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구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주술적인 기운이 있다고 여겨 나뭇가지 등으로 도구를 만들어 나쁜 귀신과 재앙을 쫓는 데 사용하는 나무.

유래

복숭아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인 과수로, 악귀를 쫓을 뿐만 아니라 열매는 신선이 먹는 불로장생의 선과(仙果)라 하여 고대 중국에서부터 주술적인 나무로 신성시해 왔다.

기원전 4세기쯤에 지은 『산해경(山海經)』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해에 떠 있는 도삭산(度朔山)에 사방 3천리에 걸쳐 가지와 잎이 퍼진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낮게 드리운 가지에는 귀신이 드나드는 귀문(鬼門)이 있고 두 신이 그 문을 지켰다. 그 신들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악귀가 있으면 갈대로 끈을 묶어 복숭아나무로 만든 활을 쏜 뒤 호랑이에게 먹히게 했다. 이에 나라에서는 연말에 액을 모두 물리친 뒤 문 앞에 복숭아나무를 세워서 문에 두 신과 호랑이 그림을 붙이고 갈대로 만든 끈을 걸어 귀신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또한 기원전 2세기쯤의 문헌인 『회남자(淮南子)』에 보면 하(夏)나라에 천자 자리를 빼앗고 악정을 펼쳐 백성의 원망을 산 인물이 있었다. 어떤 이가 복숭아나무로 만든 큰 방망이로 그를 후려쳐 죽게 하였다. 이 일이 있은 뒤로 귀신은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도교에서는 복숭아를 신선이 먹는 불사(不死)의 과일이라 하여 천도(天桃), 선도(仙桃) 등으로 불렀다. 이로 인해 “복숭아나무에서 나는 진을 뽕나무 재의 즙에 절여 마시면 신선이 될 수 있다”(『포박자(抱朴子)』), “고구공(高丘公)이 복숭아나무 진을 먹고 신선이 되었다”(『열선전(列仙傳)』)는 기록을 볼 수 있다.

특히 복숭아가 지닌 불로장생의 상징은 서왕모와 동방삭의 전설로 유명하다. 중국 상상의 산인 곤륜산(崑崙山) 서쪽에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불사의 명약으로 3천 년에 한 번 열매가 열리는 복숭아나무를 가지고 있었다. 신선술을 좋아한 한 무제(漢武帝)는 그녀를 만나 복숭아를 얻어먹지만 살생을 많이 하고 수행이 부족하여 신선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제의 부하인 동방삭(東方朔)은 서왕모의 천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를 살아 장수의 상징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복숭아나무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초기 기록으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들 수 있다. 이 책 권5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조의 신라 건국신화와 관련된 내용 가운데 불로장생의 복숭아가 열리는 선도산의 선도성모 사소(娑蘇)가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시조를 출산하고 나라를 창건하게 한 성모의 신성한 힘에 복숭아가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권2 가락국기(駕洛國記)조에는 가야의 왕비가 된 허황옥(許皇玉)이 하늘의 계시에 따라 김수로왕을 만나기 위해 바다에서 증조(蒸棗, 대추)를 구하고 하늘에서 반도(蟠桃, 복숭아)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서는 후손 번창을 의미하는 대추와 함께 복숭아가 국모의 신성성을 상징하는 징표로 등장한다.

복숭아나무가 축귀(逐鬼)와 불로장생이라는 두 가지 상징성을 지니게 된 근거는 다음과 같이 유추할 수 있다. 즉 복숭아는 오목(五木) 가운데 가장 정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이른 시기에 봄기운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을 피우는 양기 충만한 나무이기 때문에 귀신과 같은 음기를 쫓는 힘이 강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러한 양목(陽木)의 속성과 더불어 복숭아의 생김새가 여근(女根), 여체를 연상케 하고 열매가 많아 강한 생산력과 생명력을 지닌 여성성을 상징하게 되어 불로장생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쪽으로 뻗은 가지[東桃枝]는 축귀의 힘이 가장 큰 것으로 보았다. 해가 뜨는 동쪽은 만물이 소생하는 근원이어서 양의 기운과 생명력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내용

복숭아나무는 대부분 민속신앙에서 삿된 기운과 귀신을 쫓기 위한 주술적인 도구로 사용한다. ‘귀신에 복숭아나무 방망이’라는 속담이 전승되고, 홍만선(洪萬選)이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복숭아나무는 백귀(百鬼)를 제압하니 선목(仙木)이라 부른다.”고 했듯이, 복숭아나무가 각종 잡귀와 질병을 물리치기 위한 도구로 널리 활용되었다. 복숭아나무를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부적ㆍ도장과 각종 공예품 등으로 만들어 이를 호신용으로 지니거나 주변에 붙임으로써 귀신의 근접을 막는 방법, 빗자루ㆍ활ㆍ칼 등으로 만들어 직접 귀신을 몰아내는 행위를 하는 적극적인 퇴치 방법이 있다. 복숭아나무는 동쪽으로 뻗은 나뭇가지가 효험이 크다고 하여 동도지(東桃枝)를 쓰는 것이 관례이다.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을 ‘도부(桃符)’라고 한다. 부적 자체를 복숭아나무로 만들기도 하지만 부적을 새길 때도 복숭아나무를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육갑부적(六甲符籍)은 복숭아나무로 만든 도목검(桃木劍)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나무를 깎아 검을 만든 다음 참기름과 결명주사[丹砂]를 여러 번 바르면 윤기가 나면서 진검 못지않은 기운이 돌게 된다. 이 칼로 부적을 그리면 주술적인 힘을 얻는다고 보았다.

