세이레(삼칠) 때 출산과 육아를 관장하는 삼신에게 상을 올리며 아기와 산모의 건강을 빌게 된다. 삼신은 태(胎)의 우리말이 ‘삼’이기 때문에 탯줄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이를 여성이라 보아 ‘삼신할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출산 전에는 임산부가 있는 방의 윗목에 짚을 깔고 삼신에게 쌀ㆍ생미역ㆍ정화수를 올리며 순산을 기원하였으며, 출산 후에는 쌀로 밥을 짓고 미역으로 국을 끓여 매 7일째 되는 날마다 삼신에게 올리고 감사와 지속적인 보살핌을 바랐던 것이다. 삼칠일은 산모의 기력을 북돋우고 수유능력을 배양하는 시기이기도 하여 산모의 몸을 보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음식으로 정성을 들이게 된다. 아울러 삼칠일과 관련된 속신으로 ‘삼칠일 안에 집에 못을 박으면 삼신이 노한다.’, ‘삼칠일 동안에 달걀을 깨뜨리면 불길하다.’, ‘삼칠일에 수수경단을 만들어 먹으면 아이 병을 예방할 수 있다.’라고 하여 각종 행동을 조심하는 금기의 기간으로 여겼다.

출산한 지 사흘째 되는 초삼일 또한 삼칠일과 같은 맥락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아기와 산모는 출산 후 3일째 되는 날 비로소 쑥을 달인 물 등으로 씻을 수 있었고, 이후 세이레마다 목욕을 하였다. 이처럼 특정한 날에만 목욕하도록 함으로써 오염된 신체를 정화하는 의미를 담는 동시에 외기에 노출되어도 삿된 기운이 침범할 수 없다고 여겼다. 또한 아기가 태어났을 때 가른 탯줄은 바로 처리하지 않고 짚으로 싸서 방 윗목에 두었다가 3일째 되는 날에서야 비로소 묻거나 태웠으며, 태운 재는 물에 띄워 보냈다. 이는 탯줄이 태아의 삶을 유지시켜준 생명의 근원이자 태중과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소중한 것이므로 함부로 처리할 수 없다고 여겨, 중요한 일을 할 때 날을 받듯이 3수가 지닌 길상과 신성의 의미를 취해 초삼일에 이를 묻거나 태운 것이다.

초이레가 되면 새벽에 삼신상을 올린 후 산모가 그 상에 올려놓았던 밥과 미역국을 먹는다. 아기의 옷차림은 초이레 때 비로소 쌀깃(강보)을 벗기고 깃 없는 배냇저고리를 입히며 움직이지 못하도록 동여매었던 양팔 중 한쪽을 풀어주었다. 이때 아기에게 실꾸리를 채우거나 곁에 놓아두면서 장수를 기원하기도 한다. 아울러 초이레가 되어야 조부가 아기를 볼 수 있다 하여, 아기와 직계가족 간에 첫 대면이 이루어지거나 초이레를 맞아 이웃과 친지에게 떡과 음식을 대접하는 경우도 있다.

두이레에도 새벽에 밥과 미역국으로 삼신상을 올렸다가 산모가 그것을 내려 먹는다. 이때 아기의 옷은 깃이 달린 윗옷에 아래를 감싸는 두렁이를 입히고 나머지 한쪽 팔도 풀어주어서 마음대로 활갯짓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단계적으로 외조부모와 대면할 수 있도록 한다.

세이레는 삼칠일을 마감하는 날로서 가장 성대하게 의례를 치른다. 이 날을 기점으로 금줄을 걷고 모든 금기를 해제하며, 산실도 개방하여 친지ㆍ이웃을 청해 아이를 보게 하고 음식을 대접한다. 집안에 따라 수수경단, 백설기 및 소를 넣지 않은 만두 등을 만들어 접대하는데, 속이 빈 만두는 아기의 도량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실타래나 건강하게 자란 아이 옷, 미역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삼신에게 밥과 미역국을 올려 감사드린 뒤 삼신상을 접게 되며 산모도 일상생활로 돌아와 바깥출입을 할 수 있다. 이 날 아기에게는 저고리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하의도 갖추어 처음으로 바지저고리를 입히게 된다. 출산과 관련된 삼칠일의 풍습은 이러한 기본구조를 갖춘 가운데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시기에 있어서도 초칠일만 지내거나 칠칠일(49일)까지 금기의 기간을 확장하는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다.

