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군당제(府君堂祭)

부군당제

한자명

府君堂祭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

집필자 김태우(金泰佑)

정의

조선시대 경아전과 지방 관아 인근에 설치된 제당이나 현재 서울 한강 유역에 특정적으로 나타나는 마을제당, 즉 부군당에서 행해지는 제의.

역사

부군당에서 행해지는 제의는 부군당 건립과 함 께 시작되었을 것이다. 부군당은 15세기 이전부터 건 립된 것으로 보이며, 그 제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 록은 15세기 인물인 어효첨(魚孝瞻)에 관한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서울 안에 있는 관청에는 으레 작 은 집 하나를 마련해 두고 지전(紙錢)을 빽빽하게 걸 어두어 부군(府君)이라 부르며, 서로 모여서 제사를 지냈다. 새로 임명된 관원은 반드시 더욱 정성을 기 울여 제사를 올렸고, 법사(法司)라도 그와 같이 하였 다. 공이 집의가 되었을 때 아랫사람이 고사(故事)가 그렇다고 고하였다(都下官府例置一小宇叢掛紙錢號曰府君相聚而瀆祀之 新除官必祭之惟謹雖法司亦如之 公爲執義下人告以古事,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제4권 문종조고사본말 문종조의 명신 어효첨)”라고 하여 그 당시 부군당에서 행해진 제의가 오래전부터 행해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부군당제는 이 기사에서처럼 관원이 새로 부임할 때 행해진 것과 별도로 매년 일정한 시기에 정기적으로 행한 것으로 보인다. 1511년(중종 6)에 양현고 안에서 행한 제사 에 대해 음사(淫祀)라고 아뢰자 “대비전에 물으니 양 현고 안에 부근당(付根堂)이 있어 전례에 반드시 제 사를 지내므로 그렇게 한 것이라 한다(問于大妃殿 則養賢庫內有付根堂 [付根者 官府設祠祈祝 國俗也] 例必設祭 故然矣云,『 중종실록(中宗實錄)』 13책 중종 6 년 3월 29일 기묘)”라고 하여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 다는 것과 함께 왕실에서도 부군당 제의를 묵인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군당 제의는 유교식 제례 형태뿐만 아 니라 무속식 당굿 형태도 점차 성행하게 된 것으로 보 인다. 1667년에는 상익이란 자가 금부(禁府)의 부군 당에서 항시 춤추고 하였다(臣聞商翼失性 各司皆有府君堂 乃事神之所 而商翼恒舞于禁府府君堂云 非失性而何,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205책, 현종 8년 1667년 11월 13일 계축)고 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는 당시 부군당 제의가 무속식 당굿 형태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1793년에 기록한 안의현(安義縣) 현사(縣司)에서 곽 후(郭侯)를 제사한 기(記)에 보면 “아! 지금 중앙의 모 든 관청과 지방의 주현(州縣)에는 이청(吏廳)의 옆에 귀신에게 푸닥거리하는 사당이 없는 곳이 없으니, 이 를 모두 부군당(府君堂)이라 부른다. 매년 10월에 서 리와 아전들이 재물을 거두어 사당 아래에서 취하고 배불리 먹으며, 무당들이 가무와 풍악으로 귀신을 즐 겁게 한다(噫 今之百司 外而州縣 其吏廳之側 莫不有賽神之祠 皆號府君堂 每歲十月 府史胥徒醵財賄 醉飽祠下 巫祝歌舞皷樂以娛神,『 연암집』)”라고 하여 당시 에 무속식 당굿 형태가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19세기에는 한강 유역과 지방의 관아 또는 마 을에 부군당이 설치되면서 제의의 주체들도 변하게 되었다. 즉 부군당제가 초기에는 경각사(京各司, 조 선시대 서울에 있던 관청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각 사’라고도 함)의 아전들에 의해 행해졌으나 이후에 는 한강 유역 지역민이나 지방 향리들에 의해 행해지 게 되었다. 서울 서빙고 지역 부군당의 경우를 보더라 도 1875년 중건 집단과 1891년 중수를 주도한 ‘노인계 (老人契)’의 주요 인물들은 이 지역에 대대로 거주하 면서 국가로부터 관직과 품직을 제수 받고 세력을 형 성한 토착 세력이었으며, 신분적으로 중인 계층인 것 으로 나타났다. 1903년에 있은 중수는 ‘이중계(里中契)’에 의해 행해진다. 이중계는 전대의 노인계와 달 리 지역민 모두를 포괄하는 일반적인 동계(洞契)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는 제의가 지역민 전체의 공 동체 제의로 변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부군당제는 주로 서울 한 강 유역에 존재하는 부군당에서 행하는 제의이다. 한 강 유역 부군당제는 대부분 무속식 당굿 형식이며, 유 교식 제례가 일부 결합된 형태이다. 그러나 경제적 문 제로 인해 점차 유교식 제사 형태로만 진행되는 경우 가 늘어가는 추세이다.