무속의 굿판에서도 잡귀를 물리칠 때 복숭아나무 가지가 중요한 무구(巫具)로 등장한다. 부정ㆍ동토ㆍ삼재 등 각종 풀이나 푸닥거리, 비손 등에서 무당이 복숭아나무 가지를 들고 부정이 발생한 곳으로 여기는 공간의 곳곳을 쳐내거나 귀신에 씌었다고 여기는 환자를 나뭇가지로 때리면 잡귀를 쫓아낼 수 있다고 보았다. 점복에 사용하는 윷[擲柶]이나 무당이 물에 빠진 사람의 넋을 건지는 데 쓰는 넋대 등 각종 무구도 복숭아나무로 만들었다. 재앙을 쫓는 데 복숭아나무가 영험하다는 속신은 보편적이어서 무속인만이 아니라 민간에서도 복숭아나무를 사용하는 주술이 각종 세시풍속통과의례 등에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다.

  1. 세시풍속 : 세시풍속에서는 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연말연초에 삿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한 도구로 복숭아나무를 많이 사용하였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수세(守歲)>라는 시에는 “대문 위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꽂음이 얼마나 기이한가(門上插桃何詭誔)”라는 구절이 나온다. 수세는 섣달그믐날 밤을 새우는 것으로, 해가 뜨는 시점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대문 위에 꽂아 재앙을 물리친 당시의 풍습을 담고 있다. 이때 대문 위에 꽂은 복숭아나무 가지는 부적으로 만든 도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 중국에서는 섣달그믐날에 복숭아나무로 만든 판자에다 갈대로 꼰 새끼줄을 든 두 신상(神像)과 호랑이를 그려서 대문에 붙이고 잡귀를 막는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은 도삭산의 복숭아나무 관련 전설을 반영한 것이다. 이 도부가 점차 종이에 그림과 글씨를 담는 것으로 변하여 입춘 때 입춘부(立春符), 입춘방을 써서 대문에 붙이는 민속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고려사(高麗史)』 권63 제17 길례 소사(小祀) 사한(司寒)조에 따르면 “맹동과 입춘에 얼음을 저장하거나 꺼낼 때 제사를 올린다. 제사하는 날에 상림령(上林令)이 복숭아나무로 만든 활과 가시나무로 만든 화살을 빙실(氷室) 문 안 오른쪽에 마련해놓고 제사가 끝나도록 그대로 둔다.”고 한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대에 얼음은 부패를 막아 건강을 지켜 주는 소중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얼음을 빙실에 저장하거나 꺼낼 때 북방의 신인 현명씨(玄冥氏)에게 사한제(司寒祭)를 올렸다. 이때 복숭아나무 활과 가시나무 화살인 도호극시(桃弧棘矢)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복숭아나무의 벽사력과 가시나무의 날카로운 침이 악귀를 쫓는 무기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연말연시에 악귀를 퇴치하기 위해 복숭아나무로 비를 만들어 잡귀를 축출하고 신년을 맞는 민간 풍습이 광범위하게 전승되었다. 대궐에서도 세모(歲暮)가 되면 역귀와 악귀를 쫓기 위해 구나희(驅儺戲)라는 축귀의식을 행했다. 이때 복숭아나무가 중요한 축귀 도구로 사용되었다.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기록된 구나희의 풍습을 살펴보면 섣달그믐날 10여 명의 어린아이들로 진자무리[侲子群]를 조직하여 홍의홍포(紅衣紅布)를 입힌 뒤 궁중에 들여보내 역귀와 잡귀를 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아이들은 푸른 댓가지, 싸릿대, 익모초 줄기, 복숭아나무 가지를 모아 만든 빗자루를 들고 발을 구르며 문짝마다 쓸고 다니면서 악귀를 문 밖으로 쫓았다. 이러한 풍습을 방매귀(放枚鬼)라고 불렀다.