삼칠일은 아기를 출산한 직후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일을 행할 때 의미 있는 기간으로 널리 수용되었다. 예컨대 아기점지를 기원하는 기자치성(祈子致誠)을 할 때도 치성의 기간을 100일부터 칠칠일, 삼칠일, 칠일, 삼일 등으로 정하여 3과 7의 조합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삼국유사』 권4 「진표전간(眞表傳簡)」조에는 진표율사가 3년 동안 도를 구해도 소식을 얻지 못해 몸을 바위 아래로 던졌는데, 홀연히 한 동자가 나타나 율사를 구해 바위 위에 올려놓았고, 이에 율사가 다시 염원하여 삼칠일을 기약하고 밤낮으로 열심히 도를 닦아 천안(天眼)을 얻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이룬 후 삼칠일 동안 『화엄경』을 설하였고, 고려시대의 승려 균여는 귀법사(歸法寺)에 벼락이 떨어지는 천재지변을 풀기 위해 밤낮을 쉬지 않고 삼칠일간 법회를 열고 설법했다. 남효온(南孝溫)의 기행문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에 나오는 의신암(義神庵)의 전설에 따르면 의신조사가 수리새로 변한 천왕에게 “이곳에서 며칠이면 도를 이룰 수 있겠느냐.”라고 묻자 “삼칠일이면 되리라.”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죽기 전에 삼칠일동안 번과 등을 달고 승려들을 청해 경을 읽으며 공덕을 닦으면 죄업이 소멸된다는 정토경전의 내용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날짜개념만이 아니라 숫자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예컨대 의상대사가 화엄사상의 요지를 게송으로 압축해 놓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系圖)』는 총 210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학(東學)을 창시한 최제우(崔濟愚)는 21자로 된 ‘삼칠자 주문’에 시천주사상의 핵심을 담아 이 주문 속에 천도에 이르는 바른 길이 제시되어 있다고 하였다.

의의

삼칠일은 중요한 일을 치르기에 적합한 주술ㆍ종교적인 기간으로 수용되었다. 특히 생명의 탄생을 맞아 행하는 출산 후의 삼칠일 풍습은 광범위한 수용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갓 태어나 외부세계에 노출된 아기와 오랜 산고를 거쳐 회복이 필요한 산모를 물리적ㆍ관념적으로 보호하는 의미와 함께,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무사히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전 단계와 분리되어 일정한 금기를 지키는 전이(轉移)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탄생과 죽음은 인간의 통과의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에 해당하므로 이러한 전이의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해 격리되었던 동굴과 삼칠일이 각각 전이를 위한 공간과 시간이었듯이, 외부세계와 격리된 산가(産家)와 삼칠일이라는 기간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데 필요한 종교적 시공간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서 삼칠일은 중요한 변화의 과도기를 맞아 3과 7이라는 길수이자 신성수를 대입한 상징적 시간으로서 대상을 보호하고 무사히 다음 단계로 진입시키기 위한 기제라 하겠다.

또한 초이레, 두이레, 세이레로 거듭되는 단계는 아기가 새로운 세계로 통합됨에 있어 점진적인 과정이 필요함을 나타낸다. 즉 아기는 초이레에 가족과 공식적으로 대면하고 두이레에는 외가와, 세이레에는 친지와 대면토록 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미완의 존재를 보다 완전한 생명체로 인준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여, 이레마다 깃이 없는 옷에서 깃이 있는 옷으로, 몸을 감싸는 강보에서 저고리로, 저고리에서 바지저고리로 변해가는 옷차림은 아이의 성장에 따른 실제적 대응이자 온전한 생명체로 진전되는 단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산모도 마찬가지로 해산과 함께 완전히 일상에서 분리되었다가 초삼일에 첫 목욕으로써 정화의 과정을 거친 뒤 초이레에 공식적으로 가족과 대면하고, 삼칠일을 기점으로 가족의 성원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복귀하였다.