내용

부군당제는 유교식 제례 형태와 무속식 당굿 형 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전승되고 있는 부군당제의 대부분은 무속식 당굿이 위주가 되고, 유 교식 제례가 부분적으로 결합된 형태를 보인다. 조 선시대 부군당제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 인 연암 박지원의『 연암집』을 보면 “제사하는 날 저녁 이 되자 호장(戶長)이 온 고을의 아전과 노복들을 거 느리고 크고 작은 일들을 분주히 처리하기를 조심하 고 엄숙하게 하였다. …… 그리고 횃불을 휘황하게 밝 혀 놓고 절하고 무릎 꿇는 것이 예가 있어 헌작(獻爵) 으로부터 철상(撤床)에 이르기까지 감히 시끄럽게 하 거나 나태한 기색을 나타냄이 없었다. …… 매년 10월 에 서리와 아전들이 재물을 거두어 사당 아래에서 취 하고 배불리 먹으며, 무당들이 가무와 풍악으로 귀신 을 즐겁게 한다(及祭之夕 戶長率一縣之吏隷僮奴小大奔趨 震悚嚴恭 …… 炬燎煌煌拜跪有數 自奠斝「至撤豆 毋敢讙譁惰容者 …… 每歲十月 府史胥徒醵財賄 醉飽祠下 巫祝歌舞皷樂以娛神, 1793년 안의현 현사에서 곽후를 제사한 기)”라고 하여 엄숙한 유교식 제례 형 태와 함께 무당들에 의한 무속식 당굿 형태도 있었음 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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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신앙 부군당제" />