    정월대보름날에는 가축의 질병과 더위를 예방하기 위해 소, 돼지, 개 등의 목에 왼새끼줄이나 복숭아나무 가지로 둥글게 목서리목도리를 만들어 걸어 주었다. 벽사(辟邪)의 주술적 효능이 있는 것으로 여긴 복숭아나무와 왼새끼를 활용해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의 더위와 각종 재액도 예방한 것이다. 또한 삼월삼짇날에 복숭아꽃 한 말 한 되를 따서 도화주(桃花酒)를 빚어 마시거나 복숭아잎을 삶은 물인 도화탕(桃花湯)에 목욕하면 악귀와 만병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이는 삼짇날(음력 3월 3일)이 양수(陽數)인 3이 겹쳐 양의 기운이 충만하고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어서 그 기운을 빌려 음기를 물리치고자 한 것이다. 바깥에서 소를 몰고 올 때 복숭아나무 가지로 때리면서 집에 들어오는 칠월칠석날 풍습 역시 강한 양기로 음기를 쫓는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밖에 백중(百中)인 칠월 보름(7월 15일) 저녁에는 복숭아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이날 복숭아를 먹으면 집 안에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잇병 예방뿐만 아니라 인물이 좋아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2. 통과의례 :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중요한 순간마다 치르는 통과의례에서도 복숭아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복숭아나무는 벽사와 축귀는 물론 봄의 생명력과 장수를 상징하여 복숭아 문양의 공예품이나 그림 등이 돌이나 혼례부터 수연(壽宴)에 이르기까지 즐겨 사용되었다.

    특히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는 유아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한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갓 낳은 아기에게 복숭아꽃과 흰 눈으로 세수를 시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돌잔치를 할 때 아기의 액운을 막기 위해 복숭아나무 가지를 사용한 ‘수수살맥이’를 하였다. 즉 수수로 붉은 단자(團子)를 만들어 복숭아나무 화살에 꿴 뒤 동서남북으로 쏘아 날리면 병마와 잡귀가 멀리 달아나 아이가 무병장수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복숭아나무로 자물쇠 모양을 만들거나 복숭아 문양의 돌반지를 만들어 악귀의 침범을 막기도 하였다.

    혼례에서는 신행(新行)을 갈 때 신부가 탄 가마가 시집 대문 앞에 다다르면 복숭아나무 가지를 쥐고 기다리던 무당이 달려들어 가마를 마구 때려 잡귀를 쫓아낸다. 그러고 나서 신부는 대문 앞에 피워 놓은 불을 뛰어 넘음으로써 정화의식을 거친 다음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러한 풍습을 ‘행차물림’이라고 한다. 특히 복숭아는 장생불사를 상징하는 선과(仙果)라 하여 수연에 장수를 기원하는 수복(壽福)의 각종 장식물로 빠짐없이 등장한다.

    또한 상(喪)이 났을 때도 방에서 시신을 밖으로 옮기는 출상을 하기 직전에 복숭아나무 가지로 관을 두드리고 방 안의 네 구석을 휘저어 잡귀를 몰아낸 다음 관을 옮겼다. 망자의 생년과 죽은 날의 일진(日辰)이 겹치는 중복에 걸려 있으면 경쟁이를 불러 중복경을 읽어 풀어 준다. 이때도 복숭아나무 가지로 두드리며 경을 읽어야 효험이 있다고 보았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도 임금이 상가를 방문할 때 복숭아나무와 갈대 이삭으로 잡귀를 쫓았다는 기록이 있다.

  3. 치병 : 복숭아나무는 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쓰였는데 특히 귀신이 들었다고 여긴 정신병에 이용되었다. 병의 치료에는 주로 무당이나 맹인이 동원되었다. 병이 가벼우면 복숭아나무 가지로 머리나 얼굴을 쓰다듬었고, 정신병자의 경우처럼 병이 심하면 며칠 동안 독경이나 기도를 한 다음 “귀신은 썩 물러가라!”고 외치며 복숭아나무 가지로 환자를 때려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치렀다. 이로 인해 간혹 맞아 죽는 예도 있어 ‘복숭아 몽둥이로 미친 놈 때리듯 한다.’는 속담은 사정없이 심하게 때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때로는 복숭아나무로 칼을 만들어 귀신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특히 학질에 걸리면 아침 일찍 환자를 동향으로 앉히고 복숭아나무 가지로 등을 때리면서 “초학귀신아! 학질귀신아! 어서 썩 물러가라.” 하며 쫓았다. 이를 ‘초학뱅이’라고 한다. 전염병이 돌 때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화살 모양의 부적을 만들어 몸에 지니거나 방 안에 걸어두면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민속도 있다. 이러한 풍습과 관련하여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마을에 한 청년이 귀신에 씌어 밤낮으로 미치광이처럼 쏘다니자 청년의 장인이 복숭아나무 가지를 잘라 장도(長刀) 모양으로 만들어 청년의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청년이 땅에 쓰러져 사흘 동안 혼수상태가 되었다가 살아나더니 광태(狂態)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 밖에도 복숭아나무로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여러 속설이 민간에 전한다. 복숭아잎에 ‘하늘 천(天)’자를 쓴 뒤 종이에 싸서 버리면 주운 사람이 병을 가져간다고 보았다. 또 나뭇가지를 꺾어 해 뜨는 방향에 꽂아 두면 학질이 없어지고, 나뭇가지로 환자를 때려 신체에 상처를 내면 장질부사(장티푸스)에 효험이 있다고 보았다. 냉병(冷病)에는 복숭아나무의 진을 내어 먹거나 복숭아나무를 사타구니에 끼고 앉아 하룻밤을 새우면 낫게 된다고 한다.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편(湯液篇)」에도 이러한 벽사ㆍ축귀의 기능이 강조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복숭아꽃은 귀신에 씌었거나 다른 혼이 빙의시주(尸疰)와 악귀를 죽이고, 나무에 달린 채 마른 복숭아는 온갖 헛것에 들린 것을 없앤다고 한다. 또 복숭아털은 악귀와 사기(邪氣), 복숭아나무 벌레는 귀신, 속껍질은 사귀(邪鬼)를 없앤다고 함으로써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데 복숭아나무가 효과를 지녔음을 적고 있다.