이처럼 삼칠일은 한 생명이 태어나 새로운 공동체구성원으로 통합되는 중요한 변화 속에서 삿된 기운이 침범하기 쉽다고 보아, 혈연ㆍ사회 공동체의 세심한 금기와 배려 속에 점진적인 전이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무사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공동체적 삶의 대응방안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한국인의 상징세계 (구미래, 교보문고, 1992),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24ㆍ25-산속 (국립문화재연구소, 1993ㆍ1994), 첫돌복식의 착용양상과 통과의례적 의미 (조희진, 안동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8), 한국 산속의 체계적 이해를 위한 시론 (한양명, 비교민속학 16, 비교민속학회, 1999), 한국 민간신앙과 문학연구 (오출세, 동국대학교 출판부, 2002), 한국의 가정신앙-경상북도 (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三國遺事, 동학에 함유된 고유사상의 탐구 (김대훈, 경상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0), 사십구재 (구미래, 민족사, 2010)

삼칠일

삼칠일
한자명

三七日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용어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중요한 일이 발생한 날로부터 7일을 세 번 지낼 때까지 금기(禁忌)를 지키거나 특별한 의미를 두어 대응하는 기간.

유래

삼칠일은 3ㆍ7일로도 표기한다. 날짜로는 21일에 해당하지만 7일을 3번 거듭하는 기간이라는 데 초점이 있다. 이에 따라 삼칠일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3과 7이라는 수 관념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숫자 7은 북두칠성에 대한 인식과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하늘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던 고대인들은 1년 어느 때라도 볼 수 있는 북두칠성이 곧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기고 섬기면서 점차 칠성신앙(七星信仰)으로 발전하였다. 또한 망원경이 나오기 전까지 인간은 하늘에 별과 지구를 제외하고 해ㆍ달ㆍ수성ㆍ금성ㆍ화성ㆍ목성ㆍ토성이라는 7개의 ‘천체’가 있다고 보아 이를 주일의 기준으로 삼고 각 천체의 이름을 대입하였다. 음양오행사상으로 천지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이치를 해명한 동양에서도 일곱 천체와 7요일의 이름을 음양에 해당하는 일월(日月)과 오행〔火水木金土〕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처럼 숫자 7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하늘을 이루는 근원적인 수로 여기게 되었고, 나아가 우주의 의미를 해명하는 신성한 수이자 음양오행의 동양사상을 담고 있는 수로 파악하였다.

숫자 3은 예부터 한자문화권에서 길수(吉數)ㆍ신성수(神聖數)라 하여 최상의 수로 여겨왔다. 3은 최초의 양수인 1과 최초의 음수인 2가 결합하여 생겨난 변화수로서 음양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수이다. 짝수인 2처럼 둘로 갈라지지 않고 원수(原數)인 1의 신성함을 파괴하지 않은 채 변화하여 ‘완성된 하나’라는 상징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근원적인 구조와 신성함을 드러낼 때 숫자 3은 어김없이 등장하게 된다. 예컨대 세계를 이루는 구성요소는 천ㆍ지ㆍ인 3재(三才)이고, 시간과 공간에 따라 과거ㆍ현재ㆍ미래 또는 천계(天界)ㆍ지계(地界)ㆍ명계(冥界)의 삼계(三界)로 구분된다. 또한 우리나라의 시조신인 환인(桓因)ㆍ환웅(桓雄)ㆍ단군(檀君)이 셋이면서 하나로 일체를 이룬다는 삼일신(三一神)적 인식은 인간 필연의 종교의식을 담고 있으며, 불교에서도 불ㆍ법ㆍ승의 삼보(三寶)가 모일 때 비로소 불교가 성립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숫자 3으로 표현되는 상징성과 문화양상은 사상에서 속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