현재 전승되고 있는 부군당굿의 특징을 살펴보면 서울 지역 개인굿의 구조를 기본으로 하되 서울 지역 마을굿이 지닌 특징적인 굿거리들, 즉 유가돌기·본 향거리·군웅거리와 같은 절차로 인해 확장된 구조 를 보인다. 여기에다 부군거리와 같은 부군당만의 특 별한 절차가 첨가되어 부군당 무속 제의의 전형적인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무속식 당굿의 사례로 2007 년 마포구 밤섬 부군당굿의 순서를 살펴보면 주당물 림-유과 돌아옴(꽃반)-내빈소개-부정거리(상산노래가 락)-부군님(신장대감창부)-말명조상-삼현육각(진지공 양)-장군님 거성(별상신장대감텃대감)-불사님-군웅거 리-창부거리-뒷전거리-소지 순이다. 유교식 제례 형 태의 사례로 이태원동 부군당 제의 순서를 살펴보면 수화주 분향-강신-참신(화주 일동 삼배)-부군양위님 헌작-화주 일동 부복-독축-시주자 호명 축원-화주 일 동 평신(平身, 엎드려 절한 뒤에 몸을 다시 폄)-사신 (辭神, 화주 일동 삼배)-분축(焚祝, 축문과 소지 태우 기)-철상-음복 순이다. 부군당제가 행해지는 시기는 정월, 4월, 7월, 10월 등으로 다양한 가운데 주로 10월 과 정월 초하루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서울 한강 유역 부군당 제의 의 구체적인 구성 요소들을 살펴보면 인적 측면에 있 어서 주재 집단들이 ‘치성위원회’나 ‘보존위원회’ 같은 단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토박이를 중심으로 하여 점 차 소수 정예화되고 있다. 매년 당굿을 주도적으로 맡 아 하는 무당을 ‘당주 무당’이라고 한다. 이들은 전대 당주 무당과 함께 조무(助巫)로 오래전부터 참여하다 가 그가 사망하면 뒤를 이어 당주 무당의 지위를 계승 하게 된다. 이처럼 한강 유역 부군당의 당주 무당은 지역 주민들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으면서 단골 관계 를 형성하고 있다. 당주 무당들은 부군당굿에 2~5명 의 조무들을 초빙한다. 자신의 신딸들은 물론 개인적 으로 친분이 있거나 지역적으로 연고가 있는 무당들 이 대상이다. 한강 유역 부군당의 당굿에 참여하는 무 당들은 거의 강신무 계통이지만 당주 무당들은 사승 관계(師承關係)가 확실하여 대부분 그 계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당주 무당들은 대부분 전대 당주 무당으로부 터 그 직을 물려받은 경우이다. 물적 측면에 있어서 과거에는 추렴과 반기라는 호혜 관계가 작동되었지만 현재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또 제의 현장에 각종 행 사 도구가 새롭게 등장하는 현상을 통해 제의가 점차 공개화·행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도적 측면 에서는 과거에는 유교식 제례 후에 무속식 당굿이 이 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현재는 무속식 당굿이 점차 중단되고 있다. 한편 부군당 제의에 대한 문화재 지정은 새로운 제도적 환경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이 에 대한 요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번호 지역 주무 악사
성명 당주 계승 관계
1 성동구 금호동 김유감 현재 중단 없음
2 성동구 응봉동 김옥렴 현재 중단, 현재 행당동 아기씨당 주무 없음
3 성동구 성수동 없음 현재 중단 없음
4 성동구 옥수동 홍막음 단독으로 인계 없음
5 용산구 동빙고동 남옥씨 현재 중단 (오자완)
6 용산구 산천동 정해옥 신어머니로부터 계승 미상
7 용산구 서빙고동 남옥씨 1994년 중단 (오자완)
8 용산구 이태원동 민명숙 오복동-박어진-민명숙, 2004년 중단 (허무길)
9 용산구 한남동(큰한강) 김학순 원당집-친딸-김학순(광나루 평양집) 이선호 외
10 용산구 한남동(작은한강) 조정자 미상 박문수 외
11 용산구 청암동 윤지순 단독으로 인계 없음
12 마포구 창전동 밤섬 김춘강 딱부리(노량진만신), 개똥엄마(당인리)-김춘강 김찬섭 외
13 마포구 당인동 정복만 1987년 중단 없음
14 마포구 도화동 없음 현재 중단 없음
15 영등포구 당산동 서정자 손정희(당인리할머니)-서정자 최형근 외
16 영등포구 영등포동 조애자 깜둥이만신-조애자 없음
17 영등포구 산길2동 대나무집할머니 검정치마만신-이북할머니-대나무집할머니(영등포동 주무의 신어머니) 없음

한강 유역 부군당 당주 무당 및 악사 현황(2006년 기준)

지역사례

서울 한강 유역 부군당에서 행하는 제의는 크 게 유교식 제례 형태와 무속식 당굿 형태, 유교식과 무속식이 결합된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부분 은 무속식 당굿 형태가 위주로 되고 있지만 제의의 처 음이나 중간에 주민들이 선출한 제관들에 의해 행해 지는 유교식 제례 형태가 일반적이다. 즉 성동구 금호 동·응봉동·성수동·옥수동, 용산구 산천동·청암 동, 마포구 창전동(밤섬)·도화동, 영등포구 당산동 등의 부군당제가 이러한 사례가 된다. 무속식 당굿 형 태는 유교식 제례가 생략되었거나 간략하게 행해지는 경우를 말한다. 용산구 한남동 큰한강과 작은한강, 영 등포구 영등포동과 신길2동 등의 부군당제가 여기에 해당된다. 유교식 제례 형태는 대부분 과거에는 무속 식 당굿과 결합되어 있었으나 경제적 사정 등으로 당 굿이 중단된 것이다. 용산구 동빙고동·서빙고동· 이태원동 등의 부군당제가 이러한 사례에 속한다. 마 포구 당인동의 경우 유교식이나 무속식 형태도 아닌 주민들 중에서 선출된 당주가 치성을 드리는 형태여 서 특이한 사례이다.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와 군남면 선곡리에서 는 일제강점기 때까지 ‘부군굿’을 행했다고 한다. 부 군당과 같은 제당이 있은 것은 아니지만 공터나 신목 (神木) 아래에서 음력 시월쯤에 부군굿을 하였다. 연 천군의 장남면 고랑포리에도 제당이 있었다. 이를 부 군당이라 불렀으며, 여기서 하던 굿을 ‘고창굿’이라고 하였다. 고창굿은 주로 배를 부리는 선주들이 중심이 었으며, 10여 명의 무당에 의해 거의 한 달 동안 지속 된 대규모 굿이었다고 한다. 광복 후에도 한두 번 굿 을 했으나 6·25전쟁 이후 중단되었다고 한다.