    치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숭아나무가 미와 건강을 유지해 주고 정력과 생식력을 강화해 주는 힘이 있다고 보았다. 처녀가 복숭아를 많이 먹으면 예뻐지고 속살(음부의 살)이 찌며, 삼짇날 복숭아꽃을 따서 음지에 말려 복용하면 안색이 좋아져서 세 그루의 꽃을 다 먹으면 얼굴빛이 복숭아꽃처럼 발그레하고 생기가 돌게 된다고 한다. 복숭아잎 삶은 물로 뒷물을 하면 음력이 강해지고, 복숭아나무를 사타구니에 끼고 앉아 밤을 새우면 정력이 강해지며, 자일(子日)에 복숭아 속씨를 한 알씩 먹거나 정해일(丁亥日)에 딴 복숭아꽃을 음지에 말려 가루를 낸 뒤 무자일(戊子日)에 샘물에 타서 마시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 보았다. 이는 모두 복숭아나무가 양기와 생명력이 충만하고 과일의 형상이 여성의 성적 상징을 닮은 데서 비롯된 속신이라고 할 수 있다.

  4. 금기 : 복숭아나무가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와 반대로 귀신을 쫓아서는 안 될 경우에는 적극적인 금기의 민속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제사상에는 복숭아를 올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다. 이는 조상신이 찾아왔을 때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되돌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고대 소설 <흥부전>에는 놀부 부부의 극에 달한 심술을 표현하기 위해 이들이 제사상에 숯불을 피우고 복숭아를 괴어 놓는 장면이 등장한다. 숯불과 복숭아는 혼백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어서 제사상에 혼백을 쫓는 복숭아를 올려놓았으니 불효 또한 막심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또한 복숭아의 형상과 연분홍 색깔이 성적 상징을 연상케 하여 도색(桃色)이라는 말로 남녀 간의 색정을 나타낸다. 제사상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것과 집 안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 이유에는 복숭아의 이러한 특성도 작용하고 있다. 담장 밖에 복숭아나무를 심을 때도 금기가 있다. 서쪽이나 북쪽에는 함부로 심지 않고 주로 동쪽에 심었으며, 나무가 지붕보다 높아지는 것을 꺼렸다. 이와 더불어 방위에 따라서 태방(兌方)인 서북쪽에 복숭아나무를 심으면 흉하고, 손방(巽方)인 동남쪽에 심으면 길하며, 감방(坎方)인 북쪽에 심으면 여난(女難)의 재앙이 생긴다는 속설이 전한다. 또한 축귀나 치병 외에는 복숭아나무 가지로 매질하는 것을 금하였고 서당에서는 복숭아나무 회초리로 매질을 하면 학동들의 재주가 달아난다고 해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한국문화상징사전 (한국문화상징사전 편찬위원회, 동아출판사, 1992), 한국민속식물 (최영전, 아카데미서적, 1997), 한국세시풍속사전-정월 (국립민속박물관, 2004), 高麗史, 三國遺事,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2ㆍ3 (이상희, 넥서스, 2004), 충남 태안지역의 안택병경 (임승범, 한국의 가정신앙-하, 민속원, 2005), 복숭아나무의 민간신앙 연구 (안병국, 온지논총 15, 온지학회, 2006), 문과 상징 (정연학, 시월, 2009)

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
사전위치

한국민속신앙사전 > 가정신앙 > 제구

집필자 구미래(具美來)

정의

주술적인 기운이 있다고 여겨 나뭇가지 등으로 도구를 만들어 나쁜 귀신과 재앙을 쫓는 데 사용하는 나무.

유래

복숭아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인 과수로, 악귀를 쫓을 뿐만 아니라 열매는 신선이 먹는 불로장생의 선과(仙果)라 하여 고대 중국에서부터 주술적인 나무로 신성시해 왔다.

