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칠일(三七日)

삼칠일

한자명

三七日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출생의례

집필자 한양명(韓陽明)

정의

아이가 태어난 지 스무하루가 되는 동안, 또는 그 날.

역사

삼칠일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古朝鮮』 조의 단군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환웅(桓雄)이 세상을 다스릴 당시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되게 해달라며 환웅에게 기원했다. 이에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며, 이것을 먹고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곰과 호랑이는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환웅의 말을 따랐는데 , 삼칠일 동안 금기를 지킨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금기를 지키지 못한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처럼 단군신화에서 삼칠일은, 인간이 되기 위해 금기를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기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민간에서 비단 출산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개인에게 중대사가 있을 때 순조로운 목적 달성을 위해 삼칠일치성이나 불공을 드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용

대개 초삼일이 되면, 산모와 아이는 ‘첫 목욕’을 한다. 이 목욕은 오염된 신체를 정화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때부터 산모는 수유授乳 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형편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다.

초삼일 이후에는 매 칠일마다 실제적이고 주술종교적인 금기와 의례가 계속된다. 먼저 초이레에는 아이에게 새 저고리를 입히고 한쪽 손을 자유롭게 해준다. 이때 포대기를 새것으로 갈아주기도 한다. 이날 새벽에는 삼신상에 밥과 미역국, 물을 차려놓고 아이의 무병장수와 산모의 빠른 회복, 그리고 순조로운 수유를 기원한다. 삼신에게 올린 밥과 미역국은 산모가 먹는다. 이 날은 시아버지가 아기를 처음 대면하는 날이기도 하다.

두이레에는 아이에게 새옷을 갈아입히고 두 손을 자유롭게 해준다. 첫이레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미역국과 밥, 물을 차려 삼신에게 치성을 드린 다음 산모가 먹는다. 세이레에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삼신을 위하고 밥과 국을 산모가 먹는다. 또한 출산 직후 걸어두었던 금줄을 걷고 일가친척이나 마을사람들을 불러서 대접한다. 경남 일부지역에서는 마을사람들이 실과 돈을 가지고 와서 아기의 무사탄생을 축하해주고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에서는 외할머니가 미역·떡·포대기·저고리 등을 가져오기도 한다.

삼칠일 관행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특히 가정 형편이 많이 작용하는데, 경제적 형편이 좋은 가정에서는 무려 칠칠일七七日 동안 매 칠일마다 국과 밥을 차려놓고 삼신을 대접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는 초이레에만 상을 차리거나 이마저 생략하기도 했다. 산모에 대한 대접도 마찬가지여서 부유한 집에서는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하고 건강과 수유에 좋은 갖가지 음식을 먹였지만 빈한한 집에서는 미역국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산모가 집 안팎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초이레도 지나기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만 했다.

특징 및 의의

일반적으로 볼 때 삼칠일은 임신과 출산으로 일상에서 분리된 산모와 가족이 일상으로 복귀하고 신생아를 가족과 친족, 그리고 공동체구성원에게 선보이는 전이와 통합의 과정이자 절차이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여성은 자식을 바라는 여성의 입장, 임부姙婦의 입장, 그리고 산모의 입장 등 세 번에 걸쳐서 위상이 바뀐다. 여성은 기자행위를 시작하면서 일상에서 일정하게 분리되기 시작한다. 이윽고 임신을 하게 되면 보다 더 일상으로부터 분리되며 점차 분리의 강도를 높여가다가 산월産月에 이르면 그 강도를 한층 고양시킨다. 해산과 함께 여성은 일상으로부터 분리되며 초삼일에 ‘첫 목욕’이라는 정화의례를 행한 뒤, 초이레에 공식적으로 가족들과 대면함으로써 가족의 성원으로서 복귀한다. 그리고 삼칠일이 되어 금줄이 걷히면서 그녀에게 주어진 금기와 제약이 풀리고 일상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재통합된다.

아이는 두 번에 걸쳐서 위상의 변화를 경험한다. 임신을 통해 어머니 뱃속에서 태아로 있다가 출생과 함께 신생아가 된다. 이후 아이는, 가족과 친족, 그리고 공동체구성원들과 순차적으로 만나면서 통합의 단초를 마련한다. 먼저 초이레에 조부 등을 대면함으로써 직계 가족과 일차적 통합이 이루어지며, 두이레와 세이레에 가까운 친척과 외조모를 비롯한 외가의 성원들을 대면함으로써 친인척 집단과의 통합을 시작한다. 또한 세이레에 가까운 이웃들을 만남으로써 공동체구성원으로서 첫 선을 보인다.