번호 지역 전승 단체 제의 형태 문화재 지정 여부
1 성동구 금호동 무쇠막항우회 운영위원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2 성동구 응봉동 없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3 성동구 성수동 없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4 성동구 옥수동 없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5 용산구 동빙고동 부군당 치성위원회 유교식(←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6 용산구 산천동 원효로 2동부군당보존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7 용산구 서빙고동 부군당 치성위원회 유교식(← 유교식+무속식) 지정(민속자료)
8 용산구 이태원동 부군묘 관리위원회 유교식(←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9 용산구 한남동(큰한강) 큰한강 부군당위원회 무속식 미지정
10 용산구 한남동(작은한강) 작은한강 부군당위원회 무속식 미지정
11 용산구 청암동 부군당 보존위원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12 마포구 창전동 밤섬부군당 도당굿보존회 유교식+무속식 지정(무형문화재)
13 마포구 당인동 부군당정화 관리위원회 치성식 미지정
14 마포구 도화동 없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15 영등포구 당산동 임원+운영위원회+소임 집단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16 영등포구 영등포동 없음 무속식 미지정
17 영등포구 산길2동 임원+할머니집단 무속식 미지정

한강 유역 부군당 제의 현황표(2006년 기준)

참조

부군당

참고문헌

서울 한강 유역 부군당 의례 연구 (김태우,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서울 서빙고 지역 부군당 의례 주도 집단 연구 (김태우, 서울학연구 38, 서울시립대학교부설 서울학연구소, 2010)

부군당제

부군당제
한자명

府君堂祭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마을신앙 > 제의

집필자 김태우(金泰佑)

정의

조선시대 경아전과 지방 관아 인근에 설치된 제당이나 현재 서울 한강 유역에 특정적으로 나타나는 마을제당, 즉 부군당에서 행해지는 제의.