기원전 4세기쯤에 지은 『산해경(山海經)』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동해에 떠 있는 도삭산(度朔山)에 사방 3천리에 걸쳐 가지와 잎이 퍼진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낮게 드리운 가지에는 귀신이 드나드는 귀문(鬼門)이 있고 두 신이 그 문을 지켰다. 그 신들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악귀가 있으면 갈대로 끈을 묶어 복숭아나무로 만든 활을 쏜 뒤 호랑이에게 먹히게 했다. 이에 나라에서는 연말에 액을 모두 물리친 뒤 문 앞에 복숭아나무를 세워서 문에 두 신과 호랑이 그림을 붙이고 갈대로 만든 끈을 걸어 귀신이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고 한다. 또한 기원전 2세기쯤의 문헌인 『회남자(淮南子)』에 보면 하(夏)나라에 천자 자리를 빼앗고 악정을 펼쳐 백성의 원망을 산 인물이 있었다. 어떤 이가 복숭아나무로 만든 큰 방망이로 그를 후려쳐 죽게 하였다. 이 일이 있은 뒤로 귀신은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도교에서는 복숭아를 신선이 먹는 불사(不死)의 과일이라 하여 천도(天桃), 선도(仙桃) 등으로 불렀다. 이로 인해 “복숭아나무에서 나는 진을 뽕나무 재의 즙에 절여 마시면 신선이 될 수 있다”(『포박자(抱朴子)』), “고구공(高丘公)이 복숭아나무 진을 먹고 신선이 되었다”(『열선전(列仙傳)』)는 기록을 볼 수 있다.

특히 복숭아가 지닌 불로장생의 상징은 서왕모와 동방삭의 전설로 유명하다. 중국 상상의 산인 곤륜산(崑崙山) 서쪽에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불사의 명약으로 3천 년에 한 번 열매가 열리는 복숭아나무를 가지고 있었다. 신선술을 좋아한 한 무제(漢武帝)는 그녀를 만나 복숭아를 얻어먹지만 살생을 많이 하고 수행이 부족하여 신선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무제의 부하인 동방삭(東方朔)은 서왕모의 천도를 훔쳐 먹고 삼천갑자를 살아 장수의 상징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복숭아나무와 관련된 우리나라의 초기 기록으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를 들 수 있다. 이 책 권5 선도성모수희불사(仙桃聖母隨喜佛事)조의 신라 건국신화와 관련된 내용 가운데 불로장생의 복숭아가 열리는 선도산의 선도성모 사소(娑蘇)가 신라의 시조인 혁거세와 알영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시조를 출산하고 나라를 창건하게 한 성모의 신성한 힘에 복숭아가 중요한 작용을 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권2 가락국기(駕洛國記)조에는 가야의 왕비가 된 허황옥(許皇玉)이 하늘의 계시에 따라 김수로왕을 만나기 위해 바다에서 증조(蒸棗, 대추)를 구하고 하늘에서 반도(蟠桃, 복숭아)를 얻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서는 후손 번창을 의미하는 대추와 함께 복숭아가 국모의 신성성을 상징하는 징표로 등장한다.

복숭아나무가 축귀(逐鬼)와 불로장생이라는 두 가지 상징성을 지니게 된 근거는 다음과 같이 유추할 수 있다. 즉 복숭아는 오목(五木) 가운데 가장 정기가 좋을 뿐만 아니라 찬 기운이 남아 있는 이른 시기에 봄기운을 가장 먼저 받아들여 잎이 나기도 전에 꽃을 피우는 양기 충만한 나무이기 때문에 귀신과 같은 음기를 쫓는 힘이 강하다고 여긴 것이다. 이러한 양목(陽木)의 속성과 더불어 복숭아의 생김새가 여근(女根), 여체를 연상케 하고 열매가 많아 강한 생산력과 생명력을 지닌 여성성을 상징하게 되어 불로장생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동쪽으로 뻗은 가지[東桃枝]는 축귀의 힘이 가장 큰 것으로 보았다. 해가 뜨는 동쪽은 만물이 소생하는 근원이어서 양의 기운과 생명력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내용

복숭아나무는 대부분 민속신앙에서 삿된 기운과 귀신을 쫓기 위한 주술적인 도구로 사용한다. ‘귀신에 복숭아나무 방망이’라는 속담이 전승되고, 홍만선(洪萬選)이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복숭아나무는 백귀(百鬼)를 제압하니 선목(仙木)이라 부른다.”고 했듯이, 복숭아나무가 각종 잡귀와 질병을 물리치기 위한 도구로 널리 활용되었다. 복숭아나무를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부적ㆍ도장과 각종 공예품 등으로 만들어 이를 호신용으로 지니거나 주변에 붙임으로써 귀신의 근접을 막는 방법, 빗자루ㆍ활ㆍ칼 등으로 만들어 직접 귀신을 몰아내는 행위를 하는 적극적인 퇴치 방법이 있다. 복숭아나무는 동쪽으로 뻗은 나뭇가지가 효험이 크다고 하여 동도지(東桃枝)를 쓰는 것이 관례이다.