한편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산월이 되어 임부와 함께 금기를 준수함으로써 일상과 분리를 시작하고 해산하면서 보다 강하게 분리되어 전이기를 경험하다가, 삼칠일에 금줄을 걷으면서 산모와 함께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가족은 출산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모에 비해서 ‘분리─전이─통합’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산가産家가 소속된 공동체의 입장에서보면, 금줄을 치는 순간부터 산가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된다. ‘피 부정’이 발생한 산가는 부정한 곳으로 인식되며 그 행위의 주체인 산모는 부정한 존재로 인식된다. 동제 기간에 출산이 예정되면 임부의 거처를 공동체 밖의 피막避幕이나 해막解幕으로 옮기는 것도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은 면모는, 공동체 역시 출산과 함께 이전의 상태에서 분리되어, 언제 부정에 오염될지 모르는 전이의 상태에 돌입함을 말해준다. 따라서 금줄은, 산가의 입장에서는 외부의 부정으로부터 아이와 산모를 보호하기 위한 분리의 상징이지만, 공동체의 입장에서는 산가의 부정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분리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리는 삼칠일이 지나고 금줄을 걷음으로써 끝이 난다. 산가의 부정이 해소됨으로써 산가는 다시 공동체에 통합되고, 공동체는 이전의 일상적 질서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강원인의 일생의례(김의숙·이학주, 민속원, 2005), 사람의 한평생(정종수, 학고재, 2008),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산속(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3), 한국 산속의 체계적 이해를 위한 시론(한양명, 비교민속학16, 비교민속학회, 1999).

삼칠일

삼칠일
한자명

三七日

사전위치

한국일생의례사전 > 일생의례 > 출생의례

집필자 한양명(韓陽明)

정의

아이가 태어난 지 스무하루가 되는 동안, 또는 그 날.

역사

삼칠일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삼국유사三國遺事』 『고조선古朝鮮』 조의 단군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환웅(桓雄)이 세상을 다스릴 당시 곰과 호랑이가 사람이되게 해달라며 환웅에게 기원했다. 이에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다발과 마늘 스무 개를 주며, 이것을 먹고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곰과 호랑이는 쑥과 마늘을 먹으면서 환웅의 말을 따랐는데 , 삼칠일 동안 금기를 지킨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지만 금기를 지키지 못한 호랑이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이처럼 단군신화에서 삼칠일은, 인간이 되기 위해 금기를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기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민간에서 비단 출산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개인에게 중대사가 있을 때 순조로운 목적 달성을 위해 삼칠일치성이나 불공을 드리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내용

대개 초삼일이 되면, 산모와 아이는 ‘첫 목욕’을 한다. 이 목욕은 오염된 신체를 정화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때부터 산모는 수유授乳 능력을 높이기 위하여 형편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다.

초삼일 이후에는 매 칠일마다 실제적이고 주술종교적인 금기와 의례가 계속된다. 먼저 초이레에는 아이에게 새 저고리를 입히고 한쪽 손을 자유롭게 해준다. 이때 포대기를 새것으로 갈아주기도 한다. 이날 새벽에는 삼신상에 밥과 미역국, 물을 차려놓고 아이의 무병장수와 산모의 빠른 회복, 그리고 순조로운 수유를 기원한다. 삼신에게 올린 밥과 미역국은 산모가 먹는다. 이 날은 시아버지가 아기를 처음 대면하는 날이기도 하다.

두이레에는 아이에게 새옷을 갈아입히고 두 손을 자유롭게 해준다. 첫이레와 마찬가지로 새벽에 미역국과 밥, 물을 차려 삼신에게 치성을 드린 다음 산모가 먹는다. 세이레에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삼신을 위하고 밥과 국을 산모가 먹는다. 또한 출산 직후 걸어두었던 금줄을 걷고 일가친척이나 마을사람들을 불러서 대접한다. 경남 일부지역에서는 마을사람들이 실과 돈을 가지고 와서 아기의 무사탄생을 축하해주고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역에서는 외할머니가 미역·떡·포대기·저고리 등을 가져오기도 한다.