역사

부군당에서 행해지는 제의는 부군당 건립과 함 께 시작되었을 것이다. 부군당은 15세기 이전부터 건 립된 것으로 보이며, 그 제의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 록은 15세기 인물인 어효첨(魚孝瞻)에 관한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서울 안에 있는 관청에는 으레 작 은 집 하나를 마련해 두고 지전(紙錢)을 빽빽하게 걸 어두어 부군(府君)이라 부르며, 서로 모여서 제사를 지냈다. 새로 임명된 관원은 반드시 더욱 정성을 기 울여 제사를 올렸고, 법사(法司)라도 그와 같이 하였 다. 공이 집의가 되었을 때 아랫사람이 고사(故事)가 그렇다고 고하였다(都下官府例置一小宇叢掛紙錢號曰府君相聚而瀆祀之 新除官必祭之惟謹雖法司亦如之 公爲執義下人告以古事,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제4권 문종조고사본말 문종조의 명신 어효첨)”라고 하여 그 당시 부군당에서 행해진 제의가 오래전부터 행해지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부군당제는 이 기사에서처럼 관원이 새로 부임할 때 행해진 것과 별도로 매년 일정한 시기에 정기적으로 행한 것으로 보인다. 1511년(중종 6)에 양현고 안에서 행한 제사 에 대해 음사(淫祀)라고 아뢰자 “대비전에 물으니 양 현고 안에 부근당(付根堂)이 있어 전례에 반드시 제 사를 지내므로 그렇게 한 것이라 한다(問于大妃殿 則養賢庫內有付根堂 [付根者 官府設祠祈祝 國俗也] 例必設祭 故然矣云,『 중종실록(中宗實錄)』 13책 중종 6 년 3월 29일 기묘)”라고 하여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냈 다는 것과 함께 왕실에서도 부군당 제의를 묵인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부군당 제의는 유교식 제례 형태뿐만 아 니라 무속식 당굿 형태도 점차 성행하게 된 것으로 보 인다. 1667년에는 상익이란 자가 금부(禁府)의 부군 당에서 항시 춤추고 하였다(臣聞商翼失性 各司皆有府君堂 乃事神之所 而商翼恒舞于禁府府君堂云 非失性而何,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205책, 현종 8년 1667년 11월 13일 계축)고 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는 당시 부군당 제의가 무속식 당굿 형태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1793년에 기록한 안의현(安義縣) 현사(縣司)에서 곽 후(郭侯)를 제사한 기(記)에 보면 “아! 지금 중앙의 모 든 관청과 지방의 주현(州縣)에는 이청(吏廳)의 옆에 귀신에게 푸닥거리하는 사당이 없는 곳이 없으니, 이 를 모두 부군당(府君堂)이라 부른다. 매년 10월에 서 리와 아전들이 재물을 거두어 사당 아래에서 취하고 배불리 먹으며, 무당들이 가무와 풍악으로 귀신을 즐 겁게 한다(噫 今之百司 外而州縣 其吏廳之側 莫不有賽神之祠 皆號府君堂 每歲十月 府史胥徒醵財賄 醉飽祠下 巫祝歌舞皷樂以娛神,『 연암집』)”라고 하여 당시 에 무속식 당굿 형태가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18~19세기에는 한강 유역과 지방의 관아 또는 마 을에 부군당이 설치되면서 제의의 주체들도 변하게 되었다. 즉 부군당제가 초기에는 경각사(京各司, 조 선시대 서울에 있던 관청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각 사’라고도 함)의 아전들에 의해 행해졌으나 이후에 는 한강 유역 지역민이나 지방 향리들에 의해 행해지 게 되었다. 서울 서빙고 지역 부군당의 경우를 보더라 도 1875년 중건 집단과 1891년 중수를 주도한 ‘노인계 (老人契)’의 주요 인물들은 이 지역에 대대로 거주하 면서 국가로부터 관직과 품직을 제수 받고 세력을 형 성한 토착 세력이었으며, 신분적으로 중인 계층인 것 으로 나타났다. 1903년에 있은 중수는 ‘이중계(里中契)’에 의해 행해진다. 이중계는 전대의 노인계와 달 리 지역민 모두를 포괄하는 일반적인 동계(洞契)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이는 제의가 지역민 전체의 공 동체 제의로 변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부군당제는 주로 서울 한 강 유역에 존재하는 부군당에서 행하는 제의이다. 한 강 유역 부군당제는 대부분 무속식 당굿 형식이며, 유 교식 제례가 일부 결합된 형태이다. 그러나 경제적 문 제로 인해 점차 유교식 제사 형태로만 진행되는 경우 가 늘어가는 추세이다.