아울러 7은 3과 4를 합한 숫자로 그 속에 3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삼계를 뜻하는 성스러운 수 3과, 인간이 사는 세계[四方]를 뜻하는 세속적인 수 4가 결합되어 있어 숫자 7을 신과 인간, 성과 속, 하늘과 땅, 영혼과 육체가 통합된 수로 보았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인간이 7년을 주기로 변화를 거듭한다고 보는 이론이 일찍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7이라는 주기성이 여성과 깊이 관련되어 열네살(2×7)에 초경을 시작해 여성으로 거듭나며 마흔아홉살(7×7)에 폐경이 된다고 보았다. 이는 달의 주기와 여성의 생리주기가 일치하듯이 음의 원리를 지닌 달과 여성이 7의 4배수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과도 통한다. 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다음 생을 받기 전까지 중유(中有)의 존재로 머문다고 보는데, 그 기간을 7ㆍ7일(49일)로 본 것도 이러한 맥락과 함께하고 있다. 불교의 중유기간이 본래부터 7ㆍ7일이 아니라 7일을 단위로 한 여러 설이 공존하는 가운데 7ㆍ7일로 정착되었고, 이때 3ㆍ7일 또한 중요한 날짜로 인식되었다. 따라서 숫자 7은 생명의 변화와 성장을 나타내는 시간리듬이었고 거기에 신성한 3의 수가 배수로 결합됨으로써, 삼칠일은 중요한 변화를 맞아 금기가 따르는 신성한 시간으로 널리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삼칠일에 대한 언급은 단군신화(檀君神話)에서 처음 등장한다. 곰과 호랑이가 환웅(桓雄)을 찾아와 사람 되기를 간청하자, 환웅은 굴속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쑥과 마늘만 먹으며 백일간 인내하면[百日忌]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이에 둘은 굴속에 들어갔으나 호랑이는 참지 못하고 중도에 뛰쳐나오지만 곰은 백일이 채 되기 전인 삼칠일 만에 여자의 몸을 받아 웅녀(熊女)가 되었고, 잠시 사람으로 변한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아들 단군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단군신화에 언급된 삼칠일이 금기의 신성기간으로 주술ㆍ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듯이, 민간에서는 출산과 같이 중요한 일이 발생할 때 부정을 몰아내고 소원을 성취시키는 중요한 기간으로 삼칠일을 지켜왔다.

내용

삼칠일은 주로 출산 후의 금기기간으로 널리 반영되어 아기가 태어나면 삼칠일 동안 대문에 금줄을 쳐서 새 생명이 탄생한 공간과 외부세계를 격리시켰다. 갓 태어난 아기는 외부세계의 부정(不淨)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아 산모와 함께 오염된 일상으로부터 분리하여 보호하며, 다른 가족들도 삼칠일이 지나 산모가 일상으로 복귀할 때까지 여러 가지 금기를 수행하게 된다. 이때 금줄은 출산을 널리 알리면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 삿된 기운이 침범하지 못하게 하여 아기와 산모를 보호하는 구실을 하였다. 따라서 금줄이 걸린 집에는 상가를 방문하거나 흉사에 관여한 사람의 출입을 철저히 금하였으며, 가족들도 문상을 가지 않고 동물이 죽는 것을 보았을 경우 산모 방에 들어가지 않는 등 몸가짐을 조심하여 부정이 타지 않도록 하였다.

금줄에는 고추ㆍ솔가지ㆍ숯ㆍ백지 등을 매달았는데, 이것은 본래 신성과 금기의 공간을 드러내고자 금줄을 칠 때 오행의 기운을 갖추어 그 의미를 극대화하기 위한 데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출산뿐만 아니라 장독이나 상량식 등과 같이 중요한 일에 삿된 것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할 때 오방색을 사용해왔다. 곧 솔가지는 생명력, 백지는 신성, 숯은 정화, 고추는 축귀의 의미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새끼줄의 황색, 솔가지의 청색, 고추의 적색, 백지의 백색, 숯의 흑색은 오방색을 나타낸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이러한 오행의 의미를 따지기보다는 부정을 물리치면서 남녀를 구분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자유롭게 표현ㆍ해석하면서 금줄에 미역을 거는 경우도 있다. 특히 고추는 붉은색이 벽사(辟邪)의 의미를 지녀 금줄에 즐겨 등장하는데, 출산 후에 치는 금줄에서는 점차 ‘고추=아들’의 상징이 부각됨에 따라 색깔의 짝을 맞추기 위해 푸른 솔가지를 정절의 의미로 해석하여 딸을 나타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청색은 남성, 적색은 여성을 뜻하지만, 고추가 지닌 성적 상징이 색깔의 상징을 넘어선 것이라 하겠다. 또한 금줄은 일상과 반대되는 왼새끼를 사용하여 부정을 쫓았으며, 양끝을 자르지 않고 둠으로써 아기와 산모의 수명이 끝없이 길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삼칠일에 행하는 주요한 의례내용은 초이레(초칠), 두이레(이칠), 세이레(삼칠) 때 출산과 육아를 관장하는 삼신에게 상을 올리며 아기와 산모의 건강을 빌게 된다. 삼신은 태(胎)의 우리말이 ‘삼’이기 때문에 탯줄을 관장하는 신이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이를 여성이라 보아 ‘삼신할미’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출산 전에는 임산부가 있는 방의 윗목에 짚을 깔고 삼신에게 쌀ㆍ생미역ㆍ정화수를 올리며 순산을 기원하였으며, 출산 후에는 쌀로 밥을 짓고 미역으로 국을 끓여 매 7일째 되는 날마다 삼신에게 올리고 감사와 지속적인 보살핌을 바랐던 것이다. 삼칠일은 산모의 기력을 북돋우고 수유능력을 배양하는 시기이기도 하여 산모의 몸을 보신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음식으로 정성을 들이게 된다. 아울러 삼칠일과 관련된 속신으로 ‘삼칠일 안에 집에 못을 박으면 삼신이 노한다.’, ‘삼칠일 동안에 달걀을 깨뜨리면 불길하다.’, ‘삼칠일에 수수경단을 만들어 먹으면 아이 병을 예방할 수 있다.’라고 하여 각종 행동을 조심하는 금기의 기간으로 여겼다.