복숭아나무로 만든 부적을 ‘도부(桃符)’라고 한다. 부적 자체를 복숭아나무로 만들기도 하지만 부적을 새길 때도 복숭아나무를 사용하였다. 예를 들어 육갑부적(六甲符籍)은 복숭아나무로 만든 도목검(桃木劍)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나무를 깎아 검을 만든 다음 참기름과 결명주사[丹砂]를 여러 번 바르면 윤기가 나면서 진검 못지않은 기운이 돌게 된다. 이 칼로 부적을 그리면 주술적인 힘을 얻는다고 보았다.

무속의 굿판에서도 잡귀를 물리칠 때 복숭아나무 가지가 중요한 무구(巫具)로 등장한다. 부정ㆍ동토ㆍ삼재 등 각종 풀이나 푸닥거리, 비손 등에서 무당이 복숭아나무 가지를 들고 부정이 발생한 곳으로 여기는 공간의 곳곳을 쳐내거나 귀신에 씌었다고 여기는 환자를 나뭇가지로 때리면 잡귀를 쫓아낼 수 있다고 보았다. 점복에 사용하는 윷[擲柶]이나 무당이 물에 빠진 사람의 넋을 건지는 데 쓰는 넋대 등 각종 무구도 복숭아나무로 만들었다. 재앙을 쫓는 데 복숭아나무가 영험하다는 속신은 보편적이어서 무속인만이 아니라 민간에서도 복숭아나무를 사용하는 주술이 각종 세시풍속과 통과의례 등에 광범위하게 전승되고 있다.

세시풍속 : 세시풍속에서는 주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연말연초에 삿된 기운을 몰아내기 위한 도구로 복숭아나무를 많이 사용하였다. 고려시대 이규보(李奎報)의 <수세(守歲)>라는 시에는 “대문 위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꽂음이 얼마나 기이한가(門上插桃何詭誔)”라는 구절이 나온다. 수세는 섣달그믐날 밤을 새우는 것으로, 해가 뜨는 시점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대문 위에 꽂아 재앙을 물리친 당시의 풍습을 담고 있다. 이때 대문 위에 꽂은 복숭아나무 가지는 부적으로 만든 도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대 중국에서는 섣달그믐날에 복숭아나무로 만든 판자에다 갈대로 꼰 새끼줄을 든 두 신상(神像)과 호랑이를 그려서 대문에 붙이고 잡귀를 막는 풍습이 있었다. 이 풍습은 도삭산의 복숭아나무 관련 전설을 반영한 것이다. 이 도부가 점차 종이에 그림과 글씨를 담는 것으로 변하여 입춘 때 입춘부(立春符), 입춘방을 써서 대문에 붙이는 민속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고려사(高麗史)』 권63 제17 길례 소사(小祀) 사한(司寒)조에 따르면 “맹동과 입춘에 얼음을 저장하거나 꺼낼 때 제사를 올린다. 제사하는 날에 상림령(上林令)이 복숭아나무로 만든 활과 가시나무로 만든 화살을 빙실(氷室) 문 안 오른쪽에 마련해놓고 제사가 끝나도록 그대로 둔다.”고 한다. 냉장시설이 없던 시대에 얼음은 부패를 막아 건강을 지켜 주는 소중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얼음을 빙실에 저장하거나 꺼낼 때 북방의 신인 현명씨(玄冥氏)에게 사한제(司寒祭)를 올렸다. 이때 복숭아나무 활과 가시나무 화살인 도호극시(桃弧棘矢)를 사용한 것이다. 이는 복숭아나무의 벽사력과 가시나무의 날카로운 침이 악귀를 쫓는 무기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연말연시에 악귀를 퇴치하기 위해 복숭아나무로 비를 만들어 잡귀를 축출하고 신년을 맞는 민간 풍습이 광범위하게 전승되었다. 대궐에서도 세모(歲暮)가 되면 역귀와 악귀를 쫓기 위해 구나희(驅儺戲)라는 축귀의식을 행했다. 이때 복숭아나무가 중요한 축귀 도구로 사용되었다. 성현(成俔)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기록된 구나희의 풍습을 살펴보면 섣달그믐날 10여 명의 어린아이들로 진자무리[侲子群]를 조직하여 홍의홍포(紅衣紅布)를 입힌 뒤 궁중에 들여보내 역귀와 잡귀를 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아이들은 푸른 댓가지, 싸릿대, 익모초 줄기, 복숭아나무 가지를 모아 만든 빗자루를 들고 발을 구르며 문짝마다 쓸고 다니면서 악귀를 문 밖으로 쫓았다. 이러한 풍습을 방매귀(放枚鬼)라고 불렀다.