내용

부군당제는 유교식 제례 형태와 무속식 당굿 형 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전승되고 있는 부군당제의 대부분은 무속식 당굿이 위주가 되고, 유 교식 제례가 부분적으로 결합된 형태를 보인다. 조 선시대 부군당제의 구체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자료 인 연암 박지원의『 연암집』을 보면 “제사하는 날 저녁 이 되자 호장(戶長)이 온 고을의 아전과 노복들을 거 느리고 크고 작은 일들을 분주히 처리하기를 조심하 고 엄숙하게 하였다. …… 그리고 횃불을 휘황하게 밝 혀 놓고 절하고 무릎 꿇는 것이 예가 있어 헌작(獻爵) 으로부터 철상(撤床)에 이르기까지 감히 시끄럽게 하 거나 나태한 기색을 나타냄이 없었다. …… 매년 10월 에 서리와 아전들이 재물을 거두어 사당 아래에서 취 하고 배불리 먹으며, 무당들이 가무와 풍악으로 귀신 을 즐겁게 한다(及祭之夕 戶長率一縣之吏隷僮奴小大奔趨 震悚嚴恭 …… 炬燎煌煌拜跪有數 自奠斝「至撤豆 毋敢讙譁惰容者 …… 每歲十月 府史胥徒醵財賄 醉飽祠下 巫祝歌舞皷樂以娛神, 1793년 안의현 현사에서 곽후를 제사한 기)”라고 하여 엄숙한 유교식 제례 형 태와 함께 무당들에 의한 무속식 당굿 형태도 있었음 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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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승되고 있는 부군당굿의 특징을 살펴보면 서울 지역 개인굿의 구조를 기본으로 하되 서울 지역 마을굿이 지닌 특징적인 굿거리들, 즉 유가돌기·본 향거리·군웅거리와 같은 절차로 인해 확장된 구조 를 보인다. 여기에다 부군거리와 같은 부군당만의 특 별한 절차가 첨가되어 부군당 무속 제의의 전형적인 구조를 갖추게 되었다. 무속식 당굿의 사례로 2007 년 마포구 밤섬 부군당굿의 순서를 살펴보면 주당물 림-유과 돌아옴(꽃반)-내빈소개-부정거리(상산노래가 락)-부군님(신장대감창부)-말명조상-삼현육각(진지공 양)-장군님 거성(별상신장대감텃대감)-불사님-군웅거 리-창부거리-뒷전거리-소지 순이다. 유교식 제례 형 태의 사례로 이태원동 부군당 제의 순서를 살펴보면 수화주 분향-강신-참신(화주 일동 삼배)-부군양위님 헌작-화주 일동 부복-독축-시주자 호명 축원-화주 일 동 평신(平身, 엎드려 절한 뒤에 몸을 다시 폄)-사신 (辭神, 화주 일동 삼배)-분축(焚祝, 축문과 소지 태우 기)-철상-음복 순이다. 부군당제가 행해지는 시기는 정월, 4월, 7월, 10월 등으로 다양한 가운데 주로 10월 과 정월 초하루에 집중되어 있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서울 한강 유역 부군당 제의 의 구체적인 구성 요소들을 살펴보면 인적 측면에 있 어서 주재 집단들이 ‘치성위원회’나 ‘보존위원회’ 같은 단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토박이를 중심으로 하여 점 차 소수 정예화되고 있다. 매년 당굿을 주도적으로 맡 아 하는 무당을 ‘당주 무당’이라고 한다. 이들은 전대 당주 무당과 함께 조무(助巫)로 오래전부터 참여하다 가 그가 사망하면 뒤를 이어 당주 무당의 지위를 계승 하게 된다. 이처럼 한강 유역 부군당의 당주 무당은 지역 주민들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으면서 단골 관계 를 형성하고 있다. 당주 무당들은 부군당굿에 2~5명 의 조무들을 초빙한다. 자신의 신딸들은 물론 개인적 으로 친분이 있거나 지역적으로 연고가 있는 무당들 이 대상이다. 한강 유역 부군당의 당굿에 참여하는 무 당들은 거의 강신무 계통이지만 당주 무당들은 사승 관계(師承關係)가 확실하여 대부분 그 계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당주 무당들은 대부분 전대 당주 무당으로부 터 그 직을 물려받은 경우이다. 물적 측면에 있어서 과거에는 추렴과 반기라는 호혜 관계가 작동되었지만 현재는 점차 약화되고 있다. 또 제의 현장에 각종 행 사 도구가 새롭게 등장하는 현상을 통해 제의가 점차 공개화·행사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제도적 측면 에서는 과거에는 유교식 제례 후에 무속식 당굿이 이 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현재는 무속식 당굿이 점차 중단되고 있다. 한편 부군당 제의에 대한 문화재 지정은 새로운 제도적 환경으로 등장하고 있으며, 이 에 대한 요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번호 지역 주무 악사 성명 당주 계승 관계 1 성동구 금호동 김유감 현재 중단 없음 2 성동구 응봉동 김옥렴 현재 중단, 현재 행당동 아기씨당 주무 없음 3 성동구 성수동 없음 현재 중단 없음 4 성동구 옥수동 홍막음 단독으로 인계 없음 5 용산구 동빙고동 남옥씨 현재 중단 (오자완) 6 용산구 산천동 정해옥 신어머니로부터 계승 미상 7 용산구 서빙고동 남옥씨 1994년 중단 (오자완) 8 용산구 이태원동 민명숙 오복동-박어진-민명숙, 2004년 중단 (허무길) 9 용산구 한남동(큰한강) 김학순 원당집-친딸-김학순(광나루 평양집) 이선호 외 10 용산구 한남동(작은한강) 조정자 미상 박문수 외 11 용산구 청암동 윤지순 단독으로 인계 없음 12 마포구 창전동 밤섬 김춘강 딱부리(노량진만신), 개똥엄마(당인리)-김춘강 김찬섭 외 13 마포구 당인동 정복만 1987년 중단 없음 14 마포구 도화동 없음 현재 중단 없음 15 영등포구 당산동 서정자 손정희(당인리할머니)-서정자 최형근 외 16 영등포구 영등포동 조애자 깜둥이만신-조애자 없음 17 영등포구 산길2동 대나무집할머니 검정치마만신-이북할머니-대나무집할머니(영등포동 주무의 신어머니) 없음