출산한 지 사흘째 되는 초삼일 또한 삼칠일과 같은 맥락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아기와 산모는 출산 후 3일째 되는 날 비로소 쑥을 달인 물 등으로 씻을 수 있었고, 이후 세이레마다 목욕을 하였다. 이처럼 특정한 날에만 목욕하도록 함으로써 오염된 신체를 정화하는 의미를 담는 동시에 외기에 노출되어도 삿된 기운이 침범할 수 없다고 여겼다. 또한 아기가 태어났을 때 가른 탯줄은 바로 처리하지 않고 짚으로 싸서 방 윗목에 두었다가 3일째 되는 날에서야 비로소 묻거나 태웠으며, 태운 재는 물에 띄워 보냈다. 이는 탯줄이 태아의 삶을 유지시켜준 생명의 근원이자 태중과 바깥세상을 연결하는 소중한 것이므로 함부로 처리할 수 없다고 여겨, 중요한 일을 할 때 날을 받듯이 3수가 지닌 길상과 신성의 의미를 취해 초삼일에 이를 묻거나 태운 것이다.

초이레가 되면 새벽에 삼신상을 올린 후 산모가 그 상에 올려놓았던 밥과 미역국을 먹는다. 아기의 옷차림은 초이레 때 비로소 쌀깃(강보)을 벗기고 깃 없는 배냇저고리를 입히며 움직이지 못하도록 동여매었던 양팔 중 한쪽을 풀어주었다. 이때 아기에게 실꾸리를 채우거나 곁에 놓아두면서 장수를 기원하기도 한다. 아울러 초이레가 되어야 조부가 아기를 볼 수 있다 하여, 아기와 직계가족 간에 첫 대면이 이루어지거나 초이레를 맞아 이웃과 친지에게 떡과 음식을 대접하는 경우도 있다.

두이레에도 새벽에 밥과 미역국으로 삼신상을 올렸다가 산모가 그것을 내려 먹는다. 이때 아기의 옷은 깃이 달린 윗옷에 아래를 감싸는 두렁이를 입히고 나머지 한쪽 팔도 풀어주어서 마음대로 활갯짓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단계적으로 외조부모와 대면할 수 있도록 한다.

세이레는 삼칠일을 마감하는 날로서 가장 성대하게 의례를 치른다. 이 날을 기점으로 금줄을 걷고 모든 금기를 해제하며, 산실도 개방하여 친지ㆍ이웃을 청해 아이를 보게 하고 음식을 대접한다. 집안에 따라 수수경단, 백설기 및 소를 넣지 않은 만두 등을 만들어 접대하는데, 속이 빈 만두는 아기의 도량이 넓어지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사람들은 실타래나 건강하게 자란 아이 옷, 미역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삼신에게 밥과 미역국을 올려 감사드린 뒤 삼신상을 접게 되며 산모도 일상생활로 돌아와 바깥출입을 할 수 있다. 이 날 아기에게는 저고리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하의도 갖추어 처음으로 바지저고리를 입히게 된다. 출산과 관련된 삼칠일의 풍습은 이러한 기본구조를 갖춘 가운데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으며, 시기에 있어서도 초칠일만 지내거나 칠칠일(49일)까지 금기의 기간을 확장하는 사례들을 살펴볼 수 있다.