정월대보름날에는 가축의 질병과 더위를 예방하기 위해 소, 돼지, 개 등의 목에 왼새끼줄이나 복숭아나무 가지로 둥글게 목서리목도리를 만들어 걸어 주었다. 벽사(辟邪)의 주술적 효능이 있는 것으로 여긴 복숭아나무와 왼새끼를 활용해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의 더위와 각종 재액도 예방한 것이다. 또한 삼월삼짇날에 복숭아꽃 한 말 한 되를 따서 도화주(桃花酒)를 빚어 마시거나 복숭아잎을 삶은 물인 도화탕(桃花湯)에 목욕하면 악귀와 만병을 물리친다고 믿었다. 이는 삼짇날(음력 3월 3일)이 양수(陽數)인 3이 겹쳐 양의 기운이 충만하고 본격적인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어서 그 기운을 빌려 음기를 물리치고자 한 것이다. 바깥에서 소를 몰고 올 때 복숭아나무 가지로 때리면서 집에 들어오는 칠월칠석날 풍습 역시 강한 양기로 음기를 쫓는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밖에 백중(百中)인 칠월 보름(7월 15일) 저녁에는 복숭아를 먹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이날 복숭아를 먹으면 집 안에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잇병 예방뿐만 아니라 인물이 좋아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통과의례 :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중요한 순간마다 치르는 통과의례에서도 복숭아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복숭아나무는 벽사와 축귀는 물론 봄의 생명력과 장수를 상징하여 복숭아 문양의 공예품이나 그림 등이 돌이나 혼례부터 수연(壽宴)에 이르기까지 즐겨 사용되었다.

특히 의학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는 유아사망률이 높았기 때문에 아기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한 많은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갓 낳은 아기에게 복숭아꽃과 흰 눈으로 세수를 시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돌잔치를 할 때 아기의 액운을 막기 위해 복숭아나무 가지를 사용한 ‘수수살맥이’를 하였다. 즉 수수로 붉은 단자(團子)를 만들어 복숭아나무 화살에 꿴 뒤 동서남북으로 쏘아 날리면 병마와 잡귀가 멀리 달아나 아이가 무병장수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복숭아나무로 자물쇠 모양을 만들거나 복숭아 문양의 돌반지를 만들어 악귀의 침범을 막기도 하였다.

혼례에서는 신행(新行)을 갈 때 신부가 탄 가마가 시집 대문 앞에 다다르면 복숭아나무 가지를 쥐고 기다리던 무당이 달려들어 가마를 마구 때려 잡귀를 쫓아낸다. 그러고 나서 신부는 대문 앞에 피워 놓은 불을 뛰어 넘음으로써 정화의식을 거친 다음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러한 풍습을 ‘행차물림’이라고 한다. 특히 복숭아는 장생불사를 상징하는 선과(仙果)라 하여 수연에 장수를 기원하는 수복(壽福)의 각종 장식물로 빠짐없이 등장한다.

또한 상(喪)이 났을 때도 방에서 시신을 밖으로 옮기는 출상을 하기 직전에 복숭아나무 가지로 관을 두드리고 방 안의 네 구석을 휘저어 잡귀를 몰아낸 다음 관을 옮겼다. 망자의 생년과 죽은 날의 일진(日辰)이 겹치는 중복에 걸려 있으면 경쟁이를 불러 중복경을 읽어 풀어 준다. 이때도 복숭아나무 가지로 두드리며 경을 읽어야 효험이 있다고 보았다. 『숙종실록(肅宗實錄)』에도 임금이 상가를 방문할 때 복숭아나무와 갈대 이삭으로 잡귀를 쫓았다는 기록이 있다.

치병 : 복숭아나무는 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쓰였는데 특히 귀신이 들었다고 여긴 정신병에 이용되었다. 병의 치료에는 주로 무당이나 맹인이 동원되었다. 병이 가벼우면 복숭아나무 가지로 머리나 얼굴을 쓰다듬었고, 정신병자의 경우처럼 병이 심하면 며칠 동안 독경이나 기도를 한 다음 “귀신은 썩 물러가라!”고 외치며 복숭아나무 가지로 환자를 때려 악귀를 쫓아내는 의식을 치렀다. 이로 인해 간혹 맞아 죽는 예도 있어 ‘복숭아 몽둥이로 미친 놈 때리듯 한다.’는 속담은 사정없이 심하게 때린다는 뜻을 담고 있다.