한강 유역 부군당 당주 무당 및 악사 현황(2006년 기준)

지역사례

서울 한강 유역 부군당에서 행하는 제의는 크 게 유교식 제례 형태와 무속식 당굿 형태, 유교식과 무속식이 결합된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대부분 은 무속식 당굿 형태가 위주로 되고 있지만 제의의 처 음이나 중간에 주민들이 선출한 제관들에 의해 행해 지는 유교식 제례 형태가 일반적이다. 즉 성동구 금호 동·응봉동·성수동·옥수동, 용산구 산천동·청암 동, 마포구 창전동(밤섬)·도화동, 영등포구 당산동 등의 부군당제가 이러한 사례가 된다. 무속식 당굿 형 태는 유교식 제례가 생략되었거나 간략하게 행해지는 경우를 말한다. 용산구 한남동 큰한강과 작은한강, 영 등포구 영등포동과 신길2동 등의 부군당제가 여기에 해당된다. 유교식 제례 형태는 대부분 과거에는 무속 식 당굿과 결합되어 있었으나 경제적 사정 등으로 당 굿이 중단된 것이다. 용산구 동빙고동·서빙고동· 이태원동 등의 부군당제가 이러한 사례에 속한다. 마 포구 당인동의 경우 유교식이나 무속식 형태도 아닌 주민들 중에서 선출된 당주가 치성을 드리는 형태여 서 특이한 사례이다.

경기도 연천군 중면 삼곶리와 군남면 선곡리에서 는 일제강점기 때까지 ‘부군굿’을 행했다고 한다. 부 군당과 같은 제당이 있은 것은 아니지만 공터나 신목 (神木) 아래에서 음력 시월쯤에 부군굿을 하였다. 연 천군의 장남면 고랑포리에도 제당이 있었다. 이를 부 군당이라 불렀으며, 여기서 하던 굿을 ‘고창굿’이라고 하였다. 고창굿은 주로 배를 부리는 선주들이 중심이 었으며, 10여 명의 무당에 의해 거의 한 달 동안 지속 된 대규모 굿이었다고 한다. 광복 후에도 한두 번 굿 을 했으나 6·25전쟁 이후 중단되었다고 한다.

번호 지역 전승 단체 제의 형태 문화재 지정 여부 1 성동구 금호동 무쇠막항우회 운영위원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2 성동구 응봉동 없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3 성동구 성수동 없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4 성동구 옥수동 없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5 용산구 동빙고동 부군당 치성위원회 유교식(←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6 용산구 산천동 원효로 2동부군당보존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7 용산구 서빙고동 부군당 치성위원회 유교식(← 유교식+무속식) 지정(민속자료) 8 용산구 이태원동 부군묘 관리위원회 유교식(←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9 용산구 한남동(큰한강) 큰한강 부군당위원회 무속식 미지정 10 용산구 한남동(작은한강) 작은한강 부군당위원회 무속식 미지정 11 용산구 청암동 부군당 보존위원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12 마포구 창전동 밤섬부군당 도당굿보존회 유교식+무속식 지정(무형문화재) 13 마포구 당인동 부군당정화 관리위원회 치성식 미지정 14 마포구 도화동 없음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15 영등포구 당산동 임원+운영위원회+소임 집단 유교식+무속식 미지정 16 영등포구 영등포동 없음 무속식 미지정 17 영등포구 산길2동 임원+할머니집단 무속식 미지정

한강 유역 부군당 제의 현황표(2006년 기준)

참조

부군당

참고문헌

서울 한강 유역 부군당 의례 연구 (김태우, 경희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8)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서울 서빙고 지역 부군당 의례 주도 집단 연구 (김태우, 서울학연구 38, 서울시립대학교부설 서울학연구소,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