삼칠일 관행은 지역과 가정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특히 가정 형편이 많이 작용하는데, 경제적 형편이 좋은 가정에서는 무려 칠칠일七七日 동안 매 칠일마다 국과 밥을 차려놓고 삼신을 대접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정에서는 초이레에만 상을 차리거나 이마저 생략하기도 했다. 산모에 대한 대접도 마찬가지여서 부유한 집에서는 편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하고 건강과 수유에 좋은 갖가지 음식을 먹였지만 빈한한 집에서는 미역국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산모가 집 안팎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초이레도 지나기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만 했다.

특징 및 의의

일반적으로 볼 때 삼칠일은 임신과 출산으로 일상에서 분리된 산모와 가족이 일상으로 복귀하고 신생아를 가족과 친족, 그리고 공동체구성원에게 선보이는 전이와 통합의 과정이자 절차이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여성은 자식을 바라는 여성의 입장, 임부姙婦의 입장, 그리고 산모의 입장 등 세 번에 걸쳐서 위상이 바뀐다. 여성은 기자행위를 시작하면서 일상에서 일정하게 분리되기 시작한다. 이윽고 임신을 하게 되면 보다 더 일상으로부터 분리되며 점차 분리의 강도를 높여가다가 산월産月에 이르면 그 강도를 한층 고양시킨다. 해산과 함께 여성은 일상으로부터 분리되며 초삼일에 ‘첫 목욕’이라는 정화의례를 행한 뒤, 초이레에 공식적으로 가족들과 대면함으로써 가족의 성원으로서 복귀한다. 그리고 삼칠일이 되어 금줄이 걷히면서 그녀에게 주어진 금기와 제약이 풀리고 일상으로 복귀함과 동시에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재통합된다.

아이는 두 번에 걸쳐서 위상의 변화를 경험한다. 임신을 통해 어머니 뱃속에서 태아로 있다가 출생과 함께 신생아가 된다. 이후 아이는, 가족과 친족, 그리고 공동체구성원들과 순차적으로 만나면서 통합의 단초를 마련한다. 먼저 초이레에 조부 등을 대면함으로써 직계 가족과 일차적 통합이 이루어지며, 두이레와 세이레에 가까운 친척과 외조모를 비롯한 외가의 성원들을 대면함으로써 친인척 집단과의 통합을 시작한다. 또한 세이레에 가까운 이웃들을 만남으로써 공동체구성원으로서 첫 선을 보인다.

한편 가족의 입장에서 보면, 산월이 되어 임부와 함께 금기를 준수함으로써 일상과 분리를 시작하고 해산하면서 보다 강하게 분리되어 전이기를 경험하다가, 삼칠일에 금줄을 걷으면서 산모와 함께 일상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가족은 출산의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산모에 비해서 ‘분리─전이─통합’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산가産家가 소속된 공동체의 입장에서보면, 금줄을 치는 순간부터 산가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된다. ‘피 부정’이 발생한 산가는 부정한 곳으로 인식되며 그 행위의 주체인 산모는 부정한 존재로 인식된다. 동제 기간에 출산이 예정되면 임부의 거처를 공동체 밖의 피막避幕이나 해막解幕으로 옮기는 것도 이런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와 같은 면모는, 공동체 역시 출산과 함께 이전의 상태에서 분리되어, 언제 부정에 오염될지 모르는 전이의 상태에 돌입함을 말해준다. 따라서 금줄은, 산가의 입장에서는 외부의 부정으로부터 아이와 산모를 보호하기 위한 분리의 상징이지만, 공동체의 입장에서는 산가의 부정으로부터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한 분리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분리는 삼칠일이 지나고 금줄을 걷음으로써 끝이 난다. 산가의 부정이 해소됨으로써 산가는 다시 공동체에 통합되고, 공동체는 이전의 일상적 질서를 회복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강원인의 일생의례(김의숙·이학주, 민속원, 2005), 사람의 한평생(정종수, 학고재, 2008),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산속(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3), 한국 산속의 체계적 이해를 위한 시론(한양명, 비교민속학16, 비교민속학회,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