삼칠일은 아기를 출산한 직후를 포함하여 여러 가지 중요한 일을 행할 때 의미 있는 기간으로 널리 수용되었다. 예컨대 아기점지를 기원하는 기자치성(祈子致誠)을 할 때도 치성의 기간을 100일부터 칠칠일, 삼칠일, 칠일, 삼일 등으로 정하여 3과 7의 조합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삼국유사』 권4 「진표전간(眞表傳簡)」조에는 진표율사가 3년 동안 도를 구해도 소식을 얻지 못해 몸을 바위 아래로 던졌는데, 홀연히 한 동자가 나타나 율사를 구해 바위 위에 올려놓았고, 이에 율사가 다시 염원하여 삼칠일을 기약하고 밤낮으로 열심히 도를 닦아 천안(天眼)을 얻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석가모니는 깨달음을 이룬 후 삼칠일 동안 『화엄경』을 설하였고, 고려시대의 승려 균여는 귀법사(歸法寺)에 벼락이 떨어지는 천재지변을 풀기 위해 밤낮을 쉬지 않고 삼칠일간 법회를 열고 설법했다. 남효온(南孝溫)의 기행문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에 나오는 의신암(義神庵)의 전설에 따르면 의신조사가 수리새로 변한 천왕에게 “이곳에서 며칠이면 도를 이룰 수 있겠느냐.”라고 묻자 “삼칠일이면 되리라.”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죽기 전에 삼칠일동안 번과 등을 달고 승려들을 청해 경을 읽으며 공덕을 닦으면 죄업이 소멸된다는 정토경전의 내용 등을 살펴볼 수 있다.

날짜개념만이 아니라 숫자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예컨대 의상대사가 화엄사상의 요지를 게송으로 압축해 놓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系圖)』는 총 210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학(東學)을 창시한 최제우(崔濟愚)는 21자로 된 ‘삼칠자 주문’에 시천주사상의 핵심을 담아 이 주문 속에 천도에 이르는 바른 길이 제시되어 있다고 하였다.

의의

삼칠일은 중요한 일을 치르기에 적합한 주술ㆍ종교적인 기간으로 수용되었다. 특히 생명의 탄생을 맞아 행하는 출산 후의 삼칠일 풍습은 광범위한 수용기반을 확보하고 있다. 이는 갓 태어나 외부세계에 노출된 아기와 오랜 산고를 거쳐 회복이 필요한 산모를 물리적ㆍ관념적으로 보호하는 의미와 함께, 하나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무사히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전 단계와 분리되어 일정한 금기를 지키는 전이(轉移)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특히 탄생과 죽음은 인간의 통과의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건에 해당하므로 이러한 전이의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해 격리되었던 동굴과 삼칠일이 각각 전이를 위한 공간과 시간이었듯이, 외부세계와 격리된 산가(産家)와 삼칠일이라는 기간은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는 데 필요한 종교적 시공간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서 삼칠일은 중요한 변화의 과도기를 맞아 3과 7이라는 길수이자 신성수를 대입한 상징적 시간으로서 대상을 보호하고 무사히 다음 단계로 진입시키기 위한 기제라 하겠다.

또한 초이레, 두이레, 세이레로 거듭되는 단계는 아기가 새로운 세계로 통합됨에 있어 점진적인 과정이 필요함을 나타낸다. 즉 아기는 초이레에 가족과 공식적으로 대면하고 두이레에는 외가와, 세이레에는 친지와 대면토록 함으로써 공동체 구성원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미완의 존재를 보다 완전한 생명체로 인준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여, 이레마다 깃이 없는 옷에서 깃이 있는 옷으로, 몸을 감싸는 강보에서 저고리로, 저고리에서 바지저고리로 변해가는 옷차림은 아이의 성장에 따른 실제적 대응이자 온전한 생명체로 진전되는 단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산모도 마찬가지로 해산과 함께 완전히 일상에서 분리되었다가 초삼일에 첫 목욕으로써 정화의 과정을 거친 뒤 초이레에 공식적으로 가족과 대면하고, 삼칠일을 기점으로 가족의 성원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복귀하였다.

이처럼 삼칠일은 한 생명이 태어나 새로운 공동체구성원으로 통합되는 중요한 변화 속에서 삿된 기운이 침범하기 쉽다고 보아, 혈연ㆍ사회 공동체의 세심한 금기와 배려 속에 점진적인 전이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무사히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공동체적 삶의 대응방안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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