때로는 복숭아나무로 칼을 만들어 귀신을 위협하기도 하였다. 특히 학질에 걸리면 아침 일찍 환자를 동향으로 앉히고 복숭아나무 가지로 등을 때리면서 “초학귀신아! 학질귀신아! 어서 썩 물러가라.” 하며 쫓았다. 이를 ‘초학뱅이’라고 한다. 전염병이 돌 때는 복숭아나무로 만든 화살 모양의 부적을 만들어 몸에 지니거나 방 안에 걸어두면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민속도 있다. 이러한 풍습과 관련하여 성현은 『용재총화』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마을에 한 청년이 귀신에 씌어 밤낮으로 미치광이처럼 쏘다니자 청년의 장인이 복숭아나무 가지를 잘라 장도(長刀) 모양으로 만들어 청년의 목을 베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청년이 땅에 쓰러져 사흘 동안 혼수상태가 되었다가 살아나더니 광태(狂態)가 없어졌다고 한다.

이 밖에도 복숭아나무로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여러 속설이 민간에 전한다. 복숭아잎에 ‘하늘 천(天)’자를 쓴 뒤 종이에 싸서 버리면 주운 사람이 병을 가져간다고 보았다. 또 나뭇가지를 꺾어 해 뜨는 방향에 꽂아 두면 학질이 없어지고, 나뭇가지로 환자를 때려 신체에 상처를 내면 장질부사(장티푸스)에 효험이 있다고 보았다. 냉병(冷病)에는 복숭아나무의 진을 내어 먹거나 복숭아나무를 사타구니에 끼고 앉아 하룻밤을 새우면 낫게 된다고 한다. 허준(許浚)의 『동의보감(東醫寶鑑)』 「탕액편(湯液篇)」에도 이러한 벽사ㆍ축귀의 기능이 강조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복숭아꽃은 귀신에 씌었거나 다른 혼이 빙의된 시주(尸疰)와 악귀를 죽이고, 나무에 달린 채 마른 복숭아는 온갖 헛것에 들린 것을 없앤다고 한다. 또 복숭아털은 악귀와 사기(邪氣), 복숭아나무 벌레는 귀신, 속껍질은 사귀(邪鬼)를 없앤다고 함으로써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데 복숭아나무가 효과를 지녔음을 적고 있다.

치병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복숭아나무가 미와 건강을 유지해 주고 정력과 생식력을 강화해 주는 힘이 있다고 보았다. 처녀가 복숭아를 많이 먹으면 예뻐지고 속살(음부의 살)이 찌며, 삼짇날 복숭아꽃을 따서 음지에 말려 복용하면 안색이 좋아져서 세 그루의 꽃을 다 먹으면 얼굴빛이 복숭아꽃처럼 발그레하고 생기가 돌게 된다고 한다. 복숭아잎 삶은 물로 뒷물을 하면 음력이 강해지고, 복숭아나무를 사타구니에 끼고 앉아 밤을 새우면 정력이 강해지며, 자일(子日)에 복숭아 속씨를 한 알씩 먹거나 정해일(丁亥日)에 딴 복숭아꽃을 음지에 말려 가루를 낸 뒤 무자일(戊子日)에 샘물에 타서 마시면 아들을 낳게 된다고 보았다. 이는 모두 복숭아나무가 양기와 생명력이 충만하고 과일의 형상이 여성의 성적 상징을 닮은 데서 비롯된 속신이라고 할 수 있다.

금기 : 복숭아나무가 귀신을 쫓는 능력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이와 반대로 귀신을 쫓아서는 안 될 경우에는 적극적인 금기의 민속으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제사상에는 복숭아를 올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집안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다. 이는 조상신이 찾아왔을 때 복숭아나무가 있으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되돌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고대 소설 <흥부전>에는 놀부 부부의 극에 달한 심술을 표현하기 위해 이들이 제사상에 숯불을 피우고 복숭아를 괴어 놓는 장면이 등장한다. 숯불과 복숭아는 혼백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이어서 제사상에 혼백을 쫓는 복숭아를 올려놓았으니 불효 또한 막심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또한 복숭아의 형상과 연분홍 색깔이 성적 상징을 연상케 하여 도색(桃色)이라는 말로 남녀 간의 색정을 나타낸다. 제사상에 적합하지 않다고 보는 것과 집 안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는 이유에는 복숭아의 이러한 특성도 작용하고 있다. 담장 밖에 복숭아나무를 심을 때도 금기가 있다. 서쪽이나 북쪽에는 함부로 심지 않고 주로 동쪽에 심었으며, 나무가 지붕보다 높아지는 것을 꺼렸다. 이와 더불어 방위에 따라서 태방(兌方)인 서북쪽에 복숭아나무를 심으면 흉하고, 손방(巽方)인 동남쪽에 심으면 길하며, 감방(坎方)인 북쪽에 심으면 여난(女難)의 재앙이 생긴다는 속설이 전한다. 또한 축귀나 치병 외에는 복숭아나무 가지로 매질하는 것을 금하였고 서당에서는 복숭아나무 회초리로 매질을 하면 학동들의 재주가 달아난다고 해 이를 사용하지 않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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